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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식과 이지 중심에 든 18세기 古典主義[고전주의]에 민중은 염증이 낫다. 어서 무슨 새 자극이 왓으면 하든 때다. 이 요구에 응하야 19세기 후반, 요원의 세로 일어난 新文學[신문학]운동이 英文學[영문학]의 이른바 浪漫主義[낭만주의]운동이다. 운동의 중심이 된 시인이 대개 칠인이오, 그 칠인 중에 더욱 극단으로 흐른 3인이 惡魔派[악마파](Satanic School)의 칭을 받은, ‘키 ― 쓰’,‘쉘리 ―’,‘바이론’이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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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파시인 중에서도 특히 뛰어나게 정열적이든 것이 바이론(1788~1824)이다. 그는 天來[천내]의 熱血兒[열혈아]다. 인위로 어찌 못할 유전의 분방한 血潮[혈조]가 그의 혈관에 흘럿다. 이미 격하기 쉬운 천질을 운명적으로 타고난 그어늘, 겸하야 양극의 모순된 환경은 그를 괴롭힘이 심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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士公[사공]의 후손이로되 遊蕩[유탕]ㅈ거 전통이오 家閥[가벌]이 높되 풍유치를 못하얏다. 眉目[미목]이 남달리 수려하나, 오른편 다리를 절었다. 정에 움즉이매 부녀의 알들함이 잇다가도 理[이]와 의협에 뛸 때에는 猛虎出林[맹호출임]의 위가 잇엇다. 그는 실로 가장 불행하든 행운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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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챠일드·해롤드’의 순례(Childe Harold's Pilgrimage)의 전 2편을 지어 倫敦[윤돈]의 紙價[지가]를 올이고 마츰내 윤돈사교계의 총아가 된 것이 그가 22세이든 약관시절이다.“하루아침에 깨여 보니, 나는 유명해젓더라”한 그때 그의 득의가 얼마나 컷엇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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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가 결혼에 실패하야 어제 그를 찬하든 입에서 오늘 唾罵[타매]를 들을 적에 그의 환멸의 비애도 컷엇으리라. 한번 문화의 조국 希臘[희랍]을 도와보랴 한 그 勇[용]과 熱[열]이 놀랍거니와 雄圖[웅도] 이루지 못하고 ‘미솔롱기 ―’(Mesolonghi)의 戍樓[수누]에서 36의 壯魂[장혼]이 꺼지랴 할 때 그의 원한도 깊엇을 것이 짐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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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영예와 상찬의 고개로 훼방과 罵言[매언]의 구렁을 지나왓다. 환락에 취햇든 몸이 의용에 뛰여도 본 것이다. 그러나 머리를 숙이고 그가 지나온 자최를 회상할 때 과연 남은 것이 무엇인가를 그는 스스로 물은 것이다. 기쁨이 간 오늘, 그러나 슬픔도 갈것이 아니냐, 아니 기뻐하고 슬퍼하든 몸도 마음도 마츰내는 다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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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曠古[광고]의 방종아 바이론이 第三十三誕日[제삼십삼탄일]을 맞을 때 그의 파란만흔 생애를 돌아보며 느낀 전감상이엇다. 필자는 그 심경을 을픈 그의 短時[단시] 1수를 譯[역]해 독자와 함께 그때 그가 품엇든 허무감을 엿보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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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第三十三誕日[제삼십삼탄일] 吟[음](1821년 1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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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둡고 침침하다. 無味[무미]한 생의 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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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생일 전날 밤 夜深後[야심후]에 적은 일기 두 절은 이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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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은 내 생일이다. 즉 12분만 지나면 열두시 밤중 나는 완전히 설흔 세상이 된다. 퍽도 오래, 그러나 별 목적도 없이 살아왓다는 무거운 마음으로 나는 침대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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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시 삼분, 城樓[성누]의 시종이 夜半[야반]을 알렷다. 이제 나는 설흔 세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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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亞日報[동아일보]」, 1936년 8월 25~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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