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S 여러분! 반갑습니다.    [로그인]
키워드 :
한글 
◈ 어머니와 딸 ◈
◇ 추억 ◇
카탈로그   목차 (총 : 6권)     이전 2권 다음
1931년
강경애 (姜敬愛)
 

1. 추억

 
2
지루하나마 옥의 친정어머니 이야기로부터 시작하자.
 
3
옥의 어머니는 송화읍에서 은율목으로 빠지는 막바지에 사는 김창문의 맏딸이었다.
 
4
아버지의 부지런한 탓으로 조밥이나마 배불리 먹고 갈나무라도 미루어 가면서 뜨뜻이 땠다.
 
5
금년 열일곱에 난 창문의 딸은 동네의 자랑거리였다. 바느질 잘하고 얌전하다는 것, 더구나 우선우선 웃는 듯한 그의 얼굴은 동네의 인기를 끌고도 지나친 것이었다. 그러므로 누구나 그를 대할 때에는 ‘예쁜이’ 이렇게 불러서 그의 이름은 예쁜이로 되어 버리고 말았다.
 
6
아침만 되면 그의 부모들은 네 살 된 세인이를 맡기고 들로 나간다. 예쁜이는 집에 남아 있어 물 길어 밥 짓기, 진흙투성이 된 옷 빨고 바늘질하기였다.
 
7
그의 동무들은 김 매기를 뽑혀다니었건만 그는 텃밭을 매는 외에 벌김이라고는 매어 보지 못하였다. 그만큼 그의 부모들이 그를 아끼었던 것이다.
 
8
어느 날 저녁 때 그는 세인을 데리고 물을 길러 갔다. 앞으로 뿔뿔 달아나는 세인이를 보고,
 
9
“아가, 세인아” 하고 불렀다.
 
10
세인은 말똥말똥 누이를 쳐다보며 달아난다.
 
11
“놀며 가자우, 넘어져, 응.”
 
12
몇 걸음 천천히 걷던 세인은 금시로 달음질쳤다. 예쁜이는 따라가서 붙잡고 흘겨보며,
 
13
“넘어진대도?”
 
14
세인은 몸을 빼치려고 어깨를 흔들며,
 
15
“고기고기나!”
 
16
조그만 손을 쏙 내밀었다.
 
17
“무엇?”
 
18
손길을 통하여 바라다보니 샛노란 망망꽃이 풀포기에 숨어 반만큼 배움하고 있다.
 
19
“꺾어 주랴?”
 
20
“응.”
 
21
그는 가만가만히 풀숲을 헤치고 꺾어다 주었다. 세인의 얼굴은 한층 더 둥그래 보였다.
 
22
파란 풀포기에 숨어 흐르는 흰 물줄기는 쭉 둘러싼 차돌 틈으로 졸졸 흐르고 있었다.
 
23
예쁜이는 그의 그림자를 물 속에 던지며 바가지를 들여밀었다. 퐁, 소리가 나자 눈달치들이 하나씩 나타나기 시작한다.
 
24
동이에 물을 채우고 나서 예쁜이는 한 모금 마신 후 돌아보며,
 
25
“물 안 먹어?”
 
26
바가지를 들어 뵈었다. 세인은 그에게로 다가서며,
 
27
“감구감구” 한다.
 
28
휘끈 돌아보다가 번개같이 웬 사람의 시선은 마주쳤다. 그는 머리를 폭 숙이고 얼른 동이를 이었다.
 
29
“어서 가!”
 
30
겨우 한 마디를 입 속으로 중얼거리고 세인의 손을 잡아끌었다.
 
31
저편 사나이로부터,
 
32
“아기 싱아 줄까?”
 
33
세인이는 예쁜에게로 칵 달려매며 망망꽃을 공중에 내던지고 울멍울멍 하였다. 옥의 두 귀밑은 빨개지며 세인의 손을 홱 잡아뿌리치고 잦은 걸음으로 달아났다. 세인은 “으아”소리를 치고 두 발을 동동 굴렀다.
 
34
이 꼴을 본 사나이는 이편으로 달려와서 그의 손에 싱아를 들려주었다.
 
35
“애기 울지 마라.”
 
36
세인이는 싱아를 집어내치고 예쁜이를 따라 허방지방 따라오다가 팍 고꾸라졌다. 사나이는 뒤로 와서 그를 부동켜안고 예쁜네 집 사립문까지 왔다.
 
37
“아가, 잘 들어가라. 또 넘어지지 말고, 응?”
 
38
세인이는 눈물을 좌우로 씻으며 봉당 대문 사이로 갸웃이 내다보고는 쑥 들어가 버렸다. 사나이는 돌아서서 머리를 푹 숙이고 천천히 걸음을 옮기었다.
 
39
부엌에 숨었던 예쁜이는 세인이를 꽉 쓸어안고 문 사이로 사나이의 뒷맵시를 보았다.
 
40
커다란 사나이가 산비탈을 넘어서자 힐끗 돌아보는 것이었다.
 
41
그 후로는 세인이는 밖에만 갔다오면 싱앗단이나 과자봉지를 들고 달려 들어오며,
 
42
“이거 봐, 사탕이야 씨, 너 안 줘.” 하고 빙빙 돌아가며 과자봉지를 들었다 놓았다 하였다.
 
43
예쁜이는 눈을 둥그렇게 뜨고,
 
44
“웬 거냐? 누가 사주디?”
 
45
세인은 밖을 흘끔흘끔 돌아보며,
 
46
“감구, 감구가 사줘.”
 
47
예쁜이는 문밖을 바라보며 어디 숨어서 엿보지나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들 때 전신이 오싹해지며 눈앞에 전날 본 사나이의 그 눈매가 무섭게 떠오르는 것이었다. 그는 가는 소리로,
 
48
“세인아, 얻어먹으면 거렁뱅이 되어서 못 쓴다. 후댐에 또 사주거든 우리 집엔 사탕 많아요 하고 받지 말아라 응? 그러면 내가 아부지더러 하얀 돈 많이 달라고 해서 사탕 이만큼 사주마 응?”
 
49
그는 손을 벌려 뵈었다. 세인이는 들은 체도 안 하고 사탕만 들여다보는 것이었다. 그는 세인이를 꼭 잡고 들여다보며,
 
50
“아가, 남한테 사탕 받아먹으면 곱다저고리 해서 너 안 줘.”
 
51
그는 사탕을 입에 넣고 예쁜이를 쳐다보았다.
 
52
“후일에 감구가 사주면 받아 가지고 올 테냐? 후일에는 안 그렇게 하지?
53
응, 대답해.”
 
54
세인이는 두리번두리번하며 덮어놓고,
 
55
“응” 하였다.
 
56
예쁜이는 세인이를 꼭 껴안으며
 
57
“우리 세인이 용치, 정말 용해.”
 
58
볼과 볼을 마주댈 때 달콤한 냄새가 구미를 스르르 돌리게 하였다.
 
59
예쁜의 집 문앞을 감도는 그 사나이는 송화읍서 한 등너머 사는 최용문의 일꾼으로 있는 둘째였다.
 
60
그가 예쁜이를 먼 빛으로 보기는 벌써 여러 번이었으나 이렇게 마주당해 보기는 처음이었던 것이다.
 
61
그 후로부터는 일하다 중턱에도 나뭇짐이나 걸머지고 뻔질나게 읍으로 오는 수가 잦았다. 그리하여 지고 온 나뭇짐을 되는대로 팔아버리고 예쁜네 집 주위를 몇 바퀴든지 돌아서 세인이라도 만나보고 나오면 한결 마음이 나았다.
 
62
둘째는 어젯밤 비에 와짝 달라진 조밭머리에 앉아 호미를 움직였다. 침묵 속에 몇 이랑을 매고 난 그는 긴 한숨을 후, 쉰 끝에 김내기를 내쳤다. 굽이쳐 올라가는 멜로디는 스러져가는 듯 꺼져가는 듯 삼아삼아하였다. 곁에 동무는,
 
63
“좋다!”
 
64
제 엉덩이를 툭툭 치고 벙글벙글 웃었다. 소리가 끝나자,
 
65
“웬일인가? 자네도 소리 할 줄 알아?”
 
66
두리번두리번 쳐다보았다. 그는 픽 웃어 보이고 잠잠하였다.
 
67
“한 마디 또 하게.”
 
68
밭머리에서는 왁자지껄하였다.
 
69
“어서 들어들 가세.”
 
70
이편을 향하여 한 사람이 고함친다. 곁에 동무는 일어섰다.
 
71
“가세.”
 
72
“먼저 가게나.”
 
73
동무는 꾸역꾸역 그들의 뒤를 따랐다.
 
74
둘째는 매던 이랑을 마치고 나서 밭머리로 나왔다. 이밭 저밭에서 꾸역꾸역 사람들이 밀려나왔다. 그는 사람들의 지껄이는 소리가 귀찮아서 맨 꽁무니에 떨어져서 산비탈 지름길에 들어섰다.
 
75
딱 막아선 다방솔포기 옆에 붙어 앉아 그는 담배를 피워 물었다. 그리고 정신없이 읍등새만 바라보고 있었다.
 
76
뒤에서는 잦은 발소리가 차츰차츰 가까워졌다. 그는 무심코 힐끗 돌아보니 새하얀 손수건으로 귀밑까지 폭 눌러쓴 색시가 노란 바구니를 옆에 끼고 이 편을 향하여 오다가 인기척 있음을 알고 피하여 가만가만 저편으로 가는 것이었다.
 
77
둘째의 눈은 차차로 둥그래지며 멀어가는 색시의 뒷맵시를 살피는 순간 ‘예쁜이다!’ 이렇게 속으로 부르짖고 벌떡 일어났다. 그의 가슴은 점점 술렁이기 시작하였다.
 
78
한참이나 멍하니 바라보던 그는 최후의 용기를 내어 색시의 뒤를 따르기 시작하였다. 열 눈이 자기 한 몸으로만 쏠린 듯하여 뒷잔등이 오싹오싹해지며 이마에 식은땀이 흐르는 것이었다.
 
79
이 눈치를 챈 색시는 두 팔을 허우적거리며 재게 걸었다. 뒤에 발소리가 가까워짐을 알자 그는 바구니까지 내치고 달아난다. 일삼아 다듬어가며 뜯어 넣은 풋나물은 길가에 좍 헤지고 바구니는 데굴데굴 구르기 시작했다.
 
80
둘째는 구르는 바구니를 붙잡고 헤어진 나물을 주섬주섬 주웠다.
 
81
솔밭 속으로 지나치는 색시는 뒤를 돌아보자 수건이 공중 벗겨지며 삼단 같은 머리채가 어깨 위로 미끄러져 빨간 댕기가 나풀거렸다.
 
82
둘째는 색시의 눈과 마주치자 머리를 푹 숙일 때.
 
83
“아이고 어마이!”
 
84
하고 털썩 주저앉았다.
 
85
침묵은 계속되었다. 둘째는 겨우 머리를 들어 폭 숙인 그의 얼굴을 옆으로 자세히 보니 틀림없는 예쁜이다. 그리던 예쁜이를 꿈 밖에도, 생각지 않은 곳에서 이렇게 만났으나 무엇이라고 말할는지 감감하였다.
 
86
빽빽이 들어선 소나무 새로 그윽한 송진 냄새와 함께 새 속잎에 짙은 뭇 냄새가 그들의 코를 스칠 뿐이었다.
 
87
둘째는 예쁜이가 숨도 크게 못 내쉬고 바들바들 떠는 것을 내려다보고는 가엾은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그만 갈까 하고 발길을 돌렸으나 깍 붙고 떨어지지 않았다. 자기로서도 생각지 못한 어떠한 큰 힘의 지배를 받고 있었던 것이었다.
 
88
“어떻게 할까?”
 
89
가는 바람만 불어와도 사람인 듯, 이상한 소나무라도 눈에 띄면 사람이 숨었는가? 이리하여 전 신경이 긴장되었을 때 까치 한 마리가 그들을 굽어보며 깍깍하였다.
 
90
그는 얼결에 바구니를 예쁜이 앞으로 놓았다.
 
91
“예쁜아! 너 집에 가고 싶지?”
 
92
떨리는 소리다. 힘을 들여 해놓고 보니 그의 생각한 바가 아니고 딴청을 끌어내었다. ‘한 마디만 물어보고 보내야 할 텐데 어떻게 하나?’ 이렇게 속으로 궁리하면서도 역시 같은 말을 뇌이는 데서 지나지 않았다.
 
