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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회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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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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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하여 안동에 왔는데 한 여랑를 데리고 와서 늘 곁에 두고 귀여워했어. 공민왕은 적군하고 싸우기 위해 안동에 왔기 때문에, 진지를 구축하고 홍건적하고 계속 싸웠는데 이때에도 여랑이 계속 따라다니고 그랬지. 그러다가 어느 싸움에서 홍건적이 가만히 숨어 있다가 왕에게 화살을 쐈는데, 그때 여랑이 몸을 날려가 대신 맞았어. 왕을 살린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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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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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마을에 살던 과년한 처녀가 시집을 못 가고 죽었는데, 그후로 이제까지 별로 탈이 없던 마을에 재앙들이 자꾸 생겨서 마을굿을 했어. 무당이 처녀를 통해 말하기를 나는 마을 사람들과 같이 있고 싶어서 뒷산을 떠나지 못하고 있으니, 나를 마을 사람들과 같이 살게 해 다고. 그랬거든.그래서 마을 사람들이 모여 논의 후에 산에 당을 만들고 정월 열나흗날이면 추렴을 해서 제를 지내게 되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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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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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옛날에 마을주민 한사람의 꿈에 백발노인이 나타나서, 너는 나를 믿어라라고 이야기를 했어. 꿈이라고 하지만 너무나 생생해서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고 꿈을 깼거든.그 다음날 그 사람이 집에 걸터 앉아있는데, 갑자기 하늘에서 방울소리가 들리더니, 마루에 방울이 떨어졌어. 마을 사람들이 이를 매우 신기하게 여겨서 신이 준 방울이니, 이 방울을 모셔야 되겠다.고 의견을 모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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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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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옛날에 어느 노승이 마을에서 시주를 하고 돌아가는 길에 목이 말라 샘에서 물을 마시고는, 쉴려고 지팡이를 짚고 있다가 죽었어요. 한참 있다가 마을사람들이 노승의 시신을 발견하고 그 자리에 곱게 묻어 주었는데, 그 후 마을에 기근이 나고 질병이 돌아 피해가 많이 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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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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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옛날에는 안동과 의성을 잇는 길은 이 갈라산이 길이 가장 가까웠다 그래.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 길을 다녔는데, 어느날 의성에서 안동으로 시집오는 색시를 태운 가마와, 안동에서 의성으로 시집가는 색시를 태운 가마가 갈라산 중턱에서 마주치게 된게라. 한쪽은 험한 산이고 다른쪽은 높은 낭떠러지인 좁은 길이기 때문에 서로 비켜 갈 수 있는 길이 아니었단 말이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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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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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견훤은 껄개이(지렁이)가 화한 사람인데, 나라를 차지하려고 안동으로 들어왔어. 안동에는 삼태사(三太師), 삼장군이 있었는데, 지렁이하고 싸우게 되었어. 싸워 보이 지러이한테 삼장군이 안된단 말이래. 결국 이기기는 이겼는데 어애이겼노 하면, 인제 지러이는 물에만 들어갔다가 나오면 힘을 더 쓴단 말이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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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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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이여송(李如松)이 중국사람으로 알려져 있지만 웃대에 대국 들어가서 살았던 조선사람이래. 따지고 보면 맹 조선사람이지. 그런데 임진왜란때 명을 받고 조선을 왔는데 조선의 산수를 보이 심상치 않거든. 이, 조선을 이래 놓아두면 안되겠다. 장군이 나기 시작하면 큰 장군이 나니, 조치를 취하도록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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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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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이 마을에 권사도라는 청년이 있었는데. 그 도령은 말도 잘 타고 활도 잘 쏘아서 고마 무술이 천하일품이었다 그래.어느날에 이 수리 마을 어디선가 하루종일 하늘을 울리는 용마의 울음소리가 들려왔어. 마을 사람들은 모두 불안하고 무서워 어쩔 줄을 모르는데, 무술을 잘하는 사도 청년이 용마를 달래 보겠다고 나서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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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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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견훤은 껄개이(지렁이)가 화한 사람인데, 나라를 차지하려고 안동으로 들어왔어. 안동에는 삼태사(三太師), 삼장군이 있었는데, 지렁이하고 싸우게 되었어. 싸워 보이 지러이한테 삼장군이 안된단 말이래. 