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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生)의 반려(伴侶)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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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8~9
김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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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생]의 伴侶[반여]
 
 
2
동무에 관한 이야기를 쓰는것이 옳지 않은 일일는지 모른다. 마는 나는 이이야기를 부득이 시작하지 아니치 못할 그런 동기를 갖게 되었다. 왜냐면 명렬군의 신변에 어떤 불행이 생겼다면 나는 여기에 큰 책임을 지지 않을 수 없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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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그는 완전히 타락하였다. 그리고 나는 그의 타락을 거들어준, 일테면 조력자쯤 되고만 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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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이것이 단순히 나의 변명만도 아닐것이다. 또한 나의 사랑하는 동무, 명렬군을 위하야 참다운 생의 기록이 되어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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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바로 사월 스물일헷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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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밤중에 명렬군을 찾아간 이유는 (허지만 이유랄건 없고 다만) 잠간 만나보고 싶었다. 그의 집도 역시 사직동이고 우리집과 불과 오십여간 상거 밖에 안된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그는 나를 찾아오는 일이 별루 없었다. 물론 나는 불평을 토하고 뚜덜거린 적이 없는것도 아니나 그러나 다시 생각하고 눈덮어 두기로 하였다. 그 까닭은 그는 사람 대하기를 극히 싫여하는 이상스러운 성질의 청년이었다. 범상에서 버스러진 상태를 병이라고 한다면 이것도 결국 큰 병의 일종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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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내가 가끔 이렇게 찾아가곤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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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을밀고 들어스니 그는 여전히 덥쑤룩한 머리를하고, 방 한구석에 놓인 책상앞에 웅크리고앉었다. 물론 난줄은 알리라 마는 고개한번돌리어 보는 법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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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방바닥에 털뻑 주저앉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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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공부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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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말을 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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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아무 대답없이 책상우에서 영어사전만 그저 만적어릴 따름이었다. 그 태도가 글짜를 읽는것도 아니요 그렇다고 아주 안읽는것도 아닌, 그렇게 몽농한 시선으로 이페지 저페지 넘기고 있는것이다. 이걸 본다면 무슨 생각에 곰곰 잠기어 있는것이 분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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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이 뭐래면 대답좀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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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렇게 퉁명스리 말은 했으나, 지금 그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내라고 모를배도 아니었다. 권연에 불을 붙이고 나서 나는 혼잣소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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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편지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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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연기를 내뿜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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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서야 그는 정신이 나는지 내게로 고개를 돌리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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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너오길 지금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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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나를 이윽히 바라보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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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에게 청이 하나 있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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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며 도루 영어사전께로 시선을 가저간다. 제깐에 내가 그 청을 들어줄지 혹은 않을지, 그게 미심하야 속살을 이야기하기 전에 나의 의향부터 우선 들어보자는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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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선선히 받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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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이랄게 뭐 있나? 될수 있다면 해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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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다. 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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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그는 불현듯 생기가 나서 책상 설합을 열드니 언제 써 두었든것인지, 피봉에 넣어 꼭 봉한 편지 한 장을 내앞에 끄내놓는다. 그리고 흥분되어 더듬는 소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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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편지좀 지금좀 곧 전해다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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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거지반 애원이었다. 마치 이 편지를 지금 곧 전하지 않는다면 무슨 큰 화라도 일듯이 그렇게 서드는것이다. 그의 말을 들어보면 동무에게 이런 편지를 부탁하는것은 물론 미안한줄은 안다, 하고 그러나 너에게 이런걸 청하는것도 이것이 마즈막일는지 모르니 그쯤 소중히 여기고 충심으로 진력하야 달라 하는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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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마즈막에 와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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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그리고 답장을 꼭 말아가지고 오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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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아까부터의 당부를 또 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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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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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단마디로 이렇게 쾌히 승낙하고 거리로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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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것은 결코 나의 의사에서 나온 행동도 아니거니와 또한 이 편지를 어떻게 처치해야 옳을지 그것조차 생각해 본 일도 없었다. 동무의 간곡한 소청이요 그래 마지못하야 받아들고 나왔을 그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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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사꾸라 때라 봄비는 밤거리를 호아 나려오며 나는 이 편지를 저쪽에 전해야 옳을지 어떨지, 그걸 분간못하야 얼뚤하였다. 우편으로 정성스러히 속달을 띠어도 「수취거절」이란부전이 붙어서 돌아오고 하는 그곳이었다. 내가 손수 들고 갔다고하야 끔뻑해서 받아줄리도 없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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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편지를 호줌에 넣을 생각도 않고 한손에 그냥 떠바처 든채 떠름한 시선으로 보고 또 보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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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나의 큰 과실일는지 모른다. 애당초에 왜 딱잘라 거절을 못하였는가, 생각하면 두고두고 후회가 나는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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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다시 생각컨대 내가 이 편지를 아무 군말없이 들고 나온것도 달리 딴 이유가 있을듯 싶다. 다만 동무의 청이라는 그것만이 아닐것이다. 그렇다면 확실히 나는 이걸 나에게 내놀때의 명렬군이 가젔든 야릇하게도 정색한 그 표정에 기가 눌렸는지도 모른다. 오래동안 볕을 못본 탓으로 얼골은 누렇게 들떴고 손 안댄 입가에는 스물셋으론 고지듣지 않을만치 제법 검은 수염이 난잡히 뻗히었다. 물론 번이는 싱싱해야 할 두볼은 꺼지고 게다 연일철야로 눈까지 퀭 들어간, 말하자면 우리에 가친 사람이라기 보다는 즘생에 가까웠다. 거기다 눈에 눈물까지 보이며 긴장이 도를 넘어 떨리는 어조로 이 편지를 부탁했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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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본다면 이것이 얼마나 중대한 편지임을 알것이다. 만일에 이 편지가 전대로 못가고 본다면 필연 명렬군은 온전히 그냥 있지는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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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튼 나는 그걸 가지고 갈 곳까지 다다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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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발을 멈춘 데는 돈의동 뒤 골목이었다. 바루 내앞에 쳐다보이는, 전등 달린 대문이 있고 고옆으로 차들에 나명주라고 새긴 문패가 달리었다. 안에서는 웃음소리와 아울러 가끔 노래가 흘러 나오련만 대문은 얌전히 듣 닫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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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임무는 즉 이집에다 편지를 바치고 그 답장을 맡아 오는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하야 보아도 다가서서 대문을 두드려볼 용기가 나진 않는다. 이 편지가 하상 뭐길래 그가 탐탁히받아주랴, 싶어서이다. 마는 어떻게 생각하면 사람의 일이라 예외를 알수없고 그리고 한편 전인으로 이렇게까지 왔음에는 호기심으로라도 받아줄지 알수 없다. 우선 공손히 바처나보자, 생각하고 나는 문앞으로 바특이 다가서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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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설혹 받아준다 치고 요망스리 뜯어서 한번쭉 훑어보고 내동댕이 친다면 그때 내꼴이 무엇이 되겠는가. 아니 나보다는 이걸 쓰기에 정성을 다한 명렬군이 첫때 모욕을 당할것이다. 여하한 일이라도 동무는 욕 모이고 싶지 않다, 생각하고 나는 다시 대문을 떨어저 저만침 물러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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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기를 서너차례 한다음에 나는 딱 결정하였다. 편지를 호주머니에 넣고 그래도 사직동을 향하야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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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명렬군의 집으로 막 들어갈랴 한제 등뒤에서 갑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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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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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누가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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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다보니 저편 언덕에 그가 풀다님으로 서 있는 것이다. 아마 내가 그 길로 올줄 알고 먼저부터 고대하고 서 있는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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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나를 데리고 사직공원으로 올라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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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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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조급히 묻는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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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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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나는 코대답으로 받았으나 그것만으로는 좀 불충분함을 깨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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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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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명백히 대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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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잘 받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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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뭔데 사람이 보내는걸 아니 받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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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렇게 큰소리로 하긴 했으나 대미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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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답장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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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묻는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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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장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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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만 얼떨떨하지 않을 수 없었다. 미처 거기까지는 생각이 돌지 않었든 까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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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곰 주저하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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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장은 못말아 온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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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얼버무렸으나 그것만으로 또 부족할듯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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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보니까 명주는 노름을 나가고 없드구면, 그러니 그걸 보고오자면 새벽 두점이 될지 넉점이 될지 알수 있어야지? 그래 안잠재기를 보고 아씨 오거던 꼭 전하라고 신신당부를 하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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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답장을 못맡아 온 그 연유까지 또박또박이 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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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는 편지를 그집에 두고 온 그것만으로도 저윽이 만족한 눈치였다. 나의 바른손을 두손으로 꼭죄여 잡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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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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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치사를 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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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나는 그의 눈우에서 달빛에 번쩍어리는 그걸 보았다. 이렇게 거짓말을 하고도 죄가 헐할가, 싶어서 나는 그에게 대하야 미안하다니 보다도 오히려 죄송스러운 생각에 가슴이 끌밋하였다. 나는 쾌활히 그 등을 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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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맘을 조급히 먹지 말아라, 무슨 일을 밥 먹듯 해서야 되겠니? 저도 사람이면 언젠가 답장을 할 때도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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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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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그는 숙인 고개를 들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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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로는 답장 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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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로는 안하는건 뭐야? 염려마라, 언제든지 내 가서 즉접 받아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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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덜벙거리다 패를 당하는 나이지만 또 객적은 소리까지 지꺼려 놓았다. 내딴은 잠시이나마 그에게 기쁨을 주고자 했음이 틀림 없을것이나 물론 그 결과가 어떻게 되는것까지는 생각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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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그로 말하면 나의 장담에 다시 히망을 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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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너 미안하지만 다시 한번 편지를 전해줄래? 그리고 이번에는 답장을 꼭 맡아 오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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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다시 청한것도 조곰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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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거짓말에서 시작되어 엉뚱한 일이 벌어지게 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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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전부를 나의 책임으로 돌리지않을수 없는것이나 한편 따저보면 명렬군도 그 일부를 지지 않을 수 없다. 왜냐면 그는 먼저도 말한바와 같이 보통 승질의 인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82
지금 그가 편지를 쓰고있는 이것이 얼뜬 생각하면 연앨런지도 모른다. 상대가 여성이요 그리고 연일 밤을 새워가며 편지를 쓴다면, 두말없이 다들 연애라고 이렇게 단정하리라. 마는 이것은 결코 흖이 말하는 그 연애는 아니었다. 그 연애란것은 상대에게서 향기를 찾고, 아름다움을 찾고, 다시 말하면 상대를 생건 그대로 요구하는 상태의 명칭이겠다.
 
