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호랑이골’ 할머니
옛날 경기도 포천의 기피울이라는 마을에 할머니 몇 분이 살고 있었습니다.
할머니들은 가난하여 농사를 지은 양식만으로는 살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봄철부터 늦은 가을까지 산에서 양식을 구하기도 하고, 산에서 나는 약초나 나물을 캐어 장에 내다 팔아서 양식을 사오기도 하였습니다.
들에 나는 냉이, 씀바귀, 꽃다지, 쇠스랑개피도 캐고 산에서 나는 두릅, 혼닢, 다래순, 취나물, 고사리, 고비 등도 캐서 양식에 보태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이 할머니들을 나물 할머니라고 부르기도 하고, 또 호랑잇골로 나물을 캐러 다닌다고 하여 호랑잇골 할머니라고 부르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아침을 일찍 먹고 세 할머니가 점심을 싸 가지고 호랑이가 산다는 호랑잇골로 나물을 캐러 나섰습니다.
다른 날 같으면 늦게 떠나도 되지만 호랑잇골은 워낙 깊고 먼 골짜기라서 일찍 떠나야 했습니다. 호랑잇골은 싱싱하고 연한 여러 가지 나물이 많은 곳이어서 할머니들은 신이 났습니다.
그러나 이런 신나는 나물캐기 나들이가 할머니들을 크게 놀라게 하는 사건으로 변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한참이나 지났을까요?
할머니들은 호랑잇골에 당도하자마자 그 동안 다른 곳에서는 보지 못하던 싱싱하고 연한 나물들을 많이 캐고 뜯었습니다. 점심때가 되자 양지쪽 바위 옆에다 점심 자리를 보기로 하였습니다.
얼마나 나물을 많이 뜯었던지 허리도 아프고 다리도 아팠지만, 할머니들은 많이 뜯은 나물을 대견한 듯 바라보며 꿀맛 같은 점심을 들기로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동물이라고는 산새들이 간혹 지저귀고 풀벌레 소리만 들리던 호랑잇골 골짜기에, 별안간 누렇고 얼룩덜룩한 줄무늬가 있는 강아지만한 새끼호랑이들이 대여섯 마리 우르르 몰려나오는 게 아니겠습니까?
깜짝 놀란 세 할머니는 질겁을 하며 점심 숟가락을 내던지고는 뒤로 물러나 앉았습니다.
“에구머니! 이게 뭐지?”
한 할머니가 소리쳤습니다.
“강아지인가 봐!”
또 한 할머니가 말하였습니다.
“이 산중에 무슨 개가 있담. 새끼늑대가 아닐까?”
또 다른 할머니가 말하였습니다.
한참 동안 수선을 피우던 할머니들은 한 마디씩 말하고는 새끼호랑이들을 구경하기에 바빴습니다.
어떤 할머니는 새끼호랑이들을 가슴에 안아 주고 빰을 비비며 귀여워하기도 하고, 어떤 할머니는 점심 먹는 자리를 방해한다고 발로 차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더 큰일이 벌어질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바위 위에서 어미호랑이가 이 모습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새끼호랑이들을 귀여워 해주던 할머니를 빙그레 웃으며 내려다보고 있던 어미호랑이가 새끼호랑이를 발길로 차는 할머니의 모습을 보고는 그만 크게 화가 났던지,
“어흥! 어흥! 어흥!”
하고 큰 소리로 으르렁댔습니다.
조용하던 호랑잇골이 갑자기 호랑이 울음소리로 쩌렁쩌렁 울렸습니다.
놀란 것은 할머니들이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동물들도 혼이 나간 듯 이리 뛰고 저리 뛰었습니다.
할머니들은 점심 도시락 꾸러미는 말할 것도 없고, 한나절이나 땀을 흘리면서 뜯은 싱싱하고도 연한 산나물 보따리도 집어던지고, 신발도 벗어 던진 채 버선발로 마을로 뛰어내려왔습니다.
‘혹시 호랑이밥이 되지나 않을까?’
‘누가 먼저 호랑잇골로 오자고 했지? 걸음아, 날 살려라…….’
할머니들은 무서운 생각과 함께 끔찍스러운 생각까지 하며 허겁지겁 뛰었습니다.
마을 안은 발칵 뒤집혔습니다. 마을에는 나물 할머니들이 호랑잇골에 갔다가 혼이 났다느니, 호랑이에게 물려 갈 뻔했다느니 소문이 꼬리를 물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할머니들은 혼이 난 것은 물론, 옷은 다 찢기고 얼굴과 손, 발에는 수풀을 헤치고 오느라고 상처투성이였습니다.
그런데 더욱 무서운 소문이 돌았습니다.
‘새끼호랑이들을 괴롭혔으니 어미호랑이가 곧 뒤쫓아와서 마을을 습격할 거야…….’
‘어미호랑이가 나타나서 할머니들을 모두 잡아먹을지도 몰라…….’
여러 가지 소문이 할머니들과 마을 사람들을 괴롭혔습니다.
마을 사람들을 두려움에 떨게 한 하루도 날이 저물었습니다. 무서운 가슴을 죄며 자리에 든 할머니들은 잠에 빠져들기가 무섭게 쫓기는 꿈에 시달려 놀라기도 하고, 곤하게 코를 골다가도 작은 바람 소리에 소스라쳐 깨기도 하였습니다.
날이 밝았습니다.
동녘 하늘이 밝아 오는 아침이 온 것입니다.
다른 때 같으면 동네 사람들은 일찍 일어나서 연장을 들고 논밭으로 아침일을 나가기도 하고, 가축을 돌보러 나가는 시간이지만 아무도 대문을 나서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 때였습니다.
그래도 할머니들의 밤새 안녕이 걱정된 마을 촌장님이 할머니들의 집을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놀라운 일이 생겼습니다.
나물을 캐러 호랑잇골을 찾았던 세 할머니 중의 한 할머니의 집에는 대문 앞에 나물 보따리랑 신발이랑 심지어는 점심 도시락 꾸러미까지도 가지런히 놓여 있는가 하면, 한 할머니의 집 대문 앞에는 찢긴 신발과 찢긴 도시락 꾸러미가 대문에 걸려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실로 놀랍고도 신기한 일이었습니다.
산중 호랑잇골에서 새끼호랑이들을 보고 귀여워 볼을 비벼 주던 할머니의 집에는 나물 보따리랑, 신발, 도시락 꾸러미까지도 모두 물어다 가지런히 놓아두었고, 새끼호랑이를 발길로 찬 할머니의 집에는 그 할머니의 찢긴 옷과 신발, 도시락 꾸러미가 걸려 있었던 것입니다.
아무리 짐승인 호랑이도 자기 자식을 귀여워하고 사랑해 주는 사람에게는 그 은혜를 갚아 주는가 하면, 자기 자식을 괴롭힌 사람에게는 원수를 갚는다는 이야기가 지금도 전해 오고 있습니다.
<김창종,『못난이의 귀향』, 한국독서지도회, 1995>
【인용】포천의 설화(포천문화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