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봉화대
영북으로 가다 보면 야미리라는 곳이 있는데, 여기서 어떤 노인네에게 들은 이야기이다.
옛날에 영북에는 봉화대가 있었다. 이 곳을 ‘봉수’, 또는 ‘봉수봉’이라고 한다. 거기서 조금 더 가면 고개가 하나 있다. 전국에 ‘되놈이 고개’라는 것이 여러 개 있는데, 그곳도 되놈이 고개이다. ‘되놈이 넘어 왔다’고 해서 되놈이 고개이다. 거기서 200미터 쯤 떨어진 곳에는 봉화대가 있었고, 지금도 거기엔 봉화대 자리가 남아 있다.
예전에 바로 그 곳에 홀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딸이 있었다.
병자호란 때 오랑캐들이 되놈이 고개로 마구 넘어 왔다. 이쪽에서는 임경업 장군이 압록강에서 오랑캐를 막는다고 했는데, 결국은 막지를 못했다. 왜냐하면 청나라 오랑캐들이 임경업 장군을 피해서 혜산진 쪽인가, 백두산 쪽인가로 들어 와서 원산을 거쳐 넘어 왔기 때문이다. 청병들이 서울로 가다가 ‘되놈이 고개’ 앞의 ‘봉화대’라고도 하고 ‘봉수봉’이라고도 하는 데에 당도했다.
그런데 그 날 밤에 아버지는 잠이 잘 안 와서 뒤척이고 있었다. 아버지가 바깥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니까, 딸에게
“얘, 무슨 소리가 나니까 밖을 좀 내다 보아라.”
하셨다.
딸이 나가 보았더니 말발굽 소리가 요란하게 들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아버지에게 말씀 드렸다. 노인은 외적이 쳐 들어온 것을 알고는 딸을 보고,
“이게 암만해도 위급한 상황인데, 지금 저 봉화대에선 아무도 모르고 있는 것 같구나.”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청나라 군사들이 봉화대의 봉화지기를 죽이면서 왔다고 한다. 그래서 청나라 군사들이 쳐 들어온 급보가 서울로 전해지지 못했다.
그 때 아버지가 딸보고,
“나는 늙어서 못 가니까, 네가 봉화대에 가거라.”
라고 했다. 딸이 맨발로 뛰어가서 봉화대에 불을 올려 신호를 보냈다. 이제 막 마지막 불을 올렸을 때, 청나라 군사들이 습격해서 그 딸이 죽었다. 그 어린 딸의 이름이 옥녀라고 한다.
이렇게 해서 그나마 오랑캐의 침입이 서울에 빨리 전달이 됐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어린 딸이 목숨을 잃으면서 마지막 봉화를 올려서 위급한 상황을 서울에 알렸다는 것이다.
< 양제창, 73세, 남, 영중면 금주2리, 2000. 9. 22. >
【인용】포천의 설화(포천문화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