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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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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희(金正喜) # 추사박물관
【문화탐방】
(2023.06.06. 09:32) 
◈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추사 김정희(金正喜, 1786~1856) 하면 먼저 떠오르는 것은 접근하기 어려운 명필(名筆)이라는 추사체, 세한도(歲寒圖), 북한산 비석을 진흥왕 순수비(순시함을 기념한 비석)라 밝힌 일, 제주에서 유배 생활(1840년 9월부터 1848년 12월까지 8년 3개월간)을 한 인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조금 더 알아보려고 경기 과천시에 있는 추사 박물관(2,000원/성인)에 다녀와 몇 자 적습니다.
추사 김정희(金正喜, 1786~1856) 하면 먼저 떠오르는 것은 접근하기 어려운 명필(名筆)이라는 추사체, 세한도(歲寒圖), 북한산 비석을 진흥왕 순수비(순시함을 기념한 비석)라 밝힌 일, 제주에서 유배 생활(1840년 9월부터 1848년 12월까지 8년 3개월간)을 한 인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조금 더 알아보려고 경기 과천시에 있는 추사 박물관(2,000원/성인)에 다녀와 몇 자 적습니다.
전시물을 보면 잘 모르는 한자(漢字)가 많고 글자 크기도 일정하지 않으며 여러 글씨체로 더욱 알기 어려웠다. 다행히 입구의 자료를 통해 어느 정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아무튼 전시 자료를 보면서 추사 김정희는 詩· 書· 畵 ·金石學 분야 뿐만 아니라 청나라 학자와 교류하신 분이었습니다. 더구나 육체적, 정신적으로 힘든 제주 유배 이후 글씨체는 유배 이전과 다른데 아픈 만큼 성숙해진 것이라 생각합니다.
▼한국 조폐공사 주화
 
추사 박물관에 많은 유물을 기증하신 후지츠카 씨와 세한도 등 많은 국보급 유물을 국가에 기증하신 손창근 님께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 유한준(1732~1811)-
▣ 김정희(경주 김씨, 호는 추사 또는 완당 등, 자는 元春) 생애
 
▣김정희가 태어난 곳은 서울 명동 부근
김정희는 충청도 예산에서 태어났다고 알려져 있지만 다른 자료를 확인하니 한양 낙동(명동 부근)에서 추사가 태어났고(외가 친척 유만주의 일기 기록) 그 후 양자로 들어간 큰 아버지 김노경의 집이 있던 통의동 일대에서 성장합니다.
 
▣권문 세력 집안
·증조부 김한신(월성위. 月城尉)은 영조의 딸 화순 옹주와 결혼하였고, 친아버지 김노경은 판서(장관)로 추사는 권세 명문 집안 출신입니다.
·경복궁 옆의 통의동 백송(태풍에 쓰러져 밑동만 있음) 터는 김한신 본가 터가 아니고 영조 임금의 옛집 터(창의궁 터)입니다.
 
· 김한신 본가 터는 경복궁역 엘리베이터에서 청와대 쪽 10m 지점에 표지석이 있습니다.
 
 
▣추사 주요 작품

세한도(歲寒圖) :1844년, 59세

·제주 유배 기간에 구하기 어려운 중국 서적을 보내준 중국어 통역관 이상적(李尙迪. 1804~1865, 북경에만 12회 다녀옴)에게 답례로 그려줌

·歲寒은 "추운 겨울이 지난 뒤에야 소나무와 측백나무(松柏 2주씩)가 시들지 않음을 안다"(歲寒然後 知松柏後凋, 논어) 뜻으로 외롭고 쓸쓸한 자신을 나타냄

·세한도에는 4개의 인장이 찍혀 있는데 정희(正喜), 완당(阮堂), 추사(秋史) 그리고 장무상망(長毋相忘.오래도록 서로 잊지 말자)이 찍혀 있음

·이상적이 청나라에 가서 세한도를 보여주니 감동받은 청나라 학자 16명의 찬사의 글과 오세창, 정인보, 이시영 등이 써넣은 발문(감상 글)의 길이가 13m가 넘음

