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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셩일긔 ◈
해설   본문  
병자호란 이후
산셩일긔 병자
1
산셩일긔 병
 
 
2
만력(萬曆) 십칠년 긔츅(己丑) 구월의 노라치란 오랑로 뇽호쟝군(龍虎將軍)을 이다 노라치 녀진국(女眞國) 오랑니 졔 한아비와 아비 다 다 오랑 난(亂)의 죽고 노라치 동방(東方)으로 라니 븍녁 모든 오랑 침노야 긔세 졈졈 즁고 잇다감 노략 한인(漢人)을 도로 보여 즁도(中朝)의 헌튱(獻忠)더니 다 오랑근오십등이싀합호 노략고지휘뉴부 죽이고건(建州)로 라거 노라치즉시근오십의 머리 버혀 듕됴(中朝)의 드리고  조흔 말을 공(供)고 졔 한아비와 아비 듕국을 위야 병화(兵禍)의 죽은 곡졀을 알외여  쟝(大將) 일홈을 어드니라.
 
3
노라치 졈졈 강셩야 제 아합치 죽이고 군 아오라 모든 오랑 침노더니, 무오(戊午) 긔미(己未)년간(年間)의 무슌셩(撫順城)을 함몰고 총병쟝승을 등이 죽고 경냑(經略) 양효등이 대고 쳠반춍안등이 다 죽다 됴션국(朝鮮國) 도원슈(都元帥) 강홍닙(姜弘立)과 부원슈(副元帥) 김경셔(金景瑞) 종관(從事官) 니민환(李民寏) 쇼쟝(小將) 김응하(金應河)등이 막아  조 삼 니 드러가 도젹의게 힌  되니김응하 힘 화 종시 굴치 아니코 죽으니 이 닐온김쟝군(金將軍)이라 됴졍이 병됴판셔(兵曹判書) 츄증(追贈)고 강홍닙(姜弘立)이하 다 항복니라.
 
4
긔미(己未)의노라치아국(我國)을 통코져 야 홍닙은 머무러 두고 민환 등은 여 보니라. 이  오월의 노라치 국호(國號) 금(金)이라 고 황의(皇衣) 닙고 딤(朕)이로라 며 그 후의 심양(瀋陽)을 함몰(陷沒)니 텬(天子) 원숭환으로 경냑(經略)을 야 광녕의 가 도젹을 막게 엿더니 병인(丙寅)의 노라치 원숭환의게 야 분통야 등챵 나 죽으니 (次子) 홍타시셔니라 원노라치가 노다가 뫼 엽  계집이 오좀을 누고 지나가거 보니 오좀이 뫼 러 깁희 가 드러가니 노라치 긔이히 너겨 그 겨집을 다려다가 을 흐니 이 니바 홍타시라
 
5
뎡묘(丁卯) 졍월(正月)의 강홍닙(姜弘立)이 홍타시 다여 군(大軍)을 니혀 아국(我國)을 침범 압녹강(鴨綠江)을 어름으로 건너 이 밤의의(義州) 엄습(掩襲)니부윤(府尹) 판관(判官)이 다 죽고 안(安州) 함몰니 병(兵使) 목(牧使)들이 다 죽다.
 
 
6
샹(上)이 강화(江華)의 피란시고 셰 뎐쥬(全州)로 분됴시다. 초의 갑(甲子) 니괄(李适)의 난(亂)의 괄의 쟝슈(將帥) 한명년(韓明璉)의 이 도망야 오랑게 가 거즛말노 아국(我國)이 홍닙의 일문(一門)을 다 즛지다 니고 홍닙을 다여 도젹을 인도여 오니 이의 니러 됴졍(朝廷)이 홍닙의 삼촌(三寸) 진창군(晉昌君) 강인(姜絪)과 홍닙의 쳐 진쳔(鎭川)의 보여 홍닙을 뵈니 홍닙이 비로쇼 뉘웃고 도젹도 굿여 아국을 칠 의 업고 아국도  신(使臣)을 보여 화친(和親)기 쳥니 젹이 허락다. 샹이 노로 더브러 피 마셔 텬디(天地)긔 세실 대신(大臣)윤방(尹昉)오윤겸(吳允謙)병조판셔(兵曹判書)니셩구(李聖求)참판(參判)명길(崔鳴吉)이 가지로 세의 예니라홍타시홍닙과홍닙의 호녀(胡女)와 한녀(漢女) 다 여 보니 아국이 노젹을 두려홍닙의  의논치 못더니 미구(未久)의홍닙의 일문(一門)이 의논야닙을 가마니 죽이다 경오(庚午)의 노젹이븍경(北京)을 침노니 황뎨 원슝환이  막지 못다 샤 아다가 죽이시다 아국이 노젹으로 더브러 형뎨 되고 츈츄(春秋)의 신을 보더니 병(丙子) 츈(春)의 무신 니확(李廓)과 쳠지(僉知) 나덕헌(羅德憲)이 신으로 심양(瀋陽)의 가니 홍타시 황뎨로라 칭고 국호 대쳥(大靑)이라 며 니확(李廓)등을 겁칙야 반녈의 예라 니확등이 죽기로 듯지 아니 모든 오랑확등을 치며 으니 의관(衣冠帶) 여지 종시 굴치 아니니라확등이홍타시의 답셔 타 오다가 가마니 셩 직흰 오랑게 두고 오니 당초의 그 편지 맛다 야 됴졍이 논(論罪)니라 년의뇽골(龍骨大)마부(馬夫大)두 쟝쉬인녈왕후(仁烈王侯)국샹(國喪)의 됴졔(弔祭)라 오니  아국을 탐지(探知)랴 미라 됴졍이 야흐로 화친을 쳑 노 졉기 박(薄)히 고 피국(彼國) 왕 쥬샹(主上)긔 편지여시 답지 아니고인목대비(仁穆大妃)국샹의 오랑 와셔 됴졔(弔祭) 젹 뎐샹(殿上)의셔 녜(大行禮)기 허엿더니 이졔 당여금쳔교(禁川橋)의 쟝(帳)을 치고 치졔(致祭)더니 람이 부러 쟝이 열니 금군(禁軍)들이 이시믈뇽골(龍骨大)등이 크게 의려며댱녕(掌令)홍익한(洪翼漢)과 관(館學)이 샹쇼(上疏)여 노 버혀지라 쳥니뇽골(龍骨大)등이 듯고 황망이 라니 경셩(京城)이 진동고 묘당(廟堂)이 황겁야 졔신(諸臣)을 라 보여 머믈기 쳥 듯지 아니고 도라가니라샹이 팔방의 하됴(下詔)샤 화친을 파 을 니고 날마다 드 샹(上疏) 오랑 칠 말이라부평(富平)안산의 돌이 올마 노히고 경샹(慶尙) 평안도(平安道)의 올히 호고대구(大邱)의 구름이 진치고쳥파(靑坡)의 고리 호고 녜안(禮安)의 강믈이 허지고 셔울이 히 븕고 셩듕(城中)을 로 의 스믈 닐곱 곳을 별학을 치고 큰 믈이 급히 드러와 동대문(東大門)길이 막히고 무지게  엿더라. 녕의졍(領議政)김뉴(金瑬)등이 묘당의 이시 화친은 임의 밋을 거시 업고 호기와 직희기와 다 일 업더라. 최명길(崔鳴吉)이 샹쇼야 화(和使) 보기 쳥교리(校理)오공(吳公)과니조졍낭(吏曹正郞)윤공(尹公)이 샹쇼야 명길을 버혀지라 쳥 됴졍이 이리도 못고 져리도 못야 더니김뉴(金瑬)와명길이 의논여 역관(譯官)을 심양(瀋陽)의 보여 노젹을 탐지홍타시역관려 니로
 
7
"네 나라히 동지달 이십오일 젼으로 대신(大臣) 왕(王子) 보지 아니면  당당이 동으로 크게 나가리라"
 
8
고 그 답셔의 여시
 
9
나 드니 네 나라히 산셩(山城)을 만히 거니와  당당이 대노(大路)로 조 갈 거시니 산셩으로 날을 막을소냐 네 나라히 강화(江華) 밋거니와  팔도(八道) 즛 젹 조고만 셤으로 님군 노 소냐 네 나라히 의논 잡으 니 다 션니 가히 붓 둘너 날을 막을소냐
 
10
엿더라.
 
11
묘당(廟堂)이 그 편지 보고 대신을 보고져 나 쳑화(斥和) 의논이 야흐로 즁기의 보지 못다가 오 후의 보 밋지 못니라김뉴(金瑬)김뎜(金自點)이 의논야의쥬(義州)마산셩(白馬山城)의 옴기고황쥬(黃州) 졍방산듕(正方山中)의 옴기고평산(平山)을쟝슈산셩(長壽山城)의 옴기니 각각 큰 길의셔 삼십 니(里)나 고 먼   이틀 길이라 냥셔(兩西) 큰 길이 사 업 히 되고김뎜(金自點)이도원(都元帥)되여 니로
 
12
"도젹이 반시 오지 아니리라"
 
13
고, 사이 혹 도젹이 오리라 면 로고 셩 직흴 군 나토 더 뎡치 아니코의쥬(義州)져 편뇽골산(龍骨山)봉화(烽火)셔울가지 가면 소동(騷動)리라 여도원슈(都元帥)잇졍방산셩(正方山城)가지 오게 졍엿더니 납월(臘月) 초 뉵일 이후의 년야 봉화(烽火) 두  혀뎜이 니로
 
14
"반시 신(使臣)을  불이라 엇지 도젹이 올 니 이시리오"
 
 
15
초 구일
 
16
초 구일의 비로소 군관(軍官) 신용(申榕)을 의쥬(義州)의 보여 젹병을 탐지 신용(申榕) 이순안(順安)의 니니 젹병이 임의 편만(遍滿)엿지라 신용(申榕)이 도라와 보니뎜이 대로여 신용(申榕)을 버히려 더니 다른군관이  보니 비로소 쟝계(狀啓)니라 대 젹병이 강을 건너니 로(大路)의 것칠 거시 업지라 오기 람 치 고 번의 쟝계(狀啓) 젹이 다 아 가진 고로 됴졍(朝廷)이 막연이 몰낫더라
 
17
이러므로
 
 
18
십이일
 
19
십이일 오후의 비로소 젹세(賊勢) 급 줄 알고
 
 
20
십삼일
 
21
십삼일의강화(江華)의 들기 의논김경징으로검찰 이고니민구로부 삼다김(金瑬)그 아의 무샹믈 모로 거시 아니로 가속 피란기 위여경징으로검찰 이고샹이 무시니김(金瑬)알외경징이 당이다 더라
 
