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아아, 국사당 물방앗간에서 갈잎으로 머리 얹고
12
"재가승이 가지는 박해와 모욕을 같이하자던
17
이게 꿈인가! 에그, 아!, 에그! 이게 꿈인가,
19
봄이 와도 가을이 와도 몇 가을 봄 가고와도
25
마을 사람들의 비웃음에 못 이겨 열흘 만에 떠났소,
26
언문도 쓸데없고 밭 두렁도 소용없는 것 보고
32
모든 것을 알고 언문 아는 선비가 더 훌륭하게 되었소,
33
그러다가 고향이 그립고 당신을 못 잊오 술을 마셨더니,
34
어느새 나는 인육을 탐하는 자가 되었소,
36
매독, 임질, 주정, 노래, 춤,-깽깽이-
38
옛날이 육체가 없고 옛날의 정신이 없고 아 옛날의 지위까지.
41
아, 옛날이 그리워 옛날이 그리워서 이렇게 찾아왔소,
42
다시 아니 오려던 땅을 이렇게 찾아왔소,
44
아하, 어떻게 있소, 처녀 그대로 있소? 남의 처로 있소! 흥,
45
역시 베를 짜고 있소? 아, 그립던 순이여!
47
멀리 멀리 옛날의 꿈을 둘추면서 지내요.
50
"아니! 아니 나는 못 가오 어서 가세요,
53
조선 여자에 떨어지는 종 같은 팔자를 타고난 자이오,
58
소금 실어 수레를 끄을고 강 건너 넘어갔어요
65
"타박타박 처녀의 가슴을 드디고 가던 옛날의 당신은
67
어서 가요, 어서 가요 마을 구장에게 들키면
69
그러면서 문을 닫는다 애욕의 눈물을 씻으면서 -
74
종이 상전 같은 힘을 길러 탈을 벗으려면
78
굴강한 힘은 옛날을 복수하기에 넉넉하오.
79
율법도 막을 수 있고 혼도 자유로 낼 수 있소.
82
"나는 벌써 도회의 매연에서 사형을 받은 자이오,
84
쇠마치, 기계, 착가(捉枷), 기아(飢餓), 동사(凍死)
85
인혈을, 인육을 마시는 곳에서 폐병균이 유리하는 공기 속에서
94
"당신이 죽었더라면 한평생 무덤가를 지키구요
97
풀밭에서 옛날에 부르던 노래나 찾을까고 -"
104
"그러믄요! 도회에는 어여쁜 색시 있구 놀음이 있구,
108
해는 눈 속에서 깼다가 눈 속에 잠들고
109
사람은 추운 데 낳다가 추운 데 묻히고
111
오늘밤같이 북풍에 우는 당나귀 소리 듣고는
113
여름에는 소몰기, 겨울에는 마차몰이 그도 밀수입 마차랍니다,
116
몇 날이 안 가서 싫증이 나실 텐데 -"
127
소와 막잡이하는 우둔한 차부들이 하는 곳을."
130
모든 혼정(魂精)이 전통과 인습에 눌리어
136
의붓자식 같은 조선의 심장을 찾아가라고요!
138
국가와 예식과, 역사를 벗고 빨간 몸뚱이
139
네 품에 안기려는 것을 막으려느냐?-"
141
모든 절망 끝에 찾는 것 있는 듯이 -
142
하늘엔 언제 내릴는지 모르는 구름기둥이
144
멀리 개 짖는 소리, 새벽이 걸어오듯 -
149
색시 어깨를 짚고 노래부르던 옛일이 생각난다.
160
와 보시구려, 오는 날부터 순사가 뒤따라다닐 터인데
161
그러니 더욱 싫어요 벌써 간첩이라고 하던데!"
164
백은(白銀) 길 같은 손길에 흙이 묻는다고
167
당신은 역시 꿈에 볼 사람이랍니다, 어서 가세요."
170
에익 어찌 더러운 팔자를 가지고 났담!"
171
그러면서 그는 초조하여 손길을 마주 쥔다,
175
북극이, 눈에 가리운 북극이 보이고요.
176
거기에 빙산을 마주쳐 두 손길 잡고, 고요히
177
저녁 기도를 드리는 고아의 모양이 보인다,
189
죽을 자리도 없이 고향을 찾은 낙인(落人)이에요,
192
그의 두 눈에선 눈물이 두루루 흘렀다.
198
애처로운 옛날의 따스하던 애욕에 끌이면서,
203
그러나 그것은 감옥소 철비(鐵扉)와 같이 굳어졌다,
210
"어서 가세요, 동이 트면 남편을 맞을 텐데"
221
흙으로 돌아간대도 가산(家山)에 묻히는 송장,
224
-- 가요, 가요, 어서 가오. 가요?
225
뒤에는 반복된는 이 요음(擾音)만 요란코 -
228
저리로 웬 발자취 소리 요란히 들리었다.
230
처녀(妻女)와 청년은 놀라 하던 말을 뚝 그치고,
237
그는 어떤 굴강(屈强)한 남자이었다 가슴에 무엇을 안은-
239
"에그 인제 오시네!"하고 안을 듯한다,
240
청년은 "이것이 남편인가"함에 한껏 분하였다.
244
차부(그는 같이 갔던 차부였다)는 얼굴을 숙인다
246
그때 장정은 할 수 없다는 듯이 가만히 보꾸러미를 가리킨다
251
처녀(妻女)는 하들하들 떠는 손으로 가리운 헝겊을 벗겼다,
252
거기에는 선지피에 어리운 송장 하나 누웠다.
253
"앗!"하고 처녀(妻女)는 그만 쓰러진다,
254
"옳소, 마적에게 쏘였소, 건넛마을서 에그"하면서
257
마적에게 총 맞은 순이 사내 송장을 비췄다.
261
아까 총소리, 그 마적놈, 에그 하나님 맙소서!
263
밤새 길 게 우는 세 사람의 눈물을 얼리며 -"
266
해는 재듯이 떠 뫼고 들이고 초가고 깡그리 기어오를 때
275
송장은 어느 남녘진 양지쪽에 내려놓았다,
276
빤들빤들 눈에 다진 곳이 그의 묘지이었다.
277
"내가 이 사람 묘지를 팔 줄 몰랐어!"
278
하고 노인이 괭이를 멈추며 땀을 씻는다,
279
"이 사람이 이렇게 빨리 갈 줄은 몰랐네!"하고
283
거-먼 흙은 흰 눈 우에 무덤을 일궜다,
284
그때사 구장도 오구, 다른 차꾼들도, 청년도
285
여럿은 묵묵히 서서 서글픈 이 일을 시작하였다.
287
삼동에 묻히운 '병남(丙南)'의 송장은
289
아내는, 순이는 수건으로 눈물을 씻으며
292
이런 곳 가시길래 구장의 말도 안 듣고 -"
294
여러 사람은 여기에는 아무 말도 아니 하고 속으로
301
노루잡이 함정만한 장방형 구덩 하나가 생겼다.
307
거의 묻힐 때 죽은 병남이 글 배우던 서당집 노훈장이,
308
"그래도 조선땅에 묻힌다!"하고 한숨을 휘-쉰다.
309
여러 사람은 또 맹자나 통감을 읽는가고 멍멍하였다.
314
중국 군영에서 나팔소리 또따따 하고 울려 들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