83
그러나 그의 연애는 상대에게서 제 자신을 찾아내고자 거반 발광을 하다싶이 하는것이다. 물론 상대에게는 제 자신의 그림자도 비치지 않었다. 그러므로, 이것은 차차 이야기하리라 마는 때로는 폭력을 가지고 상대에게 대들어 나를 요구하는, 그런 괴변까지 이르게 되는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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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까 이것은 결코 연애가 아니라 하는것이 가당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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첬째로 그의 편지는 염서가 아니었다. 보건데 염서는 대개 상대를 꼬따웁께 장식하였다. 그의 편지는 상대의 추악한 부분이란 일일이 꼬집어뜯어서 발겨놓는 말하자면 태반이 욕이었다. 그러므로 상대는 답장을 안할뿐만 아니라 때로는 받기를 거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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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둘째로는 그 상대가 화류게의 인물이요,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명렬군보다는 다섯해가 우였다. 삼십이 가찹다면 기생으로는 한 고비를 넘은 시들은 몸이었다. 게다가 외양도 출중나게 남달리 두드러진 곳도 없었다. 이십전후의 팔팔한 친구로는 도저히 매력이 느껴지지 않을 그런 인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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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어째서 명렬군이 하필 그런 여자에게 맘이 끌렸겠는가. 여기에 대하야는 나는 설명을 삼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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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명렬군의 말을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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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명주를 처음 본것은 작년 가을이었다. 수은동 근처에서 오후 한시경이라고 시간까지 외고 있는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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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집의 일로하야 봉익동엘 다녀 나올때 조고만 손대여를 들고 목욕탕에서 나오는 한 여인이 있었다. 화장 안한 얼골은 창백하게 바랬고 무슨 병이 있는지 몹시 수척한 몸이었다. 눈에는 수심이 가득히 차서, 그러나 무표정한 낯으로 먼 하늘을 바라본다. 힌 저고리에 힌 치마를 훑여안고는 땅이라도 꺼질가봐 이렇게 찬찬히 걸어 나려오는것이었다.
 
91
그 모양이 세상고락에 몇벌 씻겨나온, 따라 인제는 삶의 흥미를 잃은 사람이었다.
 
92
명렬군은 저도 모르고 물론 딿아갔다. 그 집에까지 와서 안으로 놓쳐버리고는 그는 제넋을 잃은듯이 한참 멍하고 서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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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집에 돌아와 그날 밤부터 편지를 쓰기 시작하였다. 매일 한장식 보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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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답장은 한번도 없었다. 열흘이 지나도 보름이 넘어도 역시 답장은 없었다.
 
95
그럴수록 그는 초조를 품고 더욱 열심히 편지를 띠었다. 밤은 전수히 편지 쓰기에 허비하였다. 그리고 낮에는 우충충한 방에서 이불을 들쓰고는 날이 저물기를 고대하였다. 밤을 새운 몸이라 까우러저 자기도 하였으나 그러나 대개는 이불속에서 눈을 감고는 그 담 밤이 되기를 기다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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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전에도 가끔가다 망녕이 나면 이런 버릇이 없었든것은 아니나 이렇게까지 장구히 게속되기는 이때가 시초이었다.
 
97
이제 생각하야 보건대 사람은 아마 극히 슬펐을때 가장 참된 사랑을 느끼는것 같다. 요즘에와서 명렬군은 생의 절망, 따라 우울의 절정을 걷고 있었다. 그의 환경을 뒤집어본다면 심상치 않은 그 행동을 이해 못할것도 아니다. 마는 거기 관하얀 추후로 밀리라.
 
98
내가 어쩌다 찾아 가 들여다보면 그는 헐없이 광인이었다. 햇빛 보기를 싫여하는 그건 말고라도 거츠러진 얼골이며 안개 낀 그 눈매 ── 누가 보든지 정신병 환자이었다.
 
99
거기다가 방까지 역시 우울하였다. 남쪽으로 뚫린 들창이 하나 있기는 허나 검은 후장으로 가리어 광선을 콱 막아버렸다. 그리고 담배연기로 방안은 꽉찼다.
 
100
나는 그를 대할적마다 불길한 예감이 느껴지지 않을수 없었다. 커다란 쇳덩어리가 그를 향하고 차츰차츰 나려오는듯 싶었다. 언제이든가 그는 그대로 있지않으라고 이렇게 나는 생각하였다.
 
101
하루는 나는 마음을 딱하게 먹고 찾아갔다.
 
102
아무리 생각하여도 이 게집은 사람이 아니었다. 그만큼 남의 편지를 받았으면 설혹 쓰기가 싫다 하드라도 답장 한장쯤은 함직한 일일게다. 얼마나 도도하기에, 무턱대고 편지만 집어먹는가.
 
103
당장에 가서 그 이유를 캐보고 싶었다. 그리고 될수 있다면 답장 하나 맡아다가 주고 싶었다.
 
104
날이 어두었으나 아즉 초저녁이었다. 그렇건만 대문은 그때도 꼭 닫기어 있었다.
 
105
주먹으로 문을 두드리며 우렁찬 소리로
 
106
“이러너라!”
 
107
하였다.
 
108
기생집에 오기에 꼴은 초라할망정 음성까지 죽어질건 없었다.
 
109
다시 커다랗게 그러나 위엄이 상치 않도록
 
110
“문 열어라!”
 
111
하고 소리를 내질렀다.
 
112
그제서야 안에서 인끼가 나드니 문이 열리었다. 그리고 한 삼십여세 되어 보이는 여편네가 고개를 내어밀어 나의 아래우를 쓱 훑드니
 
113
“누길 찾으서요?”
 
114
하고 묻는것이다. 걸걸한 목소리가 이집의 안잠재긴듯 싶었다.
 
115
이런때
 
116
“명주 있나?”
 
117
하고 어줍댔드면 혹 통했을지도 모른다. 원체 숫배기라 기생집의 예의는 조곰도 모르므로
 
118
“저 나명주선생좀 만나러 왔오.”
 
119
하니까 그는 공연스리 눈살을 접드니
 
120
“노름 나가섰어요.”
 
121
이렇게 토라지는 소리를 내는것이다. 그리고 내가 (하긴소용도 없는 말이나) 미처
 
122
“어디로 나갔오?”
 
123
하고 다 묻기도 전에 문을 탁 닫아버리고는
 
124
“모르겠어요.”
 
125
하고 만다.
 
126
이럴때 번이는 웃고 말아야 할것이나 나는 짜정 약이 올랐다. 문짝을 부서버릴가 하다가 결국에는 인젠 죽어도 기생집엔 다시 안오리라고 결심하고 그대로 돌아섰다.
 
127
그리고 그길로 힝하게 명렬군을 찾아갔다.
 
128
나는 분김에 사실을 저저히 설파하고
 
129
“너때문에 내가 욕봤다.”
 
130
하고 골을 내었다. 하기는 그가 가라고 했든것도 아니건만 ──
 
131
그리고 말을 이어서 기생집에 있는것들은 전수히 사람이 아니다. 만에 하나라도 사람다운 점이 있다면 보름씩이나 편지를 받고도 답장하나 안할 리 없다. 거기서도 너를 전혀 사람으로 치질 않는다. 생각해보아라, 네가 뭐길래 기생이 너를 보고 끔찍이 여기겠니. 이 땅에는 너 이외에 돈있고 명예있는, 그런 유복한 사람이 하다하다. 기생이란 그들의 소유물이지 결코 네가 사랑하기 위하야 생겨난 존재는 아니다,라고 이렇게 세세히 설명하고
 
132
“아까만 하드라도 그 게집이 나에게 대한 태도를 보아라, 내가 만일 주단을 흘리고 갔드라면 어서 들어오라고 온집안이 끓어나와서 야단일게다, 이것들이 그래 사람이냐?”
 
133
하고 듣기 싫은 소리를 늘어놓니까 그는 쓴 낯을 하고
 
134
“없으니까 없다 했겠지, 설마 널 땃겠니!”
 
135
“없긴 뭘 없어?”
 
136
하고 소리를 빽 질렀다.
 
137
그리고 또 기생도 기생 나름이었다. 그것도 젊다면 이어니와 나히 이미 삼십을 바라보는 늙은이다. 이걸 뭘보고 정신이 쏠리는가.
 
138
이런건 정신병자가 아니면 하기 어려운 작난임을 다시 명백히 설명을 하야주고
 
139
“오늘부터 편지를 끊어라. 허구많은 게집애에 어디 없어서 그까진걸…”
 
140
“너는 모르는 소리야!”
 