93
“예쁜아, 어서 가라.”
 
94
누가 이런 말을 시켜주는지 안타까웠다. 둘째는 있는 힘을 다하여 옆으로 비켜섰다.
 
95
예쁜이는 죽나 보다 하고 두 눈을 꼭 감고 엎드렸다가 ‘가라’는 둘째의 말이 그의 귀에 어렴풋이 들리자 공포와 의문이 그의 전신을 억눌렀다. 그는 한층 더 떨었다.
 
96
이 꼴을 본 둘째는 슬금슬금 뒤로 물러서서 노송나무 뒤로 숨어버렸다.
 
97
그제야 예쁜이는 겨우 일어나 바구니를 들고 달음질을 쳤다.
 
98
“예쁜아, 나를 잊지 마라!”
 
99
그의 전신은 화끈함을 느끼자 앞이 캄캄해졌다. 그는 소나무를 칵 쓸어안고,
 
100
“예쁜아, 예쁜아!”
 
101
주먹으로 눈물을 씻고 바라다보니 한길가 나뭇가지 사이로 숨바꼭질하는 그의 댕기꼬리는 햇빛을 받아 피같이 붉어 뵈었다.
 
102
어젯밤 늦게까지 순희네 벼 마당질을 마치고 오늘부터는 예쁜네 차례였다.
 
103
창살이 푸릇푸릇하자 예쁜 아버지는 부시럭부시럭 일어났다.
 
104
“여보게, 일어나 밥 하게.”
 
105
그는 아내를 깨우고 밖으로 나갔다.
 
106
예쁜 어머니는 예쁜이를 깨워 가지고 부엌으로 나와 등에 불을 켜놓고 아궁이에 불을 피우며 한편으로 햇팥을 일어 안쳤다.
 
107
예쁜이는 아궁이 앞에 앉아 무럭무럭 일어나는 불을 들여다볼 때 두 무릎이 따끈따끈해지며 졸음이 포로로 왔다.
 
108
눈이 감길수록 밖에서 웅성거리는 소리는 선히 들려왔다. 어머니는 쌀을 안치며,
 
109
“불 때려마!”
 
110
깜짝 놀라 깬 예쁜이는 나무를 끌어다 넣고 벼 태질 소리에 머리가 뒤숭숭하여졌다.
 
111
어느덧 밥이 우구구 끓어오르자 예쁜이는 불을 멈추고 일어나서 소매를 척척 걷고 설거지를 하며 한편으로 상을 놓았다.
 
112
어머니는 등에 불을 훅 끄고 널문을 활짝 열어놓았다. 차츰차츰 새어오는 회색빛 하늘에는 별들이 까뭇거렸다.
 
113
어머니는 예쁜이가 주는 주걱을 받아들고 그릇을 포개 담은 양푼을 부뚜막 위에 놓은 후 솥깨를 열었다. 무역무역 올라오는 훈훈한 김이 그의 볼을 스치고 올라간다.
 
114
“진지들 잡수시오.”
 
115
뒤이어 예쁜 아버지는,
 
116
“밥들 먹고 하지.”
 
117
그들은 우중우중 사립문으로 들어서 방안으로 들어앉았다.
 
118
“상 들여라.”
 
119
방 문턱에 비껴서서 딸이 가져오는 상을 받아 차례로 그들 앞에 갖다 놓았다.
 
120
예쁜이는 통통 걸음을 쳐서 잔심부름을 다하고 숭늉까지 퍼들인 후 뒷대문 옆에 가만히 붙어 서서 안방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를 분간하여 들으며 읍 등 새 좌우로 총총 들어선 솔밭을 바라보았다.
 
121
언제나 눈결에라도 이 솔밭이 띄게 되면 지난 일이 번개같이 그의 머리에 떠오르는 것이었다. 무섭고도 어딘가 모르게 귀염성스러운 둘째의 얼굴은 항상 솔밭 속에 숨어 있는 듯이 생각되었다.
 
122
컴컴하던 솔밭도 새어온다. 옆으로 돌아가며 간 당추밭에는 빨간 당추고추가 하나씩 둘씩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123
우수수 하는 바람결에 ‘툭’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놀라 굽어보니 밤 한 알이 앞으로 굴러왔다. 깜빡 잊었음을 느끼고 그는 치마 앞을 벌리고 울바자 밑에 서 있는 밤나무 아래로 달려갔다. 주먹 같은 밤알이 여기저기 흩어져 보암직스러웠다.
 
124
밤알을 다 줍고 난 그는 치마 앞을 연해 들여다보며 밤나무를 쳐다보았다.
 
125
예쁜이는 가을철이 들자 눈만 뜨면 밤나무 아래로 달려가서 살펴보다가 밤아람이 지기 시작하면서부터 옹골차고 그중 큰 알로 따로 골라서 어머니도 세인이도 모르게 뚜란독 속에 깊이깊이 간직해 두었다가 마가을에 가는 어머님께 부탁하여 팔아오게 하였다. 그리하여 가지고 싶던 것을 사서 가지곤 했다.
 
126
그는 가만가만히 허청간으로 달려가서 방석을 열고 독 속으로부터 커다란 시승 배아지를 꺼내자 치마 앞에 밤을 골라 옮겨 놓고 보니 배아지 전과 비슷하였다 그는 쫑깃 . 웃고 배아지를 독 속에 넣은 후 허튼 짚으로 덮고 부엌으로 나왔다.
 
127
방안에서는 담뱃대 터는 소리가 나자 웃음소리가 왁 쓸어나왔다. 뒤미처,
 
128
“상 받아라.”
 
129
그들은 밖으로 밀려나갔다. 예쁜이는 짐짓 섰다가 어머니가 주는 상을 받아 부엌으로 날랐다.
 
130
어머니는 세인에게 젖을 빨리며 밥을 먹었다. 세인은 예쁜에게로 손을 내밀며,
 
131
“나, 밤.”
 
132
예쁜은 부엌으로 나가서 밤 담은 종다래끼를 갖다 세인의 앞에 놓았다. 그는 종다래끼를 잔뜩 껴앉고 갸웃갸웃 들여다보며 어머니의 떠넣어 주는 밥을 먹었다. 세인의 보기 좋게 볼록이는 두 볼에는 오목오목 우물이 잡히었다.
 
133
밖에서는 벼알 떨어지는 소리가 요란스럽게 났다.
 
134
저녁때가 되어 말 되는 소리가 들렸다. 예쁜이는 밥을 잦혀놓고 밥상을 보아 놓은 후 사립문 뒤에 붙어 서서 졸이는 가슴으로 엿보았다.
 
135
아버지는 그 커다란 눈을 둥그렇게 뜨고 말 수를 세고 있었다.
 
136
옆으로 농장지기, 낯설은 양복쟁이, 돈 장사하는 김만수, 그 밖에 마당질한 일꾼들이 쭉 둘러섰다. 벌써 엿 섬째 묶는 것이었다. 그들의 눈은 호기심이 빛났다.
 
137
“열한 섬 반!”
 
138
여러 사람 입에서 똑같이 굴러 떨어졌다. 만수는 데리고 온 일꾼에게 눈짓하여 닷 섬을 구루마 위에 탕탕 실어 놓았다.
 
139
예쁜 아버지는 하도 어이가 없어 멍하니 바라보자 구루마는 털털 구르기 시작하였다.
 
140
뒤이어 처신이도 볏섬을 구루마 위에 실어 놓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굴러갔다.
 
141
예쁜 아버지는 벼씌움을 한 먼지머리를 뒤집어쓴 채 짚북데기를 손에 들고 금방 울 듯 울 듯한 눈으로 하늘을 쳐다보았다.
 
142
멀리 들리는 구루마 바퀴소리는 마치 그들의 가슴 한복판을 굴러가는 듯 요란스럽게 울리는 것이었다.
 
143
예쁜네 모녀는 설거지를 마치고 방으로 들어왔다. 일꾼들은 벌써 가버리고 담뱃내만 자욱한 방에 예쁜 아버지는 시름없이 째한 앞문만 바라보고 있었다.
 
144
그러자 밖에서 기침소리가 났다.
 
145
“진지들 잡수셨나요?”
 
146
“어, 그 누구이?”
 
147
예쁜이는 윗방으로 올라갔다.
 
148
“처신이오.”
 
149
그는 의외라는 듯 벌컥 일어나며,
 
150
“무엇이 잘못된 것이 있습니까?”
 
151
처신은 방안으로 들어앉았다. 예쁜 어머니는 등불을 헤어 놓았다.
 
152
“아뇨, 오늘 퍽 섭섭하셨겠지요.”
 
153
이 말에 그는 너무 황공하여 눈물까지 글썽글썽해졌다.
 
154
“오늘 나와 같이 오셨던 어룬이 바로 우리 농장 주인이십니다.”
 
155
“뭐?”
 
156
예쁜 아버지는 눈을 둥그렇게 떴다.
 
157
“전에는 늘 대리로 보내시더니 올해는 친히 오셨습니다.”
 
158
한층을 낮추어서,
 
159
“마침 참한 소실을 구하신다는 말을 하기에 내가 집에 따님 이야기를 하였더니 영감님께 말씀해보라고 하시기에 왔습니다.”
 
160
예쁜 아버지는 너무나 생각 밖인 까닭에 무엇이라고 대답할 것이 칵 막히었다. 영감이 잠잠함에 예쁜 어머니는 답답하여,
 
161
“그런 어룬이 우리 딸 같은 것을 어떻게……..”
 
162
이제야 예쁜 아버지도,
 
163
“글쎄, 그런 돈 많으신 어룬이……”
 
164
“원 별 말씀도 다 하십니다. 전에 세월 같으면야 어림이나 있습니까마는 요새 세월은 그렇지 않다오. 그런 걱정은 말으시고 얼른 작정하시오.”
 
165
부부는 잠잠하였다. 그들에게는 무엇보담 처신의 말이 미덥지 않았다. 한참 후에 영감은,
 
166
“글쎄, 원…… 그럴 리가……”
 
167
처신이는 눈을 슴벅슴벅하며,
 
168
“어서 작정하시오. 이런 때를 놓치지 말아야지. 그런 부자를 사위로 맞이하는 판인데 설마한들 영감님네를 굶으라 하겠수?
 
169
부부의 머리는 지끈해지며 나오려던 말이 한층 더 막혔다.
 
170
처신이는 부부를 번갈아 보았다.
 
171
“어찌 하겠수…… 좀 좋소? 딸은 호사여 치여 죽을 지경이겠구려. 동자도 바누질고 안 하고 오도카니 앉어 손톱에 물만 튕기구 앉았겠구려. 수 생겼소”
 
172
영감은 예쁜 어머니를 보았다.
 
173
“어쩔까?”
 
174
“글쎄요…… 어찌했던 한 번 가셔서 손수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다시 생각해 봅시다. 갑자기 되니 내니 알겠소.”
 
175
처신은 벌컥 일어났다.
 
176
“가십시다.”
 
177
영감은 왜자자한 머리를 쓰다듬으며 일어났다.
 
178
“뭐 그러고 가시럅니까?”
 
179
“그럼”
 
180
아래를 굽어보았다. 처신은 문밖으로 나가며,
 
181
“원, 어서 가십시다. 농사꾼이 아모려면 상관 있습니까.”
 
182
영감은 두말없이 뒤를 따랐다.
 
183
예쁜 어머니는 그들의 말소리가 멀어질수록 아까 일이 활동사진 모양으로 나타났다 없어졌다 하였다. 어느덧 그의 눈에는 눈물이 흘렀다. 무엇보다도 나이 많은 자기 남편이 여름내 그 달디단 잠도 못 자고 밤새워 가며 봇등의 물을 논에 대느라고 애쓰던 것이 아까웠다. 벼이삭이 보암직스러이 패어올 때 영감의 좋아하던 꼴, 그는 폭 엎드려서 흑흑 느껴 울었다. 한참 울고 나니 이번에는 예쁜이 일, 아까 본 그 양복쟁이가 새삼스럽게 뚜렷해 보였다.
 
184
“참이라면 어쩔까?”
 
185
이렇게 부르짖으며 웃방을 향하여,
 
186
“예쁜아!”
 
187
몇 번이나 불렀으나 잠잠하였다. 그도 세인의 옆에 입은 채로 누워서 하던 생각을 되풀이하였다.
 
188
밤이 적이 깊어서 남편은 돌아왔다. 곁에 펄썩 주저앉자 술내가 훅 끼쳤다.
 
