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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리석은 석반(夕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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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상
이상
1961년 현대문학 1월호에 발표한 이상의 일문 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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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석은 석반(夕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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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복(滿腹)의 상태는 거의 고통에 가깝다. 나는 마늘과 닭고기를 먹었다. 또 어디까지나 사람을 무시하는 후쿠진쓰케(福神漬[복신지])와 지우개 고무같은 두부와 고춧가루가 들어 있지 않는 뎃도마수 같은 배추 조린 것과 짜다는 것 이외 아무 미각도 느낄 수 없는 숙란(熟卵)을 먹었다. 모든 반찬이 짜기만 하다. 이것은 이미 여러 가지 외형을 한 소금의 유족(類族)에 지나지 않는다. 이건 바로 생명을 유지하는데 목적을 두고 있는 완전한 쾌적 행위이다. 나는 이런 식사를 이젠 벌써 존경지념(尊敬之念)까지 품고서 대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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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방에 온 후, 아직 한 번도 담배를 피지 않았다. 장지(長指)의, 저 러시아 빵의 등허리 같은 기름진 반문(斑紋)은 벌써 사라져 자취도 없다. 나는 약간 남은 기름기를 다른 편 손의 손톱으로 긁어 버리면서, 난 담배는 피지 않습니다 하고 즉답할 때의 기쁨을, 내심으로 상상하며 혼자 유쾌했던 것이다. 요즘 나의 머리는 오로지 명료하다고 말할 수 없으나 적어도 담배 연기만을 제외한 명료만은 획득하고 있음을 자부한다. 물론 나는 단 한 번도 내 두뇌를 시험해 본 일이 없으므로 분명한 것은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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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색(暮色)은 침침하여 쓰르라미 소리도 시작되었다. 외줄기 도로에 면한 대청에 피차의 구별 없이 모여든다. 그것은 오로지 개항장(開港場) 비슷한 기분이다. 그리고 서로 상대에게 식사하셨냐고 물음으로써 으레 그 다음에 있을 어리석고 쓸데없는 잡담의 실마리부터 만드는 것이다. 이건 정말 평화롭고도 기묘하지만 그러나 이런 것이 그들에겐 지극히 자연적으로 취급된다. 실로 부러운 잡음들이다. 그중 한 사람은, 어느 고리대금을 하는 경찰서장보다도 권세에 있어 훨씬 능가한다는 점을 길게 말한다. 모두 약속이나 한 것처럼 감격한다. 그것은 그 고리대금쟁이가 은행이율에 비해서 다만 1푼 밖에 높지 않는 이식(利息)을 취하기 때문에, 한 촌락의 존경을 여하히 일신에 모으고 있느냐에 의하여 권세는 증명된 셈이다. 도적이 결코 그를 습격하지 않는 것은 24시간 중 그의 집 문이 개방되어 있는 것만 보아도 내맥(內脈)을 빤히 알 수 있을 것이다. 그쯤 되면 나도 감격하여 무의식 중에 목을 끄떡였다. 그리고 장기를 두었다. 모두 한 덩어리가 되어 훈수를 한다. 마지막엔 완전히 훤소(喧騷)의 덩어리로 화해 버린다. 그러는 중에 여러 번 주연자(主演者)가 무의식 중에 교대되었다. 호화스런 스포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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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20여 호가 못 되는 촌락 한가운데를 관통하는 한 줄기 통로를 왕래한다. 나는 집들을 주의 깊이 더구나 타인에게 들키지 않게 들여다보았다. 결단코 그 속은 어두워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모깃불을 올려서 연기는 푸르고 누렇다. 대규모의 모기 쫓는 불이다. 그것은 독가스 못지않는 독과 악취와 자극성을 갖고 있어 어느덧 눈물마저 짜내게 한다. 나는 이집 저집 들여다보던 것을 중지한다. 순전히 사람을 몰아내기 위해 올리는 모깃불이기도 하다. 별이 나왔다. 일찍이 아무도 촌사람에게, 하늘에서 별이 나온다는 걸 가르쳐 준 사람이 없으므로 그들은 별이란 걸 모른다. 그것은 별이 송두리째 하느님에 틀림없다. 더구나 1등성, 2등성 하고 구별하는 사람의 번쇄(煩瑣) 야말로, 가히 짐작할 수 있도다. 불행한 사람들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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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 중에도 백면의 청년이 있어 이 촌락의 숭고한 교양을 교란한다. 경멸해야 할 작자다. 그런 백면들은 나이트가운을 입기도 하며, 머리에 포마드를 바르기도 하며, 바이올린을 켜기도 하며, 신문을 읽기도 하면서 촌사람을 얼떨떨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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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촌락은 평화하다. 나는 마늘 냄새 풍기는 게트림을 하였다. 마늘, 이 토지의 향기를 빨아 올린 귀중한 것이다. 나는 이 권태 바로 그것인 토지를 사랑하는 동시, 백면들을 제외한 그들 촌사람의 행복을 축복하고 싶다. 이제 나는 움직일 수 없는 태산처럼 만족 상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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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인간의 능력으로써 어느 정도 타태(楕怠)할 수 있느냐가 문제일까. 사실 이 목적도 없는 게으른 생활은 어쩐 일인가. 