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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놀이터 ::【가담항설의지식창고 포천의 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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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천의 설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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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24
【문화】 포천 방향으로 약 2킬로미터 나가면 고개 하나가 있는데 예전에 그곳에 어머니가 아들 하나를 데리고 살고 있었다. 이 어머니가 딸 하나 달린 돈 많은 홀아비한테 시집을 가게 되었다. 그런데 이 아들이 보니 새아버지 재산이 많은지라 하루는 그 딸에게 양장을 해준다고 꾀어내서는 고갯길에 데리고 나가 돌로 찍어 죽이고는 몰래 묻어버렸다. 그 이후 밤이면 그곳에 귀신이 나타난다고 하여 사람들이 오가지를 못했다고 한다.(完) 【인용】포천의 설화(포천문화원)
2024.10.24
【문화】 옛날, 애기산 봉우리에 한 엄마가 애기를 업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장수가 그 애기 엄마가 힘이 장사라는 소문을 듣고 와서 얼마나 힘이 센지 보려고 밀었다. 애기는 떨어지고 애기 엄마만 바위 끝에 서 있게 되었다. 한이 맺힌 애기 엄마는 그 자리에 앉아 돌이 되었다. 이것이 ‘애기봉’이다. 【인용】포천의 설화(포천문화원)
2024.10.24
【문화】 궁예가 왕건과 최후의 전투를 할 때, 현등산에 천연의 요새를 짓고 대전하였다. 왕건이 반년간이나 치열하게 공격을 해서 결국 궁예가 현등산에서 죽었다고 한다. 그런데 철원에 궁예의 무덤이 있다는 이야기도 있다. 철원에서 금강산 들어가는 철도 옆에 ‘삼방역’이라는 조그마한 역이 있다. 그런데 그 역 앞에는 돌담이 하나 있고, 그것이 바로 궁예의 무덤이라고도 한다. 【인용】포천의 설화(포천문화원)
2024.10.24
【문화】 경기도 포천군 이동에 가면, 강원도로 넘어가는 고개가 있습니다. 예로부터 이 고개를 ‘흰구름이 머물다 가는 고개’라고 부르기도 하고 ‘맑은 물 계곡’이라고도 불렀다고 합니다. 지금으로부터 근 100년 전, 이 고개에는 맑은 물이 청아한 소리를 내면서 흐르고, 하늘에 닿을 듯 깎아지른 고개는 험하고 구불구불하여 웬만한 사람은 찾는 이 조차 없었습니다. 【인용】포천의 설화(포천문화원)
2024.10.22
【문화】 어느 마을에 소 일곱 마리를 먹이는 부자가 살고 있었다. 그런데 소를 들판에 몰고 가 풀을 뜯게 하고 있던 그 집 머슴이 낮잠을 자는 사이에 소 한 마리가 없어졌다. 머슴은 주인에게 야단 맞을 것을 생각하고 근심에 잠겨 있었다. 이 때 까치 한 마리가 날아오더니 진주 목걸이 하나를 주면서, 무엇이든 소원을 말하면 그 진주 목걸이가 다 이루어 줄 것이라고 했다. 【인용】포천의 설화(포천문화원)
2024.10.20
【문화】 장군터 고개라는 이름의 고개가 있다. 그 곳은 옛날에 남이 장군이 태어난 곳으로 유명하다. 남이장군은 커다란 구렁이의 기운을 받아 태어났다고 알려져 있다.
포수 한 명이 금악산으로 사냥을 가서 산 위로 한참을 올라가다가 큰 바위가 있어서 그 곳에서 쉬어가려고 앉았다. 조금 쉬다가 담배를 펴 물고는 바위에 담뱃대를 털자 그 바위가 꿈틀대더니 움직였다. 【인용】포천의 설화(포천문화원)
2024.10.20
【문화】 옛날 포천에 양문대신이라는 정승이 있었다. 정승은 죽음에 이르러 궤짝 두 개를 짜서 봉해 놓고 후에 증손대에 그 궤짝을 풀어보게 하였다.
