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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놀이터 ::【마포구 서울특별시 마포구 정보
서울특별시 마포구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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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6월
2005년 6월 13일
마포구의 관광, 여가문화자원
2005년 6월 3일
about 서울특별시 마포구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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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6.13. 23:51) 
◈ 마포구의 관광, 여가문화자원
목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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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관광, 여가문화자원

 

1.1. 관광자원

◈ 서울 월드컵경기장(2001년 12월 준공예정)
·경기장 건설개요 - 대지위치 : 마포구 상암지구(성산동 515번지 일원), 대지면적 : 216,712㎡ (65,555평), 건축면적 : 59,747㎡ (18,074평), 연면적 : 155,788㎡ (47,125평), 그라운드 : 천연잔디 2면 (68m×105m), 주·보조경기장 각 1면, 관람석 : 63,930석(일반관람석 61,101석, 언론보도석 2,024석, 귀빈석 805석) 지붕설치 : 90% (귀빈석과 언론 보도석은 100%), 주차장 : 2,735대 (부지내 1,099대, 남측부지 1,636대), 주요조경시설 : 자연형 연목, 전통정자, 분수마당, 야외무대, 자전거 도로, 산책로 조성 등
 
◈ 난지도
난지도는 마포의 서부지역에 위치하며 고양시와 경계를 이룬다. 오늘날 ‘난지도’하면 쓰레기산의 대명사나 버려진 땅으로 간주되고 있으나 본래 난지도는 풀밭 둘레가 22리(里)(9㎞)에 달했던 넓은 초원지대로 이루어진 섬이었다. 철따라 꽃이 피며 늙은 소가 송아지를 거느리고 대여섯 무리지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수만 마리의 겨울철새가 즐겨 찾던 철새와 동물들의 낙원이기도 했다. 난지도는 오리가 물 위에 떠있는 형상이라 하여 오리섬 또는 압도로, 혹은 ‘꽃섬’으로 불렸다고 전해지고 있다.
 
1970년대 말까지도 섬의 양쪽에는 갈대풀이 무성하여 고니떼가 많았다고 하며 수많은 오리떼가 이곳을 찾았고 또한 실개천에는 맑은 물이 흐르고 수양버들이 늘어섰다. 70여 가구가 들어서 있었고 주민들은 수수를 많이 재배했는가 하면 땅콩, 채소를 가꾸고 젖소 등 가축을 기르면서 생활했던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 특히 창전, 공덕지역, 수색지역 등 인근지역에 살던 토박이들은 어릴 적 이곳에서 갖가지 물고기를 잡고 여름철 더위를 피하여 수영을 하던 추억이 서린 곳이기도 하다. 또한 많은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 삼기도 하고 영화인들이 영화촬영 장소로 선택하기도 하여 낭만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섬이었다.
 
이러한 난지도 역시 한강변에 위치하여 한강에 큰물이 나면 난지도의 높은 지역만 물 위에 남고 모두 물에 잠기어 주민들은 대피소동을 벌여야만 했었다. 서울시는 1977년 1월 7일 한강변의 지도를 바꾸는 대역사인 난지제방축조공사를 착수했다. 19억 원이 투입된 이 공사에는 6개월 동안 하루 평균 5,000명씩 무려 70만 명의 취로인부들이 동원됐다. 이들이 손수레로 나른 모래만도 4톤 트럭 30만 대의 분량(120만㎥)이나 됐다. 마침내 1977년 7월 25일 길이 3,950m에 높이 7m, 폭 20m의 규모의 난지제방이 준공되었다. 이로써 난지도의 100여만평이 수해없이 옥토로 새롭게 탈바꿈 했으며 관광지역으로서도 각광 받을 수 있게 되었었다.
그러나 세상 일이란 참으로 묘한 것. 그토록 각광받던 난지도가 1978년 3월 18일 서울특별시 고시 제107호‘쓰레기 및 오물처리장 도시계획사업 실시계획 인가’에 따라 서울전역의 쓰레기 매립장으로 지정되어 각종 쓰레기가 반입되기 시작했다.
 
