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곱돌이와 패랭이
이 정승 아들의 이름은 곱돌이고, 판서의 아들은 패랭이였다. 곱돌이와 패랭이는 같은 서당에 다녔다.
하루는 곱돌이가 가만히 생각하니 자기는 잘 사는데, 패랭이는 집이 가난하여 점심을 못 싸올 때가 많았다. 그래서 곱돌이가 ‘저 놈을 부자로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하고 꾀를 썼다. 그래서
“너 내 말을 들어라. 뭐냐하면 우리 아버지가 정승이 아니냐. 아버지의 숟가락을 가져다가 내일 아침 새벽에 장독간 뒤에다 파묻을 테니, 네가 그걸 알아 맞추면서 그걸 찾아라. 그러면 내가 너를 아버지에게 좋게 말해주겠다.”
고 했다.
그 이튿날 아침에 종들이 밥을 해 상을 보는데 정승의 숟가락이 없었다. 까딱하면 목이 달아날 판이었다. 그래서 모두들 걱정하고 있는데, 곱돌이란 놈이 가만히 듣고 있다가 패랭이가 냄새를 잘 맡고 잘 찾는다고 했다. 그리고는
“그 애를 불러올까요?”
하니 모두들 불러오라고 했다. 미리 숟가락 있는 곳을 가르쳐 준 것이니까 영락없이 찾게 되었다.
패랭이가 괜히 돌아다니다가 장독간에 옆에 가서
“여기를 보세요.”
그러니, 그 곳에서 숟가락이 나왔다. 사람들이
“야, 너 참 귀신같구나! 너 어떻게 잘 찾니?”
“제가 냄새를 잘 맡아서 찾기도 잘 합니다.”
라고 대답을 했다.
어느 날, 정승에게 나라의 관문서가 왔다. 내용인 즉, 중국에서 금두꺼비를 두 마리 잃어 버렸는데 그걸 찾는 사람이면 천금을 준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모두 관에 모여 ‘그것을 어떻게 찾아야 하나?’ 궁리를 하다가 문득 정승이 하는 말이
“야 패랭이가 냄새를 잘 맡는다더니 그것도 냄새 맡아 찾을까?”
하고선 집에 와서 얘기를 하니, 곱돌이가
“아, 제가 불러 볼게요.”
해서 패랭이는 중국에 가게 되었다. 사람들이
“너 며칠 만에 찾을 수 있느냐?”
고 물으니까 패랭이가 열흘 만이면 찾는다고 했다.
여드레 째 독방에서 웅크리고 앉아 있는데 문풍지가 부르르 떨렸다. 그러자 패랭이는 못 찾는 것이 겁이 나서
“문풍지야 떨지 마라. 내일이면 죽는다.”
고 했다. 패랭이가 어떻게 하고 있는지 엿보러 왔던 도둑이 그 말을 들었다. 그런데 그 도둑놈의 성이 문가고 이름은 풍지였다. 도둑놈은 문을 열고 들어와 살려달라고 했다. 그래서 패랭이는
“벌써 죽일 건데, 내 너 하는 거동을 보려고 아직 죽이지 않았다.”
고 했다. 그리고는
“네가 어디에 감췄는지 다 알고 있지만, 네 입으로 말을 해봐라.”
라고 하니
“위 연못 안에 있습니다.”
라고 했다. 그러면서 자기는 나라에서 문지기로 일하는데, 그 금두꺼비를 보니 자기만 못 사는 것이 너무 화가 나서 연못에 버렸다고 했다.
다음날 패랭이가 임금님에게 가서
“금두꺼비는 이 뒤에 있는 연못 안에 있으니까 물을 퍼내십시오.”
라고 했다.
사람들이 두레박 수십 개를 만들어 가지고 물을 퍼냈다. 그랬더니 금두꺼비 두 마리가 정말 바닥에 있었다. 중국 사람들이 그만 깜짝 놀랐다. 한국에서 어린아이가 와서 그것을 찾으니 자기네가 너무 부끄럽다고 생각했다.
이놈들이 이제 상금을 주어야 하는데, 아깝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래서 패랭이를 죽이려고 함을 만들어서 그 속에다 무언가를 넣어 놓고서는
“너 이걸 알아 맞추면 우리가 비단을 한 사람 앞에 열 필씩을 줄 것이고, 이것을 못 찾으면 너는 우리한테 죽을 것이다.”
고 했다. 패랭이는 너무 무서워서
“아, 죽는다. 곱돌이 때문에 패랭이 죽는다.”
면서 손뼉을 치면서 소리질렀다.
그런데 그 곱돌이라는 이름이 곱돌함과 똑같았다. 중국 사람들이 곱돌로 함을 만들어서 함 속에 넣어 놓은 것이었다.
결국 패랭이는 한 사람 당 비단을 열 필씩을 받고, 또 천금을 가지고 왔다. 나중에 예쁜 여자에게 장가들고 아주 잘 살았다고 한다.
< 원심위, 85세, 남, 영북면 운천6리, 1997. 4. 9. >
【인용】포천의 설화(포천문화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