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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마라토너 손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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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톤(marathon) 손기정(孫基禎) 손기정기념관
【문화탐방】
(2023.03.20. 09:14) 
◈ 영원한 마라토너 손기정
일제 강점기 1912년 신의주에서 태어나 1936년 제11회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우승자인 손기정 선수의 기념관을 둘러보고 느낀 점을 적어 봅니다.
일제 강점기 1912년 신의주에서 태어나 1936년 제11회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우승자인 손기정 선수의 기념관을 둘러보고 느낀 점을 적어 봅니다.
 
▼ 손기정 자서전 "나의 조국 나의 마라톤"과 손기정 평전
 
▼ 손기정(1912.8.29~2002.11.15) 주요 연보 -손기정 기념관 리플릿-
 
▼ 손기정(孫基禎)은 평북 신의주에서 막내아들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장사에 나섰다. 14세의 나이로 철 따라 물건을 바꿔가며 참외와 각설탕, 군밤 장사 등을 했다. 덕분에 보통학교에 다시 다닐 수 있었으나, 6학년 졸업을 할 때까지 낮에는 학교에 가고 저녁에는 장사를 했다. 손기정은 집에서 학교까지 약 2킬로미터의 자갈길을 항상 뛰어다녔다고 한다.
▼ 가난한 손기정은 평안북도 대표 육상 선수인 이일성 선수의 눈에 띄어 달리기 선수로 시작했다. 손기정 선수의 귀국 장소인 여의도 비행장에 나온 조선일보 고봉오 기자는 같은 신의주 출신의 스케이팅 선수로 마라톤에 출전하는 손기정에게 도움을 줘 손기정 선수가 형이라 불렀다.
20살인 1932년 손기정 선수는 육상의 명문 양정고보에 입학하였고 1933년부터 1936년까지 마라톤 대회 13개에 참가하여 그중 10회나 우승을 차지했다. 1935년 11월 3일에는 2시간 26분 42초의 비공인 세계 신기록을 세웠으며, 이 기록은 1947년까지 유지되었다. 개인 최고 기록은 이보다 더 좋은데, 표준 마라톤보다 더 긴 코스(42.715km)에서는 2시간 25분 14초, 더 짧은 코스에서는 2시간 24분 51초를 기록했다.
 
 
 
▼무용가 최승희와 만남( 마라톤 참가비 후원)
 
"제군은 비록 가슴에는 일장기를 달고 가지만
등에는 한반도를 짊어지고 간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베를린 올림픽 환송식에서 몽양 여운형(1886~1947) 환송사-
▼교복의 손기정(孫基禎. 1912~2002)과 남승룡(南昇龍. 1912~2001) 교복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2주 타고 1936년 6월 17일 베를린 프리드리히슈트라세역에 도착한 손기정(앞줄 왼쪽)과 남승룡(뒷줄 왼쪽) - 디스커버리 캡처-
 
▼베를린의 손기정 선수와 남승룡 선수가 멋있다. -조선 중앙일보 1936.8.13 캡처-
 
▼1936년 베를린 올림픽의 하이라이트인 마라톤 경기(1936년 8월 9일 오후 3시 출발)는 우승 후보로 꼽히던 아르헨티나의 Zabala와 손기정의 다툼이었지만 오버 페이스 해 기권한 Zabala를 제치고 손기정은 마라톤에서 우승하였다.
▼손기정은 42.195km를 2시간 29분 19.2초에 주파해 당시 세계 신기록을 세우며 금메달을 땄다. 손기정과 함께 출전하였던 동갑내기 남승룡은 막판 스퍼트로 동메달을 차지하였다. 그렇지만 한국인 손기정과 남승룡에겐 일본 국기를 달고 일본 국가가 울려 퍼진 너무 슬픈 우승식이다.
 
▼제11회 베를린 올림픽 우승자 메달
 
▼1936년 한국은 일본의 강점 지배 아래에 있었기 때문에 손기정은 일본 대표 자격으로 출전했고, 일본식 이름인 키테이 손(KITEI SON), JAPAN으로 표기된 우승상장을 받았다.
 
▼ 손기정은 금메달리스트들 SIGN 북에 한자(漢字)로 쓰면 일본인으로 알까 봐 한국어(손긔정)와 영어(K.C.Son)로 이름을 적었다.
 
