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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관국제풍경(我觀國際風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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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6.5~
채만식
1
(4) 我觀國際風景
 
 
2
“연애하는 사람 사이의 약속은 국제조약과 같다”고 나는 생각하는데, 그놈을 뒤집어서 “국제조약은 연애하는 사람 사이의 약속과 같다”고 해도 된다.
 
3
나는 사가(史家)가 아닌지라 잘 모르겠으되 내 상식 범위에서만 본다면 제게 필요가 있을 때에 조약 때문에 할 일을 못한 열강은 별로 없는 것 같다.
 
4
그런 중에도 그 모범생은 독일 그리고 요새의 이태리다. 이태리도 두번짼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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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나라가 모여서 조약을 맺는다. 국제연맹인지 하는 것도 그런 것의 덩지 큰 놈이다. 침략을 하지 말고 무얼 어쩌고…… 이렇게 서로 조약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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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조약을 맺는 그 당장의 그들의 심중은 결코 ‘이 조약을 내가 꼭 지키리라“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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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나라더러나 지키라고 하고 나는 인제 다급하면 안 지키면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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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엉뚱한 딴 배짱을 가지고들 도장을 꾹꾹 찍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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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놓고는 결국 눈치빠르고 잘난 놈이 먼저 조약을 범(犯)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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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이의(白耳義)? 중립국? 그런 것은 생각해서 무얼 하노? 얼핏 쳐부수고 들어가서 우선 불란서를 때려뉘고 그 담에 영국과 노서아를 때려 잡으면 그때는 내 천지인데. 그때에 어느 놈이 나더러 왜 중립국 백이의를 때려주었느냐?고 시비할 당자아들놈이 있을 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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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거 봐, 글쎄 백이의가 철성을 쌓고 무장을 하지 아니했어? 중립국이 왜 그랬어?…… 그게 우리가 쳐들어올 줄 짐작하고 한 짓이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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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중립국을 쳐서는 못쓴다는 국제공법(國際公法)을 우선 자기네 자신부터 믿지 아니하는 거가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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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의 포효(砲哮) 앞에는 철의 대항이 있을 따름이지 국제조약이나 국제공법 같은 것은 발샅의 때만도 못 여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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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或)이 가로되 “그것은 네 편견이다. 다 보아라. 독일이 그렇게 잔인무도하게 국제공법을 무시했기 때문에 전후 베르사이유회의에서 그만큼 더 벌을 받지 아니했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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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나는 입때까지 베르사이유조약이 ‘전패배상금(全敗賠償金)+국제공법 무시벌금=대독(對獨) 기타 제재'라는 말은 듣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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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그뿐 아니라 독일이 도대체 베르사이유조약을 제법 지키지를 아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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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이태리는 만일 공정한 눈으로 본다면 배덕한(背德漢)이었었다. 삼국동맹(三國同盟)에 들어가지고도 독·오(獨墺)를 배반하고 연합국측에 가담했으니까…… 그래서 그 배약(背約)의 덕으로 전후 전승품(戰勝品)의 일부분을 얻어먹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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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리가 미아리나 수유리의 공동묘지에 수두룩하게 파묻혀 있는 ‘구실(口實)‘보다도 더 엉터리없는 구실을 장만해 가지고 다만 한 개 아프리카에 있는 검둥이 독립국을 잡아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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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당연 이상의 당연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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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리는 아무래도 땅이 좀 있어야 할 형편이다. 또 전쟁도 좀 해야만 할 절박한 사정이 있다.
 
21
그런데 영국더러나 불란서더러나 땅을 좀 소작으로든지 자작농을 창정(創定)해서든지 달라고 해야 주지 아니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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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불은 아프리카에 그 숱해 많은 땅을 차지하고 있으면서도 남이야 죽건 살건 모르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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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내용으로는 벌써 영·불 기타가 단꿀을 빨아먹고 있을망정 간판만은 독립국이니 이놈 집어삼켜도 “왜 내 땅 먹느냐”고는 시비를 못할 것이다. 되었다. 집어삼켜라. 그래서 삼켰다.
 
 
24
영·불이 허울만 남은 국제연맹을 떠받고 나와서 눈을 부라리며 귓속말로는 “이 자식아, 너 왜 내가 먹던 건 채갔어?” 하고, 겉으로는 “침략국 이태리에 제재를 주라”고 호통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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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이태리는 역시 귓속말로 “그래 이 자식들아, 너희들만 먹고 살테냐?” 하고 겉으로는 “그러한 불공평한 국제연맹에서는 탈퇴를 할테다”고 버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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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바람에 영·불은 풀이 죽어서 “저게 왜 저렇게 악을 써? 실없이 야단나잖았나! 저걸 살살 달래야겠군. 그래야지 설건드렸다가는 큰코다치겠는데……”라는 것이다. 과연 그들의 코는 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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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영국이며 불란서며 그 밖에 미국이며 여러 나라 모두가 이태리가 이디오피아를 잡아먹은 것을 정의에 어그러졌니 어쩌니 한다는 것이 얄미운 수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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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솝 이야기에 나오는 당나귀 가죽을 쓴 이리가 즉 그들이다.
 
29
영국이나 불란서가 아프리카를 정복할 때에 영국이 인도를, 불란서가 안남(安南)을, 미국이 흑노(黑奴)를 정복하고 다스리고 할 때에 흘린 검둥이의 시뻘건 피는 아직도 세계 식민사(植民史)의 페이지 페이지에 선연히 젖어 있다. 아직도가 아니라 지구와 같이 남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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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해서 모두들 ‘검은 고기’를 먹고 살이 피둥피둥 쪘으면서 자기네 동무 이태리가 요새 와서 하나 남은 놈을 좀 요란스럽게 잡아먹었기로니 입이 광우리 구덕 같은들 말이 무슨 말이꼬?
 
31
세상은 아직도 기운 센 놈과 협잡꾼이 득세를 하는 판이다.
 
32
영국이요 불란서요 미국이요 이태리요 하는 게 그들이요, 간디요 장개석이요 케말파사요 하는 게 그들이다.
 
33
인류는 그래서 아직도 눌리고 속아서 고민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인류가 밟고 넘어가야만 할 타고난 운명이다.
 
34
시간을 축지법(縮地法)한대도 그것은 면할 수 없는 운명의 한 고패다.
【원문】아관국제풍경(我觀國際風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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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만식(蔡萬植) [저자]
 
  1936년 [발표]
 
  수필(隨筆)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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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1년 07월 1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