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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울릉군 기독교 100년사
◈ 제 7 장 울릉군내의 교회설립과 당회조직
박덕일(朴德逸) 목사 / 1870년 2월 27일 대구 출신으로 부청관리(아전=향리)였지만 33세가 되던 1902년 5월 사업의 실패로 인해 절망 하던 중 미국북장로교 선교사들에 의해 예수를 믿게 되었다. 1902년 세례를 받고 그해 12월 조사가 되어 여러교회를 시무하였다.
목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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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군 기독교 100년사
제 7 장 울릉군내의 교회설립과 당회조직
 
 

1. 도중교회 설립 유래

 
1) 도동교회
 
- 명   칭 : 도동야소교회당
- 소 재 지 : 경상북도 울릉도 남면 도동 155번지
- 창설자씨명 : 이홍우
- 창설년월일 : 대정오년(1916년)
- 창립자씨명 : 맹의와
- 계출년월일 : 대정육년 팔월 구일(1917년 8월 9일)
- 직   분 : 영수 이재원 김근배 김학이 이위생 김용헌 김순기
 
 
2) 저동교회
 
- 명   칭 : 저동교회당
- 소 재 지 : 경상북도 울릉도 남면 저동 157번지
- 창설자씨명 : 주신조
- 설립년월일 : 명치사십오년 이월 일(1912년 2월)
- 창립자씨명 : 매견시
- 계출년월일 : 대정사년 12월 15日(1915년 12월 25일)
- 직   분 : 영수 주신조 김권명 송지수 변선욱 박재천 한두표 박기호 강명진 전금봉 백만술
 
 
3) 장흥동교회
 
- 명   칭 : 사동교회당
- 소 재 지 : 경상북도 울릉도 남면 사동 516번지
- 창설자씨명 : 김병두
- 창설년월일 : 명치사십사년 오월 십일(1911년 5월 10일)
- 창립자씨명 : 매견시
- 계출년월일 : 대정사년 십이월 십오일(1915년 12월 15일)
- 직   분 : 영수 장두욱 도문주 송원수 김종달,
      장로 이종운
 
 
4) 현포교회
 
- 명   칭 : 현포기도실
- 소 재 지 : 경상북도 울릉도 북면 현포동 211번지
- 창설자씨명 : 정윤식
- 창설년월일 : 대정삼년 삼월 오일(1914년 3월 5일)
- 창립자씨명 : 매견시
- 계출년월일 : 대정사년 십이월 십오일
- 직   분 : 영수 정윤석 박춘목 나태익 김종헌 허경
      장로 허경 장립집사 송천청장
 
 
5) 태하동교회
 
- 명   칭 : 태하동교회당
- 소 재 지 : 경상북도 울릉도 서면 태하동 77번지
- 창설자씨명 : 이규윤
- 창설년월일 : 대정팔년
- 창립자씨명 : 위철치
- 계출년월일 : 대정십일년 십이월 이십팔일(1922년 12월 28일)
- 직   분 : 영수 이규윤 이상락 임부춘 정태일
 
 
6) 천부동교회
 
- 명   칭 : 나리동교회당
- 소 재 지 : 경상북도 울릉도 북면 나리동 176번지
- 창설자씨명 : 송광수
- 창설년월일 : 대정십년 구월 십일일
- 창립자씨명 : 위철치
- 계출년월일 : 대정십일년 육월 이십오일(1922년 6월 25일)
- 직   분 : 영수 송광수 김근배 정무출 허만 김철영
 
 
7) 남서동교회
 
- 명   칭 : 남서동교회당
- 소 재 지 : 경상북도 울릉도 서면 남서동 107-1번지
- 창설자씨명 : 안상수
- 창설년월일 : 소화오년 사월 일일(1930년 4월 5일)
- 창립자씨명 : 권영해
- 계출년월일 : 소화십삼년 십월 일
- 직   분 : 영수 안상수 김순기
 
 
8) 산막기도실
- 명   칭 : 산막기도실
- 소 재 지 : 경상북도 울릉도 서면 산막곡 278-2번지
- 창설자씨명 : 안상수
- 창설년월일 : 소화십년 십월 이십일(1921년 10월 20일)
- 창립자씨명 :
- 계출년월일 :
- 직   분 : 영수 안상수
 
 
※ 이상 기록은 1938년 울릉도중교회 연합당회록의 기록으로써 『경북교회사』에 기록된 울릉도 교회의 최초설립기록인 1909년도와는 다소 차이가 있으며, 이는 교회설립이후 관청에 교회등록신고 년도로 보인다.
 
 

 
 

2. 도중교회 연합당회 조직

 
울릉도내 최초 당회설립일은 1938년 10월 16일이다. 울릉도중교회 연합으로 당회설립을 위하여 사전에 관할 노회인 경동노회에 청원으로 허락을 받는 등 각 교회의 대표들이 노력하였다. 주후 1937년 6월 8일에서 10일까지 열린 제2회 경동노회 시에 울릉도 각교회 대표가 되는 이재원 이종운 김순기 안상수 임부춘 허경 허만 박기호 제씨와 전도사 안화종씨가 영일시찰회에 연합당회 조직과 장로 3인 선택하기를 청원하여 노회의 허락받기에 이르렀으며, 이에 대한 기록으로써 1937년 6월 8일부터 10일까지 포항읍예배당에서 열린 제2회 경동노회 시에 시찰장 권영해 목사의 영일시찰 보고서에 나타나 있다.
 
“울릉도 7처교회 연합당회 조직청원건과 장로3인 선택 청원건을 허락하기로 하엿사오며”라고 하고 있다.(경동노회록 제1권 25쪽)
 
또한 도중교회 당회의 조직은 순행목사가 당연직으로 당회장이 되고 도중교회 장로들이 회원이 되며, 서기는 장로 회원중에 선임하였다. 당시 울릉도교회는 교인들이 계속 늘어남에 따라 교회의 행정과 치리, 직분자 선임 등을 위하여 당회 조직이 절실히 필요하였다. 울릉도교회는 아직 영수만 있고 장로는 피택 되지 못하고 있어 어느 정도 신앙의 연륜을 쌓고 또한 교회의 지도자로 앞장서 봉사해온 자 중에 3명의 장로가 그해 가을 피택을 받고 연말에 장로고시에 합격하였으며, 이듬해인 1938년10월 16일 장로장립식을 거행으로 장로로 임직되고 당회가 구성하게 된 것이다.
 
그 과정을 정리하면 1937년 10월 9일에 순행목사 박영조씨가 입도하여 도동교회당에서 공동의회를 개최하여 투표한 결과 허 경 이종운 임부춘 3명이 피택 되었으며, 1937년 12월 7일 경주읍 노동리예배당(현 경주제일교회)에서 열린 제3회 경동노회에서 허경씨와 이종운씨 2명이 장로고시에 합격하였고 임부춘씨는 개인사정으로 고시를 1년간 연기하여 장로고시를 치러지 못했다.
 
이듬해인 1938년 10월 16일 장흥예배당에서 울릉도 순행목사 허 담씨의 주례로 울릉도교회 최초 장로장립식을 거행함으로 2명의 장로가 탄생하였고 이윽고 울릉도교회 도중연합당회가 조직되었다. 첫 연합당회 조직후 당회록은 다음과 같다.
 
[울릉도교회 연합당회 제1회 회록]
 
주후 1938년 10월 16일 오후 5시 15분에 본당회 제일회를 장흥동교회당에서 회장 허담씨가 성경 요한복음 15장 1절로 5절까지 낭독하고 ‘연합’이라 하난 제목으로 설명한 후 기도로 개회하다.
 
- 회원은 여좌하다.
회원: 목사 - 허담 장로 - 허경 이종운
 
- 결의사항 - 임원을 선택하니 여좌하다.
1. 서기는 허경씨가 피선되다.
2. 도중교회 제직회 회록을 본당회가 관리하기로 가결하다.
3. 제4회 노회총대는 허경씨가 피선되다.
4. 도중교회 김순남, 이명복 양씨를 학습문답하기로 가결하다.
 
- 사무가 진함으로 이종운씨 기도로 폐회하니 동5시 35분이더라.
 