 
22
십일
 
23
십일의 대개(大駕) 챵황이남대문을 셔강화(江華)로 향시더니 젹쟝마부(馬夫大)수 긔 거리고 임의홍졔원(弘濟阮)의 다라시니샹이 남문의 뎐좌시 샹 황황고 셩듕의 곡셩이 텰텬더라니판명길(崔鳴吉)이 쳥여 젹쟝을 나가 볼훈련대쟝(訓練大將)신경진(申景禛)으로 여금모화관(慕華館)의 츌진(出陣)고 대가(大駕) 싀구문(水口門)으로 나셔남한산셩(南漢山城)의 드시다명길이마부(馬夫大) 보고 온 연고(緣故) 무 젹쟝이 답왈
 
24
"네 나라히 무단이 세 반여시 화친려 왓노라"
 
25
더라김뉴(金瑬)니셩구(李聖求)등이 쳥(請待)여 강화(江華)로 가시게 졍엿더니
 
 
26
십오일
 
27
십오일의 샹이 거러 시다가 여러번 업더지샤 옥톄(玉體) 블평시니 도로 셩의 드시다대쟝신경진(申景禛)이 동셩(東城)을 직희오고대쟝(大將)구굉(具宏)은 남셩(南城)을 직희고 총융(摠戎使) 니셔(李曙)등은 븍셩(北城)을 직희고슈어(守御使)니시(李時白)은 셔편 셩을 직희고 셩즁(城中) 군병은셔울과 외방으로셔 산군을 합야 겨유 일만 이쳔여 인이오 문무(文武) 남관이 이여 인이오 종실(宗室)과 삼의(三醫司) 여 인이오 모든 관원의 노복은 삼여 인이라명길이니경직(李景稷)으로 더브러홍졔원(弘濟阮)으로셔 도라오니마부(馬夫大)대쟝이 아니왓기로 말노명길을 속이고
 
 
28
십뉵일
 
29
십뉵일 식후(食後)의 라 남한(南漢)의 다니 셩 직흰 군 약고 겁야 나가 홀 의 업더라마부(馬夫大)왕 대신 여 보기 쳥니 됴졍이 능봉슈(綾峯守)로 대군(大君)을 삼고 형됴판셔(刑曹判書) 심즙(沈諿)으로 대신이라 야 젹진의 보니 심즙이 니로
 
30
" 평의 말이 츙실기로 오랑도 속이지 못리라"
 
31
야 마쟝(馬將)려 니로
 
32
"나 대신이 아니오 능봉슈(綾峯守) 왕 아니니라"
 
33
능봉슈(綾峯守) 니로
 
34
"진실노심즙이 대신이오 나 진실노 왕라"
 
35
 젹쟝이 속은 줄 알고 도로 보니능봉슈(綾峯守)와심즙(沈諿)이 도로 셩즁의 오고 마지 못야 승샹(丞相) 홍셔봉(洪瑞鳳)과호조판셔김국신을 젹진의 보여 니로
 
36
"봉님대군(鳳林大君)과닌평대군(麟坪大君)이강화(江華)의 이시 못 보노라"
 
37
니마쟝(馬將)이 니로
 
38
"동궁(東宮)이 아니 오면 화친을 못리라"
 
39
거 좌샹(左相)이 그져 도라오니라
 
 
40
그 날 밤의녕샹(領相)김신국(金藎國)니셩구(李聖求)최명길(崔鳴吉)등이 동궁(東宮) 보기 쳥 녜조판셔(禮曹判書)김쳥음(金淸陰)이 이 긔별을 듯고 비변(備邊司)의 드러와 대언(大言)여 오,
 
41
"이 의논 놈을  당당이 머리 버혀 세야 한 의 셔지 아니리라"
 
42
더라
 
 
43
십칠일
 
44
십칠일의 샹이 남문의 뎐좌(殿座)시고 통교(哀痛敎) 리오시니  가득 졔신(諸臣)이 아니 울 니 업더라
 
 
45
십팔일
 
46
십팔일의 븍문대쟝(北門大將) 원두(元斗杓)군을 비로소 모 바다 나가 화 도젹 여셧 죽이니라 셩듕(城中) 챵고의 과 피 잡곡 합야 겨유 일만 뉵쳔여 셕이 이시니 군병 만인의 일삭(一朔) 냥식은 되더라 소금 쟝 됴희 면화 병기 잡믈(雜物)이 다니세(李曙)쟝만여 둔거 니니셔(李曙)의 조 일컷더라
 
 
47
십구일
 
48
십구일의 남문쟝(南門大將)구굉(具宏)이 발군(發軍)여 화 도젹 이십 명을 죽이다 이 날 대풍 블고 비오려 더니김쳥음(金淸陰)을 명야 셩황신(城隍神)에 졔니 람이 즉시 긋치고 비 아니오니라
 
 
49
이십일
 
50
이십일의 마쟝(馬將)이통뎡명슈(鄭命壽) 보여 화친기 언약 셩문을 여지 아니고 셩 우희셔 말을 뎐게 게 다
 
 
51
이십일일
 
52
이십일일의 어영별쟝(御營別將) 니긔튝(李起築)이 군을 거려 도젹 열아믄을 죽이고 동문대쟝(東門大將) 신경진(申景禛)이  발군여 도젹을 죽이다
 
 
53
이십이일
 
54
이십이일의마부(馬夫大)통 보여 니
 
55
"만일 황연이 다라 왕(王子) 대신(大臣)을 보면 뎡여 화친쟈"
 
56
샹이 오히려 허치 아니시다 븍문(北門) 어영군(御營軍)이 도젹 열아믄을 죽이고신경진(申景禛)이  삼십여 명을 죽이다샹(上)이 뎡(內庭)의셔 호군(犒軍)시다
 
 
57
이십삼일
 
58
이십삼일의 동셔남문(東西南門)에 영문(營門)의셔 군 고샹이 븍문(北門)의셔 홈을 독촉시다
 
 
59
이십일
 
60
이십일의 큰 비 오시 셩쳡(城堞) 직흰 군 어러 죽은  만흐니샹이 세로 더브러  가온 셔셔 하긔 비러 왈
 
61
"금일 이의 니기 우리 부(父子) 득죄(得罪)미니 일셩(一城) 군민(軍民)이 무삼 죄리잇고 텬되(天道) 우리 부의게 화(禍) 리오시고 원컨 만민(萬民)을 사로소셔"
 
62
군신들이 드시기 쳥 허치 아니시더니 미구(未久)의 비 긋치고 일긔 온화거 셩즁 인민(人民)이 감읍(感泣)지 아니리 업더라
 
 
63
이십오일
 
64
이십오일의 극한 묘당(廟堂)이 젹진의 신 보기 쳥오니샹이 오샤
 
65
"아국(我國)이 양 화친(和親)으로 져의게 속으니 이졔  신을 보여 욕될 줄 아 모든 의논이 여니 이  세시(歲時)라 술과 고기 보고 은합(銀盒)의 실과(實果) 담아  후졍(厚情)을 뵌 후 인야 졉담(接談)야 긔(氣色)을 피리라"
 
66
시다
 
 
67
이십뉵일
 
68
이십뉵일의니경직(李景稷)김신국(金藎國)이 술과 고기 은합의 너허 가지고 젹진의 가니 젹쟝이 오,
 
69
"군즁(軍中)의 날마다 소 잡고 보믈이 뫼 치 혀시니 이거 무어 리오 네 나라 군신(君臣)이 필시 굴머시리니 가히 스로  도다"
 
70
고 드여 밧지 아니니라
 
 
71
이십칠일
 
72
이십칠일의 날마다 셩즁의 구완라 오 군 라 일인(一人)도 오 니 업고강원감(江原監司) 됴뎡회(趙廷虎)본도군(本道軍)이 다 지 못기로양근(楊根)의 퇴진여 후의 오 군 기리고 몬져영쟝(營將)권뎡길(權井吉)로 여곰 녕병여검단셩(劒端城)의 니러 봉화(烽火) 드러셔 죠응(照應)다
 
 
73
이십칠일
 
74
이십칠일의 쳬찰(體察使) 김(金瑬) 친히 쟝(將士) 거려 븍셩의 가 득젼  도젹이 방포소 듯고 거즛 믈너며 져근 군와 우마(牛馬) 머므니 이 유인 라 김(金瑬)그 혜아리지 못고 군 독촉야 가 치라 니 산샹(山上)의 잇 군 그  알고 나리지 아니니 김(金瑬) 병방비쟝(兵房裨將) 뉴호(柳瑚) 환도(還刀) 주어 아니 나리 니 어지러이 즛지니 군 려도 죽고 아니 나려도 죽시 비로소 려가 젹진의 우(牛馬) 아 젹이 본 쳬 아니타가 군 다 리기 기다려 젹의 복병(伏兵)이 면의셔 닷고 믈너던 군 나아드러 시의 우리 군 다 죽이고 졉젼(接戰) 젹김(金瑬)화약(火藥)을 앗겨 긔 만히 주기 아니고 달 나기 기려 주더니 이  급야 화약을 밋쳐 쳥치 못고 조춍으로 셔로 치다가 니긔지 못여 죽은  부지기쉬(不知其數)라 김(金瑬)일군(一軍)이 믈 보고 비로소 초관(哨官)으로 여곰 긔 둘너 군 퇴나 군 시방 죽을 의 긔 엇지 보며 긔 두믈 본들 어이 밋리오김(金瑬)초관(哨官)을 참니 인인(人人)이 다 원통타 더라 김(金瑬)스로 화 고 탓 곳이 업니 핑계여 니로븍진쟝(北陣大將)원두(元斗杓)셔로 구완치 아니타 야 쟝 큰 죄 주려 니좌샹(左相)홍셔봉(洪瑞鳳)이 니 읏듬 쟝쉬 고 버금 쟝슈의게 죄 도라보미 맛당티 아니타 니 김(金瑬)마지 못여 궐의 나아가 죄고원두표(元斗杓)의 즁군(中軍)을 곤쟝 팔십을 치다 건쟝 군과 효용(驍勇) 무 다 쳬부의 모닷더니 이 홈의 삼여 인이 죽으니 군즁이 다시 홀 이 업 묘당(廟堂)이 젼혀 화기로 결단더라심긔원(沈器遠)으로뎨도도원슈(諸道都元帥) 삼다긔원이뉴도쟝(留道大將)으로 쟝계(狀啓) 포슈(砲手) 삼여인으로 밤의오젹진(敵陣)을 쳐 오 명을 죽이다  실샹과 다고 호조(戶曹) 긔믈을 삼각산(三角山)의 두엇다가 도젹의게 다 아이고긔원이 젹을 피야양근(楊根)으로 가니졔도군병이긔원이양근(楊根)의 이시믈 듯고 다양근(楊根)으로 가남한(南漢)으로 오 니 업고 오직츙쳥감(忠淸監司)뎡셔(鄭世規)본도군을 거려 젹진을 러광쥬(廣州) 산셩 라뵈  진 첫다가 종시 젹의게 여 셩공을 못 그 튱의(忠義) 긔특더라
 