189
“무어랍디까?”
 
190
그는 아무 말 없이 일어서서 비틀걸음으로 윗방 문을 열었다.
 
191
“예쁜아!”
 
192
텁텁한 소리였다. 뒤로 따라 선 예쁜 어머니는,
 
193
“자요, 자요. 할 말 있으면 내일 하구려.”
 
194
“응, 취한다. 내 딸 자니?”
 
195
눈을 지리쳐 감고 예쁜 어머니께로 탁 실린다.
 
196
“우리는 살았네. 내 딸 때문이지. 에이! 고얀놈! 이놈아! 만수란 놈아!
197
날도적놈아!”
 
198
시뻘건 눈을 부릅뜨고 부들부들 떤다. 그는 겨우 남편을 끌어다 옷을 벗기고 자리 위에 뉘었다. 눕자마자 코를 골아넘긴다.
 
199
그는 한층 더 눈이 똑똑해졌다. 고요한 방안에 숨소리만이 가득하고 이때마다 들리느니 가을 벌레 울음이다. 훅 불을 끄고 나니 뒷문에 달이 비쳤다.
 
200
남편의 입에서 나오는 말에 의하여 딸의 혼인은 이미 결정된 듯싶었다. 무엇보다도 섭섭한 것은 소실이라는 것이었다. 자기의 귀한 딸을 남의 눈에 가시로 보내는 것이 아무래도 못할 짓으로 생각되었다.
 
201
그는 남편 곁에 누워 어느덧 잠이 들고 말았다.
 
202
이튿날 새벽…… 남편에게 흔들리어 깨어난 그는 남편을 쳐다보았다.
 
203
“혼인은 다 되었네.”
 
204
“뭐야요. 좀 생각해보고 하지.”
 
205
“공연한 소리를 또 하네그려. 그런 자리가 쉽겠나. 그러고 며칠 있다가는 가겠다니까 예쁜이를 따라 보내야 하겠네.”
 
206
예쁜 어머니는 기가 막혔다. 이어서 눈물이 좌우로 흘러내렸다.
 
207
“이 사람은 쩍 하면 울기는…… 그럼 시집도 안 주고 끼고 있을 텐가?”
 
208
마누라는 돌아누우며 세인이를 꼭 껴안았다.
 
209
훤히 밝자 예쁜이는 일어났다. 가만히 샛문을 열자 그의 어머니는.
 
210
“왜 벌써 일어나니? 곤할 텐데.”
 
211
그는 아무 대답없이 부엌으로 나가서 앞뒤 대문을 활짝 열어놓았다. 산뜻한 바람이 그의 정신을 깨끗하게 하였다. 그는 우두커니 차츰 새어오는 하늘을 쳐다볼 때 컴컴한 솔밭이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어제 새벽만 하여도 무섭던 솔밭이 이 순간에 있어서는 눈물이 날 만치 정들어 보였다.
 
212
그도 모르는 사이에 긴 한숨을 내쉬고 저적저적 밤나무 아래로 가보았다.
 
213
어제보다도 더 많이 떨어졌다. 그는 맥없이 치마 앞을 벌려 한 알씩 두 알씩 줍기 시작할 때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214
그는 밤을 채 줍지도 않고 부엌으로 들어왔다. 방문 소리가 나자 어머니가 나왔다.
 
215
“아부지가 너 들어오란다.”
 
216
그의 가슴은 지끈하였다. 예쁜이는 머리를 푹 숙이고 나무 꼬챙이로 부엌 바닥만 이리저리 긋고 있었다. 이 꼴을 본 그의 어머니도 저 애가 벌써 다 들었구나 하였다.
 
217
“어서 들어가라, 왜 그리고 있니, 아모러면……”
 
218
발이 떨어지기도 전에 훌쩍훌쩍 울음이 터졌다.
 
219
방안에서는 아버지의 소리가 들렸다.
 
220
“예쁜아, 들어오너라.”
 
221
어머니의 딸의 우는 양을 보니 가슴이 뻐근해지며 ‘저런 것이 어찌 남의 첩노릇을 할까, 아무것도 모르고 아비 어미밖에는 모르는 저것이……’ 이렇게 생각하고 나니 저절로 눈물이 앞을 가렸다.
 
222
예쁜 아버지도 부엌으로 나왔다.
 
223
“내, 내 딸 왜 우니, 너무 좋아서? 허허허……”
 
224
그는 너털웃음을 내치고,
 
225
“어서 들어가자. 밥을랑 네 어미더라 하라자, 응.”
 
226
그는 예쁜의 곁으로 바싹 대들었다.
 
227
“그만둬요. 저도 다 들은 모양인데.”
 
228
“어디서 들었어?”
 
229
아내를 쳐다보았다 그는 영감을 밀치며,
 
230
“그만둬요. 새벽부터 말 안 하기로서니 틈이 없을까.”
 
231
그는 하는 수 없이 중얼중얼하며 방으로 들어간다.
 
232
“야! 울지 말라구, 누구나 한번씩은 겪는 일인데 무얼. 내가 열네 살에 너의 아부지한테 왔겠니.”
 
233
예쁜이는 가만히 일어서서 뒤 안으로 나갔다. 그리하여 밤나무 옆에 착 가리어 앉아 치마폭으로 얼굴을 폭 가리고 흑흑 느껴 울었다.
 
234
조반을 퍼놓은 예쁜 어머니는 뒤 안으로 나와서 밤나무 옆으로 왔다.
 
235
“들어가서 밥 먹자. 야, 말 들어, 속 태이지 말고”
 
236
예쁜의 손을 잡아끌었다. 그는 하는 수 없이 방으로 들어갔다.
 
237
“내 딸 왜 그래! 공연히 그리누나. 이제 서울 가면 좋은 구경하고 좀 좋으냐?”
 
238
예쁜 어머니는
 
239
“그만둬요. 자꼬만 우는 애를 가지고 여러 말 하시우…… 괜히 밥도 못 먹게스리.”
 
240
어머니의 들려주는 숟갈을 들고 밥을 퍼먹으려니 기가 꽉 찼다. 며칠만 있으면 아버지의 말대로 가야 하니 그러면 다시는 어머니 아버지 세인이도 못 보겠지. 이런 생각에 슬그머니 숟갈을 놓고 윗방으로 올라갔다. 그의 어머니도 따라 밥술을 놓고 말았다.
 
241
세인이가 기지개를 켜며 벌떡 일어나 앉는다.
 
242
“오마이!”
 
243
영감은 세인이를 껴안았다.
 
244
“아가, 밥 먹자.”
 
245
세인은 도리를 치고 어머니께로 가서 젖가슴을 헤치고 팠다. 아버지는 샛문을 열고,
 
246
“밥 먹어라, 울기는 와! 어서 나려와!”
 
247
세인은 토닥토닥 아버지 곁으로 와서 갸웃하고 보았다.
 
248
“오마이, 누나 울어. 이렇게 울지.”
 
249
조그만 손으로 눈을 부비치며 어머니 앉은 곳으로 달려온다. 그는 본체 만체하고 한숨만 후후 쉬었다.
 
250
조반상을 물리자 이춘식이와 처신이가 들어선다. 영감은 황망히 일어나며,
 
251
“이리 오시오. 집이 누추해서……”
 
252
아랫목을 가리키고 방안을 휘휘 둘러보며 윗목으로 앉았다.
 
253
춘식은 들어서자마자 어떤 토굴 속에 들어온 듯하였다. 한참 후에야 방안 속이 어림해 보였다. 도배하지 않은 바람벽이며 불그죽죽한 장롱짝, 엉성그려물은 갈자리입, 어느 것 하나 원시시대를 상상케 아니할 것이 없었다. 더구나 먼지내가 코를 벗튀우는 것 같았다. 그는 수건을 내어 코를 가리고 있었다.
 
254
영감은 샛문을 열고 보니 딸이 없었다. 그는 부엌으로 나갔다.
 
255
“이애 어디 갔노?”
 
256
세인이를 업고 왔다갔다 하는 아내를 쳐다보았다.
 
257
“글쎄요, 이제 곧 나갔는데……”
 
258
영감은 얼굴을 찡그리며
 
259
“어서 데려오게.”
 
260
그는 새침하고 밖으로 나갔다.
 
261
영감은 방으로 들어오며,
 
262
“촌년이 돼서 몹시 부끄러워합니다.”
 
263
얼마 후에 발소리가 들렸다. 영감은 밖으로 나갔다.
 
264
“왜 혼자 오누?”
 
265
“어디 있습디까?”
 
266
“에잇……”
 
267
춘식은 부부의 이야기를 듣자 처신이를 찔러가지고 일어났다. 영감은 돌아보자 얼굴이 벌개지며,
 
268
“어째서 가시럅니까, 곧 올 터인데요.”
 
269
그들은 웃으며, “보나 다름 있겠습니까? 내일 가겠습니다. 옷은 다 맡기었습니다.”
 
270
그들은 가고 말았다.
 
271
이튿날 아침 여덟 점 차로 예쁜이는 그리운, 그리운 고향을 등지고 떠나게 되었다.
 
272
가을이 깊었다. 창문의 딸 예쁜이는 부자 이춘식의 호강첩으로 팔려갔다는 소문이 읍촌간에 자자하게 퍼졌다.
 
273
둘째는 처음에는 곧이듣지 아니하였다. 보다도 자기 귀를 의심하였다. 그러나 새록새록이 들어오는 소문은 그로 하여금 괴로우나마 믿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였다.
 
274
가슴을 졸이며 알아본 결과는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의 다만 하나인 과부의 외아들 같은 희망은 빼앗기고 말았던 것이다.
 
275
지금 그의 짤막한 과거를 돌아본다면 그나마 희망에 넘친 행복한 날이었었다.
 
276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만나본 그 순간에 다만 한번만이라도 시원한 말을 나누고 떠났다면 차라리 나을 것같이 생각되었다.
 
277
그는 모든 것을 잊어보려 하였다. 자기로서도 알지 못할 쓰림과 질투의 불길이 날이 갈수록 무섭게 타올랐던 것이다. 그는 자기의 생사를 헤아리지 않을 만큼 되었었다. 그리하여 그의 얼굴은 파리해 가고 가뜩이나 무거운 입이 철문같이 굳게 닫혀버렸다.
 
278
그는 밤마다 발길 가는 대로 맡겨두며 번번이 읍등새 솔밭을 찾게 되는 것이었다.
 
279
그는 소나무 밑에 펄썩 주저앉아서 노송나무를 힘껏 껴안고 차츰차츰 깊어 가는 가을밤에 고즈넉히 잠든 송화읍을 내려다보았다. 전에 볼 수 없던 함석집들이 가운데 들어앉아, 둘러앉은 초가집들을 노려보는 듯 비웃는 듯이 달빛에 빛나고 있었다.
 
280
찰나에 떠오른 눈, 비웃는 그 눈, 천진한 어린 자기를 속인 말끔한 거짓말이 그의 전 신경을 비상히 흥분시킴을 따라 쓰라렸던 과거 실마리가 풀리기 시작하였다.
 
281
젊어서 남편을 잃은 그의 홀어머니는 어린 그를 하늘같이 믿고 여름이면 김품 팔고 겨울이면 삯바느질 같은 것으로 그날그날 겨우 살아갔다.
 
282
둘째가 열두 살 나던 해 가을이었다. 여름철이 들면서부터 그의 어머니는 소화불량증을 얻어 노상 굶다시피 하면서도 삯김을 계속하였다.
 
283
그러나 철이 바뀐 어느 날 그는 견디지 못하여 하던 일을 겨우 대강대강 마쳐버리고 집으로 돌아와서는 정신없이 자리에 눕고 말았다.
 
284
어린 둘째는 솔가리를 긁어다 놓고 방으로 들어왔다.
 
285
“오마이!”
 
286
언제나 그는 방문을 열어잡고 이렇게 부르는 것이었다. 여러 날 신고(辛苦)에 두 눈등이 푹 꺼진 그의 어머니는,
 
287
“왜?”
 
288
겨우 눈을 뜨고 아들을 보았다. 군데군데 해진 잠방 적삼이라든지 발꿈치가 쑥 나온 목달이가 새삼스럽게 그의 머리를 어지럽게 하였다.
 
289
곁에 앉은 아들의 손을 어루만지며,
 
290
“배고프겠구나. 아파서 나는 밥 못하겠으니 식은 밥이라도 갖다 먹어라, 아이고!”
 