이후 1992년 10월 31일까지 약 15년 동안 서울시 전역에서 반입한 쓰레기로 인해 난지도 52만 9,000평은 해발 85m~90m의 거대한 쓰레기산으로 변해 버렸다. 난지도에 버려진 쓰레기는 약 1억 톤 규모로 부패하기 쉬운 생활쓰레기와 연탄재가 주종을 이뤘다. 이 기간 동안 난지도 주변에는 재활용품을 수집해 생계를 꾸려나가려는 재건 대원들이나 폐품수집원들이 몰려들어 발디딜 틈도 없었다. 한때는 4,000여 명 가량이나 되었다고 한다.
 
1992년 11월 1일부터 서울지역의 쓰레기는 김포수도권 매립지로 반입되었다. 이후 1993년 3월 19일 난지도 매립지는 완전 폐쇄됐다. 폐쇄 초기에는 쓰레기침출수와 악취 등 많은 문제점들이 있었으나 지금은 매립지 안정화작업이 추진되고 있어 난지도가 생명력을 되찾고 있다. 1996년부터 서울시가 매립지 복토 및 부지정비작업을 벌인데 이어 침출수와 가스처리시설 등을 설치해 그 성과가 현재 나타나고 있다.
 
난지도 정상에는 어디선가 날아든 풀씨들이 싹을 틔워 무성하고, 관목림이 숲을 이뤄 대자연의 위대한 질서가 잉태되고 있다. 또 시베리아 철새, 종다리, 메추라기 등과 날개 길이만 1.5m에 달하는 멸종위기의 맹금류인 수리부엉이가 날아들고 황조롱이와 각종 텃새들이 둥지를 틀어 자연의 먹이사슬 관계가 살아나고 있다. 난지도는 머지않아 다시금 난초의 향내가 퍼지는 생태공원으로서 월드컵과 함께 우리 곁으로 다가올 전망이다.
 
◈ 정구중 씨의 집
용강동 335번지에는 지난 1977년 3월 7일 서울시 민속자료 제17호로 지정된 한옥 한 채가 있다. 1920년에 지어진 이 한옥은 건평 71평, 대지 241평으로 정구중 씨의 사저이다. 이 가옥은 동향으로 배치된 구자형(口字形)집으로 안채, 행랑채, 별당이 따로따로 축조되어 있으며 안채 뒤에 있는 별당은 전형적인 ㄱ자 집이다.
 
이 가옥은 도시의 제약된 좁은 대지 안에 전통적인 안채에 별당채까지 갖추어 오밀조밀한 깊은 맛을 보여주는 것이 특징이며 1920년대 이후 한식주택의 면모를 보여주는 개량한옥으로서 보기드문 예이다. 이 집에 들어서면 넓지 않은 마당에 측백나무, 철쭉, 목련, 장미, 소철, 사철나무, 난초 등이 있어 운치를 더해주는데 이 집은 구한말 용강동의 부농인 이모씨가 무남독녀에게 주기 위해 당시 장안에서 이름난 4대 목수중의 한 사람인 연영달 씨를 시켜 지었다고 하며, 목재는 압록강 유역의 홍송과 백송을 뗏목으로 옮겨와 한강에 2년동안 잠겨 놓았다가 1년간 건조한 후 못을 전혀 사용치 않고 지었다는 것이다.
 
◈ 절두산
지금의 양화대교 북단과 당산철교 북단 사이에 있는 절두산은 불쑥 솟은 봉우리의 형상이 누에가 머리를 든 것 같다해서 잠두봉이라 불렸다. 양화나루 바로 위의 잠두봉은 한강의 돛단배와 어울려 한폭의 그림을 연상케 할 정도로 그 경치가 빼어났다.
 
이렇게 평화로웠던 양화나루는 조선말기 대원군이 집권하면서 엄청난 사건의 소용돌이 속에 휘말리게 된다.
 
병인년 9월(1866년) 프랑스 로즈제독이 군함 3척을 이끌고 한강을 따라 양화나루를 거쳐 서강에 도착했다가 10월13일 강화도에 다시 나타나 그곳을 점령해 버렸다. 크게 진노한 대원군은 ‘화친을 허락함은 나라를 파는 것’이라며 조선팔도에 서양 오랑캐를 물리치고 나라를 지키라는 영을 내리고 프랑스군함이 거쳐간 양화나루를 새로운 형장으로 지정했다. 그리고 서양 오랑캐가 더럽힌 한강물을 서양에서 전파된 천주교도의 피로 깨끗이 한다며 천주교 신도인 이의송·김엇분 부부와 아들 붕익을 참수했다. 대원군이 물러간 1872년까지 이곳에서 목이 잘린 천주교 신자들은 무려 2천여 명에 다다랐다. 특히 구한말 개항을 부르짖던 풍운아 김옥균이 중국에서 살해돼 ‘대역부도옥균(大逆不道玉均)’이라는 커다란 깃발과 함께 이곳에서 효수되기도 했다. 이때부터 잠두봉, 용두봉, 가을두, 들머리 등 아름다운 이름을 가졌던 이곳은 ‘절두산’이란 무시무시한 이름으로 바꿔 불려지게 됐다.
 
