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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五月의 산골작이 ◈
해설   본문  
김유정
1
나의故鄕(고향)은 저 江原道(강원도) 산골이다. 春川邑(춘천읍)에서 한 二十里假量(이십리가량) 山(산)을끼고 꼬불꼬불 돌아 들어가면 내닷는 조고마한 마을이다. 앞뒤左右(좌우)에 굵찍굵찍한 山(산)들이 빽 둘러섯고 그속에 묻친 안윽한 마을이다. 그山(산)에 묻친 模樣(모양)이 마치 옴푹한 떡시루 같다하야 洞名(동명)을 실레라 부른다. 집이라야 大槪(대개) 씨러질듯한 헌 草家(초가)요 그나마도 五十戶(오십호)밖에 못되는 말하자면 아주貧弱(빈약)한 村落(촌락)이다.
 
2
그러나 山川(산천)의 風景(풍경)으로 따지면 하나 흠잡을데 없는 귀여운 田園(전원)이다. 山(산)에는 奇花異草(기화이초)로 바닥을 틀었고, 여기저기에 쫄쫄거리며 내솟는 藥水(약수)도 맑고 그리고 우리의 머리우에서 골골거리며 까치와 是非(시비)를 하는 노란 꾀꼬리도 좋다.
 
3
周圍(주위)가 이렇게 詩的(시적)이니만치 그들의 生活(생활)도 어데인가 詩的(시적)이다. 어수룩하고 꾸물꾸물 일만하는 그들을 對(대)하면 딴 世上(세상)사람을 보는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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僻村(벽촌)이라 交通(교통)이 不便(불편)함으로 現社會(현사회)와 去來(거래)가 드물다. 片紙(편지)도 나달에 한번식밖에 안온다. 그것도 配達夫(배달부)가 自轉車(자전거)로 이 산골짝까지 오기가 괴로워서 道中(도중)에 마을사람이나 만나면 片紙(편지)좀 傳(전)해달라고 附託(부탁)하고는 도루 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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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都會(도회)와 因緣(인연)이 멀음으로 그人心(인심)도 그리 野薄(야박)지가 못하다. 勿論(물론) 極(극)히 窮(궁)한 生活(생활)이 아닌것은 아니나 그러나 그들은 아즉 齷齪(악착)한 行動(행동)을 모른다. 그證據(증거)로 아즉 나의 記憶(기억)에 傷害事件(상해사건)으로 마을의 騷動(소동)을 일으킨 적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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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모이어 일하는것을 보아도 퍽 友誼的(우의적)이요 따라 愉快(유쾌)한 勞働(노동)을 하는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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五月(오월)쯤되면 農家(농가)에는 한창 바뿔 때이다. 밭일도 急(급)하거니와 논에 모도 내야한다. 그보다도 논에 거름을 할 갈이 于先(우선) 必要(필요)하다. 갈을 꺾는데는 갈잎이 알맞게 퍼드러젔을때 그리고 쇠기前(전)에 불야살야 꺾어나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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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境遇(경우)에는 一時(일시)에 많은 품이 든다. 그들은 열아문식 한떼가 되어 돌려가며 품아시로 일을 해주는것이다. 이것은 일의 倦怠(권태)을 잊을뿐만 아니라 또한 일의 能率(능률)까지 오르게 된다.
 