291
그는 긴 한숨을 푹 내쉬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눈물이 흘러내렸다.
 
292
“응.”
 
293
둘째는 부엌으로 나가서 들그렁들그렁하더니 조밥 바리와 된장 그릇을 안고 들어왔다. 그는 씩씩하며 나뭇단 끌어들이듯이 밥술은 큼직큼직하였다.
 
294
부리나케 푹푹 퍼먹은 그는 숟갈을 공중 던지고,
 
295
“오마이, 나 배 불러.”
 
296
“오냐.”
 
297
어머니 대답을 들은 그는 그릇을 버려둔 채 어머니 곁으로 달려와서 눕자마자 코를 골아넘긴다.
 
298
그의 어머니는 똑부러지게 아픈 곳은 없다 하더라도 전신의 맥을 출 수가 없으며 따라서 호흡이 곤란해졌다. 나중에는 가래까지 올랐다. 방안은 찬바람이 실실 돌았다. 새어드는 달빛은 아들의 얼굴을 뚜렷이 보여주었다. 그는 젖먹던 힘을 다하여 이불을 끌어다 아들에게 덮어주었다.
 
299
자기의 병이 위중할수록 막연하게 어린 아들의 신세가 불쌍해 보일 뿐이었다. 따라서 저 어린것을 놓고 내가 아주 죽나 보다 하는 끔찍한 생각은 하늘이 무서워서 못하여 보았던 것이다.
 
300
밤이 깊어갈수록 점점 가래가 성해지고 바람에 밀려다니는 나뭇잎의 와삭이는 소리와 요란스럽게 들리던 벌레 울음소리가 차츰차츰 가늘어지며 주위가 암흑으로 변해지는 것을 느낄 때 그의 가슴은 죽음이란 것 앞에서 마지막으로 울렁거리기 시작하였다.
 
301
잠든 아들을 깨워보렸으나 태산준령이 콱 내려앉은 듯하여 손가락 하나 까딱하는 수가 없었다. 그의 눈은 점점 흰자위만이 남기 시작하였다.
 
302
별안간 둘째는 왈칵 일어났다.
 
303
“오마이, 오줌 눠.”
 
304
아무 대답이 없었다. 그는 어머니를 흔들었다.
 
305
“요강 달라오!”
 
306
오줌은 나오기 시작하였다. 그는 두 분을 딱 감고 시원하게 누고 나서 그 자리에 되는 대로 누어버렸다. 그러나 눈 오줌은 사정없이 그의 해진 옷 속으로 푹 젖어 먹었다. 그는 잠결에 괴로움을 느끼고 벌떡 일어났다.
 
307
“오마이!”
 
308
갑자기 추움과 무서움이 휘딱 들어 두 눈이 올랑해졌다.
 
309
둘째는 어머니 곁으로 바싹 다가앉아 흔들었다.
 
310
“오마이!”
 
311
어머니는 정신이 뻔하였다. 그러나 마치 가위눌린 사람 모양으로 말도 할 수 없으며 움직일 수도 없었다. 하도 대답이 없음에 안타까워서 둘째는 머리맡으로 가서 그의 어머니의 눈을 보았다. 그는 갑자기 무서움을 느꼈다.
 
312
“오마이, 왜 그래, 응야!”
 
313
그는 어머니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울었다.
 
314
아들의 우는 것을 번연히 아는 어머니는 어떻다고 말할 수 없이 슬펐다.
 
315
그러나 그는 역시 순간이고 아무것도 분간치 못하는 의혹으로 변해지는 것이었다.
 
316
둘째는 어머니의 얼굴을 들여다볼 때 밤마다 켜지던 등불이 없었다.
 
317
그는 한 손으로 눈물을 씻으며 또 한 손으로 성냥을 더듬어 불을 켰다.
 
318
“오마이! 나 보라우, 어서야!” 어머니의 감겨지는 눈을 뻐기고 들여다보았다. 어머니는 무엇이라고 중얼거렸다. 음성은 들리지 않고 입만 놀렸다.
 
319
“무어! 에 그 정 크게 하려마.”
 
320
어머니의 입술을 똑똑히 들여다보며 그대로 입술을 놀려 보았다.
 
321
“주부. 응, 주부!”
 
322
얼핏 작년 여름에 엉덩이의 종기로 인하여 어머니와 주부[의원]네 집 갔던 기억이 떠올랐다.
 
323
“응, 주부, 주부. 내 갔다 와!”
 
324
그는 우뚝 일어섰다. 문밖으로 뛰어나오자 무서운 김에,
 
325
“오마이! 난 가! 응.”
 
326
이런 말을 남기고 앞으로 뛰었다.
 
327
오불꼬불한 논두덩을 지나고 밭머리를 지나 읍등새 솔밭 사이로 들어섰다.
 
328
바람에 솔포기 흔들리는 소리가, 동무들에게서 들은 옛날이야기에서 나오는 무서운 범이 나오는 듯, 그리고 자기의 발자취 소리에 놀라 휘끈 돌아보면 둥그런 달이 자기를 따르는 것이었다.
 
329
그 무서운 솔밭도 지나고 외나무도 건너지른 쪽다리를 기어 건너서 새로 닦은 큰 길 위로 들어서 줄달음질쳤다.
 
330
의원집까지 다 온 그는 팍 고꾸라지자 두 걸음을 쳐서 일어났다. 단숨에 돌층계를 올라서 차디찬 대문짝에 착 달라붙었다.
 
331
“오마이, 문 열어!”
 
332
얼결에 빽 소리치고 숨을 죽이고 엿들었다. 여기저기서 짖는 개소리만이 점점 요란스럽게 들렸다.
 
333
“문 열어요!”
 
334
전신에 땀이 훈훈히 흐르며 눈물이 그렁그렁 떨어졌다.
 
335
눈을 딱 감고 대문짝을 쳐다리고 나니 안으로부터 인기척이 나며 문이 방싯 열리자 뚱뚱한 주부가 나타났다.
 
336
“웬 아이냐?”
 
337
자다 나온 텁텁한 소리였다. 둘째는 반가움에 와락 달려들어가 칵 매어달렸으나 한참 동안은 말을 못하고 애만 썼다.
 
338
그는 달빛에 둘째의 얼굴을 비춰보니 한 번 본 아이 같았다. 그는 머리를 돌려 생각해보더니,
 
339
“너 종기로 앓던 애지?”
 
340
“네, 울 오마이, 저 울 오마……”
 
341
숨이 찼다.
 
342
“그래 너의 오마니가 어떻단 말이냐?”
 
343
“저 죽어가요, 아파서……”
 
344
“어디가 아프다든?”
 
345
“겨워요, 그러고 말 못해요.”
 
346
“음.”
 
347
의사는 둘째를 물리쳤다.
 
348
“앓다가 낫지. 울지 마라. 내일 아침 내 갈 것이니 어서 가거라.”
 
349
“나 혼자요?”
 
350
안타까운 듯이 의사를 쳐다보았다.
 
351
“그럼.”
 
352
의사의 머리에 아직 새로운 것은 작년 약값도 절반도 받지 못한 것이었다.
 
353
그리고 밤도 오래고 더구나 촌이 되어 가고 싶지 않았다.
 
354
“올 때도 너 혼자 왔니?”
 
355
“네, 갑시다, 우리집에. 네?”
 
356
바투 대들어 그의 손을 잡아끌었다.
 
357
“내일 가겠으니 어서 가거라!”
 
358
자기 어머님 같은 사람인 줄 알고 대들었으나 사정없이 그를 몰아낸다.
 
359
“내일 간다. 잘 가거라!”
 
360
말을 마치지도 전에 문빗장을 걸고 들어가버렸다. 둘째는 멍하니 섰다가 문 사이로 들어가는 의사의 뒷덜미를 바라보았다.
 
361
“정말 오겠수우?”
 
362
아무 대답없이 안대문까지 쾅 닫겨 버렸다.
 
363
둘째는 대문 밖에 우두커니 서서 누가 또 나올까 하고 기다리다 못해 두 주먹을 부르쥐고 앞으로 뛰었다. 나무도 산도 얼씬얼씬 움직였다.
 
364
집까지 달려온 둘째는 방문을 벼락같이 열고,
 
365
“오마이!”
 
366
뛰어들어 어머니 가슴에 팍 엎어졌다. 문바람에 등불마저 꺼져 버렸다.
 
367
둘째는 어머니 얼굴 위에다 얼굴을 마주 대고,
 
368
“주부가 안 오지, 내일 오겠대, 응.”
 
369
뜨거운 눈물이 차디찬 송장 위에 한 방울 두 방울 떨어지기 시작하였다.
 
370
때마침 곁집 닭은 홰를 치고 꼬끼요 하고 울었다.
 
371
여기까지 생각한 둘째는 깊이깊이 가라앉았던 분까지 왈카닥 치몰려 하늘을 뚫을 듯하였다. 그는 두 주먹을 다져 쥐고 벌떡 일어났다.
 
372
예쁜이는 예쁘장한 계집애를 낳게 되었다. 두 눈이 분명하고 얼굴 판장은 어머니 비슷하면서도 어머니보다 생김생김이 뚜렷하였다. 우리의 여주인공이 될 옥이였었다.
 
373
외롭던 끝에 계집앨망정 생기고 보니 몇 달 동안 갖은 수고와 입으로 담지 못할 악형당한 것도 꿈속으로 사라지고 더할 나위 없이 위안이 되었다. 그리하여 아무것도 모르는 그 어린것에다가 혼자서 중얼중얼 주고 받고 하는 것이었다.
 
374
주옥이 어머니가 혹간 지나가다 귓결에 들으면 벼락같이 문이 열렸다.
 
375
“그 잘난 계집애만 가지고 빈둥빈둥 놀 테야!”
 
376
평생 말할 때에도 달싹도 못하는 판에 긁어닥치는 듯한 큰 소리에 금방 무슨 변이라도 나는 듯싶었다. 그리하여 머리를 푹 숙이고 가슴은 울렁거리기 시작하였다.
 
377
“반편, 반편 하니, 저런 반편이 어디 있다가 내 속을 요다지도 태워주니!
378
이 야이 못난 년아!”
 
379
하고 달려들어 어린애를 뺏아가지고 안방으로 홱 들어가버렸다.
 
380
어린애는 발악을 하고 운다. 뒤이어 어떻게나 하는지 죽는 소리가 난다.
 
381
울음 마디마디가 예쁜이의 뼈끝마다 새어드는 듯 가슴이 찢어지는 듯하였다.
 
382
그는 더 참을 수 없어 벌컥 일어나서 방안으로 빙빙 쏘다니다가 두 눈이 벌개져서 안방으로 건너가는 것이었다.
 
383
눈치를 챈 주옥 어머니는 앞질러 딱 막아서서 노려보았다.
 
384
“잘못했습니다…… 네. 애기 주시오. 참말이야요.”
 
385
그의 눈은 애처롭게 타올랐다.
 
386
주옥 어머니는 일종의 통괘감을 느끼며.
 
387
“무엇을 그래 잘못했단 말이냐?”
 
388
그는 무엇이라 대답할 것이 난처하여 마지막에는 울음으로 대하였다.
 
389
“아씨, 저 입 보시우.”
 
390
둘러선 행랑어멈 침모는 눈짓을 하여 입을 막고 웃었다.
 
391
이렇게 하여 그들의 잔인한 흥미도 다해지면 사정없이 어린애를 내쳐주었다.
 
392
그는 어린애를 안고 비실비실 자기 방으로 건너가서 맞은 자리를 어루만지며 볼과 볼을 남몰래 마주 대었다. 어린애는 눈을 맞추자 방싯방싯 웃었다.
 
393
어슬막에 대문소리가 요란하게 났다. 뒤이어 흐트러진 신발소리가 들리자
 
394
“나리 오신다!” 하는 소리가 거푸 들렸다.
 
395
예쁜이는 애기를 멀찍이 눕히고 밀장문 사이로 바라보았다.
 
396
얼근히 취하여 비칠비칠 들어오는 남편의 탁 트인 얼굴, 안방에서 마주 나오는 다닥다닥 붙은 주옥 어머니. 첫눈에 벌써 외모만은 기운 짝이었다.
 
397
주옥 어머니는 생글생글 눈웃음치며,
 
398
“아빠 오신다, 주옥아.”
 
399
주옥이는 빠르르 나와서 아버지에게 안겼다. 부부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여 방으로 들어가자 밀장문이 스르르 쾅쾅 닫히고 만다.
 
