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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자의 성수산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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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2월
2023년 12월 26일
6. 왕건 설화를 찾아서
3. 탁본
about 강명자의 성수산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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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태조(太祖)
【소설】
(2023.12.26. 19:38) 
◈ 6. 왕건 설화를 찾아서
삼청은 본래 도교에서 신선이 사는 이상 세계를 말하는 것으로 옥청, 상청, 태청을 상징한다. 성수산 부근에는 삼청리, 삼봉리가 있는데 산과 물이 맑아 삼청이라고 했다. 이런 것들을 미루어볼 때 성수산 삼청동비의 삼청의 의미는 신선이 사는 것 같은 선계 같고 맑고 깊은 산속 이곳에서 몸과 마음을 씻어내 심신이 맑아질 세계를 의미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6. 왕건설화를 찾아서
 
 
삼청은 본래 도교에서 신선이 사는 이상 세계를 말하는 것으로 옥청, 상청, 태청을 상징한다. 성수산 부근에는 삼청리, 삼봉리가 있는데 산과 물이 맑아 삼청이라고 했다. 이런 것들을 미루어볼 때 성수산 삼청동비의 삼청의 의미는 신선이 사는 것 같은 선계 같고 맑고 깊은 산속 이곳에서 몸과 마음을 씻어내 심신이 맑아질 세계를 의미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태조이성계가 동자승을 만나 삼 일간 목욕하여 심신을 깨끗이 하고 돌에 삼청이라고 새겼다는 것은 이런 의미가 있는 것이다.
 
 
상이암은 18세기 여지도에 수록되어 있다. 여지도는 영조33년(1757) 각 읍에서 읍지를 모아 묶은 전국 읍지다. 임실현 산천조에 성수산이라는 산명과 함께 장수 팔공산에서 뻗어 나온다. 사찰조에는 상이암은 관아 30리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1872년 호남읍지에도 성수산상이암 기록이 있다. 1904년 운수지 상이암 조에는 사적기와 달리 불우조에 이전과 달리 실려 있었다.
 
성수산 상이암은 신라 말에 도선국사에 의하여 창건된 고찰이다. 첩첩산중에 들어앉은 작은 암자여서 수행하는 스님도 이름을 피해 혼자서 독·불·공을 하거나 은밀한 기도처로 삼아오던 터였기 때문에 당시로서는 쉽게 찾기 힘든 곳이었다. 도선국사는 도선암을 찾아오는 것은 도에 능한 자가 아니면 찾을 수 없는 곳이라고 했다. 성수산은 해동천지 여러 산 중에서 十二대 명산중의 하나로 널리 알려진 산이다. 장안산 줄기로서 장수와 임실을 경계 짓고 있는 호남정맥의 웅산熊山임과 동시에 예로부터 삼한천지를 번갈라 다스린 새 왕조의 창업주에게 거듭하여 여덟 번이나 왕기를 내려 줄 천하의 명산이라 일러온 산이다. 실제 고려 왕건도 도선국사의 인도로 이곳을 찾아 백일기도 후 왕기를 얻어 고려왕조를 세울 수 있었고 이성계도 무학대사의 인도로 백일기도 후 왕기를 얻어 조선을 세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왕건은 후백제의 견훤과 세력을 다투었으며 고창 전투와 병산 전투에서 후백제군을 격파하고 패권을 잡았다. 그러나 왕건은 팔공산 싸움에서 수차례 패하며 수세에 몰려 몸만 겨우 도망 나와 기진하여 어느 산 아래 바위 옆에 쓰려져 있었다. 정신이 돌아와 눈을 떠보니 스님이 자신을 보살피고 있었다. 도선국사였다. 훗날 도선국사와의 인연으로 왕건은 고려 창건주 왕으로 추대되었다. 스님의 극진한 보살핌으로 다시 기운을 차려 고구려로 돌아가 군대를 끌고 고창 전투에서 후백제의 군대를 크게 격파하여 팔천의 적군을 무찌르고 견훤의 여러 장수와 책사들을 사로잡는 등 대승을 거두었다. 천년 세월이 흐른 상이암의 역사는 왕건이 초야에 묻혀 살았던 삼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이러한 내용이 있다. 성수산은 본래 팔공산 줄기다. 팔공산 줄기 한 봉우리에 오른 도선국사는 한 눈에 자리를 찾아냈다. 왕 건에게 권유하여 이곳에 와서 말을 했다.
 