141
그는 이렇게 더 듣고 싶지 않는다는듯이 나의 말을 회피하다가
 
142
“차라리 송장을 연모하는게 옳겠다.”
 
143
하고 엇먹는데 고만 불끈하야
 
144
“듣기 싫다.”
 
145
하고 호령을 치는 것이다.
 
146
그리고 나를 쏘아보는 그 눈이 담박 벌겋게 충혈되었다.
 
147
나는 그에게 더 충고해야 듣지 않을것을 알았다. 말다툼에까지 이르지 않었음을 오히려 다행히 여기고 그대로 나와버렸다. 이렇게 되었으니 그 다음번 내가 편지를 전하러갔다가 대문도 못두드려보고 와서 거짓말을 한 것이 전혀 나의 과실만도 아닐것이다.
 
148
그러다 나는 그를 탓하지는 않었다.
 
149
그는 자기의 머리속에 따로히 저의 여성을 갖고있는것이다. 말하자면 그와 가치 생의 절망을 느끼고, 죽자하니 움직이기가 군찮고 살자하니 흥미없는 그런 비참한 그리고 그가 지극히 존경하는 한 여성이 있는것이다. 그는 그 여성을 저쪽에 끌어내놓고 연모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명주는 우연히 그 여성의 모형이 되고 말았을 그뿐이겠다.
 
150
내가 명렬군을 알게 된것은 고보때이었다.
 
151
그는 같은 나히에 비하면 숙성한 학생이었다. 키가 훌쩍 크고 넓적한 얼골을가진 학생이었다. 말을 할때에는 좀 덜하나 선생앞에서 책을 낭독할적이면 몹시 더듬었다. 그래 우리는 그를 말더듬이라고 별명을 지었다. 그대신 그는 말이 드문 학생이었다.
 
152
우리는 어떤때에는 그를 비겁하게도 생각하였다. 왜냐면 그는 여럿이 모인 곳에는 안갈랴하고 비슬비슬 피하는 소년이었다. 사람이 없을 때에는 운동장에 나려가 철봉을 하고 땅재조를 하고 하였다. 마는 점심시간 같은 때 전교학생이 몰려나와 놀게 되면 그는 홀로 잔디밭으로 돌고하였다. 물론 원족이나 수학여행을 갈적이면 그는 어떠한 이유를 가지고라도 빠질랴하였다. 이렇게 사람을 두려워하는 별난 소년이었다.
 
153
그리고 매일 성적이 불량하였다. 특히 사오학년에 이르러서는 과정낙제가 자리를 잡을만치 불량하였다. 선생의 말을 빌면 재조가 있다고 그 재조를 믿고 공부를 안한다. 그러나 제 재조를 믿는것도 다소 학과를 염두에 두는 사람의 말이겠다. 그는 학과의 흥미만 없을뿐 아니라 우선 학교와 정이 들질 않었다. 그 증거로 일년간의 출석통계를 본다면 그는 학교에 나온 일수가 삼분지이가 못되었다. 담임선생은 화가 나서 이따위 학생을 첨 보았다, 하고
 
154
“자! 눈으로 보아라. 이게 학교 다니는 놈의 출석부냐?”
 
155
하고 코밑에다 출석부를 디려대고 하였다. 그러면 그는 얼골이 벌개저서 덤덤이 섰을뿐이었다.
 
156
그 언제인가 남산에서 나는 그에게 들은 말이 있었다.
 
157
그날은 그가 쑹쑹거리는 바람에 나도 결석하였다. 우리는 남산우로 올라와 잔디밭에 누어서 책보를 비었다. 그리고 이러쿵 저러쿵 지꺼리다가 무슨 이야기 끝에
 
158
“마적이 될랴면 어떻게 하는건가?”
 
159
하고 그가 묻는것이다.
 
160
“왜 마적이 되고싶으냐?”
 
161
“아니 글세말이야.”
 
162
“될랴면 되겠지 뭐, 그까진 마적쯤 못되겠니?”
 
163
“에 그까진 마적이 뭐야 ──”
 
164
하고 그는 눈을 둥그렇게 뜨고 부인하드니
 
165
“너 마적이 신승한게다 좀체 사람은 못하는거야. 씩씩하게 먹고 씩씩하게 일하고 좀 좋냐?”
 
166
“난 디려둔대도 안간다.”
 
167
“누가 디려주긴 한다디?”
 
168
“사람을 안디리면 즌 죽진안나?”
 
169
“그러게 새단원이 필요할때엔 모집광골 낸단다.”
 
170
하고 양복 웃호주머니를 뒤지드니 손바닥만하게 오린 신문지쪽찌를 나에게 내주며
 
171
“자 봐라.”
 
172
한다.
 
173
내가 받아들고 읽어보니 그것은 마적단의 모집광고를 보고 물건너 어떤 중학생 셋이 만주로 가다가 신의주 근방에서 붙들렸다는 기사였다.
 
174
나는 다 읽고나서 도루 내여주며
 
175
“흥! 그까진 마적이 돼?”
 
176
하고 콧등으로 웃었든것이다.
 
177
그 후에도 한 서너차레 마적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난다. 이걸 보면 그는 참으로 마적이 되고 싶었든 모양이었다.
 
178
나는 그를 괴망스럽다고 하였으나 이제 와 보면 당연한 일일것도 같다.
 
179
그는 어려서 양친을 다 여이었다. 그리고 제 풀로 돌아다니며 눈치밥에 자라난 소년이었다. 그러면 그의 염인증도 여기에 뿌리를 박았을지도 모른다.
 
180
그에게는 형님이 한분 있었다. 주색에 잠기어 밤낮을 모르고 남봉군이었다. 그리고 자기 일신을 위하얀 열사람의 가족이 히생을 하라는 무지한 폭군이었다. 그는 아무 교양도 없었고 지식도 없었다. 다만 그의 앞에는 수십만의 철량이 있어 그 폭행을 조장할뿐이었다.
 
181
부모가 물려주는 거만의 유산은 무릇 불행을 낳기쉽다. 더욱이 이십오륙의 아무 의지도 신념도 없는 청년에 있어서는 더 이를말 없을것이다. 그도 이예에 벗어지지 않었다.
 
182
그는 한달식 두달식 곡기도 끊고 주야로 술을 마시었다. 그리고 집안으로 기생들을 훌몰아 드리어 가족앞에 들어내놓고 음탕한 작난을 하였다. 한집으로 첩을 두셋식 끌어드리어 풍파도 일으키었다. 물론 그럴 돈이 없는 것은 아니나 치가를하고 어쩌고 하기가 성이가신까닭이었다. 그는 오로지 술을 마시고 게집과 가치 누었다. 그것밖에는 아무것도 귀치않었다. 몸을 조금 움직일랴지도 않었을뿐더러 머리는 쓰지 않었다. 하물며 가정사에 이르러서랴, 가족이 앓아 들어누어도 약 한첩 없고 아이들이 신이 없다하여도 신 한 컬레 순순히 사주지 않는 그런 위인이었다.
 
183
술도 처음에는 여러 친구와 떠들고 취하는 맛에 먹었다. 그러나 하도 여러번 그러는 동안에 그것만으로는 취미가 부족하였다. 그는 시납으로 주정을 하기 시작하였다. 이 주정을 몇번 하다가 흥이 지이면 저 주정을 하고 여기에 또 물리면 그 담것을 ── 이렇게 점점 강렬한 자극을 요구하는 그 주정은 끝이없었다.
 
184
그는 술을 마시면 집안세간을 부시고 도끼를 들고 기둥을 패었다. 그리고 가족들을 일일히 잡아 가지고 폭행을 하였다. 비녀쪽을 두손으로 잡고 그 목아지를 밟고 서서는 머리를 뽑았다. 또는 식칼을 들고는, 피해다라나는 가족들을 죽인다고 쫓아서 행길까지 맨발로 나오기도 하였다. 젖먹이는 마당으로 내팡게처서 소동을 이르켰다. 혹은 아이를 움물속으로 집어던저서 까무러친 송장이 병원엘 갔다.
 
185
이렇게 가정에는 매일같이 아우성과 아울러 피가 흘렸다. 가족을 치다 치다 이내 물리면 때로는 제팔까지 이로 물어뜯어서 피를 흘렸다.
 
186
이러길 일년이 열두달이면 열한달은 게속되었다.
 
187
가장이 술이 취하야 들어오면 가족들은 얼골이 잿빛이 되어 떨고 있었다. 왜냐면 언제 그손에 죽을지 그것도 모르거니와 우선 아픔을 이길수 없는 까닭이었다. 그들은 순전히 잔인무도한 이 주정군의 주정받이로 태여난 일종의 작난감들이었다. 그리고 그 가정에는 따뜻한 애정도 취미도 의리도 아무 것도 없었다. 다만 술과 음행 그리고 비명이 있을 따름이었다.
 
188
명렬군은 유년시절을 이런가정에서 자랐다.
 
189
그는 뻔질나게 마룻구녕 속으로 몸을 숨기지 않을수 없었다. 이는 덜덜덜덜 떨어가며 가슴을 죄였다. 그리고 속으로는
 
190
(은제나 저 자식이 죽어서 매를 안맞나……)
 
191
하고 한탄하였다.
 
192
먼촌 일가가 이것을 와 보고 딱하게 여기었다. 이렇게 해선 공부커녕 죽도 글렀다, 생각하고
 
193
“명렬이에게 분재를 해주게, 그래서 다른데 가서 따로 공부를 하든지 해야지이거 온 되겠나?”
 
194
하고 충고하였다.
 
195
형은 이 말을 듣드니
 
196
“염녀마슈, 내가 여련히 알아채래서 할라구.”
 