 
75
이십구일
 
76
이십구일의 무(無事)고
 
 
77
삼십일
 
78
삼십일의 대풍(大風)고 일긔 연더라. 이날 젹이 광노로 삼 헌능삼노로 병(行兵)여 져므도록  갈 대풍고 젹병의 수 모로 대셜(大雪)이  왓기로 즁군이 들을 덥허  졈 흰 빗치 업니 그 수의 만흐믈 가히 알지라 젹은 그러고 아국(我國)을 홀 이 업니 구완은 오지 아니고 달리  일이 업셔 궁(行宮) 남녁 작소(鵲巢) 지어시니 인인(人人)이 다 이 라고 길(吉兆)라 야 그만 밋더라
 
 

 
79
뎡츅(丁丑) 뎡월(正月) 초 일일
 
80
뎡츅(丁丑) 뎡월(正月) 초 일일의 일식(日蝕)다. 광목(廣州牧使) 허휘(許徽) 권모(拳摸) 일긔(一個) 진어(進御)고 관들의게 두어 가식 보엿더라. 아의 션젼관(宣傳官)으로 젹진 말을 뎐고 김신국(金藎國) 니경직(李景稷)을 보려 니 젹쟝이 답,
 
81
"한(汗)이 어졔 나와 시방 산셩의 형세 둘너 보니 이후 일은 우리 등의 알  아니니 환진(還陣) 후 일 다시 오라"
 
82
더라 .
 
 
83
이 날 오후의 동문 밧긔 두 냥산(陽傘)과 큰 긔 세워시니 이거시 반시 한(汗)이러라.
 
 
84
초이일
 
85
초이일의 홍셔봉(洪瑞鳳) 김신국(金藎國) 니경직(李景稷)이 젹진의 가니 젹쟝이 누른 조희의 편지  샹 우희 노핫거, 홍셔봉(洪瑞鳳)이 몬져  후 편지  하오니 기셔(其書)의 왈
 
86
대쳥국(大淸國) 관온인셩황뎨(寬溫仁聖皇帝) 됴션국왕(朝鮮國王)의게 됴유(詔諭)노라  군 져젹의양합을 칠 의 네 나라히 마치고 후의  명쥬(明主) 도와  나라   오히려 개의치 아냣더니 밋 흘 어드 네   셩을 초인(招引)야 명됴(明朝)의 드리니 딤이 혁연(赫然)이 노야 뎡묘년(丁卯年)의 군 니혀 너 치니 엇지 연고 업시 군 니혀시리오 네 엇지 도로혀 네 번신의게 닐너 결단야 츙의지(忠義之士)로 여곰 각각 모을 고 용 사으로 여곰 스로 조 치라 여시니 딤이 이졔 친히 왓지라 네 엇지  번 나와 호지 아닛뇨 딤의 졔왕이 네게 편지니 무 연고로 편지 규례(規例) 업노라 엿뇨 뎡묘년(丁卯年)의 네 셤 가온 라나실 젹 편지 왕 거시 졔왕이 아니가 딤의 아와 족 무 너만 못리오  외번(外蕃) 졔왕(諸王)을 막고 밧지 아니니 졔왕은 대원 황뎨(大元皇帝) 손이라 무어시 너만 못리오 대원(大元) 젹의 됴션(朝鮮)이 죠공(租貢)기 긋지 아니더니 이졔 엇지 놉흔 쳬 이도록 뇨 딤이 이졔 네 나라 아로 졉거 네 더옥 악여 스로 원쉬(怨讐) 되여 민(生民)을 도탄의 지오고 셩곽을 더지며 궁실을 리며 쳐 분리여 셔로 도라보지 못고 일신이 산셩의 드러시니 비록 쳔 년을 산들 무어시 유익리오 뎡묘년(丁卯年) 욕을 고져 다가도 젼의 즐겁기 허러리고 후세의 우음을 기치니 이런 욕은 쟝 어이 리오 네 비록 몸을 감초아 살기 도모나 딤이 엇지 즐겨 노흐리오 딤의 외 졔왕과 문무 졔신이 딤을 권야 황뎨 되니 네 닐오 아 듯지 못 라 믄 엇지 니고 황뎨 되며 아니되미 네게 잇지 아니니라 하이 도으시면 필부(匹夫)도 텬(天子) 되고 하이 벌을 시면 텬(天子)도 필뷔(匹夫) 되니 네 세 반고 신을 박고 명쥬(明主) 아비 치 셤기노라 여 날을 모니 이거시 큰 라 딤이 병을 거려 네 나라 팔도 즛 네 아비 치 셤기던 명 무어  구리오 어셔 식이 급  아비 구치 아닐  이시리오 그러치 아니면 셩을 슈화(水火) 즁의 지오미라 네 만일 말이 잇거든 히 고미 롭지 아니니라 슝뎡(崇禎) 이년 뎡월 초 이일이라
 
87
엿더라
 
 
88
초 삼일
 
89
초 삼일의 교셔관고직의 겨집이 젹진으로 도망여 와 니로,
 
90
"그믐날과 하로날의 경셩을 분탕(焚蕩)고 인민을 노략며 인가 만히 블질넛다"
 
91
더라. 홍셔봉(洪瑞鳳)김신국(金藎國)니경직(李景稷)이 답셔 가지고 젹진의 가니 젹쟝이 니로,
 
92
"황뎨 명시 일이 이시리라"
 
93
고 답셔 아니 바드니라
 
 
94
초 일
 
95
초 일의 긔평군유증(兪伯曾)이 샹쇼(上疏)야윤방(尹昉)과김뉴(金瑬)의 오국(誤國)  히 닐너 다 여지라 쳥니 샹이증을 파직시다
 
 
96
초 오일
 
97
초 오일의남병(南兵使)셔우신(徐祐申)의 쟝계(狀啓) 드러오니 여시
 
98
병(兵使)와 순찰(巡察使) 민경휘(閔聖徽) 마병(馬兵)과 보군(步軍)을 거려 양근(楊根) 심긔원(沈器遠) 잇  왓노라
 
99
엿더라. 븍병(北兵使)도 오라지 아냐 다 고 젼라병(全羅兵使) 김준뇽(金俊龍)이 녕병여 광교산의 오고감(監司)니시방(李時昉)은 직산(稷山)왓단 쟝계(狀啓) 드러오니라
 
 
100
초 뉵일
 
101
초 뉵일의 안 아득다평안병(平安兵使)뉴림(柳琳)의 쟝계(狀啓)의 젹병 오쳔여 긔 챵셩(昌城)으로 오니챵셩부(昌城府使)삭부(朔州府使) 산동 죽은동 모다 엿더라강원감(江原監司)됴졍호(趙廷虎)의 장계의검단이 도젹을 만나 스로 허여지다 엿더라
 
 
102
초 칠일
 
103
초 칠일 김졈(金自點)의 쟝계(狀啓)의 황병(黃海兵使) 니셕달(李碩達)노 더브러 녕병여광능왓도라 엿더라. 젼라감(全羅監司) 니시방(李時昉)의 쟝계(狀啓)의 녕병여양지의 와 머무고 젼라병쟝계(狀啓)의 형세 보아 뎐지여 가리라 엿더라. 여러 쟝계의 혹 군병 수도 만코 도젹을 치노라 리도 만흐 실샹과 다더라.
 
 
104
초 팔일
 
105
초 팔일 아의 눈 오고 운암(雲暗)다
 
 
106
초구일
 
107
초구일 이후 셩 안 셩 밧기 더옥 통치 못야 쟝계(狀啓)도 쳐지다
 
 
108
십일일
 
109
십일일의 일훈(日暈)다샹이녜조판셔(禮曹判書)김쳥음(金淸陰)을 보샤은조왕(溫祚王)긔 졔시다
 
 
110
십일일
 
111
십일일의 의 귀옛 골 달니고 흰 긔운이 하의 빗치다. 녜조판셔(禮曹判書) 김쳥음(金淸陰)이 샹긔 알외여 오,
 
112
"사이 궁면 근본의 도라간다 니 이 위급  당하여 당이숭은뎐(崇恩殿)의 졔(行祭)실 거시니이다숭은뎐은 원(開元寺)니원종대왕(元宗大王) 화샹(畵像) 뫼신 곳이라샹이 연타 시고 평명(平明)의 츌궁샤 졔(行祭)실 관이 례더라 됴젼의 환궁(還宮)시다 산셩의 드신 후 셩의 가막 가치 업더니 이  만히 드러오니 사마다 길라"
 
113
더라
 
 
114
십이일
 
115
십이일의 홍셔봉(洪瑞鳳) 최명길(崔鳴吉) 윤휘(尹暉) 셔간(書簡)을 젹진의 보 국셔(國書) 뎐치 못고 일 셔문(西門)으로 다시 오라 더라. 드니 젹병 슈만이  나온다 더라.
 