400
멍하니 바라보던 예쁜이는 어쩐지 허전함을 느꼈다. 역시 순간이었다. 그는 어린애를 꼭 끼어안고 전등불 아래 빛나는 조그만 눈을 말없이 언제까지 나 들여다보았다.
 
401
방으로 들어간 주옥 어머니는 남편의 기분이 좋을 때를 이용하여 예쁜이의 말을 꺼내리라 하고 눈치만 슬슬 보며 갖은 아양을 다 떨고 있었다.
 
402
저녁상이 들어온다.
 
403
“난 먹었어.”
 
404
춘식은 벌렁 누웠다 어멈은 . 도로 부엌으로 나갔다. 주옥이는 아버지 팔에서 잠들었는지 색색 하는 숨소리가 들렸다.
 
405
“어떻게 할테요? 저 반편은.”
 
406
“왜 또, 갑자기?”
 
407
“정말 반편부려 못 보겠소, 여보.”
 
408
“마음대로 하지.”
 
409
이 말에 생긋 웃었다.
 
410
“내야 어찌 알겠소. 당신 마누라를…… 집으로 보내면 어떠우?”
 
411
“보내지, 그럼.”
 
412
순간에 그는 아찔하도록 좋았다.
 
413
“애는 떼어서 젖유모 주지요.”
 
414
벌써 예쁜이의 안타까워하는 꼴이 눈에 보였다.
 
415
“글쎄.”
 
416
“노비는 얼마나 줄까?”
 
417
“한 십원 주게나.”
 
418
춘식은 귀찮다는 듯이 가만히 팔을 빼고 모로 누웠다.
 
419
“내일 보내겠소.”
 
420
“마음대로 해.”
 
421
그는 주옥의 베개를 내려 베어준 후 가만히 밖으로 나와서 한 바퀴 돌았다.
 
422
아침이 되자 주옥 어머니는 전에 없이 일찍 일어나서 안팎으로 나다니며 새 살랑하였다.
 
423
문밖까지 나와서 남편을 보낸 주옥 어머니는 상노를 데리고 건넌방으로 와서 그는 담박 달려들어 어린애를 잡아안고 일어섰다.
 
424
“가라! 네 집으로! 엣다 이것 가지고……”
 
425
포갠 일원짜리 지폐를 예쁜이의 앞으로 던졌다.
 
426
예쁜이는 가슴이 울리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숱하게 많은 돈을 보기가 처음이나 ‘가라’는 째는 듯한 소리는 그의 귀를 아프도록 울리었던 것이다.
 
427
상노는 돈을 집어 그의 손에 들려주었다.
 
428
“어서 갑시다.”
 
429
얼결에 예쁜이는 따라 일어섰다. 방문턱까지 나온 그는 앞이 허전하였다.
 
430
“아가!”
 
431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이렇게 부르짖고 돌아보았다.
 
432
주옥 어머니는 품에 안긴 어린애는 그와 눈을 맞추고 방싯방싯 웃고 있었다.
 
433
남편 춘식이는 낮에는 어느 회사 사장으로 출근하고 밤이 되면 기생아씨들에게 둘러싸여서 밤새우는 것이 거의 일과 되다시피 하였다.
 
434
예쁜이를 같이 데려다 놓고는 마누라의 새우는 것도 돌아보지 않고 도리어 욕질까지 하면서 밤이 되면 끈히 건너오더니 며칠 지나서 역시 싫증이 났는지 발길을 뚝 끊어버리고 혹시 어찌다 마주치는 때가 있어도 본둥만둥하여 두는 것이었다.
 
435
따라서 안방 아씨는 나날이 기승스러워 가는 것이었다. 별로 잘못한 일이 없는데도 달려들어 머리채를 휘어쥐는 것이 매일 되다시피 하였다.
 
436
그리하여 온갖 일을 다 시키는 것이었다. 마루걸레, 방걸레, 빨래질, 동자…… 손대지 않는 것이 없었다. 오히려 괴로우라고 시키는 것이 그에게는 갑갑하지 않고 십상 좋게 생각되었다.
 
437
어느 날, 그는 밥을 퍼들이고 밥 한 그릇 국 한 사발을 가지고 건넌방으로 건너가려니까,
 
438
“여기저기 벌리지 말고 어멈과 같이 먹지!”
 
439
안방에서 나오는 표독스러운 소리였다. 그는 놀라 꿈칠하여 하마터면 국그릇을 짓몰 뻔하고 겨우 부엌으로 들어갔다. 그는 한숨을 푹 쉬었다. 무엇보다도 그릇 깨뜨리지 않은 것이 적이 안심되었다. 어멈은 안방으로부터 빈 그릇을 가지고 나왔다.
 
440
“개밥 주었수?”
 
441
“아니오.”
 
442
“아이구 입때 무얼 했수, 그래? 촌 양반이 왜 개밥 주는 것도 몰우? 기차라!”
 
443
부뚜막에 긁어 놓은 솔치에다 식은 밥을 뒤섞고 찌개국물을 타서 개밥통에 들썩 부어주는 것이었다.
 
444
“에스, 에스!”
 
445
부르니 새카만 강아지가 꼬리를 저으며 달려들어 처럭처럭 먹기 시작하였다.
 
446
그는 속으로, ‘에스는 무엇일까? 우리 곳에서 검둥이, 복술이란 개 이름을 그렇게 부르나?’ 어쩐지 에스라는 이름이 서먹서먹하여 다정한 맛이 없었다.
 
447
그는 멍하니 서서 개 주둥이 속으로 차츰차츰 없어져 가는 허리가 길쭉길쭉한 흰 밥알을 보았다.
 
448
사명절 때나 아버지 생일이라야만 먹는 줄 알았던 흰 이밥을 이 집에서는 개에게까지 먹인다 이런 . 생각을 할 때 문득 떠오르는 것은 아버지의 피나던 손이었다.
 
449
어느 날 아버지는 벼를 베시다가 엄지손이 벤 것이었다. 빨간 피가 죽죽 흐르는 것을 예쁜이가 달려가서 제 고름 끝을 잘라 처매어드렸다.
 
450
피는 점점 더 흘러 옷에 묻고 벼이삭에까지 발려도 아버지는 탐스러운 벼 이삭에 끌려 아픈 것도 아무것도 모르시는 모양이었다.
 
451
육칠월 된 햇빛 속에도 구슬땀을 흘리시며 만지고 또 만져서 키워놓은 쌀알! 비가 안 오면 안 온다고 걱정, 너무 오면 온다고 걱정, 한시 한초를 마음놓지 못하고 키운 눈물, 땀, 피로써의 결정인 이 쌀알을 아버지는 만져도 못 보고 지주와 빚장이에게 홀랑 빼앗기고 마는 것이었다.
 
452
이리하여 다 늙으신 아버지는 장 위도 성하지 못하시건만 파슬파슬한 호좁쌀밥을 잡수시며 잘 넘어가지 않는 탓으로 이따금 물 한 모금씩 마시던 것이 방금 보이는 듯했다.
 
453
어느 사이에 그는 눈물이 흘렀다. 그는 남몰래 눈물을 씻고 나서 다시 개 밥을 보았다. 어김없는, 아버지가 애써 지어 놓은 쌀밥이었다.
 
454
만일 아버지가 저 쌀밥을 보시게 되면 얼마나 아끼실 쌀알이랴! 얼마나 대견할 쌀알이랴! 그러나 이 집에서는 아까운 것도 귀한 것도 모르는 모양이었다.
 
455
그는 이 집안 사람들은 자기와는 딴 나라 사람들과 같이 생각되었다. 그런 사람들과 한솥에 밥을 먹고 한집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결국은 기막혀 죽을 것 같았다.
 
456
어멈은 말똥히 쳐다보다가,
 
457
“밥 먹우…… 개 먹는 것이 아깝소, 그래?”
 
458
그는 어멈을 돌아보며 밥상을 보자 가슴이 멍청해지며 먹고 싶은 생각이 없고 도리어 끔찍해 보였다.
 
459
주옥이는 토닥토닥 나왔다.
 
460
“나, 물!”
 
461
그는 주옥이를 볼 때마다 세인이가 그리워졌다. 따라서 귀여운 마음으로 주옥이를 보았다.
 
462
그는 떠놓은 물을 입에 대어 주었다.
 
463
“싫어!”
 
464
안에서는,
 
465
“찬물 주어라.”
 
466
그는 수돗물을 뽑아서 주옥의 입에다 대었다. 꿀꺽꿀꺽 마시고 나서 말똥말똥 쳐다보았다. 예쁜이는 빙긋이 웃었다. 별안간 찰싹하고 예쁜의 따귀를 갈겼다.
 
467
“반편! 가야! 네 집으로 가야!”
 
468
하고 침을 탁 뱉고 나서 방으로 들어가자 무엇이라고 종알종알하는 소리가 들렸다. 따라 하하 웃는 소리가 들렸다.
 
469
어멈도 ‘너무 한다. 어린 계집애가!’ 이런 생각을 하며 숟갈을 놓고 일어났다.
 
470
“살아 무얼 해요, 어린애한테 그런 모욕을 받고……”
 
471
귀엣말로 중얼거리는 것이었다.
 
472
예쁜이는 골치가 우썩하며 전신의 열이 머리로 치떠밀어 올리는 것 같았다. 그는 눈을 푹 내려감고 찬물을 벌떡벌떡 들이키고 있었다.
 
473
행랑어멈은 발 빠르게 안방으로 냉큼 들어갔다.
 
474
예쁜이는 어멈의 사라지는 뒤꼴을 바라보자 펄썩 주저앉았다.
 
475
“못 가요! 난 못가요!”
 
476
처음으로 내는 요란스러운 목소리였다. 모두가 눈이 둥그래질 뿐이었다.
 
477
주옥 어머니는 오목한 눈이 한층 더 옴쑥해졌다.
 
478
“이년, 이 오라질 년, 어디 못 가나 보자. 염치없이 왜 우리 딸 가져가겠다니? 흥, 이년아 글쎄.”
 
479
침을 탁 뱉으며 암팡지게 노려보았다.
 
480
“끌어내게!”
 
481
집안이 쩌렁쩌렁 울었다. 상노는 또다시 달려들어 예쁜의 두 손을 사정없이 나꿔챘다. 그는 푹 고꾸라지며 두 팔을 마음껏 뿌리쳤다.
 
482
“애기 주어요! 내가 낳았지 누가 낳았단 말이야!”
 
483
예쁜이의 입술에서는 빨간 피가 흘렀다. 상노는 예쁜이의 허리를 깍지끼었다.
 
484
별안간 대문이 활짝 열렸다. 뒤이어 나타나는 키가 들어꽂은 듯한 험상스럽게 생긴 한 사나이가 번개같이 달려들어 상노를 잡아나꿔채 팽개쳤다.
 
485
둘러섰던 계집들은 “악!”하고 뿔뿔이 도망질쳤다.
 
486
사나이는 예쁜이의 앞에 딱 막아섰다. 예쁜이는 어리둥절하여 고개를 푹 숙였다가 상노를 밟아치운 데 눈이 뜨였다. 예쁜이는 최후 용기를 다하여 그를 쳐다보았다. 점점 뚜렷이 나타나는 이 사나이. 예쁜이의 눈은 찢어질 듯이 둥그래졌다.
 
487
“둘째야!”
 
488
나는 듯이 일어나 그의 가슴속에 자기의 흐트러진 머리를 푹 파묻었다.
 
489
“예쁜아!”
 
490
두멍깨 같은 그의 시커먼 손이 그의 어깨로 돌아가자 꽉 껴안았다.
 
491
“잊지 않았구나!”
 
492
따르르 하는 소리가 들렸다. 예쁜이는 머리를 번쩍 들고 “애기! 가지고 어서 갑시다. 네. 누가 올 테야요!”
 
493
그는 이렇게 부르짖었다. 무슨 소리인지 잘 아는 까닭이었다.
 
494
둘째는 담박 안방으로 뛰어들자 잡히는 대로 잡아나꿔챘다. 주옥 어머니는 어디로 숨은 꼴이었다. 어린애는 “악”하고 울었다. 둘째는 어린애를 껴안고 밖으로 나왔다.
 
495
예쁜이는 어린애를 받아 안고 죽어 넘어진 상노놈을 건너서 허방지방 나왔다.
 
496
“어디 가냐?”
 