결국 이기기는 이겼는데 어애이겼노 하면, 인제 지러이는 물에만 들어갔다가 나오면 힘을 더 쓴단 말이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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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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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이여송(李如松)이 중국사람으로 알려져 있지만 웃대에 대국 들어가서 살았던 조선사람이래. 따지고 보면 맹 조선사람이지. 그런데 임진왜란때 명을 받고 조선을 왔는데 조선의 산수를 보이 심상치 않거든. 이, 조선을 이래 놓아두면 안되겠다. 장군이 나기 시작하면 큰 장군이 나니, 조치를 취하도록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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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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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옛날에는 산비탈에만 농사를 짓고 강가에는 농사를 짓지 못했거든. 그래서 못 근처에 농사를 질라꼬 여남은 번(여러번) 시도를 했는데, 농사를 지으려면 둑을 쌓아야 홍수가 안 나거든, 그래서 둑을 만들어야 되는데. 근데 이게 막으면 터지고, 막으면 터지고 그그던. 그래서 마을 사람들이 고민을 한참 하는데. 한 40대쯤 되는 여자가 지나가면서 하는 말이 당신들이 그렇게 둑을 백 번 막아봐야 백 번 헛고생 하는 거시더. 하그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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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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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도연폭포 아래쪽에 가면 둘레가 열 아름이나 되는 돌이 하나 있어. 이전에 선비들이 과거를 보러 이 터를 지날 때는, 꼭 바우 앞에서, 올해 과거에 될 것인지 안 될 것인지를 점을 쳐요. 바우 앞길에 서서, 왼손으로 돌을 시개(세개)를 던지는데, 한 개라도 바우 위에 걸치면(얹히면) 급제하는 것이고 안 걸치면 허방이래(낙방하는 것이다). 그래 인제 과거에 급제하면 탕건을 쓰그든, 그래가 이 바우를 탕건바우라 그래.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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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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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날에 청량산의 한 중이 절을 질라꼬 절터를 찾아 댕기다가 보니 절벽 우에 좋은 터가 있는 게 눈에 띄거든. 근데 가만히 보니, 큰 바우가 있어서 그 바우를 내리지 않으면 절을 지을 수 없게 되어 있어. 마침 이 중이 인근에서 알아주는 장사라서, 이 중이 힘을 써서 그 큰 바우를 수십 길 밑으로 굴려 버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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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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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서애 류성룡이 여섯 살 때 강가에 헤엄을 치다가 깊은 데 빠졌는데. 갑자기 돌개바람(회오리바람)이 불어가, 서애를 바위 위에 올려놓아 목숨을 건지게 되었그던. 그 후로 하회에서는 이 바우를 돌고지바우라 그래.(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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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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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공민왕이 난을 피해 안동에 왔는데, 강을 건너게 됐거든. 그런데 강에 다리가 없는게라. 그래도 시기가 시기라서 급하니 그냥 강을 건넬라 그러는데. 참 귀한 공주가 맨발로 강을 건네게 할 수 없어서 안동에 있는 부녀자들이 물 속에 들어가 인교를 놓은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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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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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하회에는 마을을 지켜주는 별신당이 있어서, 음력 정월 초이틀날이면 마을제사를 지내거든. 그런데 어떤 해 마을제사를 지내고 동사에서 이야기를 하다보니 재미있는 놀이를 하나 만들자 이래 논의가 됐어요. 그래 사람들이 이야기를 하다보니, 얼마전에 보니 중하고 각시하고 놀아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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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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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안동의 하회마을에 서애대감의 형인 겸암선생이 있었는데 남보기에는 모자래는 듯이 보여도 실제로는 미래를 내다보고 길흉을 점칠 줄 아는 도인이래, 기인이지. 그때 마침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직전에 왜적이 조선을 쳐들어오기 위하여 칼을 갈고 있었는데, 그래가 세상이 온통 어지러워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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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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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옛날에는 안동과 의성을 잇는 길은 이 갈라산이 길이 가장 가까웠다 그래.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 길을 다녔는데, 어느날 의성에서 안동으로 시집오는 색시를 태운 가마와, 안동에서 의성으로 시집가는 색시를 태운 가마가 갈라산 중턱에서 마주치게 된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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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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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고씨라꼬 아주 유명한 집안이여. 