“아름답도다. 이 산이여, 주봉이 빼어나니 천자가 가히 만조백관의 조화를 받는 형상이요, 어린 봉우리가 좌우로 뻗혀있으니 여러 신하가 머리를 숙이고 하례하는 모습이로다.”
 
하면서 스스로 기뻐했다. 또 산 이름이 팔공이라 예사롭지 않은 기운을 느꼈다. 성수산. 성수聖壽는 임금의 나이를 뜻한다. 임금이 오래 살기를 비는 말이 성수무강 또는 '성수만세다. 고려 태조 왕건이 17세 때 도선국사의 권유로 성수산에 오르게 되었다. 도선은 왕건에게 차산흥즉방가흥이요, 차산망즉방가망 일진대 이제 바야흐로 왕공은 성지에 발을 들여놓았으니 이 산에 정성을 드린다면 대방을 성취할 것 이라고 말하였다.
 
“여덟 성자가 차차 나타날 것이며 이 산이 흥하면 나라가 흥하고 이 산이 망하면 나라 또한 망하리라. 이제 왕공은 여덟 성자에 비롯하니 이 산에 의지하여 정성껏 기도를 올리면 장차 큰일을 이룰 것이로다.”
 
하면서 어지러운 나라를 하루라도 빨리 바꾸고 싶어 하는 마음을 왕건에게 전한 것이었다. 이후 도선 국사는 왕 건을 위해 암자를 세우고 왕 건은 도선 국사의 권유에 따르며 이 산에 의지하여 백일기도를 정성껏 올렸으나 아무런 영험이 없었다. 도선국사의 권유로 다시 삼 일 동안 치성을 정성껏 올린 뒤에 삼업을 씻기 위해 연못에 들어가 몸을 씻었다. 그런데 그때 이상하게도 한 동자가 연못가에서 목욕하는 왕건의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고 있었다. 왕건이 그 동자를 향해 말했다.
 
“동자는 대관절 누구인데 이 같은 첩첩 산중에 들어와 하필 목욕하는 나를 그토록 물끄러미 바라보는가?”
 
하고 예사롭게 물었다. 그러자 그 동자가 이렇게 대답을 했다.
 
“제 성을 굳이 말하자면 부처인데 부처는 본래 성이 없으며 사는 곳도 아무도 모르는 저 높은 곳에 삽니다.”
 
이 말을 하고나서 문득 층암절벽 위로 올라가 노래를 했다.
 
“하늘이 한 땅을 지었는데 형상도 없고 모습도 없도다. 한 땅을 몸에 지니고 태어났으니 아무리 지우고자 할지라도 지워지지 않으리라.”
 
노래를 마친 뒤에 그 동자는 문득 어디론가 사라져버렸고 그와 같은 노래 소리를 들은 왕 건은 가사 중에 한 마디를 찾아냈다.
 
“토土”......
 
토라는 말이 곧 임금 왕 王자가 있다는 사실에 나를 찬양한 내용이라 짐작하고 크게 기뻐하였다. 이 사실을 남기기 위하여 바위를 갈고 갈아 환희담 세 글자를 새겨두었다. 상이암 계곡에 새겨진 이 세 글자는 수 백 년 동안 풍마우세風磨雨洗 거친 속에서도 여전히 남아 오늘 날에도 그대로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남아 있다.
 