세월이 흘러 증손이 그 궤짝을 풀어보니 그 안에는 낫과 호미 밖에 없었다. 【인용】포천의 설화(포천문화원)
2024.10.23
【문화】 마음씨가 아주 착한 이가 살고 있었다. 하루는 나무를 하러 산에 들어갔는데, 나무를 ‘북’ 긁으니까 개암이 ‘툭’ 하고 떨어졌다. 그 사람이 개암을 주워 넣으며 말했다. “어이구 이건 우리 아버지 드려야지.” 또 한 번 나무를 긁으니, 개암이 ‘툭’ 떨어졌다. 【인용】포천의 설화(포천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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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24
【문화】 경기도 포천군 이동에 가면, 강원도로 넘어가는 고개가 있습니다. 예로부터 이 고개를 ‘흰구름이 머물다 가는 고개’라고 부르기도 하고 ‘맑은 물 계곡’이라고도 불렀다고 합니다. 지금으로부터 근 100년 전, 이 고개에는 맑은 물이 청아한 소리를 내면서 흐르고, 하늘에 닿을 듯 깎아지른 고개는 험하고 구불구불하여 웬만한 사람은 찾는 이 조차 없었습니다. 【인용】포천의 설화(포천문화원)
2024.10.24
【문화】 경기도 포천 송우리에는 태봉이라는 작고 아담한 산봉우리 하나가 마을을 싸 안을 듯이 다정하게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이 태봉은 고려 왕녀의 태를 묻은 곳으로, 포천 고을 여러 곳에 있는 태봉 중에서도 그 이름이 나있으며, 아름답고 정겨운 이야기를 전하고 있어 더욱더 유명합니다. 【인용】포천의 설화(포천문화원)
2024.10.24
【문화】 옛날 호랑이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뿌리고 다니던 시절에, 시골 사람들은 늘 가난 속에서 살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부모님에 대해 효도하는 마음은 따스한 정으로 우리 선조들의 마음 속에 전해지고 이어져 내려오기도 하였습니다. 경기도 포천 기피울에는 매우 사납고 몸집이 큰 호랑이 한 마리가 살아서, 마을 사람들에게 무서움과 두려움의 영물로서 경계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인용】포천의 설화(포천문화원)
2024.10.24
【문화】 경기도 북부 지방에 자리한 포천에 가면 기피울이라는 마을이 있습니다. 이 곳은 산세가 매우 험하고 골이 깊어서 ‘기피울’이라고 불렀습니다. 왕방산의 주봉인 국수봉은 그 높이가 해발 754미터나 되는 아주 높은 산이었는데, 매우 험하여 사람들이 오르지 못하였습니다. 【인용】포천의 설화(포천문화원)
2024.10.24
【문화】 화현읍 지현리에 ‘육송정’이라고 있다. 여섯 육 자, 소나무 송 자, 육송정. 이 집에는 오래된 정자가 하나 있는데 판서가 하나 나면 소나무 한 그루를 심고, 판서가 또 하나 나면 또 하나 심고, 이내 여섯 그루가 되어 ‘육송정’이다. 육판서가 이 댁에서 났다는 얘기가 된다. 예산 송씨네 ‘육송정’에서 선비들이 모여서 글을 지었다고 한다.(完) 【인용】포천의 설화(포천문화원)
2024.10.24
【관광】 옛날 운악산 밑에 ‘아들바위’와 ‘딸바위’가 있었다. 하나는 집채만한 큰 바위이고, 다른 하나는 조그만 바위였다. 동네 아낙네들이 나무를 하고 오다가, 돌 하나를 던져서 ‘아들바위에 앉으면 아들을 낳고, 딸바위에 앉으면 딸을 낳는다’고 한다.(完) 【인용】포천의 설화(포천문화원)
2024.10.24
