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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화암(落花巖) ◈
◇ 제4막 ◇
카탈로그   목차 (총 : 4권)     이전 4권 ▶마지막
1940
함세덕
1
落花巖[낙화암] (全四幕[전사막])
 
2
四幕[사막]
 
 
3
義慈王[의자왕]
4
[효]
5
[태]
6
[륭]
7
公主[공주]
8
文思[문사]
9
興首[흥수]    內臣佐平[내신좌평]
10
蓮姬[연희]    그의 딸
11
義直[의직]    兵官佐平[병관좌평]
12
殷相[은상]    衛士佐平[위사좌평]
13
槿香[근향]    隆[륭]의 侍女[시녀]
14
槿召奴[근소노]   隆[륭]의 侍女[시녀]
15
守門將[수문장]
16
未坤[미곤]    羅將[나장]김유신의 下僕[하복]
17
法民[법민]    新羅太子[신라태자]
18
其他[기타]    늙은沙工[사공], 兒孩[아해], 樵夫[초부], 新羅軍卒[신라군졸]들, 宮女[궁녀]들, 避亂民[피난민]들.
 
 

 
 
19
궁성에서 조금 떨어져있는 丘陵[구릉] 山腹[산복]. 후면은 절벽. 그 밑으로 泗沘水[사비수](一名[일명] 白馬江[백마강])가 흐른다. 나무와 검은 바윗돌 사이로 우변 산정으로 가는 길, 右便[우편] 산록으로 내려 가는 길, 山腹[산복]을 감도는 길의 세 갈래가 있다. 右邊[우변]에 누가 살다 버린 채 돌보지는 않는 쓰러져가는 초암일헌. 이 山[산]은 다음의 슬픈 史實[사실]이 있은 후 누구의 입에선지 ‘落花岩[낙화암]’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20
日落時[일락시]
21
늙은 나루배 沙工과[사공] 그의 손주가 초암 돌걸상에 걸터 앉아 있다. 멀 ― 리 장안에서는 성벽을 부시는 唐軍[당군]들의 異樣[이양]한 환성. 이를 방어하는 百濟[백제] 군사들의 아우성. 피난민들의 규환, 비명, 소음.
 
 
22
兒孩[아해]    할아버지, 고만 가.
 
23
늙은沙工[사공]   고새를 못참고.
 
24
兒孩[아해]    암만 기대려야 오시지도 않은데, 뭐.
 
25
늙은沙工[사공]   아침에 別宮[별궁]을 나오셨다니까 거진 지나가실 때가 됐다.
 
26
兒孩[아해]    그렇드라도 어데로 가실지 알고 여기서 기대려. 배고파 죽겠어.
 
27
늙은沙工[사공]   틀림없이 이 길을 지나셔서 나루배를 타시게 될꺼야.
 
 
28
避亂民[피난민]들 한떼가 올라와 山腹[산복]길을 감돌아 떠돌며 몰려간다. 소를 끌고 나온 사람, 쌀괘를 민 노파, 옷보퉁이를 든 여편네, 줄래줄래 매달린 어린애들을 업고 양편에 안고 운신을 못하는 아낙네 등등.
29
“이 길이다,” “오랑캐가 또 몰려갔오”, “곧장 올라가면 길이 맥힌다”, “돌아라”, “산넘어도 적군이 있오”, “복순아”, “엄마”, “애구머니” 등등의 비명, 절규, 공포에 질린소리가 들려온다.
 
 
30
兒孩[아해]    할아버지 또 누가 발굽에 채여 죽었나?
 
31
늙은沙工[사공]   저 소리를 들으면 십년 살건 감한 것 같다드마.
 
32
兒孩[아해]    장안에선 지독으로 사람이 죽었나봐. 송장으로 행길이 댕길 수가 없게 됐대.
 
33
늙은沙工[사공]   (孫子[손자]를 끌어 앞에다 앉히고 팔목을 붙들며) 우리 장손이 팔이 언제나 계백장군같이 굵어지나.
 
34
兒孩[아해]    십년 있으면 될껄.
 
35
늙은沙工[사공]   어서 어서 자라서 이 원통한 원수를 갚어줘야지.
 
36
兒孩[아해]    할아버지 참 계백장군이 조회때, 임금님께 골치가 아프니 잠깐 나갔다 온다구하고 집으로 가서, 마누라 허구 아들 딸들을 모조리 때려죽이고 갔다는 게 정말이우?
 
37
늙은沙工[사공]   (고개만 끄덕거린다)
 
38
兒孩[아해]    왜 그랬을까?
 
39
늙은沙工[사공]   전지에서 집안 식구 걱정을 하게되면 맘놓고 쌈을 못할 테니까 그러셨단다.
 
 
40
樵夫[초부] 한사람 급히 올라온다.
 
 
41
樵夫[초부]    (늙은 沙工[사공]을 보고) 장손 할아버지, 임금님께서 어데로 피란을 가셨을까요?
 
42
늙은沙工[사공]   국모마마와 함께 궁성 밖 天政台[천정대]로 은신을 하셨다는데, 벌써 오랑캐와 신라군사들이 삥 둘러 쌌다니까 거기도 나오셨을꺼야.
 
43
樵夫[초부]    그럼 또 어데로 가실까요?
 
44
늙은沙工[사공]   北鄙至今[북비지금]의 公州[공주]로 가시겠지.
 
45
樵夫[초부]    임금님 뵈온적 있으셔요?
 
46
늙은沙工[사공]   음, 예전 평복 입으시고 미행 나오셨을 때.
 
47
樵夫[초부]    아, 지금 임금님께서 미행을 다 나오셨드랬나요? 사냥하러 나오신 게 아니구요?
 
48
늙은沙工[사공]   요새 이삼년동안 영화와 주연을 즐기셨지, 그때야 그러셨나. 사년 전만 해도 비가 안오면 강물을 끌어 灌漑[관개]를 편케 해주시고 흉년이면 새납을 면해주시고, 기근이 생긴 해에는 국고의 곡식을 풀어 내놓아 주시면서‘짐이 정사를 온전히 못 해 너희들이 고생을 하는구나’하시고 수라를 진어치 않으시고 걱정을 해주셨다네.
 
49
樵夫[초부]    그렇게 어지셨든가요?
 
50
늙은沙工[사공]   동궁에 계실적에도 어떻게 백성을 사랑해 주셨는지 백성들이 海東曾子[해동증자]라는 존칭을 올렸었으니까.
 
51
樵夫[초부]    임금님 얼굴을 정말 아시면 저 늙은 상수리 나무 밑엘 좀 보세요.
 
 
52
沙工[사공]과 兒孩[아해] 가리키는 곳을 본다.
 
 
53
兒孩[아해]    응? 누가 송장을 파묻고 있네.
 
54
늙은沙工[사공]   (돌연 악을 쓰며) 바로 저 어른일세.
 
55
樵夫[초부]    아, 내가 칡뿌리를 캐고 있는데 오시드니 괭이를 좀 빌려달라구 하시는군요.
 
56
늙은沙工[사공]   어느 마마가 승하 하셨을까?
 
57
樵夫[초부]    모르지요.
 
58
늙은沙工[사공]   그 뒤에 섰는 분이 國母[국모] 마마신게군.
 
59
兒孩[아해]    할아버지, 지금 떼 덮고 있는 이는 나도 알어.
 
60
樵夫[초부]    누군데?
 
61
兒孩[아해]    왕궁 문지기 장수야. 바로 현무문 지나갈 때 여러번 봤어.
 