지난 1984년 5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한국방문 첫날 이곳을 찾았을 정도로 한국천주교의 순교성지로 서울의 명소가 되었으며, 문화관광부에서는 양화나루와 잠두봉을 국가지정문화재(사적) 제399호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다.
 
지난 1966년 천주교측에서는 병인순교 1백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절두산순교기념관을 세웠다. 이곳에는 김대건, 남종삼, 허계임 등 순교성인 28위의 유해가 안치돼 있으며 김대건 신부의 친필서한과 황사영 백서, 한·불조약 문서 등이 보관돼 있다.
 
◈ 외국인 묘지
합정동 로터리 부근 양화로의 외국인 묘지공원은 매년 종교계 지도급인사와 사학자, 작가 등 1만여 명이 찾고 있는 사적지 중의 한 곳이다. 이곳 묘지는 미국 북장로교회의 의료선교사로서 고종의 시의이기도 했던 헤론이 1890년 급환으로 세상을 떠 경관이 아름다운 양화진 언덕에 처음 묻힘으로써 오늘의 외국인 묘지공원의 터를 잡게 되었다.
 
이곳에는 헤론 선교사를 비롯, 연세대를 세운 언더우드 박사 가족, 이화여대 명예총장을 지낸 아펜젤러 가족 묘가 있고,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한 베델 등 한국에 신학문을 소개한 선교사, 외교관 등 4백80여명이 묻혀있다. 미국인 선교사 헐버트같은 사람은 모국에서 사망했으면서도 ‘이곳에 묻히고 싶다’는 유언에 따라 안장됐으며, 1891년에는 국내 최초의 결핵퇴치 선구자이자 크리스마스 씰을 보급한 셔우드·흘 박사도 유언에 따라 이곳에 묻힘으로써 사적지로 시민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고 있다.
 
◈ 마포8경
옛날부터 마포는 한강변에 위치하고 있어 그 어느 지역보다 주변 절경이 뛰어났다. 따라서 마포의 한강변과 인근 명소, 유적 등을 한데 어울린 마포8경(또는 서호8경)이 유명했다.
 
마포8경은 ①용호제월(龍虎霽月) : 용산강 비갠날 저녁 하늘에 달뜬 모습 ②마포귀범(麻浦歸帆) : 마포, 서강나루로 돌아드는 돛단배 모습 ③방학어화(放鶴漁火) : 방학교부근의 샛강에서 밤을 밝히는 고깃배의 불빛모습. 지금의 63빌딩과 노량진 사이 ④율도명사(栗島明沙) : 밤섬 둘레 길고 맑은 모래사장 모습 ⑤농암모연(籠岩暮煙) : 농바위 주변의 많은 집에서 밥지을 때 연기 오르는 모습 ⑥우산목적(牛山牧笛) : 와우산에서 목동들이 부는 피리소리 ⑦양진낙조(楊津落照) : 양화진 하늘을 붉게 물들인 석양 노을의 장엄한 모습 ⑧관악청람(冠岳淸嵐) : 맑게 개인날 관악산 허리를 감도는 아지랑이 모습 등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마포8경 대부분의 절경들은 사라지거나 그 명맥만 이어오고 있다. 밤섬은 철새의 도래지가 된 지 오래이며, 농바위는 서강대교 건설 때 유실되었다. 또한 마포8경 주변의 마을도 크게 변화되었다. 당시 마포8경의 절묘한 풍광을 조망할 수 있던 지점이 지금의 상수동 사무소 북쪽 고지대였으며 일대에는 예전부터 시문을 읊던 30여 채의 많은 정자와 별장이 세워져 있었다. 이중 영복정은 서강 북쪽 언덕에 세워져 있는 양녕대군 별장이었으며, 강변도로 진입로 부근에 있었던 평초정(坪楚亭)은 구한말 을사오적 중의 한사람인 박재순의 아흔아홉칸짜리 저택이었다. 또한 상수동 326-26에 위치한 강변에는 고종때 유명했던 내시 나익진이 세웠다는 내시별장 영은정(永恩亭)이 최근까지 현존했으나 1971년 강변도로 건설로 대부분 철거됐다. 이외에도 마포8경과 함께 유명했던 풍벽정, 호인정, 연정, 소파정, 팔관정, 창랑정 등 여러 정자가 즐비했지만 지금은 그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다.
 
