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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비장(裵裨將) ◈
◇ 배비장 (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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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3
채만식
1
裵裨將[배비장]
2
10
 
 
3
남녀가 한가지로 깜박 잠이 들려고 할 무렵이었다.
 
4
밖으로부터 별안간
 
5
“문 열어랏! 문 열엇!
 
6
하고 우뢰같이 고함을 치는 소리가 들렸다.
 
7
배비장은 혼비백산 벌벌 떨었다. 여자도 매우 놀라는 눈치였다.
 
8
“이년! 이 고이한 년! 나만 음쭉한다치면 방문 앞에 낯몰를 신발이 떠날 날이 없구, 이년! …… 내가 오늘 밤에는 꼭 지키구 있었다! 당장 이 문 못 여느냐?”
 
9
밖에서는 연해 이렇게 호통을 하며 문짝이 떨어지라고 잡아 흔든다.
 
10
여자는 발가벗은 배비장은 날쌔게 자루를 씌워 아구리를 동여서는 웃목 구석에다 세워놓고 일변 옷을 챙겨 입으며 등잔에 불을 켠 후에 방문을 연다.
 
11
“꾸물거리구 한참만에야 방문고리를 벳길 제부터 알아보았다!”
 
12
사내는 이렇게 어르면서 방으로 들어오고, 여자는 아주 쳔연덕스럽게
 
13
“또 약주 취하셨구려?”
 
14
“잔말 마라! …… 저 웃목 구석에 송자처럼 세워논 건 무어냐?”
 
15
“보면 몰라요?”
 
16
“못 보던 건데에……”
 
17
“거문고 새 줄 달아다 놓았다오!”
 
18
“오오 거문고라! 새 줄을 달았다! 그럼 새 줄 맛에 한번 쳐봐야지!”
 
19
사내는 비틀거리고 웃목으로 오더니 곰방대 꼭지를 들어 정 복판께를 툭 한번 친다.
 
20
배비장은 배꼽 옆을 얻어맞고는 질색하게 아픈 것을 참아가며 거문고 소리를 본떠
 
21
“두웅!”
 
22
사내는 어깨를 우쭐
 
23
“허 그 거문고 소리 웅장헌지고! 좌우간 세사는 금삼척이요 생애는 주일배하니 거문고 새 줄 달았으니 한잔 마시며 거문고 치고 놀자꾸나! 술 가져 오느라?”
 
24
“술이 무슨 술이 있소?”
 
25
“없으면 사오든 못하느냐?”
 
26
“밤중 삼경에 젊은 가속더러 술 사러 저자에 나가란 법이 어딨소?”
 
27
“허허! 네 말 워너니 괴이찮다! 그럼 내 나가서 사가지구 오마!”
 
28
사내는 소리를 내어 방문을 여닫고 밖으로 나간다.
 
29
여자가 얼른 달려들어 자루 주둥이 동인 것을 푼다.
 
30
발가숭이 배비장이 벌벌 떨면서 자루로부터 쏟아지듯 나온다.
 
31
“날 고의만 얼른 좀 주시오! 아래만 가리구 피신을 해야 하겠소!”
 
32
“못 나가십니다!”
 
33
“못 나가다니오?”
 
34
“저자가 시방 으뭉을 피우느라구 술을 사러 나가는 체했지 게 어디서 지킵니다!”
 
35
“그럼 도루 자루 속으로 들어가나요?”
 
36
“저자가 이번에는 정녕 거문고를 끄내노라구 할 테니 그두 불가하십니다!”
 
37
“그럼 어떡허면 좋단 말이오?”
 
38
“저기 저 궤 속으로 들어가시면 무사하실 듯합니다!”
 
39
보니 웃목으로 갈쯤한 궤 하나가 놓여 있다. 그러나 배비장 생각에 자기 몸이 그 속으로 반이나 들어갈까 싶지가 아니하였다.
 
40
“몸은 크고 궤는 적으니 들어가는 재주가 있소?”
 
41
“억지루라두 들어가세야지 그 밖에는 아무 변통이 없읍니다!”
 
42
배비장 할 수 없이 궤 속으로 꼬부리고 들어가고 여자는 겉으로 자물쇠를 덜그덩 채운다.
 