    회장  허 담
    서기  허 경
 
 

 
 

3. 울릉도 전도 및 순행보고서

 
1910년경 울릉도 선교는 당시 부산에 본부를 두고 있던 경상도노회에서 울릉도 전도를 위하여 협의하는 흔적들이 경상도노회회록에 간간이 보인다. 호주선교부는 부산, 경남지역을 선교지로 할당받아 부산에 선교본부를 두고 각 선교사들에게 전도지경을 나누어 관할케 하고 책임하에 교회설립과 순행 전도에 힘쓰고 있었다. 당시 매견시 선교사는 부산 감만동 일대와 온양, 기장, 울산동북, 울릉지역을 자기 관할하에 두었고 울릉도까지 순행을 감행하였다. 매견시 목사가 당시 교통사정이 좋지 않은 동해의 미지의 섬 울릉도 까지 찾아온다는 것은 매우 어려웠을 것으로 생각되었으나, 그에게는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이미 영국에서 수천키로미터 떨어진 남태평양 작은 섬 바누아투 공화국(당시 뉴헤브리즈)에서 15년간 선교한 경험이 있었으며, 또한 그의 출생지는 영국 서해안의 스코틀랜드 유 섬(the Isle Ewe)으로 성장기에 바다와 익숙한 환경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울릉도교회의 설립 초기부터 1916년 경북노회로 분할될 때까지 5차례나 순행하였다.
 
이후 울릉도 교회는 경북노회의 관할하에 놓이게 되고 경북노회는 매년 울릉도교회에 순행목사를 파송하여 울릉도 교회를 관리하였으며, 순행을 마치고 돌아와서는 노회에 울릉도에서의 행적과 지역 실정을 순행보고서를 통하여 보고하였다. 1936년 경동노회가 경북노회에서 분립하게 되자 경동노회에서도 계속 순행목사를 파송하여 관리하였다. 해방이후에도 계속 순행은 이루어졌으며, 순행목사들의 꾸준한 노고에 힘입어 그동안 울릉도 교회들은 부흥하고 성장되었고 이제는 순행목사로 만족하지 못하고 울릉도에서 시무할 수 있는 목사를 요청함과 동시에 예산을 마련하는 등 시무목사를 모실 준비를 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경동노회는 1948년 이장영 목사를 도동교회에 파송함으로써 순행제도는 중단되었다.
 
40여년간 행했던 순행을 위해 울릉도에 파송된 목사들은 매우 신실한 신앙의 소유자들이었고 노회장의 신분으로 들어오기도 하였으며, 때로는 선교사도 들어왔고 두번씩 들어온 자도 있었다. 이들은 30시간이 소요되는 뱃길에 풍랑을 만나 표류하기도 하였고 멀미를 심하게 하여 근근히 눈을 떴다는 기록으로 보아 매우 힘든 여행이었음을 느끼게 한다. 경상노회록, 경북노회록, 경동노회록에 고스란이 담아져 있는 이들의 순행보고서와 울릉도 전도를 위하여 노회석상에서 논의된 기록들을 년도별로 발췌하였다.
 
 
 

가. 경상도노회 울릉도 관련 회의록

 
1) 제2회 노회시 보고(1912. 3. 6. 대구남문예배당)
 
외국인 선교사 지경보고
 
- 부해리씨가 대구중학부에서 80여원을 연보하여 매삭 20원씩 주고 3삭 동안 울릉도로 김복출(김병호 목사)씨를 임시전도인으로 택송함을 보고하매 이윤필씨가 그 보고하는 대로 허락하되 중학부에 대하여 치하하는 편지하기를 동의하여 가결하다.
 
울릉도는 매견시 목사로 주관케 하기로 회중이 동의가결하다.
 
 
2) 경상도노회 제3회(1912. 7. 2. 밀양읍교회당)
 
- 어도만(선교사)씨가 울릉도로 목사 한 분 보내기를 동의하매 홍승한씨가 아직은 월급도 미비하였으니 명년까지 유안(流案)하기를 개의하여 가결하다.
 
- 어도만씨가 울릉도전도인 세울 위원을 택하되 회장이 자벽하기를 동의 가결하매 회장이 매견시 홍승한 김성호 3씨로 광포하다.
 
 
3) 경상도노회 제4회(1912. 9. 2. 계속회, 평양신학교)
 
교회형편
 
- 전도하는 것은 보통으로 말하면 전만 못하다. 특별히 주일오후마다 전도하는 교회와 교인도 있사오며 대구 계성학교에서는 월급을 자담하여 울릉도 전도인을 몇 달 동안 보내기로 하였으며, 혹 개인이 1년 전도인 월급을 자담하여 하기도 하며 혹 몇 교회가 합하여 전도인을 세운 교회도 있사오며
 
 
4) 경상도노회 제7회(1913.12.31. 계속회, 마산포교회)
 
- 외국선교사 매견씨 지경은 울산 동북편, 기장, 울릉도
 
 

 
 

나. 경북노회 전도위원회 보고

 
1) 경북노회 제1회 계속회 (1916.12.28. )
 
- 경남노회에서 전회장 홍승한씨에게 울도사건에 대하여 문의한 것이 있는데 해 사건은 일이 결정 되는대로 홍승한씨에게 위임하여 회답케 하고 동노회가 본노회와 다년 연합하여 근무하다가 지금 분립되었으니 통인정하는 뜻으로서 그에게 맡겨 공함하여 보내기로 결정하다.
 
 
2) 경북노회 제2회 노회시 보고(1917. 6.19)
 
전도위원 보고서
 
- 전회 허락대로 울도에서 3월부터 전도일을 시작하였는데 황경선씨를 월급 16원씩 지급하고 우선 6개월 동안 전도하기로 하였사오며
 
- 울도 전도 형편은 매우 잘되는 모양인데 안식회에 갔던 교인 10여명이 돌아오기도 하오며 새로 믿는 사람도 많사오며 또 도동이란 곳에 예배당도 새로 잘 건축하였사오며
 
- 울도교회를 조직겸 시찰하기 위하여 여름으로 한 3주간 조선목사를 파송하기로 하오며
 
 
3) 경북노회 제3회 제2임시노회시 보고(1917. 9.19)
 
전도국보고
 
- 전회 작정대로 3월 18일부터 8월 18일까지 황경선씨를 울도에 파송하여 전도 하였는데 자미가 많사오며,
 
- 이후에는 김병희씨를 매삭 월급 16원으로 도사경회까지 계속 전도키로 경영하오며,
 
전도위원보고
 
- 울도에 황경선씨를 다시 파송하되 1년간 조사로 시무케 하고 월급은 18원씩 본 전도부에서 지급하고 울도교회에게 권면하여 매삭 4원씩 담당키로 작정하오며
 
- 울도에 시찰 1인을 파송하여 교회를 순시케 하되 서성오씨를 보내기로 작정이오며
 
- 대구와 안동도 사경회시에 울도 전도인 황경선씨가 전도형편을 보고하고 연보금을 청구하기로 경영하되 대구에 김덕경 안동에 김영옥 양씨에게 위탁하여 연보청구에 찬조원으로 작정하옵고자 보고하오니 조량하심을 경요함
 
 
4) 경북노회 제4회 노회시 계속회(1918. 6.20)
 
전도부위원이 계획 급청원서를 제출하매 전부 채용하기로 결정하고 문부는 검사위원에게 맡겨 검사하고 울릉도시찰 1인을 파송키로 작정하고 공천위원에게 맡겨 공천키로 결정하다.
 
전도부위원 청원서
 
- 울도 전도인 김병두씨의 1년 봉급과 금추 목사 1인 시찰비 병하여 100원으로 예산하오며
 
- 김병두씨 외에 전도인 2인을 가선하여 본노회 관할하에 교인이 없든지 연약한곳에 파송 전도케 하되 1년 월급은 360원으로 예산하오며
 
- 돈 일백원을 적립하여 전도한 모처든지 신자가 생겨서 예배한 처소를 구하기 어려울 경우에는 본 적립금으로 가옥을 매급하였다가 해교인 ○○○○ 할시는 이 선차급한 금액을 환수케 하오며
 
- 이후는 본전도국 제반용비와 이상예산금 600원가량을 구획하야 주시기를 바라오며
 
- 이상 600원금의 수입방법은 부활주일 연보를 특별 권장하여야 보통 주일 연보보다 더 힘쓸 것
 
 
5) 경북노회 제5회 노회시 계속회(1918.12.20)
 
전도위원이 보고하매 채용하기로 결정하다.
 
