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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자의 성수산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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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2월
2023년 12월 26일
12. 의병들과 같이한 생암
3. 탁본
about 강명자의 성수산이야기
내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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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2023.12.26. 19:52) 
◈ 12. 의병들과 같이한 생암
1905년 마침내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많은 우국지사들이 서울에 모여 조약 철폐를 주장했으나 무력으로 진압되었다. 미국공사에게 서한을 보내고 일제침략을 통렬히 규탄했지만 기울어져가는 국운을 일으켜 세울 대책이 없었다. 일제강압에 의해 을사조약 체결이 알려지자 민중들의 반일감정은 최고조에 달하였다. 이와 함께 을사조약과 일제의 침략에 반대하는 반일운동이 전국적인 차원에서 각계각층으로 급속히 파급되어 일제의 침략과 만행을 규탄했다.
12. 의병들과 같이한 상이암
 
 
1905년 마침내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많은 우국지사들이 서울에 모여 조약 철폐를 주장했으나 무력으로 진압되었다. 미국공사에게 서한을 보내고 일제침략을 통렬히 규탄했지만 기울어져가는 국운을 일으켜 세울 대책이 없었다. 일제강압에 의해 을사조약 체결이 알려지자 민중들의 반일감정은 최고조에 달하였다. 이와 함께 을사조약과 일제의 침략에 반대하는 반일운동이 전국적인 차원에서 각계각층으로 급속히 파급되어 일제의 침략과 만행을 규탄했다. 농민무장집단이 일제의 침략에 대한 저항운동을 주도했다. 이들 가운데는 대부분 농민과 별로 차이가 없었던 전형적인 잔반유생들도 있었다. 이석용이 28세가 되던 해 갈수록 일제의 횡포가 심해지면서 나라가 어려움에 처하자 책상을 물리고 부모와 처자식을 버리고 나오면서 부모님께 아뢰었다.
 
“지금 왜놈들이 도성 안에 가득 차 있어 임금과 신하는 처소를 잃어버릴 지경에 이르렀으며, 단군과 기자가 베푼 풍교는 요원해지고, 요순의 도학은 땅에 떨어졌습니다. 무릇 혈기 있는 사람이면 어찌 누구인들 역적을 토벌하고 원수를 갚을 생각이 없겠사옵니까. 다만 대의를 만천하에 펼치고자 하는 것이 원이오나, 성공하고 못하는 것은 예측할 바 못되옵니다. 불효를 용서 하십시오”
 
 
문중에서 일제히 모여 굳이 말렸다. 형제 없는 독자가 부모봉양 무시하고 국사에 죽기를 작정하고 자원한 일이 어디 있느냐. 하며 말렸다. 석용은 당당하게 말을 했다.
 
“이 나라 남자로서 능히 이 의를 밝히는 자가 몇 사람이 되겠습니까. 평소의 뜻을 이제야 실천해 보겠습니다.”
 
아버지에게 작별을 고하고 하직 인사를 올렸다. 이석용은 지역을 두루 다니며 의병을 모으기 시작했다. 나라를 왜놈들 손에 넘어가지 않게 해야 한다는 청년들의 굳건한 일념들은 모두 한마음이었다. 거의 날짜에 맞춰 그동안 모집한 의병들을 마이산 남쪽 용암에 모이게 했는데 혈기왕성한 청년의 숫자는 무려 오백 명이 되었다. 나무를 벌채하여 단을 쌓은 뒤 의병창의단이라 크게 써서 깃발을 걸게 했다. 하늘에 제사를 올리는 고천제가 끝나자 모든 의병들은 환호를 울리면서 이석용을 의병장으로 추대 했다. 의병장은 의병들이 지켜야 할 약속인 조항과 의령십조 서사문을 발표했다. 이 서사문은 제갈공명이 중원을 쳐들어 갈 때 지은 출사표와 같은 의미였다. 서사문을 낭독하고 일본이 우리나라에 저지른 죄를 의병들에게 낱낱이 발표를 했다. 조직을 마치고 팔도에 격문을 보내 의병 거사를 널리 알리게 했다. 각 지역을 대표하는 의병장을 선출하여 활동 맡겼다. 호남창의동맹단을 조직하고 수건을 머리에 묶었다. 생암은 임시 의병들의 거처가 되었다. 생암은 죽전에서 대운치 산하나 넘으면 갈 수 있는 곳이고 산길이 익숙했다. 동지들과 약속대로 상이암에 모였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들었다. 의병장이 좌우 주변 사람들을 물리치자 중들이 그 기색을 이상히 여겼다. 의병장은 아무래도 주변 시선이 불편하여 마침내 숲속으로 자리를 옮기고 종일토록 앞으로의 일을 의논하였다. 용담에 있는 양 총을 실어오지 못해 한탄할 일이었다.
 
