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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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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6월
2019년 6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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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악장     이완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2019.06.23. 00:55 (2019.06.23. 00:54)

【학습】문덕곡(文德曲)

1393년(태조 2) 정도전(鄭道傳)이 지은 송도가(頌禱歌). 칠언 한시에 토가 달린 4장 6행의 현토체이다. ≪태조실록≫ 권4 태조 2년 7월조와 ≪삼봉집 三峯集≫에 한시가 전하며, ≪악학궤범≫에는 현토(懸吐)된 가사가 전한다.
법궁(法弓)이 유엄심구증(有嚴深九重) 하시니
일일만기분기총(日日萬機粉其叢)하샷다
군왕(君王)이 요득민정통(要得民情通)하야
대개로달사총(大開路達四聰)하시다.
개언로군불견(開言路君不見)가
아으 아후지덕(我后之德)이 여순홍(與舜興)하샷다. 개언로장
 
(출처 : 동아대백과사전)
 

 

1. 요점 정리

• 작가 : 정도전
• 형식 : 칠언한시에 토가 달린 4장 6행의 현토체, 개언로(開言路)·보공신(保功臣)·정경계(正經界)·정례악(定禮樂)의 4장
• 주제 : 태조의 문덕을 찬양
 

2. 이해와 감상

1393년(태조 2) 정도전(鄭道傳)이 지은 송도가(頌禱歌). 칠언 한시에 토가 달린 4장 6행의 현토체이다. ≪태조실록≫ 권4 태조 2년 7월조와 ≪삼봉집 三峯集≫에 한시가 전하며, ≪악학궤범≫에는 현토(懸吐)된 가사가 전한다. 조선창업 후에 태조의 문덕(文德)을 찬양하고자 〈몽금척 夢金尺〉·〈수보록 受寶蘿〉과 함께 지어진 노래이며 그 뒤 악장으로 불렸다.
 
이 노래는 개언로(開言路)·보공신(保功臣)·정경계(正經界)·정예악(定禮樂) 등 4장으로 되어 있다. 개언로장에서는 태조가 민정을 파악하고자 언로를 크게 열고 널리 여론을 청취함으로써 그 덕이 순(舜)임금과 같다고 하였다. 보공신장에서는 꾀와 힘을 다하여 조선창업에 공을 세운 신하들을 잘 보살피는 무궁한 덕을 읊었다.
 
정경계장에서는 고려시대에 무너진 토지의 경계를 바로잡고 널리 골라 창고가 꽉 차게 되어 백성들이 편안히 지내게 된 치덕을 노래했다. 정예악장에서는 정치의 요체가 되는 예악을 새로 정하여 백성들로 하여금 질서 바르고 화평하게 한 덕을 읊고 있다.
 
한시의 압운(押韻)을 보면, 제1·2장은 상평성(上平聲) 동운(東韻)을 취하고 있다. 제3장은 하평성(下平聲) 우운(尤韻)을, 제4장은 입성(入聲) 통운(通韻)을 취하고 있다. 즉 절구운(絶句韻)이 아니라 각 장 매구운(每句韻)으로 되어 있다. 따라서, 〈문덕곡〉은 압운과 평측으로 볼 때 칠언절구가 아니라 칠언고시(七言古詩) 내지 칠언단시(七言短詩)이다. 그리고 매구운을 쓴 것으로 보아 당초부터 의도적으로 지어진 노래의 가사임을 알 수 있다.
 
각 장의 6행 중 제1∼4행은 전대절(前大節), 제5·6행은 후소절(後小節)의 성격을 띠고 있다. 제5행 앞에는 ‘개언로군불견(開言路君不見)가’, ‘보공신군불견(保功臣君不見)가’, ‘정경계군불견(正經界君不見)가’, ‘정예악군불견(定禮樂君不見)가’ 등의 전렴(前斂)이 온다. 제6행 앞에는 ‘아으’라는 감탄구가 오는 것이 특징이다.
 