197
하고 툭 차버렸다. 그리고 가치 술을 잔뜩 먹고는 나종에는 분재운운하든 그일가를 목침으로 후려갈겨서 이를 둘이나 분질렀다.
 
198
명렬군은 그 형님에게 마땅히 분재를 해 받을 권리가 있었다. 그러므로 욕심이 과한 그형은 분재이야기만 나오면 눈이 뒤집혀서 펄썩 뛰었다.
 
199
“일즉 분재하면 사람 버려. 나처럼되면 어떠커니? 너는 공부 다하고 늦윽해서 살님을 내주마.”
 
200
이것이 분재 못하는 그의 이유이었다.
 
201
그러나 그 많든 재산도 십년이 채못되어 기울게되었다. 서울서 살든 형이 명렬군을 그의 누님에게 떠맡기고 시골로 나려갈 때에는 불과 몇백석의 땅이있었을뿐이었다.
 
202
명렬군이 차차 장성할스록 그 형에게는 성가스러운 존재였다. 좋은 소리로 그를 서울로 떼내던지고 즈이 식구끼리만 대대의 고향인 그 시골로 나려가고 만것이었다. 이것이 명렬군이 고보를 졸업하고 동경엘 갈랴 했으나 집의 승낙의 없어서 그도 못하고, 이럴가 저럴가 망서리며 놀고 있었든 때의 일이었다.
 
203
이렇게 형의 손에서 기를 못피고 자란 그는 누님한테로 넘어오게 되었다. 따라 비로소 살 길을 찾은듯이 그는 기쁘지 않을수 없었다.
 
204
그러나 그 누님도 그의 기대와는 다른 인물이었다.
 
205
그는 아즉 삼십이세의 젊은 과부이었다. 열네살에 시집을 가서 십년이나 넘어 살다가 쫓기어왔든것이다. 돈 있는 친정을 둔 새댁만치 불행한건 다시 없을것이다. 라고 하는건 그를 괴롭히기에 자딸은 구실이 얼마든지 많었다. 썩도록 돈을 묵히고도 시집하나 살릴줄모른다는 은근한 이유로 그도 역시 쫓기어 오고 만 것이다.
 
206
그러나 친정엘 와도 반기어 그를 맞어줄 사람은 없었다. 가장인 오빠라는 작자는 매일같이 매만따리었다. 뿐만 아니라 결국에는 출가외인이 친정밥 먹는다고 머리를 터치어 거리고 내쫓았다.
 
207
이런 풍파를 겪고 혼자 돌아다니다가 근근히 얻은 것이 직업이었다. 그리고 방 한간을 세를 얻어 그 월급으로 단독살림을 시작하였다. 물론 그에게는 아무소생도 없었다.
 
208
그 좁은 방에서 남매가 지나다가 이집으로 온것은 그후 일년이 썩 지내서이다. 시골 간 형이 아우의 입을 막기 위하야 사직동 꼭대기다 방둘 있는 조고만 집을 전세를 얻어준것이 즉 이집이었다.
 
209
그리고 둘의 생활비로는 누님의 월급이 있을뿐이었다.
 
210
누님은 경무과분실 약복부에 다니는 직공이었다. 아츰 여섯시쯤해서 가면 오후 다섯시에 나오고 하는것이다. 일공이 칠십전쯤 되므로 한달에 공일을 제하면 한 십구원 남직하였다. 그걸로 둘이 먹고 쓰고 하는 것이다.
 
211
그러나 허약한 젊은 여자에게 공장살이란 견디기 어려운 고역이었다. 공장에 다닌지 단 오년이 못되어 그는 완연히 사람이 변하였다. 눈매는 허황하게 되고 몸은 바짝 파랬다. 그리고 보통 사람이 본다면 대뜸
 
212
“저 사람이 미첬나?”
 
213
할만치 그렇게 그 언사와 행동이 해괴하였다.
 
214
번이도 그는 승질이 급하고 변덕이 쥐 끓듯 하든 사람이었다. 거기다 공장에서 얻은 히스테리로 말미아마 그는 제 승미를 제가 것잡지 못하도록 되었든것이다.
 
215
거기 대하얀 또 따로히 말이 있으리라. 마는 여기서는 다만 그가 성한 사람이 아니란것만 알면 고만이다.
 
216
낮 같은 때 공장에서 일을 하다가 까빡 졸적이 있다. 그러나 삐끗하면 엄지손가락을 재봉틀에 박는다 마는 뺄수는 없고 그대로 서서 쩔쩔 매는것이다. 그러면 감독은 와서 뒷통수를 딱 때리고
 
217
“조니까 그렇지 ──”
 
218
하고 눈을 부라린다.
 
219
혹은 뒤를 보러갔다 늦을 적이 있다. 감독은 수상이 여기고 부낳게 쫓아온다. 그리고 잡은참 문을 열어제친뒤 자로다 머리를 따리며
 
220
“알캥이를 세고 있는거야?”
 
221
하고 또 호령이었다.
 
222
그러나 그는 치바치는 설음과 분노를 꾹꾹 참지않을수 없다. 감독에게 말대꾸하는것은 공장을 고만두는 사람의 일이었다.
 
223
또는 남자들 틈에서 일을 하는지라, 남녀관게로 시달리는 일이 적지 않었다. 어뜩삐뜩 근드리는 놈도 있고 맞우대고 눈을 흘기는 놈도 있었다. 혹은 빈정거리는 놈에 쌈을 거는 놈까지 있었다.
 
224
그렇다고 사내와 공장에서 싸울수는 없는 일이니 그는 역시 참을수밖에 다른 도리는 없었다.
 
225
없임받는 이 분통을 꾹꾹 참아오다가 것을 집에 와서야 폭발하는것이다. 거기에는 만만한고 그리고 양순한 동생이 있기 때문이었다.
 
226
그는 집에 돌아와 자기가 애면글면 장만해놓은 그릇을 부시었다. 그리고 동생을 향하야
 
227
“내가 널 왜 밥을 먹이니?”
 
228
하고 눈을 똥그랗게 떴다.
 
229
때로는
 
230
“네가 뭐길래 내가 이고생을 하니?”
 
231
하기도 하고
 
232
“이놈아! 내살을 긁어 먹어라”
 
233
하고 악장을 치며 발을 동동 구르기도 하였다. 그리고 그대로 펄썩 주저앉아서 소리를 내어 엉, 엉, 우는것이다.
 
234
물론 이것이 동생에게 대한 설음은 아니었다.
 
235
그러나 동생은 이런 소리를 들으면 미안쩍은 생각이 날뿐 아니라 등줄기에 가 소름이 쭉 끼치고 하는것이다.
 
236
누님은 날이면 날마다 동생을 들볶았다. 아무 트집도 없이 의례히 할걸로 알고 그대로 들볶았다. 그리고나서 한숨을 후유 ,하고 돌리고는 마음을 진정하고 하는것이다.
 
237
그러니까 동생은, 말하자면 그 밥을 얻어먹고 그의 분풀이로 사용되는 한 노동자에 지나지 않었다.
 
238
그러나 누님이 기실 악독한 여자는 아니었다. 앞이 허전하다 하야 그는 시골에서 어린 게집애를 었딸로 데려다가 기르고 있었다. 결코 동생이 있는 것이 원수스러워 그럴 리는 없었다.
 
239
동생이 이리로 오는 당시로만 하여도 누님은 퍽 반색하였다. 밤이 깊은 겨울이건만 그는 손수 와서 책과 책상 금침등을 머리에 이고 오며
 
240
“너 이런걸 잊지말아라”
 
241
하고 아우를 명심시키었다.
 
242
“형님에게 설음 받든 생각을하고 너는 공부를 잘해서 훌륭히 되어라”
 
243
혹은
 
244
“그까진 재산 떼준대도 받지말아라 더럽다 ──”
 
245
이렇게 동생이 굳은 결심을 갖도록 눈물 먹음은 음성으로 몇번몇번 당부를 하고했든것이다. 자기따는 부모없이 자란 아우라고 끔찍이 불상하였다.
 
246
동생도 빙판으로 그 뒤를 딿아오며 감개 무량하야 한숨을 후, 쉬고 하였다.
 
247
그러든것이 닷세가 못되어 그 병의 증세가 이러나기 시작하였다.
 
248
이것이 명렬군이 입때까지 살아 온 그 주위의 윤곽이었다.
 
249
그러면 그는 살아 나갈랴는 의욕이 없었든가, 하고 이렇게 의심할지도 모른다. 마는 그도 한개의 신념이 있었고 거기 딿으는 노력을 가젔었다. 우선 그 증거로 그는 명주라는 기생을 찾은것이다. 그리고 그의 누님을 영원히 재우고자, 무서운 동기를 가젔든것도 역시 그가 살아 나아갈 길을 찾고 잇든 한 노력이 있음을 우리는 차차 알것이다.
 
250
그의 우울증을 타진한다면 병의 원인은 여러갈래가 있으리라. 마는 그 근번이 되어있는 원병은, 그는 애정에 주리었다. 다시 말하면 그는 사람에 주리었다.
 
251
그는 잇다금식 나에게
 
252
“어머니가 난 보고 싶다!”
 
253
이렇게 밑고끝도없이 부르짖었다.
 
254
나히 찬 기생을 그가 생각하게 된것도 무리는 아닐 것 같다. 그는 그 속에서 여러가지를 보았으리라. 즉 어머니로써 동무로써 그리고 연인으로써 명주가 그에게 필요하였다.
 
255
그러나 그때 나로는 그것까지 이해할만한 능력이 없었다. 사람같이 않은 기생이니 그를 위하야 하루라도 일즉이 단념하야 주기만 바랬다.
 
