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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5.2.8
이광수
1
혼 인
 
 
2
굴깨라는 동네 이름은 굴이 난다는 데서 온 것이외다. 뒤에 큰 산을 진 서해 바닷가에 스무남은 집이나 서향하고 앉은 것이 굴깨라는 동네이니, 동네 주민은 반은 농사하는 사람이요, 반은 해산(고기잡이)하는 사람이외다. 한 동네에 살건마는 농사하는 사람은 농부의 기풍이 있어서 질박하고, 고기잡이 하고 배에 다니는 사람은 뱃사람의 기풍이 있어서 술도 먹고 노름도 합니다. 이 동네에 금년에 큰일 둘이 생겼읍니다. 스물 댓 살 되는 장정군 뱃사람 하나이 장가든지 한 달이 못하여 죽은 것과 열 여섯 살된 새색시가 시집간 이튿날 물에 빠진 일이외다. 뱃사람이 죽은 것은 금년 이른 봄 아직 바다에 얼음이 안 풀려 뱅어잡이 배도 떠나지 아니하고 겨우 아이들이 빨갛게 얼어서 칡게 잡이 다닐 때요, 새색시가 물에 빠진 것은 벼도 거의 다 베고, 벌써 황해도로 고기 팔아 좁쌀 사러 가려는 도부배들이 독에 뚫어진 곳을 기우면서 팔월 보름사리 물이 굴바위에 올라 오기를 기다릴 때외다.
 
3
뱃사람의 민적상 이름은 박 무엇이나, 이 동네에서는 세째라 통칭합니다. 굴깨 세째라면 이 근방에서는 누구나 다 압니다. 늦도록 장가를 못 가기 때문에 사람들이 본명을 안 불러 주고 아명을 부른 것이외다. 새째는 그것이 싫어서 아이놈들이 세째라고 부를 때에는 주먹으로 때리기도 하였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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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째가 남천에 어느 유기점군의 딸 여덟 살된 이와 엽전 팔백냥을 주고 약혼한 것이 벌써 육년 전이외다. 작년 봄 세째의 나이 스물 다섯, 신부의 나이 열 세 살 되었을 때에 세째는 소주 한 바리와 닭 한마리, 조기 생선국을 끓이고, 동네 어른들을 청하여 관례를 하였읍니다. 그 원수의 총각 꼬리를 올려 일생 소원이던 상투를 짰읍니다. 그리고는 여름내 고기를 잡아서 금침과 신의를 장만하여 가을에 성례를 하기로 작정하였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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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째는 워낙 그 형들과 달라 부지런한 사람이지마는, 그 해에는 새벽에 나가서 밤에야 들어오고, 비가 오거나 춥거나 덥거나 바다에 나가 낙지 철에는 낙지를 캐고, 굴 철에는 굴을 캐고, 맛살 철에는 맛살을 내고, 준치잡이, 젓잡이 배에도 가고, 그리고도 여가에는 남의 삯김도 매어 도부 때에는 새우젓을 열 독, 조개젓을 넉 독이나 사게 벌었읍니다. 이것을 황해도에 갖다 팔아, 조를 사다가 또 팔면 잘하면 엽전으로 이천냥은 될 것이니, 그것만 있으면, 이부자리와 신부의 치마저고리며 신랑의 갓망건 두루마기 다 장만하고도 오는 여름까지 새 부부의 살아갈 식량은 넉넉할 것이외다. 세째의 기쁨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동네 노파들도 모여만 앉으면 새째의 칭찬을 하고 세째를 볼 때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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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야 너 병 날라, 너무 일하지 말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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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진정으로 걱정해 주었읍니다. 그럴 때마다 세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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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얼요,늘 노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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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겸사를 하면서도 가까와 오는 자기의 행복을 기다리는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빙그레 웃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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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세째의 큰형이 배를 가지고 도부하러 가므로, 젓 열 네 독을 형의 배에 싣고 자기도 따라 같이 다니며 팔아 오려 하였으나, 그러느니보다 집에 있어서, 가을 해산 (고기잡이)을 하여 돈을 좀 더 벌리라 하여, 모든 것을 형께 맡기고 자기는 집에 있어서, 일변 형의 집에 나무도 하여 주며 일변 고기잡이도 하였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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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째의 젓을 실은 도부배는 팔월 추석을 지낸 이튿날 아침 물에 높새에 찬 돛을 달고 싱애섬, 쑥섬 모퉁이를 돌아 멀리 멀리 수평선 밖으로 안 보이게 되었읍니다. 굴바위등에 전송 나왔던 가족들은 하나씩 둘씩 다 들어가고, 세째 하나만 근심과 기쁨을 섞어가지고 수평선 밑으로 숨어 들어가는 배를 보고 섰다가, 아주 안 보이게 된 뒤에야 집으로 돌아와 지게에 낫을 걸고 시루봉에 나무하러 올라 갔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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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매일 세째는 나무 한 짐을 해오고 바다에 가기를 쉬지 아니하여, 이럭적럭 밤 바닷물이 벌거벗은 몸을 베는 듯하는 구월 보름사리가 되었읍니다. 