43
이윽고 사내가 게걸거리며 돌아오는 소리가 들렸다.
 
44
“술은 어째 아니 사가지구 맨손으루 오시오?”
 
45
“술이구 막걸리구 그런 경황두 없다!”
 
46
“인전 사람이 되시나배!”
 
47
“그런 게 아니라 내가 지끔 나가다가 하두 술이 취해 길바닥에 주저 앉어서 잠깐 졸았드니라!
 
48
“여름이게망정이지 겨울이드라면 강시 나기 꼭 알맞지!”
 
49
“잠깐 조는데 비몽사몽간에 웬 허연 백발노인이 날 부르시드구나?”
 
50
“영검두스러라!”
 
51
“그 노인 말씀이 네 지비에 낡은 피나무 궤짝이 있느냐구?”
 
52
“사위스런 소리 듣기두 싫어요! 사내장부가!……”
 
53
“네에 있읍니다 그랬지.”
 
54
“………”
 
55
“그랬더니, 그 노인 말씀이 요사한 잡물이 그 속에 들어가자구 온갖 작회가 무쌍하니 이 길로 당장 가서 그 궤를 불에 태워버려라, 그리시는구나!”
 
56
궤 속에서 이 말을 듣고 있던 배비장은 불에 태우기도 전에 불에 덴 것처럼 소스라쳐 놀랐다. 비록 죽을 셈 잡고 한 노릇은 노릇이라도 산채로 화장을 당하다니 기가 막힐 일이었다.
 
57
“당장 마당에다 장작 쌓구 불 피어놔라!”
 
58
사내는 이렇게 호통하면서 달려들어 궤짝을 둘러멘다.
 
59
“아니, 별안간 미쳤단 말요? 상성을 했단 말요? ……”
 
60
당황하여 여자가 이렇게 악을 쓰면서 사내에게로 달려든다.
 
61
사내는 한 어깨에다 업궤를(발가벗은 배비장이 든 그 궤짝을) 둘러메고, 한 팔로는 여자를 떠다 밀면서
 
62
“비켜라, 이 요망스런 년! 어딜 장부가 하는 노릇을 막을 양으루!……”
 
63
“장부나 급살이나 글쎄, 조상적버틈 전해 내려오는 소중한 기물을, 없어질세라 조심은 하든 않구, 으응?…… 남의 자손 된 도리에, 아무 까닭없이 그걸 내다 불에 사루다께, 웬 해거요? 해거가!”
 
64
“잔말 말아! 일 될 것두 네년허구 이 궤짝허구가 들어서 요망을 떨구 살 부려 아무것두 안된다! 썩 비켜라!”
 
65
“그 속에 업신(業神)이 들어서 대대루 우리 집안 의식 그립잖게 복 점지해 주세서, 이날 이때까지 이만침이라두 부지허구 산단 말은 아니허구서…… 살 부리다니 생판 어디 당헌 말요?”
 
66
발가벗고 궤짝 속에 가 꼬부리고 업드린 배비장은 제발 여자가 기승을 부려 사내를 이겨내기만 했으면 목숨이 살아나는 것이라고 속으로 축원키를 마지않는다.
 
67
“이년, 그래도 비키지 못하느냐?”
 
68
“못 비켜요! 그 업궤 고이 내려놓기 전엔, 못 비켜요!”
 
69
“이년을 그저!”
 
70
“죽여요! 죽여요!”
 
71
“오냐 죽여주마!”
 
72
사내는 여자의 머리채를 움켜쥐고 잡아 끌면서
 
73
“네년이 이 업궤허구 아마 단단히 정이 들었나부구나! 둘 다 함께 태워 죽여주마!”
 
74
“죽여 죽여! 날 죽여라아, 이 망난아, 날 죽여라!”
 
75
여자는 제목을 지르면서, 일변 버둥거리고 할퀴고 하면서, 구르듯 마당으로 딸려나간다.
 
76
이 하회가 장차 어떻게 되느냐고, 궤짝 속의 배비장은 간이 콩만하다.
 
