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산삼 이야기
강원도 홍천에 김삼봉이라는 사람이 살았는데, 40이 되도록 슬하에 자녀가 없었다. 그래서 늘 아들, 딸 가릴 것 없이 소생이 있었으면 하고 바랬다. 이에 그 부인이 명산에 가서 백일기도를 드리고 아들이나 딸을 하나 점지하여 달라고 치성을 드렸다. 정성이 지극하여 산신의 은혜를 받았던지, 태기가 있기 시작해 10개월 만에 아들을 낳고 이름을 ‘삼돈’이라 지었다.
삼돈은 어려서부터 영리하여, 어른들이 하는 말도 다 알아 듣고 어깨 너머로 글을 배워 무엇이든 한 번 들으면 잊어버리질 않았다. 그런데 7살 때 갑자기 양친 부모가 다 돌아가시어 고아가 되었다. 이에 인근의 어떤 사람이 삼돈이가 똑똑한 것을 알고 데려다 키웠다. 그렇게 삼돈은 13살까지 지내다가 철이 들자, ‘남의 도움만 받고 살 수는 없으니 자수성가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그 집을 나왔다.
그래서 이리저리 떠돌아 다니는데, 홍천에 박도사라는 벼슬아치가 삼돈이 머리가 좋다는 소리를 듣고는 데리고 와 머슴으로 삼고 살림살이를 모두 삼돈에게 맡겼다. 삼돈이 17, 8세가 되자 정삼순이라는 여자와 결혼까지 시켜주고 집과 토지를 장만해 주어 농사를 지어먹고 살라고 내보내 주었다. 그래서 삼돈이 부부는 농사를 짓고 살았는데, 어느 날 밭고랑에서 더덕 같기도 하고 도라지 같기도 한, 이상한 뿌리 셋이 나왔다. 그게 모두 산삼이었는데 그걸 모르는 부부는 그걸 가지고 와 빨래줄에다가 잎사귀 채로 걸어 놓았다.
그러던 때에 박도사가 삼돈이 어떻게 사는지 궁금해 그의 집으로 찾아왔다가 빨래줄에 널린 산삼을 보게 되었다. 그러자 삼돈이 산삼을 캤으면서도 자기에게 알리지도 않고, 또 그렇다고 깊이 간직해 놓지도 않은 것을 보고 그게 뭔지 모를 것이리라 추측했다. 박도사는 삼돈을 속여 삼돈에게서 그 산삼을 쉽게 얻어 왔다.
마침 그때 임금님이 큰 산삼 세 뿌리를 구하면 상금을 주리라는 방을 써붙인 것을 박도사가 보았던 것이다. 그리하여 박도사는 더 높은 벼슬을 할 욕심으로 산삼을 오동나무 궤짝에 잘 싸서 하인을 시켜 임금님께 바치고 오라고 했다. 하인이 서울로 가는 길에 장이 선 곳을 지나가게 되었다. 그곳을 보니 술도 많고 먹을 것도 많아서 하인은 하루 묵어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어느 주막집에서 묵게 되었는데, 그 하인이 자다가 그만 죽어버렸다.
한편 삼돈이는 나무를 해서 장에 가져가 팔려고 집을 나섰다. 장에 가서 나무를 팔고 생선 한 토막을 사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인데, 어떤 부인이 자기를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그 부인에게 다가가니 부인이 하는 말이
“우리 집에 좋은 술이 있으니 들어오셔서 술 한잔 잡숫고 가세요.”
라고 하며 노란 약주 술을 한 그릇 떠서 삼돈이를 대접하는 것이었다. 고마운 마음에 이런 저런 얘기를 하던 중, 부인이 하는 말이
“당신이 내 부탁을 들어주면 당신에게 후한 보답을 하겠으니 내 부탁을 좀 들어주세요. 지금부터 하는 얘기는 당신하고 나하고 둘이서만 압시다. 엊저녁에 손님이 우리 집에 와서 자고 가자 해서 방에 들었는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그 사람이 죽었습니다. 그러니 저 시체를 장사만 지내주면 후히 상금을 드리겠습니다.”
라고 하는 것이었다. 삼돈이가 가만히 생각해 보니, 돈도 생기고 술도 얻어 먹고 또 그 부인도 꽤 괜찮은 사람인 것 같아서 그렇게 하자고 허락했다. 그리하여 밤에 부인과 둘이 장사를 지내고 왔는데, 그 부인이
“저기 괴나리 봇짐이 있는데, 그 사람 것이니 무엇인지 끌러 봐서 쓸만한 것이면 당신이 가지십시오.”
하고 말했다. 그래서 뜯어보니 웬 편지가 나왔는데 편지를 읽어보니 ‘홍천에 사는 박도사가 임금님께 진상 드리는 산삼 세 뿌리를 보내오니 잘 받아주시오’ 하는 내용이었다. 생각해 보니 자기를 길러준 박도사가 보낸 것이었다.
그래서 하인 대신에 자기가 박도사의 은혜를 갚아주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괴나리 봇짐을 싸서 서울로 갔다. 궁궐에 도착하여 들어가려 하니 문지기가 남루한 옷차림의 삼돈이를 막아섰다. 그리하여 둘이 ‘들어간다, 못 들어간다’ 하며 옥신각신하고 있는데, 그 광경을 임금님이 보시고
“나에게 무슨 곡절이 있으니 들어온다는 것 아니겠느냐. 들여보내도록 하여라.”
하였다. 이렇게 궁궐에 들어가게 된 삼돈이는 짐을 풀어 임금님 앞에 산삼 세 뿌리를 내놓았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그것은 바로 자기가 캤던 삼이었다. 그래서
“아이구! 이건 제가 며칠 전에 캔 것인데, 이게 어떻게 해서 여기 있을까요?”
하고 말했다. 임금님이 그 소리를 듣고 그게 무슨 소리냐고 물어 삼돈이는 자초지종을 이야기했다. 임금은 그 산삼이 박도사라는 사람이 삼돈이에게서 탈취하여 보낸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삼돈이에게 고맙다는 말과 함께 벼슬자리를 주었다. 그리고 삼돈이에게 도복을 입히고 큰 갓을 씌우고 노자돈을 후히 줘서 내려 보냈다.
삼돈이 집에 돌아와 있는데, 박도사가 하인이 안 오는 것도 궁금하고 삼돈이가 어떻게 지내는지 보려고 삼돈의 집에 갔다. 그랬더니 삼돈이가 도포를 입고 갓을 쓰고 있는 것이었다. 박도사는 어른 앞에서 어찌 그걸 쓰고 있느냐고 호통을 치며 삼돈이를 마구 때렸다. 삼돈이는 임금님이 괜히 그걸 줘서 매만 맞고 망신만 당했다고 생각하며, 도포와 갓을 임금님께 돌려드렸다. 임금님이 왜 입지 않느냐고 물어, 사정을 얘기하니 임금님이 판사를 불러 들였다. 알고 보니 그 판사는 박도사의 형이었는데, 임금님이 그 판사에게 ‘홍천에 사는 네 동생을 잡아 들이라’ 하여 박도사를 불러 들였다.
어떻게 해서 산삼이 삼돈이의 손을 통하여 임금님께 바쳐졌는지 내력을 들은 판사는 동생인 박도사에게 벌을 내렸다.
< 전병호, 남, 내촌면 내촌1리, 1995. 10. >
【인용】포천의 설화(포천문화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