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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하선생방랑기(無何先生放浪記) ◈
◇ 1934년 12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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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2
김상용
목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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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無何先生放浪記[무하선생방랑기]
 
2
1934년 12월
 
 
 

1. 점심을 굶고

 
 
4
점심을 굶었다. 푼전도 없는 까닭이다. 빈 속에 거름을 퍼 나르려니 코에 단내가 난다. 어깨가 아프다. 허리가 끊어져 온다. 신성고결한 놀음도 굶어서는 못할 것이다. 금강산도 먹고 봐야 구경이다. 50전을 받아들고 황혼의 거리를 걸었다. 오는 길에 5, 6군데의 음식점을 지났다. 음식점마다 아궁이에 불이 이글된다. 국김, 떡 냄새가 코를 찌른다. 목구멍에서 굴대질을 한다. 써억 들어서서 받아든 50전을 내치기만 하면 족하다. 위장이 일시에 주름살을 펴고 勸馬聲[권마성] 웃음을 칠 것이다. 그러나 旅閣[여각] 말 말뚝에 나귀가 매여 있다. 종일 풀 한줌을 못 먹었을 게다. 가엾은 신세다. 그 신세를 생각하고 음식점에 들어설 정도로 내 발은 잔인치를 않았다.
 
5
콩 한 되, 수수 한 되를 사 들고 돌아왔다. 나귀는 나를 보자 흐흥 소리를 친다. 굽을 구른다. 계속해서 꼬리를 흔들며 콩과 수수를 씹는다. 그 꼴이 몹시 귀엽다. 순진하다. 털이 까칠해졌다. 본래 여윈 나귀다 여윈 몸이 그 동안 고생에 더 여워진 것이다. 가엾은 생각이 난다.
 
6
이 길을 떠난지 오늘이 열 나흘째다. 서울과 백리를 相距[상거]한 이곳이다. 짧은 동안이었다. 짧은 거리도 된다. 우리는 이 짧은 동안 이 얼마 안되는 거리에 여러 산을 넘었다. 여러 들을 지났다. 여러 물을 건넜다. 여러 꼴을 보았다. 여러 喜[희]와 悲[비]를 겪었다. 새를 쫓는 애 떼를 만났다. 떡집 어멈의 욕을 당했다. ‘물레대가리’의 변설을 들었다. ‘쫄쫄이’의 ‘집게형’을 받았다. ‘대구입’의 억울한 사정을 들었다. ‘최맹’의 주머니를 털었다. 쌍동이의 일생담을 들었다. 마돌쇠기수의 용궁행 연습을 시켰다. 재미있던 或喜或悲[혹희혹비]다.
 
7
내일이 오기 전에 이 생이 끝나지 않는다. 뉘 능히 호언하랴? 그러나 앞으로 10년을 더 산다면 20년, 30년을 더 산다 하면 나는 거의 무수한 형형색색의 희와 비를 볼 것이다. 그만한 재미를 보는 것이다. 혼자 무덤 속에 누웠으면 귀찮은 꼴은 아니 본다. 그러나 무료, 단조를 처치할 길이 없을 게다. 역시 죽는 날까지는 죽는 것보다 사는 것이 낫다. 생이란 요강 같되 일종의 재미다.
 
8
나귀를 팔아버리라고 주인 마누라가 권을 한다. 옆의 사람들의 그러하라는 응원도 있다. 팔면 다소 궁함을 면할 수도 있다. 없는 수입에 콩, 수수를 살 걱정도 없어진다. 荒貨[황화] 짐도 없는 이제 나귀는 나의 혹같은 식객이다. 기약없는 毛遂自薦期를 기다리는 나귀 처지다. 그러나 나귀는 지금의 유일한 지기가 아니뇨? 無二[무이]한 반려가 아니뇨? 나에 대한 나귀는 시인에 대한 영원의 구원과 같다. ‘단테’는 ‘베아트리체’에 대한 동경, 갈구, 희생, 추억으로 〈神曲[신곡]〉을 쓴 것이다. 나는 하루의 고역을 달게 하였다. 주린 위장을 끌고 무시무시한 음식점 관문을 무난히 돌파하였다. 온전히 나귀의 덕이다. 천지는 넓다. 그러나 내 떠날 때, 섭섭해 할 자 뉘뇨, 내 돌아올 때 굽을 쳐 맞을 자 뉘요? 오직 나귀가 있고, 나귀가 있을 뿐이다. 나귀는 내 생의 동력이다. 靈感[영감]의 원천이다.
 
9
나귀야 내일이 또 올 것이다. 그날의 기쁨과 슬픔을 함께 또 맞아보자.
 
 
10
(「東亞日報[동아일보]」, 1934년 12월 1일)
 
 

 
 

2. 식전(食前)의 괴성

 
 
12
식전 바람이다. 신성, 고결한 ‘통’을 메고 마수거리로 찾아든 집이다. ‘부지깽이’를 얽어 매고 양회부대나 받아 놓은 소위 문화주택이다. 까치의 둥지나 성냥갑을 세로로 세운 듯 하다. 꼴에 이층이 억척세다.
 
13
나는 瑠璃南窓[유리남창] 앞에 ‘통’을 내려놨다. 창이 열렸다. 창을 새여 “찡, 땡, 띵”오지그릇 깨는 소리가 난다. 계속해서 ‘아 ─’‘꼬─’‘끼 ─’‘깨 ─’한다. 出奔前[출분전]의 ‘노라’다, ‘종달새’의 아침 노래다, 동침 맞는 애놈의 언문 뒤 풀이다, 비명이다, 발악이다, 발악 겸 비명이다. ‘따오기’와의 교배종이 아니고는 ‘종달새’론 이럴 수가 없다. 음악도 이쯤되면 半折해 네 자도 못될 팔자다.
 
14
세상에 싫은 것이 많다. 빈대는 따끔대어서 싫다. 벼룩은 스물거려 싫다. 향수는 코에 역해 싫고, 소태는 입에 써서 싫다. 빚장이는 돈을 내라 해서 싫고, 중학생은 없는 멋을 부려서 싫다. 角帽[각모]장이 알락구두가 싫고, ‘모가’는 아귀 같은 차림차림이 싫다. 이렇듯 ‘싫은’중에 ‘듣기 싫은’것도 ‘싫은’의 하나다. ‘듣기 싫은’중엔 무엇이 으뜸일고? ‘끼 ─깨’의 무리의 발악밖에 될 것이 없다. 염병의 까마귀 소리는 厚重味[후중미]나 있다. 이 발악은 들으면 소름이 끼친다. 저는 제 흥에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듣는 사람은 무슨 죄뇨, 귀 점지한 ‘삼신’은 욕을 먹어 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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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 나무 밑에서 잠을 잔다. 그늘 덕에 혼곤히 잠이 들었다. “왱─”하고 왕매미가 운다. 일것 들었던 잠이 ‘왱 ─’통에 直走[직주] 삼천리를 한다. 이처럼 분한 일이 없다. 이런 때는 물론 왕매미를 저주해야 한다. 이런 때 저주할 줄을 모르는 사람은 시인이란 몽유병자 밖에 없다. 단잠 깨논 “魔物[마물]을 寒蟬[한선]이여! 熱蟬[열선]이여!”하는 놈들의 수작이 弓弓乙乙教[궁궁을을교]의 末流[말류]가 아니고 무에뇨? ‘왱 ─’군은 그늘에 앉아 왱왱하는 게 업이다. 헐한 업이다. 헐할 업은 하되 이슬을 먹으니 남에게 누는 없다. 아직 동냥자루를 메고 나와 한푼 줍쇼 하드란 ‘왱’군 소식을 들은 적이 없다. ‘왱’군은 말하자면 그저 “왱”이 병이다. ‘왱’외에 별 해독은 없다.
 
16
‘끼 ─ 깨 ─’류는 “끼 ─ 깨 ─”발악을 하며 질그릇을 깨는 게 업이다. 이 역시 헐한 업이다. 업이 헐한 점에 있어 ‘왱’군과 동류될 자격이 있다. 그러나 이슬을 먹고 못사는 이 만치 仙味[선미]가 적다. “끼 ─ 깨─”하고 나서는 ‘바구미’처럼 쌀섬을 판다. 칼과 삼지창을 들고 쇠궁뎅이를 따라 다닌다. 목화 털은 억세다 하여 염소 외투를 벗기고 ‘번데기’ 껍질을 깐다. 그 해독이 어이 ‘왱’군으로 따를 번이나 하뇨. 그러나 세상은 해독으로 사물을 버리는 것이 아니다. 세상은 선과 함께 악을 애석한다. 이를 팔아 해를 사기도 한다.
 
17
‘왱’군은 단잠을 깬다. 그러나 여름이 오면 나뭇잎이 핀다. 나뭇잎이 피면 의례히 ‘왱’군이 우는 게다. 세상엔 오늘도 “끼 ─ 깨”가 멎지 아니하뇨. 내일도 또한 “끼 ─ 깨”가 있을 것이 아니뇨.
 
 
18
(「東亞日報[동아일보]」, 1934년 12월 2일)
 
 

 
 

3. 성불(成佛)한 돼지고기

 
 
20
[정]은 치면 소리가 난다. 신경이 있곤 자극에 대해 감각이 없을 수 없다. 감각이 있으니 자연 “끼 ─ 깨 ─”도 듣게 된다. 수없는 바늘이 귀막을 뚫으는 것이다. ‘끼 ─ 깨 ─’와 오지그릇 깨는 소리가 동시에 뚝 끊긴다. 다행한 일이다. 찌푸렸던 이마를 펴려할 때다. 난데없는 “여보!”소리가 돌맹이같이 머리 위에 떨어진다. 나는 번쩍 머리를 들었다. 아 ─ 내 앞에 나타난 한 개의 괴물, 백야에 나온 餓鬼[아귀]다, 화투보구니다, 회빡이다, 여우다, 여꽹이다, 빠끔한 구멍물이 회빡속에 반짝댄다. ‘깨깨’의 정체다. 이 때 절호의 운명을 면한 것은 조상이 준 튼튼한 신경덕이랄 밖에 없다. “여보 댁도 사람이오?”하고 아귀는 빠끔한 두 구멍으로 나를 노려본다. “왜 댁도 사람이냐니, 사람같지 않고 신같아 뵈.” “신! 미투리가 어떻소, 참 기가 맥혀! 여보 사람이구야 남의 집 뒷간을 아침에 쳐가는 데가 어디 있소?” “왜! 아침에 쳐가면 누가 죽소?” “죽진 않지만 아침 공기를 이게 무에요?” “아침 공기를 어쨌단 말요?” “아침 공기를 어쨌다니, 댁은 이 냄새가 않나오?” “냄새가 어떻다고 그러오?” “그럼 좋소! 이 구린내, 이 지린내가 좋아?” “안 졸 것도 없지만 그렇거든 구린 것, 지린 것을 아니 눴으면 좋지 않소?” “무어 어때?” “정 구린내 지린내가 싫으면, ‘파우더’똥에 향수 오줌을 놓구려, 그랬으면 피차 좋지 않소.” “무에 어쩌고 어째? 여보 그게 말야, 응, 그게 말 따위야?”
 
