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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의 첫 서울은 직산지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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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위례성 주변의 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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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2023.02.01. 17:59) 
◈ 7. 위례성 주변의 지명
지명은 옛날 우리들이 살고 있는 땅에서 말해진 언어의 옛 자취를 가장 잘 간직하고 있다고 보며 문자가 정착하기 이전의 사실을 가장 잘 보존하고 옛말 그대로를 대변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
목   차
[숨기기]
지명은 옛날 우리들이 살고 있는 땅에서 말해진 언어의 옛 자취를 가장 잘 간직하고 있다고 보며 문자가 정착하기 이전의 사실을 가장 잘 보존하고 옛말 그대로를 대변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
 
현재 천안시 입장면 호당리에 남아있는 위례산성을 중심으로 그 주변의 지명을 조사하여 백제의 첫 서울 하남 위례성이 우리 고장임을 주장하는 뒷받침으로 할까 한다.
 
 
 

1. □ 입장면(笠場面)

 
▷ 도하리(都下里)
 
글자 그대로 도읍 밑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도아리, 돼리, 도야리, 도감말 등으로 불리우고 있으며 본래는 직산현의 이북면(二北面)에 해당하는 지역으로 지형이 물동이 밑에 바치는 또아리처럼 생겼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전한다.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개편으로 삼동면의 하리(下里)를 합쳐서 도하리라고 하였다. 이곳을 중심으로 인근에는 도(都), 궁(宮), 성(城)자가 붙은 마을이 많은 것은 옛날 부족사회 때 진(辰)국의 수도가 있었던 곳, 즉 사학계에서 말하는 목지국(目支國)의 자리로 관련지어 발표하였으나 다시 한 번 생각할 필요가 있는 것으로 본다. 위례성이 있었던 곳으로 그 성 밑의 마을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는 것이 옳다.
 
 
▷ 구시랑동(九侍郞洞 : 구시랭이)
 
백제 때 아홉 사람이 살았다고 해서 구시랑동이다. 백제 때에는 구실향(救實鄕)이라고 하였고 향가에도 소개된다고 전한다.
 
백제는 처음 건국할 때에 아홉 사람의 신하들로부터 보필을 받아 온조가 나라 이름을 십제(十濟)라고 칭한 것도 여기에 기인하는 것이다. 건국공신이 된 아홉 사람의 신하들이 함께 모여 살았다고 해서 구시랭이다. 이로 보아 위례성 내에 있었던 한 개의 마을로 백제 첫 도읍지와 관계를 지어 봄직하다.
 
 
▷ 도장골(道場里 : 도장리)
 
시장리에서 가장 큰 마을이며 위례산성 바로 아래에 있는 마을이다. 백제가 건국되는 초기에 여기에서 많은 군사들이 훈련을 하였다는 도장이 있다고 하여 도장골이 되었다고 한다.
 
삼국사기의 기록에도 온조가 만주의 고구려에서 남하할 때의 기록에 보면 많은 백성이 그를 따랐다고 하였고 군대를 이끌고 온 것으로 되었으니 이곳이 바로 그들이 머물렀던 곳으로 본다.
 
 
▷ 적정(赤井 : 불그물이)
 
입장면 용정리에 있는 마을로 마을 복판에 큰 우물이 있어 이 우물 이름이 붉은 우물(불그물)이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옛날에는 이 우물의 둘레를 구리로 만들어 붉게 보였기 때문에 붉은 우물이라고 이름 지었다고 한다. 백제가 이곳에 처음 나라를 세울 때 물맛이 좋아 나라의 임금이 사용하였기 때문에 구리로 우물의 테를 둘러 보존하고 일반 서민들은 먹지도 못하였으며 임금(온조왕)만이 먹었다고 한다.
 
 
▷ 국수골
 
입장면 양대리에 있는 골짜기로 국사봉 등으로 불리어지고 있으며 국수(國首)는 나라의 우두머리 즉 임금을 가리키는 말로 백제의 시조 온조가 이곳에서 머물렀고 위례성을 세운데서 그 까닭이 왔다고 한다.
 
 
▷ 배삼딩이(배삼고지)
 
입장면 유리다. 옛날에는 배를 매던 곳 또는 배를 만들던 곳으로 오늘날의 말로 조선소다. 바로 그 조선소가 있었던 곳이다. 조선 말기 때까지도 아산만의 조수가 안성천까지 밀려들어왔다 하니 이곳에 배를 매던 곳이라는 말은 그렇게 틀린 말이 아니다. 배삼고지의 고지는 조(祚)와 같은 뜻으로 포(浦)나 진(津)과 같은 것으로 본다.
 
 
 

2. □ 북면(北面)

 
▷ 도촌 소학동(道村 巢鶴洞)
 
성거산 뒤편(북면쪽)에 있는 마을. 성거산에서는 가장 산 속 깊이 있는 마을로 흔히들 하늘 아래 첫 동리라고 하며 소학동(학이 둥치를 트는 곳)이라고 부른다. 도촌(都村)이 변해서 도촌(道村)이 된 것 같다. 도(都)는 도읍지를 말하는 것으로 백제의 서울이 있었던 곳으로 전해지고 있다.
 
