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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자의 성수산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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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강명자의 성수산이야기
3. 탁본
9. 산중문답 1
about 강명자의 성수산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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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2023.12.26. 19:47) 
◈ 9. 산중문답 1
주지스님에게 하룻밤 암자에서 머물고 싶다고 전화로 미리 예약을 했다. 암자는 객들이 와서 며칠씩 쉬어갈 수 있는 절이 아니었다. 스님은 공양을 챙겨줄 공양주도 없어 알아서 챙겨 드셔야 한다고 했다.
9. 산중 대화 1
 
 
주지스님에게 하룻밤 암자에서 머물고 싶다고 전화로 미리 예약을 했다. 암자는 객들이 와서 며칠씩 쉬어갈 수 있는 절이 아니었다. 스님은 공양을 챙겨줄 공양주도 없어 알아서 챙겨 드셔야 한다고 했다.
 
“스님, 제가 산중으로 대접받으러 가는 것이 아니오니 크게 부담 갖지 마십시오.
 
삼십년간 가족의 안위를 챙겨서 달인은 아니지만 식사정도는 챙길 줄 압니다.”
 
석양 무렵 무염 지를 돌아서자 목탁소리가 끊기고 종소리가 울렸다. 그것은 단지 삶과 죽음을 초월하고 삶과 죽음을 자제하게 하는 내성 일각의 파문처럼 퍼져나가는 여운 같은 종소리였다.
 
늦은 오후 시간에 홀로 산길을 걷는 일은 참으로 자기성찰의 시간이었다. 성수산 푸른 나무들이 농연 하여 산이 깊어지고 있었다. 아침 햇살에 반짝거리는 물빛처럼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살도 물비늘처럼 반짝거렸다. 나무 사이로 비춰지는 석양 노을이 반쯤은 붉은 빛이요 반쯤은 주황빛이었다. 저녁노을이 아름답다 해도 싱그러운 아침햇살과는 비교할 수 없다. 아침햇살에 생기가 있다면 저녁노을에는 조락의 빛이 있기 때문이다.
 
암자에 도착할 즈음 저녁노을이 서녘 끝으로 넘어가고 아직은 희미하지만 허공에 달빛이 내려오고 있었다. 스님은 텅 빈 절 마당에서 중생을 기다리고 있었다. 돌계단을 오르느라 붉어진 내 얼굴을 보고 물었다.
 
“어디서부터 걸어오셨습니까?”
 
“예, 일부러 호젓한 오후 산책을 즐기려고 주차장에 차 놓고 한 시간쯤 걸었습니다.”
 
“저녁 공양 준비해 놨으니 같이 드십시다.”
 
저녁 공양은 푸른 채소와 두부반찬으로 전주 보살이 가져왔다면서 드시라고 했다.
 
식사를 마치고 끓는 주전자를 밖의 평상으로 가져갔다. 산에서는 저녁이 빠르게 찾아든다. 밤하늘에 성긴 별들이 하나씩 점을 찍고 있었다. 이따금 시원한 바람이 일었다.
 
풀잎에 밤이슬이 맺혔다. 마당 편백나무 아래 평상에 앉아 산 향기가 풍기는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었다. 밤이 깊어질수록 시린 듯 청아한 달빛을 감상하는 것은 완전한 휴식이었다.
 
“스님, 이런 호사를 혼자서 누리고 사십니까?”
 
“아, 긍께 이 맛에 산중에 살지요. 허 허...”
 
소나무와 달빛이 한데 어울려 여름밤이 더욱 시렸다. 어느 큰 불단보다도 더 경건한 기류가 흘렀다.
 
동효스님은 산중과 오랜 인연이 있는 듯 깊은 궁곡 이곳에서 이슬처럼 사라져 자연의 일부가 되고 싶어 들어왔다고 했다. 늘그막에 생암산 한 귀퉁이에 은신처를 만들어 자연과 더불어 수행하며 편안히 살고 있다고 한다. 무운과 함께 늙어 감을 좋아하고 세월 따라 나이 먹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경전을 가까이하는 것은 결국엔 고루한 선객 면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참선 수행을 하는 것이라고 했다. 총림의 선자들 그 수가 무수한데 머리 희고 눈이 희미해지도록 이리저리 떠돌면서 모두가 진여의 불이문이니 밤하늘의 달을 따겠다고 떠들어대지만 공부가 안되어 있으면 모두가 허상인 것이다. 허공에 몽둥이 휘두르지 말라는 법문이 있다. 그것은 아무리 휘둘러봐야 결국 자기 뒤통수를 치는 결과밖에 나오지 않는 것이다. 산문에 들어와 궁색하게 산지 이미 오십년, 이제는 무거운 옷을 벗어내듯 삶이 가벼워졌다. 늙으면 나 하나도 짐이 된다면서 가볍게 사는 연습을 일찍부터 해야 삶이 편하다고 했다. 굽히면 명예를 거두고 마음을 비우면 깊은 이치의 깨달음을 얻는 것이라고 했다.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승들이 머리 깎고 무욕으로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잿빛 옷 속에는 오뇌가 감추어져 있다는 것이다. 잿빛 옷이 험상 굿은 맘을 덮어있어 스스로 번뇌 망상의 껍데기를 벗으려고 수행을 통해 정진하는 것이라고 했다. 스님은 잠깐 뭐 가져올 게 있다며 불빛도 없는 어두운 마당을 익숙한 발걸음으로 승방으로 들어갔다. 나뭇가지 사이로 별들이 유난히 반짝였다. 사방천지가 고요 속에 묻혀있었다. 한 참 후에 스님은 손에 뭔가 들고 나왔다.
 
