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60 ~ 1623] 조선 중기의 문신. 호는 관송(觀松), 또는 쌍리(雙里) 이다.
1582년(선조 15년)에 사마시에 합격, 1593년에 광릉 참봉을 지냈으며, 효성이 지극하여 고향에 정문이 세워졌다. 이듬해 별시 문과 중시에 다시 장원하였다.
이 때 선조의 후사 문제로 대북·소북이 대립하자 대북의 우두머리로서 광해군을 받들다가 왕의 노여움을 사서 갑산에 유배되었으나, 그 해 선조가 죽고 광해군이 즉위하자 예조 판서에 올랐다.
이어 영창 대군을 받들던 소북 일파를 죽이고 영창 대군을 강화도로 귀양보내는 등 악한 정치를 하다가, 1623년
인조 반정으로 광해군이 왕위에서 쫓겨나자 세 아들과 함께 처형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