256
거짓말을 하고 온지 사흘째 되는 날이었다.
 
257
내가 저녁을 먹고 있으려니까
 
258
“여기아자씨 기서요?”
 
259
하고 낯익은 소리가 나는것이다.
 
260
얼른 미다지를 열고 내다보니 그것은 틀림없이 명렬군의 쇵조카였다.
 
261
“왜?”
 
262
“저 우리아저씨가요 이거 갖다 디리래요”
 
263
그리고 조고맣게 접은 종이쪽을 내준다.
 
264
받아들고 펴보니 그건 간단히
 
265
좀 왔다가지 못하겠니
 
266
이런 사연이었다.
 
267
마침 밥상을 물리랴든 때이므로 나는 옷을 갈아입었다. 그리고 게집애를 딿아서 슬슬 나섰다.
 
268
“아저씨 지금 뭐 허디?”
 
269
“늘 아파서 앓으서요”
 
270
하고 선이는 가엾은 표정을 하는것이다.
 
271
그러나 나는 어쩐지 속이 불안스러웠다. 나를 오라는, 그 속을 대충 짐작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272
내가 들어갔을때 그의 누님은 마루끝에서 약을 대리고 있었다.
 
273
벽과 뒷간사이가 불과 칸반밖에 안되는 좁은 집이었다. 수채가 게 붙고 장독이 게 붙고하였다. 뜰이라는 것은 마루와 장독 그 사이에 한 평반가량되는, 말하자면 손바닥만한 깜찍한 마당이었다.
 
274
그 마당에 가 하얀 입쌀이 여기저기 흩어저 있다.
 
275
이걸 보면 오늘도 그 병이 한차레 지난 모양이었다. 아마 저녁을 할랴다가 그대로 퍼 내 던진지도 모른다.
 
276
그는 나를 보드니
 
277
“걔가 앓아요”
 
278
하고 언짢은 낯을 하는것이다.
 
279
내가 불안한 마음으로
 
280
“글세 무슨 병일가요, 혹 몸살이나 아니야요?”
 
281
하고 물으니까 그는
 
282
“모르겠어요, 무슨 병인지”
 
283
하고는
 
284
“통이 아무것도 안먹고 저렇게 밤낮 않기만 해요, 아마 내가……”
 
285
하고 미처 말끝도 맺기 전에 행주치맛자락을 눈으로 가저간다. 그리고 몇번 훌쩍훌쩍 하드니
 
286
“내가 야단을 좀 첬드니 아마 저렇게 병이……”
 
287
나에게 이렇게 하소를 하는 것이다.
 
288
물론 그는 병이 한차레 지난 뒤에는 극히 온순한 여자이었다. 그의 생각에는 자기가 들볶아서 동생이 병이 난줄로 아는 모양이었다.
 
289
나는 위안시키는 말로
 
290
“염녀 마십시요, 봄이 되어서 몸살이 났겠지요”
 
291
하고는 거는방으로 들어갔다.
 
292
그는 이불속에 가만히 누어 있었다. 나를 오라고 고대 불렀으나 물론 인사도 하는 법 없었다. 가삼츠레히 뜬 눈으로 천장만 뚫어보고 있을뿐이었다. 헐떡한 얼골이며 퀭한 눈이, 며칠전만도 더 못한것 강앴다. 창백한 손등에는 파란 심줄이 그대로 비처올랐다. 그리고 얼골에는, 무거운 우울에 싸이어 괴로운 빛이 보이었다.
 
293
나는 첫눈에 그가 제버릇이외의 다른 병이 있음을 알었다.
 
294
얼마 바라보다가
 
295
“너 어디 아프냐?”
 
296
하고 물어보았다.
 
297
그는 무슨 대답을 할랴고 입을 열듯하드니 입맛으로 다셔버린다. 어딘가 몸이 몹씨 괴로운 눈치였다. 낯을 잔뜩 찌프리고는 역시 천정만 바라보고 있었다.
 
298
다시 한번 큰소리로
 
299
“어디 아퍼?”
 
300
하니까
 
301
“음 ──”
 
302
하고 입속으로 대답하다가
 
303
“어디가?”
 
304
“등이 좀 결린다”
 
305
하고 그제서야 그는 내게로 시선을 가져온다. 마는 사실 등이 결린것은 아니었으리라.
 
306
그때 나는 등이 왜 결리는가, 싶어서
 
307
“그럼 병원엘 좀 가봐라, 병이란 애전에 고쳐야지……”
 
308
하고 객적게 권하였다.
 
309
여기에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었다. 도루 낯을 찌프려가며 끙, 끙, 앓을 따름이었다.
 
310
이제 와 생각하면 그는 나의 둔감을 딱하게 여겼을지도 모른다.
 
311
누님이 짜서 들고 들어온 약을 그는 요강에 부었다. 그러고 빈 대접을 웃묵으로 쓱 밀어버렸다.
 
312
마치 그 약을 받아 먹는것이 큰 모욕이나 될듯 싶었다.
 
313
누님이 이걸 목격하야 봤다면 또 분난이 일었으리라. 그가 나아간 담의 일이라 그대로 무사한긴 하였다.
 
314
이걸 본다면 그는 이때부터도 누님에게 역심을 잔뜩 품고 있었음이 확실하였다.
 
315
이윽고 그는 나를 향하야
 
316
“미안하지만 너 한번만 더 갔다올래?”
 
317
하고 나즉이 묻는것이다.
 
318
어딜 갔다 오는겐지 그것은 묻지 않어도 환한일이었다.
 
319
“그래라.”
 
320
하고 선뜻 대답하였다.
 
321
하니까 그는 자리 밑에다 손을 디밀드니 편지 하나를 끄내어 내앞으로 밀어놓는다.
 
322
“답장을 꼭 맡아오너라”
 
323
“그래”
 
324
두말없이 나는 편지를 들고 나섰다.
 
325
답장을 맡아 오겠다, 한 전일의 약속도 있거니와 첫때 이날 분위기의 지배를 받았다.
 
326
그리고 한번 거즛말을 한것이 무엇보다 미안하였다.
 
327
오늘은 어떠한 일이 있드라도 답장을 말아 오리라고 결심하였다. 내가 여기엘 가는것은 지금이 세번째다. 한번은 안잠재기에게 욕을 당하고 또 한번은 편지를 전하러갔다가 대문도 못열어보고 그냥 왔다. 한번도 원당자를 만나본 일은 없었다.
 
328
(사람이 가서 애걸을 하는데야 답장하나 안써줄 리 없으리라)
 
329
이렇게 생각하고 종노를 향하야 나려오다가
 
330
“여! 이 얼마만인가?”
 
331
“참 오래간만인걸!”
 
332
하고 박인석군을 만났다.
 
333
그는 우리와함께 고보의 동창이었다. 지금은 보전법과까지 마치고 전당포를 경영하고 있었다.
 
334
나는 그렁저렁 인사를 마치고 헤질려니까
 
335
“여보게! 내 자네에게 의논할 말이 좀 있는데 ──”
 
336
하고 고옆 찻집으로 끄는것이다.
 
337
돈푼좀 있다고 자네, 여보게, 어쩌구, 하는 꼴이 좀 아니꼬웠다. 허나 의논이라니까 나는 의논이 무슨 의논일가, 하고 되물었다.
 
338
그는 우좌스리 홍차둘을 시키드니
 
339
“자네 요새는 뭐허나?”
 
340
하고 나에게 묻는것이다.
 
341
“헐거있나, 밤낮 놀지”
 
342
“그렇게 놀기만허면 어떻개?”
 
343
그는 큰일이나 난듯이 눈을 둥그렇게 뜬다.
 
344
이것 또 어따쓰는 수작인가, 싶어서
 
345
“그럼 안놀면 어떻거나?”
 
346
하니까
 
347
“사람이 일을 해야지 놀면 쓰나!”
 
348
하고 제법 점잖이 훈계를 하는것이다.
 
349
나는 모욕당한 자신을 느꼈으나 꾹 참고 차를 마셨다.
 
350
그도 차를 몇번 마시드니 주머니에서 시게를 끄낸다. 산지 얼마 안되는 듯 싶은 듯 누런 시게에 누런 줄이었다.
 
351
“허 시간이 늦었구면, 시간이 안늦었으면 극장엘 가치 갈랴했드니”
 
352
하고 뽐을 내는 것이다.
 
353
실상은 극장이 아니라 새로 산 그 시게를 보이고 싶었다.
 
354
“자네 취직하나 안할려나?”
 
355
“뭔데?”
 
356
하고 처다보니까
 
357
“그런게 아니라, 저 내 아들이 하나 있는데 말이야, 그놈을 유치원을 넣었드니 수째 가기 싫여한단 말이지, 응석으로 자라서 에미의 품을 못떠러저, 그래 자네더러 와서 가치 데리고 좀 놀아달란 말일세, 일테면 가정교사지”
 
358
하고 나의 눈치를 쓱 훑어보고는
 
359
“자네의 의향은 어떤가?”
 
360
친구보고 제 자식허구 놀아달라는건 말이 좀 덜된다. 단적맞은 놈, 하고 속으로 노했으나
 
361
“그러게 고마워이”
 
362
하고 활활히 받었다. 왜냐면 나에게 문득 한 생각이 있어서이다.
 
363
이 친구는 고보때부터도 기생집의 출입이 자잣든청년이었다. 기생집에 대한 이력은, 맹문동인 나보다 훨씬 환할것이 틀림 없었다.
 
364
(그럼 이 박군을 사이에 두고 답장을 맡아 오는것이 손쉽지 않을가?)
 