497
벼락 같은 소리와 함께 우중우중 들어서는 경관들은 달려들어 항쇄 족새, 들째를 얽어 놓았다.
 
498
예쁜이는 기절해 넘어지고 말았다.
 
499
며칠 후 예쁜이는 경관들에게 호위되어 남대문 정거장까지 나왔다.
 
500
눈 딱 불거진 형사가 차표를 사서 예쁜이의 손에 들려주었다. 그는 차표를 내던지고,
 
501
“난 못해요, 둘째를 놔주어요. 아모 죄 없는 사람이야요. 내가 상노를 죽였어요! 이년이 죽였어요!”
 
502
“가만히 있어, 둘째도 곧 보낼 테야.”
 
503
예쁜이는 순사에게 대어 들었다.
 
504
“참말이야요? 거짓말 말으세요. 나는 혼자는 안 가겠어요!”
 
505
그는 팔싹 주저앉았다. 순사는 달려들어 일으켰다.
 
506
이 꼴을 본 모든 사람들은 예쁜이에게로 눈이 쏠렸다.
 
507
차는 미끄러져 들어왔다. 꾸리묵거시듯한 사람의 물결은 흔들리기 시작하였다.
 
508
예쁜이는 차안으로 끌려왔다. 차는 움직였다. 순간에 예쁜이의 정신은 펄쩍 들었다. 그는 아기를 마루바닥에 팽개치고 미친 듯이 창 앞으로 달려갔다.
 
509
“둘째야! 둘째!”
 
510
소리를 치고 뛰어내리려 하였다. 사람들은 그를 꼭 붙잡았다.
 
511
예쁜이가 내려온 그 해 봄에 창문네 생명줄은 떼이고 말았다. 몇 식구의 살아갈 길은 하루 아침 가볍게 떨어지는 말 한 마디로 캄캄하게 되었다.
 
512
창문이는 딸이 내려온 것, 더구나 준 이태 동안에 갖은 고생 당한 이야기를 듣고 치밀어오르는 분을 억제하기가 힘들었으나 그러나 밥줄이 무서워서 꼼짝 못하고 꿀떡꿀떡 삼키고 있었던 것이다.
 
513
양과같이 순하던 그는 며칠 밤새운 끝에 맹호 같은 기세로 일떠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의 눈앞에는 아들, 딸, 늙은 마누라도 보이지 않고 다만 원수인 이춘식이만이 딱 막아섰다. 그리하여 그는 어떤 날 새벽에 아내를 가만히 흔들어 깨웠다.
 
514
“어디 잠깐 다녀오겠네.”
 
515
“어디를 가셔요?”
 
516
예쁜 어머니는 선뜻함을 느꼈다. 남편의 성질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517
“어디요, 말씀하고 가시오.”
 
518
그는 아내를 꾹 찔렀다.
 
519
“애들 깨겠구만.”
 
520
세인의 옆으로 가서 얼굴을 맞대보고 예쁜이를 어루만지며 한참이나 우두커니 앉았다가 벌컥 일어났다.
 
521
“혹시 이번 갔다 며칠 걸릴지 모르니까 세인이 울리지 말고 예쁜이에게도 잘 위로하여 주게.”
 
522
여기까지 말한 그는 앞이 캄캄함을 느꼈다. 그러나 꾹 참고 어둠 속으로 달음질쳤다.
 
523
신발소리가 멀어질수록 그의 가슴은 터지는 듯하였다. 남편이 다시 돌아오지 못할 것만 같았다.
 
524
다음날부터 세 식구는 날마다 아버지를 기다리나 날이 가고 철이 바뀌어도 점점 막연하였다.
 
525
세인이는 눈만 뜨면 아버지를 부른다.
 
526
“오마이, 오늘은 아부지 과자 사 가지고, 응?”
 
527
하도 여러 번 거짓말을 하다 나니 입이 썼다. 그러나 세인의 안타까워하는 꼴을 보고는 번번이,
 
528
“그래.”
 
529
어머니는 한숨을 푹 쉬었다.
 
530
나중에는 세인이도 곧이듣지 않고 덮어놓고 어머니 손목을 잡아끌고 나섰다.
 
531
“아부지한테 가자! 아부지한테.”
 
532
어머니는 모든 것을 단념하고 다음날 세인의 손목을 잡고 나섰다.
 
533
“야, 난 가겠다.”
 
534
예쁜이는 부엌으로부터 나왔다.
 
535
“어디?”
 
536
“견디겠니? 야 때문에.”
 
537
모녀의 눈에는 약조나 한 듯이 일겁에 눈물이 핑 돌았다.
 
538
“오마이, 나도 가!”
 
539
따라 나선다.
 
540
“너까지 그러지 마라. 하도 조르니 바람이나 쐬이랴고 촌으로 슬슬 돌아 다니다가 올 테다. 어서 어린 것 데리고 집이나 잘 보아라.”
 
541
등에 업힌 애를 들여다본다.
 
542
“엄마, 엄마!”
 
543
“오, 다녀오마 아가.”
 
544
이렇게 어르고 나서 영감이 떠난 길로 정처없이 나섰다.
 
545
예쁜이는 하는 수 없이 신작로까지 따라나섰다.
 
546
“그럼 이내 와. 오마이 안 오면 나도 곧 갈 테야.”
 
547
머리를 푹 숙이고 울었다.
 
548
“오냐”
 
549
차마 뒤를 돌아보지 못하였다. 무 밑둥 같은 딸 하나를 남겨놓고 다시 오게 될지 말지한 길을 떠나는 어머니의 가슴은 무엇이라 형용할 수 없었다.
 
550
어머니와 세인은 산모롱이로 돌아갔다. 그는 펄썩 주저앉아 어린애를 집어 동댕이쳤다.
 
551
“이년의 계집애! 네 아비 때문에 우리 어머니, 동생은 떠나누다. 죽어라!”
 
552
어린애는 “악”하고 어머니게로 달려들었다.
 
553
한참 성풀이를 하고 나니 도리어 후회가 났다.‘어린 것이 무슨 죄가 있나, 내 팔자 사나워 그렇지.’ 이렇게 위로받고 집으로 돌아왔다.
 
554
어머니가 떠난 지 며칠 몇 달이 지나도 아무 소식이 없었다. 거의 일년이 지난 후에 이러한 풍문이 돌았다. 예쁜 아버지가 춘식이를 죽이려다 못 죽이고 도리어 잡혀서 몇 달 후에 애통이 터져 죽었다는 것, 어머니와 세인이 도 이 소식을 듣고 한강에서 자살했다는 것이었다.
 
555
예쁜이는 그만 실신상태에 빠졌다. 먹을 것 없고 입을 것 없는 데다 하늘 같이 믿고 바라던 어머니, 세인이 돌아오기를 손꼽아 기다리던 희망조차 물거품이 되고 만 것이었다.
 
556
그는 담배를 배우고 술을 입에 대었다. 그리고 난봉가를 불렀다.
 
557
냄새를 맡은 사내놈들은 수캐처럼 밤낮을 헤아리지 않고 달려들었다.
 
558
“여보세요 이리 와 앉으세요.”
 
559
처음 보는 사내에게도 탁탁 매어 달려 손을 잡아끌었다.
 
560
“술, 술 사주어요 술 아니면 난 못 살아요!”
 
561
그의 눈은 가느다랗게 되는 것이었다.
 
562
그는 사내를 얻게 되었다. 그 통에 몇 놈이 저마다 주먹담판을 하는 바람에 게딱지같은 집이 몇 번이나 무너질 뻔하였다. 그러나 그 중 힘센 매질꾼으로 호난 김명구가 이기고 말았다.
 
563
어머니를 빼앗긴 이제 네 살 된 어린 아기는 윗방 구석에서 해종일 혼자서 놀다가는 안타깝게 어머니가 그리워서 샛문 사이로 고개를 갸웃하고,
 
564
“엄마!”
 
565
어머니는 사내놈의 무릎 위에 올라앉아 갖은 아양을 다 피우다가,
 
566
“이 계집애, 가만 있어라.”
 
567
소리를 냅다 치는 바람에 어린애는 눈을 꼭 감고 숨어 버리고 말았다.
 
568
예쁜이가 사내 얻으면서부터 아기는 윗목 구석에서 혼자 자게 하였다. 밤중에 한 번씩이라도 깨보면 고양이 나드는 윗방이 무서웠다. 그리하여 눈을 꼭 감고 이불을 치덮을수록 여전히 무서워졌다. 그러다 혹시 오줌이 마려우면,
 
569
“엄마!”
 
570
가만히 불렀다. 이마 끝에 땀이 쪽 흐른다. 대답을 기다리던 그는 차마 또 다시는 불러보지 못하고 자리에 그냥 싸 버리고 만다. 아침이 되면 예쁜이는 아기를 차고 던지고 하며 때렸다.
 
571
“다시 또 오줌 싸겠니?”
 
572
망치를 둘러메면,
 
573
“안 그래……”
 
574
조그만 손을 눈에 꼭 붙였다.
 
575
끼니때가 되면 사내는 번번이 아기를 미워하였다.
 
576
“밥을 작작 쳐먹어야지.”
 
577
그 커단 눈을 흘깃흘깃 하였다. 예쁜이는 자기가 욕하고 때릴 때에는 모르 다가도 사내가 무어라면 화가 바짝 치밀었다.
 
578
“여보, 먹는 건 죄 아니랍데다. 밥 먹는 것까지 그렇게 밉소.”
 
579
밥숟갈을 뎅그렁 내치고 새침하여졌다. 사내는 눈을 부라리며,
 
580
“그래, 밉다! 꼴 못 보겠다. 모두 나가!”
 
581
발길로 예쁜이를 내밀쳤다. 예쁜이는 얼굴이 발갛게 되어 사내놈을 노려보고 있었다.
 
582
이 꼴을 본 아기는 나분 술을 놓고 슬그머니 밖으로 나가 뽕나무 옆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583
지나가고 오던 사람들은 어린것이 하도 괴망스럽게 무엇을 생각하는 듯한 것이 귀엽고도 불쌍하였다.
 
584
“아가, 엄마가 무어라든?”
 
585
손을 잡고 들여다보면 잠자코 머리를 흔들어 보였다.
 
586
“그럼 아빠가?”
 
587
뒤를 돌아보며 가만히 있었다. 그는 아기를 덤썩 안고 자기 집으로 갔다.
 
588
한참 후에 예쁜이는 아기를 찾아와서 그를 데리고 집으로 왔다. 그리하여 사내의 골을 풀어주려고,
 
589
“아가, 아빠라고 해보아라.”
 
590
웃으면서 아기를 들여다보았다. 그는 눈이 둥그래서 가만히 있었다.
 
591
“아빠다! 그래야 과자도 사오고 명절빔도 해준다.”
 
592
예쁜이는 성이 와락 나서,
 
593
“아빠라고 불러 봐!”
 
594
아기는 눈을 꼭 감고,
 
595
“아니야, 아빠는 없어……”
 
596
사내는 골이 한층 더 났다. 예쁜이는 눈을 부릅뜨고,
 
597
“나가라, 이 계집애. 너 같은 것 길러서 소용 없다!”
 
598
사내 할 말을 미리 앞질러서 그의 입을 막으려는 것이었다. 사내는 흥 하고 머리를 외어 꼰다. 예쁜이는 아기를 내밀쳤다.
 
599
“나가라, 이 계집애!”
 
600
그는 문턱을 꼭 잡고,
 
601
“아빠!”
 
602
소리없이 눈물이 샘솟듯 하였다.
 
603
“아비라는 소리 듣기 힘들다.”
 
604
씩 돌아앉았다. 예쁜이는 웃으며,
 
605
“아직 철없으니까 그렇지요.”
 
606
변명하였다.
 
607
이렇게 사내와 딸 사이로 다리를 놓다가, 놓다가도 결국은 명구와 예쁜이는 갈라지고야 말았다.
 
608
예쁜이는 밥 먹을 턱은 없고 하여 하는 수 없이 읍으로부터 몇 고개 넘어가 무초리라는 곳에서 술장사를 시작하였다.
 
609
이러는 사이에 아기는 열 살이 되었다. 지금은 제법 물 길어 밥을 곧 잘 하였다. 그리하여 예쁜이는 술상이나 차리는 외에 양 끼니 때는 내다보지도 않았다.
 
610
인물 고운 새 술장수 났다더라, 소문이 나니 어딧놈이 다 안 불려오는지 몰랐다. 그리하여 밤낮으로 장구소리 그칠 사이가 없고 싸움하지 않는 날이 없었다.
 
