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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재완의 여행을 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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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2품 소나무의 어제와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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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주사(法住寺) 보은군(報恩郡) 소나무(松) 속리산(俗離山) 정이품소나무(-)
【여행】
(2023.01.25. 13:34) 
◈ 정 2품 소나무의 어제와 오늘
소나무(松. Pine) 하면 얼른 떠오르는 울진 소광리 대왕 소나무(아래 좌측, 연합뉴스 사진) 과 세금 내는 예천의 석송령(石松靈, 아래 우측, 이호신 화가님) 그리고 속리산 정 2품송(正2品松)이 생각납니다. 다녀온 정 2품 소나무에 대해 정리해 봅니다.
소나무(松. Pine) 하면 얼른 떠오르는 울진 소광리 대왕 소나무(아래 좌측, 연합뉴스 사진) 과 세금 내는 예천의 석송령(石松靈, 아래 우측, 이호신 화가님) 그리고 속리산 정 2품송(正2品松)이 생각납니다. 다녀온 정 2품 소나무에 대해 정리해 봅니다.
 
 
왕위를 삼촌 세조에게 무력으로 찬탈 당한 비운의 단종, 그의 어머니 현덕왕후의 꿈속 저주로 인해 심한 피부병으로 고생했던 세조(재위 1455~1468)는 불덕(佛德)으로 업(業)을 씻고자 1464년(세조 10) 2월에 속리산 속리사(법주사)와 복천암(復泉庵)에 다녀왔다.
▣정 2품송과 법주사의 전설
세조의 행차가 말티고개를 넘어 복천암으로 향하는 길에 소나무 밑을 지나게 되었다. 그때 세조가 가지에 “연(輦, 임금이 타던 가마)이 걸린다”고 소리치자 소나무가 가지를 들어 올려 가마를 지나가게 했다. 세조가 돌아갈 때에도 이 소나무 밑에서 비를 피하게 되었는데, 이에 세조가 소나무에 정 2품(현재 장관급)의 벼슬을 내렸다고 하는데 정작 왕조 실록에는 기록이 없기에 전설이라 한다.
그리고 법주사와 복천암에 다녀와 병이 치료되자 세조가 크게 기뻐하며 복천암 부근에 있는 돌기둥을 스님들이 옮겨가는 곳까지 법주사의 땅으로 삼도록 명하였다. 이에 스님들이 돌기둥을 끌어당겨 법주사가 있는 사내리를 지나 나아갔는데, 정 2품송이 있는 상판리 부근에 와서 탈진하였다. 이로써 돌기둥이 있는 곳까지 모두 법주사의 땅이 되었고, 법주사는 넓은 땅에 정 2품 소나무까지 함께하는 큰 사찰이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정조대왕 화성 행차 재현(2022. 10월)에 보이는 연(輦)
 
1464년 당시 가마에 거치적거릴 정도로 가지가 굵은 소나무라면 둘레가 1m는 되어야 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정도 굵기로 자란 정2품송 현재 나이를 약 600살 이상으로 본다고 한다.
정 2품송의 보호를 위하여 1960년대부터 썩은 가지를 제거하고 약한 곳을 시멘트로 보강하는 외과수술이 시행되었고, 1982년에는 솔잎혹파리 피해 방지를 위하여 높이 18m가 넘는 방충망까지 덮어씌우는 노력을 기울였지만, 1974년 주변 도로포장공사 때 발생한 부주의한 복토(覆土)로 인해 심각한 피해도 있었다. 1989년에 줄기까지 덮었던 50cm 가량의 이 흙을 제거했지만 이미 나무 밑동이 회복 불능으로 썩어 옴폭 파여 버렸고, 그 후 강풍과 폭설의 피해로 굵은 가지가 왕창 부러져 나가 우람했던 모습의 상당 부분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정 2품송은 천연기념물 103호로 높이 15m. 가슴 높이 둘레 4.5m, 가지 길이 동쪽 10.3m, 서쪽 9.6m, 남쪽 9.1m, 북쪽 10m로 표시되어 있다. 노거수(老巨樹)로 점점 세월의 무게를 감당하기 어려울 것 같아 버팀대를 세우고 후계목을 키우고 있지만 제모습을 잃어 안타깝다. 2019년 태풍으로 강화도 연미정의 500년 된 느티나무는 쓰러졌는데 정 2품송은 이만하길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하는지...
▼ 2022년 9월 현재 정 2품송으로 부러진 가지를 그대로 보여준다.
 