365
이런 생각을 하고
 
366
“박군! 요새두 기생집 잘 다니나?”
 
367
하고 물으니까
 
368
“별안간 기생집 이야긴 왜?”
 
369
“아니 글세말이야?”
 
370
“어쩌다 친구에 얼리면 갈적도 있지”
 
371
“그래 기생을 사랑하는 사람두 있나?”
 
372
“그게 또 무슨 소리야, 사랑을 먹구 살아가는 기생이 사랑이 없으면 어떻게 사나?”
 
373
“오라! 그럼 기생에게 연애편지를 하는 사람두 있겠네그래?”
 
374
“그야 더러 있지”
 
375
“그러면 답장 쓰기에 바뿌겠구면?”
 
376
“답장이라니?”
 
377
하고 당치 않은 소리란듯이 나를 쏘아보드니
 
378
“기생이 어디 노름채를 걸고 요리집으로 불러서 뚱땅거리면 흥이 나고, 다 이러지만 그까진 답장은 왜쓰나?”
 
379
하고 그래도 못알아 들을까봐
 
380
“기생이란 어디 그런 답장 쓸랴고 나온겐가?”
 
381
이렇게 또박이 깨치어준다.
 
382
나는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따는 그럴것도 같다. 전일의 내가 가젔든 생각과 조곰도 다름 없었다.
 
383
“요담 또 만나세”
 
384
나는 간단히 작별을 두고 거리로 나왔다.
 
385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이 편지는 영영 답장은 못받고 마는것이다. 안쓰는 답장을 우격으로 씨울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리고 받아 보기조차 끄리는 이 편지의 답장을 바라는것은 좀 과한 욕망이겠다.
 
386
기생은 반듯이 요리집으로 불러서 만나 보는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음을 알았다.
 
387
나는 이럴가 저럴가, 하며 머뭇거리다 한 게책을 품고 우리집으로 삥 올라갔다.
 
388
내방으로 들어와 나는 주머니에 든 편지를 끄내었다. 그리고 실례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 편지를 뜯어서 읽어보았다.
 
 
389
나명주선생께
 
390
날사이 기체 안녕하시옵나이까, 누차 무람없는 편지를 올리어 너머나 죄송화외다. 두루 용서하야주시옵기 엎드려 바라나이다.
 
391
선생이시어
 
392
저는 하나를 여쭈어보노니 당신에게 기쁨이 있나이까, 그리고 기꺼웁게 명낭하게 웃을수있나이까, 만일 그렇다 하시면 체경을 앞에 두고 한번 커다랗게 웃어보소서, 그 속에 비취이는 얼골은 명낭한 당신의 웃음과 결코 걸맞지 않는 참담한 인물이오리다, 그 모양이 얼마나 추악한 악착한 꼴이라 하겠나이까.
 
393
선생이시어
 
394
그러나 당신은 천행히 웃으실수있을지 모르외다. 왜냐면 당신의 그 처참한 면상은 분이 덮었고 그리고 고은 비단은 궂은 그 고기를 가리웠기 때문이외다. 귀중한 몸을 고기라 하와 실례됨이 많음을 노여워마소서, 당신의 몸은 먹지 못하는 주체궂은 고깃덩어리외다. 그리고 저의 이몸도 역시 먹지 못하는 궂은 고깃덩어리외다.
 
395
선생이시어
 
396
당신은 당신의 자신을 아시나이까. 그러면 당신은 극히 행복이외다, 저는 저를 모르는 등신이외다. 허전한 광야에서 길 잃은 여객이외다.
 
397
선생이시어
 
398
저에게 지금 단 하나의 원이 있다면 그것은 제가 어려서 잃어버린 그 어머님이 보고싶사외다. 그리고 그 품에 안기어 저의 기운이 다할때까지 한껏 울어보고 싶사외다. 그러나 그는 이땅에 이미 없노니 어찌 하오리까.
 
399
선생이시어
 
400
당신은 슬픔을 아시나이까, 그렇다면 그 한쪽을 저에게 나누어 주소서.
 
401
그리고 거기 딿으는 길을 지시하야 주소서.
 
 
402
여기에다 일부에 서명을 한것이 즉 그 편지었다. 글은 비록 다르다 할지라도 요전번 내가 넣고 왔든 그 편지와 사연은 일반이었다.
 
403
(이 글의 내용이 기생에게 통할가?)
 
404
나는 이렇게 의심하였다.
 
405
그리고 여고에 다니는 나의 누의동생을 불러서 내가 부르는대로 받아 쓰라, 하였다.
 
 
406
유명렬선생전 답상서
 
407
그동안 기체 안녕하옵신지 궁금하오며 십여삭을 연하야 주신 글월은 무한 감사하오나 화류게에 떠러진 천한 몸이오라 그 뜻 알길 막연하와 이루 답장치 못하오니 이 가삼 답답측냥 없사오며 하물며 전도 양양하옵신 선생의 몸으로 기생에게 이런 편지를 쓰심은 애통할바 크다 하겠사오니 하루바삐 끊어주시기 간절간절 바라옵고 겸하야 내내 근강하옵심 바라오며 이만 그치나이다.
 
408
사월 그뭄
 
409
나 명 주 상셔
 
 
410
이런 답장에 필적이 여필이었다. 이만하면 그는 조곰도 의심치는 않으리라.
 
411
물론 이때 나는 이 편지의 결과까지 생각하기에는 우선 당장이 급하였다. 아무 거침없이 들고 가서 그를 즐겁게 하야주었다.
 
412
이 답장이 그에게 얼마나 큰 기쁨을 주었든가 우리는 그걸 상상치 못하리라.
 
413
그는 편지를 받아들고 곧 뜯어보지 못할만치 그렇게 가슴이 설레였다. 방바닥에다 그걸 나려놓고는 한참동안 눈을 참은채 그 흥분을 진정시키었다. 그리고 난 다음에야 비로소 두손으로 다시 집어들고 뜯어보았다.
 
414
그는 다 읽은뒤 억압된 음성으로
 
415
“고맙다”
 
416
하였다
 
417
나는 양심에 찔리는 곳이 없었든것도 아니었다. 허지만 그의 기쁨을 보는 것은 또한 나의 기쁨이라 안할수 없었고
 
418
“별소릴 다헌다. 고맙긴……”
 
419
하고 천연스리 받았다.
 
420
이렇게 하야 나는 일을 저즈르기 시작하엿다.
 
421
일주일에 적어도 두번식은 나는 그의 편지를 읽지않을수 없었다. 그리고 싫어도 그 답장을 부득이 쓰지않을수 없게 되었다.
 
422
이것이 그에게 미치는 영향은 자못 큰것이었다.
 
423
편지가 오고가고 하면 할수록 그는 더욱더 명주를 숭상하였다. 마즈막에 이르러서는 연모의 정을 떠나 완전히 상대를 우상화게까지 되었다, 말하자면 이것은 한개의 여성이 아니라 그의 나아갈 길을 위하야 빚어진 한개의 신앙이었다.
 
424
그리고 거기 딿으는 비애는 그의 주위에 엉클린 현실이었다.
 
425
그는 자기의 처지를 끝없이 저주하였다. 뿐만 아니라 그의 누님을 또한 끝없이 저주하였다.
 
426
누님은 그때 돈놓이를 하고 있었다. 물론 한 십구원밖에 안되는 그 월급에서 오원, 십원, 이렇게 떼어 빚을 놓는것이다. 그것은 대개 공장사람에게 월수로 주었다.
 
427
하니까 그 남아지로는 한달게량이 되질 못하였다. 그 결과는 좁쌀을 팔아 드리고 물도 자기 손수 길어드리고, 하는것이다. 그리고 때로는 고단한 몸을 무릅쓰고 바누진품을 팔기에 밤도 새웠다. 따라 가뜩이나 골병 든 몸이 날로 수척하였다.
 
428
이렇게 그는 억척스러운 여자였다.
 
429
그러나 놓았든 빚은 마음대로 잘 들어오진 않었다. 돈 낼때가 되면 그들은 이핑게 저핑게 늘어놓으며 그대로 얼렁얼렁하고 마는것이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430
“내 다음부터는 잘 낼게 돈좀 더주우, 다 게있고 게있는거 어디 가겠우?”
 
431
하고 그를 달랬다.
 
432
혹은
 
433
“돈좀 더 안꾸어주면 그전것두 안내겠우”
 
434
하고 제법 대드는 우락부락한 남자도 있었다.
 
435
공장안에서는 빚놓이를 못한다는것이 공장의 규측이었다. 그걸 들어내놓고 싸움 형편도 못되거니와 한편 변덕이 많은 그라 남의 꼬임에 잘 떨어지기도 하였다. 돈을 내라고 몇번 불쾌히 굴다가도 어느 겨를에 고만 홀깍 넘어서, 못받는 빚에다 덧돈까지 얹어서보내고 하는것이다.
 
436
그의 급한 승질에는, 나종에 받고 못받고가 그리 문제가 아니었다. 우선 이 돈이 가서 늘고 뿔어서 큰 철량이 되려니, 하는 생각만 필요하였다.
 
437
이렇게 그는 앞뒤염냥이 없이 그저 허벙거렸다.
 
438
그도 그럴것이 그는 돈으로 말미아마 시집에서 학대를 당하였다. 그리고 밥으로 말미아마 친정에서 내어쫓기었다. 또는 공장살이 몇해에 얼마나 근고를 닦았는가, 얼른 한미천 잡아서 편히 살고싶은 생각이 간절하였다.
 
