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황새묵이의 할머니
옛날 지금의 경기도 포천 지방에 한 마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이 곳에는 해마다 황새들이 몰려와, 소나무 위에서 떼지어 놀기도 하고 새끼도 낳아 오손도손 살다가 때가 되면 돌아가곤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 마을은 황새들이 묵어 가는 마을이라고 하여 언제부터인가 ‘황새묵이’라는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그런데 이 황새묵이 마을은 물이 맑고 땅이 기름졌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서 농사를 짓고 밭도 일구기 시작하였습니다.
처음에는 논이나 들에서 농사를 짓던 사람들도 차차 사람들이 몰려들자, 이제는 산골짜기까지 파헤쳐 밭을 만드는가 하면 황새들의 보금자리가 있는 냇가 소나무 숲까지 전부 베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런가 하면 어린이들은 황새의 알을 꺼내어 구워 먹기도 하고, 새끼를 잡아다가 놀잇감으로 갖고 놀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마을에는 아무도 이를 말리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황새묵이 마을에 무서운 질병이 돈 것은, 마을 사람들 때문에 황새의 수가 눈에 띄게 줄어든 어느 해 여름이었습니다.
열병이 돈다는 소문은 무섭게 퍼져 온 마을이 발칵 뒤집혔습니다.
처음 분이네에서 시작된 열병은 옆집 순이네로, 다시 곰례네로 옮겨 가더니 얼마 안 가서 온 마을을 휩쓸었습니다. 큰일이 나고야 만 것입니다.
할 수 없이 마을 사람들은 박 진사님 댁으로 몰려갔습니다. 박 진사님은 이 마을에서 제일 공부를 많이 하신 어른입니다.
그러나 박 진사님이 아무리 공부를 많이 하여 진사 시험에 합격한 선비라지만 갑작스럽게 퍼진 이 열병에는 뚜렷한 묘책이 서지 않았습니다.
지금 같으면 소독을 한다, 주사를 놓는다, 약을 쓴다고 하겠지만 아주 먼 옛날에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돌림병이 돌면 병자를 원두막에 뉘어 놓고 행여나 살아날까 하고 기다리는 게 고작이었으며, 또 무당이나 장님을 불러서 푸닥거리를 하거나 무꾸리라는 점 보는 일 하는 것이 보통이었습니다. 어쩌다 용한 의원이 있다고 해도 수많은 돌림병 환자를 치료하기에는 힘이 매우 부족하였습니다.
박 진사님은 하는 수 없이 황새묵이 마을에서 제일 나이가 많고, 황새같이 조용히 사시는 할머니를 찾아가서 황새묵이 사람들을 돌림병에서 구할 수 있는 방법을 의존하기로 했습니다.
늘 단정한 옷차림인 할머니는 박 진사님을 방으로 맞아들였습니다.
박 진사님으로부터 이야기를 다 들으신 할머니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내 이럴 줄 알았지……. 새들도 목숨을 가진 생물인데 그렇게 함부로 하다니. 그뿐인가. 황새는 선비들이 죽어서 다시 태어나는 새라던데…….”
박 진사는 깜짝 놀랐습니다. 선비들이 죽으면 황새로 다시 태어나서 산 좋고 물 좋은 고장을 찾아 자연을 즐기며 산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렇다면 선비인 자기도 죽으면 황새가 될 것이 아닙니까? 그렇게도 황새를 못 살게 굴더니 이제, 그 황새들이 무서운 돌림병을 몰고 와 사람들을 벌주는 것이 아닐까요?
박 진사님은 떨리는 가슴으로 마을에 돌아와 마을 사람들을 한 곳에 모이게 하고 할머니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예로부터 황새를 괴롭히거나 알을 꺼내면, 무서운 질병에 걸린다는 것과 선비가 다시 태어나면 황새가 된다는 얘기도 했습니다. 그러니 어떤 방법으로 황새가 사는 숲을 잘 보호해서 황새들의 노여움을 풀 것인지 의논하자고 했습니다.
금세 여러 가지 의견이 나왔습니다.
우락부락하게 생기고 심술궂기로 이름난 돌쇠 아버지는 아예 황새가 사는 숲을 모조리 베어 없애자고 큰 소리로 떠들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황새의 알을 꺼낸 사람들을 벌주자고 하였습니다.
온종일 의논을 하였으나 아무런 결정을 내리지 못하자, 박 진사님은 마을 사람들을 데리고 황새들이 사는 숲을 찾아가 할머니를 만나 보고 도움을 청하기로 하였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찾아오자 할머니는 큰 소리로 꾸짖었습니다.
“이 사람들, 왜 왔어? 황새를 그렇게도 못 살게 하고……. 알을 꺼내 삶아 먹고 어린 새끼마저 못 살게 굴더니만 무엇이 부족해서 또 왔어? 천벌을 받아도 싸지 싸! 그 죄를 용서받으려면 잘못을 뉘우치고 천만 년을 황새를 보호하고 위해 줘야 해.”
할머니의 목소리는 엄하면서도 마을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만큼 설득하는 힘이 있었습니다. 두말 할 것도 없이 마을 사람들은 마을에 돌아오자마자 황새를 보호하기로 입을 모았습니다.
힘이 센 청년들은 황새숲으로 가는 길목에다 말뚝을 박아서 사람들이 함부로 다니지 못하게 하였으며, 황새들이 노니는 연못에는 고기를 잡지 못하게 팻말을 써 붙여 놓기도 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숲에는 더 많은 나무를 심고, 숲 근처에 사시는 할머니도 마을 사람들이 모은 곡식으로 보살펴 드렸습니다.
그렇게 정성을 드린 지 얼마 만엔가…….
황새묵이 마을의 열병은 거짓말같이 사라졌습니다. 이렇게 다시 온 마을이 평화스러워지자 그 동안 걱정을 하던 마을 어른들도 웃음을 되찾았습니다.
황새묵이 마을의 이야기는 삽시간에 온 마을의 이야깃거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평생을 남몰래 황새를 보살피며 사신 할머니에게는 고을 원님이 아담한 집 한 채를 지어 주었습니다.
그 후로도 이 마을은 나무를 사랑하고 냇물을 보호하여 아름다운 자연을 오래 가꾸었습니다.
자연을 보호하면 아름다운 보답이 오고, 자연을 파괴하면 무서운 재앙이 온다는 황새묵이 마을의 이야기는 오늘날 우리에게 좋은 가르침을 줍니다.
<김창종,『못난이의 귀향』, 한국독서지도회, 1995>
【인용】포천의 설화(포천문화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