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 강원도
◎ 통천군(通川郡)
지군사(知郡事) 1인.
본래 고구려의 휴양군(休壤郡;金惱라고도 한다)인데, 신라에서 금양군(金壤郡)으로 고쳤고, 고려 초에 현령(縣令)을 두었다가, 충렬왕(忠烈王) 11년에 지통주사(知通州事)로 승격하였다. 본조에서도 그대로 따랐다가, 태종(太宗) 13년 계사(癸巳)에 예에 의하여 통천군(通川郡)으로 고쳤다. 속현(屬縣)이 3이니, 임도(臨道)는 본래 고구려의 도림현(道臨縣;助乙浦라고도 한다)인데, 신라에서 임도현(臨道縣)으로 고쳤다. 벽산현(碧山縣)은 본래 고구려의 토상현(吐上縣)인데, 신라에서 제상현(隄上縣)으로 고쳤고, 고려에서 지금의 이름으로 고쳤다.(위 2현은 신라 및 고려가 모두 금양군에 붙였다) 운암현(雲嵓縣)은 본래 고려의 평진현(平珍縣)인데, 신라에서 편험현(偏嶮縣)으로 고쳐서 고성군(高城郡)의 영현(領縣)을 삼았고, 고려에서 지금의 이름으로 고쳐서 금양현(金壤縣)의 임내(任內)로 하였다.(벽산·운암은 없어져 直村을 삼았다)
등화산(登禾山;郡 북쪽에 있는데, 군의 사람들이 진산으로 삼는다) 사방 경계는 동쪽으로 바다 어귀에 이르기 7리, 서쪽으로 화천현(和川縣)에 이르기 29리, 남쪽으로 고성(高城)에 이르기 62리, 북쪽으로 흡곡(歙谷)에 이르기 10리이다. 호수(戶數)가 2백 90호요, 인구가 1천 3백 63명이며, 임도의 호수가 54호요, 인구가 2백 12명이다. 군정은 시위군이 53명이요, 선군(船軍)이 70명이다. 토성(土姓)이 4이니, 김(金)·이(李)·정(鄭)·유(兪)요, 내성(來姓)이 2이니, 임(林)·윤(尹)이요, 망성(亡姓)이 1이니, 장(張)이요, 망래성(亡來姓)이 1이니, 조(趙)이다. 속성(續姓)이 5이니, 맹(孟)·최(崔)·이(李;경주에서 왔다)·박(朴;寧海에서 왔다)·손(孫;평해에서 왔다. 최·이·박·손의 4성은 모두 향리이다)이요, 임도(臨道)의 망입성(亡入姓)이 2이니, 최(崔;慈仁 拔山에서 들어왔다)·태(太;귀화하여 들어왔다)이요, 속성(續姓)이 1이니, 임(林)이며, 벽산의 성이 1이니, 최(崔)요, 망성(亡姓)이 2이니, 임(林)·손(孫)이며, 운암의 속성이 1이니, 임(林)이요, 망입성(亡入姓)이 3이니, 채(蔡;金化에서 왔다)·송(宋;狼川에서 들어왔다)·이(李;朝宗에서 들어왔다)이다.
땅이 메마르고, 기후가 따뜻하다. 간전(墾田)이 1천 8백 10결(結)이요(논이 4분의 1에 약하다), 토의(土宜)는 오곡과 뽕나무·삼·왕골·감·배·밤·닥나무·칠이다. 토공은 꿀·밀[黃蠟]·시우쇠·상멱·오배자(五倍子)·호도·지초·느타리·석이·조피열매[川椒]·담비가죽·삵쾡이가죽·노루가죽·수달피·잘·문어·숭어·대구·연어·상어·전복·홍합·전복껍데기·돼지털이요, 약재는 인삼·오미자·복령·바디나물뿌리[前胡]·승검초뿌리[當歸]·나팔꽃씨[牽牛子]·매재기뿌리[京三稜]·대왕풀[白芨]·백교향(白膠香)·산무애뱀[白花蛇]·속돌[水砲石]이다. 염분(鹽盆)이 36이요, 도기소(陶器所)가 1이니, 군의 남쪽 15리 용공동(龍貢洞)에 있다.(하품이다)
읍석성(邑石城;둘레가 2백 5步이다) 총석정(叢石亭;군의 북쪽 12리 바닷가에 있으며, 동쪽에 四仙峯이 있는데, 碑를 세워서 그 일을 기록하였다) 금란굴(金蘭窟;郡 동쪽 9리에 있다) 역(驛)이 3이니, 거풍(巨豊;옛 이름은 長豐이다)·조진(朝珍;옛 이름은 超塵이다)·등로(藤路)요(임도현에 있다), 봉화가 3곳이니, 금란(金蘭)이 군의 동쪽에 있고(서쪽으로 淮陽 임내 和川의 軍餘伊에, 북쪽으로 歙谷의 致空에, 남쪽으로 임도의 荳白에 응한다), 두백(荳白;남쪽으로 운암 土戌串에 응한다)‧술곶(戌串;남쪽으로 고성 靈津에 응한다)이다. 해도(海島)가 3이니, 난도(卵島;물길이 2息 쯤 된다)·저도(猪島;물길이 3리쯤 된다)·삼도(三島;물길이 5리이다)이다.
【원전】 5집 681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