611
예쁜이는 술만 취하면 둘러앉은 사내놈들에게 헛욕질을 대고 퍼부으며 보기 싫게 입을 벌리고 우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휘몰이 장단을 쳐서 사내놈들을 쫓아버린 후 앞마당 풀바탕에 털썩 주저앉아 고함을 치며 울었다. 옛날 둘째를 생각하였던 것이다.
 
612
딸은 어머니 팔을 부여잡고,
 
613
“오마니, 들어가자우. 남들 욕해.”
 
614
그는 목에 핏대줄을 올리며,
 
615
“욕하면 어떠냐, 개 같은 놈들. 내가 저희 덕에 산다더냐!”
 
616
한참이나 악설을 퍼붓다가는 금시로 아리랑 타령을 스러져가는 듯이 눈물 섞어 부르는 것이었다.
 
617
아침마다 아기는 어뜩 새벽에 일어나서 조그만 동이를 이고 물 길러갔다.
 
618
윗집 봉준 어머니는 마당을 쓸다가 어린것이 매일 아침 다니는 것을 보고 측은한 마음이 키워서 자세히 보았다.
 
619
“아가 춥지 않니?”
 
620
“아니오.”
 
621
쳐다보는 그 눈은 별같이 빛났다.
 
622
“어마이 무얼 하니?”
 
623
“술 취해서 자고 있어요.”
 
624
“응.”
 
625
머리를 끄덕이며,
 
626
“네가 밥하니?”
 
627
“네.”
 
628
“용쿠나. 애기 어서 가 밥해라. 그리고 우리집에 놀러 오너라.”
 
629
“네.”
 
630
돌아서 아장아장 걸어가는 그의 뒷맵시를 한없이 바라보던 그는 즉각적으로 범상한 애가 아닌 것을 알았다. 그리고 탐스러운 생각이 났다. 자기는 아들이 있으면서도 항상 알찍은 마음이 한편에 있었던 것이다.
 
631
동네에서는 그 부인의 과거를 아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 다만 소년과 수로 유복자를 데리고 유족한 생활 속에서 남부럽지 않게 산다는 그것뿐이었다. 따라서 한낱 부인으로서도 남자 못지않은 수단이 있는 여자라는 밑에 맹목적으로 그를 존경하고 있었다.
 
632
그 부인의 과거를 잠깐 애기하고 지나가자.
 
633
이 부인의 기억에 아직 새롭게 남아 있는 것은 자기는 사생아라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어떤 사람의 손을 빌어 평양 고아원에서 칠 세까지 자란 후에 어떤 사람의 손을 거쳐 기생학교로 들어가게 된 것이다.
 
634
이리하여 기생학교를 졸업한 그는 나날이 소문이 높아져서 열칠팔 세에 평양의 유명한 예기 산호주라면 누구나 모를 사람이 없게 되었던 것이었다.
 
635
나면서부터 별난스러운 그는 쓰라린 현실 속에서 다소 침착하여졌으나 그러나 여전히 좀 남아 있었다. 그리하여 누구나 그를 초면으로 대하게 되면 다소 환멸을 느끼고 말 한 마디라도 헛놓고 하다가는 번번이 콧방을 맞고 나서 며칠 몇 달을 지내는 사이에 그의 엄연한 인격에 여지없이 굴복이 되고 마는 것이었다.
 
636
부호 자제들이 날마다 그의 무릎 앞에 꿇어 돈으로나 기타 무엇으로든지 그의 마음을 사보려고 갖은 모양을 다 피우나 넘어갈 듯 넘어갈 듯하면서도 아주 넘어가지 않는 그만큼 그의 이름을 나날이 올라갔던 것이다.
 
637
이러한 독특한 성격을 가진 그는 항상 혼자 있기를 좋아하였다. 그때에 자기의 본성이 발로되는 것이었다. 두 눈을 가만히 뜨고 끝없이 무엇을 생각하는 그는 평상시와는 딴판인 것을 엿볼 수 있었다. 어느 때나 위급할 때를 당하게 되면 고요히 마음을 가라앉혀 가지고 모든 것을 후회없이 결정하는 것이었다.
 
638
그는 어디를 가든지 어떤 사람의 이야기를 듣든지 무심코 듣고 보는 적이 없었다. 그리하여 모든 것을 자기에게 대조해 보고 끝없이 자기의 처지를 불만히 생각하였다. 따라서 자기의 장래라는 것은 눈물나리 만큼 불쌍하게 보였던 것이다.
 
639
‘어쩌면 나도 남과 같이 남편을 얻어 아들 딸 낳고 자미있게 살아볼까.
 
640
에라! 생각하면 무엇하리, 나 같은 년에게.’ 나이가 한두 살 많아갈수록 그의 가슴은 이러한 생각으로 가득 찼던 것이다. 하지만 그의 앞길은 갈수록 태산만이었다.
 
641
그에게는 돈 그것이 , 악마같이 생각키웠다. 그리고 알뜰한 인정, 그것이 안타깝게 그리웠던 것이다. 세상에는 사내가 많고 많건마는 이년에게는 사내 하나가 태이지 않았담! 이렇게 탄식하고 남몰래 우는 적이 많았다.
 
642
그가 스물한 살 잡히던 때, 우연한 기회에 어떤 보기에도 초라한 고학생을 만나게 된 것이었다. 그 후로 그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사랑의 불길이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남몰래 그의 하숙으로 자주 방문하게 되었던 것이다.
 
643
어떤 여름밤 비는 느실느실 오기 시작하였다. 졸이는 가슴으로 손님들을 억지로 쫓다시피 하고 보니 새로 두 시 반이었다. 그는 분주히 옷을 갈아입고 미리 약조한 곳으로 가보니 그는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에 그는 감격의 치밀리는 기쁨이 진하여 흐르는 눈물을 억제하기가 힘들었다.
 
644
“입때 기다리셨소?”
 
645
그를 만나면 어쩐지 수줍어지는 것이었다. 그리고 가슴이 떨리기 시작하였다. 그는 앞으로 슬금슬금 걸었다.
 
646
“그러믄요.”
 
647
침묵 속에 그들은 걸었다. 이때마다 번개질을 하였다. 잔잔히 흐르는 물소리는 차츰차츰 가까이 들렸다.
 
648
“공부도 그만둘 테야요.”
 
649
그는 놀라 어둠 속에서 그를 바라보았다.
 
650
“무슨 말씀이세요?”
 
651
이렇게 묻는 사이에 돈 때문일까 혹은 나 때문일까 하는 의문이 일어났다.
 
652
“공부도 아무것도 귀치 않으니까요.”
 
653
“특별한 사정이 있습니까? 숨김없이 저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네.”
 
654
“별한 사정도 없이 그저 모두가 귀치 않고 당신…….”
 
655
그는 여기까지 끊고는 잠잠하였다. 듣던 그는 반가우면서도 한켠으로 겁이 났다.
 
656
“강수 씨, 당신은 그러한 번민으로 아까운 시간을 허송할 때가 아닙니다.
657
만일 당신께서 이 사람으로 인하야 공부도 치워버린다면 단연코 당신과 가까이하지 않겠습니다. 그것만을 깊이깊이 알아주시지요. 그러고 앞으로 부족하나마 당신의 학비까지도 저의 힘 미치는 데까지는…….”
 
658
머리를 숙였다. 한참이나 말없이 걷던 그는,
 
659
“고맙습니다!”
 
660
겨우 이렇게 대답을 하고 부끄럼을 느꼈다. 그리고 그의 고상한 말에 감복되었다.
 
661
그들은 송림 새로 들어섰다. 강수는 어떤 소나무 아래 앉으며,
 
662
“여기 앉으십시오.”
 
663
자기 양복 웃저고리를 벗었다. 그는 분주히 도로 입히며,
 
664
“모두 낡은 옷입니다. 새 옷이라면…… 이까짓 옷 버리면 어떻습니까?”
 
665
강수 옆에 걸터앉았다.
 
666
별안간 강수는 그의 손을 꼭 잡고,
 
667
“나를 그렇게까지 사랑하십니까?”
 
668
그는 잠잠히 그의 가슴에 머리를 파묻었다. 번갯불이 번쩍했다.
 
669
이리하여 돌이라도 녹일 듯한 사랑이 계속될수록 반면에 산호주의 격렬한 후원은 강수의 용맹스러운 힘이 되고야 말았다. 하여 무사히 중학을 마치고 일본까지 건너가게 되었다.
 
670
애인을 보낸 산호주는 사내놈들의 단련을 받다 못해 어떤 때는 매까지 맞는 때가 종종했지만도 모든 모욕이 남편을 위해 하거니 하여 스스로 위로받으며 오히려 그들을 골라서 한푼이라도 빼앗을 궁량만 하고 있었다.
 
671
시간은 빠르다. 어느덧 형설의 공을 쌓아 가지고 그리운 고향으로 나온 강수는 평양 모 중등학교 교편을 잡게 되었다.
 
672
중화로부터 그의 부모들은 아들의 뒤를 따라 평양성내에 들어오자마자 아들의 혼사담은 바짝 일게 되었다.
 
673
하여 산호주에게는 말 한 마디 전함 없이 그곳 사립 모 여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깨끗한 여학생과 드디어 약혼되어서 문밖 예배당 내에서 목사의 주례하에 성대한 결혼식은 끝나고 말았다.
 
674
바로 결혼식 열흘 앞두고 산호주를 찾아온 강수는 아무러한 눈치도 그에게 보이지 않고 간 후 발길을 뚝 끊고 말았다.
 
675
소문을 들은 산호주는 새삼스럽게 놀라지는 않으면서도 자기의 기대가 너무 컸던 것을 얼핏 깨달았다. ‘세상은 그런 것이다!’ 이 한 마디로 오륙 년간 받은 자기의 상처를 눌러버리려 하였다. 그러나 용이히 매워지지 않는 그 상처는 마침내 그로 하여금 벙어리라는 별명까지 듣게 하였다.
 
676
그는 손님맞기를 싫어하고 불러도 가기를 싫어했다. 그저 방안에 우두커니 앉아서 끝없는 침묵 속에 별 신기맹통한 공상도 못하면서 꽁하니 앉아 있었다.
 
677
어떤 날 그는 모란봉 위에 올라 시원한 바람을 쐬었다. 잔잔히 흐르는 대동강 물, 다정히 모여 앉은 능라도 수풀도 별한 아름다움과 흥미를 그에게 주지 못하였다. 그저 그렇다 할 뿐이었다. 그는 자기 스스로도 이상히 생각하였다 이것이야말로 . 실연의 쓴맛인가? 무엇 때문에 내가 이럴까? 강수 때문에? 딱히 강수 때문인 것 같지 않았다. 어쩐지 자기 가슴속에 열이란 하나도 없어지고 차디찬 송장같이 생각되었다. 그러면 세상을 버릴까 하는 최후까지 마음 키워 보았으나 그다지 염증나게 세상이 싫지도 않았다. 그저 그만그만하였다.
 
678
몇 사람의 지나치는 신발소리도 들었으나 돌아보지 않았다. 한참 이러한 생각으로 시간을 보낸 그는 발길을 돌렸다.
 
679
그의 앞에 딱 막아선 사람이 있었다. 얼른 쳐다보니 강수였다. 한참 동안 강수를 쏘아본 그는 천천히 발길을 옮겼다.
 
680
“산호주, 잠깐만 기다리오.”
 
681
그는 우뚝 섰다. 발갛게 상기된 그의 얼굴은 느긋느긋함이 돌았다. 산호주는 머리를 돌렸다. 바짝 다가선 강수는,
 
682
“한번 집까지 가려는 중에 잘 만났습니다.”
 
683
“네.”
 
684
그는 머리를 끄덕이며 주춤 물러났다. 씨근씨근하는 그의 숨소리가 불쾌했던 것이다.
 
685
“용서하여 주시겠소? 물론 영리한 당신인 것만큼 이번 일에 대하여는 관서할 것으로 믿습니다마는. 네, 용서하시지요. 환경이 나로 하여금 그리 맨들었소마는, 그러나 당신만은 내가 잊을 수가 있소?”
 
686
우두커니 서서 듣고 있던 그는,
 
687
“그렇겠소.”
 
688
“용서하시지요? 나는 믿습니다.”
 
689
“더 할 말 없지요?”
 
690
그는 다시 돌아섰다. 그리하여 천천히 내려왔다. 멍하니 바라보던 강수는,
 
691
“산호주!”
 