- 전회에 청원하기를 김병두씨 외에 3, 4인을 더 세워 어떠한 곳이든지 교인 희소한 곳에 전도하기로 하였사오나 부활주일 연보가 불완전함으로 그대로 하지 못하였사오며 또한 김병두씨만 두어도 현존금이 불과 90여원 뿐이오며
 
- 김병두씨 전도한 형편 10개월 동안 전도한 리수는 2천여리오며 신자는 10여명이오며 전도 받은 자는 1,300천백명이오며
 
- 울릉도 화재 일로 구제비 도합은 백여원인데 3분지 2는 송씨에게 지불하고 3분 1은 오씨에게 지불하였으며
 
- 전도인 김병두씨는 성서공회와 본전도국이 합하여 지배하더니 현금 성서공회 일은 사면되고 봉급은 매삭 10원씩 작정하고 조사로 세웠으며
 
 
6) 경북노회 제6회 노회 계속회(1919. 6.18)
 
전도부원이 여좌히 청원하매 채용하기로 결정하다.
 
- 울릉도조사 김병두씨는 여전히 시무케 하오며,
 
- 금년 추기에는 본전도국에 재정이 군졸하오니 목사 순행은 정지케 하오며
 
- 전노회에 청원함과 여히 장래 경비는 금년 부활연보수입 되는대로 실행할 터이오니 각 교회에 명령하시와 금년부활주일연보를 힘써 수합하여 9월내로 보내주게 하여 주옵소서
 
 
7) 경북노회 제7회 노회시 보고(1920. 1.21)
 
전도위원 보고서
 
1. 울릉도 전도사업은 매우 자미있게 전진하옵는바 교인명수는 150여명이요 예배처소는 3처이오며 경산 사월교회의 변선욱 조사는 그곳 교인으로 이같이 큰 은혜를 받게 되었사옵고 지금은 그곳에 전도회가 설립되어 재정도 수십원의 예비가 있사오며
 
2. 재정형편은 1919년도 부활주일연보가 여전히 수입지 못하여서 재정이 곤란하온데 수입과 지출은 여좌함 일금90원 80전은 전에 검사한 후 찬금 일금28원 69전은 1919년도 부활주일 연보로 수입된 돈 입금 합119원57전 일금60원 50전은 전도인 김병두씨의 6개월 봉금으로 지불함
 
  일금33전은 통신비로 지발함 하합금 60원 83전 잔금이 58원 74전이옵나이다.
 
청원서
 
1. 울릉도전도사업은 계속할 것이오며 김병두씨의 월봉은 매삭30원씩으로 작정하되 25五원은 본전도부에서 지출하고 남는 5원은 울도교회에서 지출하기로 할 것이오며
 
2. 검사위원을 세워 재정을 검사하게 하시며 이후부터는 부활주일연보를 각 교회가 실수없이 보내도록 회가 통지하여 주시오며 울도시찰은 6월 노회 후에 연보수입을 보아 파송하는 것이 좋을 줄로 아옵나이다.
 
 
8) 경북노회 제8회 노회시 보고(1920. 6.11)
 
전도부위원이 여좌히 보고하매 축도 채용하되 울릉도전도인 김병두씨에게 울도교회 형편에 대한 보고를 금일 오후에 20분동안 드리며 전도부회계의 보고도 검사위원에게 맡겨 검사한 후 보고 받기로 하고 남은 조건은 전부 차용키로 가결하다.
 
전도부위원의 보고서
 
1. 울도시찰은 김병호 목사를 파송하여 하는 것이 좋은줄 아오며,
 
2. 부활주일연보는 수입 되는대로 그곳 조사 김병두씨의 채무 160원을 값기로 하였사오며,
 
3. 부활주일연보 미수는 각 선교사들이 자기 지방교회에게 힘써 권면하여 속히 전도부 회계에게로 보내는 것이 좋은줄 아옵나이다.
 
 
- 울도 전도인 김병두씨가 입장함으로 오후에 보고를 듣자고 하던 것은 재론키로 가결한 후 지금 듣는 것이 좋다고 가결하고 김병두씨에게 언권을 허락함에 울도교회의 잔약한 상태와 일반 백성의 가련한 상황을 일일이 설명하며 감개한 눈물을 먹음지 아니하는 이가 없더라. 방금 울도에서 예배당을 건축하기로 작정한 고로 건축비는 1000원을 예산하였사오나 교회에서 140원 청년회에서 기부한 200원 외에는 어찌할 힘이 없사오니 부족한 금액에 대하여서는 노회가 방침을 가르쳐 달라 함으로 회원중 2인이 기도하고 당석에서 연보하기로 작정한 후에 연보함에 248원이더라.
 
1. 울도 조사 김병두씨의 여비는 금번 연보중에서 36원을 지출하기 바라오며
 
2. 금번 연보한 돈은 본 노회회계에게 임치하고 울도예배당 건축하게 될 때에 곧 지출하는 것이 좋은줄 아오며
 
3. 전도부장은 맹의와 목사, 회계는 이문주 목사, 서기는 이희봉 목사로 임원조직이 되었사오며
 
 
9) 경북노회 제9회 노회시 보고(1921. 1.12)
 
전도부원이 여좌히 보고함에 채용하기로 결정하다.
 
- 김병호 목사가 울릉도교회 시찰상황을 보고함에 회중이 환영하다.
 
- 울도 조사 김병두씨가 별세함에 대하여 위문하는 편지와 위로금 십원을 그 가족에게 보내되 전도국에 위임하기로 결정하다.
 
임사부 보고(전도부 청원 중)
 
1. 각교회 목사 조사를 부활주일 연보 수봉하는 지회계를 세워달라는 일은 허락하기로,
 
2. 울능도 전도조사는 전도부에 맡겨 정하여 보내게 하여 달라는 일은 허락하기로,
 
3. 울릉도 전도조사의 봉급은 30원으로 정하되 25원은 노회 전도국에서 지불하고 5원은 울릉도교회가 부담케 하고 조사는 1년 두 번씩 래왕하되 그 여비는 노회에서 담당케 하자는 일은 그대로 허락하기로
 
전도부 보고서
 
1. 울릉도 전도조사 김병두씨는 별세하였사오며
 
2. 울릉도 조사 김병두씨가 별세함으로 영혼에도 흉년이오 또한 흉년이 자심하여 교인이 산지사방함으로 교회가 약한 모양이오며
 
3. 울릉도교회의 상세한 사항은 시찰하고 돌아온 김병호 목사에게 듣기를 바라오며
 
4. 김병두씨의 부채금중 100원은 이미 갚았사오며
 
5. 울릉도 예배당은 아직 건축치 못하였사오나 곧 착수하려고 하오며
 
 
10) 경북노회 제10회 노회시 보고(1921. 6.15)
 
- 울릉도에서 예배당 건축할 연보금 160원 도와 달라는 일은 각교회에 부탁하여 부활주일 연보를 잘 보내 주도록 권면하여 될 수 있는대로 도와주기로 결정하다.
 
- 전도국 보고서
 
1. 울릉도 조사는 전회에 허락을 받은 배상진씨가 사면함으로 경산 사월교회에서 시무하던 변선욱 조사를 파송하여 일하는 중 교회가 부흥되며 전도성적이 양호함에 감사하오며
 
2. 울릉도교회는 3처이옵고 세례교인 42인이오며 학습교인은 25인이오며 원입교인이 81인이오니 교인 도합이148인이오며 연보 수입 도합이 89원 78전이옵고 지출 도합이 62원 27전이오며
 
- 임사부원의 보고서
 
1. 전도국에서 울릉도에 대하여 청원한 일은 여좌히 결정하였습니다.
 
(1) 장로 2인 피택청원은 추기 순행목사 보고 듣기까지 유안하기로 하였사오며
 
(2) 전도조사에게 학습권을 달라는 일은 허락하기로 하였사오며
 
(3) 전도대를 보내 달라는 일은 여비를 자담하고 전도대가 있으면 허락하기로 하였사오며
 
(4) 예배당 건축비 160원 달라는 일도 회의서 직결하기로 하였사오며
 
(5) 전도조사에게 추기성경학교 공부 허락해 달라는 일은 허락하기로 하였사오며
 
(6) 추기 순행목사는 박문찬 목사를 보내 달라는 일은 허락하기로 하였사오며
 
- 관청교섭위원보고서
 
1. 울릉도에 대한 것은 전도비로 보고가 되지 않고 구제비라고 그릇 보고가 되었기에 관계자를 불었으니 종금이후는 부르지 않겠다하였으며,
 
 
11) 경북노회 제11회 노회시 보고(1922. 1. 3)
 
- 울릉도 순행목사 박문찬씨 보고가 여좌함에 채용 가결하다.
 
- 울릉도 교회 형편과 전도형편은 별지 첨부 보고합니다.
 