◈ 삼개포구
삼개포구는 현재의 마포에 대한 옛 이름이다. 마포는 양화진과의 사이에 있는 서강과 더불어 조선초부터 한강하류의 항구로서 그 역할이 매우 컸다. 서울의 노량, 용산, 마포, 양화진과 북한강의 가평, 청평, 춘천 및 남한강의 여주, 목계, 충주까지 배의 왕래가 매우 빈번하여 중부지방 수운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마포나루는 새우젓 항이라고도 불렸는데 이는 서해안에서 잡은 새우젓을 비롯한 어물이 마포나루로 운반되어 이곳을 통해 팔려나갔기 때문이다. 지금 용강시장 뒤쪽이 1960년대초까지 새우젓 배가 만선기를 펄럭이며 출입하던 포구였다. 전국 농수산물의 집산지였던 마포항은 금세기 초만 해도 오가는 배가 1,000여 척에 이르렀다. 전국 농수산 물화의 집산지로서 수로교통의 실질적인 중심지의 역할을 담당했던 마포항은 6·25동란 이후 임진강과 한강이 합류되는 지점에 휴전선이 설치되고, 행주대교, 서강대교, 마포대교가 세워지면서 큰 배가 운행될 수 없게 되었다.
 
◈ 공덕리 금표
공덕동 로터리에 있으며, 이곳으로부터 120보 내에 공덕리 별장(대원군의 아소정)이 있다는 것으로 속뜻은 대원군이 거처하는 아소정이 있으니 함부로 접근치 말라는 것이었다.
 
◈ 염전머릿골
옛부터 마포는 서해와 뱃길이 연결되어 있어 소금배의 왕래가 많았을 뿐만 아니라, 지금의 염리 파출소 앞까지 배가 들어와 소금을 풀어 거래하였고, 염동(지금의 염리동)에는 소금장수가 많이 살았다.
 
◈ 서강나루
한수(漢水) 5강(뚝섬강, 노량강, 용산강, 마포강, 서강)중 서강의 지형은 배가 닿기에 알맞아 각 지방의 공미를 하역하던 중요한 나루터였다.
 
◈ 양화진 나루터
양화진(양화도) 나루터는 서울과 제물포, 강화 방면을 잇는 나루터로 영조 30년(1754) 어영청에 속하여 군사 100여 명과 배10척을 두어 방비하는 등 교통에 이용했다.
 
◈ 밤섬주민생활터
밤섬에는 마씨, 판씨, 석씨 등 희성이 많았는데, 한강물을 식수로 하여 살았다. 배 만드는 곳이 여럿 있었고, 부군신, 삼불제석, 군웅신 등을 모시는 신당이 있었다.
 
 

1.2. 관광시설

◈ 서교관광호텔 마포구 서교동 354-5, ☎ (02) 333-7771, 117실
◈ 홀리데이인서울호텔 마포구 도화동 169-1, ☎ (02) 717-9441, 362실
◈ 서서울관광호텔 마포구 합정동 381-17, ☎ (02) 332-1122, 71실
 
 

1.3. 관광코스

◈ 제1코스
서활인서터 → 선통물천 → 공덕리금표 → 아소정터 → 염전머리골 → 점검청 → 절두산 천주교성지 → 양화진 나루터 → 정몽주 동상 → 망원정 → 2002년 월드컵경기장 → 광흥창터 → 서강나루 → 토정 이지함 선생 집터 → 삼개포구 → 마포전차종점 → 독립운동 유적지
 
◈ 제2코스
절두산 천주교성지 → 망원정 → 2002년 월드컵경기장 → 난지도 생태공원
 
 

1.4. 관광안내소

◈ 마포구청 문화체육과 ☎ (02) 330-2411∼3, 인터넷 http : //www.mapo.seoul.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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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일: 2021년 1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