439
그의 입으로 가끔
 
440
“어떤 사람은 이백원을 가지고 빚놓이를 한것이 이태도 못돼 삼천원짜리 집을 삿다는데!”
 
441
이런 탄속이 나왔다.
 
442
그리고 밤에는 간혹가다 치마속에 찬 큰 귀주머니를 끄내었다. 거기에서 돈을 쏟아서 가장 애틋한듯이 차근차근 세어보았다. 그동안 쓴것과 받은것을 따저보아 한푼도 축이 안나면 그제서야 한숨을 휘, 돌리고 자는것이다.
 
443
그러자 하루는 그 돈이 없어젔다.
 
444
그가 공장을 파하고 나와서 저녁밥을 하고있든 때였다. 그는 손수 나아가 고기를 사고 파를 사고, 해서 가지고 들어왔다. 그리고 기쁜 낯으로 화루에 장을 앉히고 있었다. 물론 그 병이 한차레 지난 뒤도 뒤려니와 그날은 오랜만에 빚놓았든 돈 오원을 받은 까닭이었다.
 
445
그는 곧잘 밥을 푸다가 말고
 
446
“여기 돈 누가 집어갔니?”
 
447
하고 째지는 소리를 하였다. 갑작이 벜문틀우에 놓여있는 돈을 보고서이다. 십전에서 고기 오전, 파 일전, 석냥 일전, 이렇게 샀으니 반듯이 삼전이 있어야 할터인데 이전뿐이었다.
 
448
대뜸 선이를 불러서
 
449
“너 여기 돈일전 어쨌니?”
 
450
하고 묻다가
 
451
“전 몰라요”
 
452
하고 얼뚤한 눈을 뜨니까
 
453
“이년! 몰라요?”
 
454
그리고 때리기 시작하였다.
 
455
사실은 아까비지장사에게 일전 준것을 깜빡 잊었다. 그는 이렇게 정신이 없는 자기임을, 그것조차 잊기잘하는 근망증이었다. 바른대로 불라고 게집을 한참 치다가 그예 장작개피로 머리까지 터치고나서야 비로소 자기의 게산이 잘못됨을 알았다. 그는 터진 머리에 약을 발라주며
 
456
“너 이담부터 그런 손버르쟁이 허지말아”
 
457
하고 멀쑤룩해진 자기의 낯을 그렁저렁 세웠다.
 
458
그러나 속으로는 부끄러운 양심이 없는것도 아니었다. 이런 때 동생이 나와서 자기의 역성을 들어 몃마디 하야 주었으면 좀 들 미안할게다. 그런데 자기의 밥을 먹으면서 언제든지 꿀 먹은 벙어리로 있는것이 곧 미웠다.
 
459
그는 동생에게는 밥을 주지 않었다. 둘의 밥만 마루로 퍼가지고 와서 선이와 가치 정다히 먹었다. 그리고 문 닫힌 거는방을 향하야
 
460
“어디 굶어좀보지, 사람이 배가 쪼로록소리를해야 정신이 나는거야!”
 
461
이렇게 또 시작되었다.
 
462
거는방에선 물론 아무 대꾸도 없었다.
 
463
조곰 사이를 두고 그는 다시
 
464
“학교를 그렇게 잘 다녀서 고등보통학교까지 맡고 남의 밥만 얻어먹니!”
 
465
혹은
 
466
“형이 먹일걸 왜 내가 먹인담, 팔짜가 드시니까 별꼴을 다보겠네!”
 
467
하고 깐깐히 비우쩍어린다.
 
468
그렇다고 큰 음성으로 내대는것은 아니었다.
 
469
부드러운 그러나 앙칼진 가시를 품은 어조로
 
470
“그래도 들뜯어 먹었니? 어이 내 뼈까지 긁어먹어라!”
 
471
하고
 
472
“아들 낳은 자식은 개아들이야!”
 
473
하고 은근히 뜯는것이다.
 
474
그는 동생을 결코 완력으로 들볶지 않었다. 그것보다는 은근히 빗대놓고 비양거리어 불안스럽게 구는것이 동생을 괴롭히기에 좀더 효과적인 까닭이었다.
 
475
완력을 쓰면 동생의 표정은 씸씸하였다. 그러나 이렇게 밸을 긁어놓으면 그는 얼골이 해쓱해지며 금세 대들듯이 두 주먹을 부루루 떨었다. 그러면서도 누님에게 감히 덤비지는 못하고 마는것이다.
 
476
이 묘한 표정을 누님은 흡족히 향낙하였다. 그리고 나서야 그는 분노, 불만, 비애 ── 이런 거츨은 심정을 가라앉히고 하는것이다.
 
477
이만치 그는 뒤뭉그러진 승질을 가진 여자였다.
 
478
명렬군은 여기에서 누님을 몹씨 증오하였다. 누님이 그의 앞으로 그릇을 팽개치고 대들어, 옷가슴을 잡아뜯을 때에는 그 병으로 들리고 그대로 용서하였다. 그리고 묵묵히 대문밖으로 나가버리고 마는것이다. 마는 이렇게 깐죽어리고 앉어서 차근차근 비위를 긁는데는, 그는 그속에서 간악한 그리고 추악한, 한개의 악마를 보는것이다. 담박 등줄기에 가 소름이 쪼옥 끼치고 하였다.
 
479
그러나 그렇다고 그가 그의 누님을 치우고자, 흠한 결심을 먹는것은 결코 아니었다. 만일 그가 단순히 누님을 미워만 하였드란들 일은 간단히 끝났으리라. 저주를 하면서도 이렇게까지 끌고 왔음에는 여기에 따로히 한 이유가 있지 않으면 안될것이다.
 
480
동리에서는 누님을 뒤로 세놓고
 
481
“젊은기집이 어째 행동이 저렇게 황황해?”
 
482
“환장한 기집이 아니요? 그러니까 그렇지!”
 
483
“아이 미친년두 참 다보네!”
 
484
이렇게들 손가락질을 하였다.
 
485
한번 두레박때문에 동리에 분난이 인 뒤로는 그를 꼭 미친 사람으로 믿었다. 그것도 그가 금방 물한통을 떠왔는데 그의 두레박이 간곳 없었다. 물통은 마당에 분명히 있는데 이게 웬일인가, 하고 의심하였다. 대문밖에 있는 움물에 가 찾아보아도 역 없는것이다. 이건 정녕코 움물 옆에다 놓고 온것을 물 뜨러 왔든 다른 여편네가 집어갔다고 생각하지 않을수 없었다. 왜냐면 움물에는 주야로 사람이 끊이지 않었고 그리고 두레박을 잃는 일이 펀펀하였다.
 
486
그는 잡은참 대문밖으로 나와 움물께를 향하고
 
487
“어떤년이 남의 두레박을 집어갔어?”
 
488
하고 악을 쓰고는
 
489
“이 동네는 도적년들만 사나? 남의 걸 집어가게”
 
490
이렇게 고만 실수를 하고 말았다. 그는 분하면 급한 바람에 되는대로 내쏟는 사람이었다.
 
491
움물길에 모여섰는 안악네들은 물론 대로하였다.
 
492
“아니 여보! 그게 말따위요?”
 
493
하고 꾸짖는 사람도 있고
 
494
“누가 집어갔단 말이요? 동넷년들이라니!”
 
495
하고 대드는 사람도 있었다.
 
496
그리고 또는
 
497
“이동네는 도적년들만 있다? 너는 이년아 이동넷년이 아니냐?”
 
498
하고 악장을 치며 달겨드는 사람도 있었다.
 
499
이렇게 하야 한나절 동안이나 아구다틈이 오고가고 하였다. 그리고 동네는 떠나갈듯이 소란하였다. 만일에 이날 명렬군이 나와서 공손히 사죄만 안했드라면 봉변은 확실히 당할번하였다. 나종에 알고보니 그 두레박은 벜에 놓인 물독우에 깨끗이 얹혀있었다.
 
500
그 후로도 그는 여러번 동네에 나아와 발악하기를 사양치 않었다. 이럴 때마다 말 드문 동생은 방속에서
 
501
“음! 음!”
 
502
하고 아지못할 신음소리를 내었다.
 
503
그러나 이것만 보고 그 누님을 악한 여자라고 볼수는없을것이다.
 
504
명렬군이 한번엔 생각하기를 누님의, 개신개신 벌어드리는 밥만먹고 있기가 미안하였다. 그리고 직업을 암만 열심히 듯보아도 마땅한 직업도 역시 없었다. 아무거나 한다고 찾아다니다 문득 한 생각을 먹고서
 
505
“누님! 내 낼부터 신문을 좀 배달해보리다, 가치벌어드리면 지금보다는 좀 날테니 아무 염려마우”
 
506
하고 그 누님을 안심시켰다.
 
507
하니까 누님은 펄적뛰며
 
508
“얘! 별소리 마라, 신문배달이 다 뭐냐? 네가 몸이나튼튼하면 모르지만 그런걸 허니?”
 
509
하고 말리었다.
 
510
“왜 못하긴, 하루 한번식 뛰기만하면 될걸 ──”
 
511
“그래도 넌 못해, 그것두 다 허는 사람이 있단다”
 
512
하고 좋지않은 얼골로
 
513
“그저 암말말고 내가 주는 밥이나 먹고 몸성이 있거라, 그럼 나에게는 벌어다 주는것보다도 더 적선일테니, 나종에야 어떻게 다 되는 수가 있겠지”
 
514
하고 도리어 동생을 위안하였다. 그리고 이것이 세시간이 채 못지나서 우연히 문틀에 머리를 딱부딧고는
 
515
“아이쿠!”
 