 
큰 눈이 내렸다. 다시 원증 산속으로 들어가니 마을 사람이 밤에 모여 모두 정담을 나누었다. 이장이 나 때문에 왜놈에게 잡혀가서 취조를 받았는데 한사코 발로를 하지 않았으니 아는 사람이었다. 운현에 당도하니 원근의 병졸들이 모두 달려와 내가 무사히 돌아온 것을 기뻐하며 오히려 때늦은 것을 애석히 여겼다. 대게 학산에서 부터 왜병의 패전이 계속되어 한 번 기회를 잃었다는 것이다. 용담에서 생암으로 은거지를 옮겼다. 다친 의병들이 있어 꼬박 사흘을 걸었다. 나이 어린 봉수·덕홍 승들이 다친 의병들을 치료하고 송피를 벗겨 죽을 끓여주었다. 버드내 사람들이 양식을 싣고 왔다. 의군들이 춥고 배가 고파서 의동들을 시켜 밥을 짓게 했다. 생솔나무를 안아다가 불을 피우니 연기가 공중에 솟아올랐다. 적지 탐색 나갔던 연락부장 홍윤무가 돌아왔다. 연기가 치솟아 올라와 멀리서도 발각되기 쉽다며 불을 피우지 말라고 당부했다. 생암산 이곳도 왜적들의 활동 반경이 좁혀오고 있었다. 겹겹이 에워싸고 의병들을 색출하고 있었다. 학당에 일경 수십 명이 있다고 했다. 의병장은 주변 경계를 잘하라고 지시 하고 급히 산마루에 올라 사방을 관망했다. 우리 은거지에서 계속 연기가 올라왔다. 아무래도 느낌이 불길했다. 급하게 내려와 불을 꺼서 연기가 나가지 않게 하라고 했지만 군사들이 응하지 않고 나 역시도 심하게 책망하지 않았다. 우선 하루 한 끼니도 먹기 어려운 의병들에게 밥을 먹여야 할 형편이었다. 아군의 총소리가 일제히 터졌다. 그러자 양쪽에서 총소리가 동시에 터졌다. 의병장은 의동을 데리고 석문동 기슭으로 올랐다. 한동안 양쪽 총소리가 빗발치더니 갈수록 우리아군의 총소리는 점점 끊어지고 왜군의 총소리는 골짝 안으로 자주 터져 나왔다. 승패는 알 길이 없었다.
 
매복병들에게 일본군이 골짜기 깊숙이 들어왔을 때 사격할 것을 명령하였다. 전투는 하루 종일 계속되었고 의군이나 왜군 모두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이 싸움으로 왜적 연합부대장이 죽고 장교 세 명과 왜군 서른두 명이 사살되었다. 왜적은 참패를 당하였지만 우리의 의진 또한 적지 않은 손실을 입었다. 사방이 어두워지자 계획한 대로 의군들은 주재소를 습격했다. 총과 무기를 빼앗았다. 일경 세 명이 죽고 다섯 명이 크게 다쳤다. 일경들은 분개하여 오수에 집 일곱 채를 불태워버렸다고 전했다. 비가 퍼붓듯 쏟아졌다. 왜놈이 우리가 군색할 것을 인정하고 가만히 우리 뒤를 밟아왔다. 파수병이 놀라 달아나니 여러 군사가 이미 황겁하여 산으로 올라갔다. 나는 헛 놀란 것이 아닌가. 의심되어 먼저 종자를 재촉해서 내 보내고 이윽고 총소리가 나며 탄환이 문 앞에 떨어져서 몸을 날려 뛰어나갔다. 나 역시 종일토록 비를 맞아 온 몸이 떨리므로 허둥지둥 불동으로 들어와 장작불을 피우고 행장을 알렸다. 밥이 목구멍에 넘어가지 않고 술이 입술에 들어오지 않았다.
 
