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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 밀링턴 싱그의 극 연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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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 3
이효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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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밀링턴 싱그의 극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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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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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극적 극[劇的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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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극작가로서의 싱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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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그의 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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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산곡(山谷)의 음영(陰影)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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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바다로 달리는 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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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주조사(鑄造師)의 결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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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성자(聖者)의 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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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서국(西國)의 인기아(人氣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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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비수(悲愁)의 데아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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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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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 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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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가 그의 비적할 곳 없는 광채를 가지고 엘리자베드 왕조 시대를 찬식(燦飾)한 이후 금일의 장관을 정출(呈出)하기까지 약 3세기 동안의 영국의 극단은 심히 적막하였다. 물론 그 동안에 드라이덴, 오트웨리 그리브, 골드 스미스 혹은 셸리단 같은 극작가들이 배출하여 위대한 전통을 계승하여 내려오지 않은 바는 아니었으나 그들은 능히 영국 극단을 세계 극단과 비견시켜 오진(伍進)시키지는 못하였다. 존스와 피네로를 음두(音頭)로 디오니서스의 찬가가 남창(濫唱)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에 들어서부터이요, 최근 영국 극계의 가장 위대하고 의미심장한 업적은 애란극운동(愛蘭劇運動)이었다. 해운동(該運動)은 애란극을 수립하는 동시에 많은 극작가를 산출하였으니 그 가운데에서도 애란극의 진정한 전설을 창조한 한 사람의 천재는 곧 존 밀링턴 싱그(1871~1909)이다. 비록 운동의 핵심적 지도인물은 예이츠였고 그의 작품이 후진 극작가들 사이에 여하한 세력적 영향을 끼쳤다 할지라도 비록 애란 국민극은 두 사람의 창의적 작가 싱그와 파드릭 코람을 낸 이후 창시되었고 비록 그레고리나 보일 등을 본받은 후진도 많다 할지라도 이래의 애란극이 싱그와 코람 두 사람의 계통을 이어서 발전하여 왔다. 중에도 싱그의 노력은 위대한 것이며 수많은 극작가 중에서 극작가로서의 세계적 공인과 명성을 획득한 유일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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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애란극장을 위하여 극작한 이들 중에서 발군적, 추심적 작가일뿐더러 그의 천재와 역량은 그를 최근 세계문학의 쟁쟁한 극작가 입센, 하우트만 혹은 메텔링크 등과 동등한 계열에 오치(伍置)하고도 오히려 남음이 있다. 