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범데밋골 샘물 이야기
옛날 호랑이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뿌리고 다니던 시절에, 시골 사람들은 늘 가난 속에서 살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부모님에 대해 효도하는 마음은 따스한 정으로 우리 선조들의 마음 속에 전해지고 이어져 내려오기도 하였습니다.
경기도 포천 기피울에는 매우 사납고 몸집이 큰 호랑이 한 마리가 살아서, 마을 사람들에게 무서움과 두려움의 영물로서 경계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아, 여보게. 내 말 좀 들어 보게나. 큰골을 지나 닥밭골로 내려오는데 말일세, 큰손님(호랑이)이 웅크리고 앉으셔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지 않겠는감!”
“그래서?”
“하는 수 없이 나뭇짐 속에서, 토끼굴을 뒤져 잡은 새끼토끼를 슬그머니 바위 밑에 던지고는 줄행랑을 쳤지.”
이 이야기를 들은 천식이는 거품을 내뿜으며 겁먹은 소리로 ‘불티’라는 머슴에게 해가 저물도록 떠들어 대었습니다.
하루는 순종네 할머니와 주덕이와 아주머니가, 아랫마을 부전어미를 데리고 아랫술청에 가서 술지게미를 얻어 오는데, 배가 고팠던지 집에 가지고 오기도 전에 냇가 호장모에서 한 바가지나 먹고 큰손님(호랑이)에게 혼이 났다는 이야기도 해 주었습니다.
“어떻게 혼이 났당가?”
“아, 그야 뻔하지 않은가?”
“잘 모르겠는데…….”
조금 어둔한 불티가 되물었습니다.
“아, 이 사람아! 대낮에 술기운이 올라 얼굴이 벌건 여자를 큰손님(호랑이)이 그냥 뒀겠는감?”
“어찌 혼이 났는감?”
“뺨을 맞았다네, 뺨을 맞았어.”
“그래서 죽었는감?”
“요행히 살아났지만 이불을 쓰고 아예 드러누웠다네 그려. 쯧쯧, 안됐어.”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사는 부전어미가 몸져누웠다는 말을 주고받으며, 천식이와 불티는 측은한 마음이 들어 어깨를 늘어뜨리고 앉아 한숨만 쉬었습니다.
다행히 오른쪽 뺨을 맞았는데도 오른쪽으로 쓰러지지 않고 왼쪽으로 쓰러져서 목숨은 건졌다고 소문이 났습니다.
예로부터 호랑이는 사람을 해칠 때에 오른뺨을 때리는데, 마주 선 사람이 호랑이의 때리는 힘을 받아 오른쪽으로 쓰러지면 잡아먹고, 반대쪽인 왼쪽으로 쓰러지면 힘이 센 사람인 줄 알고 도망간다는 말이 있기도 합니다.
그런데 1년이 지나도 호랑이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다시 2년이 지나고 3년이 지나도 큰손님인 호랑이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마을에는 역질(전염병)이 돌고 가뭄이 들어 난리를 만난 듯 숭숭하고 흉흉했습니다. 마을 사람들 사이에 모두 죽게 될 것이라는 공포가 감돌았습니다.
기골이 장대하고 힘이 센 촌장님도 병이 들어 윗마을 외딴집에서 혼자 약을 달여 먹고 사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가뭄은 심했습니다. 큰골, 닥밭골, 원자박골 샘물까지도 마르다니?
하늘이 마을을 버렸다고도 하였습니다. 이상하게도 다른 마을 사람들이나 먼 동네 사람들까지도 샘물을 찾아서 병든 노인들을 업고 기피울을 찾아 왔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불티나게 일을 잘 한다 해서 불티라는 별명을 가진 일꾼과, 하늘 아래에서 법 없이도 살 수 있다는 천식이가 온 골짜기를 다 뒤져서 샘물을 찾아냈습니다. 장한 일이었습니다.
“천식이와 불티가 물길을 찾았단다.”
소문은 삽시간에 온 마을을 뒤덮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구름같이 그릇을 들고 나타났습니다.
천식이와 불티의 뒤를 따라서 마을 사람들은 호장모를 지나 아랫마을로 갔습니다. 한참이나 산을 오르다보니 샘물 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물이다, 물!”
마을 사람들은 아귀다툼을 하면서 물을 마시고 몸에다 끼얹기도 하였습니다. 이제는 걱정이 없었습니다.
몇 년이고 흐를 것 같은 샘물이 펑펑 솟아올랐습니다. 몇 날이 지났습니다.
‘이게 웬일일까?’
그렇게도 집집마다 가슴앓이, 배앓이, 머리를 앓던 병자들이 자리를 툭툭 털고 일어났습니다.
“아마도 국수봉 당집 할머니가 영험을 내리신 모양이지?”
착하디 착한 천식이가 말을 해서인지 모두들 그렇게 믿었습니다.
수십 년간 병을 앓던 노모를 업고 물을 찾아왔던 박서방도 걸어서 돌아갈 수 있게 된 어머니를 모시고 물통을 지고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효자가 되어 돌아갔습니다. 촌장님도 윗말 외딴집에서 혼자 병구완을 스스로 하시더니 일어나서 집을 찾아 내려오셨습니다.
가을이 오고 다시 겨울이 왔습니다. 나무를 해야만 부엌 아궁이에 불을 땔 수 있기 때문에, 천식이와 불티도 산에 나무를 하러 갔습니다.
“우리 호장모 뒷산으로 갈까?”
“글세…….”
지금은 다 나았지만 호랑이에게 뺨을 맞고 죽을 뻔한 부전어미 생각이 나서, 호장모 뒷산은 겁이 났지만 샘물도 먹을 겸 그 곳으로 갔습니다.
두 사람은 땀을 흘리며 호장모 뒷산을 올랐습니다. 한참만에야 뒷산 봉우리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땀을 식히려고 바위 위에 앉았습니다. 그런데 바위가 ‘푹석’ 소리를 내며 내려앉고 마는 것이 아닙니까? 바로 큰 호랑이가 죽어서 썩은 시체였습니다.
“그 동안 마을 큰손님이 안 뵈더니…….”
큰손님(호랑이)이 썩은 샘물이 기피울 사람들의 목을 축이고 병을 낫게 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그 곳을 범데미(범의 무덤)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마을 사람들을 괴롭히던 호랑이가 죽은 뒤에 마을 사람들을 구한 것이었습니다. 범데미 샘물을 또 효자샘이라고도 합니다.
<김창종, 『소금집 딸』, 한국독서지도회, 1995>
【인용】포천의 설화(포천문화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