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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부(婢夫)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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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구야담(靑邱野談)》권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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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부(婢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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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모(吳某)는 양산(梁山) 사람이다. 위인이 어리숙하고 짚신을 삼아서 살아가는데, 그 짚신 모양이 매우 볼품없는 것이었다.
 
4
어느 서울 소년이 마침 짚신을 보고 우스개 소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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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짚신이 서울 가면 100금짜린걸."
 
6
하고 지나갔다.
 
7
오씨는 이 말을 진담인 줄 믿고, 짚신 일곱 죽을 삼아서 짊어지고 서울로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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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옆에다 짚신을 벌여 놓고 누가 혹시 값을 물으면,
 
9
“한 냥입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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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 모두 비웃으며 지나갔다. 며칠을 장터에 앉아 있어도 단 한짝도 팔리지 않았던 것이다.
 
11
그때 어느 재상집의 하녀가, 용모가 에쁘장한 데다 민첩하고 총명하며 나이 방년 16세로, 정해주는 혼처는 마다하고 일찍부터 제 스스로 적당한 사람을 골라서 짝을 맺겠노라고 말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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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이 여자가 오씨의 짚신전 앞을 지나다가, 짚신값을 택없이 불러 전혀 사는 사람이 없음을 보고, 마음 속으로 이상히 여겼다. 3,4일 연달아 나가봐도 매양 일반이다. 이에 오씨에게 말을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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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짚신을 내가 전부 사겠어요. 값이 얼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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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죽이라... 70냥을 내얍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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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같이 가서 돈을 받아가세요.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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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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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짚신을 지고 따라가 한곳에 당도하니 제택(第宅)이 굉장하고 대문이 훨씬 높았다. 하녀가 그를 자기 거처인 행낭으로 끌어들였다. 오씨는 자리에 앉기가 바쁘게 짚신값을 독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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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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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낼 아침에 드릴께요. 하룻밤 묵어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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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좋은 술과 안주를 내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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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저녁상이 나오는데, 기명(器皿)이 정결하고 찬품이 진기하여 먼 시골에서 채소나 먹던 사람은 난생 처음 구경하는 것이어서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먹어치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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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되자 그 여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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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이 이왕 이렇게 오셨으니 저와 같이 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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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씨는 당황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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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인즉 아름답소만, 어찌 감히 바라겠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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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자는 불을 껐다. 드디어 옷을 벗고 일장 운우(雲雨)의 낙을 누렸음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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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 미명에 일어나자, 농을 열고 새옷을 꺼내 목욕을 시키고 갈아입히니 풍모가 또한 당당하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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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 댁 사환비(使喚婢)에요. 당신이 이제 제 낭군이 되었으니, 대감께 현신(現身)해얍니다. 그러나 결코 뜰 아래서 절하진 마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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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럭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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궐녀가 들어가서 고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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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쇤네가 간밤에 지아비를 얻었습니다. 현신 드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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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얼른 들어와 보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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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씨는 불쑥 대청으로 올라서서 절하는 것이었다. 모시고 있던 사람이 오씨를 끌어내려 했으나, 오씨는 꿈쩍 않고 서서 하는 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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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명색이 향족이요. 지금 비록 비부쟁이가 됐으나, 결코 뜰 아래서 절할 수는 없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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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상은 웃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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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것이 제 신랑감으로 고를 만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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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오씨는 그 집 행낭살이를 하게 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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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그 여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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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퍽 사리에 밝지 못해요. 돈을 써보면 안목이 열리고 가슴이 트일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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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돈 한 꿰미를 내주며 이르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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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갖고 나가서 다 쓰고 들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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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때 오씨가 돌아와서,
 
43
“제길! 먹고싶지 않은 걸 술이건 떡이건 사먹을 필요가 있나. 진종일 돌아다녀도 돈 쓸 일이 하나도 없데. 한 푼도 못쓰고 그냥 온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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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거리에 걸인도 많은 걸 적선인들 못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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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미처 생각 못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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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 다시 한 꿰미를 차고 나갔다. 거지들을 모아놓고 돈을 땅에 뿌렸더니, 거지들이 다투어 줍는 것이 꼴이 가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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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그는 이것이 일과였다. 그러다가 곰곰 생각해보니 허다한 돈을 헛되이 걸인에게 주어버리는 것이 부질없기 짝없는 일이었다. 이에 사장(射場)으로 발길을 돌려, 한량들과 사귄 것이다. 술을 사고 고기를 사서 매일 나눠먹으니, 어느덧 막역한 사이들이 되었다. 이어 초라한 집에서 독서하는 궁유 한사(窮儒寒士)와도 교유하여 더러 양식을 대주고, 더러 필묵(筆墨)의 비용을 제공하기도 하니, 모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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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씨는 요새 세상 사람이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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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들 했다.
 