왜적들은 의군이 어려움에 처해 있음을 알고 뒤를 밟아 오고 있었다. 의군이 모두 황급히 지주골 꼭대기로 올라가 총을 쏘려했으나 화약이 비에 젖어 불발이 연속되었다. 연락부장 홍윤무가 연속 세발을 쏘고 나서 군사를 거느리고 퇴각을 했다. 총탄이 좌우로 비 오듯 쏟아지는데 탄환이 다리와 볼기를 부딪쳤으나 멀리서 날아온지라 살을 뚫지 못했다. 윤무는 다친 의병을 끌고 가다가 가슴에 총탄을 맞고 쓰러졌다. 전사자가 수십 명이었다. 연락부장 홍윤무 의동 박철규, 허천석, 의승 덕홍, 봉수도 적의 총탄에 맞아 그 자리에서 전사했다. 포로가 두 명이고 부상자가 많았다. 의병들은 힘을 다하여 싸웠으므로 처음에는 왜적들이 죽음을 피하기에 겨를이 없었다. 그러나 왜적들은 의군 측에 원호하는 세력이 없음을 눈치 채고 일제히 반격을 해 탄환이 비 오듯 하니 의군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나이 어린 동자 의병 박철규와 허천석도 안타깝게 전사하였다. 용감한 그들 나이어린 청년 군사는 몸이 날래어 싸움마다 항상 앞장서고 기만한 행동으로 종종 왜병들을 현혹시키기도 하였다. 이 싸움으로 군졸은 흩어지고 무기를 모두 잃은 고배를 마셨다. 그는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며 골짜기 속으로 몸을 숨기어 피난해 온 마을사람들과 섞였다가 왜놈이 수색할 것을 염려하여 마침내 몸을 솟구쳐 험준한 산으로 올라갔다. 육척 단신을 숨길 곳이 없었다. 그는 그때 심정을 기록해 놓았다.
 
삭발머리 봉수, 덕홍은 일경에게 부모를 잃고 생암으로 들어갔다. 어린 나이지만 운현 전투에 기꺼이 따라 나섰다. 그들이 내 곁에서 피범벅이 되어 거꾸로 쳐 박혀 있다. 왜적들은 그르렁거리는 맹수의 위협처럼 사방에 둘러 있다가 무시로 튀어나와 물어뜯었다. 의병들은 점차 어둠과 죽음의 공포에 익숙해졌다.
 
의병장은 운현전투로 많은 의병들을 잃고 또 무기를 모두 잃은 고비를 마셨다. 왜놈들이 갈겨대는 신식무기에 맞서기도 전에 벌써 꽃잎처럼 떨어질 수밖에 없는 의병이었다. 살아남은 자들은 생암산 동쪽 갈매봉에서 서로 위로하고 있는데 밥이 목구멍에 넘어가지 않았다. 수시로 잠복하고 있는 왜적 때문에 지주골을 들어가지 못했다. 종자가 겨우 열여섯 명밖에 되지 않았다.
 
일경들의 경비가 느슨해진 기회를 타 다시 운현으로 들어가기까지 한 달이 걸렸다. 의병장은 먼저 연락부장 홍윤무를 찾았다. 윤무의 감지 못한 눈을 쓸어내리면서 비통하여 가슴을 치며 울었다. 그리고 한 명 한명 눈을 쓸어내려 감겨주었다. 의병장과 같이 간 마을 사람들도 통공을 하면서 위로했다. 의병장이 만사를 짓고 아울러 애도사까지 붙였다. 박선봉장도 만사를 지었다. 친척이나 가족이 있는 시신은 집으로 모셔가 반상으로 장례를 치르고 일경들의 감시를 피해 매장을 했다. 가족도 친척도 없이 오 갈 데 없는 의병 십칠 명을 수습하여 한 곳에 매장을 했다. 의병장은 가시덩굴을 베고 단을 쌓아 전사한 장졸들을 합제하며 동지를 잃은 슬픔에 호랑이처럼 사흘 간 울부짖었다.
 
