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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신선전 (金神仙傳)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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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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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선전 (金神仙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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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선의 이름은 홍기다. 나이 열 여섯 살 때에 장가들어서, 한 번 관계하여 아들을 낳았다. 그런 뒤에 다시는 아내를 가까이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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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식을 물리치고 벽만 바라보고 앉았더니, 두어 해 만에 몸이 별안간 가벼워졌다. 국내의 이름난 산들을 두루 찾아 노닐면서, 늘 한숨에 수백 리를 달리고는 해가 이르고 늦음을 따졌다. 다섯 해 만에 신을 한 번 바꿔 신었으며, 험한 곳을 만나면 걸음이 더 빨라졌다. 그가 언젠가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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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을 걷고 물을 건너거나 달리는 배를 타면, 내 걸음이 오히려 늦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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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였다. 그는 밥을 먹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가 찾아오는 것을 싫어하지 않았다. 겨울에도 솜옷을 입지 않고 여름에도 부채질하지 않았으므로, 사람들은 그를 '신선'이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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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예전에 우울증이 있었다. 그때 마침 '김선생의 방기(方技)가 가끔 기이한 효과를 내기도 한다.'는 소문을 들었다. 그래서 그를 더욱 만나고 싶어했다. 윤생과 신생을 시켜서 남들 몰래 서울 안에서 그를 찾았지만, 열흘이 지나도 찾지를 못했다. 윤생이 이렇게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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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에 '김홍기의 집이 서학동에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기에 지금 가 보았더니, 그게 아니었습니다. 사촌 형제들 집에다 자기 처자식만 부쳐 두었더군요. 그래서 그의 아들에게 물어 보았더니, 이렇게 대답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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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버지는 한 해에 서너 번 다녀가시곤 하지요. 아버지 친구 한 분이 체부동에 사시는데, 그는 술 좋아하고 노래도 잘 부르는 김봉사라고 한다오. 누각동에 사는 김 첨지는 바둑 두기를 좋아하고, 그 뒷집 이만호는 거문고 뜯기를 좋아하지요. 삼청동 이만호는 손님 치르기를 좋아하고, 미원도 서초관이나 모교 장첨사 그리고 사복천에 사는 병지승도 모두들 손님 치르기와 술 마시기를 좋아합니다. 이문(里門) 안 조봉사도 역시 아버지 친구라는데 그 집엔 이름난 꽃들을 많이 심었고, 계동 유판관댁에는 기이한 책들과 오랜 된 칼이 있었지요. 아버지가 늘 그 집들을 찾아다녔으니, 당신이 꼭 만나려거든 그 몇 집들을 찾아보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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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 집들을 두루 다녀 보았지만, 어느 집에도 없었습니다. 다만 저녁나절에 한 집에 들렸더니, 주인은 거문고를 뜯고 두 손님은 잠자코 앉아 있더군요. 흰머리에다 갓도 쓰지 않았습디다. 저 혼자서 '아마 이 가운데 김홍기가 있겠지.' 생각하고 한참이나 서 있었습니다. 거문고 가락이 끝나길래 앞으로 나아가서, '어느 어른이 김선생이신지요?'하고 물었습니다. 주인이 거문고를 놓고는 '이 자리에 김씨는 없는데 너는 누구를 찾느냐?'하더군요. '저는 몸을 깨끗이 하고 찾아 왔으니, 노인께서는 숨기지 마십시오.' 했더니 주인이 그제야 웃으면서 '너는 김홍기를 찾는구나. 아직 오지 않았어.'하였습니다. '그러면 언제 오나요?' 하고 물었더니 이렇게 대답해 주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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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일정한 주인이 없이 머물고, 일정하게 놀러 다니는 법도 없지. 여기 올 때에도 미리 기일을 알리지 않고, 떠날 때에도 약속을 남기는 법이 없어. 하루에 두세 번씩 지나 갈 때도 있지만, 오지 않을 때에는 한 해가 그냥 지나가기도 하지. 그는 주로 창동(남창동, 북창동)이나 회현방(회현동)에 있고, 또 동관. 이현(梨峴), 동현(銅峴:구리개), 자수교, 사동, 장동, 대릉, 소릉 사이에도 가끔 찾아다니며 논다고 하더군. 그러나 그 주인들의 이름은 모두 알 수가 없어. 창동의 주인만은 내가 잘 아니, 거기로 가서 물어 보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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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창동으로 가서 그 집을 찾아가 물었더니, 거기서는 이렇게 대답합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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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이가 오지 않은 지 벌써 여러 달이 되었소. 장창교에 살고 있는 임동지가 술 마시기를 좋아해서 날마다 김씨와 더불어 내기를 한다던데, 지금까지도 임동지의 집에 있는지 모르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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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 집까지 찾아갔더니, 임동지는 여든이 넘어서 귀가 몹시 어둡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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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말하길. '에이구, 어젯밤에 잔뜩 마시고 아침나절 취흥에 겨워 강릉으로 돌아갔다우.' 하길래 멍하니 한참 있다가 '김씨가 보통 사람과 다른 점이 있습니까?'하고 물었지요. 임동지가 '한낱 보통 사람인데 유달리 밥을 먹지 않더군.'하기에 '얼굴 모습은 어떤가요?' 물었지요. '키는 일곱 자가 넘고, 여윈 얼굴에 수염이 난 데다, 눈동자는 푸르고, 귀는 길면서도 누렇더군.' 하기에, '술은 얼마나 마시는가요?' 물었지요. '그는 한잔만 마셔도 취하지만, 한 말을 마셔도 더 취하지는 않아. 그가 언젠가 취한 채로 길바닥에 누웠었는데, 아전이 보고서 이레 동안 잡아 두었었지. 그래도 술이 깨지 않자, 결국 놓아주더군.' 하더군요. '그의 말솜씨는 어떤가요?' 물었더니 '남들이 말할 때에는 문득 앉아서 졸다가도, 이야기가 끝나면 웃음을 그치지 않더군.' 합디다. '몸가짐은 어떤가요?' 물었더니, '참선하는 것처럼 고요하고, 수절하는 과부처럼 조심하더군.'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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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일찍이 윤생이 힘들여 찾지 않았다고 의심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신생도 수십 집을 찾아보았는데, 모두 만나지 못하였다. 