도대체 이것이 과연 생활이라고 이름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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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풍은 적막하여 새벽녘의 체온은 쥐에게 긁어 먹힌 듯 감하(減下)한다. 어느 정도까지 감하하면 겨우 그제부터 경계해야 할 상태가 되는 것일 게다. 곧 잠에서 깨어난다. 아침 햇빛은 깊이 그리고 쓸쓸한 음영과 함께 뜰 가운데 적막하다. 가을의 구슬픔이 은근히 몸에 스며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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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오줌이 마렵다. 이건 어젯밤부터의 소변일 것이다. 잠시동안 오줌이 마렵다는 것을 사유 속에 유지하면서 막연한 것을 생각한다. 아무 일도 떠오르지 않는다. 이건 소위 아무것도 생각지 않는 것보다 더욱 불순한 상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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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나는 오줌은 싸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과, 독소의 체내 침전은 신체에 유해하다는 데 정신이 쏠렸다. 나는 놀라 버린다. 호박의 백치 같은 잎사귀 밑에다 소변을 한다. 들은 이제야 누렇게 물들어 아침 햇빛에 제법 아름답게 빛나고 있다. 그러는 동안에도 나는 역시 어떤 정리된 것을 생각하는 것은 불가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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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시다. 밤과 낮이 전혀 전도되어 있는 내게 있어 오전 7시에 잠을 깬다는 것은 지극히 우스꽝스런 일이다. 이건 정위생(定衛生)에 반드시 나쁘다고 나는 생각해 버린 것이다. 나 같은, 즉 건전한 신으로부터 버림받은 인간에게 있어 오전 7시의 기상은 오로지 비위생이며 불섭생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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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침구 속에 파고들어가, 진짜 수면은 이제부터라고 주장하면서도, 의식적으로 자는 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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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들지 않는다. 우스울 지경이다. 더구나 아침 공기는 너무나 싸늘한 것 같다. 서늘하다는 것은 내게 있어 춥다는 것과 같다. 일어날까? 일어나서 어떡하겠다는 건가? 그걸 생각하면, 갑자기 불쾌해지고 모든 시간이 나에겐 터무니없는 고통의 연속 같기만 해서, 견딜 수 없다. 이러는 동안에 몸은 더욱 식어들 뿐, 나는 침구 속에 깊이 파고들면서 얼떨떨해진다. 너무 파고 들면 발이 나온다. 발이 공기 속에 직하(直下)로 튀어나온다는 것은 내게 있어 가장 중대한 위구(危懼)이다. 발은 항상 양말이나 이불 속에 숨어 있어야 한다. 벌써 초조해진 이상, 잠든다는 것은 단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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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건 또 어떤 일인가. 배가 명동(鳴動)하는 것이다. 소화 성적은 극히 양호하다고 하던데, 벌써 위주머니 속엔 아무것도 남았을 리 없는데, 전혀 원인을 알 수 없다. 필시 발, 발이 싸늘해진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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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이건 다 불쾌하다는 걸 계속해서 생각하는 것은 불쾌하다. 그러자 이번은 이웃방 사람들의 식사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꼭 개가 죽 먹을 때의 그 소리다. 인간이 식사하는 것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숨어서 들을 때, 개의 그것과 똑같다는 것을 발견함은 일대 쾌사(快事)라 하겠다. 나는 그 반찬들을 상상해 본다. 나의 식사와 조금도 다르지 않는 것들일 것이니 말이다. 이러고 보니 나는 몹시 시장하다. 빨리 일어나 밥을 먹자. 그건 좋은 생각이다. 그럼 밥을 먹은 후 또 뭣을 먹으면 좋을까. 먹을 것이라곤 없다. 닭이 요란스레 울부짖는다. 알을 낳는 것일 게다. 아니라면 괭일까. 괭이라면 근사하겠다. 맘속으로 날개가 흩어지는 민첩한 광경을 그려 보면서 마침내 일어나 볼까. 따뜻한 갓 낳은 계란이 하나 먹고 싶고나 하고, 부질없는 일을 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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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오고 가는 방향이 서로 어긋나는 생리상태와 심리상태는 도대체 어쩌자는 셈일까. 심리상태가 뭣이든 사사건건마다 생리상태에 대하여 몹시 노하고 있는 것이다. 아니라면 그 반대일 것이다. 오로지 그렇게밖에 볼 수 없는, 수습할 수 없는, 상태며 난국이다. 나는 건강한지 불건강한지, 판단조차 할 수 없다. 건강하다면 나는 이 세상 모든 건강한 사람의 그 누구와도 (조금도) 닮지 않았다. 불건강하다면 이건 얼마나 처치 곤란하리만큼 뻔뻔스런 그렇게 약해빠진 몰골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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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를 보았다. 9시 반이 지난. 그건 참으로 바보 같고 우열(愚劣)한 낯짝이 아닌가. 저렇게 바보 같고 어리석은 시계의 인상을 일찍이 한 번도 경험한 일이 없다. 9시 반이 지났다는 것이 대관절 어쨌단 거며 어떻게 된다는 것인가. 