전도국 청원
 
1. 울릉도 전도 보고와 교회 형편은 순회목사 박문찬씨에게 듣기를 바라오며
 
2. 본부 재정문부는 전도국 회계 박문찬씨에게 듣기를 바라오며
 
3. 울릉도 순회목사 박문찬씨의 재정청원을 받아 첨부 청원하오니 허락하시며 우 청원에 첨부된 박문찬씨 청원
 
1. 거년 유월 노회의 청원한 장로 이인을 허락하시되 변선욱, 박재천 양씨가 피택되면 공부 허락까지 주시오며
 
2. 명년 춘동에 순회목사 1인을 보내 주시되 될 수 있는 대로 조선 목사를 보내 주시오며 여비 관계로 조선목사를 할 수 없으면 선교사 중 위철치씨에게 부탁하여 자비로 순행케 하여 주시오며
 
3. 신명여학교에 교섭하시어 그 학교 전도부인을 기개월간 어서 보내 주시오며
 
4. 울릉도 남녀 중학생에게는 될 수 있는대로 노동을 얻어 주시오며
 
5. 안의와 목사 경영하는 남전도인을 몇 달 동안이나 서면 남양 태하동 현포동을 위하여 보내 주시오며
 
6. 울릉도 조사 봉급은 사십원으로 예정하여 주시오며
 
7. 남은 사항은 조사에게 직접으로 드리시기를 바라나이다.
 
임사부 보고
 
1. 울릉도교회 장로 2인 택할 청원은 그곳에 목사 있기까지 허락지 아니하기로 하였사오며
 
2. 명춘 울릉도순회목사는 위철치로 파송 요구하되 비용은 자담키를 바라오며
 
3. 신명여학교 전도인을 전도국이 청함에 대하여 노회 명의로 교섭하라고 전도국에 다시 위임하기로 하였사오며
 
4. 울릉도 남녀 중학생 노동 청원은 학무부에 위임하기로 하였사오며
 
5. 울릉도 조사 월급 청원은 전도국 재정을 조사하여 될 수 있는 경우이면 매삭 삼십오원씩 지불함이 좋은 줄 아오며
 
6. 안의와 목사의 전도인을 울릉도에 기개월이라도 조력 전도키를 청원한 사는 노회 명의로 교섭하기를 전도국에 위임하기로 하였사오며
 
 
[울릉도 순행목사 보고서] - 박문찬 목사
 
1. 면적 - 5방리 2. 주회- 14리 3. 면적 - 3면 9동 24구
4. 호수 - 1631호(조선인 1,423호, 일본인 208호, 지나인 1호)
5. 인구 - 8,888인(남자 4,603인, 여자4,285인)
- 조선남자 : 4,211인, 여자 3,930인
- 일본남자 : 388인, 여자 355인
- 지나인남자 : 4인, 여자 1인
6. 교회수 : 5개처, 기도실 4개처
7. 교인수 : 193인
- 세례인: 56인(금번 세례 11인, 전자 세례 45인)
- 유아세례 : 10인(금번 4인, 전자 6인)
- 학습 : 30인(금번 7인, 전자 23인)
- 원입 : 97인
8. 직원 : 영수 10인, 집사 6인, 권찰 6인
9. 수입금 지출 : 수입금 99원 5전 5리, 지출금 40원 87전, 잔금 58원 18전 5리
10. 내왕기간 : 10월 2일 출발 동 17일 귀착
11. 부흥회한 교회
1) 나리동 - 10월 5일로 10월 9일까지
- 회집인원수 -
- 부흥회 결과 : 예배당 신건축 연보금 23원 10전
- 신신자-
2) 장흥동 : 10월 11일로 14일까지
회집인원수-
결과 : 현포동 교회당 위하여 연보금 32원 20전
3) 조사 봉급 매개월 부담한 교회 급 금액
도동 0, 장흥동 2원, 저동 2원, 나리동 1원 30전, 현포동 1원, 귀암동 남양동 70전, 석포동 0, 죽도 1원
12. 금번 경북도제직회에서 울릉도 도동예배당 건축하기 위하여 150원 가량이 되었사오며
 
 
12) 경북노회 제12회 노회시 보고(1922. 6.14)
 
- 울릉도교회 제직 일동의 청원이 여좌함에 받은 후 토의는 잠시 유안하기로 가결하다.
 
- 울릉도 제직원 청원서 설계서가 여좌함에 유안된 동회의 청원 사건과 합하야 토의한 결과 연보는 허락하지 아니하기로 가결하다.
 
- 울릉도 조사 변선욱씨의 청원건을 재론하기로 가결되고 동청원은 여좌히 가결되다.
 
(1) 위철치 목사가 매년 1차씩 순행하기로
(2) 동 청원대로 채용 가결
 
- 헌의부 보고
 
(1) 울릉도교회 청원서는 노회에서 직결할 일.
 
- 전도국 청원
 
(1) 울릉도 순회목사는 김성로 목사를 보내어 순행과 부흥회 하기를 청원하오며
 
- 울릉도 제직일동 청원(우 청원서의 요지)
 
(1) 노회에서 변조사를 보신후 ①가정기도회 ②특별기도회 ③남여연합전도회 ④십일조회 ⑤사경회 등이 조직된 일
 
(2) 교회중에 200원의 금전을 모집하여 아동을 교육하는 사숙을 설립하고 신흥 교회당을 임시 사용하며 교사는 공립보통학교에서 근무하던 배영박씨가 1년간 명예 교수하는바 물질 동정자도 적지 아니함.
 
(3) 우 사숙에 유지비가 금년은 유지하겠으나 내년은 예산이 없는 중 관청에서 사숙 규칙에 삼십명 이상의 통학을 금함으로 2개월간 예정으로 본교회 변조사를 경북 각교회에 보내서 동정을 구하고저 하오며 우 동정으로써 우 사숙을 확충코저 하오니 허가하심을 복망.
 
-. 전도국 보고
 
(1) 선교사의 경영으로 전도하는 형편, 신설된 교회 五十처요, 교인수는 900명 가량이오, 남전도인 5인, 여전도인 1인이오며
 
(2) 울릉도 전도형편
① 성경학교 전도인 강만조씨가 3삭동안 전도한 성적이 양호하오며
② 조사 변선욱씨 열심 전도하며 사경회부흥회를 함으로 교회가 왕성하오며
 
(3) 울릉도 교회형편
① 영수 8인, 집사 10인, 권찰 12인, 주일반장 19인
② 세례인 51인, 학습인 47인, 원입인 147인
 
(4) 울릉도 학교형편 사숙 1, 선생 1인, 생도 34인
 
(5) 재정형편
① 수입금 127원 80전(주일 연보)
② 지출금 114원 97전(잡비), 잔금이 12원 83전
 
(6) 본국재정수입 지출
지출금내역(울릉도관련 금액)
금310원 변조사 봉급
금140원 울릉도 예배당 건축연보
금31원 변조사 성경학교 여비
금20원 울릉도 순행목사 래왕비
 
 
13) 경북노회 제13회 노회 보고(1923. 1. 3.)
 
임사부 보고
 
- 울릉도 저동교회와 도동교회가 합하여 장로 1인 택할 허락 주시되 변선욱씨가 피택되면 공부허락 까지 달라는 일은 그대로 허락하기로 하오며
 
 
14) 경북노회 제14회 노회시 보고(1923. 6.13)
 
- 울릉도 순행할 일은 위철치 목사에게 위임하기로 가결하다.
 
- 울릉도 교회에 문안하는 서신에 대하여 서기로써 답하기로 가결하다.
 
 
15) 경북노회 제15회 노회시 보고(1924. 1. 9)
 
- 울릉도 전도사업은 계속하기로 하고 교회는 2, 3등으로 분하여 1등은 3원, 2등은, 2원 3등은 1원 이상을 하기로 가결하다.
 
- 등급은 회집인원수로 의지하여 50명이상은 1등, 20명 이상은 2등, 20명 이하는 3등으로 하기로 가결하다.
 
- 전도부장 위철치씨의 보고에 의하여 안의와씨 전도방침이 별지와 여한 사건은 본전도부로 맡겨 관할하게 하기 가결하다.
 
- 울릉도 전도사업에 대하여 가결된 등급 사건 재론하여 세례 학습인 표준 10전씩 하기로 가결하다.(1.11 계속회시)
 
 
16) 경북노회 제16회 노회시 보고(1924. 6.12)
 
전도부장 위철치씨가 여좌히 보고함에 채용가결하다.
 