※ 삼국이 서로 항쟁을 계속할 때 도살성(道薩城)이 바로 이곳이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 곡간리(曲干里)
 
백제 건국 당시에 군량미를 쌓아 두었던 곳이라고 전한다. 창고를 옛날에는 곡간이라고 불렀다. 대평리에 있는 마을로 지금도 양곡을 감추어 두기에는 가장 적당한 곳으로 천안시에서는 가장 깊은 산골인 오지다.
 
 
▷ 양곡리(陽谷里)
 
벼장골 또는 벼당골로 부르고 있으며 양곡(陽谷)을 양곡(糧穀)으로 바꾸어 쓰면 바로 알 수 있듯이 군량미와 관계를 지어보면 된다. 북쪽으로는 입장으로 동쪽으로는 충북 진천으로 통하는 산간의 교통요지다. 산간계곡으로 비교적 넓은 들이 펼쳐져서 농사 등이 활발한 곳이다.
 
 
▷ 대치동(袋治洞 : 댓골)
 
대평리 앞 길가에 있는 마을로 큰 대장간이 있었다고 한다. 백제 때에 많은 무기를 제조하던 곳이라고 한다. 이 근방 목천 땅에 철이 생산되었음을 관계 지어 봄직하다.
 
 
▷ 사창(社倉 : 사창골)
 
명덕리에 있는 마을로 옛날에 사창이 있었던 곳이라고 한다. 사창이란 국가의 곡식을 보관하기 위해서 설치한 창고가 있는 마을을 말하는 것으로 백제 건국 초기에 설치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 문다라니 고개
 
한자로 쓰면 문현현(門懸峴)이다. 문다라니 앞에 있는 고개로 목천읍지(木川邑誌)인 대록지(大麓誌)에는 진장자(陣長者) 남매가 이곳에 살면서 이 고개에 문을 달고 행인들이 여닫고 다니게 하였다고 한다.
 
 
▷ 부소문령(扶蘇門嶺 : 부소무니 고개)
 
북면 운용리에서 입장면 양대리로 넘어가 현 는 높은 고개. 백제 건국 때 온조왕이 위례성에 도읍하였을 때 이곳에 문을 세웠다.
 
부소(扶蘇)라는 고어가 무엇을 뜻하는 지는 상세치는 않아도 부(扶)는 부여를 뜻하는 것이며 소(蘇)는 산을 뜻하는 것으로 부여의 산이란 뜻으로 본다.
 
 
 

3. □ 성거읍(聖居邑)

 
▷ 사산(蛇山)
 
성거읍사무소의 사거리에서 천흥부락쪽으로 약 1km 지점에 있다. 성거산의 줄기가 뻗어 뱀산머리를 만들고 직산 쪽을 바라보고 있다. 위례성을 뒷날 사산성이라고 부르게 된 근거가 여기에 있는 것으로 본다. 이 뱀산은 위례산성의 바로 아래에 있는 산으로 백제의 첫 서울과 깊은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본다.
 
 
▷ 남창(南倉)
 
읍사무소가 있는 곳으로 남쪽으로 약 1km 지점에 있다. 위례성이 설치된 남쪽으로 부족국가 때부터 있었던 마을로 백제 초기에는 많은 곡식을 쌓아 두었던 창고가 있는 마을이라 남창이라고 하였다.
 
동서남북에 각기 한 개씩의 창고가 있어서 곡식을 보관하였다. 이중 남창만 있고 동서북창은 없어진 것으로 보인다.
 
 
▷ 저리(苧里 : 모시울)
 
행정구역 명칭으로 천안군 성거읍 저리다. 이곳의 토속지명은 모시울로 불리고 있으나 모시는 일반적으로 옷감에 쓰이는 우리나라 한산지방의 특산물로 널리 알려져 있으나 동리의 명칭으로 사용된 모시는 저(苧)가 아니다. 모신다, 뫼신다, 뫼시는 울로 쓰여진 것이 최근에 저로 변자된 것으로 본다.
 
더욱 그럴만한 사실은 이 지방에는 산이 없다. 다만 낮은 구릉이 있을 뿐인데 저리의 마을 뒤에 약 50mWma 되는 둔삼각형의 산이 있어 옛날 백제가 건국되던 때나 부족사회 때에 있었던 천군(天君)의 치소(治所)였던 소도(蘇塗)의 터가 아닌가 한다.
 
 
▷ 천흥사지(天興寺址)
 
고려 초기에 세워진 사찰이다. 소실된 연대는 정확치 않으나 조선 초기의 일로 전해지고 있다. 소실된 원인은 알 수 없어도 대단히 큰 거찰로 그 터와 유물이 남아 있다. 남아 있는 유물은 불에 타지 않는 것으로 보물 354호의 오층석탑과 99호의 당간지주가 남아있을 뿐이다. 당간지주는 매우 훌륭한 작품으로 당초문이 양각된 거대한 석물이며 충렬왕 때의 고승 일연국사의 시주품으로 전해지고 있다.
 