시계의 어리석음은 알 도리조차 없다. 세수하기 전에 나는 잠시 동안 무슨 의의라도 있는 듯이 뜰을 배회한다. 뜰 한구석에 함부로 자라는 여러 가지 화초를 들여다본다. 그것들은 다 특색이 있어 쾌적하다. 아침 햇볕에 종용(從容)히 목을 숙인 것만 같아서 단정하고도 가련하다. 기생화 ― 언제면 이 간드러진 이름을 가진 식물은 꽃을 보여줄까 하고, 내가 걱정하자, 주인은 앞으로 3일만 지나면 꽃이 필 것이라고 말한다. 아직 꽃봉오리도 나와 있지 않으니 터무니없는 거짓말일 것이다. 주인의 엉터리 대답은 참말처럼 꾸미고 있어서 쾌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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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숙집 주인은 우스꽝스런 사나이다. 그 멀쩡하게 시침 떼고 있는 얼굴 표정은 사람을 웃기기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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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꽃에 벌이 한 마리 앉았다. 벌은 개구리 같은 형태를 하고 있다. 이 소[牛] 같은 꽃에 열심히 물고 늘어졌대야 별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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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자넝쿨엔 상당수의 열매가 늘어져 있다. 제법 오렌지 비슷한 것은 사람의 불알 같아서 우습다. 특히 그 전표면에 나타나 있는 많은 소돌기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심심케 하지 않는 형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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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얼굴을 씻으면서 사람이 매일 이렇게 세수를 해야 한다는 것이 얼마나 번쇄한가에 대해 고민하였다. 사실 한없이 게으름뱅이인 나는 한 번도 기꺼이 세숫물을 써본 기억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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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상이 오기까지 나는 이제 한번 뜰 가운데를 소요하였다. 그러자 남루한 강아지가 한 마리 어디서 나타났는지 끼어들었다. 이 여인숙에선 개를 기르지 않으니 이건 다른 집 개일 것이다. 내겐 전혀 구애 없이, 그러면서도 내심으론 몹시 나를 두려워하는 듯, 나에게서 약간 거리를 둔 지점에 걸음을 멈추는 기색도 없이 머물러 서서, 내 눈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땅바닥 위를 벌름거리며 냄새만 연방 맡는다. 그러자 여인숙집의 일곱 살쯤 된 딸아이가 옥수수(알맹이는 다 먹어 버린) 꽁다리를 그 강아지 앞에 던졌다. 강아지는 잠깐 그 냄새를 맡아 보다가, 이윽고 그것이 식용에 적합하지 않는 물체란 걸 알아차리자, 원래 아무것도 없는 땅바닥을 다시 한번 맡아 보는 시늉을 하곤, 거기서마저 아무런 소득이 없자 그대로 살금살금 그곳을 떠나 버렸다. 나는 갑자기 촌락 중에 득실거리는 저 많은 개들은 다 뭣을 먹고서 살아 있는 것일까 하고 그것이 걱정되기 시작하였다. 생각하면 개를 기르는 주인이 제각기 일정한 시간에 일정한 식물을 개에게 주겠지. 그럼 개주인은 항상 그렇게 빠짐없이 그것을 이행하는 것일까. 어느새 잊는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럴 때 한 집안에서 기르는 여러 마리 개는 어떻게 될까. 촌락은 좁다. 사람들은 옥수수 꽁다리 같은 물건 이외엔 잘 물건을 버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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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담할 뿐이다. 그러나 개도 개지, 글쎄 아무것도 없는 땅바닥을 열심히 몇 번씩이나 냄새를 맡는 것은 얼마나 우열한 일이뇨. 개는 개다. 나는 인간으로 태어나서 행복하다 ― 역시 이런 걸 생각하는 자체부터가 아무것도 없는 땅바닥을 냄새 맡는 것과 다름없을 것이다.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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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도 가버렸다. 나는 이제 무엇을 관찰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나는 울타리 너머로 산과 들을 바라보기로 한다. 산은 어젯날과 같이, 자체마저 알 수 없는 새벽녘 빛을 대변하고 있다. 들은 어젯밤 이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저 밑바닥은, 태양도 없는 어두운 공포의 한가운데 있으면서도, 얼마나 무신경한 둔감 바로 그것인가. 산은 소나무도 없는 활엽수만으로써 전혀 유치한 자격뿐이다. 이 광대무변한 제애(際涯)도 없는 세련되지 못한 영원의 녹색은 도대체 어디로부터 어디에까지 계속하고 있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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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정도로써 이 홍수 같은 녹색의 조망에 싫증이 나버렸다. 나는 하늘을 쳐다보기로 한다. 원래부터 하늘엔 무어고 있을 리 만무하다. 그러나 구름이 있다. 그것은 어제도 백색이었다. 그리고 오늘도 하얗다. 여름 구름에도 있을 성싶지 않는 단조롭고도 저능한 일이다. 구름의 존재란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비가 된다고? 나는 아직 한 번도 구름이 비가 된다는 것을 믿어본 적이 없다. 그렇다면 저건 자기 스스로를 속이고 있다. 부끄러운 줄도 모른다. 완전히 부운(浮雲) 같은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이 아침의 이 세상의 어느 나라의 지도와도 닮지 않은 백운을 망연히 바라보며 인생의 무한한 무료함에 하품을 하였다.
 