9
갈때가 되면 산골에서는 老幼(노유)를 莫論(막론)하고 무슨 名節(명절)이 나처럼 空然(공연)히 기꺼웁다. 왜냐면 갈꾼을 爲(위)하야 막걸리며, 고등어, 콩나물, 두부에 이팝 ——— 이렇게 別食(별식)이 버러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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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군하면 얼뜬 앉은 자리에서 밥 몇그릇식 치는 貪食家(탐식가)로 定評(정평)이 났다. 事實(사실) 갈을 꺾을때 그들이 먹는 食稟(식품)은 놀라운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먹지 않으면 몸이 堪當(감당)해나가지 못할만치 일도 亦(역) 고된 일이다. 거한 山(산)으로 헤매이며 갈을 꺾어서 한짐잔뜩 지고 오르나리자면 방울땀이 떨어지니 여느 일와 勞働(노동)이 좀 다르다. 그러니만치 산골에서는 갈꾼만은 特(특)히 잘 먹이고 잘 待接(대접)하는 法(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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開東(개동)부터 어두울때까지 그들은 밥을 다섯끼를 먹는다. 다시 말하면, 朝飯(조반), 點心(점심)겨누리, 點心(점심), 저녁겨누리, 저녁 ——— 이렇게 여러번 먹는다. 게다가 참참이 먹이는 막걸리까지 친다면 하루에 無慮(무려) 여덟번을 食事(식사)를하는 세음이다. 그것도 감투밥으로 처올려담은 큰 그릇의 밥한사발을 그들은 주는대로 어렵지않게 다 치고치고 하는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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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잘먹었다. 이렇게 먹어야 허리가 안휘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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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그들의 가진 知識(지식)이다. 일에 過勞(과로)하야 허리가 아픈것을 모르고 그들은 먹은 밥이 삭어서 창자가 훌쭉하니까 허리가 휘는줄로만 안다. 그러니까 빈 창자에 연실 밥을 메꿔서 꼿꼿이 만들어야 따라 허리도 펴질걸로 알고 굳이 먹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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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꾼들은 흖이 밖앝뜰에 멍석을 펴고 쭉 돌라앉아서 술이고 밥이고 한태 즐긴다. 어쩌다 洞里(동리)사람이 그앞을 지나가게되면 그들은 손짓으로 불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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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게 이리와 한잔하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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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이 따스하니 한술 뜨게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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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옆 사람을 불러서 가치 飮食(음식)을 나느는것이 그들의 禮儀(예의)다. 어떤 사람은 아무개집의 갈 꺾는다 하면 일부러 찾아와 제목을 堂堂(당당)이 보고 가는이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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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故鄕(고향)에 있을때 갈꾼에게 여러번 얻어먹었다. 그 막걸리의 맛도 좋거니와 웅게중게 모이어 한家族(가족)같이 주고받는 그 氣分(기분)만도 깨끗하다. 산골이 아니면 보기 어려운 귀여운 團欒(단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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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산골에는 잔디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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山(산) 비알에 포곤히 깔린 잔디는 제물로 寢臺(침대)가 된다. 그우에 바둑이와 가치 벌룽 자빠저서 默想(묵상)하는 자미도 좋다. 여길 보아도 저길 보아도 우뚝우뚝 섯는 모조리 푸른 山(산)이매 雜音(잡음)하나 들리지 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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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산속에 누어 생각하자면 비로소 自然(자연)의 아름다움을 고요히 느끼게 된다. 머리우로 나라드는 새들도 각가지다. 어떤 놈은 밤나무 가지에 앉어서 한다리를 반짝 들고는 길음한 꽁지를 회회 두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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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죽 ———! 삐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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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노래를 부른다. 그러면 이번에는 하얀 새가 “뺑!” 하고 나라와 앉어서는 고개를 까땍까땍 하다가 도루 “뺑!” 하고 다라난다. 혹은 나무줄기를 쪼며 돌아다니는 딱따구리도 있고. 그러나 떼를 지어 푸른 가지에서 遊戱(유희)를 하며 짖어귀는 꾀꼬리도 몹시 귀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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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에는 草木(초목)의 내음새까지도 特殊(특수)하다. 더욱이 새로 튼 잎이 한창 퍼드러질 臨時(임시)하야 바람에 풍기는 그 香臭(향취)는 一筆(일필)로 形容(형용)하기 어렵다. 말하자면 개운한 그리고 졸음을 請(청)하는 듯한 그런 나른한 香氣(향기)다. 一種(일종)의 煽情的(선정적) 魅力(매력)을 느끼게하는 짙은 香氣(향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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뻐꾹이도 이 내음새에는 敏感(민감)인 모양이다. 이때로부터 하나 둘 울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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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해만에 뻐꾹이의 울음을 처음 드를적만치 반가운 일은 없다. 憂鬱(우울)한 그리고 구슬픈 그 울음을 울어대이면 가뜩이나 閑寂(한적)한 마을이 더욱 느러지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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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데서는 논이나 밭을 가를때 노래가 없다한다. 그러나 산골에는 소모는 노래가 따로히 있어 논밭일에 소를 부릴적이면 依例(의례)히 그 노래를 부른다. 소들도 洗鍊(세련)이 되어 主人(주인)이 부르는 그 노래를 잘 理解(이해)하고있다. 그래서 노래대로 左右(좌우)로 方向(방향)을 變(변)하기도 하고 또는 步調(보조)의 速度(속도)를 느리고 주리고, 이렇게 順從(순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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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발치에서 소를 몰며 처량히 부르는 그 노래도 좋다. 이것이 모두 산골이 홀로 가질수있는 聖(성)스러운 音樂(음악)이다. 산골의 音樂(음악)으로 치면 물소리도 빼지는 못하리라. 쫄쫄 내솟는 샘물소리도 좋고 또는 촐랑촐랑 흘러나리는 시내도 좋다. 그러나 세차게 콸콸 쏠려나리는 큰내를 對(대)하면 精神(정신)이 번쩍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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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에 모를 내는것도 이맘때다. 시골서는 모를 낼적이면 새로운 希望(희망)이 가득하다. 그들은 질거운 노래를 불러가며 가을의 收穫(수확)까지 聯想(연상)하고 한포기 한포기의 모를 심어나간다. 농군에게 있어서 모는 그야말로 그들의 자식과같이 貴重(귀중)한 물건이다. 모를 내고나면 그들은 그것만으로도 한해의 農事(농사)를 다 진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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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악네들도 일꾼에게 밥을 해내기에 눈코뜰새없이 바뿌다. 그리고 큰 함지에 처담아 이고는 일터에까지 나르지 않으면 안된다. 아이들은 그 함지 끝에 줄레줄레 따라다니며 默默(묵묵)히 제목을 要求(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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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갈때 前後(전후)하야 송아가 한창이다. 바람이라도 세게 불적이면 시냇面(면)에 송아가루가 노랗게 엥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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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악네들은 機會(기회)를 타서 머리에 手巾(수건)을 쓰고 山(산)으로 송아를 따러간다. 或(혹)은 나무우에서 或(혹)은 나무아래에서 서루 맞붙어 일을하며 저이도 모를 소리를 몇마디 지꺼리다는 抱腹卒倒(포복졸도)할듯이 깔깔대고 하는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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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五月頃(오월경) 산골의 生活(생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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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한중턱에 번듯이 누어 마을의 이런 生活(생활)을 나려다보면 마치 그림을 보는듯하다. 勿論(물론) 理知(이지)없는 無識(무식)한 生活(생활)이다. 마는 좀더 有心(유심)히 觀察(관찰)한다면 理知(이지)없는 生活(생활)이 아니고는 맛볼수 없을만한 그런 純潔(순결)한 情緖(정서)을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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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故鄕(고향)을 떠난지 한 四年(사년)이나 되었다. 그동안 얼마나 山川(산천)이 변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금쟁이의 禍(화)를 아즉 입지않은 곳이매 桑田碧海(상전벽해)의 變(변)은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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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내 健在(건재)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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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箱)은 필시 죽음에게 진 것은 아니리라. 상은 제 육체의 마지막 한 조각까지라도 손수 길러서 없애고 사라진 것이리라. 상은 오늘과 같은 환경과 종족과 무지 속에 두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천재였다. 상은 한 번도 잉크로 시를 쓴 일은 없다. 상의 시에는 언제든지 피가 임리(淋漓)한다. 그는 스스로 제 혈관을 짜서 '시대의 혈서'를 쓴 것이다. 그는 현대라는 커다란 파선(破船)에서 떨어져 표랑(漂浪)하던 너무나 처참한 선체(船體) 조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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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방 N, 등의자(藤椅子)에 기대앉아 흐릿한 담배 연기 저편에 반나마 취해서 몽롱한 상의 얼굴에서 나는 언제고 '현대의 비극'을 느끼고 소름 쳤다. 약간의 해학과 야유와 독설이 섞여서 더듬더듬 떨어져 나오는 그의 잡담 속에는 오늘의 문명의 깨어진 메커니즘이 엉켜 있었다. 파리에서 문화 옹호를 위한 작가 대회(作家大會)가 있었을 때 내가 만난 작가나 시인 가운데서 가장 흥분한 것도 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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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이 우는 것을 나는 본 일이 없다. 그는 세속에 반항하는 한 악한(?) 정령(精靈)이었다. 악마더러 울 줄을 모른다고 비웃지 말아라. 그는 울다울다 못해서 인제는 누선(淚腺)이 말라 버려서 더 울지 못하는 것이다. 상이 소속한 20세기의 악마의 종족들은 그러므로 번영하는 위선(僞善)의 문명에 향해서 메마른 찬웃음을 토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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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리고 어지럽고 게으른 시단(詩壇)의 낡은 풍류에 극도의 증오를 품고 파괴와 부정에서 시작한 그의 시는 드디어 시대의 깊은 상처에 부딪혀서 참담(慘憺)한 신음 소리를 토했다. 그도 또한 세기의 암야(暗夜) 속에서 불타다가 꺼지고 만 한 줄기 첨예(尖銳)한 양심이었다. 