62
늙은沙工[사공]   (눈물을 닦고 무덤 쪽을 향하야 절을 하며) 만승에 귀합신 몸이, 농사꾼 옷을 입으시고 이 산길을 걸어 나오시다니.
 
63
樵夫[초부]    이리로들 오시는군요.
 
64
늙은沙工[사공]   (兒孩[아해]를 보고) 업드려라.
 
 
65
三人[삼인], 길가에 부복한다. 피난민들 義慈王[의자왕]과 王后[왕후], 막내공주, 太子[태자](孝[효]), 義直[의직], 殷相[은상]의 파천행행히나온다.
66
守門將[수문장]은 공주를 업었다.
 
 
67
[왕]     (樵夫[초부]에게 괭이를 주시며) 고맙소. 잘썼오.
 
68
樵夫[초부]    (괭이를 받으며) 상감마마.
 
69
늙은沙工[사공]   상감마마.
 
70
[왕]     (깜짝 놀라시며) 이 무슨 소리요.
 
71
늙은沙工[사공]   상감마마, 풍년놀이 하든 날, 미행 나오셨다 멈추시고, 손소 벼를 버이실때 뵈온 용안을 어찌 천한 사공인들 잊었겠사옵니까? 숨기지 마옵소서.
 
72
守門將[수문장]   우리는 나그네요. 잘못 본 것 아니오?
 
73
公主[공주]    아바마마, 공주는 시장하나이다.
 
74
늙은沙工[사공]   상감마마, 참으로 가슴이 미어 지옵니다.
 
75
[왕]     (綻露[탄로]됐으므로) 너희가 사공이냐?
 
76
늙은沙工[사공]   예.
 
77
[왕]     짐을 사자수 저쪽까지 건너다 주겠나?
 
78
늙은沙工[사공]   염려 부리겠사옵니까? 벌써 나루터에 배를 매어놓고 행행 지나시기를 기대리고 있었사옵니다.
 
79
[왕]     너희들 보기도 짐은 부끄럽다.
80
(樵夫[초부]를 보시고) 짐의 청 하나 들어주겠나?
 
81
樵夫[초부]    예.
 
82
[왕]     저 산소는 시나라의 무덤이다. 평온을 기대려 國喪[국상]을 치르려고 하였으나, 이 난리라 관만 들고 나왔다. 우선 매장은 했다만, 여우가 파먹어도 모를 허한 곳이라, 짐의 발이 안 떨어지노라. 나라가 온전히 되면, 너를 능지기로 삼을 터이니, 이 산소를 좀 보아주기 바란다.
 
83
樵夫[초부]    저희같이 천한 졸부가 이런 때 아니고야 언제 충성을 다해 볼 때가 있겠사옵니까? 지성으로 안보하겠사옵니다.
 
84
[왕]     짐도 이제야 마음이 좀 놓인다.
 
85
王后[왕후]    (성나신 語調[어조]로) 륭을 죽일려든 고 독살스런 신라 계집년 무덤이, 그리도 중하오?
 
86
[왕]     (눈을 감으시며) 그건 시나라의 본의가 아니였소. 륭도 그걸 잘 알꺼요.
 
87
王后[왕후]    본의가 아닌데 왜 독을 탔겠오?
 
88
[왕]     그리게 자진을 하지않었오?
 
89
王后[왕후]    겉으로 봐선 파리 한 마리 못 죽일 것같은 년이!
 
90
[왕]     죽은 사람 악담은 원수도 말랬다하오.
 
91
王后[왕후]    신첩은 굳이 더하겠오다. 아들과 손주의 말은, 노고초같이 쓰게 들으시고, 고 여우같은 년 얘기라면, 삼신산 불로초라도 뜯으러 가실 것 같이 하시드니, 기어코 나라를 망치시어 이제는 시원하시겠오.
 
92
[왕]     짐의 잘못은 잘 아니 자꾸 책하지 마오.
 
93
公主[공주]    어마마마, 공주는 시장하나이다.
 
94
王后[왕후]    (우시며) 아들 손주, 다 싸움에 내보내 죽이고, 딸 하나 있는 것 배를 곯려 죽이게 됐는데도 신첩더런 아무 말도 말란 말이오?
 
95
公主[공주]    어마마마, 시장하나이다.
 
96
王后[왕후]    날더러 달라지 말고, 아바마마께 주시래.
 
97
公主[공주]    아바마마.
 
98
[왕]     조곰만 더 참아라.
 
99
늙은沙工[사공]   상감마마, 저 배에 모래같은 밥이오나 끼니를 이으실 것이 있사옵니다.
 
100
[왕]     그럼 어서 이 녕을 내려가오.
 
101
王后[왕후]    신첩은 다리가 아퍼 못 가겠오. 오랑캐 청룡도에 맞어 죽으면 죽었지 더는 못 가겠오이다.
 
102
[효]     어마마마.
 
103
王后[왕후]    동궁은, 이제는 이 어미에게 말도 걸지말라.
 
104
[효]     어마마마, 사방에 적이 포위코 있사오니, 오늘밤 안으로 사자수를 건너야만 하옵니다.
 
105
王后[왕후]    이 모후 참견말고, 태자나 먼저 가오.
 
106
[왕]     지금 이럴 때가 아니오.
 
107
王后[왕후]    이럴 때가 아니오면, 신첩더러 더 이이상 어떻게 하라 하시오리까? 맨발로 사흘동안을 이궁으로 저궁으로 도망댕겼으면 무던할 줄 아오. 이 우에 또 어델 끌고가시려 하오니까.
 
108
[왕]     어린애처럼 이게 무슨 소리요?
 
109
[효]     여름밤이 짧사오니, 빨리 행행을 재촉하시어야 하겠읍니다.
 
110
王后[왕후]    생전 궁 밖이라고는 나와보지도 못한 尚宮[상궁], 内侍[내시]들이 북문으로 몰려 뿔뿔이 흩어졌다 하는데 나 혼자 살란 말인가?
 
 
111
[산] 근처에서 異樣[이양]한 적군들의 喚聲[환성] 일층 높아간다.
 
 
112
義直[의직]    적이 이 영 너머에도 진을 치고 있나 보외다.
 
113
守門將[수문장]   (公主[공주]를 내려놓고) 제가 동정을 살펴보고 오겠읍니다.
 
 
114
피난민들의 비명 점점 가까워 온다. 수문장 산등성이길을 올라간다.
 
 
115
王后[왕후]    (귀를 기울이시며) 그것들이 저틈에 끼여 모두들 밟혀 죽었을꺼야. 나혼자 살아서 그애들의 앙화를 어떻게 받나?
 
116
[왕]     앙화를 받어도 내가 받을거지 后[후]야 무슨 관계 있오?
 
117
王后[왕후]    어째서 신첩에게 관계가 없오? 울면서 모두 따라오겠다는 것들을 뿌리치고 왔으니, 그것들이 그것들이……죽어도 같이 죽게 모두들 데리고 나올 것을……
 
118
[왕]     하나 둘도 아니고 근 삼천이나 되는데……
 
119
王后[왕후]    그럴껄 삼천씩 왜 부리셨나이까?
 
120
[왕]     내가 살면 침식을 온전히 하고 죽은들 눈을 곱게 감겠오? 죽고싶은 마음이야 태산 같어 칼을 몇번이고 배에 대봤으되, 차마 그어지지가 않어지오. 두려운게 아니라, 이를 악물고 살아 이 원한을 기어코 풀고 싶소.
 
121
王后[왕후]    다 틀렸오, 이제는.
 
122
[효]     어마마마, 지난 일을 생각하시면 무엇하리이까? 하늘이 시키시는 일이온데.
 