그의 말도 윤생과 같았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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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기의 나이는 백 살이 넘었으며, 그와 함께 노니는 사람들은 모두 기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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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였고, 또 어떤 사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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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 않다. 홍기는 나이 열 아홉에 장가들어서 곧 아들을 낳았는데, 지금 그 아이가 겨우 스물밖에 안 되었으니, 홍기의 나이는 아마 쉰 남짓일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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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였다. 어떤 사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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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선이 지리산에서 약을 캐다가 벼랑에 떨어져 돌아오지 못한 지 벌써 수십 년이나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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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였고, 또 어떤 사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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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까지도 그 어둠침침한 바위틈에서 무엇인지 반짝반짝 빛나는 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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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였다. 그러자 또 어떤 사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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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그 늙은이의 눈빛이야. 그 산골짜기 속에선 이따금 길게 하품하는 소리도 들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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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였다. 그러나 지금 김홍기는 '오직 술이나 잘 마실 뿐이지, 무슨 술법이 있는 것도 아니고, 오로지 그의 이름만을 빌려서 행할 따름이다.'는 소문만 들린다. 그래서 내가 또 동자(童子) 복을 시켜서 그를 찾아다니게 하였지만, 끝내 찾지 못하였다. 그 때가 계미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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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듬해 가을에 내가 동쪽 바닷가에서 놀다가, 저녁 무렵 단발령에 올라 금강산을 바라보았다. '그 봉우리가 일만 이천'이라고 하는데, 그 산빛이 희었다. 산에 들어가니 단풍나무가 가장 많아서, 바야흐로 붉어가고 있었다. 사리, 느릅, 여자 따위가 모두 서리를 맞아 노랗게 되었고, 으루나무와 전나무는 더욱 푸르렀다. 그 밖에 사철나무가 많았는데, 산 속의 기이한 나뭇잎들이 모두 누렇고 붉었다. 둘러보면서 즐기다가 가마를 멘 스님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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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산속에 혹시 도술을 통달한 이상한 스님이 있는가요? 더불어 노닐고 싶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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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스님은 없고, '선암에 벽곡( 穀)하는 사람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영남에서 온 선비라고 하는데, 알 수 없습니다. 선암에 이르는 길이 험해서, 그곳까지 가 본 사람이 없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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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중에 장안사에 앉아서 여러 스님들에게 물었지만, 모두 같은 대답을 하였다.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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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곡하는 사람이 백 일을 채우면 떠난다고 하는데, 이제 거의 구십 일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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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였다. 나는 '그 이가 아마도 신선이겠지' 싶어서, 매우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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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중에라도 곧 찾아가고 싶었다. 이튿날 아침 진주담 밑에 앉아서 같이 놀러 온 친구들을 기다렸다. 오랫동안 사방을 둘러보았지만, 모두들 약속을 어기고 오지 않았다. 마침 관찰사가 여러 고을을 순행하는 길에 금강산까지 들어와, 여러 절간에 묵으며 노닐고 있었다. 수령들이 모두 찾아와 음식을 장만하고, 나가 놀 때마다 따르는 스님이 백여 명이나 되었다. 게다가 선암까지 이르는 길이 높고 험해서 나 혼자는 갈 수 없으므로, 늘 영원암 백탑 사이에만 오가며 마음이 서운했다. 마침 비가 오래도록 내리므로 산 속에서 엿새나 머물렀다. 그런 뒤에야 선암에 이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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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암은 수미봉 아래에 있었다. 내원통에서 이십 여리를 가면 천길이나 되는 커다란 바위가 깍은 듯이 서 있는데, 길이 끊어져서 쇠사슬을 잡고 공중에 매달려서 올라갔다. 그곳에 이르자 빈 뜨락에는 새 울음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탑(榻) 위에는 조그만 구리 부처가 있고, 다만 신 두 켤레가 놓여 있을 뿐이었다. 나는 못내 섭섭해서 어정거리며 한참이나 바라보다가, 바위 벽에다 이름을 쓰고는 한숨을 내쉬면 떠났다. 그곳에는 언제나 구름 기운이 둘러 있었고, 바람조차 쓸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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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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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仙)이란 산에 사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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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였고, 또 어떤 사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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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속으로 들어가는게 바로 선(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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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였다. 선(僊)이란 선선(僊僊)케 가벼이 공중으로 들려 오른다는 뜻이니만큼, 벽곡하는 자라도 반드시 신선은 아닐 것이다. 울울(鬱鬱)히 뜻을 얻지 못한 자가 바로 신선일 것이다.
【원문】김신선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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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1년 08월 2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