나는 너스레를 떨었다.
 
“스님, 이 어둠속이 무욕의 세계가 아닐까요,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니 욕심이 일지 않을 것 같습니다. 우리가 늘 접하는 어떤 상이 눈과 마음을 가려 탐욕이 일어나지 않은가요?
 
“아, 밤낮으로 깜깜하면 그 나름대로 문명이 발달했겠지요. 밤이 어두우니 전기를 만들었잖아요. 불교에서는 이처럼 어두운 곳을 밝히는 불을 광명이라고 합니다. 어둡다는 것은 밖이 어두운 게 아니라 부처님 가르침을 깨닫지 못하여 내 마음이 어두운 것입니다. 범부중생들이 무지몽매하여 어두운 거지요.”
 
스님 손에 서 너 개의 염주가 들려있었다.
 
“강선생, 내가 얼마 전에 미얀마성지순례를 다녀오면서 염주 몇 개 사왔어요. 아직 아무에게 주지 않았는데 강선생에게 맘대로 선택할 여지를 줄 테니 맘에 든 염주를 고르시오. 그리고 잘 간직하시기 바랍니다.”
 
옥으로 만든 염주와 흑단나무로 만든 염주가 있었는데 그 중 흑단나무로 만든 염주를 들었다.
 
“저는 이 염주가 맘에 듭니다. 스님께서 염주에 스님 법명 새겨주시면 좋겠습니다. 누가 아나요, 이 염주로 인해서 제가 개과천선 할지도 모르잖아요. 스님이 제게 주신 정표라 생각할 겁니다.”
 
“아따, 그런 의미를 부여하면 제가 부담됩니다. 그냥 상이암 중이 선물로 주었다고도 하지 말고 이유 불문하고 받아들이세요. 강선생이 말귀가 트여 법문도 잘 알아듣고 해서 드린 겁니다.”
 
“그럼 감사한 마음으로 받겠습니다. 얼른 무릎을 꿇고 두 손을 올려 받았다.”
 
일찍이 어느 책에서 읽었던 대목을 스님에게 이야기 했다.
 
어린 나이에 단주를 받았다. 단주의 의미도 모르는데 어른들이 주니까 그냥 받았다. 나는 너무 어려서 보관을 하지 못할 것 같아 어머니에게 주었다. 세상 이치를 알 만한 청년이 되었을 때 어머니는 염주에 사연을 이야기했다. 어느 고승의 법명이 새겨진 단주였다. 그런데 단주에 새겨진 법명을 알아보니 200년 전 어느 절 고승이었다. 그 후로 간직하다가 중이 되기로 맘먹었다.
 
“스님, 혹 저도 지금 스님이 주신 이 흑단주로 인해 불가에 입문 할 수도 있습니다. 전혀 그냥 해 본 농담이 아닙니다.”
 
산중 문답으로 밤이 깊어지는 것도 모르게 시간이 지나갔다. 이슬비에 옷 젖듯이 밤이슬이 소리도 없이 내려 옷이 축축하게 젖었다. 평상을 정리하고 스님이 일러 준대로 법당 옆 작은 선방으로 들어갔다. 산중에서 잠이 쉽게 오지 않았다. 밤늦도록 번뇌 망상을 끊어야 한다는 설법을 들었지만 무릇 범부는 오만가지 잡생각으로 오히려 정신이 멀뚱거려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밤새도록 산짐승이 돌아다니는지 선방 바로 옆 산죽 밭 뒷산이 부스럭거렸다. 뒤척거리다 비몽 사몽간에 부처님이 환하게 웃으며 손을 잡고서 나를 따르라고 했다. 아직은 부처님과 친하지 못해서 다음에 가겠다고 도망치다가 잠을 설쳤다. 이른 새벽 미명의 시간인데 촛농 타는 냄새가 문틈으로 스며들었다. 어차피 잠은 깨어 더 누워 있어도 잠은 오지 않을 것 같아 밖으로 나갔다.
 