21
이때 “왜들 그래?”하고 나오는 작자 하나가 있다. 돼지고기로 만들어 눈은 박아논 ‘닁닁’의 표본이다. 불에 쬐면 기름이 지르르 흐를 듯 하다. “이 자식이 고약하게 그 ─ 런.” “애, 그 자식이 고약하다뇨.” “애봐요. 이 자식이 우리더러 ‘파우더’똥에 향수 오줌을 누랬단 말얘요.” “고라 ─” 하고 ‘돼지고기’가 뜰로 내려섰다. 느닷없이 내 뺨을 친다. 한 대 뺨에 노할 무하선생이 아니다. ‘끼 ─ 깨’와 ‘돼지고기’의 신상이 너무 불쌍타, 그들의 고질을 고치는 것은 나의 의무다. 나는 가마 황금탕을 ‘돼지고기’머리에 부워 주었다. 成佛[성불]한 돼지고기! ‘나무관세음보살 ─’ 음, 도로도로, 지미사바하.
 
 
22
(「東亞日報[동아일보]」, 1934년 12월 4일)
 
 

 
 

4. 허공두(許空頭) 선생의 열변

 
 
24
‘심심’하면 座首[좌수] 볼기를 친다. 남은 조선답 마지기를 팔아 겨우 변방 수령 하나를 얻어 하였다. 이때껏 압제받던 분을 제 골 백성에게 폴어볼 작정으로 내려왔다. 내려온지 열흘에 訴狀[소장] 하나 없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보료’에 앉았을 뿐이다. 東軒[동헌] ‘지기’와 다를 게 없다. ‘살려줍쇼’가 없는 자리에 ‘에헴’도 위풍이 적다. 재털이를 두드려 본다. 열흘을 두드리니, 이 노릇도 ‘진력’이 난다. 생각다 못해 좌수를 잡아들여 그 볼기 위 ‘심심’을 푼 것이다.
 
25
세상에 ‘심심 扶斯[부사]’란 부사병이 있다. 속칭 ‘安逸症[안일증]’이라는 것이다. 장질부사 이상의 무서운 괴질이다. 한번 이 괴질에 걸리면 놈의 신세는 바닥을 보는 날이다. 증세가 보이기가 무섭게 경마, 주식, 取引[취인], 粉面[분면], 예찬, 도색, 유희, 마작, 화투, 골패, 내지 傷人[상인], 해로운 물건의 온갖 광태를 부린다. 벌거벗고 거리에서 춤을 추는 이상이다. 이 증세는 반드시 포만에서 기인한다. 그 증후는 ‘하품’으로 보여진다. ‘하품’만 보이면 곧 이 병의 환자인 속단을 내려도 좋다. 나귀가 ‘하품’을 하였다. 이 놈이 ‘심심부사’에 걸린 것이다. 유일한 내 지기 ‘지기’가 그 몹쓸 괴질에 걸린 것을 보고 있을 수가 없다.
 
26
그는 우의가 아니다. 나귀를 끌어냈다. 타고 거리를 돌아다닌다. ‘多忙[다망]’치료법을 쓰는 것이다. ‘심심부사’에 이 특효제가 있을 뿐이다. 어느 거리를 지나노라니 커다란 광고판 하나가 눈에 띈다. ‘인생문제대강연회’라고 특서한 광고다. 연사엔 허공두 선생이라 기록해 있다. 나귀는 그만 치료에 완전히 舊態[구태]를 회복하였다. 치료후엔 잠시 휴식이 필요하다. 나는 내 지기를 회장 문 앞에 매고 장내로 들어 섰다. 희미한 전등 밑에 콩나물 대가리가 소복하다. 소위 청중이란 까마귀떼들이다.
 
27
까마귀떼 앞으로 두어자 높이 되는 단이 있고, 단 위에 오늘 저녁의 걸물 허공두선생이 섰다. 선생은 방금 까마귀떼를 향해 불을 뿜는 중이었다.
 
28
“그러기에 여러 사람이 여러 성현과 철인이 인생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았던 것입니다.” “어떤 이는 인생을 如浮雲兮[여부운혜]라 하였읍니다. 인생을 뜬 구름에 비했읍니다. 인생은 문득 있다 또 문득 없어지는 것이 뜬구름”같다 한 것입니다. 또 어떤 이는 逝者如斯[서자여사]라 하여 인생을 흐르는 물에 비했읍니다. 인생은 물같이 흘러 그칠줄을 모른다 한 것입니다. 그들의 말이 그럴 듯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말엔 어딘지 손 안 닿는 가려운 곳이 있읍니다. 나는 인생을 이렇게 봅니다.
 
29
인생은 불과 같다 봅니다. 아! 인생은 불밖에 같을 것이 없읍니다. 공두 선생도 이어 “누구시든 인생이 불 같지 않다거나 불 외에 다른 것 같다는 생각을 가졌거든 이 자리에서 당당히 그 말씀을 해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과연 그럴 분이 계실지요.”한다. 아주 오만무손한 태도다.
 
30
나는 공두와 ‘가마귀떼’를 몽매에서 건져 줄 자비를 느꼈다. “공두공의 수작은 개수작에 불과하오, 인생은 결국 요강 같소”하고 소리를 질렀다.
 
 
31
(「東亞日報[동아일보]」, 1934년 12월 5일)
 
 

 
 

5. 인생은 ‘요강’ 같다!

 
 
33
‘인생이 요강 같다’는 소리가 나자 장내가 와락 소연해진다. 하하, 허허, 호호, 후후, 흐흐, 히히, 해해 ‘하자줄’총 출동의 웃음장이 벌어진다. 공두선생만 넋을 잃은 듯 웃는 가마귀떼를 바라보고 섰다.
 
34
“우리 인생이 요강 같다는 분의 말씀을 들어봅시다. 우리가 이런 새 철리에 대해 다만 웃기만 하는 것은 학구적 태도가 아닌 줄 아오.”하는 자가 있다. 관중석 중간 쯤서 일어선 ‘꺽다리’다. “옳소 ─”하고 뭇까마귀 ‘꺽다리’말에 응해준다. 뭇까마귀의 청을 참아 저버리기가 어렵다. 이런 때 도를 전하는 것이 옳다는 생각도 난다. 나는 서서히 단에 올랐다. 장중·正嚴[정엄]은 내 태도다. 잠시 장내가 숙연해 지기를 기다렸다. “지금 공두공은 인생을 혹은 구름에 비하고 혹은 물에 비한 몇몇 사람의 설을 먼저 들었오. 그 설들을 들어 그 설들이 그럴 듯하되, 어딘지 그렇지 못할 가려운 곳이 있는 것을 설파하였오.” 그리고는 인생은 구름이나 물 같은 것이 아니라 오직 불 같다는 자기 설을 말하였오.
 
35
“공두공의 설도 그럴 듯 하오. 그러나 공두공의 설 역시 손 안 닿는 가려운 곳이 있오. 나는 우선 공두공설의 가려운 곳을 지적해야 할 것이오. 그러나 나는 이에 대한 장황한 설명을 생략하오. 그 설명이 내 설에 하등 필요가 없기 때문이오.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내 설을 말하겠오.”
 
36
“인생이 구름 같지도 않고 물 같지도 않고 또한 불 같지도 않으면 인생은 그러면 무엇과 같으냐? 네 인생은 요강 같다 하오. 요강밖에 같을 것이 없다 하오.” “어째 요강 같으냐? 그 이유 이러하오.” “인생이란 멀리서 볼 때 그럴 듯한 것이오. 매어놓고 생각하면 인생 속에 온갖 재미있는 것, 아름다운 것, 이상한 것이 숨은 것 같단 말요. 우리가 여럿을 만날 때 얼마나 큰 기대를 인생에 두었었오. 우리가 젊었을 시절, 얼마나 큰 행복을 인생 속에 기다리오.”
 
37
“그러나 우리가 필경 인생의 참 맛을 알았을 때 인생의 참 속을 우리 눈으로 들여다 볼 때 우리의 인생은 어떠하오. 결코 우리가 멀리서 볼 때, 떼어놓고 생각할 때의 그 인생이 아니란 말이요, 건건찝찔하단 말요, 지린내가 난단 말요, 어웅, 컴컴하단 말요.” “멀리서 보면 그럴 듯하되 급기야 마주 당해 보면 건건찝질하고 어둑 컴컴한 것이 무엇이오, 꼭 요강 밖에 그런 것이 없단 말요. 결국 인생이 요강밖에 같다 할 것이 없오.” “이미 인생 자체가 요강 같으니 그 속에 사는 사람놈들도 요강밖에 같을 것이 없단 말이오. 사람놈들을 자세히 봐보오. 깡그리 요강 같단 말요. 요강의 어느 부분하고나 같지 아니한 놈이 없단 말요.”
 
38
“뽀족한 체 하는 놈, 요놈은 요강뚜껑의 꼭지란 말요. 원만한 체 하는 놈은 요강중툭이오. 빤빤둥이는 요강 밑바닥이란 말요. 속이 컴컴하고 음흉한 놈은 요강 속이고, 좀 바라진 놈은 요강 뚜껑 재쳐논 것 같이 외다.”
 
39
“소위 성현이란 자가 요강부셔 논 폭밖에 못 되는 것이고, 약하다, 간사하다 해야 오줌 곁에 앉은 요강 이상 고약할 것이 없단 말요. 그런 중에 공두공같이 쥐 뿔도 모르고 인생 운운, 아는 체하는 친구는 요강치고는 내다버려야 할 이빠진 오지요강이외다.”
 
 
40
(「東亞日報[동아일보]」, 1934년 12월 6일)
 
 

 
 

6. 명성(名聲)아 없어져라!

 
 
42
어느 네거리를 걷고 있다. 애놈 7, 8이 논다. 내 행색을 유심히 본다. 저희들끼리 수군댄다.
 