〈문덕곡〉은 처음에는 한시였다가 후에 무악화(舞樂化)되어 춤과 함께 노래되면서 무악에 맞추기 위하여 현토를 수반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 춤은 춤이라기보다 노래를 부르기 위한 정재(呈才)라 할 수 있다. ≪태조실록≫에 의하면 정도전이 태조의 명에 따라 춤을 추었다는 기록이 있으나, ≪악학궤범≫의 성종조 향악정재도의(鄕樂呈才圖儀)에 비로소 무의(舞儀)가 보인다.
 
그러나 춤의 구성이 성기고 소박하며, 의물(儀物)을 사용하지 않는 점으로 보아, 왕이 환궁하는 날에 그 대가(大駕)를 맞을 때 길에서 춤추며 노래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본격적인 정재라고 보기에는 미흡하다.
 
성종 이후 언제까지 〈문덕곡〉의 노래와 정재가 행하여졌는 지는 자세히 알 수 없다. 정재가 크게 떨쳤던 순조 때의 ≪진찬의궤 進饌儀軌≫와 고종 때의 ≪정재무도홀기 呈才舞圖笏記≫에도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조선 후기에도 재연될 기회가 없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현재는 노랫말과 간단한 춤추는 절차만이 전할 뿐 그 음악적 내용과 춤의 모습에 대하여는 자세히 알 수 없다.
 
≪참고문헌≫ 太祖實錄, 太宗實錄, 三峯集, 樂學軌範, 李朝時代의 歌謠硏究(金思燁, 學園社, 1962), 鄭三峯文學硏究(金文基, 油印本, 1973), 한국의 무용(成慶麟, 세종대왕기념사업회, 1976), 韓國傳統舞踊硏究(張師勛, 一志社, 1977).(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3. 심화 자료

정도전 (鄭道傳 1337~1398)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 ·학자로 자 종지(宗之). 호 삼봉(三峰). 1362년(공민왕 11) 진사, 이듬해 충주사록(忠州司錄)을 거쳐 전교시주부(典敎寺主簿)·통례문지후(通禮門祗候)를 지내고 부모상으로 사직하였다. 1370년 성균박사가 되고 이어 태상박사(太常博士)를 거쳐 예조정랑 겸 성균태상박사(禮曹正郞兼成均太常博士)가 되어 전선(銓選)을 관장하였다. 1375년(우왕 1) 성균사예(成均司藝)·지제교(知製敎) 등을 역임하였고 이 해 권신 이인임(李仁任)·경복흥(慶復興) 등의 친원배명(親元排明)정책을 반대하다가 회진현(會津縣)에 유배되었다. 1392년 한때 풀렸으나 정몽주의 탄핵으로 투옥되었고 정몽주가 살해된 뒤 풀려나와 조준 ·남은(南誾) 등과 함께 이성계를 추대, 조선 건국의 주역이 되었다. 제l차 왕자의 난 때 이방원(李芳遠)에게 참수되었다. 유학(儒學)의 대가로 개국 후 군사 ·외교 ·행정 ·역사 ·성리학 등 여러 방면에서 활약하였고, 척불숭유(斥佛崇儒)를 국시로 삼게 하여 유학의 발전에 공헌하였다. 글씨에도 뛰어났으며 저서에 《삼봉집(三峰集)》 《경제육전(經濟六典)》 《경제문감(經濟文鑑)》 《심기리편(心氣理篇)》 《불씨잡변(佛氏雜辨)》 《심문천답(心問天答)》 《진법서(陳法書)》 《금남잡제(錦南雜題)》 등이 있고, 작품에 〈납씨가(納氏歌)〉 〈정동방곡(靖東方曲)〉 〈문덕곡〉 〈신도가(新都歌)〉 등이 있다. (출처 : 동아대백과사전)
【작성】 이완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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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 최종 수정일: 2015년 7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