어떤 비평가는 그를 셰익스피어에까지 견주었으나 이것은 확실히 그릇된 과장에 불과한 것이요, “셸리단과 골드 스미스로부터 쇼에 이르기까지의 전 영국 극중에서 가장 위대하다고 부를 이름이 다만 하나 있으니 그것은 곧 애란인 존 밀링턴 싱그의 이름이다” 고 한 하우의 평이 가장 안당하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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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히 38세의 단생애(短生涯)를 일세로 요절한 까닭에 극적저작(劇的著作)의 양이 적으나 그의 생애가 좀더 길었던들 얼마나한 위적(偉蹟)을 남겼을까를 생각하매 이 천재의 조서(早逝)를 거푸거푸 애석히 여기는 바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 수중에 남는 작품으로도 능히 그에게 ‘셰익스피어에 다음 가는 지위’를 서슴지 않고 위도(委渡)하기에 충분한 양과 질을 제공하고 있다. 물론 그에게는 소포클레스의 엄열(嚴烈)한 인생도 없고 셰익스피어의 장대한 구상도 없고 와일드의 피비린내 나는 광분적 열정도 없다마는 진정한 미에 영동(靈動)되어 진실한 생명의 환상을 아름다운 형식과 균제(均齊)된 구조로 표현하는 문단의 극작가에게만 부여된 교묘한 수법과 기술을 가진 생래의 극작가였다. 인간생활에 깊이 동감된 그의 상상으로부터 그는 다만 교묘할 뿐이 아니라 진정한 의미에서 ‘위대한’ 작품을 창조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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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극적 극(劇的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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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장은 이 논문 전체로 보아 그다지 중요한 대문이 아니기에 여기에서는 생략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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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극작가로서의 싱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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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나순가(羅旬街)에 어떤 작은 셋방에서 장래 불란서 문학비평가가 되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라신을 연구하고 있었던 싱그를 발견한 예이츠의 공적은 ‘또 한 사람의 셰익스피어’를 발견했다 하여 왕왕이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공적에도 비교되어 왔다. 1898년 5월 예이츠의 충고와 격려로 싱그가 파리를 떠나 “그들의 한 사람과 같이 그곳에 살고 아직 표현되지 못한 그들의 생활을 표현하기 위하여” 아란도로 건너갔을 때에 비로소 이 천재는 그의 바른 도정(道程)의 첫걸음을 떼놓은 것이었다. 아란도 케리 위크로 콘네마라 등 개척되지 않은 이 원야(原野)에서 소박한 농민과 밀접히 접촉함으로써 시인은 그의 예술의 풍부한 영감을 발견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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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그는 매년의 대부분을 농민의 주방에서 살고 그들의 노화(爐火)와 포틴주로 그의 피를 녹이고 그들의 가지가지의 전설에 귀가 울렸다. 적막한 언덕 위에 바람 쏘이고 황량한 해안을 방황하고, 혹은 바다와 하늘과 신선한 공기의 숭대한 미에 취하여 어부들과 같이 조각배 타고 섬 멀리 돛대 달아 보았다. 추수기의 달이 높을 때에는 취흥에 겨운 마을 사람의 소동에도 참가하여 보았다. 이렇게 하여 마침 농민적 열정이 그의 혈조속에 굵게 맥치게 되었다. 그는 그의 예술적 배양을 파리시대나 구주(歐洲) 방랑시대에서 보다도 더 많이 이 풍부하고 조야(粗野)한 생활과의 접촉에서 얻었다는 것은 그의 고백에 의하여도 명백하다. ———“이웃방의 비복(婢僕)들의 이야기를 듣게 한 옛 위크로 가정의 판장 틈에서 나는 어떠한 학문에서보다도 더 많은 도움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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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농민 생활에서 그는 진실성과 희열에 넘치는 신선한 희곡상(戲曲相)을 잡으려 노력하였고, 따라서 이 생활 속에 자연주의와 비도덕주의의 그 예술 신조가 깊이 뿌리박혔다. 그는 그의 예술의 기초를 진실에 두고 무엇보다도 먼저 생기있는 성격을 통하여 그것을 표현하였다. 그의 극중 인물들은 결코 괴요적(怪妖的) 영웅도 아니오, 꿈을 먹고사는 선인(仙人)의 배(輩)도 아니오, 피와 살의 현실 세상의 조야하고 열정적인 인물들이다. 그는 괴뢰적 인물을 철저히 배격하고 몽환적 희곡에 반대하여 진실주의를 고창하고 시종여일하게 인생을 현실적 희곡적으로 해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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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간이 말한 것과 같이 “그는 그 시대의 희곡에서 격리하고 도덕주의의 기반(羈絆)을 완전히 탈리하였으며” 진리를 위한 진리의 탐구를 배척하여 희곡의 본질은 ‘진실과 환희’ 라고 선언하고 ‘카톨릭’ 이나 ‘프로테스탄트’나 정치나 개조나 도덕이나 문제나 똑같이 무관심한 태도로 대하였다. 「서국(西國)의 인기아(人氣兒)」의 서문 가운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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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에는 진실한 환희가 있어야 한다. 이것이 곧 지적 현대극이 실패한 것이다. 현실의 신성과 야성 가운데에서만 풍요한 환희는 찾을 수 있나니 희가극의 허위적 환희에 사람들은 이미 싫증난 지 오래이다. 