77
사내는 마당 한가운데쯤다가 어깨의 업궤짝을 꿍 메어다꽂는다. 그 바람에 궤짝 속의 발가숭이 배비자은 이마를 부딪쳐 단박 주먹만한 혹이 나오고, 무르팍이 깨져서 피가 처근히 흐른다. 쓰리고 아팠다. 그러나 무르팍 깨진 것은 아프나따나 옷을 입으면 가릴 수가 있다지만 대체 이마에다 이런 혹을 달고서 밝는 날, 목사랑 계신데 동헌에 들어갈 일을 생각하니 자못 걱정스럽다.
 
78
또 며칠 꾀병을 앓라 생각하다, 다시 생각하니 기가 막혔다. 방금 산채로 회장을 당할 테면서 이마의 혹을 걱정하다 있다니, 내 진실로 농판이로다 하였다.
 
79
여자가 날쌔게 쫓아가서 꿰짝을 옆말 타득 타고 앉는다.
 
80
“날 죽이기 전엔 여기다 손 못대요! 날 죽이구서 불에 태우던지 구어를 먹든지 맘대루 해요!”
 
81
“흠, 못 죽일 줄 알구?……”
 
82
그러면서 사내는 장작을 한 짐 져다 부린다.
 
83
죽이라고는 해놓고도 여자는 고래고래 악을 쓰기를
 
84
“사람 죽이네, 사람 죽여! 이 망나니가 제 기집 산 채루 화정헌다네, 산 채루 화장을 헌다네!”
 
85
이럴 때에 한 놈이 난데없이 썩 내다른다.
 
86
“아니, 임자네는 이 밤중에 웬 야료를 이다지 떠나? 사랑쌈이거든 이불뒤쳐 쓰구서 조용조용 할 것이지!”
 
87
여자가 얼른 대껄을 하되
 
88
“저 망나니가 날 산 채루 화장을 한다오! 산 채루 화장을!……”
 
89
“산 채루 화장당할 일을 저질렀든 게지, 매양!”
 
90
“일 저질른 게 다 무어요? 저 망나니가, 대대 전지자손하는 이 업궤를 사물이 올랐다구, 불에 사른다기에, 못하게 말렸더니, 날마저 함끼 태워 죽인다구, 이 거조라오!”
 
91
“임자 그게 정말입나?”
 
92
내달은 놈이 사내더러 그렇게 묻는다.
 
93
“정말이오!”
 
94
“업궤는 몰라두, 저 이뿌장스런 거야 태워버리면 새루 만들지 못허구, 아깝지 않은가?”
 
95
“그래두 내 허구픈 노릇을 죽자꾸나 말리러 드니, 어찌 하겠소?”
 
96
“대체 싸움이, 이 업궤 하나를 가지구 시작한 게 아닌가?”
 
97
“그렇지요!”
 
98
“흥정은 붙이구 싸움은 말리라드라구, 그럼 존 수가 있네!”
 
99
“무슨 수요?”
 
100
“이 궤짝을 둘이 노놔가지면 그만 아닌가?”
 
101
“꿰짝은 하난데 둘이 무슨 재주로 노나갖소?”
 
102
“임자네 그 큰 톱이 있지 않은가?”
 
103
“있지요!”
 
104
“꺼내다 궤짝 한중둥을 쓰윽쓱 커서, 아랫도린 댁네 주고, 윗도린 임자 차지하면 될 게 아닌가?”
 
105
“하아, 거 참 좋은 수요!”
 
106
“이왕 싸움 말리던 길이니, 내 톱 한머리 대려주지 않으리!”
 
107
“좋소! 일 끝나면 치하삼아, 내 술 한잔 거얼게 사지요!”
 
108
사내가, 한 밭이 넘는 거상을, 업궤에다, 척 가져다 걸어놓는다.
 
109
여자는, 톱으로 자르나 불에 태우나 소중한 업궤를 버리기는 일반이지, 못한다면서 양탈을 한다.
 
110
“이년이 이 지랄을 하니, 년 얼러 톱으로 켜자오?”
 
111
사내가 놈더러 묻는 말에, 놈이 대답하기를
 
112
“또 존 수가 있지!”
 
113
“무슨 수요?”
 
114
“훼방을 못 놓도록 안아다 기동에다 도여매놓고 오소나!”
 
115
“좋소! 임자는 어찌 슬기가 그대지도 많소!”
 
116
가도록 태산이라더니, 궤짝 속의 발가벗은 배비장은 인제는 정말 죽었구나 하였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허리통에다 무쇠마구리를 해 끼고 올 걸 싶었다.
 