- 울릉도 전도사업 계속하여 오는 중 부채로 인하여 몇 달 동안 전도 조사를 파송하지 못하였사오나 지금 다시 경영이오며
 
 
17) 경북노회 제17회 노회시 보고(1925. 1. 7)
 
전도부 보고(전도부장 방혜법)
 
- 김해천씨로 울릉도에 전도 조사로 파송하야 6개월동안 시무케 하였사온즉 상세한 보고는 김해천씨를 노회석상에서 보고하도록 하였사오며 전도부 청원서(방혜법)
 
- 울도 전도 조사는 김해천씨로 계속 시무케 하여 주시오며
 
 
18) 경북노회 제18회 노회시 보고(1925. 6.10)
 
전도부 보고
 
- 울릉도는 거 삼년동안에 눈이 많이 온고로 교인들이 예배당에 잘 모이지 못함으로 교인의 신앙심이 양하여 전도조사는 심방에 분주하나 여가를 얻어 전도하는 중에 있사오며,
 
- 42원 90전은 울릉도로 전도부인을 파송한일도 있습니다.
 
전도부장 방혜법씨 청원
 
- 순행목사를 울릉도로 보내 달라는 청원은 전도부로 도로 맡기고 도제직회시에 연보하여 달라는 청원은 받지 않기로 하고 그 외는 다 받아 허락하기로 가결하다.
 
전도부장 청원서(방혜법)
 
- 울릉도 순행목사를 파송하되 김영옥 목사를 파송하여 순행하도록 하여 주심을 바라오며 울릉도 교회에서 조사 봉급조로 매월 10원씩 지불하게 하였으나 지불치 못하였다 하오니 속히 지불하도록 편지하여 주심을 바라오며,
 
 
※ 이하19회∼23회까지(1926년∼1927년) 순행보고는 노회록 분실로 없음
 
 
19) 경북노회 제24회 노회시 보고(1928. 6.5)
 
전도부장 박문찬씨 청원
 
- 울도에 금번 순행은 토지매수 하기 위하여 박문찬 목사 파송하여 주심을 청원하오며,
 
- 울도교회 위하여 토지를 살 것 같으면 박문찬 김만성 양씨와 울도교인중 2인과 합 4인의 이름으로 매수하가로 하옵나이다.
 
공천부장 염봉남씨 보고
 
- 울도 순행목사 김영옥
 
 
※ 이하 25회∼31회까지(1929년∼1933년) 순행보고는 노회록 분실로 없음
 
 
20) 제32회 노회시 보고(1934. 1. 2)
 
각부보고 24. 울릉도시찰목사 보고(리태학)
 
-. 입도일자 1933년 7월18일 화요일
 
-. 제 1차로 도동교회에서 수요일 예배 보았으며 그 익일에 저동교회에 가서 례배, 전도, 강연, 문답까지 하였으며, 목요일과 그 익일, 토요일에 천부동교회에 가서 주일예배, 문답, 오후 나리동에 가서 전도 강연하였으며, 그 익일 현포에 가서 전도 강연, 문답까지 하였으며, 그 익일 태하동으로 가서 예배하고 문답하였다. 그곳은 아직 기도실로 있는데 교회로 허락할 형편 인고로 노회에 보고하기로 선언하다. 남서동 세례인 10인 학습인 9인 원입인 14인, 계33인 영수 안상수, 태하동세례 16인 학습 16인 원입30인, 계 62인 영수 임부춘, 그후 남서동에서 장흥동으로 가서 전도강연, 문답까지 하였으며, 그 익일 장흥동에서 도동에 회귀하여 5일간 사경회를 하고 성찬식까지 하였는데 도중 7처 교회가 다 회집하였습니다. 교회형편은 빈약하고 구성형편은 치리기관이 있어야 되겠습니다.
 
임시회보고(1934.4.9.)
 
8. 울릉도 설재구조금 수합은 본 노회에서 광고한 대로 본 노회 회계에게 수합되면 총회 구제부 회계에게 부송하기로 가결하다.
 
 
21) 제33회 노회시 보고(1934. 12. 11. 대구동산성경학교)
 
전도부장 안두화씨의 청원
 
- 1935년도 울릉도 순행목사는 선교사 라의온씨로 선정하였사오며 허락하실 일이오며.
 
- 울릉도 전도사 한형세씨가 사면하였으매 그 후임 선택할인은 본부에 맡겨 주실 일이오며
 
- 1934년도 울릉도 교회 순행목사 강신창씨의 보고는 여좌이 받기로 가결하다.
 
1. 순행기간 1934년 7월13일부터 8월 1일까지
2. 순행한 교회수 7처
3. 입교인총계 56명,
4. 총교인수 195명
 
영일시찰회 보고
 
- 울릉도지방전도사 한형세씨는 지방시무를 사면하였사오며,
 
 
22) 제34회 노회시 보고(1935. 12. 7. 대구성경학교)
 
전도부장 이문주씨의 보고
 
- 울릉도 순행목사는 본부 부장 이문주 목사로 보내주시기를 바라오며,
 
5. 교회명칭급소재지(당회유무)
울릉도 남면 도동, 저동, 북면 천부동, 현포리, 서면 태하동, 남서동, 산막리
 
 
23) 제35회 노회시 보고(1936. 12. 7. 대구성경학교)
 
울릉도 순행목사 이문주씨의 보고
- 순행일자 1935년 7월 1일로 17일
- 순행 교회수 8처
- 새로 약조한 학습인수 13인
- 새로 세례받은 인수 6인
- 새로 받은 유아세례인수 6인
- 책벌한 교인수 2인
- 재정형편
수입총액 금346원 82전
지출총액 금312원 9전
잔금 금35원 34전
- 울릉도 순행여비 금19원 13전
내역 일금7원 40전 전도부
   일금5원 변선욱씨 보관금 중래
   일금7원 53전 노회보조
 
노회유지재단이사부장 이문주씨의 보고
 
- 울릉도 토지는 경동노회에 양여하기로 가결하다.
 
 

 
 

나. 경동노회 순행보고서 및 울릉도교회 관련 회의록

 
1) 제1회 노회록(1936. 11. 23)
 
공천부 보고
 
3. 영일시찰장 권영해씨의 울릉도 6처 교회연합당회 청원권은 임사부로
 
- 울릉도 토지 밭7두락을 매수한바 본로회 대표 3인명의로 이전하여 달라는 것은 허락하고 3인 인선은 전도부에 다시 맡기기로 가결하다.
 
- 울릉도 순행목사는 박영조씨를 파송하여 달라는 청원건은 허락하기로 가결하다.
 
재산분배 위원보고
 
- 울릉도 토지는 본노회로 받았사오며
 
영일시찰 보고
 
- 울릉도 7처 교회연합당회 조직청원과 장로 3인 선택청원건은 허락하기로 하였사오며
 
- 전도부에서 울릉도 토지이전에 대한 매수 명의자 3인 인선은 허담, 박영조, 변선욱 3씨로 선정보고함에 받기로 가결하다.
 
 
2) 제3회 노회록(1937. 12. 7)
 
헌의부 보고
 
14. 울릉도순행목사 박영조씨의 피택장로 허경씨와 이종운씨의 시취건은 시취부로
 
22. 울릉도 순행목사 박영조씨의 임부춘씨 장로시취연기청원은 임사부로
 
23. 울릉도 전도사 안화종씨의 목사순행시기 변경청원은 임사부로
 
시취부 보고
 
장로시취합격자 : 감포교회 김시학, 울릉도교회 허경, 이종운
 
임사부 보고
 
9. 울릉도지방전도사 안화종씨의 울릉도 목사 순행은 춘기로 허락하여 달라는 청원과 연합당회 문답한 장로 장립은 춘기순행시에 허락하여 달라는 청원은 허락하기로
 
10. 울릉도 순행목사 박영조씨의 장로문답연기청원건은 1년간 연기로
 
울릉도 순행목사
 
명년도 울릉도 순행목사는 허담씨로 가결하다.
 
영일시찰보고
 
- 울릉도지방은 안화종 전도사가 시무하오며,
 
 
3) 제4회 노회시 보고(1938. 12. 6)
 
울릉도 순행상황 보고는 여좌히 밧기로 가결하다.
 
1938년 12월 1일 포항에서 금성환을 타고 항해한지 30시간 되는 10월 3일 오전 11시에 울릉도 남면 도동교회에 들어가서 전도사 안화종씨를 만나서 도중교회 순행건과 사경회와 제직회와 장로장립과 기독교연합회조직 등의 일활을 작성한 후 이틑날부터 저동, 천부동, 현포동, 태하동, 남서동, 장흥동 등 6처 교회를 차례로 방문하고 10月 11日부터 장흥교회에서 1주간 사경회중 15일(토요일) 오후 2시에 도중 8처 교회 제직회로 회집하고 동양강연 후에 울릉도 주일학교 부회를 발기하다.
 