그는 그러한 불안 동요 속에서 동(動)하는 정신을 재건하려고 해서 새 출발을 계획한 것이다. 이 방대(尨大)한 설계의 어귀에서 그는 그만 불행이 자빠졌다. 상의 죽음은 한 개인의 생리의 비극이 아니다. 축쇄(縮刷)된 한 시대의 비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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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단과 또 내 우정의 열석(列石) 가운데 채워질 수 없는 영구한 공석을 하나 만들어 놓고 상은 사라졌다. 상을 잃고 나는 오늘 시단이 갑자기 반세기 뒤로 물러선 것을 느낀다. 내 공허를 표현하기에는 슬픔을 그린 자전(字典) 속의 모든 형용사가 모두 다 사치하다. 고 이상―내 희망과 기대 위에 부정의 낙인(烙印)을 사정없이 찍어 놓은 세 억울한 상형 문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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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년 만에 상을 만난 지난 3월 스무날 밤, 도쿄 거리는 봄비에 젖어 있었다. 그리고 왔다는 상의 편지를 받고 나는 지난겨울부터 몇 번인가 만나기를 기약했으나 종내(終乃) 센다이를 떠나지 못하다가 이날이야 도쿄로 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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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의 숙소는 구단(九段) 아래 꼬부라진 뒷골목 2층 골방이었다. 이 날개 돋친 시인과 더불어 도코 거리를 만보(漫步)하면 얼마나 유쾌하랴 하고 그리던 온갖 꿈과는 딴판으로, 상은 날개가 아주 부러져서 기거(起居)도 바로 못하고 이불을 뒤집어쓰고 앉아있었다. 전등불에 가로 비친 그의 얼굴을 상아(象牙)보다도 더 창백하고 검은 수엽이 코밑과 턱에 참혹하게 무성하다. 그를 바라보는 내 얼굴의 어두운 표정이 가뜩이나 병들어 약해진 벗의 마음을 상해 올까 보아서 나는 애써 명랑을 꾸미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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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당신 얼굴이 아주 피디아스의 제우스 신상(神像) 같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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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웃었더니 상도 예의 정열 빠진 웃음을 껄껄 웃었다. 사실은 나는 듀비에의 〈골고다〉의 예수의 얼굴을 연상했던 것이다. 오늘 와서 생각하면, 상은 실로 현대라는 커다란 모함에 빠져서 십자가를 걸머지고 간 골고다의 시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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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만 누우라고 해도 듣지 않고 상은 장장 두 시간이나 앉은 채 거의 혼자서 그동안 쌓인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엘먼을 찬탄하고 정돈(停頓)에 빠진 몇몇 문운(文運)을 걱정하다가 말이 그의 작품에 대한 월평에 미치자 그는 몹시 흥분해서 속견(俗)을 꾸짖는다. 재서(載瑞)의 모더니티를 찬양하고 또 씨의 〈날개〉 평은 대체로 승인하나 작자로서 다소 이의(異議)가 있다고도 말했다. 나는 벗이 세평(世評)에 대해서 너무 신경과민한 것이 건강을 더욱 해칠까 보아서 시인이면서 왜 혼자 짓는 것을 그렇게 두려워하느냐, 세상이야 알아서 주든 말든 값있는 일만 정성껏 하다가 가면 그만이 아니냐 하고 어색하게나마 위로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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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의 말을 들으면, 공교롭게도 책상 위에 몇 권의 상스러운 책자가 있었고, 본명 김해경(金海卿) 외에 이상이라는 별난 이름이 있고, 그리고 일기 속에 몇 줄 온건하달 수 없는 글귀를 적었다는 일로 해서, 그는 한 달 동안이나 ○○○에 들어가 있다가 아주 건강을 상해 가지고 한 주일 전에야 겨우 자동차에 실려서 숙소로 돌아왔다는 것이다. 상은 그 안에서 다른 ○○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수기(手記)를 썼는데 예의 명문(名文)에 계원(係員)도 찬탄하더라고 하면서 웃는다. 니시간다 경찰서원 속에조차 애독자를 가졌다고 하는 것은 시인으로서 얼마나 통쾌한 일이냐 하고 나도 같이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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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은 그 부근에 계신 허남용 씨 내외가 죽을 쑤어다 준다고 하고, 마침 소운(素雲)이 도쿄에 와 있어서 날마다 찾아 주고 주영섭(朱永涉), 한천(韓泉) 여러 친구가 가끔 들려 주어서 과히 적막하지는 않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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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 낮에 다시 찾아가서야 나는 그 방이 완전히 햇빛이 들지 않는 방인 것을 알았다. 지난해 7월 그믐께다. 아침에 황금정(黃金町) 뒷골목 상의 신혼 보금자리를 찾았을 때도 방은 역시 햇빛 한 줄기 들지 않는 캄캄한 방이었다. 그날 오후 조선일보사 3층 뒷방에서 벗이 애를 써 장정을 해준 졸저(拙著) 《기상도》(氣象圖)의 발송을 마치고 둘이서 창에 기대서서 갑자기 거리에 몰려오는 소낙비를 바라보는데, 창전(窓前)에 뱉는 상의 침에 빨간 피가 섞였었다. 평소부터도 상은 건강이라는 속된 관념은 완전히 초월한 듯이 보였다. 상의 앞에서 설 적마다 나는 아침이면 정말(丁抹) 체조(體操) 잊어버리지 못하는 내 자신이 늘 부끄러웠다. 무릇 현대적인 퇴폐에 대한 진실한 체험이 없는 나는 이 점에 대해서는 늘 상에게 경의를 표했다. 그러면서도 그를 아끼는 까닭에 건강이라는 것을 늘 너무 천대하는 벗이 한없이 원망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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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은 스스로 형용해서 천재일우(千載一遇)의 기회라고 하면서 모처럼 도쿄서 만나 가지고도 병으로 해서 뜻대로 함께 놀러 다니지 못하는 것을 한탄한다. 미진(未盡)한 계획은 4월 20일께 도쿄서 다시 만나는 대로 미루고 그때까지는 꼭 맥주를 마실 정도로라도 건강을 회복하겠노라고, 그리고 햇볓이 드는 옆방으로 이사하겠노라고 하는 상의 뼈 뿐인 손을 놓고 나는 도쿄를 떠나면서 말할 수 없이 마음이 캄캄했다. 상의 부탁을 부인께 아뢰려 했더니, 내가 서울 오기 전날 밤에 벌써 부인께서 도쿄로 떠나셨다는 말을 서울 온 이튿날 전차 안에서 조용만(趙容萬) 씨를 만나서 들었다. 그래 일시 안심하고 집에 돌아와서 잡무에 분주하느라고 다시 벗의 병상을 보지도 못하는 사이에 원망스러운 비보(悲報)가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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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다녀오오. 내 죽지는 않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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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상이 마지막 들려준 말이 기억 속에 너무 선명하게 솟아올라서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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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우리들 몇몇 남은 벗들이 상에게 바칠 의무는 상의 피 엉킨 유고(遺稿)를 모아서 상이 그처럼 애써 친하려고 했던 새 시대에 선물하는 일이다. 허무 속에서 감을 줄 모르고 뜨고 있을 두 안공(眼孔)과 영구히 잠들지 못할 상의 괴로운 정신을 위해서 한 암담(暗澹)하나마 그윽한 침실로서 그 유고집(遺稿集)을 만들어 올리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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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믿는다. 상은 갔지만 그가 남긴 예술은 오늘도 내일도 새 시대와 함께 동행(同行)하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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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만강이라면 조선·만주·러시아의 국경이니 만큼 거기에 대한 역사나 재미있는 전설 같은 것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역사의 소양이 없는 나로서는 극히 난처한 일이다. 더욱 두만강이라면 우리로서는 예찬보다는 원한이 많을 것이다. 좌우간 예찬이 될지 원한이 될지 생각나는 대로 붓을 옮겨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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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만강은 백두산에서 발원하여 동해로 흐르는 일천오백여 리나 되는 장강이다. 두만강수의 분량은 조선에서 흐르는 물의 분량보다도 만주에서 흐르는 분량이 더 많다. 간도 용정촌으로 흐르는 해란강이며 국자가의 연길강, 백초구의 백초구강, 훈춘의 훈춘강 등이 고려령(高麗嶺)을 넘어 두만강에서 합류된다. 그리고 두만강이란 이름도 만주어에서 나온 이름이니 즉 도문색금(圖門索禽)이란 만주어에서 색금을 떼고 도문만을 붙여 두만이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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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문색금이란 뜻은 새가 많이 사는 골짜기로 해석이 된다고 한다. 그런 것을 보아 두만강 일대에는 새가 많이 깃을 들이고 있던 모양이다. 역사적으로는 분명하지 않으나 금국(金國) 당시에 천조제(天祚帝)가 신하를 많이 데리고 꿩사냥을 하곤 하였다는 전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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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사천여 년 전에 만주는 부여족이 개척하였다. 부여족에서 갈라진 읍루족이 이 근방에서 살았고 고구려가 망하고 발해가 일어나자 여기에는 발해 동경인 솔빈부(率賓府)가 되었으며 요나라가 흥하면서 이곳을 동변성(東邊城)이라 하였다. 다음에 요나라를 치고 금나라가 들어서면서 여기를 동변도라 하여 전자에 말한 바와 같이 여기에는 사람을 살지 못하게 하고 꿩사냥을 하는 놀이터로 만들었다는 전설이 있다. 그 후 몽고족이 원이라는 국호를 가지고 중원에 호령하자 여기다 동변도 총독부를 두게 되었고 원나라가 망하고 명나라가 되면서 회령(會寧)이라 하였다. 지금의 회령이란 이름이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회령에는 모린위(毛嶙衛)라는 군대주둔소를 두게 되었으며 여전히 이 지방에는 부여족에서 내려온 여진족이 살고 있었다. 명국이 망하고 청국이 성하자 그때 조선에는 이조 세종 3년이었다. 세종왕은 신하인 김종서를 이 지방에 보내어 여진족을 토벌한 후에 두만강을 국경으로 정하였다. 그 전에는 회령에서 청진까지 일직선을 그어 이남이 조선이었다. 그러던 것이 이때에 와서야 비로소 두만강이 국경이 되었다. 당시에 여진족은 눈으로 차마 보지 못할 압박을 받으며 죽지 못하여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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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그러하거니와 권력자 앞에 그들의 생명은 풍전등화였다. 불교를 강제로 믿게 하는데 너희들은 가족을 데리고 집에서 믿어라 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산에서 믿는 불교를 집에서 믿게 되었다. 이른바 재가승(在家僧)이란 말이 여기서 나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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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항복의 기념으로 지은 종성(鍾城)에 있는 수항루(受降樓)를 그들은 얼마나 원망하였을까. 그리고 수항루를 끼고 굽비굽비 감돌아 내리는 두만강을 얼마나 넘고 싶었을까. 그러나 국경의 수비가 엄하니 어찌 감히 넘으 랴. 달 밝은 밤 그들은 고달픔에 못 이겨 아마도 두만강에 몸을 맡겼을 것이다. 연대는 분명하지 않으나 필경 이때로부터 두만강을 넘는 페이지가 시작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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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에 조선은 청국과의 국제문제를 두려워하여 국경을 넘는 자에게는 용서 없이 처치하였다. 그리고 양국은 통상조약이 성립되어 회령에 개시장(開市場)을 열게 되었으며, 두만강 이북으로부터 간도 국자가 근방까지는 완충 지대라 하여 통상(通商)시에만 인마가 빈번할 뿐이요, 그 시기가 지나면 완충지대는 공지이었다. 그러므로 두만강 일대에 있는 여진족이야말로 이 자유천지를 날마다 밤마다 넘겨다 보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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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내려오던 것이 지금으로부터 66년 전 기사(己巳) 경오(庚午)년에 무서운 흉년을 만난 백성들은 이제야말로 막다른 골목에 달했으니 죽을 줄 뻔히 알면서도 두만강을 넘기 시작하였다. 죽이기로 당치 못할 것을 안 정부에서는 나중에는 방임하여 버렸다. 그러니 백성들이 막 쓸어 간도로 나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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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간도라면 왕청, 연길, 화룡, 훈춘 이 4현을 말함이니 이 넓은 지광(地廣)에 조선인이 사십만이다. 이 사십만은 누구나 두만강과 인연이 깊을 것이다.
 