 
▷ 송남리(松南里 : 소댕리)
 
성거읍 송남리를 부르는 별칭으로 소댕리라고 한다. 이것은 소댕리가 아니고 쇠당리의 변음으로 소댕리가 되었다. 이 마을에는 쇠로 만든 당간지주가 섰거나 아니면 쇠로 만든 솟대가 있으므로 이루어진 동명이다.
 
 
 

4. □ 성환읍(成歡邑)

 
▷ 안궁리(安宮里)
 
성환에서 가장 북쪽인 경기도와의 경계에 위치한 마을이다. 넓은 들 옆으로 안성천이 흐르고 한 개의 도읍이 들어설 만한 자리다. 앞에서 밝힌 바와 같이 부족사회, 즉 진(辰)의 도읍지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지금부터 100년 전만 하더라도 인가가 없는 황무지였다고 한다.
 
안성천의 제방이 만들어진 것이 40여년 되었고, 그 이전에는 비만 오면 범람하는 지역으로 도시의 성립이 될 수 없을 것이라고 한다. 물론 이천년 이전에는 안성천의 하상이 낮아서 변화가 있었겠지만 아산만의 조수가 이곳까지 역류되어 들어오니 농지로 사용은 불가했을 것으로 보며 다만 조수를 타고 들어오는 배로 문물의 교환은 있었을 것으로 본다.
 
 
▷ 학정리(鶴井里). 대정리(大井里). 독정리(獨井里). 용정리(龍井里)
 
직산 북부지역에는 정(井)자가 붙어 있는 마을이 많다. 학정리, 대정리, 용정리 등은 신라의 군사단위였던 정(停)의 변음이라고 생각된다.
 
 
▷ 거먹다리
 
성환읍 안궁리에서 평택 유천리로 넘어가는 안성천에 놓여있는 다리 부교와 같이 일년에 한번씩 다시 놓아야 된다고 한다. 여름 장마에 쓸려 내려가면 늦은 가을에 다시 놓고 다음해 여름에 장마가 없으면 2년는 쓸 수 있었다고 한다.
 
거먹다리의 뜻은 나무의 밑둥 즉 기둥의 아래쪽 땅속으로 들어가는 부분을 불에 그슬려 썩지 않게 하였기 때문에 다리의 색깔이 검게 보였기 때문에 지어진 이름이나 지금은 그 다리가 놓아졌던 지방의 마을 이름이 되었다. (고대사회의 다리 놓기와 관계 지어 봄직하다.)
 
 
 

5. □ 호당리 동제(虎堂里 洞祭)

 
위례산성 아래에 있는 호당리에서는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알 수 없는 동제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아무도 그 시초를 모른다고 한다.)
 
동제는 정월에 지내지고 있으며 초하루에서 보름 안에 지내지고 있으며 제일(祭日)은 동리의 축제일이다. 행사도 다채롭고 매우 엄숙하다. 부정한 일을 본 사람이나 당한 사람은 제사에 참가하지 못하게 하고 동리에 부정(不淨)한 일이 생기면 날을 따로 가리고 제주는 삼일 전부터 목욕재계하고 근신하며 그 날을 맞는다.
 
제수(祭需)도 대단히 풍성하여 통돼지를 쓰고 제순에 따라서 축관(祝官)이 축문을 읽는데 축문의 내용이 백제건국과 시조 온조왕과의 관계 등 더구나 이 지역이 건국하였던 위례성의 옛터임을 알려주는 내용들로 쓰여져 있다. 본시 제문(祭文)이나 제순(祭順)은 한자로 기록된 것이 있었으나 없어지고 한문을 모르는 세대들의 제사라 한자를 한글로 대신 써서 읽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제문 내용을 아래에 적고 이것을 다시 한자로 고쳐 써 본다.
 
 
유세차○○ ○월 ○○삭 ○일 ○○유학 ○○○감소고우 산지령왈
온조구국 용천수석 복축우자 세치풍양 예성유허 호계촌려
노소함안 사무간난 소제질액 백상감화 유신소우 재성보새
구축재해 일촌형태 기다차대 근구비의 신기래격 길일양진
             상 향
 
維歲次○○ ○月 ○○朔 ○日 ○○幼學 ○○○敢昭告于 山之靈曰
溫祚舊國 龍泉水石 卜築于玆 歲値豐糧 禮城遺墟 虎溪村閭
老小咸安 事無艱難 消除疾厄 百祥感華 維神所祐 齎誠報賽
駒逐灾害 一村亨泰 旣多且大 僅具非儀 神其來格 吉日良辰
             尙 嚮
 
 
앞의 축문 속에 보이는 온조구국 예성유허(溫祚舊國 禮城遺墟 : 온조가 세운 옛나라 위례성 옛터)는 이 지방이 백제건국과 첫 도읍지 위례성과 깊은 관계가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논문】 백제의 첫 서울은 직산지방이다
• 6. 위례성 주변의 전설
• 7. 위례성 주변의 지명
• 8. 역사의 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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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일: 2021년 1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