123
王后[왕후]    (성을 내시며) 듣기 싫소. 태자는 내 눈앞에 뵈지도 마오. 눈이 없고 귀가 없어 신라 왕의 태자를 못 보오. 밤낮 학현전 구석에 틀어백여, 그 천문학 연군가 뭔가 하지않고, 륭과 손을 잡고 국사를 우려했든들 망해도 이렇게 망하지는 않았을 꺼라.
 
124
[효]     다 이, 불효의 허물이옵니다.
 
 
125
이때 震憾[진감]하는 듯한 적군들의 만세 소리. 북을 두드리고 角笛[각적]을 불며 개선 탄성을 친다. 멀 ― 리 궁성 장벽에 적의 기치가 하나 둘 꽂히기 시작한다.
 
 
126
義直[의직]    상감마마 대군께서 항복을 하시었나 보외다.
 
127
[왕]     (말없이 일락[日落]만 바라보신다) .
 
128
王后[왕후]    지금 궁에 누가 있오?
 
129
義直[의직]    [태] 大君[대군]께서 머물고 싸우고 계시옵니다.
 
 
130
각 사찰에서 일제이 강국의 종이 울린다.
131
[왕]의 용안에 눈물이 떨어진다. 義直[의직]과 殷相[은상]은 이마를 땅에 대고 느껴운다.
 
 
132
王后[왕후]    (통곡을 하시며) 大師[대사]들은 피란이라도 갈 것이지 경을 쳤다고 남아서 항종을 치고 있는가?
 
133
[효]     적군놈들이, 팔백 팔십 팔개소의 절을 제일 먼저 포위하고, 대사들은 한사람도 피신치를 못하게 해놓았나이다.
 
134
兒孩[아해]    할아버지. 송장이 자꾸 떠내려오면 배내기가 어렬텐데.
 
135
늙은沙工[사공]   상감마마 행행을 이으시옵소서.
 
 
136
一行[일행] 일어선다. 孝[효], 母后[모후]를 부축한다.
 
 
137
兒孩[아해]    (하늘을 쳐다보고) 높새(西風)가 이는 게 도지가 올 것 같소.
 
138
늙은沙工[사공]   그리게 말이다.
 
139
兒孩[아해]    뜸(雨衣)하고 돗덕개 가지고올까?
 
140
늙은沙工[사공]   훙녁케 해라.
 
 
141
兒孩[아해], 비탈길로 뛰어 내려간다. 樵夫[초부] 뒤따른다. 올라갔던 산등성이 길에서 守門將[수문장] 다시 뛰어내려온다.
 
 
142
義直[의직]    어믜 갈수 있드냐?
 
143
守門將[수문장]   꽉 찼소이다. 이 산허리를 돌아서 밤 깊기를 기대려 배를 타셔야 하겠사옵니다.
 
144
公主[공주]    아이 무서.
 
145
守門將[수문장]   (公主[공주]를 덥썩 업으며) 상감마마, 륭대군마마와 왕세손마마께서 아직도 사시었다하옵니다.
 
146
[왕]     (경희[驚喜]하시며) 륭이 살았어?
 
147
王后[왕후]    살었어?
 
148
[효]     살었어?
 
149
守門將[수문장]   예.
 
150
王后[왕후]    그애만 살았다면, 그애만 살았다면.
 
151
守門將[수문장]   지금 산마루에서 보니까 적군 두 놈이 농가에서 뺏어온 처녀를 가운데 놓고, 서로 겁탈할랴고 싸우고 있사옵기에, 뒤로 쫓아가서 바윗돌로 골을 바서놨었사옵니다.
 
152
王后[왕후]    그래 그 처녀는?
 
153
守門將[수문장]   처녀는 저쪽길로 돌려보내고 한놈을 끌고 골짜기로 가서 물어보니까 그놈이 馬川城[마천성]에서 륭 대군과 싸우든 군사의 한 놈이였다 하옵니다. 그래 그놈 말이, 마천성은 다 부셔버렸는데도 륭 대군마마와 왕세손마마의 행방을 알길이 없어 팔방 탐색 중이라 하옵니다.
 
154
[왕]     그럼, 그 진지에 法敏[법민]과 김유신이 있겠고나?
 
155
守門將[수문장]   김유신은 선봉이라, 지금 저 성궁을 부시는 군사를 지도하고 있다하옵니다. 륭대군마마와 왕세손마마의 효수(首)를 가져오는 자가 이번 싸움의 공을 독차지할 거라고 하옵니다. 참, 내신좌평 흥수대감도 같이 종적을 감추셨다 하옵니다.
 
156
王后[왕후]    지금쯤 잡히지나 않었을는지.
 
157
[효]     어마마마, 아우와 세손만은 하날이 반드시 도우실 것이오니, 옥흉 태우지 마옵소서.
 
158
王后[왕후]    다리도 (우시며) 성치 못한데……잡히기만하면, 그놈들이 장작불로 태워 죽일랴고 할걸. 그것만으로 그치지 않을거야. 그 법민이란 놈이 륭의 살을 으적으적 씹어먹고 싶다고 했다니까, 무슨 짓을 할지 아나.
 
159
[효]     같은 아우이고, 한피 한뼈를 받었으되 륭과 태는 어이하야 그처럼 다르옵나이까?
 
160
[왕]     그놈은 내아들 아니야.
 
161
[효]     신더러, 한시 바삐 부왕마마를 모시고 파천을 가라 하기에, 궁을 그에게 지키도록 했삽드니 제가 용상에 올라 왕이라고 자칭할 줄이야 꿈엔들 알었겠사옵니까?
 
162
王后[왕후]    륭이 이 소리를 들었다면 또 얼마나 펄펄 뛸고.
 
163
[왕]     모두가 짐 때문이라.
164
(하늘을 우러러) 웨 짐이 륭의 말을 진작 아니 들었든고? 왜 짐이 成忠[성충]과 흥수의 諫言[간언]을 아니 들었든고?
 
 
165
멀 ― 리 왕궁에는 적군의 기치가 펄럭거린다. 守門將[수문장] 공주를 다시 업고 왕후는 치마로 얼굴을 가리고 우시며 王[왕]에게 부축되시어 王宮[왕궁]을 돌아다보시며 돌아다보시며 산허리를 돌아 나가신다. 孝[효]와 늙은沙工[사공], 義直[의직], 殷相[은상] 뒤따른다. 무대잠시 공허.
166
文思[문사] 피투성이로 칼을 들고 달려올라온다. 뒤이어 ‘문사야’, ‘문사야’, ‘왕세손마마’, ‘왕세손마마’ 하며 隆[륭]과 未坤[미곤]에게 부축된 興首[흥수] 좇아 올라온다. 未坤[미곤]은 百濟軍服[백제군복]으로 변장을 했다.
 
 
167
文思[문사]    날더러 이이상 더 살란 말이오?
 
168
[륭]     죽으면 만사가 다 해결될 줄 아냐?
 
169
興首[흥수]    마마, 참으소서.
 
170
文思[문사]    나도 참을만큼 참어왔고 싸울만큼 싸워왔오. 그러나 앞은 바라보아 절터가 아니오?
 
171
[륭]     우리가 함낙된 마천성을 버리고 얘까지 올땐, 再擧[재거]를 꽤하고 오지않었냐?
 
172
文思[문사]    나 역시 달리 무슨 도리가 있을 줄 알았었오. 그러나 오래잖아 저놈들이 왕궁에 불을 지를 것을 생각하니, 난 모든 것이 귀찮어졌오.
 