64
재미있는 이야기가 두만강에 있다. 종성 대안(對岸)인 두만강 가운데는 간도라는 조그만 섬이 있었다. 그 섬은 아주 옥토이어서 곡식을 심으면 조선 땅에서 나는 곡식보다 배나 더 나곤 하였다. 그러니 백성들은 몰래 건너가서 농사를 짓곤 하였다. 그러나 강국인 청국이 무섭고 국경의 수비가 엄하여서 그들은 마음을 놓고 농사를 짓지 못하였다. 그래서 하루는 밤중에 백성들이 모여서 간도를 조선으로 옮겨오자고 의논이 되었다. 그들은 즉시 두만강으로 나가서 조선 쪽으로 흐르는 물줄기를 만주 쪽으로 흐르는 물줄기로 옮기기 위하여 흙으로 메워서 종내는 간도를 조선땅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지금도 종성에 가보면 그 자취가 남아 있다.
 
65
이렇게 간도를 조선땅으로 만들기 전에 몰래 이 섬에 와서 농사 짓는 것을 간도농사라고 하였다. 그래서 그 후부터는 간도가 아니라도 두만강을 건너 농사 짓는 것을 모두 간도농사라고 하였다. 지금의 간도란 두만강에서 나온 말이다. 이 전설을 미루어 간도는 두만강이 낳아 놓은 듯싶다. 간도의 어머니인 두만강.
 