43
“아! 저이가 요강선생이다.”하고 한 놈이 외친다. “요강선생! 요강선생!”하며 애놈들은 노는 것을 그치고 나를 따른다. 상점에 앉았던 자들까지 쫓아 나온다. 말이 없이 그저 나를 보고 빙그레 웃기만 한다. 이 거리에 온 지 10여일 내외밖에 아니된다. 그동안 나는 길가 애들이 이름을 알 정도로 유명해진 것 같다.
 
44
‘사마귀’는 모르는 결에 자라난다. 내 명성은 사마귀같이 자란 것이다. 자라는 것이다. 더럭 겁이 난다. 명성처럼 위험한 것이 없다. 더러운 것, 귀찮은 것이 없다. ‘사마귀’로 비길 것이 아니다. 名垂千秋[명수천추]라 한다. 본래 痴骨[치골]의 꿈이다. 치골이 쇠똥을 ‘점병’으로 먹는 꿈이다. 물에 빠지면 미인이다. 찬 밥 한 술에도 자선이 팔려간다. ‘실크 햍’만 쓰면 ‘물개’도 縉紳[진신]이다. 뭇 아가리의 喧騷[훤소]다. 훤소는 명성을 잉태한다. 요컨대 衆愚[중우]의 판단이다. 愚[우]는 衆[중]인대도 결국 우에 불과라. 우의 판단은 우의 범주를 양조할 뿐이다.
 
45
명성의 꿈은 우의 우한 판단의 乞求[걸구]다. 명성은 중우에 대한 아유에서만 수집된다. 진정한 인격은 중우를 무시한다. 명성을 거부한다. 명성은 진정한 인격에 대한 모욕인 까닭이다. 모독인 까닭이다.
 
46
대가리에 기름을 지르르 바른 ‘올꾸니’놈이 무대 위에서 ‘히죽’인다. 바가지쪽이 놈의 가슴에 있다. ‘洋[양] 자행금롱’이다. 어깨를 지축지축한다. 다리를 일깃댄다. ‘앙앙’행금줄을 긁는다.‘바나나’먹는 놈들의 煽情[선정]‘아리랑’이다. 눈깔을 헤번덕인다. 개기름 웃음을 던진다. 중우는 ‘올구니’를 얼싸안았다. ‘올꾸니’는 중우 속에 제명성을 찾았다. ‘뚱뚱보’녀석이 반절된 ‘선공이’를 들고 섰다.
 
47
‘사팔뜨기’가 미친 것처럼 홰홰 팔을 젖는다. 두르던 팔로‘휙’공을 던졌다. 뚱뚱보 녀석은 달려온 공을 선공이로 쳤다. 마침 바로 멎어 공은 판장을 넘었다. 오통 녀석은 배를 보냈다. 중우는 악을 쓴다. 거꾸로 물구나무를 선다. 종내 뚱뚱보를 ‘덩’을 탠다. 떠 메고 돌아다닌다. 중우는 뚱뚱보 녀석을 올라 앉혔다. ‘뚱뚱보’녀석은 명성을 얻었다. 명성은 이처럼 더럽다. 명성은 일종의 치욕이다. 명성 없는 것 이상의 영광이 없다. 무명은 열반지대다. ‘앨드리치’가 ‘명성’을 읊어,
 
48
거지의 왕도 구해 너를 얻고
 
49
卑友漢[비우한]네 월계관 받았나니
 
50
명성아 너와 떠남이
 
51
이 아마 영광일까 보다.
 
52
추한 명성 이몸에 달까 무섭다. 나귀야, 또 어서 거리를 벗어나자.
 
 
53
(「東亞日報」,1934년 12월 7일)
 
 

 
 

7. 욕(辱)과 활력소

 
 
55
“저 녀석 땡 잡았네.”한 일이 있다. ‘노랑둥이’가 미간에 내 천(川) 자를 그린다.
 
56
“말이 그렇게 쌍돼 쓰오.”“그럼 뭐래도 옳소?”
 
57
“친구 수가 났어 하는 게지.”하던 것이다.
 
58
지금 내 앞에 있는 친구들의 설왕설래를 노랑둥이가 들으면 아가리에 가재 침을 물 것이다. ‘목도’하는 8, 9친구가 내 앞에 있다. 돌을 메어 나르는 중이다. 모두 어깨가 넓직하다. 상판이 검어 두툴하다. 다리엔 伏令[복령]이 울퉁불퉁하다.
 
59
“야, 이 경을 파다발 치듯 할 놈아, 어서 며라.”‘고리눈’이 ‘땅달보’를 건드린다. “이런 염병 3년에 대구리가 묵사발이 될 놈 같으니.”하는 땅달보의 기세다. 날래 고리눈에게 질 것 같지를 않다.“응뎅이에게 布網[포망]을 쓸 놈 다보겠네” 하고 고리눈은 밀대를 어깨를 댄다. 일제히 껄껄 웃는다. “영치기”하고 한꺼번에 어깨를 힘을 준다. 집채 같은 돌이 공중재비를 하여 달려간다.
 
60
“이놈아, 여따봐라 저따봐라 하니, 사발랑끝에 뚝 떨어졌구나. 이뺨 저뺨 선치북장 후치털미 징갈비 양지뺨이 올라간다.”고리눈은 돌아오는 길에 또 땅달보에게 삿대질을 한다.“이런 시럽에 날똥아지 아들놈. 야, 이놈아 너는 정월에 정치고 2월에 이질 배 앓고, 3월에 삼눈 앓고, 4월에 사족을 못쓰고 5월에 오라지고, 6월에 육시를 하고 7월에 치질 앓고, 8월에 팔 앓고, 9월에 귀 앓고, 10월에 십달 앓고, 동짓달이 동지팥죽에 체해, 섣달 그믐날 부처 가운데 토막을 베고 죽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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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런 온, 6월에 복중에 병정 외투 서른 다섯을 입고, 햇궤에서 겻불을 쬐다 죽을 놈 같으니.”역시 고리눈의 대꾸다. 친구들은 욕이 오고 갈 적마다 허허, 껄껄하는 동안 집채 같은 돌이 공중거리를 하여 자리를 옮긴다. 저들은 음악회를 모를 것이다. 회화도 없을 것이다. 문학도 알 리 없다. 그러나 그들은 저렇게 씩씩하다. 저렇게 세차다. 세상은 저들의 힘으로 움직인다. 그 힘의 반은 욕에서 생긴다.
 
62
욕의 덕이 鴻大無邊[홍대무변]하다. 욕은 저들의 예술이다. 淸新濟[청신제]다. 저들에게서 욕을 뺏는 것은 저들의 활력소를 뺏는 것이다. 나는 소위 ‘점잔’예찬의 有識自薦輩[유식자천배]를 생각한다. ‘노랑둥이’류다. 그들은 茶[차]를 홀짝인다, 소곤댄다, 남을 깎는다. 저민다, 긁어본다, 모기 떼들이다, 병아리 오줌들이다. 이런 ‘촌충’이 떼와의 5분동석은 10년 수를 덜어야 한다. 그러나 고리눈과는 한 생을 사귀어도 좋다.
 
 
63
(「東亞日報[동아일보]」,1934년 12월 8일)
 
 

 
 

8. ‘문어’는 삶어 먹다.

 
 
65
그럭저럭 2백여리를 걸었다. 그동안에 벌었던 돈도 주머니 밑에 몇 닢이 안 남았다. 먹으며 굶으며 우리는 이 길을 간다. 떨어진 수수이삭, 피이삭으로 나귀‘시장’을 면해 준 적도 많다.
 
66
右便[우편]으로 망망한 대해다. 풍랑한 해면은 청옥을 갈아논 듯하다. 갈매기가 한가히 떠돈다. 기선 두 척이 연기를 토하며 바깥 바다를 지나간다. 어느 항구에 가는지 이는 無何[무하]의 상관할 바가 아니다. 어선들은 고기잡이가 한창이다. 물가에 대고 잡은 것을 푸는 배도 있다. 나는 나귀를 세우고 고기 푸는 것을 보고 있다. 몇 사람은 뱃바닥에서 고기를 퍼내준다. 몇사람은 퍼내는 것을 받아 뭍으로 나른다. 그들은 소리를 한다.
 
67
유쾌한 광경이다. 뱃바닥에선 한 어부가 퍼내다 말고 “야 ─ 이놈 크다”소리를 친다. “낑”하고 간신이 무엇을 들어낸다. 붉으스름한 ‘살덩이’가 이 편으로 넘어온다. 한 구럭이 될 것 같다. 왕자 ‘문어’다. 문어란 값에 비해 헐한 고기다. 나는 이 ‘살덩이’를 보는 순간‘저놈을 사다 팔아보자’는 생각이 났다. 값을 물었다. 주머니를 털어보았다. 값이 되지 못한다.
 
68
“좀 부족하나 이것 밖에 없소.”하였다. “아따 그것만 내오”한다.
 
69
한 거적을 얻어 문어를 쌌다. 싼 놈을 가로로 나귀등에 얹었다. 우리는 바다를 버리고 뭍으로 찾아든다. 바닷가 사람들이 하필 내 문어를 사 줄 리가 없는 까닭이다. 몇 동리를 들러 ‘문어’를 사라 해본다. 간단히‘싫소’가 많다. 값을 묻는 자도 있다.“여보 어림없는 소리마오.”한다.
 
70
본금을 불러도 비싸다는 것이다. 그저 주면 ‘웃돈’내랄 놈들의 ‘심보’다.
 
71
10여리를 들렀건만 나귀등의 문어는 아직 궁 80의 태공 신세다. 나귀는 영문을 아는지 모르는지 수굿하고 가자는 길을 가기만 한다. 어느 술집 앞을 지날때다. 주정뱅이 하나가 화닥닥 뛰어 나왔다. 너무 급했다.
 
72
너무 급해 지나던 나귀머리를 받았다. 불의의 육탄에 나귀가 껑충 뛴다. 나귀가 뛰니 자연 등에 실린 ‘문어’가 내려질 수밖에 없다. 철석 내려지는 통에 쌌던 거적이 풀렸다. ‘문어’는 여덟 활개를 있는대로 펴고 길위에 자빠진다.
 
73
술먹는 놈, 술팔던 년, 이집 애, 저집 자식 하여 수십 명이 모여들었다.
 
