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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蒙古]) 사슴돌 유적 암각화(岩刻畵) 임실군(任實郡) 판석묘(板石墓) # 상가리 유적 # 알타이산 # 이일걸 # 적석총
【여행】
(2018.07.17. 12:00) 
◈ 유라시아 고대문화의 심장, 몽골 유목문화
[몽골여행기 7] 몽골은 한국문화의 기원 유추할 수 있는 열쇠일 수도

몽골알타이 답사단의 12일간(6.17~6.28)에 걸친 여행기를 연재합니다. 사막과 초원의 바다를 건너 거친 대자연이 어우러진 땅 몽골! 척박하고 불편한 땅에 살면서도 따뜻한 미소를 잃지 않는 유목민들. 우리 민족의 뿌리를 찾기 위해 3000㎞ 이상의 긴 여정을 함께한 34명의 답사단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 기자말
▲ 거대한 규모의 적석총 앞에서 천제를 올리는 몽골알타이 답사단 일행들. 몽골유적들을 찾아 나선 10일간의 여행기간에 만난 적석총 중 최대규모였다. ⓒ 오문수
 
"우리나라에는 고인돌적석총 무덤이 많이 있습니다. 특히 고구려 적석총 무덤이 군집을 이뤘던 환인 지역은 수몰되었지만 집안 부근에는 아직도 거대한 고구려 적석총 무덤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서울 석촌동에도 아직 백제의 적석총이 다수 남아 있어요. 이와 같은 적석총을 보고 있노라면 한민족의 시원과 관련하여 돌무지 무덤의 유래가 매우 궁금합니다. 나아가 수백 개의 적석총 피라미드가 중국 북부와 몽골 지역에 산재한다는 기사를 보고 몽골알타이 답사에 나섰습니다."
 
34명의 몽골 알타이 답사단 단장을 맡은 이일걸(한국간도학회 회장) 박사의 얘기다. 그는 알타이 지역을 답사한 후의 계획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 알타이산에 오른 몽골알타이 답사단 이일걸 단장 모습. 한국간도학회 회장이기도 하다 ⓒ 오문수
 
▲ 동행한 IN기술대표 박인석씨가 적석총을 실측하고 있다 ⓒ 오문수
 
▲ 몽골서부 알타이 지역의 적석총과 거석문화의 실체를 조사해 학계에 보고
▲ 몽골유목민의 역사와 문화체험 후 몽골과 한국이 가진 전통문화관계 규명
▲ 몽골지역 주요 박물관을 견학 후 답사단에게 전문지식을 향유할 기회 부여
 
이일걸 회장은 간도협약으로 쪼그라든 한반도 역사와 동북공정문제, 식민사학에 경도된 일부 역사관을 안타까워하며 그동안 왜곡되고 폄하된 우리 역사를 바로잡을 수 있기 바랐다.
 
몽골의 판석묘, 적석총, 암각화, 사슴돌은 청동기와 초기 철기시대 대표적 유물
 
몽골 옛수도인 카라코룸을 떠나 알타이로 향한 답사단은 13세기 몽골군이 서역정벌을 떠난 대초원길을 따라 서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나담축제에 우승한 명마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말사원을 떠나 서쪽으로 향하는 눈앞에는 사방을 둘러봐도 인가가 보이지 않고 이글거리는 태양만 빛나고 있었다.
 
몽골에 사는 교민이 대초원길이라고 하는데 필자의 눈에는 사막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바람에 모래가 날리는 평원에는 말라비틀어진 풀 몇 포기만 듬성듬성 나있었기 때문이다. 오른쪽 멀리 한가이 산맥의 희뿌연 그림자만 보이고 피곤해진 일행의 눈꺼풀이 감겨올 때 선두차가 멈췄다. "양떼들이 풀을 뜯기 위해 달려가는 곳에 뭔가가 있다"는 것.
 
동북아시아 청동기시대를 대표하는 판석묘
 
차를 내려 듬성듬성 풀 몇 포기가 자라는 곳으로 다가가자 양들이 도망간다. 다가가보니 풀 사이로 넓적한 돌들이 서있었다. 이른바 판석묘다. 몽골과학아카데미 고고학연구소에 근무하는 체벤도르지가 쓴 <몽골의 청동기와 초기 철기시대에 대한 연구>에는 판석묘에 대한 설명이 잘 나와있다.
 