516
하고
 
517
“내 왜 이고생을 하나! 늘큰이 자빠젔는 저 병신을 먹일랴고? 어여 뼈까지 긁어먹어라, 이놈아!”
 
518
하고 그 병이 또 시작되었다
 
519
그러면 명렬군이 그 누님에게 악의를 잔뜩 품고 일본대판으로 노동을 하러 갈랴할 때 굳이 붙들어 말린것도 결국 그 누님이었다. 그는 말릴뿐만 아니라 슬피 울었다.
 
520
“내가 좀 심하게 했드니 그러니? 내 승미가 번이 망해서 그런걸 옥생각하면 어떠커니?”
 
521
하고 자기에 승미를 자기 맘대로 못한다는 애소를 하고
 
522
“난 네가 없으면 허전해 못산다, 좀 고생이 되드라도 나와 가치있자, 그럼 차차 내 살도리를 해줄테니 ──”
 
523
이렇게 눈물을 씻어가며 떠날려는 사람을 막았든것이다.
 
524
이걸 본다면 명렬군에게 용단승이 없구나, 하고 생각할런지 모른다. 그러나 그는 용단승 문제보다도 먼저 커다란 고민이 있었다. 떠날려고 뻣대다가 결국엔 저도 눈물로 주저앉고 만것을 보드라도 알것이다.
 
525
이러한 때면 그는 누님에게서 비로소 누님을 보는듯도 싶었다. 그리고 은혜를 입은 그 누님에게 악의를 품었든 자신이 끝없이 부끄러웠다. 마음이 성치못한 누님을 떼내버리고 간다면 그의 뒤는 누가 돌보아 주겠는가. 어떠한 일이 있드라도 누님을 떠러저서는 안되리라고 이렇게 다시 고치어 생각하였다. 말하자면 그는 누님에게 원수와 은혜를 아울러품은, 야릇한 동생이었다
 
526
나는 참으로 이런 누님은 처음 보았다. 기껏 동생을 들볶다가도 어떻게 어떻게 맘이 내키면 금세 빙긋이 웃지 않는가. 그리고 부모없이 자라 불상하다고 고기를 사다 재 먹이고, 국수를 디려다 비벼도 먹이고 하는것이다. 그러나 그건 아무래도 좋다. 나는 거기에서 일어나는 그 결과만 말하야 가면 고만이다.
 
527
이슬비가 나리는 날, 그 누님이 나에게 물통 하나만 사다주기를 청하였다. 집에도 물통이 있긴허나 하오래 쓴것이라 밑바닥이 다 삭았다. 움물의 물을 기러 먹을랴며는 반듯이 새물통이 하나 필요하였다. 물론자기가 가도 되겠지만 여자보다는 사내가 가야 흥정에 덜 속는다는 생각이었다.
 
528
나는 우산을 받고 행길로 나섰다. 하나 그 근방에는 암만 찾아도 철물전이 없었다. 종노에까지 나려와서야 비로소 물통하나를 사 들고 와서, 그에게 거슬른 돈과 내어주며
 
529
“물통이 별루 존게 없드군요!”
 
530
하니까
 
531
“잘 사섰읍니다. 튼튼하고 존데요!”
 
532
하고 물통을 안팎으로 뒤저보며 퍽 만족한 낯이었다.
 
533
그리고 그는 우중에 다녀온 나를 가엾단듯이 바라보드니
 
534
“신이 모두 젖었으니 절 어떠커서요?”
 
535
하고 매우 고맙다, 하다가
 
536
“이 얼마 주섰어요?”
 
537
“사십오전 주었읍니다”
 
538
“참 싸군요! 우리가 가면 육십전은 줘야 삽니다.”
 
539
그는 큰 횡재나 한듯이 아주 기뻐하였다.
 
540
그러나 물통을 이윽히 노려보다가 그 낯이 점점 변한은 이상하였다. 눈가에 주름이 모이고는, 그 병이 시작될 때면 언제나 그런거와 같이 마른 입살에 사가품이 이는것이다.
 
541
그는 물통을 땅에 그대로 탕, 나려치드니
 
542
“이년아!”
 
543
하고 마루끝에 않은 선이의 머리채를 잡는다. 선이는 점심을 먹고 앉었을 뿐으로 실상 아무 죄도 있을턱없었다. 몇번 그 뺨을 치고나서
 
544
“이년아! 밥을 먹으면 좀 얌전히 앉어 처먹어라, 기집애년이 그게 뭐냐?”
 
545
하고 얼토당토 않은 흉게를 하는것이다.
 
546
나는 고만 까닭없이 불안스러워서 얼골이 화끈 닳았다.
 
547
알고 보면 그 물통에 한군데가 우그러들은 곳이 있었다. 그것이 그의 마음에 썩 들지 않었다. 물론나에게 그런 말이라도 했으면 나도 그를 모르는 배 아니겠고 얼른 바꿔다 주었으리라. 허나 그는 남에게터놓고 자기의 불평을 양명히 말할랴는 사람은 아니었다. 공연히 아이를 뚜드려서 은연중 나를 불안스럽게 만들어 놓는것이 훨썩 더 상쾌하였다.
 
548
나는 이걸 말릴 작정도 아니요, 또는 그대로 서서 보기도 미안하였다. 주밋주밋하고 있다가 거는방으로피해 들어갈밖에 별 도리가 없었다.
 
549
명렬군은 아직도 성치 못한 몸으로 병석에 누어 있었다. 밖에서 나는 시끄러운 울음소리에 가뜩이나 우울한 그얼골이 잔뜩 찌프렸다
 
550
그리고
 
551
“음! 음!”
 
552
하고 신음인지, 항거인가 분간을 모를 우렁찬 소리를 내는것이다.
 
553
실로인즉 그는 선이가 누님에게 매를 맞을적만치 괴로운건 없었다. 선이는 날이 개이나, 비가 오나, 언제나, 매를 맞지 않을수 없는 이유가 붙어다녔다. 누님의 소리만 나면 그는 고양이를 만난 쥐같이 경풍을 하였다. 이렇게기를 못펴서, 열두살밖에 안된 게집애가 그야말로 얼골에 노란 꽃이 피게되었다.
 
554
명렬군은 일을 칠듯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앉었으나 그러나 두손으로 머리를 잡고는 그대로 묵묵하였다. 한참동안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듯 싶었다. 이윽고 그는 자리밑에서 그걸 끄내놓드니 낙망하는낯으로
 
555
“이게 웬 일일가?”
 
556
“글세?”
 
557
하고 나는 깜짝 놀라며 얼떨떨하였다.
 
558
그것은 명주에게 갔다가 “수취거절”이란 쪽찌가 붙어온 편지였다. 그 소인을 보면 어제 아츰에 띠었다가 오늘 되받은것이 확적하였다.
 
559
그동안 내가 며칠 안왔었든 탓으로 이번 병폐가생겼음을 물론이었다.
 
560
그는 고개를 수기고 있다가 다시 한번
 
561
“이게 웬일일가?”
 
562
하고 나를 처다보고는
 
563
“답장까지 하든 사람이 안받을 리는 없는데 ──”
 
564
“글세?”
 
565
나는 뭐라고 대답해야 옳을지 떨떠름하였다. 하릴없이 나도 그와 한가지로 고개를 숙이고는 그대로 덤덤하였다 그러자 언뜻, 그 언제이든가, 한번 잡지에서 본 기생집 이야기를 생각하고
 
566
“오!”
 
567
하고 비로소 깨다른듯이 고개를 꺼떡꺼떡하였다.
 
568
“아마 이런가부다”
 
569
이렇게 나는 그의 앞으로 다가앉으며
 
570
“기생의 어머니란건 너 아주 승악한거다, 딸이 연애 마두해서 바람날까봐 늘 지키고 있어요, 그러니까 그런 편지를 받으랴 하겠니? 말하자면 그 어머니가 편지를 안받고는 도루 보내고 보내고 하는거야”
 
571
“응!”
 
572
하고 깨다른듯 싶기에
 
573
“그러게 편지를 헐랴면 그 당자에게 넌즛넌즛이 전하는수밖에 없다.”
 
574
하고 의수하게 꾸려대었다.
 
575
여기까지 말을 하니 그는 더 묻지 않었다. 그런대로 올곧이 듣고, 우편으로 부친 편지를 후회하는 모양이었다.
 
576
이렇게 되니까 나도 그대로 안심되지 않을수 없었다. 왜냐면 그는 나를 통하야 편지를 보내고 답장만 보면 고만이었다. 그외에 아무것도 상대에게 더 바라지 않았다. 그가 명주를 찾아간다거나 할 염녀는 추호도 없을터이므로
 
577
나는 그런대로만 믿었다.
 
578
이날, 밤이 이슥하야 명렬군이 나를 찾아왔다.
 
579
나는 생각지 않었든 손님이라 좀 떠름이 바라보았다. 마는 하여튼 우선 방으로 맞어드려서
 
580
“밤중에 웬일이냐?”
 
581
하고 궁금하지 않을수 없었다.
 
582
그는 아무 대답도 없었다. 침착한 그리고 무거운낯을 하고 앉어서 권연만 피고 있었다.
 
583
그러다 겨우 입을 여는것이
 
584
“너 나좀 오늘 재워줄련?”
 
585
“그러려무나”
 
586
하고 선뜻 받긴 하였으나 나는 그게 무슨 소린가, 하였다. 입고온걸 보면 동저고리에 풀대님이다. 마는 나는 아무것도 묻지 않고 제대로 두었다. 그는 자기의 가정사에 관한 일을 남이 물으면 낯을 찌프리는 사람이었다.
【원문】생(生)의 반려(伴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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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유정(金裕貞) [저자]
 
  1936년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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