 
27
감벽(紺碧)의 하늘, 종일 자기 체온으로 작열하는 태양, 햇볕은 황금색으로 반짝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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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한 까닭인가? 저 감벽의 하늘이 중후하여서 괴롭고 무더워 보이는 것일 게다. 화초는 숨이 막혀 타오르고, 혈흔의 빨간 잠자리는 병균처럼 활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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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파리와 함께 이 백주(白晝)는 죽음보다도 더욱 적막하여 음향이 없다. 지구의 끝 성스런 토지에 장엄한 질환이 있는 것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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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도 그늘에 숨고 개는 목을 드리우고 있다. 대기는 근심의 빛에 충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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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마디 마디가 봉명(封命)을 목표하고 쑤신다. 모든 나의 지식은 망각되어 방대한 암석 같은 심연에 임하여, 일악(一握)의 목편(木片)만도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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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온적인 체취를, 겨우 녹슬어 가는 화초의 혼잡 속에 유지하고 있는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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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된 포옹, 사랑하는 자들이여. 어느 곳으로? 정서의 완전한 고독 속에서 나는 나의 골절마다 동통을 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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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나에겐 들린다. 이 크나큰 불안의 전체적인 음향이. 쇠파리와 함께 밑바닥 깊숙이 적요해진 천지는, 내 뇌수의 불안에 견딜 수 없음으로 인한 혼도(昏倒)에 의한 것이다. 나는 그걸 알고 있다. 이제 지상에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으면 안 된다. 만일 이대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면 우주는 그냥 그대로 암흑의 밑바닥에서 민절(悶節)하여 버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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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어선 집들은 공포에 떨고 계시(啓示)의 종이 조각 같은 백접(白蝶) 두서너 마리는 화초 위를 방황하며 단말마의 숨을 곳을 찾고 있다. 그러나 어디에 그런 곳이 있는가. 대지는 간모(間毛)의 틈조차 없을 만큼 구석마다 불안에 침입되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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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였다. 나의 가슴에 음향한 것은 유량한 종소리였다. 나는 아차! 하고 머리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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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의 성욕에 대한 결핍. 이 엄중하게 봉쇄된 금제의 대지에 불륜의 구멍을 뚫지 않으면 안 된다.
 