 
 

1. 풍수지리 적으로 보는 성수산

 
중세와 근대의 문을 연 군왕君王터 성수산은 그동안 군사적 요충지였으며, 신라 말 대선사 도선道詵이 송곳으로 찍어낸 명당중의 명당이었다고 한다. 성수산은 비행기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참으로 절묘한 구도構圖를 발견하게 된다. 장수 팔공산 준령이 치달아와 우뚝 멈춘 성수산을 중심으로 세 가닥의 힘찬 맥이 뻗어나고 있다. 남동방향으로 지사면 주봉을 거쳐 지리산 천왕봉으로 맥이 통하고 서남쪽으로는 임실읍 두만산과 극락재를 휘어 감다가 강진면의 백련산과 덕치면의 회문산으로 뻗어 나갔다. 동북쪽으로는 진안의 마이산을 거쳐 대둔산에 이르는데 이곳은 금강, 만경강, 섬진강의 분수령分水嶺이다.
 
성수산은 신라의 도선국사가 하필이면 전국의 많은 산중에 왜 성수산을 찾아 그 주봉 아래 암자를 지었을까. 이는 도선이야말로 우리나라 풍수지리계의 태두泰頭이자 대가大家였다는 사실에서이다. 도선은 신라 흥덕왕興德王~효공왕孝恭王 827~898때의 승僧이다. 대충 천 백 년 전의 인물이다. 고려사 등 여러 자료에 따르면 나이 열다섯에 중이 되어 월류산月遊山 화엄사에서 공부하여 바로 대의大義에 통하니 수많은 불학도佛學徒들이 신神으로 추앙을 했다고 한다. 도선본기道詵本記에서 보면 불교 신자들이 그를 불佛이 아닌 신神으로 추앙했다는 대목에서 도선道詵의 실체를 발견하는 듯 하다. 그는 헌강왕의 초청을 받아 한때 궁중에서 왕사王師노릇도 했지만 주로 전국의 명산을 구름처럼 떠돌며 수도행각을 했다. 이렇게 그가 전국의 산천을 두루 답사했다는 사실에서 또 그가 불佛보다 신神으로 추앙되었다는 사실 등은 그의 풍수지리에 대한 관련이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도선道詵의 풍수지이론風水地理論은 지리양왕설地理㐮旺說과 산천순역설山川順逆說및 비보補?설碑補說로 집약되었다. 곧 지리는 곳에 따라 양왕(㐮旺)이 있고 순역(順·逆)이 있음으로 왕처(旺處)를 택하여 거주해야 한다 했다. 그리고 양처㐮處와 역처逆處를 인위적으로 도와서 보충해야 한다고 설파說破하며 일종의 비기秘記?碑記?를 완성했다. 고려시대에 성행하여 요즘 문자로 베스트셀러가 되었던 도선비기道詵秘記가 바로 그것이었다. 그의 비기秘記는 그 후 숱한 사이비 비기秘記와 예언에서 같은 것을 낳게 하여 민심을 현혹케 하는 사례도 빚었고 우리가 잘 듣고 있는 정감록鄭鑑錄비결이라는 것도 결국은 도선비기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 할 수 있겠다. 하여튼 도선의 음양지리설陰陽地理說과 풍수상지법風水上地法은 고려와 조선조를 통해 크게 영향을 준 학설 임에 들림이 없다. 신라 효공왕 등 역대 군왕君王이 왕사王師라 칭하고 선각국사先覺國師라 추봉했던 도선이 하필이면 임실 성수산에 발길을 멈췄던 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이곳 산천이 그의 풍수상風水上 지법상地法上 하나의 이상형理想型이었기 때문이다.
 
도선이 성수산 명당에 발길을 멈춘 것은 시시하게 당대 복을 위한 묘墓를 쓰거나 별장을 짓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팔공산을 주봉主峰으로 삼는 이곳 일대가 전략요충戰略要衝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 것이었다. 그리고 성수산 중턱 향로봉香爐奉峰이 바로 구룡九龍 용주지지龍珠之地 라고 깨달았다.
 