74
“그놈 조 ─ 타, 여보 이놈 삶아 놓고 한잔 먹읍시다.”나귀를 받은 주정뱅이가 문어를 먹자 한다. 그럴 듯한 청이다. ‘안주’로는 문어가 아닌게 아니라 괜찮은 거다. 술잔이나 먹는 놈이면 ‘초고추장’찍힌‘문어점’의 잘깃잘깃 씹히는 진미를 침을 아니 삼킬 수가 없을 것이다. 취중에 진정 발로 주정뱅이는 옳은 말을 한 것이다. 생각하면 문어를 삶아먹는 것이 어디로 보든지 좋다. 술먹는 놈은 좋은 안주에 술을 먹으니 좋다. 나귀는 싣고 다닐 괴로움을 놓으니 좋다. 나는 팔 근심을 덜고 패에 끼어 한 밥을 먹을테니 좋다.
 
75
더욱이 문어로 보면 뭇 文王[문왕]을 일시에 만난 호기다. 기회를 놓치는 것은 문어를 ‘울음’바다에 넣는 셈이다. 다 좋고 하나도 그른 것이 없다. 문어를 삶으라 했다. 이런 때 나귀의 죽 청하기를 잊을 무하는 아니다. ‘거나’해진다. 琴三尺[금삼척]이 없으니 세사는 모르나, 생애는 분명 酒一杯[주일배]다. 주모가 노래를 부른다.
 
76
‘인생 한번 죽어지면, 萬樹長林[만수장림]의 雲霧[운무]’라 한다.
 
77
무하도 이에 대한 한 수의 응답이 없을 수 없다.
 
78
‘이리해 가는 세월 저리한다 아니 가랴,
 
79
石火一生[석화일생]을 일소에 부치노라,
 
80
친구야, 잔 어서 들라, 술 식을까 하노라.”
 
81
이리하여 또 하루가 갔다. 나귀야 내일은 내일 운명이 어련이 맡아주랴.
 
 
82
(「東亞日報[동아일보]」,1934년 12월 9일)
 
 

 
 

9. 졸부(猝富)가 되고나서

 
 
84
‘鑛[광]’을 3백만원에 팔았다. 猝富[졸부]가 됐다고 놈들은 떠든다. 이만큼 가지면 당분간 빌어먹을 근심은 없다. 요만 것에 ‘富[부]’야 何當[하당]고? 그러나 빈한한 조선이다. 벼 열 섬만 해도 발염을 나려 쓰는 곳이다. 부라면 어떠뇨, 잠시 건척해두자. 부라? 명예와 함께 일종의 우연이다. 떡 모판에 넘어질 때도 있다. 쇠똥에 미끄러져 개똥에 코를 박는 적도 있다.
 
85
[복]은 禍[화]와 동일한 가능선상에 있다. 우선 내 3백원이 實例[실례]다.
 
86
그날따라 나귀가 말을 아니 듣는다. “이자식”하고 장난삼아 나귀 볼기를 찼다. 움칠하더니 껑충껑충 뛰어간다. “서라 서라”하며 뒤를 따랐다. 땀이 나도록 따랐다. 날래 서질 안는다. 필경 나무등걸에 고삐가 걸려 버렸다. 이쯤되면 ‘화’가 동하는 거다. ‘볼치’를 한대 먹일 작정으로 옆에서 돌 하나를 집었다.
 
87
‘엄포’로 한 대를 먹이고 돌을 던지려 할때이다. 언뜻 빛이 누래 뵌다. 자세히 보았다. 차돌이 ‘팥고물’묻 듯한 황금의 ‘인절미’다. 소위 노출된 ‘노다지’다. 홍두깨 같은 ‘황금 인절미’가 무우 밑처럼 땅 속에 박혀 들었다. 묻어 버리고 말 처음 생각이었다. 그러나 문어 향식 후 너무 단조한 여러 날이 계속했다. 하품이 다섯 번이나 났다. ‘심심부사’가 무섭다. 한동안 인절미 노름을 해볼 생각이 났다.
 
88
황금이면 돈이라 한다. 돈은 칼과 함께 사내 장난감으로 괜찮은 거다. 잘 쓰면 재미도 있다. 잘못 쓸 때 화다. 더러워진다. 잔인해 지는 것이다. 칼 말이 났으니 말이다. 칼이 고약하다 한다. 칼이 사람 대가리를 무우 잘라 먹 듯하니 어쩌면 좋으냐 한다. 목이 성하려면 칼을 없애야 한다. 과연 그럴까? 칼이란 본래 밤 껍질을 까려 생겨난 것이다. 칼이 밤 껍질 까는 경계를 넘어 ‘항정도림’의 영위를 얻은 것은 칼 혼의 영단이 아니었다.
 
89
‘맘’이란 간신배의 사족 때문이었다. 이는 칼의 족보에 뚜렷한 사실이다. 군함도 그대로 두면 지나가는 나뭇잎 하나 건드리는 법이 없다. 대포를 거니 걸린다. 알을 넣었다. 쏘니 쏘아진다. 화약을 넣었다. 단단한데 메치면 깨지는 이 화약의 본직이다. 군함이 何罪[하죄]요, 대포가 하죄요, 비행기가 하죄요, 총·창·화약·毒瓦斯[독와사]가 하죄요, 다다유덕은 몰라도 무해는 분명한 것이다. ‘맘’의 추악,잔학,탐욕은 비단보로 덮고 애꾸진 군함·대포·화약·비행기·총·창·독와사를 ‘탓’한다.
 
90
과연 몰라 그럴까가 우맹이 측은타. 알고도 그러는가?
 
91
교활이 가증하다. 한때 장난감으로 3백만원을 받았다. 나귀와 내 것이다. 나귀는 절반을 요구할 당당한 권리가 있다. 그러나 노(나귀)군은 이만 것의 분배를 요구할 당당한 권리가 있다. 그러나 노(나귀)군은 이만 것의 분배를 요구할 속한(俗漢)이 아니다. 노군은 ‘장난감’의 ‘노름권’을 일임하고 무언의 船師相好[선사상호]를 고집한다. 그러나 지기에 대한 내 대접이 없을 수 없다. ‘개솔링’망아지 둘을 샀다. 노군은 뒤에, 나는 앞에 탔다. 장난 시작으로 거리를 질주키로 한다.
 
 
92
(「東亞日報[동아일보]」,1934년 12월 12일)
 
 

 
 

10. 학교의 정체

 
 
94
화약을 지고 불로 들어간다. 물론 파멸을 자처하는 우거다. 3백만원은 등에 진 화약이다. ‘장난감’으론 천만 위험타. 겸해 火宅[화택]이 나를 둘렀다. 어서 포기해야 한다. 포기의 연기는 그만한 내 운명의 催促[최촉]이다. 똥이 있다. 파리는 제가 온다.
 
95
검은 숭이가 온다, 쉰숭이가 온다. 쇠살이 온다. 말뼈다귀가 온다, 오소리 잡패가 온다, 별의별 망종이 모여든다. 무하선생 뵙니다 한다. 노선생 안녕합쇼 한다. 영감마님 우메 ─ 한다. 대감마마 멍멍 한다. 할아버지 응애한다. 까마귀 뭇 울음을 뉘 수로 적으랴. 五澗水[오간수]는 오히려 정타. 학교를 세워봅쇼 하는 놈까지 있다. 문명을 퇴치하라 한다. 그나마 남은 선의 싹에마저 끊는 물을 부으려는 거다. 이것이 사회에 복을 끼치는 거라 한다. 하도 어이가 없다. ‘아둔’도 요 정도면 눈물이 흘러 싸다.
 
96
학교란 무얼하는 곳인가 했다. 智[지]를 개발하는 뎁죠 한다. 지란 무엇인고, 아는 겝죠 한다. 정말 알까, 글쎕죠 한다. 요놈도 ‘학교판’에 박아낸‘붕어사탕’이다. 정치학은 政[정]으로, 治[치]하는 學[학]이니라. 윤리학은 倫[윤]의, 理[리]의 학이니라. 종교는 종교사의 모든 것을 제외한 즉 종교니라. 송아지는 소의 아들이니라. 소는 송아지의 어버이니라. 복동이는 순남이와 동갑이니라. 그런고로, 응 그런고로 순남이 나이는 복동이 나이와 같으니라. ‘돌아 右便[우편] 웃’‘돌아우편 웃’‘돌아우편 웃’이다. 이것이 학교에서 개발하는 智[지]라, 이것이 과연 지뇨? 이것이 과연 지의 개발이뇨.
 
97
닭은 무엇에서 낳는고, 닭 알에서 낳으리라. 닭 알은 무엇이 낳는고, 닭이 낳음이니라. 닭의 조상은 무엔고, 알이니라. 알의 조상은 무엔고, 닭이니라. 매암, 매암, 매암 이것이 학교에서 개발하는 지다. 이것이 과연 지의 개발이뇨.
 
98
세워야 하느니라, 사랑해야 하느니라, 사람은 다 아느니라, 사람은 다 오르느니라, 하늘을 보고 살아야 하느니라, 땅을 보고 살아야 하느니라, 左(좌)로 가야 하느니라, 右(우)로 가야 하느니라, 도리, 도리, 도리 이것이 학교에서 개발하는 智[지]다. 이것이 과연 이것이 과연 지뇨, 지의 개발이뇨. 설혹 지라 하자, 지의 개발이라 하자, 지는 우리에게, 얼마만한 복을 주었는가? 소위 지는 우리 앞에 문명이란 쓰레기성(城)밖에 쌓논 것이 없다. 지란 재(灰[회])든 임금(林檎) 알이다. 인류가 이 과실을 따먹는 날 그 동산에 불이 붙었다. 우화나 그럴 듯한 말이다.
 
99
眞知[진지]는 지의 否認[부인] 뿐이다. 진지의 각득은 수미산이 붕새 깃에마저 달른 때다. 그날 인류는 ‘굼벵이’의 현명까지 진화한다. 인류의 동산엔 이날 새싹이 튼다. 침이 넘어가는 진화다. 이 진화의 저해는 사이비 지인지의 죄다. 학교란 ‘도리도리’‘맴맴’‘돌아우편 웃’의 발상지다. 사이비 지의 苗圃[묘포]다. 신경쇠약의 양조장이다. 자살구락부의 본부다. 책 벌레들은 그 酵母[효모]다. 모순, 가작, 허풍, 졸렬의 쓰레기통이다. 학교를 세운다. 어떻게 불난 집에 키질을 하랴.
 
100
(「東亞日報[동아일보]」,1934년 12월 13일)
 
 

 
 

11. 삼백만원을 이렇게 쓰다

 
 
102
언론기관을 창설 해보자는 사람이 있다. 警世[경세]의 목탁이 되자 한다. 길잃은 양의 떼를 인도하자 한다. 나는 이 사람의 말을 알아들을 수가 없다. 요놈도 ‘붕어사탕’이다. 붕어사탕은 가끔 이런 의미가 통하지 않는 말을 조잘대는 게 그 특징이다.
 