38
이 이상 참을 수 없는 충혈. 나는 이 천년처럼 무겁고 괴로운 건강한 악혈(惡血) 속을 헤엄치고 있다. 경계의 종이 마지막 울렸던 것이다. 그러나 역시 지상엔 아무 일도 일어날 기색조차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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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시뻘겋게 충혈되고 팽창한 손가락이 손가락질하는 곳으로, 쑤시고 아픈 보조를, 소보다도 둔중히 일보 일보 옮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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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백접의 번득임도 음삼(陰森)한 사물의 그림자 속에 숨어 버린 후, 공간은 발음이 막혀서 헛되이 울고 있다. 적적히. 적적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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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순, 숨결의 거친 곳에…….
 
42
사태는 그 절정에서 폭발하였다. 그리하여 촌락의 모든 조화와 토인(土人)은 정상적인 정서를 회복하였다.
 
43
나는 안심하였다. 그러고서 욕망하였다. 성욕을 수욕(獸慾)을, 나의 구간(軀幹)은 창백히 유척(庾瘠)하였다. 성욕에의 갈망으로 초조와 번민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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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의 이런 구멍에서 나오는 것일 게다. 한 마리의 순백한 암캐가 무겁게 머리를 드리우고 농밀한 침으로 주둥이를 더럽히면서 슬금슬금 나온다. 어떻게 될 것이냐. 지구의, 한없는 성욕의 백주(白晝) 속에서, 여하히 이행되어갈 것인가, 하고 나의 가슴은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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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백한 털은, 격렬한 탐욕 때문에 약간 더럽혀졌으므로, 오래된 솜을 생각게 하였다. 그리고 방순(芳醇)한 체취를 코에서 발산하고 있었다. 코 가장자리의 유연한 얄팍한 근육은 끊임없이 씰룩씰룩 신경질로 씰룩거렸다. 그리고 보조는 더욱더욱 졸린 듯이, 돌멩이 냄새를 맡기도 하며, 나무 조각 냄새를 맡기도 하며, 복숭아씨 냄새를 맡기도 하며, 마침내 아무것도 없는 지면(地面) 냄새를 맡기도 하면서, 연신 체중의 토출구(吐出口)를 찾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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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문(陰門)은 사향처럼 살집 좋게 무게 드리워서 농후한 습기로 몹시 더럽혀져 있었다. 그리고 때로는 목을 비틀고서 제 음문을 냄새 맡기까지도 하였다. 그러나 불만과 대기의 무료함이 그 악혈에 충만한 체중을 더욱더욱 무겁게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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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취기는 먼 곳을 불렀다. 한 마리의 순흑색 개가 또 어디선지 모르게 나타나 괴상한 이 고혹적인 음문의 주위를 걸음마저 어지러이 늘어놓는다. 암캐는 꼬리를 약간 높이 들어올리면서 천천히 정든 표정으로 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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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비린내 나는 공기가 유동하면서, 넋을 녹여낼 듯한 잔물결의 바람이 가벼운 비단바람을 흔들어 일으켰다.
 
