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국수봉과 무러고개 이야기
경기도 북부 지방에 자리한 포천에 가면 기피울이라는 마을이 있습니다.
이 곳은 산세가 매우 험하고 골이 깊어서 ‘기피울’이라고 불렀습니다.
왕방산의 주봉인 국수봉은 그 높이가 해발 754미터나 되는 아주 높은 산이었는데, 매우 험하여 사람들이 오르지 못하였습니다.
또한 그 이름이 말해 주듯이, 국수봉은 나라의 장수가 태어나서 나라를 위해 큰 일을 할 것이라고들 하였으며, 이 국수봉 마루에는 국수봉 할머니 신을 모시는 사당이 있습니다.
국수봉을 수원으로 하여 큰골을 따라 흐르는 물은 맑고 깨끗하며 얼음처럼 차서, 한여름에도 발을 담그면 금방 등골이 오싹하는 찬기를 느껴 더위를 식혀 주기도 하고, 겨울에도 쉬지 않고 흘러 사철 청아한 물 소리를 들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큰골 옆에 국수봉을 따라 차례로 솟은 삼형제봉은 그 산세나 모양이 매우 닮아서 세쌍둥이봉이라고 합니다.
큰골에서 흐르는 물은 서쪽의 하늘봉과 원자박골, 닥박골에서 흐르는 샘물과 합쳐져 한탄강 지류인 영평천과 합류하는데 이제껏 한번도 말라 보지 않은 약수천이라고도 합니다.
그런데 국수봉은 국수봉 할머니의 아주 무서운 전설을 지니고 있어 사람들을 놀라게 합니다.
1950년, 6∙25 전쟁이 나고 전쟁이 끝나자 국수봉도 전쟁의 피해를 입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높은 국수봉 위에다 미합중국군은 높은 관측소를 만들고 기지화하여, 하늘을 감시하는 곳으로 삼으려 하였습니다.
그래서 미합중국 군대는 헬리콥터로 아주 큰 불도저도 갖다 놓고 포크레인도 실어다가, 국수봉 상상봉을 파헤치고 길을 닦으며 골을 메우기로 하였습니다.
그러자니 자연히 국수봉의 수호신인 국수봉 할머니를 모시는 사당도 수난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국수봉 할머니신을 모시는 사당도 현대 문명의 이기인 불도저로 밀어 헐려 부서지게 되고 박살이나, 큰골 골짜기로 굴러 떨어지게 되고 국수봉의 영험어린 자태도 크게 파손되었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크게 비바람이 몰아치더니만 국수봉을 파손시키던 육중한 불도저는 중심을 잃고 골짜기로 굴러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웬일일까요?
그렇게도 맑고 화창하던 날씨가 갑작스레 흐리고 비바람을 몰고 와서 육중한 쇳덩이로 된 큰 기계를 골짜기로 곤두박질을 시키다니요?
불도저를 운전하던 미합중국군 병사도 크게 다쳐서 병원으로 실려 가서 치료를 받게 된 것은 물론이었습니다.
이번에는 다시 포크레인을 가지고 구덩이를 팠습니다. 그런데 또 웬일일까요? 이번에도 곁에 있던 큰 바위가 갑자기 굴러 오더니만 포크레인을 덮쳤습니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씩이나?
그뿐이 아니었습니다.
억지로 끌어 올린 불도저로 다시 작업을 하려고 해도, 비바람이 치고 천둥까지 치는 바람에 작업을 할 수 없었으며 작업을 중단하면 다시 맑은 날씨를 되찾게 되었습니다.
고요하던 골짜기에 현대 문명의 이기인 기계 소리가 들리면 일어나는 이변(?)에는 아무리 현대의 첨단 교육을 받은 미합중국 군대 장교들이라 하여도 혀를 내둘렀습니다.
셋째 번 공사 작업도 실패로 끝났습니다.
하는 수 없이 미합중국 군대 장교들은 마을 어른들을 만나 의논을 하고 한국군 장교들과도 상의를 하였습니다.
