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효자 오백주 2
포천에 효자로 유명한 오백주 선생님이 있었다. 그 분은 평소 지극한 효성으로 소문이 자자한 분이었다.
하루는 선생의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집으로 오는데, 거의 저녁 무렵에서야 축석고개에 닿았다. 날은 어두워졌으나 더는 머무를 수가 없어서 고개길을 넘어오는데, 커다란 바위에 호랑이 한 마리가 길을 막고 앉아 있었다. 깜짝 놀란 선생은 두려움을 무릅쓰고 큰소리로 호령하였다.
“내가 우리 아버지께서 편찮으셔서 바삐 가는 길인데 어찌 짐승이 길을 막는가?”
라고 호령을 했더니 호랑이가 설금설금 도망하였다.
밤길을 급히 와서 집에 당도하니 아버지의 병환이 위중하시었다. 의원이 말하기를
“방법은 하나, 산삼을 캐다가 석청(벌꿀)을 찍어서 드시도록 하면 나으실 것입니다.”
하였다. 이 두 가지가 다 구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산삼을 구한다는 것도 어렵지만, 이른 봄철에 벌들이 바위틈에 집을 짓고 저장한 꿀인 석청을 구한다는 것 또한 하늘의 별따기였다. 그래도 오백주 선생은 아버지를 살려야 한다는 마음으로 산삼과 석청을 구하러 온 산을 돌아다녔다.
옷은 다 찢어지고 온몸은 여기저기 긁히고 깨졌다. 종일토록 산삼과 석청을 찾으러 헤매다 지친 그의 앞에 어제의 그 호랑이가 버티고 앉아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놈이 사나운 것이 아니고 친절히도 등에 타라 했다. 오백주 선생이 이상히 여겨 등에 올라타니, 호랑이가 번개같이 깊은 산으로 한참 달려갔다.
호랑이가 멈추기에 내려서 정신을 차려 주변을 둘러보니 눈앞에 산삼이 있었다. 눈물을 흘리면서 산신령님께 감사드리고 산삼을 조심스레 다 캐고 나니, 눈앞에 벌 한 마리가 앵앵하면서 돌아다니는 것이 보였다. 그래서 그 벌을 조심스레 쫓아갔다. 그 벌이 어느 바위틈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들여다보니 벌집이 있고 거기엔 석청이 들어 있었다. 선생이 그것을 정성스레 거둬 돌아와서 아버님께 올리니 아버님의 병환이 다 나았다.
그 효성스러운 소문이 널리 퍼져서 조정에 알려지자 정문이 내려졌다. 처음에는 어룡리 동네 앞에 세워져 있었다는데 너무 낡아서 마을 안으로 옮겨 다시 현대식으로 지었다.
축석 검문소에 호국로라고 쓰인 비석 뒤에 커다란 바위가 하나 있는데 그게 호랑이가 앉아 있던 바위라고 한다. 그 바위가 원래는 축석고개 개천가에 있었는데 도로확장을 하다 보니 개천에 묻히게 되어 오씨네 후손들이 이곳에 옮겨 놓았다,
< 양기성, 72세, 남, 영중면 금주리, 2000. 9. 22. >
【인용】포천의 설화(포천문화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