 
116
십삼일
 
117
십삼일의 셔남풍이 니러다.  홍셔봉(洪瑞鳳)윤휘(尹暉)최명길(崔明吉)을 젹진의 보니뇽마이쟝(二將)이 국셔 밧고 연고 업시 세 져리믈 니 명길이 가을 두리고 머리 조아 오,
 
118
"이거시 다 셩샹의 이 아니오 신하의 라 챵 혀 임군의 그러치 아니 줄을 히려 노라"
 
119
뇽골(龍骨大)등이 언약 수일 의 회보(回報)마 더라 국셔의 여시
 
120
쇼방신(小邦宰臣)이 군문(軍門)의 편지 밧드러 품쳥(稟請)  잇더니 도라와 니로 황뎨 쟝 후명(後命) 이시라 니 쇼방군신(小邦君臣)이 목을 늘희여 날마다 기리 임의 십여일의 오히려 흑이 업니 형세 궁박야 두 번 브지믈 면치 못니 오직 황뎨 피라 쇼방(小邦)이 일즉 대국(大國) 은혜 닙어 외람이 형뎨의 의탁야 히 텬디긔 세여시니 비록 히 난호여시나 졍의 간격이 업지라 스로 손 만세의 업 복이라 더니 세 죄 지 아니여셔 의심 틈이 밋치여 위박(危迫) 화의 져 텬하의 웃  되니 텬셩이 유약고 졔신의게 속아 혼미블찰(昏迷不察)야 이의 니니  이라 다시 무삼 말이 이시리오 다만 형이 아 죄악이 이시면 노야 기 맛당거니와 기 너모 엄히 야 도로혀 형뎨의 의 샹오면 엇지 샹텬(上天)이 고이히 너기시  되지 아니리오 쇼방의 치우쳐 바다가의 이셔 오직 시셔(詩書) 일삼고 병기 닉이지 아니시니 약 거로 강  항복고 져근 거로 큰  셤기기 덧덧 일이라 엇지 감히 대국으로 더브러 결우리오 다만 세로 황명(皇命) 은혜 바다 명분이 뎡엿고 일즉 임진 난리의 쇼방이 망케 되엿더니신종황뎨(神宗皇帝)텬하 군병을 움여 녕을 수화(水火) 즁의 건지시니 쇼방 사이 이졔 니히 의 삭여 하리 대국의 득죄나 아 황명을 져리지 못니 이 다미 아니라 은혜 심으기 두터이 야 사 감동믈 깁게 게 은혜 치미니 녕의 목숨을 살오고 종샤의 위 거 구면 군 발야 난을 구완기와 군 두로혀 보존게 미 그 일이 비록 다나 은혜 가지라 샹년의 쇼방이 일을 그야 이의 니니 군신 부 외로온 셩의 이셔 그 곤미 심지라 진실노 이 의 대국이 허믈을 리고 스로 롭기 허야 여곰 종샤(宗社) 보존고 기리 대국을 밧들게 미 쇼방 군신의 손에 니히 영영히 닛지 못시오 텬하의 듯니 대국 위권(威權)을 항복지 아니리 업지니 이거 대국이 큰 은혜 동토의 고 널니 기 거 소국의 베플미라 그러치 아니코 오직 일됴(一朝)의 분 거 결단고 병녁을 궁진(窮盡)히 야 형뎨 은 샹오고 졔국(諸國)의 라 거 쳐바리면  대국의 올치 아닌 일이니 황뎨의 고명기로 이 념녀치 아니리오 을의 죽이고 봄의 로기 텬디 되오 약 거 잔잉히 너기고 망 거 근심기태왕의 업이라 이졔 황뎨 야흐로 졔국을 어로만지고 큰 일홈을 세워 텬디의 도 법밧고태왕의 업을 널리니 쇼방 이 치 허믈을 곳치고 의탁기 원 쟈 당이 리 즁의 잇지 아니리니 이졔 가히 존엄을 피치 못고 하 집(執事)의게 쳥명(請命)노라
 
121
엿더라
 
 
122
십일
 
123
십일 김신국(金藎國)이 냥식을 마련야  날 냥식의 군병은 셔 홉식 감고 관은 오 홉식 감 오히려 월(來月)을 다히지 못게시니 오 도젹의게 히면 아모리 될 줄 모너라
 
 
124
십오일
 
125
십오일의 쟝계(狀啓) 드러오다
 
 
126
십뉵일
 
127
십뉵일의 풍셜다홍셔봉(洪瑞鳳)최명길(崔鳴吉)윤휘(尹暉)젹진의 가 젼의 보 국세(國書) 오 회뵈 업슨 곡졀을 무니 뇽골(龍骨大)등이 져히 말을 무슈히 고  쟝강화(江華) 범렷노라 며  흰 긔의 항복 밧 글  망월봉(望月峯)아 세웟더라
 
 
128
십칠일
 
129
십칠일의뇽마이쟝(二將)이홍셔봉(洪瑞鳳)최명길(崔明吉)윤휘(尹暉) 블너여 답셔 주거 바다오니 셔의 왈
 
130
대쳥국(大淸國) 寬溫관은인셩황뎨{뎨}(寬溫仁聖皇帝) 됴션 국왕(朝鮮國王)의게 됴유(詔諭)노라 온 텬지의 여시 기 너모 여 도로혀 형뎨 졍의 샹오미 샹텬이 고이히 너기미 되리라 여시니 딤이 뎡묘(丁卯) 셰로 즁히 너겨 일즉 네 나라흘 로 긔걸더니 네 샹텬(上天)을 두리지 아니고 녕(生靈)을 근심치 아니여 몬져 셰 져리지라 네 나라히 용병 이 잇 줄 알고 딤이 믄득 네 신을 여 니로 네 나라히 이러시 무샹니 이졔 나가 칠 거시니 도라가 네 님군려 니라 여 히 닐너 보여시니 궤휼노 닐위연 거시 아니라  너희 세 져리고 흔단을 내여  일을 셔히 하긔 고고 군 니혓니 네 엇지 도로혀 하을 거드러 강잉(强仍)야 말뇨  여시 쇼방(小邦)이 오직 시셔(詩書) 일삼고 병기 닉이지 아닛노라 여시니 져 젹 긔미년(己未年)의 네 무고이 날을 팀노 딤이 니로 네 나라히 반시 병 아니라 엿더니 이졔로 보면 너의 군 반시 닉여실지라 오히려 닉이지 아냣노라  줄을 엇지 여시리오 네 진실노 군 모화 이후의 다시 닉이미 맛당도다  닐너시 임진 난리의신종황뎨(神宗皇帝)텬하 군 움엿다 여시니 텬하(天下)란 거시 크고 텬하 나라히 만흔지라 네 난리 구  명됴(明朝)  나라 이라 엇지 텬하 졔국 병 다 니러시리오 명됴와 네 나라히 허탄고져  거시 업셔  마아니고 이졔 임의 곤히 산셩을 직희여 목슘이 됴셕의 이시 오히려 븟그러오믈 모로고 이러시 븬 말을 니 무어시 유익리오  닐너시 형뎨 은 샹오고 뎨국의 라 거 면 대국의 올흔 일이 아니니 황뎨의 고명기로 엇지 이 념녀치 아니리오 여시니 네 형뎨의 조흔 거 허러 려  나라흘 니 엇지  나라 은혜 베프미 이시리오 이러 기 네야 스로 고명라 미로다  닐너시 황뎨 쟝 텬디(天地)의 도 법밧고 왕(霸王)의 업을 널니지 아닛 거시 아니오 무고히 군 니혀 네 나라흘 멸고 네 셩을 려 미 아니오 졍히 곡직을 분변려 미라  텬디의 도(道) 어지 니 복을 주고 오나오 니 화 쥬니 딤이 하을 법바다 음을 기우려 명(命)의 도라오 니 거리고 죄 쳥 쟈 평안케 고 명을 거리 쟈  주고 완만야 순치 아닌 쟈 오잡아 굴강(屈强) 쟈로 여곰 징계고 교(狡詐) 쟈로 여곰 궁진(窮盡)케 니 이제 딤으로 더브러 젹국(敵國)이 된 고로 흥병(興兵)여 이의 니지라 만일 네 나라히 다 아국(我國)의 들면 딤이 엇지 어린 식치 보지 아니리오  네 말과 일이 심히 지 아니니 젼후 왕 문셔  어더보니  나라흘 도젹이라 여시니 몸을 감초와 가마니 가지 거시 도젹이니  과연 도젹이면 네 엇지 도젹을 잡지 못뇨 우리 국속(國俗)은 말과 일이  니 니 뉘 너 나라쳐로 긔망교(欺罔狡詐)고 간위허탄(奸僞虛誕)야 븟그러온 줄을 아지 못고 망녕도이 말  이시리오 네 살고져 진 셩의 나 명의 도라오고 호고져 진 슈히  번 호라 두 군 샹젼(相戰) 샹텬(上天)이 반시 쳐분이 이시리라
 
131
엿더라
 
 
132
십팔일
 
133
십팔일의 홍셔봉(洪瑞鳳)최명길(崔明吉)윤휘(尹暉)로 국셔 가져 젹진의 보니뇽골(龍骨大)닐오
 
134
"마부(馬夫大)다른  나시니 밧지 못노라"
 
135
고,  니로,
 
136
"일 모 두 날 즁의 호리라"
 
137
더라. 국셔의 여시
 
138
대쳥국(大淸國) 관은인셩황뎨(寬溫仁聖皇帝)긔 샹언(上言)니 업여 명지 바드니 그 기 엄졀이 며 치기 지극히 미라 츄샹(秋霜)이 늠녈(凜熱) 가온 양츈(陽春)의 을 여시니 업여 닑으 황감(惶感)여 몸둘 곳이 업도다 대국의 위덕(威德)이 먼리 더으고 모든 번방(藩邦)이 말을 가지로 야 쳔인이 도라가 오 큰 명이 야흐로 로옵거 쇼방(小邦)이 십년 형뎨로 도로혀 득죄니 밋지 못 뉘웃미 잇지라 이졔 원 바 다만 음을 긋치고 념녀 밧고와 녯 버 티 셔리고 나라흘 드러 명을 바다 모든 번방(藩邦)의 비 름이라 진실노 극진이 구완고 스로 롭기 허 시면 문셔(文書) 녜졀(禮節)이 연 응당 규식(規式)이 잇니 강졍여 기 오날이 잇지라 셩의 나라믄 실노 어진 이로 그러나 힌 거시 플리이지 못엿고 뎨의 노미 야흐로 셩여시니 이의 이셔도  죽고 셩의 나도  죽을지라 이러므로 뇽긔 라며 죽기 결단니 그 졍이  셟도다 이거시 명의 도라가미라 황뎨 야흐로 텬디 믈노 음을 삼으니 쇼방(小邦)의 엇지 사 기 가온 예치 못리오 뎨덕(帝德)이 텬디 니 감히 실졍을 비왓타 공경여 은혜 기리노라
 
139
엿더라. 이니판(吏判)최명길(崔明吉)이 지은 라녜조판셔(禮曹判書)김쳥음(金淸陰)이 비국(備局)의 드러가 이 편지 보고 손을 고 실셩통곡니 곡셩이 대의 못더라. 김공이 인여명길려 니로
 
140
"대감이 아 엇지 이런 일을 뇨"
 
141
명길이 소 왈(潛笑曰)
 
142
"대감은 니 우리 당당이 죽으리라"
 
143
고 조희 낫낫치 쥬어 니어 붓치니라병판(兵判)니셩귀(李聖求)로 왈
 
144
"대감이 젼브터 쳑화(斥和)기로 국(國事) 이의 밋쳐시니 대감이 당이 젹진의 감즉도다"
 