173
[륭]     高句麗[고구려]로 가서 원병을 청해보자. 麗王[여왕]이 우리를 푸대접하지 않을 것이다.
 
174
文思[문사]    숙부, 고만 우리는 꿈을 깨십시다.
 
175
興首[흥수]    마마, 그 그칼 놓으소서.
 
176
文思[문사]    선생, 같이 죽어주시지 않으실진데, 나만이라도 시원히 죽게 해주오.
 
177
[륭]     (文思[문사]의 팔을 붙들고) 우리가 여기서 죽는데서야 그것은 선조에게 아 ― 무 면목이 서지 못할뿐더러, 후세에 개죽음밖에 안된다.
 
178
文思[문사]    그래도 할 수 없오. 우리는 할만큼은 하지 않았오? 이제는 버릴 수밖에 없오.
 
179
[륭]     죽어서 머리칼 올올이 맺힌 원한이 풀어진다면, 난들 안죽겠냐만.
 
180
文思[문사]    이제, 앞으로 나라를 부흥시킨다는 것은 한껏 무지개 꿈이오. 원병을 청해도, 우리 군사가 다만 얼마라두 있구서 청해야지, 백죄 洛中[낙중]엔 개미새끼 한마리 없는데 무슨 원병이오?
 
181
興首[흥수]    일곱번 죽으면, 여덟번 살아서 이 원수를 갚아야 하지 않겠오니까?
 
182
文思[문사]    하날이 우리에게 대사를 아니 맡기시는데, 맹목적으로 발버둥 치는건 청둥벌거숭이짓인 줄 아오.
 
 
183
[륭]의 팔을 뿌리치고 草庵[초암]으로 달려 들어가 안으로 문을 잠근다. 隆[륭] 달려가 문을 잡어당긴다.
 
 
184
[륭]     문사야 진시 문 아니 열겠냐?
 
185
文思[문사]    숙부, 나에게 마지막 시원히 피를 흘리게 해주오.
 
186
興首[흥수]    마마, 문 열으소서.
 
187
未坤[미곤]    마마, 고구려로 가사이다. 천졸도 그 희망을 갖고 미천성서예까지 따라오지 안했사오니까?
 
188
[륭]     (興首[흥수]를 보고) 선생 어떻게 하시려오?
 
189
興首[흥수]    앞으로 삼년만 칼을 갈면 반드시 나라를 부흥시킬 수 있소.
 
190
[륭]     나도 자꾸 마음이 약해지오.
 
191
興首[흥수]    대군마마 마저 가시오면, 새로 人傑[인걸]이 나와도 민심의 선망이 갈바가 없어 집중이 아니될 것이오.
 
192
文思[문사]    선생, 나라를 다시 일으킨대도 대체 누구를 성상으로 뫼옵는단 말이오? 조왕마마는 존망을 앞길이 없으되, 아즉 승하하시지도 않으셨고 보위를 하양하시지도 않으셨사온데 큰숙부는 마음대로 왕이 되셨으니 이런 나라를 붙잡고 애태는 저희만 어리석지 않으오!
 
193
[륭]     나도 이 백제에는 참말 정이 떨어졌다. 그러나 버리자니 버릴 수도 없고 구하자니 힘이 없고.
 
194
興首[흥수]    (휘청휘청 쓰러질 듯한 몸을 억지로 버티며) 마마, 마지막 한번 기운을 내주소서.
 
195
[륭]     선생도 노구에 이렇게 많은 상처를 받으셨으니 고구려까지 가기가 의심스럽소. 낯선 땅에 쓰러지신다면 차라리, 고국에 묻히는 것만 못할 것 같지않소?
196
나도 입으로는 재흥을 도모켔다하고 장언을 하되, 나라에 대한 애착이 없어지고 보니 사실 한걸음 발이 아니 떨어지오.
 
197
興首[흥수]    대군마마 옥체는 어떠하시오?
 
198
[륭]     강력으로 가면 갈수는 있겠으되 운신키가 어렵소.
 
199
文思[문사]    이렇게 상한 몸을 끌고 가다가 적군에게 잡히기라도 하면 그 망신은 뭘로 당하려오?
 
200
[륭]     선생, 나도 문사보담 사실 죽고 싶은 생각은 더하되, 차마 선생께 같이 죽어달라 소리를 못하겠기에 망설였오.
 
 
201
멀 ― 리 궁궐이 火光[화광]이 충천할듯 타기 시작한다.
 
 
202
[륭]     저놈들이 궁궐에 불을 지르기 시작했나 보오.
 
203
文思[문사]    불을? (초암에서 뛰어나온다)
 
204
[륭]     만명 부역 십년 역사에 지은 금전옥루가 재가 된후 폐허에 다 나라를 세우면 무엇하리오?
 
205
興首[흥수]    마마도 그런 뜻이오면 나도 따라가겠오.
 
206
[륭]     (未坤[미곤]을 보고) 너는 처자있는 몸일테니 고향으로 돌아가라.
 
207
未坤[미곤]    마마, 다시 한번 생각해 봐 주옵소서. 이 산만 넘으면 탄탄대로이외다. 수레를 얻어 타시고 패성에 닿기만 하시면 고구려에는 名醫神藥[명의신약]도 많다 하오니 순일의 치료로 쾌차되실 줄 아옵니다.
 
208
[륭]     생각하되 신통한 게 없다. 너희 집은 어데냐?
 
209
未坤[미곤]    이 등성이 넘어 오잇골이외다.
 
210
[륭]     그럼 어서 넘어가라. 나도 여기서 죽기로 작정했다. 잠깐만 저…뒤에 가서 잠깐 머물고 있다가, 우리가 쓰러지거든 시체를 저 강물로 던져주고 가라.
 
 
211
未坤[미곤], 못이기는 체 하고 下手[하수]로 비켜선다.
212
三人[삼인], 端坐[단좌]하야 불타는 궁성을 바라보며 切腹[절복]을 할 준비를 한다. 이때 泰[태] 피투성이로 올라온다. 뒤에 병사 두 사람 따랐다.
 
 
213
[태]     그 칼들 멈추오.
 
214
興首[흥수]    대군마마 (절한다) .
 
215
[륭]     (돌아다 보고 의아하야 한참 바라보고 있드니 점점 분노에 찬 얼굴로 변하며) 내 일에 용인마오.
 
216
[태]     그간 생사를 몰라 궁금하든차 대하고보니 반갑소.
 
217
興首[흥수]    마마, 궁은 어찌 하오니까.
 
218
[태]     좌우를 이끌고 끝까지 싸왔으나 한놈 두놈 도망가고 죽고하야 도저히 막을 길이 없어 항복을 하고 말었오.
 
219
[륭]     누구의 이름으로 항복을 했오? 형님은 망하는 백제에 한겹 더 누명을 씌워 놓았오.
 
220
文思[문사]    숙부, 일찌기 하늘에 두 해가 없었고, 한나라에 두 임군을 섬긴 적이 없었오.
 
221
[태]     叔姪[숙질] 부동해서 나를 질책하는 건가?
 
222
[륭]     (일어서며) 왜 ‘짐’이라 하지 않으오?
 
223
文思[문사]    (일어서며) 왕이 왜, 궁을 비고 나오셨소?
 
224
[태]     대장부 싸와 패했으니 떳떳이 성궁을 내놓는 것이 옳지 않은가?
 
225
[륭]     궁성이 형님의 소유물이오?
 
226
[태]     (태연자약하야) 내가 용상에 오른데 대해서 불만들이 있는게로고?
 