49
일광 아래서 코도반처럼 촌처녀의 피부는 염염(艶艶)히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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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들의 체취는 목장 풀과 봉선화 향기로 변하였다. 이 처녀들도 격렬한 노역엔 땀을 흘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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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한 맑은 물 같은 땀…… 곡물처럼 따뜻이 향기 나는 땀…….
 
52
저 생률(生栗)처럼 신선한 뇌수는 동백 기름을 바른 모발 밑에서 뭣을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무슨 꿈을 꾸고 있는 것일까. 황옥(黃玉)처럼 투겨진 옥수수의 꿈. 우물 속에 움직이는 목고어(目高魚)의 꿈. 그리고 가엾은 물빛 인견(人絹)의 꿈. 그리고 서투른 사랑의 꿈.
 
53
촌처녀의 성욕은 대추처럼 푸르기도 하고 세피아 빛으로 검붉기도 하다.
 
54
그러나 그 중에 증기처럼 백색인 처녀를 보기도 한다. 목공미(木公尾)를 머리에 이고, 내 곁을 지나는 것이 께름해서, 일부러 머언 길을 돌아가는 그 증기 같은 처녀…….
 
55
조부는 주름투성이인 백지 같은 한 방 속에 웅크리고서 노후를 앓으며 묵묵히 죽음을 기다리고 있다. 고요한 골편이여, 우울한 유령이여.
 
56
나는 어젯밤도 조셋드와 요트와 해변 호텔과 거류지와의 혼잡한 도회의 신문 같은 꿈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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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뇌는 어젯날 신문처럼 신선함을 잃으며 퇴색하고 있었다.
 
58
나는 이들 처녀 앞에서 이런 부륜(腐倫)한 유혹을 품고 길 잃은 아해가 되어 버렸다.
 
 
59
아해들은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 풀덤불 속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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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랗게 질리면서 납촉(蠟燭)처럼 타고 있다. 축 늘어진 나의 자태를, 저 증기의 처녀는, 거친 발[簾] 너머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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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완전히 불쌍하게 보이겠지. 또는 메마른 풀 같은 나의 듬성듬성 난 수염이 이상해 보이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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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취한 양 비틀거리며 나는 세수수건을 지팡이로 의지하며 목욕장 속으로 떨어져 갔다. 모든 걸 물에 흘려 버리자는 슬픈 생각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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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는 약간 평화하다. 그러나 나의 함정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원문】어리석은 석반(夕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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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2년 08월 2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