145
김공이 답 왈
 
146
" 죽고져  결치 못더니 만일 젹진의 보여 죽을 곳을 어드면 이 그 은혜로다"
 
147
언필(言畢)의 햐쳐(下處)로 나가 사을 만면 통곡기 마지 아니고 이 날브터 밥을 먹지 아니고 스로 죽기 긔약더라
 
 
148
십구일
 
149
십구일의 최명길(崔鳴吉)윤휘(尹暉)젹진(敵陣)의 가 국셔 젼 종시 답셔 여 쥬지 아니더니우샹이 그져 도라오참판한녀직(韓汝稷)이 니로
 
150
"국셔의  글 지 아냐시니  임의 답지 아닐 줄 아랏노라  글 클 거(巨) (字)니김공이 햐쳐의 나가시니  타 그 글 급히 지라"
 
151
명길이 올타 고 신(臣) (字) 기 졍다 젼대간(前大司諫)윤황이 병들믈 닐컷고 문 밧글 나지 아니여 일 져녁의 그 을 블너다가 무
 
152
"화친(和親) 일이 엇더여 가뇨 사이 쟝 죽으리로다"
 
153
니윤황은 본 쳑화(斥和)던 사으로 나종의 말이 이러니 사이 다 웃더라 이 날우샹이 젹진의 갓실 졔뇽골(龍骨大)등이 니로
 
154
"대병(大兵)을 뎨도(諸道)의 보엿고부원쉬(副元帥)잡히고강화(江華)도 함몰엿다"
 
155
니 져히 말이러라 셩즁의 병드러 죽은 됴관(朝官)이 두어 사이러라
 
 
156
이십일
 
157
이십일 대셜대풍(大雪大風)나우샹(右相)과명길윤휘(尹暉)젹진의 가 답셔 바다오니 셔왈
 
158
대쳥국(大淸國)관은인셩황뎨(寬溫仁聖皇帝) 됴션 국왕(朝鮮國王)의게 됴유(詔諭)노라 네 하을 어그고 세 져린 고로 딤이 혁연(赫然)이 노야 군 거려 나와 치니 야흐로 샤(赦) 이 업더니 이졔 네 외로온 셩의 곤야 딤의 됴셔여 졀믈 보고 이의  뉘웃치니 딤이 너 샤(赦)야 스로 롭게 려 믄 힘이 너 치지 못 거시 아니라 너 명야 츌셩(出城)야 딤을 보게 려 믄 나흔 네 셩심(誠心)으로 항복믈 보려 미오 나흔 네게 은혜 심거 다시 나라흘 두게 고 군 두로혀 인심으로 텬하의 뵈려 미라 만일 계교로 너 다다 시면 딤이 야흐로 텬명을 밧드러 방을 어로만지니 졍히 네  샤야 남됴의 라믈 삼으려 미라 만일 궤휼노 너 잡을시면 텬하의 큰 거 다 궤휼노 어드랴 네 만일 의심야 츌셩을 아니면 디방(地方)을 다 즛고 녕(生靈)이 다 즌흙이 될 거시니 진실노 일(一刻)을 머무지 못리라 네 읏듬으로 여 셰 져린 신하 딤이 쳐음은 다 죽이려 엿더니 네 이졔 과연 츌셩여 명의 도라올진 위션 읏듬 던 두세 사을 여 보라 딤이 당당이 효시(梟示)야 후인을 경계리라 딤이 셧녁흐로 홀 큰 계교 그고 네 녕(生靈)을 수화(水火)의 지온 거시 이 사이 아니오 뉘오 네 만일 츌셩을 아니면 아모리 비러도 듯지 아니리라
 
159
엿더라. 샹이 하리 쳑화신(斥和臣)으로 더브러 가지로 죽을지언뎡 엇지 가히 여 보리오 동궁(東宮)이 졔신(諸臣)을 도라보아 오샤
 
160
"그 네로 여 우리 집이 다 죽게 엿"
 
161
시니 졔신이  말이 업더라
 
 
162
이십일일
 
163
이십일일 평명(平明)의우샹(右相)이 젹진의 가 국셔 젼고 져녁의 다시 나가 답셔 바드려 니 츌셩기와 쳑화신(斥和臣) 잡아 보 일을 허치 아니키로 젹즁(敵中)이 로야 국셔 그져 보고 답지 아니터라 그 국셔의 여시
 
164
됴션 국왕(朝鮮國王) 신모(臣某) 삼가 대쳥국(大淸國)관은인셩황뎨폐하(寬溫仁聖皇帝陛下)긔 샹셔(上書)니 신이 하긔  어더 됴셕의 쟝 망지라 비록 졍이 급박야 여러 번 글을 올녀 스로 롭기 구나 실노 감히 긔필치 못더니 이의 은지(恩旨) 밧드러 젼(前罪) 다 리고 츄샹(秋霜)의 엄 위엄을 눅이고 양츈(陽春)의 어진 덕을 펴 쟝 동방 슈쳔 리 녕(生靈)으로 여곰 슈화 가온 버셔날지라 군신부(君臣父子) 감격 뉴쳬여 갑흘 바 아지 못 신이 민박(憫迫) 졍이 이셔 폐하 위여 베프니 동방 속이 조얍고 녜졀이 가찰야 그 님군의 거동이 간 녜롭지 아니믈 보면 놀나 셔로 보며 고이 일을 삼니 만일 풍속을 인야 다리지 아니면  나라흘 세오지 못지라 금일 만셩관(滿城百官)이며 모든 군민(群民)이 세 위박(危迫)믈 보고 명의 도라가 의논은 갈나 다만 츌셩기의 니로 고려(高麗) 젹브터 업 일이라 고 죽기 결단야 반시 츌셩은 못리라 니 만일 대국이 독쵹기 마지 아니면 타일의 엇 거시 블과 죽엄이 힌 뷘 셩 름이라 이졔 셩즁인(城中人)이 됴셕(朝夕)의 다 죽을 줄을 아 오히려 이러니 믈며 다니   네브터 나라히 망기 젹국의 잇지 아니니 비록 폐하의 은덕을 닙어 다시 나라흘 세우나 금일(今日) 인심을 볼진 반시 즐겨 님군을 삼지 아닐지니 이거시 신의 크게 두리 오  폐하의 어엿비 너기 본심이 아니라 폐하 뇌졍(雷霆) 튼 군로  깁히 쳔리의 드러와 두 달이 못야셔 그 나라흘 바로게 고 그 셩을 어로만지니 텬하의 긔특 공이오 젼의 업 라 엇지 구여 츌셩기 기려 니긔다 리오  셩을 치믄  치미라 이졔 임의 항복니 셩을 무어 리오 쳑화졔신(斥和諸臣)의 일은 쇼국(小國)이 예사 간(大諫)이며 간(諫爭)기 쥬(主)더니 져젹 일이 망녕되여 쇼국이 이에 니기 다 그 라 샹년의 임의 젹발야  쥬어 쳐시니 이졔 비록 황명이 이시나 신의 본졍이 블과 편벽되고 어두어 텬명을 아지 못고 덧덧 거 직희랴 미라 이졔 폐 군신대의(君臣大義)로 뎐하 풍동(風動)니 이 무리 맛당이 용샤(容赦)지라 업여 각니 폐하의 큰 도량이 텬디 지라 임의 님군의  샤시면 이런 쇼신(小臣)들은 다만 쇼방(小邦)의 맛겨 다리미 더옥 큰 덕이라 신이 임의 폐하의 위엄으로 구믈 닙은 고로 셩심(誠心)으로 친고 븟조 쇼회(所懷) 다야 삼가 죽기 무릅 드리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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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엿더라. 이최명길(崔鳴吉)이 지은 라샹이명길과대졔(大提學)니시직으로 여곰 다시 지이시니 비록명길의 글을 지 아니나 의 다미 업니시직이 져의 글을 지 아닌 고로명길을 공치여 스로 놉은 쳬 니 사이 다 웃더라 이젹의니조참판(吏曹參判)뎡온(鄭蘊)이 국셔의 칭신(稱臣)믈 보고 분통야 샹쇼니 원간뎡공은 녕남(嶺南) 사으로 남인(南人)의 목(色目)이 잇고 역젹뎡인홍(鄭仁弘)이 허명(虛名)이 막 셩(盛) 의 공이인홍의 오나오믈 아지 못고 가이 드러 문인 즁의 드럿더니인홍의  일이 악고광군(光海君)이 간신의 말을 드러 대비(大妃) 폐고영챵대군(永昌大君)을 대비 품으로셔 셔 아교동귀향 보엿더니 즉시 죽으니 텬디간(天地間) 대변이라뎡공은 호걸이인홍을 쳐리고광(光海)긔 샹쇼야 쳔만고 인륜을 븟들고 대의 히니광(光海)살피지 못야졔의 안치엿더니 금샹(今上)이 반졍(反正)시 공을 블너 크게 샤 벼이니조참판(吏曹參判)의 니고 이  호종(護從)야남한(南漢)의 드럿더니 도젹의게 칭신(稱臣)믈 보고 분완야 샹소니 소의 왈
 
166
복이 신이 그윽이 듯오니 어졔 신이 젹진의 갈 졔 칭신기로 알외다  말삼이 잇오니 이 말삼이 진실노 그러니잇가 진짓 그러면명길의 말이라 신이 듯오 음과  다 터지고 목이 메여 능히 소 못소이다 젼후(前後) 국세(國書) 다명길의 손의셔 니 말이 극히  진실노 항복 편지라 연이나 오히려 신(臣字) 지 아냣더니 이졔 칭신(稱臣)온즉 군신(君臣)의 명분이 졍여오니 쟝 명 로 좃지라 졔 만일 명여 나셔 항복라 면 뎐 쟝 븍녁흐로 가시며 복(服色)을 곳치고 술잔을 드리라 면 뎐 쟝 술잔을 드리시리잇가 만일 순종치 아니면 제 반시 군신대의(君臣大義)로  타여 칠 거시니 연즉 나라히 망지라 이 지경의 니러 쟝 엇지 려 시니잇고명길의 의  번 칭신면 힌 거 가히 플 거시오 님군을 가히 평안이 리라 나 셜 이러여도 오히려 소인(小人)의 츙(忠)이라 녜브터 텬하(天下) 국개(國家) 망치 아닐  이시리잇가 무릅흘 굽히고  거시 바른 거 직희고 죽니만 지 못니 믈며 군신 부 셩을 등두어  번 호면 셩을 완젼이  도리 업지 아니리이다 아국(我國)과 즁국(中國)이 부(父子)의 은혜와 군신의 분이 이시니 엇지 가히 반리오 하의 두  업거명길이  둘을 들고져 고 셩이  두 님군이 업거명길이 님군 둘을 들고져 니 이 아 면  무삼 일을 못리오 신이 힘이 약야 비록 스로명길을 죽이지 못나 아 방셕의 셔로 용납지 못니 원컨 뎐하명길을 쳐  나라   히시고 그러치 아니타 실진 신을  쥬쇼셔
 
