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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고(遣稿)
채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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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閑題[한제] 數片[수편]
 
 
 

1. 主戰論[주전론]

 
 
3
작가와 평론가의 싸움을 평한다면 작가는 평론가더러 평론다운 평론을 쓰지 못한다고 나무라고 평론가는 작가더러 작품다운 작품을 쓰지 못한다고 나무라고 이래서 요새 그 둘 사이는 좀 심한 말이지만 견원(犬猿)의 갈등다 움이 있다.
 
4
누구는 이것을 상서롭지 못하다 하여 우세(憂世)의 정성으로 통탄을 하며 말리려 들지만 그것은 기우(杞憂)요 헛수고다. 나 같은 사람도 도리어 크게 싸우라고 어여차 소리를 질러주는 자다.
 
 
5
적어도 문단이다. 시비(是非)란 그럼직한 내력이 있어서 생기는 법이다.
 
6
그런 것을 일부 호사객들이며 ‘문단 당(唐)나라 족속’ 들이 걱정을 한다거나 뜯어말리려 든댔자 시골 장날 파장어림에 어울린 주정배기의 싸움이 아닌 바에야.
 
7
“어어 그런가. 그럼 내가 잘못했네. 이 사람……”
 
8
“아아니 아닐세! 내가 잘못했을세!”
 
9
이런 조로 회의나 하고 막걸리나 한잔씩 나누면서 뒤없이 헤어지게 될 리도 만무하거니와 시비할 근거가 있는 시비인만큼 하면 할수록 싸움의 묘리도 득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어부의 이(利)를 차지하는 딴 놈이 있는 것도 아니니 그저 끝장이 나도록 싸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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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라는 부류의 인종과 평론가라는 부류의 인종과는 어느 때 어느 곳을 보아도 의(誼)가 그다지 좋진 못하다. 노상 응얼응얼 다투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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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다투면 그놈이 약이 되어 부지중에 서로 공부가 되고, 공부를 해서는 또 다투고, 다투면 약이 되고 그러는 동안에 저절로 살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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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이미 성인이 된 선진사회들의 문단 이야기지만, 그러니 자랄대로 자랐고, 해놓을 만큼 할 일을 해놓은 그런 데서도 영양상 싸움이 끊이지 않거늘, 하물며 조선은 문단이라야 겨우 ‘걸음마 걸음마’ 하고 발띄엄쯤 하게 된 아기적이니 어서어서 자라자면 싸움도 많이 해야 한다. 아기는 잠을 자야 자라지만 문단은 싸워야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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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단 작가 대 평론가의 시비뿐일 게 아니다. 작가 대 작가, 평론가 대 평론가 그리고 문단 대 아머추어…… 이렇게 얼려붙어서 다각적으로 싸울 일이다. 두개골쯤 터져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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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개와 해오리가 싸우면 이(利)는 애먼 놈인 어부가 본다. 그러나 문단의 싸움은 문단이 이를 본다. 피를 토하고 죽지 아니할이만큼만 싸우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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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주전론(主戰論)을 내걸고 싸움 충동이를 시키고 보니 그래 놓고 싸움이 붙으면 나 혼자만 살금 뒤로 빠져 뒷짐 지고 구경이나 하려는 것 같아 너무 교활하다. 부득이 절개를 무릎 밑에 접어놓고 시비를 하나 청한다. 오직 묵살코 대거리를 아니해 주면 차라리 다행이겠다.
 
 
 

2. 懶怠群[나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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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평론가더러 평다운 평론을 하지 못한다고 나무라고 평론가는 작가 더러 작품다운 작품을 쓰지 못한다고 나무라고, 이래서 요새 작가와 평론가가 서로 상치한다고 전절에서 말을 했는데, 사실 양편이 다 그럼직한 험점을 차고 있어 싸움은 어리뻥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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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명색이 작가측에 들면서 이런 게 다 부끄러운 말이지만 작가는 아무리 평론가만 나무라도 작품다운 작품을 써내놓지 못한 게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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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편 평론가들도 작가들을 나무라기는 하지만 평다운 평론을 하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니까 이 싸움은 피장파장이다. 그러나 팔이 안으로 옥아서 그런지 내가 보기에는 작가에게보다도 평론가에게 험점이 더 많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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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세 저널리즘의 치하에 있어서 창작 월평(月評)을 쓰기란 그다지 호락호 락한 노릇이 아니다. 그것을 재간 없는 평론가들이 너도나도 맡아하니 권위와 기력이 없을밖에 없다.
 