새벽 예불을 드리려고 스님은 법당에서 촛대에 불을 붙이고 있었다. 향냄새가 산 주위에 안개처럼 감돌았다. 목탁소리와 염불소리가 암자 주변을 깨우기 시작했다. 문을 열었다. 잔잔한 산바람이 일면서 알싸한 칡꽃 향이 싱그러웠다. 초겨울 싸락눈이 사드락, 사드락 댓잎에 내리면서 나는 소리처럼 조릿대가 바람에 부딪치며 내는 소리가 어머니가 키질을 하는 소리처럼 정겨웠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산중에 내가 있다는 것이 더 실감이 났다.
 
나는 그 어떤 종교를 그리 신망하지 않은 편이었다. 불자도 아니고 다만 주유천하를 즐기는 범부에 불과했다. 탁본 일을 핑계로 상이암에 가끔 다니면서 스님을 알고부터 스님의 불법강의를 몇 번 접했다. 처음엔 불교경전 언어가 매우 어렵고 이해불가였다. 그러나 이슬비에 옷 젖듯이 몇 번 반복하여 설법을 들으니 조금씩 이해가 되면서 설법에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언제부턴가 법문을 접하면서부터 이 암자를 올 때마다 이상세계에 들어온 것처럼 평온했다. 스님 혼자서 목탁을 두드리며 염불하고 있었다.
 
방해가 되지 않게 하려고 문을 조용히 열었는데 나무문이 삐그덕 소리를 냈다. 스님은 뒤를 돌아보지 않고 오로지 일념으로 집중하고 있었다. 스님 뒤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알 듯 모를 듯한 염불 속으로 빠져들었다. 나란 존재가 없어지고 허상이 앉아 있었다. 정신은 이미 육신을 이탈하여 의식의 세계가 없었다. 흉중구학이라 마음한가운데 자리 잡은 언덕과 골짜기를 뛰어넘는 공부가 그리 쉬운 일인가. 위리안치처럼 나를 내안에서 달아나지 못하도록 가시울타리를 치고 그 안에 나를 가두고 무엇을 볼 수 있단 말인가. 내가 내 안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먼저 내 울타리를 걷어내야 한다. 그 울타리 안에서 나와야 다른 세상을 볼 수 있는 것이다. 부처에게 구하지 말고 법에 집착하여 구하지 말고 대중에게 집착하여 구하지 말라는 한 대목에서 그럼 지금 부처 앞에 가부좌 틀고 앉아 예불하고 있는 이 상황은 무엇이란 말인가. 나는 법당에 오래도록 앉아 있었다. 깨어있었는지 졸고 있었는지 정신을 차려보니 염불소리도 목탁소리도 들리지 않고 스님이 보이지 않았다.
 
“강선생님, 깊이 심취되어 인사불성이라 그냥 저만 예불 마치고 나왔습니다.”
 
“부처님 앞에서 잘 주무시더군요. 허허허.”
 
법당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니 웃음이 나왔다. 동효스님은 겨울 스웨터를 입고 있었다.
 
“아침이라 서늘할 겁니다.”
 
“산중은 원래 이렇습니다. 그래서 겨울옷을 벗지 못하고 있습니다.”
 
예불을 마치고 따뜻한 차를 마셨다.
 
한나절이 되어도 암자 주변은 오리무중이었다. 화백나무 아래 평상위로 다람쥐가 올라왔다. 겁을 모르는 다람쥐였다. 층층이 구름처럼 깔린 안개 속을 잘게 부서진 햇살이 번득거렸다. 소로 길을 따라 걸었다. 계곡 물은 바위를 안고 미끄러지고 있었다. 몸에 달라붙은 안개를 걷어내면서 풀잎사이를 헤쳤다. 바위에 드러난 이끼는 푸른 융단을 깔아놓은 것 같고 암벽들은 자수 병풍을 두른 것 같았다. 한나절이 지나자 안개가 숲을 서서히 빠져나가고 있었다.
 
조금씩 앞산 뒷산 배경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안개에 갇혀있던 산새들이 자기 위치를 알리느라 소란스러웠다. 봉황은 숨어서 나타나지 않고 뱁새들만 울안에서 분주했다. 숲의 깊이는 알 수 없으나 안개 걷히고 강렬하게 비치는 그늘 속에서도 햇살이 저승처럼 밝은 빛이었다. 내 존재는 풀잎 그늘에 엎드린 곤충같이 작게 느껴졌다.
 