117
여자는 기둥에 가 얽매여 악만 쓰고, 사내와 놈은 톱을 한 머리씩 잡고, 드르릉 한번 다린다.
 
118
속절없이 죽나 보다고 배비장은 궤짝 속에서 스스로 눈을 감았다. 그러나 퍼뜩 한 꾀를 얻었다. 이왕 죽는 마당이니 짜장 어디 업귀신 노릇이나 한번 해보아서 살아나면 살아나고, 죽으면 죽고…… 이런 생각이었다.
 
119
“이놈, 네 듣거라!”
 
120
이렇게 호련조로 소리를 쳤다.
 
121
사내와 놈은 톱질하던 손을 뚝 그치고 잠잠하다.
 
122
“이놈, 아무리 무지막지한 놈이기로소니, 이럴 법이 세상에 있단 말이냐?”
 
123
“………”
 
124
밖에서 아무 소리도 대등이 없음을 보고, 배비장은 옳다 되었다 하고 더욱 음성을 준절히 하여
 
125
“네가 이놈 천하에 도척 같은 놈이지, 내가 이래 보여도 대대로 네 집을 지켜준 업신이어든, 날 이런 봉변을 주다니, 네가 그래도 복받기를 바랄까?”
 
126
“………”
 
127
“네가 네 대에 와서도 넉넉히는 못 살았다지만, 조석 굶지 않고 그만 참이나 살아온 것이 뉘 덕인 줄 알고서! 에익 무도한 놈!……”
 
128
“………”
 
129
“이놈, 네 두고 보아라! 네가 이 앙화(殃禍)를 아니 받아……”
 
130
“이거, 업귀신이 도생을 했으니 큰일 아니 났읍나?”
 
131
놈이 겁을 집어먹고 사내더러 하는 말이다. 사내는 본래 녀석이 장성이 세고 담보가 있어놔서, 놈처럼은 무서워하질 않는다.
 
132
“일없소! 어서 커오!”
 
133
“아닐세, 임자!”
 
134
“궤짝 자물쇠 든든히 잠겄으니 암만 동티내구퍼두 못내오!”
 
135
“그 미련한 소리는 두번도 하지 마소! 귀신이 자물쇠 채웠다구 제할 노릇 못 한다든가?”
 
136
“옳다, 네 말이 슬기롭다!……”
 
137
배비장은 계제를 놓치지 않고 엄포를 하는 말이
 
138
“나를 도로 가져다, 제자리에 위해 놓아야망정이지 그렇지 아니하면, 이 밤이 다아 밝기 전에 너이가 두 눈이 멀구야 말 테야!”
 
139
“여보소 임자! 얼른 도로 모셔다 놓소!”
 
140
놈이 사내더러 이른다, 그러나 사내는 볼먹은 소리로
 
141
“못하오!”
 
142
“어째 못합나?”
 
143
“아까 산신령이 내게 현몽을 한 말이 있소!”
 
144
“무어라 현몽을 했읍나?”
 
145
“이 업궤 속에 요물이 들어 사를 부려서, 내 집이 이 꼴이오, 그대로 두었단 큰 재앙을 본다 했소!”
 
146
“임자 그게 정말인가?”
 
147
“정말이오!”
 
148
“그럼 또 좋은 수가 있네!”
 
149
“업귀신 도생시키는 수는 내 싫소!”
 
150
“아닐세! 내 말 듣게!”
 
151
“말하오!”
 
152
“산신령 현몽두 지키구, 업귀신 던티두 내지 않는 도릴세!”
 
153
“무슨 도리요?”
 
154
“지구 가서 파세나?”
 
155
“팔다니요?”
 
156
“업귀신 사고자 하는 사람이 더러 있느니!”
 
157
“거 참 좋은 수요!”
 
158
“임자, 지게에다 지구 나서소! 내 앞서 가면서 외울 테니……
 
159
가짜 업귀신 배비장은 궤짝 속에서 한숨을 후 내쉬었다.
 
160
오냐, 우선 죽기는 면했으니, 인제는 어쨌든 임자를 잘 만나 팔리기만 팔려라, 종차 도리가 잇을 테니…… 이러면서 하회를 기다렸다.
【원문】배비장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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