동 16일(주일) 오전 11시에 성찬예배와 허경, 리종운 양씨의 장로장립식을 거행하고 울릉도 도동 외 7처 교회 연합당회를 조직하다. 동일 오후 3시에 울릉도 기독청년 연합면려회를 변경하야 주일학교 울릉도 부회와 합류하야 하기로 결의하고 오는 10月 31일 천부동교회에서 주일학교 부회 창립총회를 개회하기로 가결하다. 동야에 사경회 폐회식이 있었다. 동 17일 도동교회에서 도중 장로교 8처 유지와 동아기독교회 8처 대표와 내지 교도 제씨가 회합하야 발기위원장 안화종씨 사회로 울릉도 기독교연합회를 조직하고 발기회식을 거행하다. 동 19일 오후 5시에 등선하야 동 20일 오후에 경주에 돌아오다.
 
제직회 상황은
 
1. 지방조직 교역자 생활비 232원
 
2. 전도사 안화종씨 사면건 : 울릉도 소재인 경동노회 소유 토지의 권리증은 본 노회에서 보관하기로 가결되다.
 
전도부 청원
 
- 울릉도 지방교역자 생활비급 70원을 보조하여 주심을 바라오며
 
- 울릉도 지방토지 지상권은 해지방 전도사에게 일임하여 주시기를 바라오며
 
- 울릉도전도사 인선은 본전도부와 영일시찰에게 일임하여 주시기를 바라나이다.
 
울릉도 순행목사
 
소화14년도(1939년)의 울릉도교회 순행목사는 김광수 씨로 가결하다.
 
총회 헌의건
 
전도사 안화종씨의 울릉도 상황보고는 광고 보고로 받기로 가결하다.
 
총무보고
 
울릉도 주일학교 부회
1. 조직년월일 : 소화 13년 10월 15일(1938. 10. 15)
2. 임원 : 회장 허정석, 서기 리종수, 회계 임부춘, 고문 허경
- 포교소 설치계 보고
울릉도 서면 남서동교회
설립자 : 노회장 권영해
포교담당자 : 허담
계출년월일 : 소화 13년 11월 1일 (계출 : 신고라는 뜻)
 
영일시찰보고
 
- 울릉도 피택장로 임부춘씨의 장로문답은 1년간 연기하여 주시기를 바라오며,
 
경동노회 교회명칭일람표(울릉도교회 부분)
 
도동교회 울릉도 남면 도동   저동교회 울릉도 남면 저동
사동교회 울릉도 남면 사동   천부교회 울릉도 북면 천부동
현포교회 울릉도 북면 현포동  태하교회 울릉도 서면 태하동
남서교회 울릉도 서면 남서동  산막곡 기도실 울릉도 산막곡동
 
 
4) 제5회 노회시 보고(1939. 12. 5)
 
울릉도순행 보고
 
울릉도 순행목사 김광수씨의 울릉도 순행상황보고는 여좌히 밧기로 가결하다.
 
소화14년(1939년) 8월 9일에 포항을 출발하야 승선하니 풍세는 심험하야 선취비상중 익 10일 오전 9시(26시간만에)에 곤곤히 울릉도에 착하니 선독혼취하야 근근히 눈을 떠서 보니 우뚝 솟은 산벽이 이마에 당한지라. 선중에 도중 집사가 더러 왓서 붓잡고 상륙하니 이종운 장로 외 형제 수인이 출영하였는데 갗이 도동으로 더러가니 도중 제일 개항장이요 도중 수도임으로 각관공서와 학교가 있어 도시미가 잇는바 교회도 함석집과 종각이 일부를 차지하엿드라. 10일 저녁에 예배회로 모히고 17일 사경회개회 광고를 하고 11일부터 7처 교회를 순행하고 17일 석부터 사경회를 개최하야 도중 각교회에서 다수래참하야 4일간 자미있게 사경회를 맛치고 선편관계로 불득이 이십일에 출발하야 21일에 포항에 귀착하다.
 
- 사경회중에 도중제직회를 한바 오우석 전도사를 래년에 계속하게 하고 노회에서 70원 보조하든 생활비를 본 도중 각교회가 분담하고 완전히 자담하기로 하고 련합 십일조회을 조직하고 경제 독립도 완전히 경영하기로 하다.
 
- 전도중 교회 형편은 진보하는 상태이엿으며
 
- 각교회 순행형편은 7처중 남서는 사정상 숙박치 못하고 7처 교회서는 각교회마다 숙박하고 성찬을 베풀고 치리와 직분 개선과 세례와 학습을 세웠으니 여좌하다.
 
1. 저동교회 : 세례 2인, 학습 6인, 집사 2인.
2. 장흥교회 : 장로 1인, 교인은 15인 가량, 불신자 혼인으로 치리 1인, 유아세례 1인
3. 남서교회 : 영수 1인, 교인은 7명 가량.
4. 태하교회 : 영수 3인, 집사 2인, 권찰 2인, 피택장로는 영수중 임부춘씨, 세례 1인, 학습 2인, 예배당 건축기성회를 하니 120여원임.
5. 현포교회 : 장로 1인, 집사 2인, 전도사 주택지, 학습 2인, 출교 3인.
6. 천부동교회 : 례배당은 좋으나 직분이 약하야 문제이고 문답은 무,
     금년 년사는 보통 평년 약한대 이까(오징어)가 대풍이라 도내 경제는 유족하엿나이다.
 
헌의부 보고
 
8. 울릉도연합당회장 김광수씨의 임부춘씨의 장로문답청원은 시취부로
 
울릉도토지 처분 청원
 
울릉도교회 대표 이종운씨 1인의 울릉도지방에 양처에 분재하여 있는 토지를 방매하여 1처에 매입케 하여 달라는 것은 영일시찰부에 맡겨 처리하기로 가결하다.
 
영일시찰회 보고
 
- 울릉도지방 교역자 생활비는 종전노회 보조이든바 소화15년(1940년) 부터는 독단키로 하였아오며,
 
- 울릉도지방은 오우석 전도사
 
- 울릉도교회 형편(소화15년-1939년 3월말 보고 현재)
 
 
 
5) 제6회 노회시 보고(1940. 12. 2)
 
울릉도 순행보고
 
울릉도 순행목사 강만호씨의 순행상황보고는 여좌히 받기로 가결하다.
 
소화15년(1940년) 8월 1일 하오 오시에 안강을 출발, 포항 도착하여 기선 연착으로 3일에 승선하다. 4일에 상륙하여 도동에서 예배 인도하고 순행하온바 상황은 여좌하나니다. 5일 저동교회, 6일 천부동교회, 7일 현포교회, 8일 태하교회에 도착하여 1주간 사경회 인도를 마치고 15일에 임부춘 장로 장립식을 거행하다.
 
성경통신과 졸업식과 도중제직회를 하여 명년도 교역자 생활비는 550원으로 정하고 년일차식 경동교역자수양회에 도중교회가 여비 부담하여 보내기로 하고 남서동교회난 교인이 이거하고 회집 불능임으로 폐지하고 례배당을 매도하여 교역자 사택을 도동에 건축하되 남서동교회가 다시 설립될 시는 도내 교회가 반상하기로 하여 노회에 청원하기로 하다.
 
장립집사로 허정석씨를 세우다. 16일에 남서동교회에 다녀 장흥교회에 도착하와 18일 주일을 인도하고 19일로 23일까지 도동교회에서 사경회를 인도하다. 25일 오전 예배 인도후 하오 1시에 승선하여 29일 오전 7시에 포항에 상륙하여 안강을 향하다.
 
교회형편
 
1. 교회수 6처 : 도동, 저동, 천부, 현포, 태하, 장흥
 
2. 직원수 : 장로 3인 , 영수 8인, 집사 13인
 
3. 전도형편 : 도동교회 이종순 여사를 금년 6월부터 전도인으로 청빙하여 도중교회가 전도키로 하였사오며, 남서여전도회가 있어 전도부인을 정신과 시간으로 도와 전도키로 하였아오며
 
4. 재정형편 :
- 십일조회를 조직하였는데 도동 5인, 저동 4인, 천부 2인, 현포 4인, 태하 2인, 장흥 1인, 합 18인 중 장로 3인으로 권면위원으로 하였사오며
- 성미를 교회마다 열심히 하기로
- 교회마다 재정문부를 비치하기로
- 550원으로 소화16년(1940년)도 교역자 청빙하기로 하였나이다
 
(청원)
 
동순행목사 강만호씨의 좌기 청원은 받아 여좌히 처리하다.
 
