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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포천의 설화
◈ (1) 유응부 장군 1
유응부 선생은 소홀면 무봉리 충목단에 모셔진 어른으로, 사육신 중의 한 분이다. 그분에게는 지금 본관이 두 개인데, 그것은 기개 유씨와 철령 유씨 집안에서 서로 자기네가 유응부 선생의 후손이라고 하기 때문이다. 【인용】포천의 설화(포천문화원)
(1) 유응부 장군 1
 
 
유응부 선생은 소홀면 무봉리 충목단에 모셔진 어른으로, 사육신 중의 한 분이다. 그분에게는 지금 본관이 두 개인데, 그것은 기개 유씨와 철령 유씨 집안에서 서로 자기네가 유응부 선생의 후손이라고 하기 때문이다.
 
유응부 선생은 조선조 세조임금 때에 단종 복위를 꾀하다 발각되어 역적으로 몰려 처형되었다. 그 시절에 역적은 삼족을 멸하였는데, 그 때에 그 일가친척들이 목숨을 구하고자 산산히 흩어져 도망을 갔다. 어떤 사람들은 인적이 닿지 않는 깊은 산 속에 가서 살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북쪽으로 멀리 도망을 가기도 하였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가평 산 속의 칡덩굴 밑에서 8대를 숨어 살기도 하였는데. 가평은 산이 험하여 사람들이 별로 가지 않았던 곳이다.
 
그 사건이 일어난 지 250여 년 만에 단종이 임금으로 복원되어 종묘에 오르게 되고, 그 때 역모로 잡혀 죽었던 사람들이 모두 절의를 가진 충신으로 재평가되어 유응부 선생은 죽은 지 250여 년 만에 복권이 되었다.
 
복권된 후 조정에서 유응부 선생의 제사를 올리려고 하는데 그 후손이 나타나지 않아서 애를 태우고 있었다. 이 때에 철령 유씨들이 자기들이 유응부 선생의 후손이라 하여 임금으로부터 제사를 지내도 좋다는 교지를 받아 갔고, 이 때부터 유응부 선생은 철령 유씨라는 본관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기개 유씨들도 유응부 선생이 자신의 조상이라고 주장하며 선생을 족보에 올리고 제사도 모셨다. 그래서 유응부 선생은 두 개의 본관을 갖게 되었고 양쪽 집안의 족보에 오르게 되었다.
 
해방 이후 두 집안이 문교부장관에게 질의를 했다. 물론 철령 유씨들은 교지를 복사하여 보냈는데, 그것이 결정적인 증거물로 채택이 되어 철령 유씨로 판정이 되었다.
 
하지만 정확한 판정은 통일이 된 후에 내려질 것이다.
 
유응부 선생이 역적으로 몰려서 처형을 당할 때, 선생에게는 어린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선생의 동생 유응신이 강보에 싸서 북쪽으로 도망을 가서 자손들의 일부가 그곳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통일이 되어서 북쪽의 자손들의 본관이 확인되면, 철령 유씨와 기계 유씨 중에서 선생의 자손이 누구인지는 분명히 알 수 있을 것이다.
 
< 양기성, 72세, 남, 영중면 금주리, 2000. 9. 22. >
 
【인용】포천의 설화(포천문화원)
【문화】 포천의 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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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24.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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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일: 2021년 1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