보름사리에는 반드시 돌아올 도부배가 한것기가 넘도록 소식이 없으니, 동네 사람들도 모두 근심을 하게 되고, 세째는 더욱 잠도 못 들고 애를 태웠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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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선」이란 생각이 동네 사람들의 생각에 들어가게 되었읍니다. 아무도 입에 내어 말은 하지 아니하여도 속으로는 「아마 파선한 게야」하는 생각은 저마다 가지게 되었읍니다. 세째는 나무하러 가서는 시루봉 꼭대기에서, 저녁 먹고 나서는 굴바위등에 멀리 동남으로 돌아오는 배만 기다립니다. 쌍아지로 가는 호인의 배도 지나가고, 쑥섬 장도서 도부 갔던 배들도 다 곡식을 잔뜩 실어 멍에까지 물에 잠그고 돌아오건마는, 세째의 붉은 돛단 배는 보이지를 아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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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째는 장날마다 생선을 지고 나가서 판 돈으로 새 아내의 댕기도 사고 신도 사고 저고리채도 사다가 꼭꼭 싸두고 하루에 한 번씩 내어 봅니다. 그러나 기다리는 배는 돌아오지 아니합니다. 하루는 어떤 사람이 어디서 듣고 왔는지, 진남포를 지나 한천으로 돌아오는 중간에서 어떤 배 하나가 파선하였다는 말을 전하는데, 동네 사람들은 모두 그것이 정녕 그 배라고 수군거렸으나, 오직 세째와 그 가족만 그렇지 않다고 생각은 하면서도, 속으로는 역시 그렇지나 않은가 하였읍니다. 추수도 다 되고 나무도 다 베어 묶어 놓고, 호박 덩굴 박 덩굴도 다 시들어 버리고, 바다에 나가는 사람도 없이 되고, 밤에는 집집이 문을 꼭 닫치며 어떤 집 마당에서는 벌써 김장 무 씻는 소리가 나는 구월 그믐도 다 가고 시월 초생 어느 밤에 세째는 홀로 굴바위 위에 앉아서, 신미도 위에 걸린 가는 달빛에 멀리 바다만 바라보고 앉았읍니다. 조금만 더 하면 얼음이 얼 듯한 바닷물이 굴바위 밑을 힘없이 때립니다. 내일이 대것기, 이번 사리에 안 들어오면, 이 배는 영영 못 들어오는 배외다. 힘없는 가을 물은 어느새에 참이 지나고, 벌써 썰물이 된 듯하여 굴바위를 핥던 물결 소리도 차차 적어 갑니다. 세째는 말없이 일어나려 할 때에, 마침「어혀리 어혀리」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세째는 귀를 기울였읍니다.「어혀리 어혀리, 어야 어이혀리」하는 소리는 분명히 세째의 형의 목소리외다. 세째는 너무도 기뻐서 바다에 뛰어들고 싶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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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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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세째는 소리를 쳤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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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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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대답이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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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째는 장달음으로 집에 뛰어와 큰 소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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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들어왔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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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외쳤읍니다. 여러 집 문이 모두 열리고, 어른, 아이, 사내, 여편네, 수십명이 세째를 따라 굴바위에 모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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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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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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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소리를 칩니다. 모두 죽었던 사람을 다시 만나는 듯 한 기쁨에 어쩔 줄을 모릅니다. 배가 돛을 내리고 노를 저어 가까이 오는 양이 보입니다. 이윽고 떠난 후 오십여 일이나 소식이 없던 배가 굴바위에 들어와 닿으매, 배 곁에는 어두움 속에 희끄무레한 그림자들이 왔다갔다하며, 웃는 소리, 떠드는 소리가 들립니다. 이리하여 배는 돌아오고, 사람도 상한 것은 없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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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 배에는 잔뜩 실었어야 할 곡식은 없고 배 밑창에 짐 대신 실은 돌맹이가 네다섯 개 있을 뿐이었읍니다. 세째의 형은 자기 것과 세째의 것을 팔아서, 죄다 노름에 잃어버리고 빈손치고 돌아온 것이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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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째는 자기보다 이십년이 위되는 형님께는 원망하는 말 한마디 못하고, 이틀 동안 식음을 전폐하고 누웠읍니다. 