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솔모루 마을의 젖샘
경기도 포천 송우리에는 태봉이라는 작고 아담한 산봉우리 하나가 마을을 싸 안을 듯이 다정하게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이 태봉은 고려 왕녀의 태를 묻은 곳으로, 포천 고을 여러 곳에 있는 태봉 중에서도 그 이름이 나있으며, 아름답고 정겨운 이야기를 전하고 있어 더욱더 유명합니다.
송우리 마을은 솔모루라고도 하는데, 아름답고 늘푸른 소나무가 울창한 마을이어서 솔모루라고 부르는 마을이 되었다고 하는 이도 있고, 큰 우시장이 있어 소몰이꾼들이 모여 살았다고 해 솔모루라고 불렀다고 하는 이도 있으나, 그 연유는 정확히 알 길이 없습니다.
다만 이 곳 포천 고을은 크고 힘세며 순하고 일 잘 하는 소를 많이 길러서, 이 곳 송우리 시장에 내다 파는 부지런한 농부들이 많이 사는 이름난 고을이었습니다.
이 고을 송우리에 김 진사라는 분이 살았습니다. 김 진사 댁도 다른 마을 사람들과 같이 소를 살찌게 기르는 부지런한 농가였으며 선비의 집안이었습니다. 오랜만에 옥동자를 낳은 며느리를 자랑하는 김 진사이기도 하였습니다.
왕방산과 수원산이 마주 보이는 마을이어서 출중한 아들이 태어났다고 김 진사는 매우 기뻐하였습니다.
옥동자를 본 김 진사는 옥동자가 자랄수록 대견하고 귀엽기 그지없었으나 걱정이 하나 생겼습니다. 그렇게도 펑펑 샘솟듯 쏟아지던 며느리의 젖줄이 하루아침에 뚝 그치고 만 것이었습니다.
“김 진사 댁 며느리가 젖이 말랐다면서? 젖이 없어서 젖엄마(유모)를 들여야 할 처지라면서?”
김 진사 댁 며느리가 젖이 말랐다는 소문은 온 고을 안에 온통 퍼졌습니다.
“김 진사님이 혹시 절손의 원이라도 산 것이 아닌감?”
말 많은 사람들이 한마디씩 떠들었습니다. 그러나 말 많은 사람들의 입방아는 오히려 김 진사를 괴롭게 하기에만 족하였고 아무 도움도 되지 못하였습니다.
김 진사 댁 마님은 그만 병환이 날 지경이었습니다. 그래서 김 진사 댁 마님은 사방팔방으로 사람을 보내어 젖이 잘 나는 약을 구하였으나 허사였습니다. 돼지족을 삶아 먹이기도 하고 인삼, 녹용을 먹이기도 하였으나 허사였습니다. 심지어는 산신령님께 치성을 드리라는 사람도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김진사 댁에서는,
“어찌 양반집에서 무속을 숭상한단 말인가? 하늘의 뜻이니 참고 기다림이 옳을진대…….”
참고 기다리는 것이 상책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기다리는 것이 어느 때까지여야 하는지 답답하고 고달팠습니다. 김 진사 댁 마님은 산을 찾았습니다. 산나물을 뜯으러 태봉산에 올랐습니다.
응아리, 꿩의다리, 수리취, 혼닢, 비비취, 다래순, 산도라지, 더덕 등 아주 맛난 산채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이런 맛난 산채들을 캐 가지고 내려오려는데 이상하게도 발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준수하게 빼어난 태봉산이 마치 김 진사 댁이나 마을을 위해 무슨 일인가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태봉을 향해 정성껏 큰절을 올렸습니다.
그리고 두 손 모아 몇 번이고 다시 절을 올리며 빌었습니다.
‘…….’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큰절만 올렸으나, 김 진사 댁 마님의 마음 속에는 마을의 안녕과 풍요와 행복을 비는 마음이 가득하였으며, 며느리의 탐스러운 젖에서 꿀 같은 젖이 펑펑 쏟아지기를 기원하는 마음이 가득했습니다.
태봉은 고려 왕녀의 태를 묻은 영산으로, 크고 아름다운 나무숲을 마을 사람들이 정성들여 가꾼 산인지라 매우 아름답고 울창하였습니다.
김 진사 댁 마님이 치성을 드린 지 100일이 되던 어느 날 밤, 마님의 꿈에 신령님이 나타났습니다.
“마님, 들으시오. 그 동안 태봉에다 치성을 드린 정성이 하늘에 닿았습니다. 내일 아침 일찍 표주박을 들고 태봉산 밑으로 가 보시오. 맑고 싱그런 샘물이 솟을 것입니다. 그 샘물을 떠다 마시면 마님의 소원을 이룰 것이니 그리 아시오.”
흰 머리에다 희고 긴 수염을 단 신령님의 말은 계속되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소원만 이룰 것이니, 꼭 한 가지만 태봉을 향해 소원을 빌고는 샘물을 떠다 마시도록 하시오.”
깜짝 놀라 깨어 보니 꿈이었습니다. 김 진사 댁 마님은 며느리를 잠자리에서 몰래 깨워 가지고, 옥동자를 업고는 태봉산 기슭으로 갔습니다.
태봉산 기슭에 이르자 김 진사 댁 마님과 며느리는 태봉산을 향해 정성껏 빌었습니다.
‘이게 웬일인가?’
갑자기 조용하던 태봉산 기슭에서 샘물이 펑펑 솟는 것이었습니다. 김 진사 댁 마님과 며느리는 솟는 샘물을 표주박으로 떠 마시고는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하루가 지나자 신기하게도 김 진사 댁 며느리의 젖샘이 시원스레 터졌습니다.
“김 진사 댁 며느리가 태봉산 샘물을 마시고 젖샘이 솟았다면서?”
소문은 온 포천 고을에 퍼졌습니다.
이 소문이 퍼지자 고을 고을마다 젖이 부족하거나 젖이 나오지 않는 여인들이 구름과 같이 모여 들었습니다. 너도 나도 맑은 샘물을 마시며 소나무 숲이 우거진 태봉을 향해 두 손을 모아 빌었습니다.
그 후, 솔모루 마을은 태봉산과 젖샘물로 유명해졌습니다. 아무리 가뭄이 들고 흉년이 들어도 솔모루 마을 태봉산 젖샘은 마르지 않고 펑펑 솟았습니다.
솔모루 태봉산에서 솟는 샘물이 마르지 않고, 이 샘물을 마시면 젖샘이 솟는다는 소문을 들은 고을 원님은, 이 소문을 듣자마자 사람을 보내어 그 연유를 알아보게 하였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한 마디씩 하였습니다.
“조상 대대로 태봉산 기슭에다 소나무를 심고 키워서 정성을 들인 탓에, 마을 사람들에게 보답하는 샘물을 주신 게지요.”
“김 진사 댁 마님이 태봉산 신령님을 정성껏 모신 탓이지요.”
누구의 말이 옳은지는 알 수 없어도, 지금도 솔모루 마을 태봉산 기슭에는 젖샘이라는 깨끗한 샘물이 펑펑 쉬지 않고 솟아서 길손들의 목을 축여 주고 있습니다.
<김창종, 『소금집 딸』, 한국독서지도회, 1995>
【인용】포천의 설화(포천문화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