692
빽 질렀다. 그는 돌아보았다.
 
693
“전과 같이 나를 사랑하겠소? 안 하겠소?”
 
694
사랑이란 말을 들을 때 그는 웃음이 칵 쓸어 나왔다. 그는 입을 틀어 막고 한참이나 진토록 웃었다. 강수는 몸이 바짝 달아서,
 
695
“그새 다른 놈 붙인 것이로구나!”
 
696
하고 노려보았다. 웃는 것이 무엇보다도 불쾌했던 것이다. 산호주는 쓸쓸한 코웃음을 던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697
그 후 몇 번이나 지나치는 길가에서, 혹은 요리집에 불리어가서 강수를 만나게 되었다. 여전히 인사를 건네는 것뿐 아무 다른 눈치를 볼 수가 없었다.
 
698
그럴수록 강수는 행여나 하여 그의 뒤꽁무니를 따라 본 때도 있으며 오밤중에 산호주 자는 방문을 두드린 적이 많았다.
 
699
몇 달이 지나자 산호주는 자기가 홀몸이 아닌 것을 발견하였다. 그리하여 어떤 달 밝은 밤, 소리도 인적도 없이 진절머리나는 평양을 벗어나 이곳으로 오게 되었던 것이다.
 
700
우선 얌전한 집을 사고 논밭 합하여 십여 마지기를 샀다. 그리고 대강 한 세간살이를 마련하여 재미를 알아올 만한 때 해산을 하게 되었다, 그의 원하던 대로 아들을 낳게 되었다. 그는 처음으로 세상에 대한 애착심을 가지게 되었다.
 
701
어린것을 안고 들여다볼수록 신기맹통스러웠다. 따라서 차츰차츰 차디차던 그의 가슴은 따스한 모성애로부터 녹아갔다.
 
702
어린 봉준이는 매일 달라 갔다. 몇 달이 지나자 젖살이 포동포동 오르고 꽃송이 같은 입을 벌려,
 
703
“엄마, 엄마.”
 
704
하였다. 빼빼 말라붙었던 그의 눈에서 감격에 넘치는 눈물이 그의 볼을 적시게 되었던 것이다.
 
705
봉준이가 자라날수록 그의 희망은 커졌다. 하여 살림살이를 어쩌는 수가 없이 일감을 만들어 가며 잠시도 놀지 않았다.
 
706
일꾼을 데리고 밭 몇 마지기를 손수 부쳤다. 그리하여 여름에는 농사 뒤치기에 눈코 짬이 없이 바쁘게 지냈다. 그러나,
 
707
“엄마!”
 
708
하는 소리만 들으면 어려운 줄을 모르고 악하고 일을 하였다.
 
709
그러므로 동네에서도 이 부인을 흠모치 않는 사람이 없었다. 비록 농사하는 집일망정 깨끗하여 먼지 있는 것을 볼 수 없으며 심지어 뜰 앞 구석에 박혀 있는 돌 한 개라도 사람의 발부리에 채이지 않도록 자기를 잡아놓는 일이며, 항상 손부리에서 노는 호미, 괭이, 걸레, 비, 화로, 성냥갑, 바느질 그릇, 암질러 잃어버리지 않도록 급한 때 얼른 찾도록 교묘히 정돈해 두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성냥 한 개비를 무단히 없애지 않고 실 한 바람을 유효하게 썼다. 하여 점점 늘어가는 그의 가세는 매해 달라갔다.
 
710
그러는 사이에 봉준의 나이 일곱 살이 되었다. 그는 분주히 그곳 예수교 학교에 아들을 입학시켰다.
 
711
그후부터는 아침이 되면 봉준이가 책보를 들고 학교로 달아나는 것이었다.
 
712
그는 말없이 아들의 가는 뒤꼴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저것을 사람을 맨들어놔야 할 텐데 이렇게 ……’ 생각할 때 어머니란 책임이 무겁고도 막연함을 깨달았다.
 
713
동네 새 술장수집이 생긴 후로 잠잠하던 촌동네가 뒤숭숭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은 내어쫓자는 사람으로, 덮어놓고 욕질하는 사람으로, 한동안은 그에게로 부산히 문안 겸 노친네 젊은 부인네들이 저녁이 되면 모여들었다.
 
714
그는 언제나 말없는 웃음으로 그들을 대해 주면서 밤낮으로 우는 예쁜이의 정형이 불쌍하였다. 따라서 그의 앞으로 매일같이 지나다니는 그의 어린 딸은 연중에 탐스러웠다. 무엇보다도 꼭 다문 입술, 사려 깊은 듯한 그의 눈은 장래가 있다는 것을 그로 하여금 상상케 하였다.
 
715
이렇게 생각이 들수록 예쁜이에게서 이 아이를 자기에게로 뺏아올 마음이 들었다. 자기가 예쁜이보다 어머니로서의 모든 책임 이행이 낫다해서 그렇다는 것보다도 영업이 영업인 것만큼 그 어린 천진한 것에게 벌써부터 술 냄새와 사내놈들의 꼴을 보이는 것이 자기 경험을 미루어 가엾은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716
이리하여 그가 마당에 나왔다가도 아기만 뵈면 손짓을 하여 손목을 꼭 잡고 자기 집으로 데리고 가서 밥이든지 무엇이든지 먹여 보내곤 하였다.
 
717
아기는 눈만 뜨면 봉준 어머니가 보고 싶었다. 언제나 고요히 웃는 눈, 항상 쓰다듬어 주는 그의 흰 손, 그리고 가늘고도 부드러운 그의 음성이었다.
 
718
더구나 봉준의 고운 옷감을 끊어다 손수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도 아기의 눈에 띄었던 것이다.
 
719
아기는 가만히 자기 어머니를 생각해 보았다. 구석구석이 때묻은 옷을 내버려두는 것, 그리고 술이나 마시고 마시고, 해종일 마시고는 사내놈들의 무릎과 무릎 사이로 옮아다니는 꼴이었다. 그는 울고 싶었다. 아니 남몰래 우는 적이 많았다. 그는 쓰라린 현실로부터 그의 이지(理知)는 엉뚱나게 발달되었던 것이다.
 
720
아기는 틈만 있으면 봉준네 집으로 달려갔다.
 
721
“아가, 밥 먹었니?”
 
722
“네.”
 
723
“더 먹지?”
 
724
“싫어요.”
 
725
봉준이는 공부한다고 책을 벌려 놓고 읽기도 하고 쓰기도 한다. 그는 옆구리로 다가앉아 물끄러미 들여다보았다. 봉준이 어머니는,
 
726
“아기도 공부하고 싶으니?”
 
727
그는 머리를 폭 숙였다.
 
728
“학교 가고 싶어?”
 
729
손으로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는 애기의 대답이 없음에 ‘아마도 아직 공부가 무엇인지 모르니까 그러나 보다’ 하고 생각하였다.
 
730
아기의 눈물이 봉준 어머니 손에 떨어졌다. 그는 놀라 아기를 들여다보았다.
 
731
“어째 우니?”
 
732
그는 아무 대답이 없었다.
 
733
“어머니한테 꾸지람 들었니?”
 
734
봉준 어머니는 너무 안타까움에 그의 목을 얼싸안고 들여다보았다. 봉준이 도 멀거니 바라보았다.
 
735
“아가, 말해라. 웅?”
 
736
“학교 가고 싶어……”
 
737
울음 섞어 말하였다. 순간에 봉준 어머니의 가슴은 쾅하고 내려앉음을 느꼈다.
 
738
“오냐, 너도 물론 배우고 싶었을 테다. 내가 어리석게 네 마음을 몰랐구나!”
 
739
그의 눈에도 눈물이 괴었다. 그렇게 알뜰한 것을 공부를 못 시켜 주나, 배우지 못함에 그 어린 가슴이 얼마나 안타까웠으랴, 이렇게 생각하였다.
 
740
“아가, 내일부터 학교 가라. 어머니보고 물어보고 학비는 내가 물어주마.
741
응?”
 
742
그는 금시로 눈물 괸 눈에 웃음이 돌았다.
 
743
“어머니가 못 가게 하면……”
 
744
애처롭게 그를 쳐다보았다.
 
745
“오냐, 내 말하마.”
 
746
그 후부터 아기는 봉준의 집으로 아주 옮아오고 예쁜이는 사내놈을 달고 멀리 뛰어버렸다.
 
747
봉준 어머니는 아기의 이름을 옥이라고 지었다. 십여 살이나 먹도록 이름 없는 한낱 생명이었던 것이다.
 
748
봉준 어머니가 옥이를 데려다 놓고 가지각색 옷을 맵시 있게 꽃다대 처럼 해서는 입히곤 하였다.
 
749
따라서 옥이도 나간 어머님 생각은 아주 잊어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이따금 봉준이가 툭 부러지게,
 
750
“가아, 너의 엄마한테로 가야.”
 
751
이런 소리를 듣고 나면 어린 가슴이 찌르르 울리는 것이었다. 봉준 어머니는,
 
752
“봉준아, 나는 너의 엄마는 아니고 옥이 엄마다! 네가 나가라.”
 
753
웃지도 않고 가만히 쳐다보면,
 
754
“아니야 엄마.”
 
755
그에게로 와서 안기려면 물리치며, 봉준이는 눈물이 글썽글썽해지면 잠잠하였다.
 
756
“안 그러지, 봉준아. 옥이도 이리 온.”
 
757
두 아이를 무릎 위에 올려놓고 옛날 영웅 이야기 같은 것으로 짤막한 동화 같은 것을 하여 들이곤 하였다.
 
758
옥이 열네 살 잡히고 봉준이는 열한 살 나던 해 가을, 그의 어머니는 감기에 걸려 십여 일 꼿꼿이 앓은 결과로 아주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그는 마지막까지 봉준과 옥이 손을 붙잡고 차마 눈을 감지 못한 채 가고 말았던 것이다.
 
759
바로 임종시에 애들의 선생인 김영철이를 데려다 놓고 불쌍한 두 어린것들의 장래를 부탁하였던 것이다.
 
760
피가 흐르는 듯한 어머니의 간절한 부탁으로 무거운 짐을 한 어깨에 짊어진 영철 선생은 그 둘이 아플세라, 혹은 공부를 잘 못할세라 안팎으로 마음을 졸여가며 무럭무럭 자라나는 그들을 보고 기뻐하였다.
 
761
유언을 따라 옥이 스무 살 잡히던 해에 그곳 예배당 내에서 그들의 혼례식은 끝이 났다.
 
762
시어머님은 본을 따라 옥이는 세간살림을 나무랄 여지가 없이 잘하였다.
 
763
남편인 봉준이는 곧 평양으로 공부 보내고 혼자서 농사 뒤를 쳐가며 남편의 학비를 보냈다. 이리하여 동네에서는 입 든 이마다
 
764
“나 어린것이 용해”
 
765
이렇게 일컬음을 듣곤 하였다.
 
766
봉준이가 평양서 공부를 마치고 일본으로 건너가자 영철 선생의 권으로 옥이는 읍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송화읍 내에 예수교 안으로 경영하는 청년학원에 그를 입학시키고자 함이었다.
 
767
그가 학교에 다니면서부터 공부에 재미를 붙여 밤잠을 못 자고서라도 남에게 떨어지려고는 하지 않았다. 그럼으로 인해서 학교 선생들까지 옥이를 사랑하고 학생들한테까지 질투심을 받게 되었다.
【원문】추억
▣ 커뮤니티 (참여∙의견)
내메모
여러분의 댓글이 지식지도를 만듭니다. 글쓰기
〔소설〕
▪ 분류 : 근/현대 소설
▪ 최근 3개월 조회수 : 67
- 전체 순위 : 912 위 (2 등급)
- 분류 순위 : 125 위 / 881 작품
지식지도 보기
내서재 추천 : 0
▣ 함께 읽은 작품
(최근일주일간)
▣ 참조 지식지도
▣ 기본 정보
◈ 기본
  # 어머니와 딸 [제목]
 
  강경애(姜敬愛) [저자]
 
  1931년 [발표]
 
  소설(小說) [분류]
 
◈ 참조
▣ 참조 정보 (쪽별)
백과 참조
목록 참조
외부 참조

  지식놀이터 :: 원문/전문 > 문학 > 한국문학 > 근/현대 소설 카탈로그   목차 (총 : 6권)     이전 2권 다음 한글 
◈ 어머니와 딸 ◈
©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1년 05월 1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