▲ 양떼들이 지나간 초원에는 판석묘가 있었다 ⓒ 오문수
 
▲ 판석묘 규모를 실측하고 있는 답사단원들 ⓒ 오문수
 
▲ 판석묘로 추정되는 돌위에 그림이 그려져있었다. 그림내용을 확인하기 위해 임실문화원 최성미 원장이 탁본을 뜨고 있다. ⓒ 오문수
 
 
판석묘는 장방형의 묘역 둘레에 석판을 둘렀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으로 묘역 내부에는 석곽이 설치된다. 판석묘의 입지는 돌과 바위가 많은 곳, 비교적 높은 산과 언덕, 산의 남쪽 기슭, 넓은 초원의 네 가지 입지로 나뉜다.
 
 
일행이 살펴본 판석묘는 넓은 초원에 있는 것으로 도로변에 있어 답사단의 눈에 띄었다. 판석묘에 대한 규모와 위치를 기록하던 일행은 땅바닥에 놓인 돌판에 이상한 문양이 보여 탁본을 떴다. 탁본은 한국에 돌아와 조사연구 후 학계에 보고할 예정이다.
 
몽골이 서역정벌에 나섰던 초원길에 다양한 형태의 적석총 수백 기 존재
 
▲ 답사단이 조사를 한 적석총 중앙부분이 움푹패어 있다. 발굴이나 도굴의 흔적으로 보인다 ⓒ 오문수
 
▲ 적석총을 실측한 후 자료를 기록으로 남기는 일행들 ⓒ 오문수
 
13세기 몽골군이 서역정벌의 전초기지로 여겼던 알타이를 떠나 울란바토르로 돌아오는 대초원길에는 수백기의 적석총이 있었다. 시간이 없고 답사기간도 짧아 모두 조사할 수가 없었지만 눈에 보이지 않은 적석총들은 셀 수 없이 많았다.
 
'타래'라고 불리는 지역에서 본 적석총은 답사단이 열흘간 본 것 중 규모가 가장 컸다. 높이 5m, 중심축 무덤 지름 22.4m, 외륜 95m로 방위각 305도이다. 정상부위에 올라가 보니 중앙부가 움푹패여 발굴되거나 도굴된 흔적이 보였다. 적석총이 위치한 곳에서 사방을 둘러봐도 가장 가까운 산이 4㎞정도 떨어져 있고 수십만개의 돌을 쌓아 만든 무덤으로 보아 권력자 무덤인 걸로 추정된다.
 
몽골에서 히르기수르라 불리는 적석총은 아주 복잡하고 특이한 석축 구조물로 유구 중앙에 돌무더기가 있고 그 바깥쪽으로는 원형과 방형 석렬, 그리고 그것을 따라 배치한 부속유구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 오른쪽 아래에 다양한 몽골적석총 모습이 보인다. 몽골국립박물관에서 촬영한 다양한 몽골적석총 모습으로 오른쪽 아래 그림속에 12가지 형태가 보인다. ⓒ 오문수
 
몽골국립박물관 전시실에는 여러 가지 형태의 적석총을 그린 그림이 있었다. 사진을 촬영하려면 돈을 지불해야 하지만 신분을 밝히고 뉴스에 사진 자료를 사용하고 싶다고 하니 허락해 줬다. 박물관 자료에 따르면 12가지 형태의 적석총들이 있다.
 
 
몽골 전국토에 퍼져있는 적석총은 청동기 시대의 가장 흔한 기념물로 크기와 형태 구조가 다양하다. 사람의 부장품들이 발견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동물의 것들이다. 작은 고분들 속에서는 말 두개골이 태양이 떠오르는 쪽을 향해 배치돼 있다.
 
 
적석총은 규모가 커서 발굴조사에 많은 인력과 시간을 필요로 하지만 지금까지 고고학적으로 많은 정보를 제공하지 못했던 관계로 본격적인 조사가 이루어지지 못했다고 한다. 발굴 조사된 적석총에서는 소수의 유물만 발견되었는데 이는 이미 도굴되었거나 처음부터 부장품 없이 매장한 풍습과 관련이 있을 수 있다고 한다.
 