·일제 강점기 후지츠카 교수가 구입 후 해방 전 서예가 손재형에게 주었음

·2020년 손창근 님의 원본 기증으로 국보로 지정되었고 국립 중앙박물관 소장함

불이선란도(不二禪蘭圖) 및

잔서완석루

20년 만에 난을 아무렇게나 그렸다고 하지만 70평생 벼루 10개에 구멍 내고 붓 1000개를 닳고 쓴 작품으로 국보이며 국립 중앙 박물관 소장

·잔서완석루(오랜 세월 비바람에 깎인 볼품없이 깨진 비석에 희미하게 남아 있는 몇 개의 글자가 있는 다락)는 제주 유배 후 한강변(이촌동으로 추정)에 거주할 때 썼다 함

북한산 순수비로 밝힘 :1816년, 31세

·북한산 비석을 진흥왕(540~576 재위) 순수비(巡狩碑)로 밝힘

·측면에 "이것은 진흥왕 순수비다. 1816년 7월 김정희, 김경연이 와서 비문을 읽었다" 와 "1817년 6월 8일 김정희, 조인영이 함께 남아 있는 글자 68자를 판독하였다"고 새김

·원본은 마모· 훼손 우려로 국립 중앙 박물관에 전시하고 비봉에 모조품 세움

암행어사 :1826년, 41세

·충청우도(忠淸右道)에 암행어사가 됨

·서천군 비인 현감 김우명의 비리 보고가 악연(제주 유배)의 시작 -추사 박물관-

청나라 연경(북경) 방문:1810년, 25세

·친아버지 김노경(冬至 및 謝恩 副使, 신례 하례 방문)를 따라 40일 걸려 청나라 북경(1809.12.24~1810.2.3 머뭄)에 가서 법원사(法源寺)에서 학자 옹방강(당시 78세), 완원(당시 47세) 만나서 금석학에 대해 배우고 관련 책을 받음

·실사구시 학문을 접함 - 추사 박물관-

·신촌 봉원사 대방(흥선 대원군의 마포 "아소정"을 옮겨 지은 요사채)에 걸려 있는 옹방강의 "무량수각" 글씨

제주도(55세), 함경도 북청(66세) 유배

·윤상도 사건으로 제주 대정에서 8년 3개월(가시 울타리 속에 가택 연금) -제주 시청-

·제주 유배 때 소치 허련(1808~1893)이 그린 완당선생 해천일립상 -아모레 퍼시픽 미술관-

·예송 논쟁으로 함경도 북청에서 1년(지정 구역 안에서 유배 생활)

·함흥의 만세교에서 읊은 시

“진흥왕 북수(北狩)하던 때를 추억하니

누대 앞에 화려하던 모습이 드날리네.

긴 다리 지는 해에 고개 돌려 바라보니

두어 가닥 구름 연기 변방인 듯하구나.”

·황초령 진흥왕 순수비 비각 현판(진흥북수고경) -국립중앙도서관-

마지막 글씨(추사체 결정판)와 봉은사 대웅전 글씨

·강남 봉은사 판전(불경판 보관소) 편액(원본)

·71과 병중 작(71세 과천노인 병중에 씀)

·봉은사 대웅전(원본) 편액도 김정희 글씨

호(號)와 자(字)가 많음

추사, 완당, 완당 추사, 노완, 노과, 승설도인(勝雪道人), 예당(禮堂) 등 -추사 박물관-

난죽도

예산 고택과 본인 묘(墓), 백송(줄기가 하얀 흰 소나무), 화순옹주 열녀문

· 예산 고택

· 김홍경(김한신의 부친) 묘와 백송(김정희가 심었다 함)

·김한신(38세)이 죽자 따라 죽은 영조 임금의 딸 화순옹주의 홍문(紅門. 열녀문)