66
누구든지 간도를 알아보려면 이 두만강부터 먼저 알아야 할 것이다.
 
67
내가 처음으로 두만강을 대하기는 1931년 봄 바야흐로 신록이 빛나는 그때 이었다. 나는 차창에 의지하여 두만강을 바라보았다. 신록이 무르익은 버들 숲을 끼고 흐르고 흐르는 저 강수(江水)!
 

 
68
나는 문득 이런 노래를 생각하였다.
 
69
여인은 애기 업고
70
사내는 쪽박 차고
71
지친 다리 끌면서
72
강가에 섰소.
 
73
강물에 발 담그며
74
돌아다 보니
75
강변엔 봄이오.
76
버들가지 푸르렀소.
 
77
강물은 무심히도
78
흐르고 흐르는데
79
애기는 울고 울고
80
석양은 기오.
 
81
아직까지도 이 노래가 내 머리에서 감돌다가 펜을 드니 술술 달려 나온다.
 
 
 
 
82
1932년 6월 3일 아침.
 
83
씻은 듯이 맑게 개인 하늘가에는 비행기 한 대가 프로펠러의 폭음을 발사하면서 배회할 때 용정촌을 등지고 떠나는 천도열차(天圖列車)는 외마디의 이별 인사를 길게 던졌다.
 
84
나는 수많은 승객 틈을 뻐기고 자리를 잡자마자, 차창을 의지하여 돌아보니 얼씬얼씬 멀어져가는 용정촌.
 
85
그때에 내 머리에 얼핏 떠오르는 것은 내가 처음으로 발을 들여놓던 작년 이때다.
 
86
그때에 용정 시가는 신록이 무르익은 기로수 좌우 옆으로 청천백일기(靑天白日旗)가 멋있게 나부끼었고, 붉고도 흰 벽돌집 사이로 흘러나오는 깡깡이의 단조로운 멜로디는 보랏빛 봄 하늘 아래 고이고이 흩어지고 있었다.
 
87
그러나 가로(街路)에서 헤매이는 걸인들의 이 모양 저 모양. 그들에게 있어서는 봄날도 깡깡이 소리도 들리지 않는 듯, 역두(驛頭)에서 흩어지는 낯선 사람의 뒤를 따르면서 그 손을 벌릴 뿐, 그 험상궂은 손!
 
88
나는 이러한 옛날을 그리며 아까 역두에서 안타깝게 내 뒤를 따르던 어린 거지가 내 앞에 보이는 듯하여 다시금 눈을 크게 떴을 때, 차츰 멀어가는 용정 시가 위에 높이 뜬 비행기, 그리고 늦은 봄바람에 휘날리는 청홍흑백황(靑紅黑白黃)의 오색기가 백양나무숲 속으로 번듯거렸다.
 
89
차창으로 나타나는 논과 밭, 그리고 아직도 젖빛 안개 속에 잠든 듯한 멀리 보이는 푸른 산은 마치 꿈꾸는 듯, 한 폭의 명화를 대하는 듯, 그리고 아직도 산뜻한 아침 공기 속에 짙은 풀 냄새와 함께 향긋한 꽃 냄새가 코밑이 훈훈하도록 스친다.
 