이 집안에 한 양반이 인제 자기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머리만 메고 다니는 거여. 그러니 시체를 짊어지고 다닌 것인데, 왜 그런고 하면 좋은 명당자리를 찾아서 묻는다고 그렇게 다닌겨. 그래 다니다가 들어보니 사람들이 진개명개오야이뜰이라고 거기가 명당자리라고 그라거든 거기가 어디냐 하면, 저 전라도 최고평야야, 진개명개오야이뜰 하는데 바로 거기여, 지금도 우리나라 최고 평야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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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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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흥국사라는 절이 있는데 아흔 아홉 칸이나 되는 큰 절이래, 이 절을 어떻게 지었는가 하면 구십 구 칸을 하루 한 칸씩 지었다 그래요. 그러니 구십 아홉 칸 짓는데, 구십 구일만에 다 짓다니더. 그렇게 날래(빠르게) 짓다니더. 흥국사가 있는 산도 대 명산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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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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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예전에 그 저 제비원이란데, 원이라는 처자가 하나 살았어요. 원이라는 처자는 제비원에서 음식영업을 했어요. 인제 그 음식을 팔고 이래도 돈 없는 사람 배고픈 사람이 오게 된 경우에는 돈도 안 받고 그양 밥을 줬어요. 그이 인제 장사를 하여도 영리적으로 하는 게 아이고 원이라는 처자가 착해가지고 자선사업을 마이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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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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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호루 현판은 고려 공민왕의 글씨라 그러는데,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서 이곳에 머무를 때 친히 쓴 글씨인게라, 공민왕의 친필이니 만큼 현판 글씨의 필치는 참말로 잘 썼다고 사람들이 그래. 옛날부터 영호루가 수 차례 물 때문에 유실됐는데도 현판만은 지금까지 보존이 되고 있는 것을 보면 그 현판이 예사롭지 않기 때문이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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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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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조선시대 때, 맹사성이 안동부사로 오게 되었어. 맹사성이 안동부사로 와 보니 이상하게도 안동지방에 눈병 환자가 많은 게라. 맹사성은 풍수지리에 밝아서 안동지형을 가만히 살펴보니 안동의 지세가 눈병이 많은 지세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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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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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옛날에 농암선생이 도산면 분천리에 애일당이라는 정자를 짓고 현판을 걸기 위하여 중국에 있는 명필에게 글씨를 받으려고 제자를 보냈거든. 중국까지 먼 길을 가게된 제자는 반 년 만에 고생 고생해서 중국에 도착해서 명필을 찾아 한 달 넘도록 헤메고 다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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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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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의상조사(義湘祖師)가 영주 부석사를 다 지은 다음, 종이 학을 만들어서 날렸는데, 그 학이 신기하게도 날아서 서후리에 있는 천둥산 뒤쪽 기슭에서 떨어졌어. 그래 의상조사가 이 곳에서 도를 닦겠다. 하고는 자리를 닦아서 절을 지은 것이 봉서사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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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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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이전에 선조가 그 당시의 명필 한석봉에게 명을 해서 도산서원 현판을 쓰게 하였는데. 이 때 선조가 생각하기를 만약 내가 도산서원 현판이라고 한석봉이에게 가르쳐 주면, 놀래서 붓이 떨려 글씨가 잘 안되께라. 싶어가 가르쳐 주지 않고, 도산서원 네 글자를 거꿀로 한 자 한 자 불렀어요. 그래 한석봉이는 영문도 모르고 받어 쓰는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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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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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그래 우남촌이가, 그분이 나들에, 남의 집이 살로 갔그던. 이래가주, 올 임시에, 그르이 글때는 참 일꾼 머식에 그 멋한 집에 있는 참 머식에서는 요만한 아들도 나이 암만 많애도 일군에 예대하는 법이 없어. 고만 우남촌이마 우남촌이고, 아무 것이만 아무 것이랬지, 아문 도령이 도령이고 고마 이래부랬지, 도령 소리도 없었지, 이래 됐는데, 나올 임시에 가만 보이, 이늠의 아도 우남촌이, 어른도 우남촌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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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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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맹사성이는 조선시대때 공신(功臣)인데. 맹사성이 어릴때는 부모도 없고 혈혈단신(孑孑單身)으로 서울 장안으로 돌아다닌게라. 그때 서울 장안에는 아주 점을 잘치는 봉사가 하나 있었어. 맹사성이 사방으로 댕기다 보니. 봉사집에도 댕기곤 했는데. 봉사가 눈으로 보지는 못 하지면 맹사성이 하는 말씨며, 하는 행동이 아주 이상하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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