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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습 어른은 지금으로부터 491년 전 세종대왕 때에 서울 동촌에서 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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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신 지 겨우 여덟 달이 되자 배운 데 없이 글을 알며 이 외에도 여러 가지로 총명한 표적을 들어내서 사람을 놀라게 합니다. 그 외할아버지께서는 말도 채 배우기 전에 『천자문』이라는 중국 글을 가르치시니 떼떼하고 입으로 옮기지는 못하여도 뜻은 다 알았다 합니다. 아직 제 나라 말도 옮길 줄 모르는 어린 아이가 남의 글부터 배운다는 것은 옳다고 할 일은 못 되지만은 입으로 떠듬거려도 붓고 종이를 주면 능히 그 뜻을 글로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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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절만 하여도 중국 글만 힘쓰는 때였음으로 어른께서 공부하시고 지으신 글이라는 것은 거의 다 중국 글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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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돌을 지냈을 때의 일입니다. 그 외할아버지께서 예전 귀글을 베끼게 하셨는데 그때까지도 말은 못하였습니다. 할아버지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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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난간 앞에서 웃으나 소리를 듣지 못한다.(花笑檻前聲未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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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셨더니 시습 어른께서는 병풍에 꽃 그림을 가리키며 떼떼하고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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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가 수풀 아래서 울되 눈물을 볼 수 없다.(鳥啼林下淚難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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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시니 시습 어른은 또 병풍에 새 그림을 가리키며 떼떼떼 하였습니다. 이것을 보면 가르쳐 주는 글은 다 깨닫는 것을 알겠습니다. 이 해에 옛글을 백 마디나 넘겨 벗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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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살 되던 해 봄에 비로서 말을 하여 외할아버지께 귀글이란 어떻게 짓는 것이냐고 여쭈어 보았더니 외할아버지께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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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글이란 글자를 일곱자씩 모아 짓는 것인데 끝에다가 운이라는 것을 달고 소리의 높낮이를 보아 한 아름다운 말을 만드는 것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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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하셨습니다. 그 다음부터는 심심만 하면 할아버지께 운자를 내어줍시사 하여 읽어선 맛이 있고 보아선 산뜻한 귀글을 많이 지으셨고 또 몇 천 마디되는 길고 어려운 줄글도 많이 지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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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살 때에는 벌써 중용, 대학이란 책을 다 알고 글에 대하여는 거의 막힐 것이 없을 만큼 알았습니다. 그럼으로 신동이라는 소문이 나매 가까이 계신 뜻 있는 어른들은 여러 가지로 글에 당한 시험을 해보시나 막힐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기재요 신동이라는 이름이 더욱 높아지고 널리 퍼져서 나라에까지 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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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께서는 시습 어른을 대궐로 불러 들이사 귀글을 짓게 하시니 빠르게 짓는 글이 자자가 주옥이로시다. 임금께서 대단히 기특하게 아시사 비단 백필을 내리시며 가지고 가라 하시니 시습 어른은 백필을 다 풀어서 한데 잡아맨 뒤에는 한 끝을 허리에다가 매고 하직하고 나오시니 비단은 나오는 대로 줄줄 따라나옵니다. 임금께서는 이것을 보시고 더욱 기특히 아셨습니다. 시습 어른의 어렸을 때 총명하고 신기함은 다 이러하였음으로 누구든지 이 아이의 장래가 범상치 않을 것을 짐작하였고 뜻있는 어른들은 시세를 생각하고 큰 재목 되기를 바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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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습 어른을 전해야 할 일은 그 어른의 총명한 것과 재주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재주라는 것은 재주가 있다고 귀한 것이 아니라 재주가 있으면 큰일을 이룰 수 있는 까닭에 귀한 것이다. 시습 어른도 만일 아무 것도 이루신 것이 없었다 하면 별로 전해질 것이 없겠고 또 재주는 하늘에서 타고난 것도 귀하지마는 사람이 힘써서 얻은 재주가 더욱 귀한 것이라 시습 어른도 만일 당신의 애와 힘으로 닦은 것이 없었다 하면 재주가 있었다고 그리 일컬을 것이 없을 것이올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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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시습 어른은 하늘에서 타고나신 재주가 이미 그처럼 장하신 데다가 당신이 애를 써서 닦으신 재주가 더욱 많았고 또 그 재주를 써서 참되고 크고 좋은 일을 이루시려고 정성을 쓰신 까닭에 그 어른의 일을 전해야 할 것이올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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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습 어른이 사람을 사귀어 보고 세상을 지내보시는 동안에 깊이 느끼신 바가 있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하는 일은 그 소견의 테가 너무도 좁고 작은 데다가 속이 얕아서 거기서만 오비작거리고 요롱요롱하느라고 아름다이 잘 될 세상을 더럽게 만들며 참되어야만 할 사람까지 거짓 것이 되어서 캐등 위에서 공명 싸움을 하고 벼륵선지에 이익 다툼을 하는 판에 모든 큰 것이 다 부스러짐을 보시고는 깊이 슬픔을 느끼셨습니다. 더 한 걸음 나가서 목구멍에 낱알 기운을 하느라고 대가리를 들이박고 등허리에 실오라기를 걸치느라고 얼이 빠져 헤매이는 데서 모든 큰 것이 생겨나지 못함을 보시고는 더욱 깊은 슬픔을 느끼셨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그때 그때만 알고 요것요것만 좋아하는 이 세상의 사람을 크고 멀게 고쳐볼까 하시고 많은 생각을 하셨습니다. 생각하고 생각해서 깨달은 것일랑 좋은 글로 나타내 보여야만 하겠는즉 당신을 글 잘하는 사람이 되셔서 한 세상에 별이 되고 만 시절에 빛이 되시려고 애를 쓰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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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생각해보면 우리가 이처럼 아름다운 산과 내와 들과 나무를 가졌지마는 한 사람도 이처럼 거룩한 사람과 살림과 일과 공장이 있지마는 한 사람도 이 거룩한 것을 그려내는 이가 없고 가로로 보나 세로로 보나 앞을 살피고 뒤를 살펴도 노래하고 읊조릴 거리는 많아도 이 소임을 맡을 사람이 없으니 이것을 애달피 아는 그 사람의 가슴이야말로 참으로 쓰라릴 것이올시다. 이것이 시습 어른으로 하여금 하루바삐 당신의 몸을 붓대에다 붙여 가지고 모든 일을 종이 바닥 위에다 베풀려는 생각을 간절하게 만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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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포부를 가지시고 기껏 해보려는 결심으로 우선 이 세상에서 모든 헛된 것을 먼저 떼버리셨습니다. 그래서 한갓 깊은 산 속 시원한 곳을 쫓아다니시며 한 평생 느끼면 읊으시고 깨달으면 적으셨습니다. 그것들 가운데는 말할 것 없이 우리에게 끼쳐주신 큰 것이 쌓여 있습니다. 이리하실 동안에 어려움과 괴로움도 많이 겪으셨지마는 오직 일생을 하루같이 실증을 내거나 성을 내는 일 없이 마음대로 뜻대로 참되고 크고 좋은 것을 많이 만드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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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습 어른은 이렇게 하셔서 그 생명의 내림이 늘 우리 가슴 가운데에서 뛰고 그 재주가 부질없는데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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