· 예산 화암사 뒤에 바위에 시경(詩境),천축고선생댁,소봉래 글자가 있음

동갑내기 초의 선사 의순(1786~1866)과 사귀며 차(茶)

·1815년 30세에 만나 42년간 친교(초의가 제주 대정 유배지 방문해 6개월 같이 함)

·해남 대둔사(대흥사) 일지암 초의 선사가 보내 준 차(茶)를 마시며 생활

·명선의 뜻은 "차를 마시며 선정(禪定)에 들다"로 차(茶)가 선(禪)이라는 의미

·"초의가 스스로 만든 거친 잎(茗) 차를 보내왔는데 중국 명차인 몽정(蒙頂), 노아(露芽) 보다 못하지 않다. 이에 보답하는데 백석신군비의 필의로 쓴다. 병거사(김정희를 나타냄)가 예서로 쓰다." -간송미술문화 재단-

과천의 집과 글씨

·친아버지 김노경(1746~1837)이 1824년 지은 별장이며, 돌아가신 친아버지를 가까운 청계산 옥녀봉에 모시고 이곳에서 3년 상을 치름

·북청 유배 해제 후 기거한 과찬 과지초당(오이 밭의 초가집이란 뜻) 및 예서(隸書)로 쓴 기둥 글(주련)

·대팽두부과강채/ 大烹豆腐瓜薑菜(좋은 반찬은 두부, 오이, 생강, 채소요)

·고회부처아녀손/ 高會夫妻兒女孫(훌륭한 모임은 부부와 아들, 딸, 손자라네)

그 외 추사 글씨

·서울 종로 송석원 암각(현재 사라짐)

·경주 옥산서원 편액

·대구 은해사 대웅전, 보화루 편액

·예산 화암사 무량수각 편액(수덕사 박물관 소장)

▣ 추사 박물관 정보
ⓐ추사 박물관은 지하 1층 ~ 지상 2층입니다. 유배지에서 돌아와 정착한 곳이 과천의 과지초당(瓜地草堂)이며 박물관이 있는 자리입니다.

2층

· 추사의 생애

1층

·추사의 학예

지하 1층

·후지즈카 기증실

ⓑ 대지 4261㎡, 건축 연면적 2957㎡의 과천 추사 박물관 성인 입장료는 2,000원입니다.
ⓒ 매주 월요일 휴무이며 9시~18시까지 관람시간입니다.
ⓓ경기도 과천시 추사로 78 ( ☎ 02-2150-3650). 4호선 선바위역에서 6번 버스 이용합니다.
ⓔhttps://www.gccity.go.kr/chusamuseum/main.do
ⓕ왼쪽 기와지붕 집이 과지초당, 박물관 앞에 백송(白松) 등이 있습니다.
 
ⓖ 과지초당 건물
 
 
ⓗ 불이선란도의 낙관이 15개인데 김정희는 5개, 나머지 10개는 소장자와 감상자 인장입니다.
 
▣ 추사 관련 시설 3곳

예산 김정희 고택 및 기념관

제주 대정 유배지 및 추사관

과천 초당 및 박물관

건축가 승효상 작(세한도 착안 )

마무리
추사체는 김정희가 쓴 글씨체이며 시서화(詩·書·畵)에 고수였다. 그러기에 사람들은 그의 작품을 받으려고 줄을 섰을 것이다. 진정한 추사의 글씨는 유배 기간 중에 익어갔다고 보며 정치적인 박해를 견디었다. 각고의 노력의 산물인 그의 작품은 얼만큼 있는지 알지 못하고 현재 있는 작품의 이해가 더 필요함을 느낀다.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추사 박물관, 예산 시청, 간송미술문화 재단, 민족문화 대백과, 홈페이지, 한겨레신문, 제주 추사관,추사 기념관,네이버, 구글, 규장각,불보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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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희(金正喜) # 추사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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