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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골 황서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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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5.6
김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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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황서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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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 서방이 사는 ○촌은, 그곳에서 그중 가까운 도회에서 570리가 되고, 기차 연변에서 300여 리며, 국도에서 150여 리가 되는, 산골 조그마한 마을이었다. 금년에 40여 세 난 황 서방이, 아직 양복쟁이라고는 헌병과 순사와 측량기수밖에는 못 본 만큼, 그 ○촌은 궁벽한 곳이었다. 그리고, 또한, 그곳에서 10리 안팎 되는 곳은 모두 친척과 같이 지내며, 밤에 윷을 서로 다니느니만치 인가가 드문 마을이었다. 산에서 범이 내려와서 사람을 물어 갈지라도, 그 일이 신문에도 안 나리만치 외딴 곳이었다. 돈이라는 것은 10원 짜리 지전을 본 것을 자랑 삼느니만큼, 그 동리는 생활의 위협이라는 것을 모르는 마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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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디로 말하자면, 그 동리는, 순박하고 질구하고 인심 후하고 평화로운 원시인의 생활이라 하여도 좋은 만한 살림을 하는 마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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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촌에, 이즈음 뜻도 안 하였던 일이 생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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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에, 이즈음, 소위 도회 사람이라는 어떤 양복쟁이가 하나 뛰어들어왔다. 그 사람은 황 서방의 집에 주인을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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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동리 사람들은, 모두, 황 서방의 집으로 쓸어들었다. 그리고, 그 도회 사람의 별스러운 옷이며 신이며 갓을(염치를 불구하고) 주물러보며, 마치 그 사람은 조선말을 모르리라는 듯이, 곁에 놓고 이리저리 비평을 하며 야단법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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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 서방은 자랑스러운 듯이,(우연히 자기 집으로 뛰어들어온) 그 손님에게 구린내 나는 담배며 그때 갓 쪄 온 옥수수며를 대접하며, 모여든 동이 사람들에게, 그 도회 사람이, 자기 집에 들어올 때의 거동을 설명하며 야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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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이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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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도회 사람이, 모여드는 이 지방 사람들에게 설명한 바에 의지하건대, 그는 ‘흙냄새’을 그려서 이곳까지 왔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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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들은 흙냄새라는 것을, 그 향기로운 흙냄새를 늘 맡고 계셨기에 이렇게 든든합니다. 아아, 그 흙냄새. 여보시오, 도회에 가보우. 에이구, 사람 냄새, 가솔린 냄새, 하수도 냄새, 게다가 자동차, 마차, 전차, 인력거가 여기 번쩍 저기 번쩍…… 참, 도회에 살면 흙냄새가 그립소. 땅이 활개를 펴고, 기지개를 하는 봄날, 무럭무럭 떠오르는 흙의 향내를 늘 맡고 사는 당신네들의 행복은 참으로 도회인은 얻지 못할 행복이외다. 몇 해를 벼르고 벼르다가 나도 , 종내 참지 못하여 이리로 왔소. 그 더럽고 귀찮은 도회를 달아나서 여기까지 왔소. 이제부터는 나도 당신들의 동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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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회 사람은 이렇게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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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 서방은, 이 도회 사람(우리는 그를 Z씨라고 부르자)의 말 가운데서, 세마디를 알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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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와 인력거. 황 서방이 이전에 무슨 일로, 150리를 걸어서 국도까지 갔을 때에, (그때는 밤이었는데) 저편에서 시뻘건 두 눈깔을 번득이며 이상한 소리를 하면서 달려오는 괴물을 보았다. 영리한 황 서방은 물론 그것이 사람 타고 다니는 것임을 짐작은 하였다. 그러나 ○촌에 돌아온 뒤에는 그것이 한 괴물로 소문났다. 