167
엿더라. 날이 칩고 눈이 녹지 아니니 나무 어들 길이 업셔개원(開元寺)낭(行廊)과 고을 옥집을 허니라 동궁(東宮)이 군관려 니로
 
168
" 임의 식이 잇고 아이 이시니  엇지 목숨을 앗기리오 일 뎡여 츌셩고져 니 이 을 비변(備邊司)의 니라"
 
169
비변(備邊司) 의논여 셰(世子) 츌셩(出城)을 마시고 쳑화졔신(斥和諸臣) 잡아 보믈 뎡니니조참판(吏曹參判)뎡공이 차(箚子) 왈
 
170
복이(伏以) 신이 실노명길의 칭신쟈  말을 막으랴 옵더니 일야 간의 믄득 그 계교 야 신이 밋쳐 막지 못야 죽기로 막지 못니 신의  크온지라 님군의 욕이 임의 급여시니 신 죽기 맛당 오히려 결치 못믄 뎐 오히려 츌셩실 이 업니 신이 엇지 감히 경히 죽으리잇가 다만 드니 도젹이 쳑화(斥和) 사 기 심히 급히 다 오니 신이 비록 몬져 쳑화(斥和) 주 사이 아니오나 죵시 호기 쥬기 신의 일이라 만일 신이 죽고  터럭이나 국가의 유익면 신이 엇지 감히 몸을 랑야 님군을 위여 죽지 아니리잇고 원컨 뎐하 리 묘당(廟堂)을 명샤 신으로 도젹의 구 거 응쇼셔
 
171
엿더라 .
 
 
172
이십삼일
 
173
이십삼일의 샹휘(上候) 미령(未寧)시니 국(內局)이 가져온 약 다만 졍긔산(正氣散) 열 텹 소입이라 졍긔산 두 복을 지어 진어(進御)시니 즉시 평복(平復)시다 젹이 쳑화신(斥和臣) 아니 보기로 화친(和親)을 허치 아니더니 쳬부(體府) 즁군(中軍)신경인(申景禋)과남양군(南陽君)홍진도(洪振道)와구굉(具宏)이 젹진의 왕여 가마니 의논고슈원(水原)드오산댱관(將官) 등과 훈련도감(訓練都監) 초관(哨官) 수 인을 부쵹야 몬져 쳬부(體府)의 가 칼흘 어로만지며 궐하(闕下)로 가 쳑화신(斥和臣)을 라 보니
 
 
174
대슈원부(水原府使)구인휘(具人垕)오죽산부(竹山府使)구인긔(具仁基)오 군병(軍兵)은구굉(具宏)의게 속엿고신셩진(申景縝)은훈련대쟝(訓練大將)이라 금일 이 거 군병의 이 아니러라우샹(右相)이 국셔 가져 젹진의 갈 츌셩 못다  말은 젼 편지와 고 쳑화신(斥和臣) 여쥬기 허락여시니 그 말삼의 여시
 
175
쳑화졔신(斥和諸臣)의 망녕된 말노 냥국(兩國)의 큰 계교 그 니 다만 폐하의 아쳐 분 아니라 실노 쇼방(小邦) 군신(君臣)이 가지로 분통여  라 부월(斧鉞)노 죽이미 엇지 일분인들 앗가오리오 다만 슈챵(首唱) 대간(臺諫)홍익한(洪翼漢)을평양셔윤을 이여 져려 스로 대병(大兵)을 당라 여시니 만일 셔 잡히지 아냐시면 반시평안도ː평양이실지니 대군이 도라갈 길의 잡아 야 맛지기 어렵지 아니고 그 남은 니 길이 통치 못야 거쳐 지 못니 폐 반시 궁극히 시면 군 도라가 날의 쳥컨 사야 그 사을 어더  쳐분을 기리마
 
176
엿더라.
 
 
177
김쳥음(金淸陰)이 국셔 고 십팔일브터 밥을 먹지 아니여 졀곡 지 엿라 명(命者) 경(頃刻)이러니 쳑화신(斥和臣) 보려  거조 드 이 날브터 비로소 음식을 먹어 니로
 
178
" 만일 몬져 죽으면 적진의 가기 피다 리라"
 
179
더라.
 
 
180
윤교리(尹校理)오슈찬(吳修撰)냥인(兩人)이 년명(連名) 샹소(上疏)야 쳑화(斥和) 일노 슈고 젹진의 가기 쳥니 대개 김뉴(金瑬) 니셩구(李聖求) 최명길(崔明吉)의 의논이 쳑화졔인(斥和諸人)을 다 잡아 보려 미라 야 삼경(三更)의 도젹이 셧녁흘 치고 오경(五更)의 동편으로망월봉(望月峯)을 범여 셩즁(城中)을 침노다
 
 
181
이십일
 
182
이십일의 젹이 남셩을 범고 종일토록 궁을 향여 방포니 쳘환(鐵丸)이 사발 고 삼층 지와집을 러  남아 드더라
 
 
183
이십오일
 
184
이십오일의 젹이 셔문으로 조 우리 신을 부니니덕형(李德泂) 니셩구(李聖求) 최명길(崔明吉)이 젹진의 가니 젹쟝이 국셔 도로 여주고 니로
 
185
"일이면 도라가려 니 만일 츌셩을 아니면 화친(和親)이 되지 못리니 이후란 다시 오지 말나"
 
186
이리 니고 종일토록 방포더라
 
 
187
이십뉵일
 
188
이십뉵일 신경진(申景禛)구굉(具宏)의 쟝관이  궐하(闕下)의 와 쳑화신(斥和臣) 여주기 쳥니 쳥음(淸陰)등을 니미라 쟝관(將官)들이 졍원(庭園)가지 드러가 드레기 긋치지 아니니승지(承旨)니원(李行遠)이 니로
 
189
"대(大內) 머지 안닌 곳의셔 엇지 감히 니러 하뇨"
 
190
군병(軍兵) 등이 눈을 브릅고 로여 쟝 쟉난 형샹을 니 인심이 훙훙더라 일셩(一城)을 직흰 군 즁의 다만신경진(申景禛)구굉(具宏)의 군 그리 고 다 군 그리 니 업므로 사이 알고 니리 이시므로  븍셩 직흰 총용군병(總戎軍兵)을 다여 와 쳥 오직 셔녁 셩 직흰 대쟝(大將)니시(李時白)의 군  사도 오니 업더라 이  져녁의홍셔봉(洪瑞鳳)최명길(崔鳴吉) 김신국(金藎國)이 젹진의 가니뇽마이쟝(二將)이강화(江華) 함몰고 대군(大君) 형뎨(兄弟)와 숙의(淑儀) 동궁(東宮) 일이 임의 진(陣)의 니럿고 대군부인(大君夫人)은 고을 사으로 여곰 (輩行)여 모면 이의 니 거시오경셩궁궐을 블지지 아니여 국왕이 츌셩 후야 다시 궐의 들게 고 세(世子)와 대군(大君)만 븍녁흐로 다려가려  대군의 편지 주며 니로
 
191
"너희 대군 편지니 너희 님군긔 드리라"
 
192
가져 오 셩즁이 밋지 아니더니 샹이 보고 오샤
 
193
"이 분명 대군의 친필이라 종(宗社) 임의 망케 되여시니 일 업지라"
 
194
인여 츌셩 계교(計巧) 뎡시니
 
 
195
이십칠일
 
196
이십칠일의 안 옥야 지쳑을 분변치 못다가 최명길(崔明吉) 니셩귀(李聖求)등이 국셔(國書) 가져 젹진의 가니 이 츌셩을 허 이라. 온
 
197
신이 셩교 바드므로브터 텬디의 용납 큰 덕을 감샤야 도라가 븟조 음이 더옥 간졀 신의 몸을 도라 살피니 힌 죄 뫼 지라 여러 날 머믓거려 만 죄 더으니 이졔 폐 도라갈 날이 이시믈 드니 일즉이 우러러 뇽광(容光)을 라지 못면 미 졍셩을 펴지 못고 라 뉘웃들 엇지 밋리오 신이 야흐로 삼 년 종샤(宗社)와 슈쳔 녕(生靈)으로 폐하긔 의탁니 졍세 진실노 잔잉지라 만일 그되미 이시면 칼을 드러 결만 지 못니 업여 원컨 히 됴셔 리와 음을 평안케 고 명의 도라갈 길을 열나 엿더라 이 날쳥음(淸陰)이 스로 목여 거의 명졀(命絶)케 되엿더니 사이 프러 노핫더니  허리로 결항(結項)여  프러노코니조참의(吏曹參議)니경여(李敬與)와 공(公)의 자졔들이 븟들고 직희여 결치 못게 더니 그 날 이후로 공을 잡아 젹진의 보 의논이 이시 후로 결 을 긋치니라니조참판(吏曹參判)뎡공이 동향(同鄕) 사이 묘문(墓文)을 쳥 니 잇더니 이 날은 글을 지어 쳡(帖子) 맛져 그 사의게 뎐(傳)라 고  글을 지어 오,
 
198
님군의 욕이 임의 급여시니 신 엇지 죽기 더리오 년(輦)을 라 나가 항복믈 실노 븟그려 노라
 
199
이리 짓고, 찬 칼을 혀 스로  지니 뉴혈이 침금(寢衿)의 가득엿더니 사이 급히 가보니 오히려 죽지 아냐 웃고 니로.
 
200
" 일즉 글을 닑으 그 을 몰도다 녯 말의 여시 칼날이 업여야 죽다 여시니 업면 오쟝이 샹여 죽을 거 누어셔 지기의 죽지 아냣노라"
 
201
더라.
 