50
그 여자는 남편에게 《사략(略史)》, 《삼략(三略)》, 《손무자(孫武子)》 등의 글을 가서 배우도록 하여 대략 그 대지(大旨)는 짐작하게 되었다. 이러느라 수만 전의 비용이 났다.
 
51
이때 여자는 그에게 새로이 당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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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아무래도 궁술을 익혀서 발신해야겠어요."
 
53
오씨는 본래 건장한 사람이다. 또한 한량들과 더불어 궁술을 연마하여 철전(鐵箭)이나 세전(細箭)이나 다 멀리 쏠 수 있었으며 《무경칠서(武經七書)》까지 깨친 터라 무과(武科)에 응시하여 어렵잖이 합격해서 홍패(紅牌)를 받은 것이다. 그 홍패를 감추어두고 집안 사람도 모르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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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서 오씨에게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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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저축되었던 돈이 10만에 불과하였어요. 당신이 전후에 근 7만 전을 축내고, 이제 3만이 남았네요. 당신 이제 행상을 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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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무지 장사속을 알아야지. 무엇을 무역해야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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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대추 농사가 크게 흉년인데, 오직 호서(湖西) 어느 고을만 대추가 결실했대요. 가서 몽땅 사들여오세요."
 
58
오씨는 이 말을 따라 어느 고을에 이르러 보니, 가을 일이 말씀이 아니어서 들에 낫을 댈 곡식이 없고, 사람이 많이 연이어 쓰러져 있었다. 오씨는 보기에 가련스러워서 돈을 손길 뻗히는 대로 전부 흩어버리고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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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자가
 
60
“적선도 물론 큰 일입죠. 허지만 우리 돈이 떨어질 판인데 나중에 어떻게 살아갈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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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다시 만전을 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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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화 농사가 팔도가 다 흉년인데, 오직 황해도 몇 고을만 괜찮대요. 거기 가서 면화를 쳐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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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씨는 황해도에 가서도 충청도에서처럼 탈탈 털고 빈손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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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돈이 이제 만 전 뿐입니다. 이제 바닥을 긁어서 드리는 거에요. 이번엔 이것으로 헌 옷가지를 사가지고 북도(北道)로 가서 삼베, 인삼, 피물(皮物) 등속을 바꿔오세요. 제발 먼저같이 낭비하진 말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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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씨는 사전에 가서 헌옷 수십 바리를 사가지고 함경도로 길을 떠났다. 함경도는 본래 면화가 토질에 맞지 않아서 금싸라기만큼이나 귀하기 때문에 옷을 해입지 못해 겨울날이 따뜻해도 오히려 추위에 떨고 있었다. 오씨가 돈을 물쓰듯 한 버릇으로 손이 커서 안변(安邊)서부터 육진(六鎭)에 이르기까지 헐벗은 사람들에게 옷가지를 죄다 나눠주어버리고, 남은 것이 치마와 바지 달랑 한 벌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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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심하여 탄식하는 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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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실로 남의 돈 10만 전만 축냈구나. 손을 털고 빈손으로 돌아가서 무슨 낯으로 집사람을 다시 대한단 말인가? 차라리 호랑이 뱃속에다 장사나 지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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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밤중에 홀로 산중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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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길을 타고 심심산골로 들어가는데, 문득 나무가 빽빽한 사이로 등불이 반짝반짝했다. 그 집을 찾아가서 문을 두드리고 자고 가기를 청했다. 할멈이 문을 열고 나와서
 
70
“이 밤중에 이런 깊은 산골엘 무슨 일로 오십나요?"
 
71
하고 맞아들여 저녁상을 내오는데 대접이 은근했다.
 
72
오씨는 마지막 남은 바지와 치마를 꺼내주었다. 할멈이 기뻐 어쩔 줄 모르며, 당장 갈아입고 백배 치하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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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씨는 상에 놓인 나물이 인삼임을 보고 묻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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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물은 어디서 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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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방에 도라지 밭이 있어서 매양 캐다 나물해 먹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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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캐다 둔 것이 있나요?"
 