90
밭둑 풀숭쿠리 속에 좁쌀꽃은 발갛게 노랗게 피었으며, 그 옆으로 열을 지어 돋아나는 조싹은 잎새를 두 갈래로 벌리고 벌겋게 타오르는 동켠 하늘을 향하여 햇빛을 받는다. 마치 어린애가 어머니 젖가슴을 헤치듯이 그렇게 천진스럽게 귀엽게!…… 어디선가 산새 울음 소리가 짹짹하고 들려온다. 쿵쿵대는 차바퀴에 품겨 들리는 듯 마는 듯.
 
91
“어디 가셔요!”
 
92
하는 소리에 나는 놀라 돌아보니 어떤 트레머리 여학생이었다. 한참이나 나는 그를 바라보다가,
 
93
“서울까지 갑니다. 어디 가시나요.”
 
94
혹시 경성까지 동행하게 되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이렇게 반문하였다.
 
95
“네, 저는 회령까지 갑니다.”
 
96
생긋 웃어 보이는 입술 속으로 하얀 이가 내밀었다.
 
97
“그러세요. 그럼 우리 동행합시다.”
 
98
마침 나와 맞은 켠에 앉은 어린 학생이 졸다가 옆에 앉은 일인(日人)에게로 쓰러졌다.
 
99
“아라(어머나)!”
 
100
내 옆에 앉았던 여학생은 날래게 일어나 어린 학생을 붙들어 앉히며 유창한 일어로 지껄인다. 일인은 어린 학생을 피하여 앉다가 이켠 여학생에 끌려 어린 학생을 어루만지며 서로 말을 건네었다.
 
101
나는 그들의 말을 귓결에 들으며 다시금 창 밖을 내어다보았다. 금방 내 앞으로 다가오는 밭에는 어쩐지 조싹을 발견할 수가 없어 나는 자세히 둘러보았을 때 “지금 촌에서는 밭갈이를 못해서 묵히는 밭이 많다지. 올해는 굶어죽을 수 났다.”하던 말이 내 머리를 찡하니 울려 주었다. 나는 뒤로 사라지려는 그 밭을 안타깝게 바라보았다. 거기에는 온갖 잡풀이 얽히었을 뿐이었다. 그때에 내 가슴은 마치 돌을 삼킨 것처럼 멍청함을 느꼈다. 따라서 농부들이 저 밭을 대하게 되면 어떨까, 얼마나 아까울까. 얼마나 애수할까, 흙의 맛을 알고 그 흙에서 매일 달라가는 조싹의 자라나는 그 재미, 그야말로 농부 자신이 아니고서는 알지 못할 것이 아니냐. 그러면 저들이 저 밭을 대할 때 나로서는 감히 상상도 못할 그 무엇이 들어 있겠구나. 이렇게 생각하며 얼핏 이러한 노래가 떠올랐다.
 
102
지금은 봄이라 해도
103
만물이 소생하는 봄이라 해도
104
이 땅에는 봄인 줄 모를네 모를네
 
105
안개비 오네 앞산 밑에 풀이 파랬소
106
이 비에 조싹이 한치 자라고
107
논둑까지 빗물이 가득하련만
 
108
아아 밭갈이 못했소
109
논갈이 못했소
110
흙 한 줌 내 손에 못 쥐어 봤소
 
111
나는 이 노래를 금방이라도 종이 위에 옮기고 싶은 충동을 느끼며, 바스켓을 뒤졌으나 종이도 없고 붓도 없어서 그만 꾹 참고 보느라 없이 휙 돌아보니 옆에 앉은 그 여학생은 『슈후노도모(主婦之友[주부지우])』를 들고 들여다본다.
 
112
일인은 끊임없이 여학생에게 시선을 던지며 벙긋벙긋 웃고 있었다. 마침내 일인은,
 
113
“회령 어디 계십니까?”
 
114
하고 묻는다. 그는 가볍게 머리를 들며,
 
115
“도립병원에 있습니다.”
 
116
이 말에 나는 그가 간호부인 것을 직각하며 다시금 그를 쳐다보았을 때, 어디선가 그의 몸 전체에서 흘러나오는 약 냄새를 새삼스럽게 느꼈다.
 
117
아까 내 맞은편에서 졸던 어린애는 어느덧 여학생 곁으로 와서 앉아 물끄러미 책을 들여다본다
 
118
“글쎄 이애 혼자서 상삼봉(上三峰)까지 간다지요.”
 
119
그는 어린애를 가리키면서 나를 쳐다본다. 나도 그 말에는 놀라서 그애를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얼굴이 둥글둥글한데다 눈이 큼직한 보암직스러운 사내였다.
 
120
“너 몇 살이냐?”
 
121
그는 머리를 숙이며,
 
122
“일곱 살이에요.”
 
123
“응 용쿠나, 너 혼자 어디 가니?”
 
124
“삼봉 가요.”
 
125
“응 아버지 어머니 다 계시냐?”
 
126
어린애는 우물쭈물하며 말끝이 입술 속으로 숨어 들고 있다.
 
127
“이 애 똑똑히 말해.”
 
128
그 여자는 어린애를 들여다보며 이렇게 상냥스럽게 말하였다. 그러나 그는 끝까지 말을 안 하고 있었다. 나는 웃으며 무심히 앉았을 때,
 
129
“이 애가 울어!”
 
130
그 여자는 어린 학생의 머리를 들며 들여다본다. 나도 얼핏 그편으로 보았을 때 그 검은 속눈 사이로 커단 눈물이 뚝뚝 흘렀다. 그때에 나는 그 애가 아버지도 어머니도 없는 고아였음을 짐작하자 내가 왜 그런 말을 함부로 물었는가, 내가 짐작하는 그대로 참으로 그 애 아버지 어머니가 없었다면 저 어린것의 가슴이 얼마나 내 물음에 아팠으랴 하고 생각하면서,
 
131
“이리 온, 이거 봐.”
 
132
그 여자의 손에서 『슈후노도모』를 옮겨 내 무릎 위에 놓으며 표지의 그림을 내보였다 어린애는 . 눈물을 씻으며 슬금슬금 바라볼 때 여러 사람의 시선은 어린애에게로 집중됨을 나는 느꼈다.
 