 
202
이십팔일
 
203
이십팔일의 김뉴(金瑬) 홍셔봉(洪瑞鳳) 니홍(李弘冑) 입시(入侍)여 김(金瑬) 쳥 녜조판셔(禮曹判書) 김상헌과 니조참판(吏曹參判) 뎡온(鄭蘊)과 젼(前) 간(大司諫) 윤황(尹煌)의  윤문거(尹文擧)와 밋 오달졔(吳達濟) 윤집(尹集) 김슈익(金壽翼) 김익희(金益熙) 뎡뇌경(鄭雷卿) 니우(李行遇) 홍탁(洪琢) 십인(十人)을 다 젹진의 보게 쳥니 대 젹이 홍익한(洪翼漢) 밧긔 허 니 업 고로 화친(和親)을 허치 아니미오 여러 사 샤기 어려워 되 쳥고김(金瑬)최명길(崔明吉)노 더브러 동심(同心)고쳥음(淸陰)의 말삼이김뉴(金瑬) 침노 연괴러라.
 
 
204
나만갑(羅萬甲)이 니경셕(李景奭) 려 니로
 
205
"온당쟝과 이 엇지 이 이시리오"
 
206
경셕이 답 왈,
 
207
"대간(大司諫)이 드러오면 가지로 닷토리라"
 
208
더니, 대간 박황(朴潢)이 드러와 김뉴(金瑬) 려 니로,
 
209
"젹진의 보기 비록 두어 사이라도 이 되려든 엇지 여러 사의 니리오교리(校理)윤집(尹集)이 당초의 샹소여 힘 쳑화(斥和)여시니 이 두 사을 보기 아 못 로 만히 보기의셔 흐리다"
 
210
, 그 말을 조니라.
 
 
211
홍셔봉(洪瑞鳳) 최명길(崔明吉) 김신국(金藎國)이 젹진의 나가 츌셩오실 졀목(節目)을 마련 이 일이 녜브터 규례 이시니 읏듬 졀목은 참혹니 둘 졀목이 맛당도다 니른바 읏듬 졀목은 밤함 구을 입의 믈고 븬 관을 싯고 나가미오 둘 졀목은 군신(君臣)과 하인 합야 오 인을 거리고 위의(威儀)와 군병(軍兵)을 업시 고 그믐날 츌셩라  구여 쳥의(靑衣) 닙으라  일은 업명길이 졔 짐으로 니로,
 
212
"뇽포(龍袍) 닙지 못 거시니 쳥의 닙으시미 맛당니라"
 
213
고, 쥬샹과 세 닙으실 쳥의 밤도록 촉여 지이니라.
 
 
214
이 날 밤의뇽마이쟝(二將)이 답셔 가져오니 셔왈
 
215
관은인셩황뎨(寬溫仁聖皇帝) 됴션국왕(朝鮮國王)의게 됴유(詔諭)노라. 주문의 음을 졍히 고 명의 도라오기 간쳥여시니 딤이 거즛말가 너기가 이졔 젼(前罪) 다 리고 규례(規例) 다시 졍니 네 만일 허믈을 곳치고 은덕을 잇지 아니야 손 댱구(長久) 계교 진 대명(大明)이 준 바 고명(誥命)과 인신(印信)을 드리고 대명과 교통기 치고 문셔(文書)의 우리 년호(年號) 고 네 과 둘 로 볼모 삼고 졔신(諸大臣)이  잇 니 을 보고 업 니 여 볼모 삼고 딤이 대명(大明) 칠 졔 네 수만 긔 여 긔약을 어그지 말며 됴총(鳥銃)과 활살을 비고 대군이 도라갈 졔 호군(護軍) 거 드리고 셩졀과 졍됴(正朝)와 동지(冬至)와 즁궁(中宮) 쳔츄졀(千秋節)과 태 쳔츄졀의 밋 하례(賀禮)고 됴문(弔問) 일의 대신을 명여 표(表) 올니고 주문(主文) 규식(規式)과 딤(朕)의 됴셔(詔書)와 네 신으로 더브러 셔로 보기와 혹 네 신 뵐 젹 녜졀을 대명(大明) 젹과 달니 말고 외 졔신으로 더브러 혼인야 화친(和親)을 굿게 고 지라 딤이 임의 죽은 몸을 오고 망 종 완젼케 여시니 타일의 네 손손(子子孫孫)이 신의 어그지 말라 네 나라히 교 반복기로 인야 이리노라 년 됴공(租貢) 믈목(物目)은 황금(黃金) 일 냥(兩) 녹피(鹿皮) 일 쟝(張) 남초(南草) 일쳔 근(斤) 슈달피(水獺皮)  쟝(張) 쳥셔피(靑鼠皮) 이 쟝 패도(佩刀) 이십뉵 병 대호지(大好紙) 일쳔 권 뇽문셕(龍紋席)  닙 화셕(彩畵席) 십 닙 져포(白苧布) 일 필 각  면쥬(綿紬) 이쳔 필 마포(麻布)  필 각  세포(細布) 일만 필 뵈 일쳔 필 미(白米) 일 셕을 긔묘년(己卯年) 가을브터 시작라
 
216
엿더라.
 
 
217
이 날 윤오이공(二公)이 쟝 젹진의 나갈 긔이 종 여샹(如常)더라. 샹이 인견(引見)시고 술 먹여 니별여 오샤
 
218
"너희 부모 쳐 당당이 종신(終身)토록 도라볼 거시니 이 념녀치 말라"
 
219
시더니, 그후 수년을 을 주시고 다시 은뎐(恩典)이 업더라 윤오이공(二公)이 젹진의 가 피화(被禍) 의홍공과 아오로 삼젼(三學士傳)을 지으니라 니조참판(吏曹參判)뎡공이  샹쇼니 쇼의 왈
 
220
복이(伏以) 신이 결기 졍히 오날을 아 아니보려 미러니 실 잔명(殘命)이 삼일이로 오히려 진치 아니니 신이 실노 고이여 이다. 명길이 임의 뎐하로 여곰 항복시게 니 군신분의(君臣分義) 임의 명히 졍엿지라 신 님군의게  승순(承順) 분 아냐 가히 토암즉 면 가히 닷토리니 졔 만일 황됴(皇朝) 인신(印信)을 드리라 거든 뎐 당당이 다토아 오샤 조종(祖宗)으로브터 이 인(印)을 바다  이졔 삼 년이니 이 인을 당당이 명국(明國)의 드렴즉 고 쳥국(淸國)의 드리미 블가타  거시오. 졔 만일 텬됴(天朝) 칠 군 쳥거든 뎐 당당이 닷토와 오샤 명(明)과 부흔 은혜 쳥국도  알지라. 을 가쳐 아비 치기 뉸긔(倫紀)의 변(變)이니 다만 치  이실 분 아니라 가치   가치 아니니라 시면 져의 흉교(兇狡) 으로도 반시 살필지라. 원컨 뎐하 이 두 가지 일을 토아 텬하(天下) 후세(後世)의 득(得罪)기 면시면 심(幸甚)여이다 신이 명이 진케 되여 능히 대가(大駕) 로지 못니 신의 죄 큰지라 신의 벼을 가라 신으로 여곰 눈을 감게 쇼셔
 
221
엿더라
 
 
222
삼십일
 
223
삼십일의 일(日色)이 무광(無光)다. 샹이 세로 더브러 쳥의(靑衣) 닙으시고 셔문으로 조 나가실 셩의 가득 사이 통곡여 보오니 셩즁의 곡셩이 하의 못더라. 한(汗)이삼밧남녁 구층 단을 무으고 단 우희 쟝막을 치고 황양산(黃陽傘)을 밧고 단 우희 뇽문셕(龍紋席)을 고 뇽문셕 우희 금슈교룡(錦繡蛟龍) 뇨 펴고 그 우희 누른 비단 일(遮日)을 놉히 치고  황양산(黃陽傘) 셰흘 세우고 졍병 수만을 킈 크고 건쟝기 맛치 니로  각각 금슈갑옷 다 벌식 닙고 호위(護衛)엿더라. 한(汗)이 황금샹(黃金床) 샹(上)의 거러 안 야흐로 활을 타며 졔쟝(諸將)을 활 여 뵈더니 활 기 고뎐하로 여곰 거러 드러가시게 니  보 거러 드러가샤 삼공뉵경(三公六卿)으로 더브러 졍 즌흙 우희셔 례(拜禮)실 군신이 돗 기 쳥온, 샹 왈,
 
224
"황뎨 압셔 엇지 존리오"
 
225
인여 세 번 졀고 아홉 번 머리 좃 녜 시니 인도야 셤의 오샤 셔향(西向)야 졔왕 우희 안시게 고 한(汗)이 남향(南向)야 쥬찬(酒饌)을 셜고 군악을 움이더라. 한이 뎐하긔 돈피(豚皮) 옷 두 벌을 드리고 대신 뉵경승지(六卿承旨)  벌식 주니샹이  벌을 닙으시고 셔 삼 샤례시니 대신이  례로 샤례더라. 이 날 져녁의뎐셔울드러오실 닌평대군(麟坪大君)과 대군부인(大君夫人)과 숙의(淑儀) 다 뫼셔 드러오고 동궁(東宮)과 빈궁(嬪宮)과 봉님대군(鳳林大君)과 대군 부인을 다 쟝 심양(瀋陽)으로 드러가실 인야 진즁(陣中)의 머무고 젹쟝(敵將)이명길의 가속을 여주니명길이 고두샤례(叩頭謝禮)더라
 
 

 
226
이월 초 이일
 
227
이월 초 이일의 셩 사이 다 셩의 니 젹병이 쳐쳐(處處)의 득여 동셔(東西) 아지 못너라. 젹병 가온 아국(我國) 사이 흘니이니 감히 쇼 못고 가마니 우러 사을 향고 혹 길의 업여 비 형샹 면 젹이 쇠로 치더라 혹 셩젹고  달니 니 이시니 평안도 녀기(女妓)러라. 대부(士大夫) 쳐쳡과 쳐녀들은 참앗 낫 지 못고 머리 고 잇 니 무수더라. 이 날 한(汗)이 발니샹이 동교(東郊)의 나가 보시다.
 