좋은 연극에 있어서는 한마디 한마디의 과목에 모두 호도와 능금의 풍미가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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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명언하였으며 다시 「주조사(鑄造師)의 결혼」의 서문 가운데에 이 태도는 더욱 선명히 나타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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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은 ———불란서 유로 말하면 ———엄숙한 문제의 포함된 정도에 의하여가 아니라 우리들의 상상력이 섭취하여야 할 식물인 자양물의 포함의 정도에 따라 엄숙하게 된다. 우리는 마치 화학약품상에나 혹은 도량형상(度量衡商)에 가는 것 같이 극장에 가는 것이 아니라 쾌락과 감흥을 가지고 우리들의 필요한 식물을 취할 수 찬연(餐宴)에 참여하러 가는 때와 같은 흥을 가지고 극장에 가는 것이다. 서반아나 영국이나 불란서에서나 연극이 가장 풍요한 시대에는 항상 이러하였다. 연극의 창생기 및 쇠미기(衰微期)에 있어서는 흔히 교훈적으로 기울어지기 쉬운 것이다. 요사이의 극장은 여러 가지 함축된 문제의 마취제와 최근 희가극의 마주(魔酒)를 너무나 많이 축장(蓄藏)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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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은 교향악과 같이 가르치는 것도 아니오, 사물을 증명하는 것도 아니다. 문제를 분석하고 조직을 가르치는 자는 가렌의 약방서(藥方書)와 같이 곧 풍조에 뒤떨어지고야 만다 ———입센을 보라, 독일파 극작가를 보라 ─ 그러나 벤 존슨이나 모리엘의 가장 좋은 극은 원리(垣籬) 위의 흑매(黑苺와 같이 결코 풍조에 벗어나는 법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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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극론을 싱그는 실제적 작극 상에 있어서도 그대로 준봉하고 실행하였다. 그의 연극 속에서 문제와 의견은 일절 금물이다. 입센이 자연에서 인생의 의미를 독취(讀取)하려 하였다면 싱그는 다만 자연 그대로를 그의 거울 속에 반영시켜 보았다. 입센이 우리로 하여금 생각케 한다면 싱그는 다만 ‘숭엄하고 조박(粗朴)한’ 인생을 ‘진실과 환희’를 가지고 우리에게 보여줄 따름이다. 그의 비교훈적 태도가 애란 문예운동의 지도자인 예이츠의 성명(聲明)과 일찍이 부합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우리는 선전극이나 혹은 주로 어떤 명확한 도덕적 목적을 달하기 위하여 쓴 극을 바라지 않는다. 예술은 여론이나 의견과 관련되는 것이 아니라 정서와 성격의 진실성과 관련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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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그는 ‘리얼리스트’이다. 그러나 그의 ‘리얼리즘’은 결코 건조무미한 것이 아니라 상상적 요소를 다분히 함유한 것이오, 로세티의 소위 ‘인간적 기교의 혼 없는 자기 반영’은 아니다. 그는 인간생활과 우주를 깊이 관취(觀取)하고 현실을 흙 향기 높은 시적 사조(辭藻)로 표현하였다. 애란 농민과 농부(農婦)의 내적 쟁투를 경탄할만한 어사(語辭)로 그려냈다. 크리스티의 연홀(戀惚)한 장구(章句) 데아드라의 장미(壯美)한 과목, 모라의 단장적(斷腸的) 통곡으로 싱그는 단순한 ‘리얼리스트’ 이상의 천분을 보였다. 많은 비평가가 지적해 낸 것같이 싱그의 가장 큰 공적의 하나는 그가 생활과 시를 조화시키고 양자를 극장 속에 공존시킨 것이다. 하우는 말하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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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 극작가는 두 가지의 중대한 곤란에 직면하였으니 두 가지 다 조화의 곤란이다 첫째는 생기 . 있고도 즐거운 어사로 복잡하고도 순진한 생활에 진실성을 부여함이요, 둘째는 이 진실성에 이해하기 쉽고도 자연스러운 형식을 부여함이다” 고 하였으니 이 두 가지의 곤란을 난(難) 없이 격극(擊克)하여 나간 것은 곧 싱그이다. 주조사나 방랑인이나 그의 인물은 다 같이 시인이요 향기 높은 음악적, 그러나 결코 부자연하지 않는 언어로 서정적 심사를 표백한다. 자연주의와 서정주의가 모호(毛毫)도 저어치 아니하고 이렇게 완전히 혼합 조화된 것은 싱그의 희곡을 내놓고는 찾을 곳이 없을 것이다. 셰익스피어를 영원케 하고 칼데론을 살리고 희랍 극작가를 불후케 한 그런 참된 연극은 언어가 에덴동산에서 새로 솟은 듯한 생기를 띠운 생활 속에서 솟아나올 것이다. 깊고도 넓은 인생의 흥미는 감정의 음악과 한마디 한마디 심도와 음영을 가진 풍요한 언어로 표현하여야 할 것이니 생기 있는 언어의 미묘한 유동은 생명의 중요한 피복(被服)이요, 언어와 열정과의 관계는 근육과 인체와의 관계에도 혹사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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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장 이하에 싱그의 작극상 용어와 그의 극중 인물의 성격과 극의 행동 기타 제반 기교문제를 논하였으나 시간 관계로 인하여 마치지 못한 채 불가불 여기서 붓을 놓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습니다. 본 장도 본 장이려니와 이 논문의 중점인 제4장, 즉 그의 작품에 이르러서는 한마디도 언급치 못하였으니 고양이도 못 그렸거니와 범의 시늉도 못 냈습니다. 그러나 세부득하여 여기에 이르렀으니 널리 독자 제현의 양해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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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공론 1930. 3
【원문】존 밀링턴 싱그의 극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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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2년 05월 2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