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사주팔자
한 임금이 나라를 편안히 다스리다 보니 팔자가 좋기는 하되 몹시 심심한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중 자신과 생년월일도 같고 얼굴도 비슷한 노인이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는 그 노인을 불러 들였다. 그는 강원도 어느 산골에서 벌을 치는 사람이었다.
임금은 그를 불러놓고 가만히 얼굴을 들여다 보았다. 과연 생김이 똑같으나 한 사람은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이요, 다른 사람은 벌을 치며 먹고 사는 사람이라 퍽 기이하게 여겨졌다. 임금은 노인에게
“너는 나와 한날 한시에 같이 태어났거늘 난 임금이 되었는데 너는 무엇이 되었느냐?”
고 물었다. 그랬더니 그 노인이 하는 말이
“저는 임금은 못 되었으나 벌을 쳐서 잘 먹고 삽니다.”
고 했다. 임금이
“그래 벌은 몇 통이나 치느냐?”
하니,
“360통입니다.”
라고 했다.
임금이 가만히 노인의 말을 듣고 보니 퍽 재미있었다. 임금인 자신은 360개의 고을을 다스려서 한 고을이 하루 만큼 자신을 모시는 꼴인데, 그 다스리는 것이 골머리가 아픈 일이었다. 반면 벌치는 노인은 하루에 한 통씩만 돌보면 골머리 앓지 않고 마음 편히 먹고 사는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노인이 임금인 자신보다 더 편안한 팔자인 것처럼 여겨졌다. 임금은 갑자기 노인이 얄미워져서는 ‘이 놈을 고생 좀 시켜보자’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금으로 만든 반지를 노인에게 내어주며
“내가 이 반지를 너에게 줄 것이니, 내가 오라고 할 때 이 반지를 꼭 가지고 오너라. 알겠느냐?”
고 하였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노인이 타고 들어갈 배의 뱃사공에게 명령하여 그 금반지를 강물에 빠뜨리라고 말하였다.
아무 것도 모르고 반지를 받아 든 노인은 남한강을 건너 강원도 영월로 들어가려고 배를 탔다. 배를 타고 강을 건너던 중 사공이 갑자기 배를 세워 놓고는
“임금이 왜 자네를 불렀는가?”
“알 거 없네.”
“좀 알려주게, 알려주지 않으면 강을 건너지 않겠네.”
고 윽박지르면서 이유를 알려 달라고 졸랐다. 벌치는 노인은 할 수 없이 그간의 내력을 설명해 주었다. 이야기를 다 들은 사공은 이번에는 그 금으로 만든 반지를 보자고 했다. 노인이 반지를 보여 주었더니 사공은 그것을 보는 척하며 강물에 빠뜨려 버렸다.
노인은 집에 돌아온 길로 자리에 눕게 되었다. 임금님이 주신 유일한 반지인데 잃어버렸다고 했다간 살아남지 못할 것이 불 보듯 뻔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죽을 것을 각오하고 자식들에게 말도 못하고 앓고 있었다. 하루는 아들이 다가와서
“아버님, 무슨 일이십니까?”
“아니다, 알 것 없다.”
“속 시원히 말씀해 보세요.”
하고 간곡히 말하였다. 그제야 노인은 반지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아들은 그런 아버지를 염려하여 장에 나가 싱싱한 잉어 한 마리를 샀다. 그것을 가져다가 자기 아내에게 주니, 아내 또한 시아버지께 드릴 음식을 정성껏 준비하였다. 잉어를 토막내려고 내리쳤는데 그 속에서 ‘쨍그랑’ 소리가 들렸다. 며느리는 깜짝 놀라서 그 속을 들여다 보니 반지가 하나 나오는 것이었다. 그 반지를 노인에게 보여주니 바로 임금이 준 반지였다. 그 길로 노인은 기력을 회복하여 이후 몇 년을 마음 편히 잘 지냈다.
시간이 흘러 임금이 노인을 다시 불렀다. 임금은 ‘요놈 마음 고생 좀 했겠구나’ 하고 벌 줄 생각으로 즐거워하고 있었다. 임금은
“반지 내어 놓아라. 없으면 처벌을 하리라.”
고 했다. 그러나 노인이 그 반지를 꺼내니 임금은 그저 혼자서 약이 올라 어쩔 줄을 몰랐다.
그런데 한날 한시에 태어난 두 사람이 한 사람은 임금이요, 한 사람은 벌치는 사람이 되었는가 하는 데는 재미있는 이유가 있다. 임금은 닭이 ‘꼬끼오’하고 목을 뺄 때 태어났고, 노인은 ‘꼬끼오’하고 목을 내리 뺄 때 태어났기 때문이다.
< 허훈, 69세, 남, 창수면 추동리, 1998. 9. 24. >
【인용】포천의 설화(포천문화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