 
228
초 삼일
 
229
초 삼일의 뇽마 이쟝(二將)이 뎡명슈(鄭命壽) 거려 궐하의 오니 녕좌샹(領左相)이 나 졉 김(金瑬) 뇽골(龍骨大) 등 려 니로,
 
230
"이졔 우리 냥국(兩國)이 부(父子) 되여시니 무삼 말을 아니 드리오. 이후의 남됴(南朝) 칠 졔 명로 리라"
 
231
홍셔봉(洪瑞鳳)이  닐오,
 
232
"아국(我國)이 황금소산(黃金所産)이 아니니 한(汗)의게 주여 더러주믈 라노라"
 
233
뎡명쉬(鄭命壽) 답 왈,
 
234
"본국이 쳐음의 뎡탈지 아냐시니  어이 감히뇽쟝려 니며 뇽쟝이 엇지 한(汗)려 니리오. 대감은 톄면을 각지 아닛냐"
 
235
홍셔봉(洪瑞鳳)이 다만 올타 더라. 김뉴(金瑬)의 쳡 이 피로니 뇽골(龍骨大)려 니로,
 
236
"만일 속여 여올진 당당이 쳔금을 주리라"
 
237
니, 일노브터 피로 사의 갑시 즁기 김뉴(金瑬)의 말노 인니라. 뇽골(龍骨大)등이 나갈 졔 두 대신이  려 셧더니 김(金瑬) 믄득 뎡명수(鄭命壽) 안고 귀에 다혀 니로
 
238
"이졔 판로 더브러 일가 니 판의 쳥을  어이 아니 드며  쳥을판아 어이 듯지 아니리오  식 올 일을 판모로미 십분 주션라"
 
239
명쉬부답 안고 놋치 아니니, 명쉬 괴로이 너겨 옷 치고 가니라.
 
 
240
초 뉵일
 
241
초 뉵일 조식(朝食) 후의대(大駕) 셔강(西江)의 가시니 구왕(九王子) 한(汗)의 아홉 아이라. 우리 세  그 근쳐의 계시더니 샹이 몬져 세 막의 가 보신 후 구왕 가 보실  구왕(九王)이 즁노(中路)의셔 만나 마 마샹(馬上)의셔 셔로 읍(揖)고 가지로 그 막의 가 샹여 좌졍고 시신(侍臣)은 그 뒤의 안즌 후 구왕이 쥬찬을 셜고 군악(軍樂)을 움즉이더니 구왕이 음식을 믈녀 그 쟝관을 주니 샹이  구왕  로 음식을 좌우로 주시니 시신(侍臣)이 오히려 주렷다가 달게 먹더라
 
 
242
초 팔일
 
243
초 팔일의 샹이 세(世子) 거(行車) 보시려 챵능(昌陵)길가로 나가시더니 을 멈츄고 말신 후 세 막의 드신 후샹과 빈궁과 대군 부인은 막의 드시고 세 밧긔 계시더니 군신이 졀야 하직니라.
 
 
244
세 봉님대군(鳳林大君)으로 더브러 발시니 빈궁 시비 여셧시오 대군 부인 시비 네히 조찻더라. 관 샹 일시의 브지져 우니, 샹이  쳬루(涕淚) 금치 못시더라. 샹이 그 혹 형샹을 아 보지 못샤 대로 말암지 아니고 뫼흘 의지야 니 문으로 환궁시다.
 
 

 
245
월 십구일
 
246
월 십구일의 신(使臣)으로 표(表) 밧드러 한(汗)의게 샤은고 방믈을 밧칠, 황셰져포 삼십 필 세져포 이십 필 목(白木) 일쳔 필 뇽문셕(龍紋席) 이 닙 황하셕(黃花席) 일 쟝 만화셕(滿花席) 이십 쟝 화셕(彩畵席) 십오 쟝 표피(豹皮) 십 쟝 수달피(水獺皮) 삼십 쟝 면지(白綿紙) 일쳔 권 뉵쟝 부유둔 삼 쟝 쟝 부유둔 삼 쟝 황모초필 일 병 진묵(眞墨) 오십 뎡 건시(乾柹) 삼십 졉 황뉼(黃栗) 십오 두 대젼복(大全鰒) 일 졉 이 한(汗)의게 보고 즁궁의게 녜믈은 홍세져포 이십 필 세져포 삼십 필 포(白布) 이십 필 목(白木) 오십 필 만화셕(滿花席) 십 쟝 화셕(彩畵席) 십 쟝 황모필 십 병 진묵(眞墨) 십 뎡이러라 읏듬 쳑화신(斥和臣)홍익한을 쳐음의 젹병을 막으라평양셔윤을 시기니 길이 통치 못 쳔신만고여 겨유 임쇼(任所)의 니러 셩을 진무더니 그리로셔 잡혀가니 사의 통셕(痛惜) 러라 뎡츅(丁丑) 십일월의 한이뇽마이쟝(二將)을 보여 로이 아국(我國) 쥬샹을 봉야 죠션국왕(朝鮮國王)을 삼아 인신(印信)과 고명(誥命)을 보고 별노 검은 녀희 가죽 옷  벌과 돈피(豚皮) 일 쟝 준마(駿馬) 일 필 녕농(玲瓏) 안쟝(鞍裝) 나흘 보고 삼공뉵경(三公六卿)과 대부(士大夫) 집이 져와 혼인고 졀(絶色) 시녀(侍女) 드려 보믈 쳥엿더라뇽골(龍骨大)등이 아국(我國)의 와 작폐(作弊)야 방기 드리라 니원졉쳐음은 막다가 됴졍(朝廷)의 품니 됴졍이 막지 못야 허니 각 관 기(妓生)이 다 방기되고셔울은 의녀(醫女)와 무당(巫堂)이 드러와 간 의 지 아니면 대부(士大夫) 치기 노복(奴僕) 치 니 병조졍낭(兵曹正郞) 변호길이 뇽골(龍骨大)의게 마 죽으니라 삼공뉵경(三公六卿) 다 대부(士大夫)들이 쟝 도젹으로 더브러 결혼랴 졍고 긔별엿더니 한(汗)이 니
 
247
"먼리 오기 유폐니 말나"
 
248
다가도(椵島)기 열아믄을 국(國擇)여 시녀로 보엿더니 그후의 다시 보지 말나 엿더라
 
 
249
젹이삼밧개셔 승젼(勝戰)고 항복(降服)바든 고로 숑(頌) 비(碑) 세우라 지라 아국(我國)이 즉시 강가의 각을 짓고 놉흔 비 세우고대졔(大提學)니경셕(李景奭)을 명야 비문(碑文)을 짓고참판(參判)오준(吳竣)이 고참판(參判)녀이증(呂爾徵)이 젼(篆字) 삭이니 기문(其文)의 왈
 
250
대쳥(大淸) 숭덕(崇德) 원년(元年) 동(冬) 십이월의 황뎨 화친(和親)을 허러리기 우리로브터 다 샤 혁연(赫然)이 노야 바로 두려 동녁흐로 오시오니 가히 항거(抗拒)  업지라 우리 과군(寡君)이남한(南漢)의 늠늠(凜凜)야 봄어름 기 거의 오십 일이나 더니 동남(東南) 졔도(諸道) 군병이 니음다라 허여지고 셔븍 군 협즁(峽中)으로 다나 능히  거름도 나오지 못고 셩즁(城中)의 냥식이 진니 이 당야 대병(大兵)으로 셩을 치기 셔리와 람이 을 플닙흘 거두치고 화로블이 기럭의 털 오기 거 황뎨 죽이지 아니키로 위엄을 삼고 오직 덕(德) 펴기 몬져 야 이의 칙셔(勅書) 리와 개유(開諭)야 오 오면 딤이 너 완젼케 고 아니오면 즛치리라 야뇽마졔장(諸大將)이 황명(皇命)을 밧드러 길 셔로 다하시니 이의 우리 과군(寡君)이 문무졔신(文武諸臣)을 모화 닐너 오  화친(和親)을 방의 의탁연 지 십년이라  혼혹기로 말암아 스로 하이 치 거 촉야 만셩(滿城)이 어육(魚肉)되미   사의 라 황뎨 오히려 즛치지 아니야 글노 유(開諭)니  엇지 공경야 밧드러 우흐로 종샤(宗社) 완젼케 고 아로 녕(生靈)을 보존케 아니리오 신 대신(大臣)이 합야 도으니 드여 슈십 긔로 조 군문(軍門)의 가  쳥니 황뎨 이의 녜(禮待)고 은혜로 어로만져  번 보 심복으로 밀위라 고 샹 은혜 총신(寵臣)의게 밋며 녜 파 즉시 우리 과군(寡君)을 도셩(都城)으로 드려보고 군병이 남으로 나린 쟈 즉시 브고 군 셔로 두로혈 오나온 거 금고 농 권야 원근(遠近)의  즘 치 허여진 쟤 다 져 잇든  도라오니 동토(東土) 수쳔리 강산이 즉시 의구(依舊)지라 셔리와 운(雲)이 변야 양츈(陽春)이 되고 가믄 거시 도로혀 시우(時雨)가 된지라 임의 망얏다가 다시 엇고 임의 쳐졋다가 다시 니으니 이 실노 녜 업 일이라한강샹뉴삼밧개남녁흔 곳 황뎨의 머무시던 곳이라 단이 이시니 우리 과군(寡君)이 공조(工曹) 명야 단을 더 놉히고 크게 며 돌을 버혀 비(碑) 세워 길고 오도록 드리워 황뎨의 공덕(功德)이 바로 조화로 더브러 가지로 흐믈 히니 엇지 다만 우리 쇼방(小邦)이 셰셰의 기리 힘닙을 이리오  조(大朝)의 어질고 위엄 졉기 일노브터 말암은지라 도라보건 텬디(天地)의 큰 덕과 일월의 은 거 그림으로 그리 족히 방블치 못 거시로 간 략을 긔록노라
 
 
251
명(銘)의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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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 샹노 리오시니 이의 싁싁고 이의 니도다 오직 황뎨 이를 법바드니 위덕(威德)을 베프도다 황뎨 동녁흐로 치니 그 군 십만이로다 은은(殷殷)고 굉굉(轟轟)니 범 며 금(禽) 도다 셔녁 변방(邊方)과 븍녁 부탁이 챵을 고 압셔 모니 그 위령(威令)이 혁혁(赫赫)도다 황뎨 심히 어지러 은혜의 말을 리오니 열 줄이 아 도로혀 엄고  온화도다 쳐음의 미혹(迷惑)여 아지 못고 스로 근심을 깃쳐더니 황뎨 은 명이 이시니 이  듯도다 우리 님군이 공경야 항복니 셔로 거려 도라가도다  위엄을 져허 분이냐 오직 덕을 의지도다 황뎨 아국(我國)을 아름다이 너기샤 덕이 흡족고 녜쉬 넉넉도다 이의 깃거며 이의 웃고 병쟝기 뭇도다 무어 준고 조흔 이며 가야온 옷시로다 도인(道人)과 녀(士女)들이 이의 노 브도다 황뎨 군 두로혀 농(農事) 권도다  의 두 번 이 나고 이운 플의 다시 봄이 되도다 돌이 이셔 의의(猗猗)니 큰 강가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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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엿더라
【원문】山城日記 (산성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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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2년 03월 0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