【문화】 ‘금주산’이 여기서는 제일 크다. 왜정 때 일본 사람들이 이곳에 와서 광산을 개발하였다. 그래서 ‘금주리’가 되었다. ‘금주산’에는 다음과 같은 설화가 있다. 옛날부터 ‘금주산’에는 ‘금이 아홉 덩이가 묻혀 있다’는 말이 전해진다. 그런데 ‘아들을 아홉을 둔 사람이라야 그 금을 캘 수 있다’고 한다. 【인용】포천의 설화(포천문화원)
2024.10.24
【문화】 옛날에는 이 곳을 ‘만금담’이라고 했는데, ‘만금이 들락날락 하는 곳’이라는 뜻이다. 장사꾼들이 금강산에서 물건을 해 가지고는 거기 와서 물물교환을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막은대미’라고도 한다. ‘더 이상 갈 데가 없는 막힌 곳’이라는 말이다. 서울 사람들이 거기 와도, 차가 못 다니는 막힌 장소여서 그렇게 불렀다고 한다.(完) 【인용】포천의 설화(포천문화원)
2024.10.24
【문화】 화현에 ‘솔치고개’가 있는데, 지도에는 ‘송재’라고 나와 있다. 옛날 거기에 솔치주막이 있었다. 장에 갔다 오거나 술을 마시거나, ‘솔치고개’를 넘을 사람들은 이 주막에서 묵었다. 다리가 아프거나 해가 지면 거기서 쉬면서 놀음들을 했다. 그게 포천에서 화현으로 넘어가는 길이다. 【인용】포천의 설화(포천문화원)
2024.10.24
【문화】 궁예가 왕건과 최후의 전투를 할 때, 현등산에 천연의 요새를 짓고 대전하였다. 왕건이 반년간이나 치열하게 공격을 해서 결국 궁예가 현등산에서 죽었다고 한다. 그런데 철원에 궁예의 무덤이 있다는 이야기도 있다. 철원에서 금강산 들어가는 철도 옆에 ‘삼방역’이라는 조그마한 역이 있다. 그런데 그 역 앞에는 돌담이 하나 있고, 그것이 바로 궁예의 무덤이라고도 한다. 【인용】포천의 설화(포천문화원)
2024.10.24
【문화】 한 마을에 장사가 태어났는데, 낳은 지 삼일 만에 절구통을 들었다. 그것을 본 부모는 나라에서 아기 장사를 죽이는지라 ‘장사가 되면 안된다’는 생각에 장사가 못되게 아이의 어깨를 뺏다. 그래서 아이는 장사가 못되었는데 하늘에서 내려온 말이 주인을 태우러 왔다가 주인이 장사가 못되니 혼자 내리 뛰고 치 뛰고 하다가 헛다리를 짚어서 말이 굴렀다. 그리하여 그곳을 말구리라 부르게 되었다.(完) 【인용】포천의 설화(포천문화원)
2024.10.24
【문화】 옛날에 길이 없고 나무만 무성해서 숲 속에 사람이 잘 다니지 않던 고개가 있었다. 어떤 사람이 소를 하나 가지고 가서 팔았는데 여든 냥을 받았다. 도둑이 고개를 지키고 섰다가 그 사람이 지나갈 때 그 여든 냥을 빼앗았다. 그 일이 있은 후 ‘여든냥 고개’로 불려졌다.(完) 【인용】포천의 설화(포천문화원)
2024.10.24
【문화】 500여 년 전 이 마을에 부락이 형성되기 전에는 각종 야생동물들이 모여 살았다. 그래서 전국에서 내노라하는 유명한 포수들이 사냥을 왔다. 사냥꾼들이 올 때는 혼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몰이꾼들로 소몰이 하는 사람들을 함께 데리고 왔다. 사냥꾼들은 길목을 잡고 있다가 소몰이꾼들이 짐승을 몰아오면 총을 쏘아 잡았다. 특히 이곳에는 노루가 많아서 노루 사냥을 많이 왔다. 【인용】포천의 설화(포천문화원)
2024.10.24
【문화】 옛날 사람들이 멱을 감다가 해마다 하나씩 빠져죽는 연못이 있었다. 전에 죽은 귀신이 자기가 빠져 나가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 하나를 죽여야만 했기 때문이라 해마다 하나씩 꼭 사람이 죽었다. 그런데 한 번은 무당이 굿을 하다가 넋을 건지기 위해 연못 속으로 들어갔는데 무당마저 빠져 죽어 그 이후로 그곳을 ‘무당소’라 불렀다고 한다.(完) 【인용】포천의 설화(포천문화원)