227
[륭]     부왕께서 玉璽[옥새] 물리셨오? 형님은 역모를 했오. 신으로서도 못할 대역한 짓을 아들로서 어버이에게…
 
228
[태]     그 캐캐묵은 인의 강의는 그만두라.
 
229
文思[문사]    숙부는 인면수심이요.
 
230
[태]     뭐라고?
 
231
文思[문사]    그렇지 않으시곤 왕족으로서 자기 고국을 적에게 팔리가 없오.
 
232
[태]     (칼자루에 손을 대며) 닥쳐라. 말이면 다하는 줄 알고. 나도 너희들만큼 나라는 사랑한다. 그 이상일지도 몰라.
 
233
[륭]     (칼에 손을 대며) 누굴 버일테요?
234
나라를 그처럼 사랑해서 任子[임자]놈과 보위를 넘보았구료? 사병으로 키우고, 내란을 도모하고.
 
235
[태]     그건 부왕께도 책임이 있다. 난 명색이 그래도 네 형이 아닌가? 내가 허수아비가 아닌 다음 어찌 백관이 부끄러, 네 밑에 조회를 바치랴. 한 구멍으로 나오되 닭알에 크고 적은 것이 있는 거와 같이, 사람에게도 천빈의 재질을 갖춘 이와 둔한 자가 있는 것은 피치못할 사실이 아니냐. 그러나 그 재질과 성격의 차이보다 먼저 형제의 순서를 좇아야 할 줄 안다.
 
236
[륭]     그렇다고 적군이 몰려온다는 경각에 그런 음모를 해야 옳소?
 
237
[태]     지금 옳고 글코를 탓해도 소용없어. 그러나 내 어리석어 任子[임자]놈이 그런 흉악한 인물임을 모르고, 일을 같이 할려든 것만은 백번 사죄하마. 達率常永[달솔상영]은 나와 같이 일은 하였으되, 임자와 더불어 신라와 내통을 아니한 것만은 절대 명백한 사실이다.
 
238
文思[문사]    나는 지난 일을 말하고 싶지 않되 조왕께서, 아직도 생존하시고 또 그 아래 동궁마마까지 계신데도 불구하고 王稱[왕칭]을 하신 것이 비도한 짓이란 말이오.
 
239
[태]     궁에 아무도 안계시고 나밖에 없지 않았냐?
 
240
[륭]     얼굴이 뜨겁지 않소?
 
241
[태]     되고싶어 됐으니 한은 없다.
 
242
興首[흥수]    (조용히) 마마 어데로 가시려하오?
 
243
[태]     발 닿는대로 가겠오.
 
244
興首[흥수]    어느 쪽을 향하시어 가시려하오?
 
245
[태]     남쪽으로 가겠오. 浿水[패수](大同江[대동강]) 洌水[열수](淸川江[청천강]) 帶水[대수](漢江[한강])를 건느시고 남쪽으로 남쪽으로 내려오시다 河南[하남]의 따에 慰禮城[위례성]을 쌓으시고, 백제를 건국하신 温祚王[온조왕]을 본받아 좋은 땅을 찾아가겠오.
 
246
[륭]     지금 그때같이 임자없는 땅이 있을 듯 싶소?
 
247
[태]     그건 나중보면 알일이고, 내가 왕이 되기만 하면, 곧 군사를 몰아 부왕과 너희들의 원수만은 제일먼저 갚어주마.
 
248
文思[문사]    그때까지 살아있을 줄 아오?
 
249
[륭]     문사야, 우리도 고구려로 가자. 우리가 원병을 얻어 원수를 먼점 갚나, 큰숙부가 새나라를 세워 적국을 먼점치나 재미있는 경쟁이다.
 
250
文思[문사]    그렇소.
 
251
[태]     (자신만만한 듯) 내가 아무래도 빠를걸. 그러나 너와 오늘 이렇게 헤어지는 것은 나에게 무한이 서글프다. 우리는 말만 형제지 동네 아해들처럼 잠자리 잡으러 한번 같이 간적이 있었느냐, 연날리기를 같이 한 적이 있었느냐. 어려서는 그랬거니와, 네가 동궁에 오르자, 나는 너를 미워하고 시기하고 죽일려고까지 하며 오날까지 살아왔다. 연희가 임자를 죽이든 날, 任子[임자]가 날더러 역모를 했다고 고하는 것을 네가 변명해 주었다는 말을 들을 때, 나는 몹시 양심의 가책을 받고 괴로워 했었다. 앞으로 다시 만날 때가 있겠지. 그때는 참된 사랑으로 남이봐도 부러울만치 정답게 지나자.
 
 
252
[태], 慄然[율연]이 병사 두 사람을 데리고 山腹[산복]을 감돌아 나간다.
 
 
253
[륭]     (격하야) 형님, 형님.
 
 
254
멀 ― 리 산울림만 돌아 올 뿐.
 
 
255
文思[문사]    숙부 빨리 고구려로 갑시다.
 
 
256
未坤[미곤] 나무사이에서 동정을 살피고 있드니 나오며
 
 
257
未坤[미곤]    길은 제가 잘 압니다. 밤새 산을 셋은 넘어야 합니다.
 
 
258
일동 긴장하야 떠날 준비를 한다.
 
 
259
[륭]     (무릎을 꿇고 합장을 하고) 하날이여 저에게 힘을 주옵소서. 저는 쑥밭이 된 이 도성과 불타는 궁궐을 보고도 울 줄 밖에 모르는 약하고 우둔한 자이옵니다. 저로 하야금 망국을 부흥하야 사직을 보전코 창생을 구할 대사를 맡겨 주옵소서. 만일 제가 대사를 맡을 인걸이 못 될진데, 차라리 이 자리에서 벼락의 영광이라도 주옵소서.
 
 
260
이때 蓮姬[연희]와 槿香[근향], 槿召奴[근소노], 늙은宮女[궁녀], 어린宮女[궁녀]의 한때가 맨발바닥으로 올라온다.
 
 
261
宮女[궁녀]   대군마마, 왕세손마마
 
262
[륭]     오, 연희가, 근향이도, 근소노도.
 
263
蓮姬[연희]    (父[부]에게 매달리며) 아버님.
 
 
264
宮女[궁녀]들 三人[삼인]을 둘러싼다. 그들은 말을 못하고 느껴 울기만한다. 隆[륭]과 文思[문사]는 어찌할 바를 몰라 우둑허니 서 있을뿐.
265
멀 ― 리 大廈高臺[대하고대]의 으즈적, 풍하고 쓰러지는 소리. 기와장 튀는 소리.
 
 
266
[륭]     상감마마께서는 어데로 가셨오?
 
267
蓮姬[연희]    북비로 가셨다 하오나 존망을 알 수 없나이다.
 
268
[륭]     너희들은 어떻게 여길?
 
269
槿香[근향]    오랑캐놈들이 ‘왹’ ‘왹’소리를 치며 궁벽을 부수기 시작함으로 그냥 북문으로 몰려들 나왔나이다.
 
270
文思[문사]    (비장한 결심을 하고) 숙부 빨리 갑시다.
 
271
[륭]     저것들을 여기다 두고 어떻게 우리만 가겠느냐?
 
272
어린宮女[궁녀]   마마 저희들도 데리고 가주옵소서.
 
273
文思[문사]    어델 따라오겠다고 이러니?
 
274
어린宮女[궁녀]   가시는 데까지 데리고 가 주옵소서.
 
275
興首[흥수]    (蓮姬[연희]를 보고) 지금 여기 이렇게 몰려있을 때가 아니다. 사방에 적군들이 꽉 차있으니 너희들은 제각기 흩어져서 피란을 해라.
 