상이암에서 수도하고 있는 스님 봉수·덕홍이 있었는데 두 스님은 의병들에게 음식을 나눠주고 다친 의병들은 치료를 하고 편의시설을 제공했다. 상이암은 산이 높고 골짜기가 깊어 외부로부터 쉽게 눈에 띠지 않아 의병들이 자주 들어와 전투계획을 논하던 장소였다. 부처를 모시며 수행을 하던 스님들이 전투에 뛰어 들었다. 운현 전투에 참여하여 왜적과 싸우다가 왜적의 총에 맞아 즉사를 했다. 봉수·덕홍 승은 의병들과 뜻을 같이하여 구국운동에 몸을 바쳤던 것이다. 왜경들은 의병들이 생암에서 자주 만난다는 정보를 입수 하고 생암을 불태워 버렸다. 동학혁명 때 불타버린 생암을 대원선사가 중건을 했다. 그 뒤 의병대장 이석용이 생암을 근거지로 삼고 항일운동을 전개하던 곳으로 왜병들이 불을 질러 태워버렸다. 몇 번 더 소실되었다가 중건되었지만 한국전쟁 때 다시 소실되고 말았다. 그후 양창현 임실군수가 후원금을 모아 중건을 하여 오늘날까지 염불소리가 이어지고 있는 상이암이다.
 
 
 

1. 운현 전적지 제문

 
아 황천은 인자하지 못하고 지신은 영험하지 못합니다. 인자하고 영험하다면 정의의 군사가 어찌 죽게 되겠나이까. 사직이 복이 없고 생민은 운이 없나이다. 복이 있고 운이 있다면 정의 군사가 어찌 병들어 죽겠나이까. 옛날부터 패전의 책임은 장수에게 있었으니 엊그제 실패한 것은 내가 실로 총명하지 못해서 나이다. 나라를 욕되게 한 죄는 머리털을 뽑는다하더라도 속죄하기 어렵고 죽지 못한 부끄러움은 강물을 쏟는다 하더라도 씻기 어렵나이다. 뻔뻔스런 얼굴로 제사에 임하여 충위를 다한 넋을 위로하며 붓으로 적어 위대한 업적을 기리고저 하나이다. 아, 우리나라의 인재는 남쪽지방이 더 많나이다. 임진왜란 때에도 충의의 정신이 열렬했습니다, 내가 처음 장수가 되자 장사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었습니다. 노련한 주먹을 휘두르고 나온 사람도 있었고 널빤지나 삽 같은 것을 메고 나온 사람도 있었습니다. 눈과 이슬을 무릅쓰고 한데에 생활하며 창을 베개 삼고 밤낮으로 나라를 위해 심혈을 기울였는데 어찌 감히 쉴 틈이 있었겠나이까. 위에서는 훈장 주어 권장하는 일이 없었고 사방에는 원수들만 가득했었나이다. 가족들과 오붓하게 지내는 것이 즐거운 일인 줄 누가 모르겠습니까마는 장부의 강직한 마음은 하고 싶은 것이 오직 정의일 뿐이었나이다. 잠시 동안이라도 우리는 정의를 놓을 수 없으며 직분은 장수와 병졸이지만 정의는 형제와 같나이다. 이런 형제들을 죽을 대로 몰아넣었지만 후회는 없습니다. 아비를 잃은 자식과 남편을 잃은 아낙들의 원한에 하늘이 화기에 소연하고 자제를 잃은 부형들은 외롭기 그지없습니다. 뜻을 이루지 못하고 지하로 돌아가니 온 누리가 원통해 하고 원귀가 위에 호소하니 상제도 슬퍼하나이다. 나는 마음이 돌이 아니라 굴릴 수도 없어 울다 못해 피눈물을 흘리나이다. 우리의사들이 같은 날 정의를 위하여 적과 싸운 것은 왕기가 세운 공과 같으며 승려가 나라를 위하여 죽은 것은 영규의 충성과 같다고 하겠나이다. 그 충절은 일월처럼 빛나고 산악처럼 높으며 그 이름은 하해처럼 마르지 않고 영원히 전해 질 겁니다. 저 냄새 따라 분주하게 날며 집은 더럽히는 파리 떼처럼 왜놈에게 머리 굽혀 나라를 더럽히면서 욕먹고 살다가 능지 참을 당해 죽을 난신적자 와 비교하면 누가 귀중하겠나이까. 촛불처럼 밝은 영령이 곁에 있는 것 같습니다. 군사들은 모두 소복을 입고 한없이 웁니다. 초목도 슬픔을 머금고 구름과 아지랑이도 음산한 기운을 더합니다. 손을 씻고 술을 따르니 그대들은 와서 흠향하소서. 슬프고 슬픕니다. 이건 누구 때문입니까. 통탄스럽고 통탄스럽습니다. 차라리 정신을 놓아 아무것도 몰랐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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