133
어느덧 차는 도문강(圖們江) 안참(岸站)에 이르렀다. 중국인 순경에게 나는 일일이 짐 조사를 받은 후, 어린애와 몇 마디 이야기를 주고받는 사이에 벌써 차는 슬슬 미끄러졌다.
 
134
옆의 여자는 내 어깨를 가볍게 흔들며,
 
135
“도문강이에요, 에그 저 고기 봐!”
 
136
말 마치기가 무섭게, 나는 머리를 돌려 굽어보았다.
 
137
강변 좌우로 휘늘어진 버들가지에 강물 속까지 푸르렀으며 그 속으로 헤엄쳐 오르는 금붕어 은붕어를 보고, 나는 몇 번이나 하나, 둘, 셋, 넷하고 입 속으로 그 수를 헤이다가 잊어버렸는지.
 
138
“고기 고기도 있어요!”
 
139
조그만 손을 쑥 내밀어 가리키는데, 나는 어린애의 손을 꼭 쥐며 이렇게 중얼거렸다.
 
140
“네게도 뵈니, 어디 있어, 어디 가리켜 봐 또.” 어린애를 쳐다보았다.
 
141
그는 무심코 이런 말을 했다가 내가 채쳐 묻는 결에 그만 부끄러운 생각이 났던지 머리를 숙이며 잠잠하다. 순간에 나는 그 애가 아버지 어머니 틈에서 자라지 못한 불쌍한 애였음을 확실히 알았다.
 
142
강을 사이로 보이는 조선땅! 산색(山色)조차 이편과는 확연히 다르다. 산봉이 굽이굽이 높았다 낮아지는 곳에 끊임없이 아기자기한 정서가 흐르고 기름이 듣는 듯한 떡갈나무와 싸리나무는 비오는 날 안개 끼듯이 산봉 끝까지 자욱하여 푸르렀다.
 
143
차가 상삼봉역에 닿자마자 내 곁에 앉았던 어린애는 냉큼 일어났다. 그 뒤를 따라 나도 바스켓을 들고 일어나며,
 
144
“이젠 다 왔지…… 정 네 이름 무어냐?”
 
145
찻간에서 정들인 이 어린것의 이름도 모르고 보내는 것은 퍽도 섭섭했다.
 
146
어린애는 잠잠히 차에서 내려서며,
 
147
“순봉이.”
 
148
“응 순봉이, 순봉아 잘 가거라.”
 
149
나는 해관검사실(海關檢査室)로 들어가며 돌아보았을 때 순봉이는 개찰구로 나가며 다시 한번 이켠을 돌아보고 사람들 틈으로 사라지고 만다. 어쩐지 나는 무엇을 잃은 듯한 느낌으로 그 애의 사라진 곳을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150
삼십분 후에 우리는 상삼봉역을 출발했다. 간호부와 나는 순봉의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다시금 순봉의 그 검은 눈을 그려보았다.
 
151
형사는 차례로 짐 뒤짐을 하며 우리 앉은 앞으로 오더니 역시 내 짐이며 몸을 뒤져보고 몇 마디 말을 물어본 후 간호부에게로 간다. 그는 언제나 삽삽한 태도와 유창한 일어로 대하여준다.
 
152
차는 도문강을 바른편에 끼고 빙빙 돌았다. 실실이 늘어진 버들가지 사이로 넘쳐 흐르는 도문강물, 언제 보아도 싫지 않은 저 도문강물, 네 가슴 위에 뜻있는 사람들의 상기된 얼굴이 몇몇이 비쳤으며 의분에 떨리는 그들의 몸을 그 몇 번이나 안아 건네었느냐.
 
153
숲속으로 힐끔힐끔 보이는 가난한 사람들의 움막은 작년보다도 그 수가 훨씬 늘어 보였다. 그 속에서도 어린애들이 소꿉놀이를 하며 천진스럽게 노는 꼴이 보인다.
 
154
나는 이켠으로 머리를 돌리니 길회선(吉會線) 철도공사 인부들이 까맣게 쳐다보이는 석벽 위에 귀신같이 발을 붙이고 돌을 쪼아내린다. 나는 바라보기에도 어지러워서 한참이나 눈을 감았다. 다시 보면 볼수록 아찔아찔하였다. 아래 있는 인부들은 굴러내리는 돌을 지게 위에 싣고 한참이나 이켠으로 돌아와서 내려놓으면 거기에 있는 인부들은 그 돌을 이를 맞추서 차례차례로 쌓아 올라가고 있다.
 
155
나는 차안을 새삼스럽게 둘러보았다. 그러나 누구 한 사람 그곳을 주시하는 사람조차 없는 듯하다. 모두가 양복장이었으며 학생이었으며 숙녀였다.
 
156
우선 나조차도 저 돌 한 개를 만져보지 못한 사람 아니었더냐.
 
157
학생들은 무엇을 배우나, 소위 인테리층 나리들은 어떻게 살아가나. 누구보다도 나는 이때까지 무엇을 배웠으며 무엇으로 입고 무엇으로 먹고 이렇게 살아왔나.
 
158
저들의 피와 땀을 사정없이 긁어모아 먹고 입고 살아온 내가 아니냐! 우리들이 배운다는 것은, 아니 배웠다는 것은 저들의 노동력을 좀더 착취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었더냐!
 
159
돌 한 개 만져보지 못한 나, 흙 한 줌 쥐어보지 못한 나는 돌의 굳음을 모르고 흙의 보드라움을 모르는 나는, 아니 이 차안에 있는 우리들은 이렇게 평안히 이렇게 호사스럽게 차안에 앉아 모든 자연의 아름다움을 맛 볼 수가 있지 않은가.
 
160
차라리 이 붓대를 꺾어버리자. 내가 쓴다는 것은 무엇이었느냐. 나는 이때껏 배운 것이 그런 것이었기 때문에 내 붓끝에 씌워지는 것은 모두가 이런 종류에서 좁쌀 한 알만큼, 아니 실오라기만큼 그만큼도 벗어나지 못하였다.
 
161
그저 한판에 박은 듯하였다.
 