형이 하루는 세째의 누운 앞에 앉아서 눈물을 흘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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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째야, 내가 죽일 놈이다. 나는 너 장가갈 적에 무얼 좀 잘해 줄 양으로 마침 비도 오고 하기에 노름을 시작했구나. 처음에는 돈 백냥이나 따기에, 그만 미쳐서 떨어먹고 말았다. 바다에 빠져 죽으려다가 돌아왔다. 세째야, 내가 죽일 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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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흑흑 느껴 울었고, 세째도 아무 말도 없이 울었읍니다. 그 이튿날 형은 세째를 대할 면목이 없으니, 어디를 가서든지 돈을 벌어 가지고야 돌아온다고 집을 떠나서 운산 금광으로 갔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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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째는 눈이 오기까지 바다에 다녀 이럭저럭 돈 십원이나 벌어 가지고 형 돌아오기를 기다리다가, 섣달 보름께 아무렇게나 장가를 가기로 작정하고, 동네집에서 갓, 망건, 두루마기 이 모양으로 두루 얻어서 어떤 눈 많이 오는 날, 거기서 오십리나 되는 처가 집으로 장가를 들러 가기로 하였읍니다. 그러나 타고 갈 말이 있나, 데리고 가 줄 후행이 있나. 세째는 먼촌 일가되는 덕봉이라는 늙은 총각에게 말하여, 임시로 상투를 짜고 의관을 하여 후행이 되게 하여 가지고 단 둘이 깊은 눈길을 헤치고 떠났읍니다. 저녁때에야 남천에서 오리쯤 되는 가지령이라는 주막거기에 다다라 점심을 시켜 먹고, 거기서 말 하나를 얻어 신랑이 타고, 후행은 마부 삼아 걷고, 처가에를 가 장가를 들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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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가든지 사흘이 넘자, 장인은 양식이 없으니, 어서 가라고 하므로 세째는 혼자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왔으나, 여름내 가으내 너무 일을 한 까닭인지, 더욱 도부배로 하여 심로를 하면서, 그 얼음 같은 찬물에 고기잡이를 다닌 까닭인지, 집에 오는 길로 몸이 오슬오슬 춥고 입맛이 떨어지기 시작하여, 사오일 후에는 입술이 까맣게 타고, 헛소리를 하게 되었읍니다. 동내 무당도 불러오고, 약도 두어 첩 써 보았으나, 병은 점점 더하여 갈 뿐이외다. 새벽 같은 때 조금만 정신을 차리면 아내를 데려다 달라고 하나, 이 추운 겨울에 데리러 갈 사람이 있나, 더구나 세 말이 되니, 모두 빚 달라는 이를 피하여 어디로들 달아나서, 한 그믐날 닭이 울어야 들어오겠으니, 사내 하나 만나볼 수 없읍니다. 세째는 헛소리 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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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데려다 주우, 어머니! 데려다 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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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외칩니다. 섣달 그믐날 아침에 칠십이나 된 어머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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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서 데려오마.』
 
34
하고 울면서 세째의 처가로 갔읍니다. 세째는 조카 아이들더러 방을 치우라하고, 세수 물을 떠오라 하고, 새옷을 내이라 하고, 병이나 다 나은 듯이 기운을 내며 어머니 돌아오시기를 기다렸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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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슬어슬할 때에 어머니는 후행갔던 총각을 데리고 돌아왔읍니다. 이때에는 세째는 세수를 하느라 옷을 갈아 입느라 하다가, 바람을 쏘여 열이 무섭게 나서 정신을 못차린 때입니다. 어머니는 새째의 가슴을 흔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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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째야 내가 늙어서 기운이 없어 못 가겠기에 이 애를 보냈더니, 그 몹쓸놈들이 안 보내더라는구나. 내가 갔더라면 좋을 것을 그랬다. 내 내일 아침 일찍 가서 데려오께,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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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째는 말을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가까스로 눈을 방싯 뜨더니, 몸을 흠칫흠칫하고 훌쩍훌쩍 울기를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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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닭이 두 홰나 울 때쯤 하여. (一九二五,二,八[일구이오,이,팔])
【원문】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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