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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포천의 설화
◈ (3) 효자 오백주 3 - ‘말무덤 이야기’
옛날 경기도 포천의 어링굴이라는 마을에 오백주라는 분이 살고 있었습니다.
어링굴은 서쪽으로 왕방산이 있어서 기암 괴석이 절경을 이루고, 병풍을 두른 듯 넓고 장엄한 바위 틈에서는 맑고 찬 심산 옥수가 흘러서 한내로 흘러드는 경치 좋고 물 맑은 고장이기도 합니다. 【인용】포천의 설화(포천문화원)
(3) 효자 오백주 3 - ‘말무덤 이야기’
 
 
옛날 경기도 포천의 어링굴이라는 마을에 오백주라는 분이 살고 있었습니다.
 
어링굴은 서쪽으로 왕방산이 있어서 기암 괴석이 절경을 이루고, 병풍을 두른 듯 넓고 장엄한 바위 틈에서는 맑고 찬 심산 옥수가 흘러서 한내로 흘러드는 경치 좋고 물 맑은 고장이기도 합니다.
 
그런 때문인지 이 고장에는 충신과 효자, 그리고 열녀들이 많이 나와 그 이름을 다른 고장에 떨치기도 하였습니다.
 
또 한 물줄기는 어룡리 정문골로 흐르는데, 찬우물이 있는 샘물 앞을 감돌아 말무덤이 있는 절벽 앞을 흐릅니다.
 
이 말무덤은 사람의 무덤이 아닌 말의 무덤인 것입니다.
 
이 무덤에는 이 곳에서 태어나 나라에 충성하고 부모에게 효도를 하여, 그 이름을 빛낸 오백주 장군의 말의 무덤입니다. 오백주 장군이 타고 다니던 말은 이상하게도 장군이 죽자, 며칠 동안을 먹지 않고 눈물만 흘리더니 죽었다는 것입니다.
 
사람도 아닌 말이 자기가 평생을 모시고 다니던 주인의 죽음을 어찌 그리 슬퍼할 수 있으며, 또 주인을 따라 죽을 수 있을까요? 가슴이 뭉클하도록 감동스럽습니다.
 
그러면 오백주 장군은 어떤 분일까요?
 
오백주는 어느 해, 벼슬로 고향을 떠나게 되었는데 뒤쫓아 고향에 계시는 아버지가 위독하시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연락을 받자마자 오백주는 고향으로 달려오는데 어느덧, 해가 저물어 축석령이란 고개를 밤중에 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집채만한 큰 호랑이가 나타나 앞을 가로막으며 으르렁대었습니다.
 
오백주는 으르렁거리는 호랑이를 향해 큰 소리로 꾸짖었습니다.
 
“이 못된 호랑이 놈아! 내가 지금 아버님이 위독하시다는 슬픈 소식을 듣고 달려가는데, 감히 네가 어찌 길을 막는단 말이냐?”
 
그러자 호랑이는 말귀를 알아듣기라도 하는 듯 꼬리를 감추고 머리를 조아리더니 어디론가 사라졌습니다.
 
이리하여 오백주는 무사히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의 병이 바람 앞의 등불처럼 위태로웠으나 시골인 어룡리에서는 어찌할 도리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튿날 스님 한 분이 찾아와 시주를 하라고 목탁을 두드렸습니다.
 
오백주는 정성껏 시주를 하며 아버님의 병세를 말하고, 스님에게 어떤 좋은 처방이 없겠느냐고 물어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그 스님은 몇 번인가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입을 떼었습니다.
 
“처방이 있긴 해도 좀 어려워서…….”
 
스님의 말을 듣자 오백주는 기회를 잃을세라,
 
“스님, 그걸 가르쳐 주십시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스님이 시키는 대로 하겠습니다. 제발 가르쳐 주십시오.”
 
하며 눈물로 호소하였습니다. 그랬더니 스님은,
 
“그 병세는 생삼에다 바위 구멍에서 친 벌꿀을 구해서 찧어 섞은 것을 드리면 그것이 바로 명약이 될 것입니다.”
 
하고는 스님은 어디론가 사라졌습니다.
 
스님의 말씀을 듣고 난 오백주는 앞이 캄캄했습니다. 마침 추운 겨울이라 더욱 걱정이었습니다.
 
왕방산엔 눈이 쌓이고 삼밭의 꽁꽁 얼어붙은 모습이 오백주의 가슴도 얼릴 듯하였습니다.
 
이 추운 겨울에 어디에서 꿀샘을 찾으며 산삼을 구할 수 있을까요?
 
그러나 오백주는 곧 두 주먹을 불끈 쥐었습니다.
 
오백주는 어떻게 해서든지 병든 아버지께 꼭 약을 구해다가 병환을 낫게 해 드리겠다고 다짐을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굳게 결심한 뜻을 사당에도 고하고 산 속으로 길을 떠났습니다.
 