 
▼1926년 4월 늠름하던 소나무 -동아일보 사진-
 
▼일제 강점기
 
▼1980년대 삿갓 모양의 정 2품송 -보은 군청 사진-
 
☞ 잎이 하나면 전나무, 둘이면 소나무, 셋이면 리기다 소나무 ,다섯이면 잣나무입니다.
★보은 서원리 소나무(천연 기념물 지정)
ⓐ나이는 약 600살 정도, 높이 15.2m, 뿌리 근처의 둘레 5.0m, 줄기는 84㎝ 높이에서 2개로 갈라졌으며, 전체적으로 우산모양을 하고 있다.
ⓑ법주사 입구의 정이품송과는 부부사이라 하여 ‘정부인송’이라고도 불리운다. 정이품송의 외줄기로 곧게 자란 모습이 남성적이고, 이 나무의 넓은 우산모양으로 퍼진 아름다운 모습이 여성적으로 비유되기 때문이다.-문화재청-
 
★소나무에 대하여 https://blog.naver.com/jawkoh/220228699547
■ 세조 임금이 오대산 상원사와 속리산 법주사에 다녀온 기록
☞1462년( 세조 8) 음 11월 5일
상원사에 거둥(擧動)할 때 관음보살이 현상(現相)하자 살인·강도 이외의 죄를 사면하다.
☞1464년(세조 10) 음 2월 28일
법주사(속리사)와 복천암에 행행(行幸)하고 쌀·노비·전지 등을 하사하다.
☞1466년( 세조 12) 윤 3월 17일
상원사에 거둥하다.
▼법주사의 가을
 
▼복천암(福泉庵)
 
■ 속리산(俗離山)
속리산은 태백산맥에서 남서방향으로 뻗어 나오는 소백산맥 줄기 가운데 위치하고 있으며, 남북으로 백두대간이 지나고 천왕봉에서 한남금북정맥이 분기하고 있다. 행정구역상으로는 충청북도 보은군, 괴산군과 경상북도 상주시의 경계에 있는 산이다.
속리산은 오래전부터 광명산(光明山)·지명산(智明山)·미지산(彌智山)·구봉산(九峯山)·형제산(兄弟山)·소금강산(小金剛山)·자하산(紫霞山) 등으로 다양하게 불렸는데, ‘속리(俗離)’라는 지명은 ‘속세를 떠난다’는 뜻으로 『삼국유사』에 기록된 진표율사와 관련된 일화에서 연유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속리산을 구봉산이라고도 하며, 신라 때는 속리악(俗離岳)이라 불렀다고 되어 있고, 『문헌비고』에는 이명(異名)으로 소금강(小金剛)이라 부른다고도 기록하고 있다.
한편, 최치원은 헌강왕 12년(886)에 속리산의 경치를 구경한 뒤 “道不遠人人遠道 山非離俗俗離山(도는 사람을 멀리하지 않는데 사람은 도를 멀리 하고/산은 속세를 떠나지 않으나 속세는 산을 떠나는구나)”라며 산 이름의 속뜻을 시로 풀기도 하였다. 또한 정감록의 십승지(十勝地, 10곳의 피난처)에 보은 속리산이 포함되어 있다
주요 봉우리로는 법주사를 중심으로 해발 1,057m로 최고봉인 천왕봉을 비롯한 비로봉, 길상봉, 문수봉, 보현봉, 관음봉, 묘봉, 수정봉 등과 문장대, 입석대, 경업대, 배석대, 학소대, 신선대, 봉황대, 산호대 등이 있다. 이 중에서 수정봉과 관음봉은 각각 용화보전(미륵신앙)과 대웅보전(화엄신앙)의 배경이 되어 법주사 특유의 가람배치와 맞물려 지형과 교리적 해석이 일치하도록 결합되어 있다.
출처: 민족문화 대백과, 국립중앙박물관, 조선왕조실록, 동아일보, 보은 군청, 구글, 위키백과, 네이버,문화재청,한국의 산사
 

 
※ 원문보기
법주사(法住寺) 보은군(報恩郡) 소나무(松) 속리산(俗離山) 정이품소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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