2024.10.24
【문화】 한 사람이 약물터에 나무를 하러 갔다가 목이 말라 그 약물을 먹었더니 팔, 다리 쑤시는 것 등 모든 병이 다 나았다. 그래서 아플 때에 또 와서 물을 마시니 이번에도 병이 싹 낳는 듯했다. 그 소문이 한 사람 두 사람에게 퍼져 사람들이 병을 고쳐 보고자 수없이 밀려들었다. 그렇게 사람이 하나둘 자꾸 몰려드니, 그것이 싫은 몇몇 노인이 사람들이 오지 못하도록 그 약물터에서 개를 잡아 먹었다. 【인용】포천의 설화(포천문화원)
2024.10.24
【문화】 옛날 부왕제 때의 일이다. 그 당시 오랑캐가 조선에 쳐들어 왔는데, 한 오랑캐가 여염집 규수를 범하려고 따라오니 그 규수가 허겁지겁 피해 달아나다 절벽에 이르렀다. 규수는 오랑캐를 피하기 위해 그 절벽에서 치마를 뒤집어쓰고 뛰어내렸다. 그 이후 처녀가 뛰어내려 죽은 그 바위를 ‘낭자바위’ 혹은 ‘낭바위’라고 불렀다.(完) 【인용】포천의 설화(포천문화원)
2024.10.24
【문화】 포천 방향으로 약 2킬로미터 나가면 고개 하나가 있는데 예전에 그곳에 어머니가 아들 하나를 데리고 살고 있었다. 이 어머니가 딸 하나 달린 돈 많은 홀아비한테 시집을 가게 되었다. 그런데 이 아들이 보니 새아버지 재산이 많은지라 하루는 그 딸에게 양장을 해준다고 꾀어내서는 고갯길에 데리고 나가 돌로 찍어 죽이고는 몰래 묻어버렸다. 그 이후 밤이면 그곳에 귀신이 나타난다고 하여 사람들이 오가지를 못했다고 한다.(完) 【인용】포천의 설화(포천문화원)
2024.10.24
【문화】 옛날에 궁예 왕이 왕건한테 쫓기게 되었을 때의 일이다. 그 당시에 궁예 왕의 첫 도읍지가 철원이었는데 왕건에게 쫓겨나서 관인면 ‘고남산’이라는 곳으로 도망을 쳤다. 왕건이 그 곳에까지 쳐들어오자 울음산으로 도망을 갔다. 도망을 가다가 배가 고파서 그 산에서 국수를 먹고 갔는데, 그 때문에 그 산봉우리에 ‘국수봉’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인용】포천의 설화(포천문화원)
2024.10.24
【문화】 ‘망봉산’이라는 곳이 있는데, 그 곳은 예전에 궁예가 왕건을 피해 도망한 곳이다. 예전부터 내려오는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에이, 미련한 놈! 소를 앞에서 몰면 되느냐 응? 뒤에서 몰아야지.” 이 말은 황희 정승이 맨 먼저 한 말이었다. 황희 정승이 길을 가다 보니 어느 미련한 사람이 소를 자꾸만 앞에서 몰고 있었다. 그래서 황희 정승이 그 미련한 사람에게 그렇게 말을 했다고 한다. 【인용】포천의 설화(포천문화원)
2024.10.24
【문화】 큰집에서 새벽 조반을 했다. 작은집은 그 옆에 살았는데, 큰집에서 함께 밥을 먹었다. 호랑이가 나타나서 밥을 먹으려고 큰집에 가는 사람을 잡아갔다. 사람을 잡아서 반은 먹고 반은 남겨 두었다. 가족들이 남은 반을 그 곳에 묻으니 호랑이가 자꾸 나타나서 파는 것이었다. 화가 난 식구들은 다른 호랑이를 잡아서 그 곳에 묻었다. 그 이후, 호랑이가 그 곳에 나타나지 않는다고 한다. 그 곳이 ‘호랑봉’이라 불려졌다. 【인용】포천의 설화(포천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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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일: 2021년 1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