몇 날을 헤매던 어느 날, 오백주는 산 속에서 지난번 축석령에서 만난 호랑이를 또 만났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지난 번과는 달리 머리를 굽신거리더니 쭈그리고 앉아 등에 타라는 시늉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퍽이나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버님의 병환을 고쳐 드려야겠다는 생각으로 머릿속이 꽉찬 오백주는 호랑이에 대한 무서움도 이상스럽다는 생각도 없었습니다.
 
호랑이 등에 올라탄 오백주는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이 호랑이 놈아, 우리 아버님 드릴 꿀과 인삼이 있는 곳으로 나를 데려다 다오!”
 
산을 쩡쩡 울리는 오백주의 호령 소리는 왕방산을 울렸습니다.
 
한참 동안이나 등에 싣고 산 속을 달리던 호랑이는 어느 깊은 산골짜기에다 오백주를 내려놓고 어디론가 사라졌습니다.
 
호랑이가 어디로 갔는가 살펴보기보다는 벌꿀을 찾기에 바쁜 오백주의 눈앞에 이상한 일어 벌어졌습니다.
 
눈이 쌓인 바위틈으로 꿀벌 한 마리가 ‘윙-’소리를 내면서 들어가는 것이 보였습니다.
 
눈이 쌓인 바위틈에 벌이라니?
 
휘둥그래진 눈으로 오백주가 벌이 들어간 바위틈을 자세히 살펴보니, 큰 바위와 바위 사이에 벌집이 보였습니다.
 
“옳지, 하늘이 도우사 내게 꿀벌을 보내시고 꿀을 주시려나 보다.”
 
이렇게 생각한 오백주는 몹시 기뻤으나 곧 다른 걱정이 눈앞에 가로놓여 있었습니다.
 
이 큰바위를 어찌 치우고 꿀을 따낼 수 있을는지요?
 
오백주는 기쁘면서도 답답한 마음을 가눌 길이 없어 눈물을 흘리면서 울었습니다. 그리고 큰 소리로 소리 높여 기도를 올렸습니다.
 
그랬더니 눈물이 떨어져 바위의 눈을 녹이고 다시 바위가 더워지더니, 바위 틈에서 꿀물이 뚝뚝 떨어지는 것이었습니다. 놀랍고도 신기한 광경을 보고 있던 오백주는 허리에 차고 간 병에 꿀을 가득 담았습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꿀만 가지고는 약이 되지 못하기 때문에 안타까웠습니다.
 
산삼을 어디서 구한단 말인가요?
 
오백주가 효성이 지극하여 추운 겨울에 산중 바위틈에서 벌꿀을 아버지의 약에 쓰려고 구해 왔다는 소문이 온 고을에 퍼졌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산삼을 구하지 못하여 위급하신 아버님의 병환을 구완하지 못한다는 소문까지 퍼졌습니다.
 
그랬더니 어떤 사람이 위급할 때 쓰려고 구해 놓았던 삼산을 가지고 오백주를 찾아왔습니다. 효성에 감동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산삼을 가지고 온 사람은 오백주의 효성을 포천의 자랑이자 영광이라고 칭송했습니다. 그리고 산삼을 꿀에다 재어 찧어 드리면 반드시 부친의 병환이 나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오백주는 시간이 늦을세라 얼른 산삼을 꿀에다 재어 찧어서 아버님께 드렸습니다.
 
그 후 며칠이 지나자, 그렇게 몹시 아프시던 아버님의 병환은 씻은 듯이 나았습니다. 정말 기쁜 일이었습니다.
 
오백주의 효심을 하늘이 알고, 호랑이와 벌을 시켜 꿀을 구해 주고 지극한 효성은 다른 마을 사람들까지도 감동시켜 산삼을 구하게 해 주었던 것입니다.
 
오백주는 그 후 무과에 급제하여 절제사라는 벼슬에 올라 장군이 되었습니다. 당시 조선조 숙종 임금은 그의 고향인 어룡리에 효자문을 세워 주었습니다.
 
지금도 어룡리에 가면, 오백주 장군을 기리는 신도비와 오백주 장군이 묻힌 큰 묘소가 있습니다.
 
또 오백주 장군이 사랑하여 타고 다니시던 말이 묻힌 무덤이 있는데, 이는 오백주 장군의 효성과 충성심, 그리고 말을 극진히 아끼던 뜻을 알고, 말이 주인의 죽음을 슬퍼하다가 따라서 죽은 갸륵한 무덤이기도 합니다.
 
말무덤에 얽힌 이야기는 이 곳을 지나는 뜻 있는 사람들의 옷깃을 여미게 합니다.
 
<김창종,『못난이의 귀향』, 한국독서지도회, 1995>
 
【인용】포천의 설화(포천문화원)
【문화】 포천의 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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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가담항설 - 떠도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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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일: 2021년 1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