103
인류는 본래 한 개의 평화를 타고 낳었다. 조물옹이 저고리 고름에 채어 보냈던 것이다. 길가에서 파는 ‘언어’라는 ‘피리’를 보았다. 피리장수는 고름에 챈 평화의 半[반]을 내라 한다. ‘맹추’는 필경 평화의 반을 주고 피리를 산다. 맹추는 피리를 입에 대고 지재지재 불기를 시작했다. 앵무는 ‘삼씨’를 깐다. 그렇듯 인류는 ‘閑雅[한아]’의 알을 까기 시작한 날이다.
 
104
언어를 산 날, 인류는 평화의 반을 잃었다. 순연한 ‘방정’이다. 인류의 방정은 그 만으로 만족치 못하였다. 또 ‘文字[문자]’란 ‘장난감’에 눈이 팔렸다. 그 값으로 남는 평화의 반을 내라 한다. 인류는 남은 평화의 반을 주고 문자를 샀다.
 
105
蕩子[탕자]는 神主[신주]까지를 典當[전당]에 넣어야 한다. 인류는 남은 한 조각의 평화조차 지닐 ‘든직’이 없었다. 필경 남은 것을 마저 주고 ‘인쇄술’을 샀다. ‘외상’으로 輪轉機[윤전기]까지 맡았다. 이날 인류는 영영 ‘채’맞는 ‘팽이’팔자가 된 것이다. “싸구려”가 歌[가]의 ‘제금’이 된 것이다.
 
106
어찌어찌 잠이 들려 하면 귀 밑에서 덜렁덜렁 왕방울을 흔든다. 윤전기의 ‘외상값’재촉이다. ‘저널리즘’의 지긋지긋한 ‘재즈’다. 阿諛行[아유행]을 한다. 위협 ‘심포니’를 울린다. 催淫曲[최음곡]이 있다. 가면행진가가 들린다. 猜忌助長打令[시기조장타령]이 나온다. 구린 폼이 오뉴월 시궁창 高祖[고조]벌이다. 어서 이 ‘재즈’가 끝이 나야 한다. 그날 한참 두둑히 자 볼 생각이다. 나는 ‘붕어사탕’의 勸[권]에 머리를 흔들었다.
 
107
阿房宮[아방궁]을 지으란 놈이 있다. 으레히 날 불의 석달연기가 귀찮다. 삼천궁녀를 거느려 보라 한다. 한번 인사에 ‘이름’만 알려해도 神經衰弱六期[산경쇠약육기]는 떼어 논 ‘당상’일게 아니냐.
 
108
이렇건 저렇건 汚物[오물]을 신변에 두는 동안 화근은 그칠 리가 없다. 오물이 있었으니 자연 오물을 따르는 온갖 버러지가 모여드는 것이다. 조금만 있으면 명예란 빈대, 지위란 벼룩, 별의별 귀찮은 것이 생겨 한가한 내 심신을‘옴무더기’를 만들 것이다. 잠시의 장난으로 일망정 이런 오물을 집은 내 심산이 글렀다.
 
109
나는 나귀와 함께‘3백만원 처치’를 시작했다. 우리는 뒷골목을 찾아 걷는다. 찌낮고 이우러진 집이 보인다. 그 울 넘어로 돈뭉치를 던져준다. 몇 고팽이를 쳤 것만 아직도 한 바리가 있다. 마지막 바리다. 별로 더 줄만한 집이 없다. 요리 집을 찾아갔다. 있는 방을 다 빌렸다. 있는대로 음식을 차리라 했다. 있는대로 歌舞[가무]아는 사람을 부르라 했다. 그리고 요리집 문전에, 無論某漢來席好好[무론모한래석호호]라 써 달았다.
 
110
장내가 터질 듯이 모였다. 어떤 놈은 술을 빤다. 어떤 놈은 떡을 씹는다. 어떤 놈은 갈비를 뜯는다. 어떤 놈은 장구를 치며 좋다 좋다 한다. 또 어떤 놈은 소리를 하며 어깨, 팔을 덩실댄다. 꼴들이 과연 우습다. 과연 불쌍하다.
 
111
나귀야, 이제는 3백만원 장난도 끝이 났다. 또 어디로나 기약없는 길을 떠나보자.
 
 
112
(「東亞日報[동아일보]」,1934년 12월 15일)
 
 

 
 

12. 암야(暗夜)의 비가(悲歌)

 
 
114
나는 산을 넘었다. 구불구불한 산마루 뒤로 장미빛 하늘이 유난히 빛난다. 마을이 여기 하나, 또 저기 하나, 모두 산을 의지하고 놓여 있다. 마을 뒤마다 구럭이 있다. 구럭엔 으레히 나무가 우거져 있다.
 
115
마을 앞으로 갈아논 밭이 보인다. 논이 있다. 축동이 섰다. 축동 앞으로 한 牛[우]의 흰비단이 가로 놓였다. 골짜기를 흘러 들로 내리는 溪流[계류]다. 나무 우거진 구럭에 밤빛이 내렸다. 알 듯 모를 듯 저녁 연기가 오른다. 연기는 밤빛과 어울려 幽玄[유현]한 깁을 짠다. 산촌의 가을이 늦고, 겸해 날이 늦었다. 전원의 저녁이다. 내 앞에 있는 산은, 구럭은, 마을은, 논은, 밭은, 축동은 모든 존재는 하룻동안 떨쳤던 ‘빛옷’을 벗으려고 한다. ‘빛옷’을 벗고 회색 장막 속에 그 몸을 감추려 한다. 장막은 刻刻[각각]으로 빛이 짙어진다.
 
116
마침내 漆[칠]같이 두터워질 것이다. 한 조각의 암흑만이 남을 것이다. 암흑 속에 별이 보일 것이다. 몇 개의 등잔이 반짝일 것이다. 등잔 밑엔 아버지, 엄마, 할아버지, 순희 복남이가 둘러앉았다. 담소의 한두 시간이 지날 것이다. 그러나 등잔은 꺼져야 한다. 그들은 잠이 든다. 별만이 밤을 지킬 것이다. 시냇물만이 깨어 있어 萬古[만고]의 제 설음을 속삭이며 들을 내릴 것이다.
 
117
이곳엔 평화가 있는 것 같다. 안온과 행복이 깃들인 것 같다. 그러나 이곳에도 인생은 ‘쓸개’맛이다. 요강 같다. 그 사실 하나가 目前[목전]에 나타난 것이다. 산촌의 暮景[모경]을 여념없이 보던 곳은 어느 ‘나무수펭이’를 결한 路傍[노방]이 있다. 무엇이 ‘설레’한다. 나뭇가지가 흔들리는 소리다. 무심히 있다. 그 소리에 깜짝 놀랐다. 돌아보았다.
 
118
이곳에도 황혼이 내려 컴컴하다. 컴컴한 속에 잘 보이지 아니하나 허연 무엇이 디룽댄다 . 4, 50보를 격한 곳이다. 나는 길에 나귀를 놓은 채 그곳으로 달려갔다. 사람이 있다. 사람이 목을 맨 것이었다. 끈에 달려 손과 발을 버둥댄다. 끈을 맨 가지는 세 길이 넘지 못하였다. 단숨에 가지를 기어올랐다. 끈을 끌렀다. 내려왔다. 사람은 정신이 없다. 나무 토막 같이 흙 위에 굴러져 있다. 반백[半白]이 넘은 늙은이다. 아직 몸이 따스하다.
 
119
‘설렛’ 소리를 듣고 달려가 끈을 끄른 것까지의 시간이 5분을 못 넘었을 것이다. 목에 맨 끈을 풀렀다. 가슴을 흔들었다. 몸을 주물렀다. 한참 이 짓을 하였다. ‘후 ─’하고 한숨을 쉰다. 침침한 속에 희미하게 눈뜬 것이 보인다. 마음이 기뻤다. 우리는 잠시 말이 없었다. 마침내 “여보”하고 깨어난 늙은이가 나를 부른다. “여보, 왜 당신은 내 마지막 길을 막소? 당신네들은 왜 남의 이 길까지도 못가게 하오.”한다.
 
 
120
(「東亞日報[동아일보]」,1934년 12월 16일)
 
 

 
 

13. 늙은이를 구하려

 
 
122
‘늙은이’의 옷은 헐 대로 헐었다. 어느 놈이 훑어먹었는지 몸엔 한점의 고기도 없다. 앙상한 뼈에 가죽이 덮였을 뿐이다. 손은 유난히 크고 마디졌다. 牛車[우거] 소의 목덜미와 함께 이 세상의 가장 거룩한 두 표본이다. 다 파먹은 김칫독 속에 두 눈만이 아웅하다.
 
123
“여보, 왜 이 길을 막소, 죽는 놈이 오죽해야 죽소. 이렇게나 해서 잊어볼까 해서 죽는게 아니오. 제 명에 죽어도 아이고 대고 하는데, 생 목숨을 끊는 놈이 오죽해 끊소. 이 길까지를 막으니 어쩌란 말이오.”하고 늙은이는 고개를 숙인다.
 
124
듣건댄 그는 이러한 인생을 걸어왔다. 그는 63년전 저 축동 안말에 났다. ‘깨 ─’하고 그의 萬種愁[만종수]의 막이 열렸다. 요강 같은 그의 생이 시작되었다. 그는 4살부터 쇠꼴을 뜯겼다. 7살에 지게를 지고 9살에 호미를 잡았다. 그는 밭을 매고, 논을 쓰럿고, 풀을 깎았다. 그는 장가를 갔고, 자식을 낳았다. 어머니가 죽고 아버지도 마저 갔다. 유산으로 다리 부러진 지게 하나와 삼간초막을 받았다. 그는 삼간초막을 지탱해야 한다. 아내와 자식들을 먹여살려야 한다. 그는 다섯 식구의 ‘창자’를 노리는 飢餓[기아]의 갈가마귀를 몰아내야 한다. ‘寧日[영일]’이란 그의 꿈에나 먹는 떡이었다.
 
125
그는 일을 하였다. 일을 하였다. 일을 하고 또 일을 하였다. 밤을 가렸을 리가 없다. 낮은 물론이다. 별을 이고 들에 나갔었다. 달이 뜨고야 집에 돌아왔던 것이다. 그는 뼈가 휘도록 일을 하였다. 배가 정 고프면 솔잎을 뜯어먹고 김을 맸다. 급기야 추수 때가 된다. 賭租[도조]를 문다. 구실을 친다. ‘장리’를 내야 한다. 결국 남는 것이 ‘빗자루’와 ‘갈퀴’뿐이다. 해마다 내가 하는 추수나 冬臧[동장]은 뉘집에 하는지를 몰랐었다.
 
