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군은 경기도 동부에 위치하고 서울특별시와는 불과 40㎞거리이며 서울 동쪽에 위치하고 북쪽은 가평군, 서쪽은 광주군, 남쪽은 여주군에 닿아 있다. 양평은 광주산맥 영향권 아래 있으므로 70% 정도가 산야이고, 30% 정도가 농경지이다. 남한강과 북한강이 합류되는 곳으로 산 좋고 물 맑은 전원 도시지역으로는 제일이다. 동양에서 제일 크다는 은행나무가 있는 용문산 산채는 예로부터 수라상 진상품이다. 서울에서 강원도 쪽으로 갈 때 한강을 끼고 돌아가는 양수대교와 용담대교 위에서 강바람을 쐬는 기분 가히 절경이다.
예전에는 임산물과 농경으로 주업을 이루었으나 이제는 용문산과 남한강, 북한강과 같은 절호의 자연을 이용하여 관광화에 힘쓰고 있다. 맑은 물 사랑, 애향심은 양평군의 자랑거리다.
고대 청동기 한강유역 지대인 문호리, 양수리, 양근리, 양덕리, 상자포리 등에서 무문토기(無文土器)가 발견 됨
고구려에서 양근군, 향양군으로 부름. 신라 35대 경덕왕이 빈양으로 개칭
고려 1018 (현종 9년); - 여주에 딸린 현에서 양근현으로 개칭 광주로 옮김
1257 (고종 44년); - 영화로 개칭
1269 (원종 10년); - 악화현으로 개층
1356 (공민왕 5년); - 양근군으로 승격
조선 1658 (효종 9년); - 지평현에 편입
1668 (현종 9년); - 양근군으로 승격
1726 (영조 4년); - 현으로 강등
1741 (영조 17년); - 양근군으로 복구
1776 (영조 52년); - 현으로 강등
1785 (정조 9년); - 양근군으로 복구
1908 (순종 융희 2년); - 양근과 지평을 합병 양평군으로 개칭
근대 1914 - 1914년 4월 1일 군면 폐합에 따라 남종면을 광주군에 편입
1938 - 1938년 4월 1일 갈산면을 양평면으로 개칭
1942 - 1942년 10월 1일 설악면을 가평군에 편입
현대 1963. 1 - 법률 제1175호로 여주군 개군면을 양평군에 편입
1973. 7 - 법률 제6542호로 서종면 삼회리, 노문리 일부를 가평군에 편입
1979. 5 - 대통령령 제9409호로 양평면을 양평읍으로 승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