276
蓮姬[연희]    그렇지만 앞은 강이고 뒤는 불이 아니옵니까?
 
277
槿香[근향]    대감마마, 길을 알아야 흩어지지 않겠나이까?
 
278
[륭]     생전 궁 밖이라곤 奏列[주열] 외엔 나와보지도 못했으니.
 
279
蓮姬[연희]    (隆[륭]을 보고) 마마께서는 어데로 가시려 하나이까?
 
280
[륭]     고구려로 가려하오.
 
281
蓮姬[연희]    저희들도 따르게 하여주옵소서.
282
같은 종이 되오되 고구려의 종이됨이 오랑캐와 신라필부에게 욕을 당하는 것 보다 나을 것 같나이다.
 
283
興首[흥수]    (소리를 높여) 못 온다면 못 오는 줄 알어.
 
284
槿香[근향]    仰天伏地[앙천복지]에 숨을 곳이 초암 한군데도 없는데 어찌하면 좋겠읍니까?
 
285
槿召奴[근소노]   그놈들이 우리들을 잡으면 가진 욕을 다할 것이고 데려다가 종을 시킬 것입니다.
 
286
興首[흥수]    마마, 그대로 두고 갈 수밖에 없오.
 
287
[륭]     동서남북도 모르는 것들을 여기다 두고 어떻게 가겠오?
 
288
興首[흥수]    앞으로 할일이 태산 같은데, 이러고 망설이다 정말 가도 오도 못하게 되오면 어찌 하시려하오?
 
289
[륭]     못봤으면 모르되 보고서 어떻게 묵과 하겠오?
 
290
文思[문사]    숙부, 선생과 전들 마음이 아니 저릴 줄 아오? 내려가자니 불탄 장안이요, 넘어가자니 적군의 진지가 아니요?
 
291
[륭]     그럼 나루를 건너가지.
 
292
文思[문사]    배가 한 척 밖에 없나분데 어느 하가에 전부 건너놓겠오?
 
293
어린宮女[궁녀]   왕세손마마, 데리고 가 주옵소서.
 
294
[륭]     (단호히) 죽어도 같이 죽기로 하지.
 
295
文思[문사]    그러면 왜 아까 우리는 배를 갈르지 않았오?
 
296
興首[흥수]    마마, 눈감으시고 그대로 뿌리치고 가야하오.
 
297
[륭]     나는 못 가겠오.
 
298
文思[문사]    그럼 아까 큰 숙부와 맹세한 포부는 어떻게 하실테요?
 
299
[륭]     저것들을 오랑캐나 적군들에게 욕을 뵈고, 나라를 일으키면 무얼 하겠냐?
 
300
未坤[미곤]    마마,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옵니다.
 
301
[륭]     물이 쓰기를 기대려, 개 우이를 걸어서 건너가기로하자.
 
302
興首[흥수]    허리까지 빠지는 개펄을 어떻게 건느겠오니까? 도중에 물이 밀면 그야말로 산채 매장을 당할 것이오.
 
303
[륭]     나는 저애들을 구할 길을 찾기 전에는 여기서 한발로 못 떠나겠오.
 
304
未坤[미곤]    마마, 요 영넘어 골짜구니로 내려가면 큰 동굴이 있읍니다.
 
305
[륭]     몇명이나 들어가게 되냐?
 
306
未坤[미곤]    구멍으로는 한 두서너명 겨우 들어갈까말까 하지만 들어가 보면 높은 산에 둘러싸여 큰 호수 같은 들판이 있읍니다. 바로 신선들 바둑 두고 놀이하는 곳 같은 들판인데 무려 오천명은 숨을 수 있을 것입니다.
 
307
[륭]     그럼 거기에 우선 은신키로 하자.
 
308
未坤[미곤]    적군들이 발견했다면 벌써 그 속에 진을 쳤을 것입니다. 실수가 없도록 한번 살펴보고 오시는 게 좋을 듯합니다.
 
309
[륭]     같이 갈까?
 
310
未坤[미곤]    예, 왕세손마마와 좌평대감도 같이 가셨으면 든든하겠읍니다.
 
311
[륭]     (蓮姬[연희]를 보고) 내 그럼 보고 올테니 여기 있으오.
312
(일동을 보고) 만일 운수 불길하야 너희가 적군에게 붙잡히는 한이 있드라도 결코 망한 나라에 누명을 씌우지 않도록 해라.
313
(槿香[근향]과 槿召奴[근소노]를 보고) 내가 언젠가 너희들에게 들려준 무궁화의 전설을 잊지 않었지. 네 둘 이름에는 槿花[근화]의 槿字[근자]가 붙은 것을 알아라. 향기한 꽃은 필때도 고웁지만 가을 바람에 질 때도 아름답게 지는 것이다.
 
314
槿香[근향], 槿召奴[근소노]  네.
 
 
315
[륭], 文思[문사], 興首[흥수], 未坤[미곤]을 따라 山頂[산정]으로 올라간다.
 
 
316
어린宮女[궁녀]   (노궁녀에게 매달리며) 내감(内監) 차라리 궁 속에서 타죽을 걸 그랬어요. 여기서 죽어 여우밥이 될 것을 생각하니 무서 죽겠어요.
 
317
늙은宮女[궁녀]   사나이로 못 태난 것만 정말 원한이 되는구나.
 
318
어린宮女[궁녀]   (흥분하야) 칼자루에 손을 대고 무용담만 떠들은 피판랑 당녀석들은 다 무얼하고 있어. 그래도 부랄을 달고 당기나.
 
 
319
비가 나리기 시작한다. 宮女[궁녀]들 우루루 草庵[초암]으로 몰린다. 宮女[궁녀]들 또 한 떼 몰려와 한데 합친다.
 
 
320
槿香[근향]    마마가 붙잡히시지나 않으셨을까?
 
321
槿召奴[근소노]   글쎄.
 
322
蓮姬[연희]    내가 가보고 올까?
 
323
늙은宮女[궁녀]   (蓮姬[연희]를 붙들고) 가만있어.
 
324
槿香[근향]    (아래를 내려다보며) 자꾸 이리로 몰려오기들만 하면 어째.
 
325
蓮姬[연희]    왜 입때 안오실까.
 
326
늙은宮女[궁녀]   가신지 얼마 됐냐?
 
327
蓮姬[연희]    우리가 이꼴을 하고 차라리 궁을 아니 나왔드면 인자하신 마마의 가슴을 태우지는 않을 것을.
 
 
328
돌연 산넘어 근처에서 ‘와 ― ㄱ’하는 적군의 탄성. 일동 불안에 싸여 소리나는 쪽을 응시한다.
329
연희가 불길한 예감에 눌려 뛰여나가려는 것을 “아이구 언니”하며 槿香[근향]이가 공포 속에 싸여 꼭 붙든다. 사공 아해 산복을 돌아 뛰어온다.
 
 
330
蓮姬[연희]    (달려가 아해를 붙들고) 저 소리가 무슨 소리지?
 
331
兒孩[아해]    동혈 앞에서 누가 적군 놈들에게 잡혔나봐요
 
332
蓮姬[연희]    몇이서?
 
333
兒孩[아해]    세 사람이예요.
 
334
蓮姬[연희]    네 사람이 아니구?
 
335
兒孩[아해]    세사람이든데요. 소나무 새로 조기서 뵈요. 나무에다 열십자로 묶어 매달고 이리로 오고있어요. 참 임금님께서 안잡히신게 다행이지요.
 
336
蓮姬[연희]    얘, 너 임금님을 어데서 뵈웠냐?
 