126
겨울이 온다. 애놈들이 배가 고프다고 밤이 새도록 울었다. 그는 ‘피’ 한 말을 꾸려 열 동리를 다녔다. 이 ‘한 말’에 낸 애걸복걸을 어찌 입으로 측량하랴. 한솥‘시래기’는 다섯 식구와 먹을 양식이다. 그날따라 마누라는 감히 ‘두줌 쌀’을 넣었다. 막내동이 생일인 까닭이다. 막내동이가 귀한 줄이야 누가 모르랴. 귀한 놈의 귀빠진 날이나 두줌 쌀을 넣은 것이 ‘헤품’이 太甚[태심]하다. 이런 ‘종작무(無[무])의 주부는 이혼을 당해 싸다. 그러나 늙은이는 ‘막내동이’를 사랑하듯 ‘마누라’를 사랑한다. 오직 사랑에 끌려 그는 ‘마누라’의 大逆[대역]을 눈물로 면한 것이다. 올해도 그는 세마지기 소작답을 부쳤다. 金肥[금비]를 아니 쓰면 소작권을 박탈한다는 엄령에 ‘늙은이’는 三間幕[삼간막]을 잡히고 豆粕[두박]세 덩이를 얻어왔다. 월 6변의 ‘헐변’은 賣主[매주]의 仁德[인덕]이 시킨 배다.
 
127
장마에 벼가 죽었다. 거둬보니 도조도 닷말이 ‘축’이다. 지주는 있는 대로를 쓸어가고 ‘축’은 겨울 안으로 해놓으라 한다. ‘늙은이’는 ‘마누라’와 함께 밤을 울어 샜다. 다음날 두박값을 내라 한다. 삼간막을 내놓으라는 것이다. 내놓은 것이 이 세상 경위다. 길은 많다. 그러나 그들의 갈 곳이 어디뇨.
 
128
……………
 
129
나는 늙은이를 끌고 길을 간다. 몸이라도 팔 생각이다. 그러나 이 ‘번대머리’를 살 놈이 어디 있으랴. 이 險口[험구]를 사다놓고 욕을 자청하여 먹을 놈이 어디 있으랴, 나귀 밖에 팔 것이 없다. 나귀를 내 몸에서 떼는 것은 내 심장을 에이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늙은이’를 구해야 한다. 불쌍한 다섯 몸을 삼간막으로나마 둘러주고 싶다.
 
130
나귀야, 너와의 이별이 참으로 쓰리다. 그러나 우리 눈물을 흘리자, 눈물을 흘려, 이 가련한 生靈[생령]들을 도와보자.
 
 
131
(「東亞日報[동아일보]」,1934년 12월 18일)
 
 

 
 

14. 나귀를 팔고

 
 
133
‘늙은이’와 나는 場[장]판을 오르내린다. 나귀를 사라는 것이다. 거개 듣는 둥 마는 둥이다. 열에 하나쯤 나귀를 훑어보는 놈도 있다. 훑어보고는 “고놈의 나귀, 몹신 늙었다.”한다. “쌍통 해가지고 꼴에 비리까지 잡쉈네.”한다. “여보 이게 나귀요, 餓鬼[아귀]지.”하는 사람까지 있다.
 
134
사실 선천이 ‘튼튼’한 나귀는 못된다. 또 ‘환진갑’이 멀지 않은 나귀다. 세월이 가니 자연 늙고, 늙으니 비리도 먹게 되는 것이다. 생노병사를 騙君[편군]인들 어지하랴. 늙은 한만도 생각하면 한이 없을 것이다. 아니 사면 그 뿐이 아니뇨. 利害[이해]가 없는 일에 남이 싫은 말을 할 필요가 무엇인고, 어디로 보건 인류란 구하지 못할 악착한 동물이다. 억만겁의 지옥고를 받아서 싼 亡種[망종]이다.
 
135
“여보, 어디 그 나귀 봅시다.”하는 놈이 있다.‘최맹’에 못지 않는 ‘배주부’다. 상판에 개기름이 지르르하다. 점심을 든지르고 나선 판이다. 계속 이빨을 쑤시며 게트림을 한다. “보쇼”하고 나귀를 세웠다.“고놈의 나귄 몹시도 늙었다. 비리까지 먹었고나.”한다. 이 자식도 이 場[장]판놈이다. 言語不恭[언어불공]은 이 장판 놈들의 가훈인 모양이다.
 
136
배주부는 나귀 고삐를 달라 한다. 고비를 받아 쥐고 나귀를 위 아래로 끌어본다. 끌다가 세워본다. 나귀는 놀라 껑충 뛴다. “고놈의 나귀 몹시 방정맞다.”한다.
 
137
마음에 차지 않으면 놀라는 것이 자연이다. 놀라니 놀란 반동으로 뛰는 것이다. 뛰게 해놓고 뛴다고 시비를 한다. 놈의 ‘심보’를 모를 일이다. 다 뺏어가니 자연 배가 고프다. 배가 고프니 부득불 도적질도 하는 것이다. 그러지 못하게 해놓고 그렇게 한 것을 사는 것이다. ‘모욕’의 극이다. 이 모욕을 몸에 당하는 나귀 심사가 어떠하랴. 방관만 하는 나도 치가 떨린다. 5형제분이 움죽움죽한다. 불문곡직하고 배주부 귀뺨 위에 주먹관자를 붙여 따귀 당상을 시키고 싶다.
 
138
“이 거지 발싸게 같고, 벌레먹은 삼잎 같고, 물에 떠내려가는 쇠똥덩이 같은 놈”소리가 입에서 이믓이믓한다. 그러나 참자, 참아야 한다. 나귀도 나도 참아야 한다. 불쌍한 다섯 生靈[생령]을 구하려면 어떠한 憤[분]도, 苦[고]도 참아야 한다. ‘예수’는 인류의 죄를 면하고자 십자가를 자진해졌다. 비둘기와 매를 함께 구하고자 무릎살을 에인 사람도 있다. 병든 어머니를 혹은 어린 자식을 살리기 위하여 수치와 모욕을 받는 거리의 천사와 뒷골목의 영웅도 있다.
 
139
필경 나귀는 24원에 희생의 몸이 팔렸다. 늙은이는 나귀 몸값을 받아들고 집으로 돌아갔다. 배주부도 나귀 값을 치르곤 막걸리 친구에게 끌려 주막행을 해버린다. 사람 흩어진 ‘소마당’에 나귀만이 남아있다. 억지로 10여보를 걸었다. 차마 더 내디딜 수가 없다. 돌아보니 나귀도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고 섰다 문득 굽을 . 친다. 고삐를 당겨본다. 그러나 말뚝은 잔인하다. 고삐를 놓아주지 않는 것이다.
 
140
나는 앞뒤를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달려가 나귀 목을 얼싸안았다. 그 순진한 얼굴에 내 얼굴을 비볐다. 그리고 오래간만에 느껴 운 것이다.
 
 
141
(「東亞日報[동아일보]」,1934년 12월 19일)
 
 

 
 

15. 무하(無何)는 어디로?

 
 
143
나귀는 나이가 늙었다. 비리까지 먹었다 한다. ‘배주부’의 평이 그렇고 배주부 사는 장판 놈들의 평이 또한 그렇다. ‘환진갑’이 멀지 않다는 무하의 말도 있다. 서산에 못난마치 풍채가 준걸치 못하다. 겨우 ‘묵적골’ 許生比[허생비]나 되는 것이다. 속물의 무리들은 돈과 명예에 따르듯, 세상 榮華[영화]에 혹한다. 그러나 무하라고 해서 세상 영화로 이 나귀를 취했을 리는 없다.
 
144
무하는 나귀의 온유·겸손을 택한 것이다. 무하는 나귀를 사랑하였다. 나귀를 위해 空腹[공복]을 안고 객관을 찾아 든 적이 있다. 그는 나귀를 유일한 반려라 했다. 둘도 없는 친구라 했다. ‘단테’의 ‘베아트리체’에 비겼다. 무하와 나귀는 가지를 이은 同氣[동기]와 같다. 이로움이 금을 짜를 만하다. 마음의 향기 蘭[란]을 이길 것이다.
 
145
무하에 대한 나귀는 司馬相如[사마상여]에 대한 卓文君[탁문군]이다.‘로미오’에 대한 ‘줄리엣’이다. ‘라스코르니코프’에 대한 ‘소오냐’다. ‘엔젤’에 대한 ‘테스’다 ‘베르테르’에 대한 ‘샤론롯테’다. ‘네프류도프’에 대한 ‘카츄사’다. ‘몽룡’에 대한 ‘춘향’이다.
 
146
나귀가 무하를 사귄 것은 백일이 못되는 짧은 동안이다. 友詛[우저]는 오래 되어야 안다고들 한다. 우의의 敦厚[돈후]를 말하기에 백일이 너무 짧은 것도 같다. 그러나 예외없는 定理[정리]가 없다. 10년을 사귀어 미운 놈도 있다. 一刻[일각]을 만났건만 그리울 적도 있다. 무화와 나귀는 나의 백년에 얻을 교분을 백일에 맺은 예외다.
 
147
나귀는 무하와 함께 방랑의 길에 올랐다. 그 후 일시일 망정 서로 떠난 적이 없다. 본체에 그림자가 따르듯 무하 있는 곳에 곧 나귀가 있었던 것이다. 무하는 나귀를 작별하였다. 목을 얼싸안고 느껴 울었다. 느껴울어 둘도 없는 친구를 이별한 것이다. 목을 얼싸안고 느껴 울었다. 느껴 울었다. 느껴 울어 둘도 없는 친구를 이별한 것이다. 일월성신이 콩튀듯 한다. 얼마 안 있어서 온 우주가 ‘깨강정’이 될 것이다. 세상의 끝이다. 더 클 괴변이 없다. 이 괴변을 웃어버릴 무하의 심성이다. 이런 무하로 어찌 일개 나귀 이별에 통곡하고 서러워 하였는고.
 
148
바르게 일을 헤아려 보라. 우주가 어찌하오, 영원이 어찌하오, 만겁도 일순간이다. 無極[무극]도 一點[일점]이다. 이때 우리는 만유를 웃을 수 있다. 그러나 정으로 만물을 대할 때 풀 한포기가 우리를 웃기고 나무 하나가 우리를 울리는 것이다. 무하는 이치에 밝다. 또한 정에 약한 것이다. 무하의 ‘이치에 밝음’은 우주의 종극을 웃음으로 대하게 한다. 그러나 무하의 ‘정에 약함’이 나귀 이별에 눈물을 짓게 한 것이다.
 