1. 울릉도 순행목사는 3년간 계속 파송의 건은 받아 전도부로
 
2. 동전도사에게 학습문답권과 임시 직분 선거권과 중지권을 부여의 건은 받아 규칙부로
 
전도부보고
 
- 울릉도당회총대 임부춘씨의 교역자사택건축보조청원은 노회가 즉결하여 주시오며(즉결하여 금2백원 보조하기로)
 
- 동도(仝島) 순행목사 강전만호씨의 차후로는 목사 1인을 3년간 계속 순행케 하여 달라는 청원은 허락지 안키로 하오며,
 
- 동도 소화16년도 순행목사는 지원충일씨로 파송키 하였사오며,
 
규칙부보고
 
- 울릉도전도사에게 관한 권리
 
1. 학습문답권을 줄 것
2. 임시직 집사(서리집사) 권찰을 당회원과 협의하야 선거할 권을 줄 것
3. 임시직이 유과시에는 당회원과 협의하야 중지시킬 권을 줄건(영수, 집사, 권찰
 
영일시찰청원
 
영일시찰장 김광정길씨의 금년도 울릉도에 파송할 박성식씨에게 전도사시취를 청원함에 시취부에 맡겨 시취하기로 가결하다.
 
 
6) 제12회 노회시 보고
 
순행목사 박장동
 
1. 1946년 4월 25일 청하 출발 포항 착하였다가 김영수 전도사 요구에 의하야 순행을 하기로 연기하고 청하로 돌아감.
 
2. 9월 13일 재출발하여 포항서 9월 15일 출항하여 16일 울릉도에 착하여 각교회를 순행하고 20일부터 26일까지 현포에서 지방연합사경회를 개최하여 많은 은혜가 유하였으며.
 
3. 10월 5일 도사(군청)를 방문하여 천부동교회당 건축문제에 대하야 면비로서 전양대로 건축하여 줄 것을 도사가 약속하고 소실된 도동교회 위하여서도 원조를 약속하다.
 
4. 울릉도 상륙 27일만에 10월 7일에 화물선으로 귀항하다가 도중 일대 풍랑을 만나 해중에서 구사일생의 천신만고를 격었으리야 바울 고생의 체험을 하고 2일만에 돌아왔습니다.
 
5. 교회수 : 도동, 저동, 천부동, 현포, 태하동, 5처.
 
6. 교인수 : 100명
 
7. 직원수 : 장로 3인, 영수 2인, 집사 11인
 
8. 교역자 : 명년도 식량 외 년봉 8천원으로 김영수씨 류임케 함.
 
9. 교회상황 : 각교회가 매우 전진하는 중에 있음을 감사합니다.
 
 
7) 제13회 노회 보고
 
순행목사 김경만
 
울릉도는 강원도 죽변항에서 동해상 76리(약140.75㎞)를 거한 고도로서 동경 137°57′ 북위 37°30″에 해당한 위치를 점하야 면적은 72,518만평(72.57㎢)이며 인구는 약15,000여명이 거주하야 주로 반농 반어업으로 생활하는데 대게 부요하지다 못하나 극빈자도 없으며 도적과 걸인이 없다는 곳입니다. 그러나 인심은 단순하지 않어 전도가 용이하다고 볼 수 없다. 교회는 도동, 저동, 현포동, 천부동, 태하동 5개처인데 신도수는 장유년 합하야 남183인, 여147인으로 계330인중 세례인 45인으로 교세가 빈약하고 도중 총인구에 1/65에 부과하나이다. 금반 순행일수는 17일인데 도동, 현포동 양처에는 4, 5일식 특별부흥집회를 열고, 외 3처 교회에도 수3차식 특별집회를 열어 큰 은혜를 밧기 되었으며 구도자도 많어 큰 자미를 보았나이다.
 
금번 순행중 새로 세례 받은 인이 남9인, 여3인, 유아세례 7인, 계 19인이고, 학습인 5인, 입교문답하여 성찬참예자 2인으로 총합 26인의 교인이 증가됨을 주께 감사하나이다.
 
도중교인들은 목사를 심히 갈망하여 명년도에는 목사를 청빙하려고 예산을 편성하고 준비중에 있아오니 금반 노회시에는 기어코 전도목사 1인을 파송하시어 고도 울릉도에 천국이 건설되어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도록 하여 주심을 바라고 기도하나이다.
 
 
8) 순행 종료
 
1948년 2월 13일에 이장영 목사가 부임하여 도동교회에 시무하게 됨으로 노회에서는 더 이상 울릉도 순행의 필요성이 없어지게 되었다.
 
 

 
 
 

4. 『경북교회사』 울릉도교회 설립(발췌)

 
『경북교회사』는 1887년부터 1923년까지 경상도지역의 교회설립과정과 초기 조사 및 목사들의 행적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1909년]
 
○ 울릉도 나리교회 입하다. 선제에 강원도 삼척군 원덕면 부호교회 감리교인인 김병두가 본도 북면에 와서 주의 복음을 전파 할 새 본 나리동 함영수 함철수 양인이 믿고 이웃인 장호범에게 전도하야 전 가족이 합심신종 함으로 그 집에서 예배처소를 정하고 교회를 설립하다.
 
○ 장흥교회 입하다. 김병두의 전도로 김중환이 결신하고 자기집에서 예배처소를 정하고 기개 신자로 교회가 시작되다.
 
○ 남면 저동교회 입하다. 김병두의 전도로 도봉기가 믿고 자기집을 수리하여 예배당으로 사용하고 교회를 설립할새 도봉기는 유사로 김권명은 속장이 되어 30여명의 교인으로 집회하다가 기개월후 경에 초가삼간을 매입하여 예배당으로 사용하다.
 
○ 도동교회 입하다. 김병두의 전도로 김성서가 결신후 자기주택을 예배당으로 봉헌하고 십여 교인으로 교회를 설립하고 김성서는 속장으로 김세묵이 유사가 되다.
 
 
[1910년]
 
○ 울릉도 북면 평리교회 입하다. 경남 부산진 양덕우가 상업차로 입도하여 열심전도 함으로 정구식이 결신하고 자기 사택 일부를 예배당으로 봉헌하고 30여명 교인으로 교회를 설립하다. 시에 경남선교사 매견시 입도하여 교회 직원을 선택할새 정윤식은 영수, 박춘목이 집사로 피임되다.
 
 
[1911년]
 
○ 울릉도 장흥교회에서 열심 연보하여 초가삼간을 건축하다. 시에 감리교전도사 박현일이 순행차로 래도하여 본 교회를 감리교 관할에 두고 속장은 김병두 장두욱 유사는 황하탁 김우환 송원수가 피임되다.
 
 
[1912년]
 
○ 울릉도 저동교회외 6교회를 감리교회가 경남장로교회에 허락함으로 동선교사 매견시 입도하여 장로회 규례대로 본교회 주신조는 영수로 도봉기는 집사로 피임되다.
 
 
[1913년]
 
○ 울도 장흥교회에 경남 선교사 매견시(梅見施), 조사 이용하(李容夏)가 순회차로 래도하여 직원을 선정할새 도문주(都文周)가 영수로, 송원수(宋元壽), 김우환(金友煥)이 집사로 피임되다.
 
○ 저동교회가 예배당 4간 신축하고 60여명의 교인으로 헌당식을 거행하였다.
 
 
[1915년]
 
○ 울릉도 장흥교회에 안식교인이 침입하여 교인을 미혹함으로 교회는 일년간 시험중에 재하였더라.
 
○ 남면 도동교회도 역시비(亦是比)로 인하여 70여명 교인이 침임 되는 중에 영수 김성서가 증히 주께 받쳤던 회당을 자기 소유로 설정하고 경히 안식교회당으로 사용하는 고로 선교사 매견시가 후 회당을 찾기 위하여 관청 문부를 열람함에 상히 김성서 명의로 등기된 고로 복권키 불능하고 교인은 각각 자기 집에서 예배하게 되었더라.
 
 
[1916년]
 
○ 울릉도 나리교회가 예배처소를 완정치 못하여 수년 내로 교인 한철수 전만호 가에 순회 예배하다가 시에 경히 한철수 가로 정하다. 경남 선교사 매견시 순행하여 함근복이 영수로 장호범이 집사로 시무하고 열심 전도하여 삼십여명 교인이 되었더라.
 
○ 장흥교회는 도문주가 북면도로 이거하면서 교인 사십여명을 인솔 동행함으로 교회는 심히 연약하였고,
 
○ 저동교회는 장설을 인하여 회당이 전복되고 경히 개축할 방도가 무하여 심한 심려중에 재하였더라.
 