▼올림픽 공식 기록에는 손기정의 국적이 우승 당시의 일본으로 되어 있다. 베를린 올림픽 경기장에 세워진 기념비에 쓰인 국적은 일본에서 한국으로 한 번 바뀌었다가 다시 일본으로 바뀌었다.
손기정은 일본 올림픽 위원회가 국제 올림픽 위원회에 국적 변경을 신청하면 공식 기록을 고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으나 일본 올림픽 위원회가 이를 받아 주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 공식 기록은 일본으로 남아 있다.
 
▼조선 중앙일보(몽양 여운형 사장)와 동아일보(사장 송진우)가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우승자인 손기정 선수 가슴의 일장기를 지운 일장기 말소 사건(日章旗 抹消事件)으로 조선 중앙일보는 폐간, 동아일보는 9개월간 무기 정간을 당했다.
 
▼10월 17일 손기정은 여의도 비행장으로 귀국 당시 일장기가 그려진 선수복 대신 양정고보 교복을 입었고 환영 대신 일본 경찰들에게 죄인처럼 연행되어 남산의 조선 신궁(현재 남산도서관에서 정상가는 길에 세운 일본 신사)으로 끌려갔다.
 
▼1937년 양정고보를 졸업하고 일본의 감시와 방해가 심해 사실상 은퇴를 할 수밖에 없었다.
 
 
▼ 1946년(미 군정) 조선 마라톤 보급회를 조직하여 선수를 양성하였다.
 
▼1947년과 1950년 보스턴 마라톤 감독으로 서윤복(1947년)과 함기용(1950년)이 우승했다.
 
▼1950년 54회 보스턴 마라톤 대회 손기정 감독(뒷줄 왼쪽, 아래 왼쪽부터 1위 함기용, 2위 송길윤, 3위 최윤칠 선수)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대한체육회 부회장, 1963년에 대한 육상경기 연맹 부회장을 역임했으며, 1966년 아시안 게임에서 한국 대표단장으로 참가하였다. 1971년에는 올림픽 위원회(KOC) 위원, 1981년부터 1988년까지는 서울 올림픽 조직 위원을 역임하였다.
 
▼1986년(베를린 올림픽 50주년) 독일로부터 1936년 마라톤 우승자에게 주기로 했던 그리스 청동 투구를 받고 기뻐하고 있다.
 
▼1988년 서울 올림픽 개회식에서 성화 최종 주자로 뛰었다.
한국의 스포츠 영웅 손기정에 대해 독일인 슈테판 뮐러가 쓴 ‘마라톤 영웅’ 손기정에 관한 글을 소개합니다.
"여러분들은 감동적인 이야기를 좋아하십니까? 그렇다면 이야기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 우선 지도를 펼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들이 아마 알고 계실 중국과 일본 사이에 반도 하나가 놓여 있을 것입니다. 바로 그 반도가 한국이라는 이름을 지닌 나라입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바로 이 조그마한 나라의 어떤 마라토너입니다. …중략… 나는 어느 여름날 우연히 본 한 장의 사진 때문에 이 나라, 아니 이 민족에 얽힌 엄청난 이야기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1936년 히틀러 정권 시절 베를린에서 올림픽이 개최됩니다. …중략… 하지만 시상대에 오른 두 일본인의 그 표정이라는 것이… 그건 인간이 지을 수 있는 가장 슬픈 표정입니다. 왜 두 사람은 그런 슬픈 표정을 지으며 시상대에 올라 있는 것일까요? …중략… 그들의 가슴에는 태극기가 아닌 일장기의 붉은 원이 붙어 있었습니다. …중략… 일본의 검열 하에 이 기사를 실었던 동아일보는 사진에서 일장기를 말소합니다. …중략… 그 후 일본 정부는 신문사의 폐간을 결정합니다. 이런 야비하고 무지한 동시에 무식한 억압이 어디에 있습니까? …중략… 그 후 이 나라의 수도 서울에서 올림픽이 개최되었습니다. 52년이 지난 후에 말입니다. …중략… 그리고 개회식 세리머니에서 성화주자로 경기장에 들어선 사람이 바로, 그 당시(1936년) 몹시도 슬프고 부끄러워했던 마라톤 우승자 손기정 씨였습니다. 손에 성화를 든 백발이 성성한 이 슬픈 마라토너는 마치 세 살배기 아이처럼 기뻐하며 달렸습니다! …중략… 그 당시 모든 한국인들은 이 노인에게, 아니 서로 서로에게 그동안 말로 표현할 수 없었던 빚을 갚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감동적인 이야기는 그대로 계속 보존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중략… 이 이야기는 슬픈 눈물로 시작하여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행복한 결말로 끝을 맺습니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한 황영조 기념한 우표에 손기정 선수도 함께 있습니다.
 