149
힘은 살을 빼고 氣[기]가 세상을 덮었었다. 한 번 질타에 천 사람이 물러갔다 한다. 그 또한 虞美人[우미인]의 손을 잡고 눈물을 짓지 않았느뇨. 한번 일어나 南[남]을 꿇리고 다시 일어나 北[북]을 유린하였다. 중도에 雄圖[웅도] 꺾였을망정, 기개를 當代[당대]에 자랑한 당돌아이다. 그 또한 孤島[고도]에 숨어질 때 愛姬[애희]에게 그 심장 전하기를 부탁하지 않았느뇨.
 
150
나귀를 이별한 무하의 발길이 장차 어디로 향할까, 독자와 함께 필자의 예측하지 못하는 바이다. 그러나 어디로 가건 또 어디에 있건 무하는 나귀를 잊을 길이 없을 것이다. 흑 혼자 고개도 넘을 것이다. 혹 타향객관에 새벽잠이 깰 것이다. 그때 무하는 예듣던 나귀 굽소리를 문 밖에 듣는 듯 할 것이다. 그는 또 물을 건늘 것이다. 그때 무하 어찌 마돌쇠버릇 가르치던 옛 일을 회상하지 않으리오.
 
151
무하는 하루 아침에 3백만원을 뿌려 버렸다. 단 30원을 떼어 둘 ‘염랑’이 없었던가, 그만 염량만 있었던들 이번 설움은 안 당했을 것이다. 과연 그 ‘無[무]염량’책하고도 싶다. 그러나 이점이 ‘何’[하]키 ‘無’[무]한 무하다.
 
152
독자여, 그대는 일찍이 그대가 사랑하는 ‘그’나 ‘그여자’를 다시 만나는 외에 그대를 위로할 것이 없는 것을 경험했을 것이다. 무하와 나귀의 별리 후의 심경이 그대의 그때 심경이라면 그때는 무하와 나귀에 대한 一掬[일국]의 동정이 눈물을 금하지 못할 것이다. 무하는 다만 生靈[생령]을 구하기 위해 이 ‘설움’을 자청하였다.
 
153
필자는 무하와 나귀의 설음을 만천하에 告[고]하였다. 이에 필자는 ‘배주부’에게 팔린 나귀를 물러서 무하에 맡겨 줄 의용의 왕을 널리 부르는 것이다.
 
154
縉神[진신]이여! 그대는 무하를 위해 그대의 윗옷을 벗을 襟度[금도]가 없으신고? 숙녀여! 그대는 그대 指環[지환]을 빼어 나귀의 고독을 구하실 눈물이 없으신고. (제1부 끝)
 
 
155
(「東亞日報[동아일보]」,1934년 12월 20일)
 
 

 
 

16. 등고유감(登高有感)

 
 
157
‘배주부’녀석은 ‘구럭’이 크다. 그 큰 구럭을 싣고 나귀는 고개를 넘어야 한다. 나귀는 헐떡이며 돌 많은 언덕막을 오른다. 헐떡이며 올라도 무정한 배주부 채찍은 나귀 볼기에 가혹하다. 늙은 몸이 여복 고되랴, 이런 때 나귀는 반드시 나와의 방랑시절을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지금의 기구한 팔자를 ‘서러워’할 것이다.
 
158
나는 몇 번이나 나귀 생각을 거듭하였다. 묵연히 흐르는 물을 굽어본다. 물은 아래로 흐른다. 그와 같이 살아있는 자 죽고, 合後[합후]에 離[리]가 오는 것이다. 이는 자연이다. 사람의 힘으로 어찌 못할 질곡이다. 나는 옳음에 비쳐 이 철칙이 無可奈何[무가내하]를 나는 이 철칙을 들어 설레는 내 마음에 楚撻[초달]을 가해 본다. 그러나 정은 ‘샘’이다. 이치는 ‘모래톱’에 불과하다. 없는 샘은 모래톱을 파 솟게 할 수가 없다. 또한 솟는 샘을 모래톱으로 막을 길도 없다. 막으려 하면 막을수록 형세가 굳어질 뿐이다. 나귀 모습은 ‘부레풀’같이 내 맘에 붙어 있다. 잊으려 한다. 더 잊혀지질 않는 것이다. 타는 불을 부채로 끄려는 격이다.………………
 
159
큰산 하나가 앞에 솟았다. 雲宵[운소]에 닿은 듯 하다. 그 鬱密[울밀]을 헤치고 최촉을 더듬고 싶다. 이러는 동안에라도 잠시에 鬱懷[울회]를 잊어보자는 기원이다. 梅月堂[매월당]은 ‘설움’을 안고 金剛[금강]을 찾았다. 三淵[삼연]은 雪岳[설악]에 그 한을 호소한 것이다.
 
160
내를 건는다. 돌을 건너뛴다. 솔포구를 끌어당긴다. 숨이 차다. 그래도 나는 위로 위로 오르는 것이다. 마침내 시내가 끝이 난다. 叢林[총림]도 다해 버린다. 마지막으로 나선 곳이 까마득한 층암절벽이다. 절벽 위로 푸른 하늘, 절벽과 하늘 사이로 한 떼의 흰 구름이 넘어간다. 어서 그 정수리를 밟고 ‘긴숨’을 쉬고 싶다. 새도 겁을 내는 峭壁[초벽]이다. 다만 돌 뿌다귀, 풀뿌리, 나뭇등걸에 의지하여 이 초벽을 오르는 것이다. 위태로 논할 액태가 아니다. 삐긋만 하면 내던진 전등알이 된다.
 
161
팔이 아프다. 다리의 맥이 풀린다. 잠시 석벽을 의지하고 숨을 돌려야 한다. 쉬는 동안 나는 올라온 내 길을 돌아본다. 몸서리가 칠 것이다. 아슬아슬하다. 인생로란 과연 저러한 것이다. 나는 ‘쉘리’의〈悲嘆[비탄]〉을 생각하였다.
 
 
162
오 ─ 세상이여! 오 ― 인생이여!
163
그리고, 오 ─ 세월이여!
164
내 지나온 곳 돌아보고 몸서리치며
165
인생의 마지막 계단을 나는 오르노라.
166
지나간 청춘의 영광,
 
167
어느때 다시 오려는고,
168
다시는 오지 못할 내 그리운 시절이여……
169
밤이 되나 또 낮이 되나
170
‘기쁨’은 길이 가버렸구나
171
새로운 봄, 여름,
172
그리고 눈 덮인 겨울이 와도
173
희열없는 시든 가슴에
174
이 어인 ‘설움’만이 설레인단 말인고.
 
175
죽음은 ‘웃음’으로 맞을 것이다.
176
厄中[액중]이나 閑[한]이 없을 수 없다.
177
어리석은 생각의 한 구절을 목놓아 읊을 것이다.
 
178
오줌, 똥 기분
179
놈들, 헛 악착
180
可笑[가소], 요강生[생]
181
放氣[방기], 夕陽天[석양천]
 
 
182
(「東亞日報[동아일보]」,1934년 12월 21일)
 
 

 
 

17. 애련(哀戀)마저 버리라

 
 
184
밤이 이슥하다. ‘와 ─ 와’바람이 분다. 문이 덜컹댄다. 북창이 우수수 한다. 눈이 뿌리는 것이다. 아래, 윗방 밖에 없는 산밑 주막이다. 윗 한간에서 주인 집 어린애들이 잔다. 아랫 방 한간이 객실겸‘술청’이다.
 
185
세 놈이 술상을 벌이고 아랫목에 앉아 있다. 바깥주인은 출타해 없다. 안주인인 주모가 놈들 옆에 앉아 술을 친다. 재잘대며 아양을 떤다.
 
186
문턱에 화로, 화로 옆에 내가 앉았다. 나는 머리를 숙이고 화롯불을 다둑거린다. 술을 먹는 세 놈중, 두 놈은 아직 젊다. 한 놈만이 중년이 실해 보인다. 중년된 놈은 얼굴이 벌겋다. 벌건 중에 코만이 더 유난히 붉다. 붉다 못해 검다. 酒毒[주독]든 놈의 표적이다.
 
187
紅鼻公[홍비공]은 제집 추수 자랑을 한다. 3백석이 넘었다. 이만하면 겨울동안 술값야 부족하랴 한다.
 
188
“3백석을 다 쥡숴요?”는 주모의 ‘첨’이다.
 
189
‘인기’가 났다. “사람 살리우”소리에 이어 “툭”소리가 들린다. 무엇이 내려지는 것 같다. 문을 열었다. 눈보리가 ‘확’얼굴에 끼친다. 주모가 내든 불 빛에 허연 사람의 그림자가 보인다. 사내 하나가 눈을 맞으며 툇마루 끝에 걸터앉았다. 사내는 등에 노파 하나를 업었다. 노파는 사내 등에 머리를 대고 눈을 감았다. 기절한 모양이다.
 
190
“눈오는 중에 길을 잃은 사람입니다. 좀 들어앉게 해주십쇼. 등에 업힌 분은 내 어머니올시다. 또 데려와야 할 사람이 있는데 좀 들어앉게 해줍쇼”사내는 일어나지도 못하고 앉은 채 우리에게 애원을 한다. 술먹던 세 놈은 내다보는 일도 없다.
 
191
“여보게 주모, 문을 닫고 술을 치게나, 주흥 다 깨지네 그려. 앉을 데가 없으니 다른 데로 가보래.”하고 홍비공의 이 잔인은 묵과의 도를 넘었다. 이쯤되면 무하로도 노함을 느끼게 된다.
 
192
“술은 이다 처먹고 추위에 떠는 행인부터 들여라.”나는 술먹는 세놈을 번갈아 보며 소리를 질렀다. “야, 이놈 건방지다. 꼴 해가지구 네가 누군데 술을 이따 먹어라, 지금 먹어라 하니…… 흥 별놈 다 보겠네.”홍비공의 콧대가 장이 시어진다.
 
193
“아무면 어떠냐, 하여간 시간이 빠쁘니 저리들 가라.” 나는 술상을 탁 차버렸다. “아, 이 자식, 이런 망나니 자식.”하고 홍비공이 멱살을 잡는다. 螳螂[당랑]이 수레를 둘러 덤빈다. 너구리가 사자뺨을 치는 격이다.
 