77
할멈이 수십 뿌리를 내보이는데 모두 인삼이 아닌가. 잔 것은 손가락만 하고 굵은 것은 발목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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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윽고 밖에서 짐을 부리는 소리가 들렸다.
 
79
“우리 아이가 왔군요. 저 애가 태어나서 처음엔 겨드랑이 양옆에 조그만 날갯죽지가 돋쳐가지고 가끔 벽상에 날아붙기도 합디다. 그래 제 애비가 쇠꼬챙이로 지지기도 했으나 날개가 다시 돋칩디다. 점차 자라는데 기운이 초등하여 이런 평시에는 아무래도 화가 미칠까 염려되어, 이 깊은 산골로 들어와서 사냥을 하여 살아가고 있읍죠. 에 애비는 벌써 돌아가셨고, 나 혼자 저것을 데리고 살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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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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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한 손님이 오셨다. 들어와 뵈어라. 이 손님께서 내 치마와 바지를 주시어 몸을 가리게 하니 실로 은인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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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멈의 아들이 곧 들어와서 절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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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 아침 할멈에게 말하기를
 
84
“도라지 밭을 보고 싶은데요."
 
85
할멈이 오씨와 함께 산마루 하나를 넘어가서 한 곳에 이르러 가리키는데 산이 온통 인삼이 아닌가. 이날 온종일 인삼을 캤다. 그 크기가 같지는 않았으나 개중에 동자삼(童子參)도 많았고, 한데 모으니 대여섯 바리가 착실히 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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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씨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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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중에 말도 없고 이걸 다 어떻게 운반한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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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멈의 아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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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원산까지 져다드리리다. 거기서부터 말에 싣고 가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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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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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씨는 그 말대로 하여 세마(貰馬)에 싣고 서울로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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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돌아와서 처에게 전후 경과를 이야기하자, 처는 기뻐하며 말했다.
 
93
“당신이 적선을 많이 한 덕분에 하느님이 보물을 주셨네요. 오늘 이렇게 돌아오신 건 우연이 아니지요. 내일이 대감님 회갑이시라 조정의 벼슬아치들이 모두 모입니다. 당신이 여러 대감들게 인사를 드리면 벼슬 한 자리 얻기가 그리 어렵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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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아침 굵은 것으로 인삼 다섯 뿌리를 골라 대감에게 바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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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쇤네의 지아비가 행상을 나갔다가 마침 이 물건을 얻어왔기에 대감마님 전에 바치옵니다."
 
96
대감이 대희하여 오씨를 불러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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궐녀가 미리 세립(細粒)과 철릭을 준비해두어서 착용하고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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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감이 묻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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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무슨 복장인가?"
 
100
“소인이 연전에 무과를 했습지요. 장사로 살아온 고로 홍패를 숨겨두고 아직 대감님께도 여쭙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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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신수도 초초치 않은걸."
 
102
이윽고 벼슬아치들이 차차 당도해서 대감이 인삼을 자랑했더니, 모두들 하는 말들이
 
103
“이런 진귀한 물건을 대감이 독차지하시다니.... 우리도 좀 나눠가집시다."
 
104
“얻은 것이 이것 뿐인 걸 어떻게 나눠드릴 수 있겠오."
 
105
오씨가 그때 옆에 있다가
 
106
“소인 행장에 인삼이 좀 남았습지요. 다소간 나눠드리어 조그만 성의나마 표할까 합니다."
 
107
하고 내어다가 세 뿌리씩 바치었다.
 
108
벼슬아치들 역시 대희하여 묻기를
 
109
“저 사람이 누굽니까?"
 
110
“제가 귀여워하는 계집종의 지아비지요. 명색은 향족이고, 무과 출신(武科出身)입니다."
 
111
여러 벼슬아치들이
 
112
“대감댁 비부로 저만한 무변이 아직 초사(初仕) 한자리도 못했다니, 어찌 대감의 허물이 아니겠오?"
 
113
“저 사람 무과(武科)는 저 역시 오늘 처음 알았오이다."
 
114
해가 이미 기울어져서 여러 벼슬아치들이 취하여 흩어졌다. 오씨는 인삼을 팔아서 수십만 전의 돈을 벌었다.
 
115
그 뒤로 여러 벼슬아치들이 서로 끌어주어서 얼마 안 되어 무겸선전관(武兼宣傳官)으로 임용되고, 차차 승직하여 수사(水使)에 이르렀다.
 
116
그는 진작 처를 속량(贖良)해서 해로하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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