162
학생들이여 그대들의 , 연한 손길, 그 보드라운 흰 살결에 태양의 뜨거움과 돌의 굳음을 맛보지 않겠는가. 우리는 먼저 이것을 배워야 하지 않겠느냐.
 
163
그리하여 튼튼한 일꾼, 건전한 투사가 되지 않으려는가.
 
164
돌에 치여 가로세로 줄진 그 손이 그립다. 그 발이 그립다. 햇볕에 시커멓다 못해 강철과 같이 굳어진 그 빰이 그립다! 얼마나 믿음성스러운 손이랴.
 

 
 

1. 간도야 잘있거라

 
166
이런 생각에 잠긴 채 기차는 어느덧 회령에 도착하였다. 동행하던 여성을 따라 역에 내리니 역두에는 출영인(出迎人)으로 잡답(雜踏)하였다. 웬일인가 하여 휘휘 돌아보니 맨 앞에 달린 화물차 속에서는 군인들이 꾸역꾸역 몰려나온다. 나중에 알고 보니 훈춘(琿春)지방에 출정하였던 군대라고 한다. 그러자 이켠 뒷객차에서는 수백 명의 중국인들이 남부여대(男負女戴)하여 밀려나온다. 이들은 조선을 거쳐 중국 본토로 가는 간도의 피난민이다.
 
167
나는 한참이나 멍하니 그들의 이 모양 저 모양을 바라볼 때 무어라고 말로 옮길 수 없이 가슴이 답답함을 느꼈다.
 
168
나는 얼결에 구외(構外)로 밀려 나왔다. 군대는 행렬을 정돈하여 유량(嚠 喨)한 나팔소리에 맞춰 보무당당(步武當當)히 군중 앞으로 걸어간다. 우렁차게 일어나는 만세소리! 그 중에서도 천진한 어린 학생들의 그 고사리 같은 손에 잡혀 흔들리는 일장기(日章旗)! 그 까만 눈동자!
 
169
햇볕에 빛나는 총검에서는 피비린 냄새가 나는 듯, 동시에 ××당의 혐의로 무참히도 원혼으로 된 백면장정(白面壯丁)의 환영이 수없이 그 위를 달음질치고 있었다. 나는 발길을 더 옮길용기가 나지 않았다. 동행 여성은 내 손을 쥐고 작별인를 하였다.
 
170
“안녕히 가세요.”
 
171
겨우 입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린 나는 그의 사라지는 뒷꼴을 바라보며 아차 이름이나 서로 알았더면 하는 후회를 하였다.
 
172
수없는 피난민들은 군대의 행보하는 것을 얼빠지게 슬금슬금 바라보며 보기만 해도 무섭다는 듯이 그들의 몸을 쪼그린다. 정든 고향을 등지고 생명의 보장이나마 얻어볼까 하여 누더기 보따릴 짊어지고 방향도 정(定)치 못하고 밀려나오는 그들…… 아니 그들 중에는 백의 동포도 얼마든지 섞여 있다.
 
173
오후 여섯시에 기차는 회령역을 출발하였다. 경편차(輕便車)보다는 마음이 푹 놓여 차창을 의지하여 밖을 내어다보았다. 마침 형사들이 와서 지분거리기에 그만 눈을 꾹 감고 자는 체하던 것이 정말 잠이 들고 말았다. 이따금 잠결에 눈을 들어보면 높고 낮은 산봉(山峰) 위에 저녁노을빛이 불그레하니 얽혀 있었다.
 
174
이튿날 아침 아직도 이른 새벽. 검푸른 안개 속으로 이렴풋이 나타나 보이는 솔포기며 그 밑으로 흰 거품을 토하며 솩 내밀치는 동해 바닷물, 그리고 하늘에 닿은 듯한 수평선 저쪽으로, 꿈인 듯이 흘러내리는 한두낱의 별, 살았다 꺼진다.
 
175
벌써 농부들은 괭이를 둘러메고 논뚝과 밭머리에 높이 서 있었다. 금방 이앙(移秧)한 볏모는 시선이 닿는 데까지 푸르러 있었다.
 
176
이따금씩 숲 사이로 보이는 초라한 초가집이며, 울바자 끝에 넌 흰 빨래며, 한가롭게 풀 뜯는 강변에 누운 소의 모양이 얼핏얼핏 지나친다.
 
177
잠시나마 붉은 구릉(丘陵)으로 된 단조무미(單調無味)한 간도에 살던 나로서는 이 모든 경치에 취하여 완연히 선경(仙境)으로 들어가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러나 이곳 저곳에 흩어져 있는 큰 공장에서 시커먼 연기를 토하고 있는 것은 장차 무엇을 말함일까.
 
178
대자본가의 잠식(蠶食)이 그만큼 맹렬히 감행되고 있는 것이 파노라마 모양으로 역력히 보인다.
 
179
기차는 이 모든 것을 보여주면서 산굽이를 돌고 터널을 지나 숨차게 경성을 향하여 달음질친다. 그러나 나의 마음만은 반대 방향으로 간도를 향하여 뒷걸음친다.
 
180
아, 나의 삶이여.
 
181
전란의 와중에서 갈 바를 잃고 방황하는 가난한 무리들!
 
182
그나마 장정은 죽었는지 살았는지 다 어디로 가버리고 오직 노유부녀(老幼 婦女)만이 그래도 살아보겠다고 도시를 향하여 피난해 오는 광경이 다시금 내 머리에 떠오른다.
 
183
부모형제를 눈뜨고 잃고도 어디 가서 하소 한 마디 할 곳이 없으며 그만큼 악착한 현실에 신경이 마비되어 버린 그들! 눈물조차 그들에게서 멀리 달아나 버리고 말았다. 오직 그들 앞에는 죽음과 기아(飢餓)만이 가로놓여 있을 뿐이었다.
 
184
그러나 간도여! 힘있게 살아다오! 굳세게 싸워다오! 그리고 이같이 나오는 나를 향하여 끝없이 비웃어다오!
 
185
기차는 원산을 지나 삼방(三防)의 험산(險山)을 바라보며 여전히 닫는다.
【원문】오월의 산골짜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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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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