이곳은 아홉 마리의 용이 용 구술을 들고 도열하는 형국, 즉 삼정승三政丞 육판서六判書가 왕 앞에서 조례朝禮하는 형국임을 알았다. 도선이 살던 때는 삼정승 육판서가 없음으로 이 대목은 후세의 사람들이 전설로 가미된 듯하다. 따라서 이곳 향로봉에서 수도를 하는 것은 곧 왕가를 이룩하게 될 것이라는 예언豫言이 나올 수 있었으리라 여겨진다. 또한 현존의 상이암上耳庵 앞에는 작은 바위산이 있는데 이를 용龍이 좋아하는 여의주로 표현되며 주변에서 깎아지른 듯한 아홉 곳의 강한 산줄기는 마치 아홉 마리의 용과 같아 이 용들이 강한 기氣를 발發하여 용트림하며 여의주를 물려고 하는 형국으로 써 도선국사가 정말로 그런 예언을 하였는지 안했는지는 모르는 일이다. 다만 그 후에 고려태조 왕건과 다시 475년이 지난 다음 조선국을 세운 이성계가 이곳에서 기도를 드려 왕이 되었다는 전설인지 사실 인지 전해지고 있으며 그들의 친필이라는 삼청동三淸洞과 환희담歡喜潭의 석비石碑가 현존하고 있다. 필자는 이곳에서 받은 강한 인식은 이러한 전설이나 도선의 예언이 아니라 이곳 팔공산 줄기가 군사상의 요로要路였다는 점이다.
 
지학이 통달했던 도선이 이곳을 발견했고 역전歷力戰의 장군將軍들인 왕건과 이성계가 이곳의 지형지세地形地勢를 군사상 필요에서 중요시 했으며 그러한 염원으로 개국전설開國傳說이 만들어 졌다고 한다면 무리가 없을 것 같다. 이 나라 역사에서 고대를 청산하고 중세를 열어놓은 군왕과 이번엔 중세를 마감하고 근세의 막을 올린 군왕이 이곳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성수산은 한반도 제일의 왕처王處가 아니라고 할 수 없다.
 
 
벽봉碧峰 최중두崔重斗가 펴낸 풍수지리학원론風水地理學原論의 부록附錄으로 펴낸 선사유산록先師遊山錄의 임실任實부분 비결을 보면 여러 명혈名穴이 소개되어 있는데 예컨대 북사십리상이암동구北四十里上耳庵洞口에 명당이 있는데 자봉귀소형雌鳳歸巢形이다. 어미 새가 둥지로 돌아가는 형국이라 했으니 이름부터가 천하명당임을 풍긴다. 과연 이곳은 용호龍虎가 중중重重히 회포懷抱한다 했고 여기에 묘墓를 쓰면 백자천손百子千孫하고 문과오대文科五代하며, 무과武科300人중 명장名將 오인五人이 나서 부귀가 천지에 동행한다고 설명한다. 그곳이 어디일까? 근천스럽도록 가난하고 이름조차 없는 나그네 심정으로 그 혈穴 을 송곳으로 꼭 찍어내고 싶다고 필자는 표현하고 있다. 북사십리北四十里에 선여등공형仙女登空形의 명당明堂이 있는바 이 역시 용호龍虎가 회포懷抱한다. 선여仙女가 하늘에 오르는 형국인데다 용호龍虎가 얼싸안고 있으니 천하명당天下明堂이 분명하다. 북사십리北四十里엔 명당이 또 있다. 이번엔 연꽃 모양인 연화형蓮花形이 있다. 북삼십리北三十里에도 명당이 있다. 이는 군신회조형群臣會朝形으로 임금 앞에 여러 신하가 조례朝禮를 하는 형국이니 바로 왕혈王穴이다. 이 설명은 성수면의 성수산줄기를 가리킨다고 한다. 성수산은 산세山勢가 그토록 지기地氣와 생기生氣가 넘쳐 있다.
고려 태조(太祖)
【소설】 강명자의 성수산이야기
• 7. 고려의 멸망
• 6. 왕건 설화를 찾아서
• 5. 궁예와 왕건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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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일: 2021년 1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