 
 

1. 구룡이 멈춘 곳

 
뿌리를 땅에 깊이 묻고 있는 화백나무는 굵었다. 세 사람이 팔을 벌려 서로 손 끝을 잡아야 간신히 둘레를 잴 수 있을 만큼 밑동과 흉고가 깊었다. 그 굵은 몸통 가지는67
 
위쪽으로 치솟으면서 하늘을 향해 뻗어있고 잔가지 끝에는 수없는 바늘 침 이파리가 땅바닥을 향해 일제히 머리를 숙이고 있다. 그 나무는 땅속에서 빨아올린 수분과 알 수 없는 기운을 가지와 잎사귀를 통해 하늘로 뿜어내고 있고 하늘로부터는 푸른빛과 햇빛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층층이 자리마다 충 생들과 조류들이 살고 있었다. 그들은 묵묵히 품어주는 것은 화백나무의 자비로움이었다. 그 나무 그늘아래에서 결과부좌를 한 채 명상에 잠겨있는 스님이 그 나무를 닮았다. 그 나무의 기운이 스님의 몸과 영혼에 투영되고 있었다. 수행을 한다는 것은 나무를 닮아간다는 것이다. 땅에 뿌리를 깊이 내리고 그 뿌리를 통해 기운을 받은 몸통과 머리로 하늘을 떠받치고 사는 저 나무의 의젓하고 성스러운 삶이 부처의 모습처럼 느껴졌다. 절간에서는 나무들도 머리를 숙일 줄 안다. 이것 또한 수행이다.
 
한바탕 부스대던 용구렁에 조화가 멈췄다. 마당앞 도랑에서 물소리가 긴급하게 흘렀다. 갑자기 쏟아진 비가 물길을 급하게 만들었다. 산속은 비가 조금만 와도 삽시간에 계곡으로 모여들어 급류를 만든다. 바위들이 우뚝우뚝 구름사이로 솟구치고 일초강목은 땅속에서 물을 끌어올려 숨을 쉬고 그 습한 숨결은 구름이 되어 비를 뿌리고 그 비를 수목들이 나눠먹고 산다. 강물이 되고 바다가 되어 물은 다시 공중으로 올라가 구름이 되고 구름은 다시 대지위로 비를 뿌린 것이 자연의 법칙이다.
 
산나리가 곳곳에 피고 엉겅퀴가 꽃을 피우고 기화요초가 너도나도 꽃을 피우면 벌 나비 곤충들은 제 것 마냥 통째로 달려들어 꿀을 만들고 있다. 잡초들은 아예 모든 것을 곤충들에게 맡기고 있었다. 살신성인들이다. 질서 없이 담쟁이 넝쿨들이 초록융단처럼 덮여있었다. 산 아래에는 수증기에 가려 안개처럼 보였다.
 
숲 골짜기에 새들이 분주하다. 텃새들이 넘나드는 길을 따라 걸었다. 암자 주변 텃새는 언제나 나무 끝 한 각지에 살아도 편안하다. 진공묘유 텅 빈 데에 오묘한 진리가 있다. 처마 끝 쇠 붕어는 맑은 바다를 머금었다. 빈 마당에 새들이 날아들었다. 새소리가 부드럽다. 세간에 자식 기르는 마음 다를 게 무엇인가. 새들은 저 나무 가지에 둥지를 틀고 알에서 새끼를 부화시켜 위험을 무릅쓰고 멀리까지 날아가 먹이를 찾아온다. 오로지 새끼들을 키우기 위해 어미는 존재한다. 숲을 이루는 나무와 대지를 기어 다니는 벌레와 날아다니는 새와 직립의 사람들이 화평하게 살아가는 상생과 화엄의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저 새를 보면서 느꼈다.
 
“비개인 뒤에 올라오는 산안개 속에 음이온이 발생하여 건강에 좋답니다. 비 그치면 한 번씩 걸으면서 오시오.”
 
가끔 주지스님은 음이온 이야기를 하셨다. 마침 비 개인 오후라서 시간여유도 있어 혼자서 사드락 사드락 산길을 걸었다. 비가 장대비로 쏟아지다가 금방 멈췄지만 계곡은 물이 불어나서 흰 포말을 일으키며 제법 큰 소리를 내면서 흘러내렸다. 암자에 갔었다. 사방이 계곡이어서 마치 폭포 안에 들어온 느낌이었다. 크고 작은 계곡은 물소리도 물줄기도 다양했다. 세상의 잡음이 하나도 들리지 않은 선계였다.
【소설】 강명자의 성수산이야기
• 8. 이성계 건국 설화를 찾아서
• 9. 산중문답 1
• 10. 산중문답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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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일: 2021년 1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