337
兒孩[아해]    지금 막 강을 건너드리고 오는 길이에요.
 
 
338
궁녀들 ‘마마’ ‘마마’ 하고 울며 몰려갈려고 한다.
 
 
339
兒孩[아해]    애구, 어델 갈랴고 이러세요. 들어가서들 숨으세요. 빨리들 숨으세요. 그놈들은 이루 사정 안둡니다.
 
 
340
兒孩[아해] 급히 내려간다.
341
新羅太子[신라태자] 法敏[법민]과 그의 軍卒[군졸]들, 隆[륭],文思[문사],興首[흥수]를 십자로 磔刑[책형]을 해서 쳐들고, 북을 두드리고, 탄호를 치며 내려온다. 法敏[법민] 옆에 未坤[미곤]이 서있다. 宮女[궁녀]들은 제각기 흩어져 숨는다.
 
 
342
未坤[미곤]    (法敏[법민]에게) 이 세놈을 잡을려고 마천성에 따라가서 오늘까지 고생한건 일구난설이외다.
 
343
法敏[법민]    이번 전승의 공은 任子[임자]와 너지만, 임자는 죽었으니 이제는 모두 네해다.
 
344
未坤[미곤]    황송하옵니다.
 
345
法敏[법민]    (隆[륭]의 얼굴을 채찍으로 갈기며) 네 아비 의자왕 때문에, 내 사랑하는 누이가 꽃같은 일생을 망쳤고, 우리 어머니와 내동생이 얼마나 밤을 울고 새인줄 아냐? (또 갈긴다) .
 
 
346
軍卒[군졸]들 文思[문사]와 興首[흥수]를 난타한다. 興首[흥수]는 기절해 고개를 툭 떨어뜨렸고, 文思[문사]는 어린 나이라 아픔을 견디지 못하고 운다.
 
 
347
法敏[법민]    해마다, 네아비가 병을 몰아 국경을 침범하야, 동부백선은 병화난리에 하루밤인들 안민한 적이 없었다. 아비가 매일같이 주연 가무로 버리는 재물이, 다 누구의 것이었느냐. 모두 우리나라 백성의 재물을 약탈해 간 것이었지? 나는 오늘이야 말로 천년 원수를 갚었다.
348
(채찍으로 또 갈기며) 나는 네놈을 그래도 백제의 인걸인줄 알았드니, 불타는 성궁을 끌랴고 하지도 않고, 도망을 치는 송사리같은 약질이로고.
 
349
未坤[미곤]    동궁마마, 그런게 아니옵니다. 제딴엔, 지금 나라를 다시 일으킨다고, 고구려로 응병을 청하러 가는 길이었소이다.
 
350
法敏[법민]    (大笑[대소]하며) 응병? 하하하하 네 아비가 잡히기만 하면 현재 포박된 大臣將士[대신장사] 팔백여명과, 네놈의 족속 일당을 한꾸레미에 뀌여, 당나라 서울로 보낼텐데 재흥이 무슨 기급간할 재흥이냐? (채찍으로 갈기며) 아직도 꿈이 덜깼냐? 소정방은 랑장 유인원(郞將 劉仁願)으로 하야금, 이 京師[경사]를 지키게 하고, 五部[오부]에는 웅율(熊律), 마한동명(馬韓東明), 김련(金漣), 덕안(德安)의 다섯군데 도독부를 설치하야, 삼십사군 이백성을 통활하도록 만반 준비가 거미줄같이 주밀히 되었는데, 네놈이 그 병신다리를 끌고 고구려 국경을 넘을려고 했다하니 우습기도 하거니와 일변 측은키도 하다.
 
351
[륭]     (慣激[관격]과 수치에 전신을 전률하며) 우리나라는 네말과 같이 도저히 재흥치 못할 상태로 됐다하되, 앞으로 소정방의 창끝이 어데를 겨눌지 그것을 모르는 네가 나는 가히 불쌍하다.
 
352
法敏[법민]    목적을 달했으니 그는 귀국할 것이다.
 
353
[륭]     내 너의 稚氣[치기]가 가여웁고, 또 한가지, 그래도 너는 단군이래 조선의 동족이요, 당나라는 바다를 건넌 이족임에, 한마디 들려주거니와 너는 한시 바삐 귀국하야 국경을 막을 도리를 강구하라.
 
354
法敏[법민]    하하하, 그런 공갈은 뒀다 해라.
 
355
[륭]     소정방이 삼국을 한꺼번에 집어먹을 야심이 없든들, 너의 나라를 무얼 보고 십삼만 군사를 데리고 염천 아래 고생을 하겠냐?
356
한번인가 당병이 先陣[선진]을 친적이 있었냐? 항상 너의 군사의 뒤를 따르며 될 수 있도록 군력을 허비치 않을려는 전법을 재고해보라.
 
357
法敏[법민]    (침을 面上[면상]에다 뱉으며) 주전없다. 들으니, 백제 조정에서 네놈은 언제든지 先見之明[선견지명]이 있는듯 껑충댄다 하드니 과시 이제 보니 허문이 아니였구나.
 
358
[륭]     (大聲叱咜[대성질타]하며) 백제의 호반에는 칠백년래로 한번인가 이런 비겁한 짓이 없다. 적의 왕자는 왕자답게 대해라. 너도 신라의 태자가 아니냐?
 
359
文思[문사]    이놈아, 이줄을 끌르고 당당이 칼로 싸우자. 그것이 호반을 존중이 여기는 대장부의 제 떳떳한 기상이 아니냐?
 
360
法敏[법민]    백제에는 이런 호반이 없었다구.
361
(또 때리며) 네아비가 적왕의 공주를 뺏어다, 일생을 짓밟은 건, 군자의 행실이냐? 내 누이를 내놓아라.
 
362
[륭]     시나라 마마께서는 승하하시였다.
 
363
法敏[법민]    내 누이에게 마마라 불르지마라. 불쾌하다. 내가 네 말에 속을 것 같으냐? 어데다 숨겨놨냐? 빨리 대라.
 
364
[륭]     승하하시였다. 일구이언 하랴?
 
365
法敏[법민]    (軍卒[군졸]을 보고) 그 관솔불 가져오느라.
 
 
366
군졸 한사람, 관솔방망이에 불을 붙여 法敏[법민]에게 준다.
 
 
367
法敏[법민]    (隆[륭]의 얼굴에다 가까이 대며) 아니대겠느냐?
 
368
[륭]     (뜨거워 비지땀을 흘리며 참을려고 이를 악문다)
 
369
法敏[법민]    빈궁에 있을 리는 만무하니 네아비가 데리고 갔을 것이 틀림없다. 네 아비의 피란간 곳을 대란 말이다.
370
(지지며) 그래도 말않겠냐?
 
 
371
蓮姬[연희]는 草庵[초암] 뒤에서 채찍이 隆[륭]의 얼굴에 감길 때마다 자기가 맞은 듯 몸을 움츠린다. 몇번이고 뛰어 나오려는 것을 늙은궁녀에게 붙들려 못 나오다가 더 참을 수가 없어 늙은궁녀를 밀어 제치고 뛰어나와 법민의 팔에 매달리며
 
 
372
蓮姬[연희]    네 누이는 륭 대군마마를 극할랴고 술에다 독을 탓다가 발각이 되니 부끄럼과 가책에 못 이기셔 칼을 물고 연못으로 몸을 던지셨다.
 
373
法敏[법민]    이년이 어떤 년이냐? (밀어제친다)
 
374
[륭]     (애가 타서) 연희, 연희.
 