징기스칸은 자신의 죽음과 무덤이 알려지는 것을 극도로 꺼려 자신의 묘에 아무런 표시도 하지 말고 아무도 모르게 장례를 준비하라는 유언을 남겼다. 때문에 장례 행렬을 본 사람들과 무덤을 만든 일꾼, 그들을 지키던 군사들까지 모두 죽음을 면치 못했다고 한다.
 
 
용감한 전사를 상징하는 사슴돌
 
▲ 답사단 일행이 발견해 탁본을 떴던 사슴돌 모습으로 28수 별자리와 사슴, 말 두마리, 멧돼지 등의 그림이 보인다. 대규모 적석총 앞에 세워져 있었다 ⓒ 오문수
 
▲ 몽골알타이 답사단 일행이 적석총을 조사하자 인근에 있던 유목민들이 다가와 무슨 일인가 물었다. 몽골군이 서역정벌에 나섰던 대초원길에는 수많은 적석총들이 널려있었다 ⓒ 오문수
 
몽골지역 청동기와 초기 철기시대의 대표적 유적 중 하나는 사슴돌이다. 체벤도르지는 사슴돌에 새겨진 그림을 잘 설명하고 있다. 답사단이 울리아스타이를 떠나 몽골수도 울란바토르로 향하던 도중에 만난 사슴돌에는 체벤도르지가 지적한 내용들이 선명하게 그려져 있었다. 다만 28개의 별자리를 "일렬의 점"이라고 설명한 부분에 관해서는 양국학자들이 논의할 필요가 있다. 동양천문학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추측되기 때문이다.
 
▲ 전라북도 임실 소충사에는 28수 별자리를 새긴 비석이 있다. 소충사 맨 위에는 이석용 의병장 묘가 있고 그 아래에 28의사 합장묘가 있다. 28의사 비석 전면을 보면 의병 하나하나의 이름과 함께 28수 별자리를 각각 하나씩 배당해 그려놓고 있다. 이는 의병들의 숭고한 기개와 희생을 천문의 질서 속에 안치해 영원한 별들처럼 기려지기를 기원함이다. ⓒ 오문수
 
▲ 전라북도 임실군 상가리에는 윷판암각화가 있다. 상가리 유적을 조사한 학자의 설명에 의하면 윷판은 28수 별자리와 관련이 있다고 한다. 상가리 윷판암각화를 학계에 최초로 보고한 임실문화원 최성미(왼쪽) 원장과 임실군문화해설사 강명자씨가 상가리 윷판유적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오문수
 
전라북도 임실에 소재한 소충사에는 무덤에 28수 별자리를 표기한 비석이 있고 임실 상가리 바위에 그려진 윷판유적에도 28수 별자리를 의미하는 윷판그림이 있기 때문이다. 체벤도르지가 설명한 사슴돌에 관한 설명이다.
 
 
사슴돌은 네 면이 있는 길쭉한 돌을 가공하여 평평한 면을 상중하 세 부분으로 나눠 상부에는 원형을, 바로아래에는 일렬의 점을 새긴 후, 중앙부에는 사슴을 사실적으로 새긴다. 하부에는 허리띠를 새긴 후 여러 종류 무기를 걸어 놓은 상태로 표시한 석상을 사슴돌이라고 한다. 사슴돌에는 선사시대 전사들이 사용하던 무기인 단검, 손칼, 부싯돌, 투부, 활과 화살통, 창, 방패, 거울 등이 표시되어 있다. 사슴돌 중앙부에 새겨진 사슴 문양 사이에는 말, 표범, 산양, 멧돼지 등의 동물 문양도 새겨져 있다.
 
 
몽골 선사시대 유적에 대한 연구는 한국고고학이 유라시아로 가는 관문역할을 한다. 양국학자들의 심도 있는 연구는 한국문화의 기원이 어디에서 연유했는지를 풀 수 있는 열쇠가 될 수 있다.
몽골([蒙古]) 사슴돌 유적 암각화(岩刻畵) 임실군(任實郡) 판석묘(板石墓) # 상가리 유적 # 알타이산 # 이일걸 # 적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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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오문수 oms114kr@daum.net /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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