▼ 바르셀로나 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한 황영조와 기뻐하는 손기정 -디스커버리 캡처-
 
▼2002년 11월 15일에 지병이던 만성 신부전증과 폐렴으로 인해 91세로 세상을 떠났다. 대전 현충원에 안장되었고 체육훈장 청룡장이 추서되었다. 편히 잠드소서 -한겨레 신문 사진-
 
▼ 그의 모교 양정고는 목동으로 이전하고 학교가 있던 자리는 손기정 체육공원으로 변했다.
 
▣느낀 점
국가와 민족의 암울한 시기인 일제 강점기에 제11회 독일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우승하신 손기정 선수가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의 무시와 심한 차별 속에 1935년 11월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최종 선발전에서 1등을 하였다. 베를린까지 2주간의 시베리아 횡단열차 타고 올림픽 출전자 현지에서 선발전을 다시 하는 등 일본의 방해를 뚫고 마라톤 금메달과 동메달(남승룡)을 딴 것은 조선 남아의 쾌거였습니다.
우승 부상인 그리스 청동 투구는 독일로부터 어렵게 1986년 받았지만 아직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기록에는 손기정 선수 국적은 일본, 이름은 키테이 손(KITEI SON)으로 되어 있어 안타깝다. 제자리를 찾기 위해 지속적인 노력이 더 필요하며 힘없고 약한 국가의 우승자는 금메달을 따도 어떻게 되는 것인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로 약소국이 강대국으로 가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역사의 아픔을 이겨내고 부국강병으로 향해 가야한다.
손기정 선수의 모교인 양정고 자리에 손기정 기념관이 들어선 것은 잘한 것이며 많이 방문하여 손기정 선수의 불굴의 힘찬 기운을 받고 실내 기념관에서 손기정 선생의 업적과 야외에 있는 소설가 심훈의 시비(詩碑)와 월계관 기념수 및 일장기 대신 태극기를 달았고 월계관 묘목 대신 그리스 청동투구를 든 손기정 동상과 2022년 만든 "손기정을 위한 선물"이란 조형물을 관람하시기 바랍니다.
손기정 기념관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하며 손기정, 황영조, 이봉주로 이어지는 한국 마라톤의 계보를 잇는 선수가 나와 한국 마라톤이 부활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 손기정 기념관 정보
ⓐ 서울시 중구 손기정로 1936
ⓑ 전화번호가 02-364-1936인데 02-809-1936으로 하면 좋겠다. 마라톤 우승일 1936.8.09 일이므로
ⓒ 무료 관람이며 2층 기획전시실은 어린이들이 좋아하게끔 꾸몄다.
https://www.sonkeechung.com/sonkeechung/bbs/BMSR00012/view.do?boardId=503&menuNo=1000037
ⓓ 관람시간은 10시~17시(동절기 ) 또는 18시(하절기)이며 입장 마감은 1시간 전임
ⓔ 신정, 설날, 추석 그리고 매주 월요일은 휴관
ⓕ 홈페이지. https://www.sonkeechung.com/
ⓖ AR로 볼 수 있습니다.
 
출처: 손기정 기념관, 동아일보, 연합뉴스, 구글, 인터넷 자료, 보훈처, 한겨레신문, 네이버, 카카오, 디스커버리, 한국 역사정보 통합 시스템
★ 그리스 청동 투구 https://blog.naver.com/jawkoh/223020291392
★손기정 기념관 둘러보기 https://blog.naver.com/jawkoh/2230222910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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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일: 2021년 1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