375
蓮姬[연희]    네놈이 시키지 않았든들 네 누이가 그런 무서운 짓을 했을 리가 없다. 결국 네 놈이 네 누이를 죽인 게 아니고 뭐냐? 폭악한 네놈 같으면 그 무사답지 못한 행위로 당장 죽었을 것이로되, 대군마마께서는, 그래도 네놈의 사신이 왔을 때 따라가기를 권하셨으나, 네 누이가 따라가지를 아니 하였었다. 그래도 믿지를 못하겠거든, 궁은 재가 됬으되 푸른물은 아즉도 청청할 것이니 들어가 연못을 뒤져보려무나.
 
376
法敏[법민]    (땅을 쾅쾅 발로 굴르며) 오, 이년도 같이 매달아라.
 
 
377
군졸들 蓮姬[연희]를 묶어 십자가에 磔刑[책형]을 하여 쳐든다. 비 점점 세차게 쏟아지기 시작한다.
 
 
378
[륭]     연희, 웨 나를 이렇게 괴롭히오?
 
379
蓮姬[연희]    마마, 모도 저희들 때문이외다.
 
380
文思[문사]    숙부, 아까 내가 죽자고 할때 왜 아니죽고 이런 꼴을 보여주오?
 
 
381
興首[흥수]는 磔刑[책형]이 된 채 운명을 했다.
 
 
382
蓮姬[연희]    (돌연 울면서) 아버님, 아버님.
 
383
文思[문사]    떠나셨나 보오.
 
384
蓮姬[연희]    아버님, 아버님 (운다)
 
385
法敏[법민]    들고 궁으로 가자.
 
 
386
法敏[법민] 앞서고, 군졸들 四人[사인]의 刑架[형가]를 쳐들고 내려가려고 한다.
 
 
387
[륭]     (하늘을 우르러 地心[지심]까지 파고 들어갈 듯한 원통한 소리로) 부왕 한 분의 영화 영달이 칠백년 대계를 그르쳐 백제 장부의 원한을 천추에 남기게 했구나.
 
388
法敏[법민]    미친개라면 달이나 뜨거든 짖으라.
 
 
389
槿香[근향], 槿召奴[근소노] 뛰어나와 磔刑架[책형가]를 들고나가는 군졸에게 매달리며 길을 막는다.
390
敵軍[적군]를 채찍으로 갈기며 걷어찬다. 敵軍一行[적군일행] 나간다.
391
槿香[근향]과 槿召奴[근소노] ‘대군마마’ ‘대군마마’하며 채찍으로 맞으며 달려간다. 비바람 점점 높아간다. 먼 ― 하늘에서 천둥이 굴러와 근처 고목에 ‘딱딱딱’하고 낙뢰한다. 천둥 번개 일동이 퇴장하자, 숨었든 宮女[궁녀]들, 치마를 뒤집어쓰고, 비 맞은 병아리떼같이 초암으로 우루루 몰려온다. 모두들 전신을 부르르 떨며 隆[륭]의 나간 곳을 응시한다.
 
 
392
宮女一[궁녀일]   대군마마를 뺏어옵시다.
 
393
宮女二[궁녀이]   저놈들이 마마를 장작불로 태워 죽일꺼요.
 
394
宮女三[궁녀삼]   사지를 찢을지도 모르오.
 
 
395
일동, 극도로 분노하여 ‘대군마마’ ‘대군마마’ 부르며 좇아나가려 간다. 남아있는 宮女[궁녀]들은 공포에 싸여 벌벌 떨고 있다.
396
내려갔든 宮女[궁녀]들, 軍卒[군졸]들에게 채찍을 맞으며 우루루 몰려온다. 적군이 나가면 또 ‘대군마마’를 부르며 좇아가고 매를 맞고는 몰려오고 한다.
397
槿香[근향], 槿召奴[근소노] 다시 나온다. 宮女[궁녀]들 隆[륭]을 부르며 대성통곡한다. 피난오는 궁녀들 또 한떼가 올라와 합친다.
 
 
398
槿香[근향]    (조금 떨어진 바위로 올라가 일동을 향하야 한마디 한마디 똑똑이) 지금 대군마마께서 저처럼 고난을 겪으시는 것이다 누구때문입니까? 우리가 굳이 살려고 따가가겠다고만 하지 않었든들 이런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상감마마의 존망을 알길이 없어 궁금하였으되, 무사히 강을 건느셨다니 이제는 마음도 놓입니다. 우리가 이꼴을 하고 상감마마를 찾어가면 설사 뵈옵기는하되 인자하신 마마의 심금만 괴롭게 할 것이 아닙니까? 칠백년간 부귀영화를 자랑하든 우리나라는 저 불타는 궁성과 함께 영원히 망했읍니다. 우리가 앞으로 살아있으면 돌아올 것은 욕밖에 더 있읍니까? 만일 잡히여 적군 놈에게 이 깨끗한 몸을 더럽힌다면 우리는 끝끝내, 백제의 멸망에 설상가상으로 누명을 씌울 것입니다.
399
(일동, 긴장 속에 조용히 듣는다.) 륭대군마마께서 하신 말씀과 같이 우리는 백제의 꽃입니다. 아름다운 꽃처럼 향기한 죽엄을 하는 것이 후세에 나라의 끝을 아름답게 할 것인 줄 압니다. 그럼으로 나는 구구히 사느니보다 조초롭게 백제의 왕실을 따라 저 사자수 푸른물에 몸을 던저, 궁녀로서의 정절을 지킬려 하오니, 여러분 가운데 제뜻에 찬동하시는 분이 계시면 서슴지 말고 저를 따르십쇼.
 
 
400
宮女[궁녀]들 감격과 흥분 가운데 ‘나도’ ‘나도’하며 槿香[근향]과 槿召奴[근소노] 앞으로 몰려나온다. 비바람은 무서운 세력으로 주위를 몰아친다. 궁녀들떼가 연달아 기슭에서 올라와 말 없이 합친다.
 
 
401
어린宮女[궁녀]   언니, 죽으면 이 저고리빛 새가 되서 목구멍이 터지도록 울테야. 강 우이를 날르면서 맘껏 싫건 울테야.
 
402
늙은宮女[궁녀]   (앞으로 나오며)
403
우리가 죽고나면, 치마 주름주름, 머리칼 카락카락 사모친 원한을 어디가 풀겠냐? 죽어 새가 되서 우느니 보다 살아 마지막 실컷 울기나하자.
 
 
404
늙은 궁녀 머리를 풀고 왕실을 향하야 곡을 한다. 일동 따라 운다.
 
 
405
어린宮女[궁녀]   (절벽 아래를 넘어다 보고 기겁을 해서 뒤로 물러서며) 언니, 아이 무서.
 
406
槿香[근향]    치마로 얼굴을 싸렴.
 
407
어린宮女[궁녀]   이 치마는 상감마마께서 주신 치마야.
 
 
408
槿香[근향]과 槿召奴[근소노] 어린궁녀의 세사람 치마로 얼굴을 싸고 물에다 몸을 던진다. 남아있는 궁녀들도 제각기 이삼인씩 꼭 붙들고 물로 뛰어든다. 뒤이어 山麓[산록]에서 이 광경을 보았나보다. “같이 가자” “나도 죽겠다”하며 궁녀들 떼가 올라온다. 비바람은 점점 높아가고 電光[전광], 雷鳴[뇌명]의 騷夜[소야]에 四方[사방]에서 물로 뛰여드는 풍덩 풍덩하는 소리만이 처참히 울려올 뿐.
 
 
409
― 幕[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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