미합중국군 장교들은 다른 곳에서 작업을 할 때에는 그렇게도 능숙한 솜씨를 뽐내던 공병 병사들이, 국수봉 위에서는 사고를 내고 작업을 못 하는 이유를 모른다고 하였으며, 한국군 장교들은 지형을 모르는 미군이 지형이 다른 이 곳에서 작업을 하게 되어 미숙한 탓이라고 하였고, 마을 노인장들은 그저 아무 말 없이 고개만 젓 고 계셨습니다.
의아하게 생각한 미합중국군 공병 장교들은 마을 노인들에게 다시 여쭈어 보았습니다.
“왜? 고개만 젓고 계십니까?”
“…….”
노인장들은 아무 말도 없이 고개만 젓고 있더니 미군 장교들에게 물었습니다.
“이 산의 이름을 아는가?”
“국수봉이라고 들었습니다.”
노인장들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다시 물었습니다.
“국수봉의 뜻이 무엇인가?”
“…….”
미군 장교들이 알 리가 없었습니다.
“국수봉은 그 뜻이 장군봉이란 뜻인데, 장군봉의 머리를 함부로 파헤쳐도 되는가?”
이번에는 미군 장교가 고래를 갸우뚱하였습니다.
“더구나 국수봉이자 장군봉인 영산 봉우리를 함부로 파헤치고, 또 국수봉 할머니신을 모시는 사당을 헐어도 되는가?”
노인장들은 자못 근엄한 얼굴로 미군 장교들을 꾸짖었습니다.
잘못을 사과하고 미군들은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함부로 파헤쳐졌던 산은 다시 메워지고 국수봉 할머니를 모시는 사당도 미군의 손으로 다시 세워졌습니다.
최소 한도의 산만을 빌려서 쓰기로 계획을 축소하고, 작업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작업은 조심스레 진행되었습니다.
그랬더니 그렿게도 변화무쌍하던 날씨도 맑고 청명한 날이 계속되었으며, 작업도 순조롭게 진행되어 완성을 보게 되었습니다.
국수봉의 웅자는 장엄한 모습으로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으며, 국수봉 할머니신의 사당에는 매년 마을의 안녕과 평화와 풍요를 기원하는 제사가 올려지게 되었습니다.
국수봉의 영험한 뜻을 예언한 분은 독곡 성 대감이었습니다.
성 대감은 서울에서 벼슬을 하다가 이 곳 국수봉이 바라다보이는 고개를 넘어서 낙향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곳 국수봉은 그 장엄하고도 수려함이 다른 명산과 다른 점이 있었고, 물이 맑고 깊은 골은 마치 큰 독수리가 큰 알을 품은 듯함을 보고는 장차 나라의 큰 그릇들이 탄생할 것을 예언했다고 합니다.
“저 산 이름이 무엇인고?”
성 대감은 시종에게 물었습니다.
“잘 모르겠습니다.”
시종이 대답하였습니다.
한참 동안 장엄하고도 수려함에 도취하여 산천 경개를 감상하던 성 대감은, 조금 전에 시종에게 묻던 일을 잊고는 또 물었습니다.
“저 산 이름이 무엇인고?”
시종은 다시 대답하였습니다.
“산 이름은 잘 모르겠습니다.”
시종은 이상하다고 느꼈습니다.
“아무래도 저 산에서 흐르는 물을 먹는 사람은 큰 인물을 낳을 것이며, 반드시 나라에 큰 공을 세울 장수가 태어날 것이다.”
성 대감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에 기대어 국수봉 아래 고개를 넘었다고 합니다.
그 후 이 명산의 이름은 국수봉(國帥峰)이라고 불렀으며, 독곡 성 대감이 넘은 고개는 문래현(問來峴)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묻고, 또 묻고 온 고개라는 뜻에서입니다.
정말 국수봉 할머니신의 노하심으로 미군 장병들이 벌을 받아 기지 작업을 못하였는지는 알 수 없어도, 자연은 자연을 함부로 훼손시키는 사람에게 벌을 준다는 교훈을 남겼으며, 자연의 위대한 섭리를 일깨운 바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김창종,『못난이의 귀향』, 한국독서지도회, 1995>
【인용】포천의 설화(포천문화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