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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으로 절 법당이 보이고 그 뒤로는 산이 보인다. 법당은 문이 열린 채 속은 컴컴하여 보이지 아니한다. 좌수(左手)는 빈터로 되어 있고 우수(右手)에는 단청을 칠한 종각이 있다 종각 앞에는 조롱(鳥籠)이 놓여 있고 조롱 속에는 참새가 대여섯 마리나 들어서 파닥거린다. 다시 그 옆으로는, 긴 막대가 세워 있고 막대 끝에는 좁다란 판자때기가 붙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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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이 열리면 무대는 잠깐 비었다가 새장사가 종각 뒤로부터 나타나서 공중으로 사방을 둘러본다. 부근에는 인가가 있는 심벌로 다듬이소리가 감감히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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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장사 (독백) 이놈의 동리는 새도 없나! 제길헐 것. (종각 앞에 있는 돌축대에 가 앉아서 마코를 내어 붙여 문다. 다듬이소리가 그치고 조금 있다가 목탁소리가 들리고 다음에는 작은 종소리가 들린다) 흥, 재를 올리는구나! 어 시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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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 (법당 뒤로부터 우수로 나타난다. 한손에는 염주를 들고 한손에는 주령을 짚었다. 처음에는 모르고 어정어정하다가 새장사의 앞으로 가까이 와서 조롱과 새 잡는 막대를 유심히 보다가 주령으로 새 잡는 막대를 똑똑 뚜드리며 새장사더러 무슨 말을 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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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장사 (버쩍) 뚜드리지 말어요! 괜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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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 (뚜드리기를 그치고) 이건 무얼 하는 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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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장사 (성가신 듯이 스님을 바라보다가 손으로 꼭대기를 가리키며) 보시우 저기 판자쪽이 있잖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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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 (모르겠다는 듯이 고개를 끼웃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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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장사 들어봐요…… 저 판자쪽에다 도리모찌를 발르고 거기다가 쌀을 뿌렸죠. 그러면 새가 그것을 조아먹으러 오잖겠수? 와서 안기만 하면 딱 들어붙는단 말이야. (손짓을 해보인다) 그러면 나는 옆에 있다가 달려들어서 응 (손으로 막대를 잡으며) 이놈을 (시늉을 한다) 이렇게 뽑아가지구는 새를 따서 (조롱을 가리키며) 이 속에다 (조롱을 흔들어 보이며) 이렇게 응 알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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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 (알았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끄덕하고 나서 다시 막대 끝과 조롱을 번갈아 보다가 시선을 조롱에 고정시키고) 그래 새를 이렇게 잡어서는 무얼 하오? (새들은 끊이잖고 파닥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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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장사 (이야기에 끌려) 무얼 하냐……고? 팔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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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장사 (씩 쳐다보며) 정신이 있나 없나? 새가 어떻게 팔리는데 그래요? 괜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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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 (고개를 끄덕거린다) 별 세상이 다 많소! 그래 그 사람들은 새를 사서 무얼 하오?
30
새장사 쓰는 데가 많지. (조롱을 가리키며) 저놈들이 저래봬도 맛이 아주 기가 맥힌단 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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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장사 그러면요 가끔 먹지요. 그렇지만 나는 까치를 많이 먹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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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장사 잽히고말고요. 까치가 많은 데 가서 저 판자 우에다가 쌀 대신 고기같은 것을 놓아두면 영락없이 와서 붙는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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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 흥…… 그래 새는 잡어서 먹기도 하고 팔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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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장사 팔고말고요. 잡어서 어찌하다가 죽는 놈이나 내가 먹지 그외는 뭣 잡기가 무섭게 팔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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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 사는 사람은 그걸 사서 무얼 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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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 (고개를 끄덕거리며 파닥거리는 새들을 굽어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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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장사 시골 속담에 새가 소 등에 앉어서 “네 고기 열 점이 내 고기 한 점만 허나?” 한다는 말도 있지만 참 맛이 있읍너이다. 시님도 좀 사서 자서 봅시요. 요새 시님들은 고기를 먹어도 괜찮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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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장사 체, 거 참 옛날 시님이로군! (間[간], 傍白[방백]) 저놈을 목을 홱 비틀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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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장사 그놈을 이글이글한 숯불에 고스라지게 구어서 (방백. 스님을 치어다보며) 소곰을 찍어서 먹어보시우. 둘이 먹다 하나가 죽어도 모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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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장사 그러면요. 그러고 일본 사람들이 더 잘 먹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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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 (새장을 굽어다보며) 이걸 내한테 팔으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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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장사 (스님을 쳐다보며 당시는 듯이) 사시려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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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장사 (조롱을 끌어당기며) 멫마리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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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장사 (씩 웃으며) 스님도 새맛을 좀 보시려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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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 (엄숙하게) 어쨌거나 산다면 팔면 그만이 아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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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장사 삼…… (삼전이라고 하려다가) 오전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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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장사 네…… 댁으로 갖다 드릴까요? 여기서 껍질을 벗겨 드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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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 (질겁해서) 원!…… 그놈을 다 날려보내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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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 내가 산 것이니까…… 돈은 줄 테니 날려보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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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장사 (두릿두릿하다가) 네. (조롱문을 열고 새를 다 날려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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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 (허리띠에 찬 주머니에서 돈을 내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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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 천만에 말씀을 다 하시요. (돌아서서 우수 법당 뒤로 퇴장. 새장사는 여전히 앉아서 새가 오기를 기다린다. 조금 있다가 새 한 마리가 날아와서 판자에 가 붙어 파득거린다. 새장사는 얼핏 막대를 뽑아 뉘고 새를 따서 조롱 속에 집어넣는다. 약 일 분 (십 분을 의미한다) 뒤에 스님이 다시 법당 뒤로부터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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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 뭣? (가까이 온다) 또 새를 잡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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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장사 그러면요. 아직도 다섯 마리쯤은 더 잡어야 쌀되나 사가지고 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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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 (가까이 와서 조롱 속을 굽어다 보고 이맛살을 찌푸린다) 또 한 마리 잡었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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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장사 (웃으며) 네 방금 한 마리가 날러오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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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 그런 불쌍한 미물들을 그렇게 잡어서 쓰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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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 네 죄를 받읍니다. 사람이 전생에 그런 살생을 많이 하면 후생에 가서 죄를 받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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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장사 체, 공중에 날어다니는 새를 좀 잡었기로니 그게 무슨 죄가 되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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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 (성이 나서) 허허 그 말을 그렇게 못 알아듣소. 그만큼 내가 사서 놓아주는 것을 보았으면 내 대접도 좀 해주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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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장사 (같이 성을 내며) 여보! 그래 이 근처에 있는 새가 당신 것이란 말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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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 내 새라는 게 아니라 산 김생이니 불쌍하단 말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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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장사 별 빌어먹을 소리를 다 듣겠네. 여보! 공중으로 날어다니는 새를 잡어 팔기로니 댁이 무슨 참견이란 말이요? 할일이 없거든 뜨뜻한 절방 아랫목에 누어 낮잠이나 자잖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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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 (말소리를 낮추어서) 아니 그런 게 아니라 나는 그것이 불쌍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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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장사 불쌍하면 댁이나 불쌍했지 나도 불쌍한 줄 아오? (방백) 거 참! 신수가 사나우니 별 빌어먹을 꼴을 다 보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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