 
[1917년]
 
○ 울릉도 장흥교회는 선교사 매견시 입도하여 송원수를 영수로 피임하다. 시에 조사 김병두가 별세함으로 도내 교회는 일시 비함중에 재하였더라
 
○ 도동교회는 구암동 교인 이홍우 이재원이 이주하여 주의 사역을 동심진력 하는 중 예배당 삼간을 신축하더라
 
○ 평리교회는 영수 정윤식 대 박춘목 집사 박춘목 대 김두석이 시무하다.
 
 
[1918년]
 
○ 울릉도 나리교회 영수 함근복 대 송광수, 집사 장호범 대 김근배 시무하였고, 예배처소를 송광수 가로 이정하다. 시에 남면거 송광수와 경주군거 김근배가 본동에 이주하여 주의 사역에 열심동찬 함으로 교회는 점차 힘을 얻게 되었더라.
 
○ 저동교회는 적설에 전복되었던 회당을 교인의 열성으로 신축하다. 영수 주신조 대 한두표 송지수, 집사 도봉기 대 한영욱 강명진이 시무하다.
 
○ 평리교회 정윤식이 타처로 이거하면서 자기 가옥을 불신자에게 매도함에 본 교회가 심히 불편케 된 것은 불신자의 사택과 문호를 통용케 되는중동 불신자가 연약한 교인을 농락하여 회당을 천변 사태장에 이건하였더니 불행히 폭풍우를 만나 그의 전복할 지경에 능히 이건할 방책이 없더라
 
 
[1919년]
 
○ 울릉도 장흥교회와 도내 6교회를 경북노회가 경남노회의 관할을 인수하여 김병호 조사를 파송하여 순회전도중 교회가 부흥하여 이십여명이 집회케 되었더라
 
○ 저동교회는 경북노회에서 파송한 변선욱이 래도하여 열심시무중 십일조회와 여전도회를 조직하고 영수 송지수 대 강명진 대 정태일 강인달 박기호 한영옥이 피임하다.
 
 
[1920년]
 
○ 울릉도 태하교회 입하다. 조사 변선욱이 순회 전도시 이상락이 회개하고 평리교회에 래왕 예배하면서 열심 전도한 결과 20여명의 신자를 얻어 이상락이 자기 사택 이 칸을 임시 예배처소로 정하고 평리교회로부터 분교 설립하고 이상락은 영수 이학락은 집사로 피임되다.
 
○ 나리교회는 경북노회에서 파송한 목사 박문찬과 조사 변선욱이 래도하여 부흥회를 개최한중 남북 신자외 연보금 12원을 얻어 초가삼간을 매입하여 예배당으로 사용하다.
 
○ 도동교회는 조사 변선욱이 시무중 교인이 증진 되었더라
 
○ 평리교회는 경북노회에서 파손한 김병호 목사 순찰중 기시 존재한 교인은 나태익 김원순 방말임이라 나태익이 교회 제반 문부를 목사 김병호에게 맡기며 왈 속 비처 교회를 이삼인이 유지키 불능이라 불가불 폐지라 하고 체읍(涕泣-눈물흘림)기도후 현포로 가다가 방말임 가를 심방중 적히 김종헌 위 명인을 만나 전도함에 믿기로 작정한지라 나태익은 비 김종헌을 인도하기 위하여 임의 맡겼던 교회 문부를 도로 찾고 교회를 유지하는 중이더라
 
 
[1921년]
 
○ 울릉도 장흥교회가 경북노회에서 파송한 조사 변선욱이 래도하야 교회를 인도하고 영수 송원수가 울진에 이거함으로 김종달이 선임되다.
 
○ 도동교회는 도사경회를 개최 하는중 조사 변선욱이 본 교회 신산(辛酸)한 사오(事悟)를 설음(設吟) 함에 일반 회원은 눈물로 동오(同悟)하여 백이십 여원의 연보를 수입하고 예배당신축을 경영하더라
 
 
[1922년]
 
○ 울릉도 장흥교회는 대구 선교사 위철치가 순행하여 이종안을 영수로 김재권 김인조를 집사로 피임하다.
 
○ 도동교회는 초가 팔간을 매입 중수하여 예배당을 이전하고 권명오는 영수 최성욱은 집사로 시무하다.
 
○ 평리교회는 삼간의 초가를 매수하여 회당을 이전하다. 노회에서 파송한 김성로 목사가 부흥회를 개최한중 다수의 교인이 회개하였고 교회내 학교설립 하기 위하여 조사 변선욱은 도청(都聽)에 교섭하고 영신사숙을 설립하다.
 
 
[1923년]
 
○ 울릉도 나리교회 오병태 정무출이 집사로 함근복이 권찰로 피임되다.
 
○ 장흥교회는 조사 변선욱이 자기 봉급중 팔원을 연출하여 전도 일인으로 전 도중(島中)에 시무하다.
 
○ 평리교회는 영수 나태익 김종헌 집사 김선범 나만임이 시무하고 영신사숙을 위하여 교실을 신축함에 오십여명의 학생을 교수중 오십명은 전부 예배에 출석 하더라.
 
 
[1924년 4월 5일]
 
편집인 목 사  박덕일(朴德逸)
   장 로  박문영(朴文瑛)
   교열목사  박문찬(朴汶燦) 염봉남(廉鳳南) 이문주(李文主)
 
 
※ 박덕일(朴德逸) 목사
 
1870년 2월 27일 대구 출신으로 부청관리(아전=향리)였지만 33세가 되던 1902년 5월 사업의 실패로 인해 절망 하던 중 미국북장로교 선교사들에 의해 예수를 믿게 되었다.
 
1902년 세례를 받고 그해 12월 조사가 되어 여러교회를 시무하였다. 1905년 남성정교회와 사월교회 두교회만 시무하다가 1907년 6월 28일 남성정교회 독조사로 시무하던 중 2월에 김성호와 함께 남성정교회 초대장로가 되었다.
 
그는 1911년 달성군 침산, 대명동교회 등지에서 시무하였으며, 1912년 평양장로회신학교에 입학하여 1920년에 졸업(13회)하였다. 졸업한 그 해에 경북노회에서 목사안수를 받아 영천읍교회 목사로 부임하였다. 1921년 7월에는 동산병원 전도목사로 청빙을 받아 부임하였으며, 이후 그는 2대 원장인 플레처(A. G. Fletcher-鰵离揪/민리추)와 상의해 1921년 2월 동산병원 전도회를 조직하였고 원내환자 전도뿐만 아니라 경북 지역 전도까지 확장시켰다. 특히 그는 신명여학교에서 파송한 여전도인 최경애(崔敬愛)와 함께 고령, 옥포, 영일, 칠곡, 경주, 달성, 성주, 군위, 금릉 등지에 전도하여 1922년에 30여처, 1923년에 33개처의 교회를 설립하는 놀라운 성과를 보였다. 동산병원 전도목사로 있으면서 그는 대구 동산, 내당동, 방촌, 조야, 노곡, 팔달교회 등을 담임하였으며, 1932년부터는 달성군 침산교회에 부임하였고 이후 동호, 대구 동운정교회에서도 시무한 그는 1940년 대구시내 제직회의 파송목사로 각 교회를 순회하기도 하였다. 오랫동안 경북노회 헌의부장으로 일하였고, 1926년에는 경북노회장(27대)을 역임하기도 했으며, 해방전 1940년 70세의 일기로 별세하였다. 그는 1906년과 1907년 계성학교와 신명여학교의 개교 때 교명을 손수 지었다.(박덕일 자서전) 또한 박덕일 목사는 총회의 조선예수교장로회사기 편찬위원으로써 1924년도에 경북교회사를 집필하여 경북지역 각교회 설립과정은 물론, 교회별로 시무 조사, 목사를 자세하게 기록함으로 경북지역 교회역사의 귀중한 자료를 남기게 되었다. 특히, 1909년 울릉도에 나리교회가 최초로 설립되고 이어서 장흥, 저동, 도동교회가 설립되는 과정을 자세하게 기록하여 울릉도 기독교역사의 기초를 파악할 수 귀중한 자료를 남겼다.
【문화】 울릉군 기독교 100년사
• 제 6 장 초기 울릉군 지역의 교역자
• 제 7 장 울릉군내의 교회설립과 당회조직
• 제 8 장 울릉시찰 각교회 역사
(2024.06.22. 10:26) 
【작성】 궁 인창 (생활문화아카데미)
▣ 커뮤니티 (참여∙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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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일: 2021년 1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