194
사람에게 손을 쓰는 건 요컨대 점잖은 일이 아니다. 그러니 權[권]이란 있는 것이다. 그런땐 武[무]를 쓸 수밖에 없다. 不問曲直[불문곡직]하고, 오른손으로 홍비공의 멱아지를 잡으며, 왼손으로 놈의 바지 사추리를 주었다. 이만하면 中路[중로]에 떨어질 염려는 없다. 잠시 두 팔을 움츠렸다. 문득 위로 쭉 뻗었다. 삼두박근에 체 힘을 주기도 전에 홍비공은 가로 일자를, 그리고 高等飛行[고등비행]을 한다.
 
195
홍비공의 고등비행은 실로 일순간 일이다. 다음 순간 그는 이미 툇마루 저편 눈바닥에 급추락을 한 것이다. 감히 또 덤비는 놈이 없다.
 
196
“자 ─ 어서 들어와 몸을 녹이쇼.” 하고 나는 눈을 맛는 母子[모자]를 끌어들였다.
 
 
197
(「東亞日報[동아일보]」,1934년 12월 22일)
 
 

 
 

18. 풀잎에 반짝이는 별

 
 
199
‘홍비공’이 쫓겨난 자리에 기절한 노파를 눕혔다. 노파를 눕히고 아들은 또 가봐야겠다 한다. 또 데려올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그는 문지방을 집고 일어서려고 한다. 그러나 그는 氣[기]가 盡[진]했다. 그 자리에 쓰러져 버린다. 나는 그의 대강 사정을 물었다.
 
200
이곳서 70리 밖에 사는 사람들이다. 그의 말을 빌건댄 그들은 오로지 땅을 파먹는 버러지들이다. 발에 조를 심고 논에 벼포기를 꽂는 것이 그들의 苦[고]도, 樂[낙]도, 業[업]도 된다. 元穀[원곡]은 떨어 지주를 주고 떨어진 ‘뒷묵’으로 모진 목숨이 남아있는 그들이다.
 
201
자연은 별을 반짝이게 한다. 달이 영롱케 한다. 淸流[청류]는 골을 내리게 한다. 잎이 푸르게 하고 꽃이 붉게 한다. 새 노래도 준비하였다. 의식이 족한 후에 안온한 그때의 자연은 慈母[자모]같이 다정하다. 시로 읊을 미의 권위다. 그러나 배고픈 자에게 자연은 악착한 그물이다. 자연히 ‘상’을 찌푸리고 제 힘을 자랑 할 때 그는 ‘네로’이상의 폭군이다. 지난 여름자연은 폭군의 자연으로 그들을 誅伐[주벌]하였다.
 
202
그들은 기름진 전답을 잃었다. 家藏什物[가장집물]을 잃었다. 끔찍한 골육을 잃었다. 목숨만 남은 무수한 生靈[생령]이 노방에 呼哭[호곡]하였다. 이 사내도 두 딸과 두 아들과 집과 솥과 논밭을 하루 아침에 잃었다. 그는 노모와 아내와 강보의 것 하나를 건저냈을 뿐이다.
 
203
네 생령은 살 곳을 찾아 고향을 떠났다. 북으로 가는 길이다. 굶어 그날을 걸었다. 30리 泰嶺[태령]에 날이 저물었다. 날이 춥다. 풍설이 심해졌다. 어찌어찌 고개를 넘기만은 하였다. 그러나 춥고 배고픔과 피로에 그들은 걷기가 어려웠다. 먼저 노모가 쓰러진다. 사내만 다소의 기운이 남아 있었다. 사내는 처자를 풍설 속에 남겨둔 채 노모를 업고 고개를 내렸다.
 
204
“ 그동안 다 얼어 죽었기 쉽지요.”하는 그의 말이다.
 
205
나는 이 사내에게 그들을 남겨 둔 지점을 묻고 주모에게 그 지점으로 가는 방향을 물었다. 골짜기를 따라 오르는 외골길이라 한다. 나는 막대하나를 짚고 풍설 속의 母子[모자]를 찾아 나섰다. 바람이 뺨을 에인다. 눈이 눈을 때려 눈을 들 수가 없다. 달이 있는지 훤한 것만은 다행이다. 길인 듯한 반한 골만을 따라 오른다.
 
206
…………………
 
207
무슨 소리가 난다 . 바람 소리는 아니다. 애 우는 소리같다. 분명한 애우는 소리다. 과연 거무스름한 무엇이 있다. 내가 찾던 모자다. 길가 바위 밑에 쪼그리고 앉아 있다. “여보슈” 소리를 쳤다. 답이 없다. 또 쳤다. 여전히 대답이 없다. 여인네 이마에 손을 대었다. 싸늘하다. 오! 그는 웃통을 벗었다. 맨살이다. 그는 저고리를 벗어 어린 것을 싼 것이다. 그는 죽음으로 어린 것을 보호하였다. 간 이는 이미 간 이다. 간 이는 쫓을 길이 없다. 나는 어린 것만을 옮겨 안았다. 풍설이 점점 더해진다.
 
208
……………
 
209
어딘지 알 수가 없다. 분명히 길이 아니다. 나는 길을 잃었다. ‘낭’이 나선다. ‘덤불’이 있다. 한없이 걸어도 한없이 거기다. 풍설은 그칠 줄을 모른다. 아 ─ 40평생의 막이 닫히나 보다. 막이 닫힌다 해도 별 한은 없다. 다만 이 어린 것만을 세상에 남겨두고 싶다. 이것이 내 최후의 원이다. 이 어린 것이 죽는다면, 죽을 때까지 그를 보호한 慈母[자모] ─ 지하에서도 눈을 감지 못할 것이다. 나는 푹 엎어졌다. 그 후의 일은 모른다.
 
210
……………
 
211
어렴풋하다. 무엇이 뵈는 듯하다. 풍설이 자욱한 하늘, 아니 무슨 ‘무늬’같다. ‘반자’다. 천정이다. 문이 뵌다. 방이다. 나는 이불을 덮고 누워 있다. 이게 어딜까?
 
212
“정신이 좀 드세요.”부드러운 음성이다. 음성이 들려온 곳으로 눈을 돌렸다. 웬 젊은 여인이다. 나를 내려다 보는 그 얼굴엔 희색이 가득하다.
 
 
213
(「東亞日報[동아일보]」, 1934년 12월 25일)
 
 

 
 

19. 고적(孤寂)의 길

 
 
215
두 젊은 놈은 수난 후의 ‘紅鼻公[황비공]’을 부축여 제 집까지 바래 주었다. 홍비공을 바래 주곤 주막 아랫동리로 내려왔다. 50호 남직한 산촌이다. 두 젊은 놈은 동네 ‘말꾼청’인 ‘왜가리 견첨지’집 사랑으로 찾아들었다. ‘말꾼’들은 홍비공의 수난을 고소해 한다. ‘常春[상춘]’은 유쾌하다까지 하였다.
 
216
상춘은 내년 봄 중학을 졸업할게다. 겨울방학이 되어 전날 돌아왔다. 상춘은 아직 의에 살려는 꽃다운 싹이다. 맹꽁이는 배를 믿는다. 못지 않게 홍비공은 제 3백석을 믿었다. 상춘은 이 꼴이 미웠다. 두 젊은 놈은 이어 풍설 중에 모자를 찾아 나간 내 소식을 전했다. 상춘은 심장이 뛰었다.
 
217
“우리도 찾아 나섭시다.”하고 상춘이 일어섰다. 다른 대여섯 명의 청년이 상춘을 따라 다섰다. 그들은 두 시간 이상을 휘 더듬었다. 차차 풍설이 잤다. 상추은 구럭에 넘어진 나와 어린애를 찾았다. 품의 어린애는 아직 몸이 더웠다. 그들은 어린애를 주막에 눕혔다. 그리고 까무러친 나만은 상춘네 집으로 업혀왔다. 물론 상춘의 청이었다.
 
218
내 옆에서 정신이 드느냐를 물은 젊은 여인은 상춘의 맏누이의 槿英[근영]이다. 그들은 20년 전에 아버지를 여의였다. 그들은 홀어머니 黃[황]부인의 藏中寶玉[장중보옥]인 남매다. 내가 누운 것은 그집 건너방이다.
 
219
……………
 
220
처음 이틀은 기동이 어려웠다. 다리 팔이 옥죄였다. 골이 때렸다. 정신이 혼미할 적조차 있었다. 오늘이 엿새째다. 구푼은 회복이 되었다.
 
221
그동안 이 집에서 받은 厚意[후의]는 실로 크다. 끝 모를 渺然[묘연] 거기도 가노라면 林泉[임천]이 있다. 이 집은 현실의 묘연에 있는 한개 渡情[도정]의 목천이다. 황부인이 그렇다. 상춘이 그렇다. 근영이 더욱 그러하다. 근영은 소위 세속의 학식을 가졌다. 그러나 세속의 더러움에 물들지 않는 그다. 근영은 그 상에 침을 뱉았다. 근영은 청류에 씻긴 옥이다.
 
222
가을 하늘의 별이다. 서릿 속에 핀 山菊[산국]이다. 어디서고 참 행색을 나타낸 적이 없다. 어중이 떠중이 속이 아니냐? 미친 듯, 취한 듯 가는 것이다. ‘허허’해 날이 가고 달이 바뀌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 집 세 식구마저 비웃어 대할 길이 없다. 그들은 너무 착하다. 너무 참되다. 그들의 샘이 새로 솟음을 느낀다. 상춘은 아직 어리다. 그는 차라리 제 동무를 택해 간다. 황부인은 담뱃대를 문 채 첫 잠이 들었다. 床頭[상두]에 촛불 하나 근영은 묻고, 그 물음에 대한 내 뜻을 말해 준다.
 
223
우리는 사회를 논한다. 도덕을 논한다. 종교, 예술을 논한다. 생이 요강같음을 논한다. 말이 끝이 없다. 끝이 없는 말, 깊이 모를 산촌의 밤이다. 근영은 고개를 숙이고 잠시 말이 없었다. “선생님”하고 근영은 머리를 든다.
 
224
“선생님은 밝으셔요, 지극히 밝으셔요, 그리고 저도 밝아요. 선생님 다음으론 제가 밝아요. 그러나 지극히 외로운 것이 아녜요?” 근영은 눈물로 모든 것을 고한 것 같다. 그러나 근영은 나와 다른 길을 갈 사람이다. 어서 孤寂[고적]의 내 길을 떠나자.
 
 
225
(「東亞日報[동아일보],1934년 12월 27일)
【원문】193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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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상용(金尙鎔) [저자]
 
  동아 일보(東亞日報) [출처]
 
  1938년 [발표]
 
  수필(隨筆)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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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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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3년 01월 0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