21
이런 무권위 무기력을 가일급(加一級)시키는 것이 태만이다. 월평하는 사람들의 어물쩍하는 게으름이란 실로 보고 있는 이편이 낯이 간지럽다. 월평 하는 사람들이 작품을 읽지 아니하려고 꾀를 쓰는 품이란 꾀장이 도련님이 서당에 글 읽으러 가기를 싫어하는 만큼이나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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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백 자 원고지로 1백 장 분량이 되는 단편이면 잡지에서는 우선 길다고 찌푸리고 그리고 두 번에 갈라서 발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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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작품 하나가 제1회분이 가령 5월호에 발표되었다고 하고 X라는 사람이 그 달의 월평을 맡았다고 하면 그 X씨는 작품의 제목 밑에 붙은‘일 (一)’자 혹은 ‘상(上)’자만 보고 그대로 넘겨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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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야 X씨를 탓할 게 아니라 잡지를 원망할 것이지만, 그 다음 6월호에 하반(下半)이 발표되고 그 달의 월평을 Y씩가 맡게 되는 때는? 하고 보면 Y 씨는 어엿하게 앉아서 “이 작(作)은 계속되는 것이니까”라고 글자 열한자로 경편(輕便)하게 처분해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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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편하니 평하는 사람이야 좋겠지만 또 부질없는 트집을 잡히지 아니하니그 작품의 작가야 마음 편하겠지만, 그러나 평론은 게으름뱅이의 편하자는 짓은 아니다. 만일 평론가가 평(評) 행위를 정말로 생명삼는 사람이라면 그는 자기의 생명을 위해서라도 그 따위 게으름은 부리지 아니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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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름이 아니고야 어찌 그러한 작품의 전후회(前後回) 것을 다 읽어보지를 아니하는고? 작가는 작품을 써내는 것이 사명이요 평론가는 어떠한 작품이 되었든간에 우선 읽는 것이 반 이상의 사명이다.
 
27
그렇거늘 읽지 아니하고 평하지 아니하는 평론가가 대체 무엇으로 평론가라 하느뇨? 지금이야 그렇지 않겠지만 들이껴서 까진 중국 병정들은 내전을 하게 되면 적병과 마주쳐도 불질을 아니했다든지? 조선의 평론가들은 중국 병정의 불질 아니하는 어느 심사와 공통되는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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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세인과 작가측에서들은 평론가들의 성능을 경시하고 평론의 권위를 받아주지 아니하는 것이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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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아무리 무엇하더라도 평론가 자신이 그것을 자인하지는 아니할 것이다. 만일이라도 그러한 것을 자인하기 때문에 아무렇게 해도 권위 없을 평이니 되어가는 대로 어물쩍해 버리겠다는 이런 의사라면 그것은 산송장의 짓이 아니면 유녀(遊女)다운 ××이다.
 
30
실상 보면 평론가들은 자기의 성능을 그처럼 경시하거나 평론을 무권 위하게 여기지는 아니한다. 도리어 그네는 일반이 생각하는 이상으로 100%가 더되는 자부(自負)와 자신만은 제가끔 지니고 있다. 그렇지, 탈은 게으른 데서 생긴다.
 
 
31
그것이 월평이니까 그런 대로 죄가 씻어 덮이지만 장편 ‧ 중편까지를 포함 하는 본격적 평론이나 연구적 태도는 정히 언어도단이다.
 
32
그전 것은 그만두고라도 작년 1년과 금년 상반기까지에 신문 장편과 잡지 장편을 합해서 몇편이 끝이 났고 중편도 몇개 있었고 겸하여 전에 것으로 10편 가깝게 장편들이 간행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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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들이야말로 평론가들이 죽을동살동 모르고 파고 덤벼야 할 그들의 실천무대요 행동의 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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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론은 뉘 집에서 배웠거나 어느 동네에서 빌어왔거나 그것의 실천은 조선문단에서 할 것이고 그리하자면 조선 작가의 작품들을 정성껏 읽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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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마치 그것들은 티벳어로 된 작품인 것처럼이나 읽지도 아니하고 따라서 연구를 하지 아니한다. 그러니까 평행위(評行爲)도 나오지 못할밖에 없을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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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에서 지시한 데 든 작품 중 거의 반이라도 읽은 평론가가 있거든 손을 들어보아라. 그리고 다시 그중에서 다만 한가지만이라도 치켜내어 연구를한 후 문단적으로 문제를 삼는 평론가가 있거든 다 이 앞으로 나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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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서식(覺書式)으로 「중편소설론」을 시험하고 꽤 치밀하게 박태원(朴泰 遠) 씨의 『천변풍경』을 연구 발표한 최재서(崔載瑞) 씨가 있다. 이기영 씨의 『고향』을 연구 발표한 민병휘(閔丙徽) 씨가 있다.
 
38
그 외에는 현역평론가가 아니라 문학청년이라는 칭호를 듣는 새 사람들이 고루 샅샅이 파고 캐고 한 큰 노력을, 겨우 얻은 조그마한 지(紙) 혹은 지면(誌面)에 안타까이 발표한 것이 뜸뜸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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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을 잘했느냐 잘못했느냐 옳게 했느냐 그르게 했느냐 하는 것은 우선 접어둔다. 그러니 ‘하려 하는’ 노력과 정성이 있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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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머니즘, 좋다. 리얼리즘도 좋다. 지드 역시 좋다. 그러나 직역(直譯)에는 인제는 귀가 아프고 눈이 시다. 그러니 오늘부터는 그 이론을 가지고 조선 작가의 작품에서 실천을 발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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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그러지 아니하려거든 아주 낮잠을 자고 있지 아예 평론가 운운은 하지 말 일이다.
 
42
종이값도 올랐거니와 그대들이 물러나면 그 자리에 들어앉아 버젓하게 일을 해낼 신인군이 얼마든지 등대(等待)하고 있다.
 
 
43
<遣稿[견고], 1937년경 ; 東亞日報[동아일보] 1972.8.2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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