방귀를 폴삭폴삭 뀌며, 땅을 울리면서 달아나는, 돈 많은 사람이 타고 다니는 괴물로 소문이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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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력거라는 것은 그 이튿날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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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두 가지는 다(Z씨의 말을 듣고 생각해보매) 과시 사람의 생명을 위협하는 무서운 물건일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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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가지, 사람의 냄새가 역하다는 것. 사실 ○촌에 잔칫집이라도 있어서 수십 인씩 모이면 역하고 구린 냄새가, 그 방 안에 차고 하던 것을 황서방은 알았다. 그러매 몇 십만(십만이 백의 몇 곱인지는 주판을 안 놓고는 똑똑히 모르거니와)이라는, 짐작컨대, 억조 동루렁이의 사람들이 구더기와 같이 우글거릴 도회에서는, 상당히 역한 냄새가 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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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밖에는 황 서방에게는 한 마디도 모를 것이었다. 흙냄새가 그립다 하나, 흙냄새도 상당히 구린 것이었다. 봄날 흙냄새는(거름을 한 지 오래지 않으므로) 더욱 구린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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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차, 하수도, 가솔린, 이런 것은 어떤 것인지 황 서방은 짐작할 수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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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황 서방은 Z씨의 말을 믿었다. 저는 시골밖에는 모르고, Z씨는 시골과 도회를 다 보고 한 말이매 그 사람의 말이 옳을 것은 당연한 것이다. 흙냄새가 아무리 구리다 할지라도 도회 냄새보다는 좋은 것이라 황 서방은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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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 하루 종일 번듯이 자빠져 있은들 시골에서는 자동차에 칠 걱정이 있겠소, 순사에게 쫓겨갈 걱정이 있겠소? 참 자유스럽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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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도 또한 사실이고, 당연한 말이었다. 황 서방은 그러한 시골에서 생겨난 자기를 행복스럽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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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서나 달 뒤에 , 그 Z씨는 시골에 대하여 온갖 욕설을 다하고 다시 도회로 돌아갔다. Z씨는, 몰랐거니와 흙냄새는 매우 역하다 하였다. 도회에서는 하루 동안에 한나절씩만 주판을 똑딱거리면 매달 5,000냥씩 들어오던 자기가, 여기서는 땀을 뻘뻘 흘리며 손을 상하며 일을 하여야 1년에 5,000 냥 들어오기가 힘드니, 시골이란 재간 있는 사람은 못 살 곳이라 하였다. 10리나 100리라도 걸어서 밖에는 다닐 도리가 없으니, 시골은 소나 말이나 살 곳이라 하였다. 기생도 없으니 점잖은 사람은 못 살 곳이라 하였다. 읽을 책도 없으니 학자는 못 살 곳이라 하였다. 양요리가 없으니 귀인은 못 살 곳이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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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을 듣고 황 서방은, Z씨가 간 다음 사흘 동안을, 눈이 퀭하니, 밥도 안 먹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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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씨의 말은, 모두 다 또한 정말이었다. 아직껏 곁집같이 다니던 최 풍헌의 집이, 생각해보면 참 멀었다. 15리! Z씨가 진저리를 친것도 너무 과한 일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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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말로 들은 바, 기생이라는 것이 없는 것도 또한 사실이었다. 재미있는 책이라고는 『임진록』한 권이(그것도 서두와 꼬리는 없는 것) ○촌을 중심으로 삼은 30리 이내의 다만 하나의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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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구나 그 근처 일대에, 주판 잘 놓기로 이름난 황 서방이, 도회에서는(Z씨의 말에 의지하건대) 매달 5,000냥 수입은 될 황 서방이, 손에 굳은살이 박이며 땀을 흘리며 천신만고하여 1년에 거두는 추수가 6,000냥 내외였다. 게다가 감자를 먹고…… 거름을 주무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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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달이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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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는, 황 서방은 자기의 먹다 남은 것이며 집이며 세간살이를 모두 팔아 가지고 도회로 온 지 벌써 한 달이나 된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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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 서방은 자기의 것을 모두 팔아서 6,000냥이라는 돈을 긁었다. 그 가운데서 집세로 600냥이 나갔다. 한 달 동안 구경하며 먹어가는데 2,000냥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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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밤의 도회는 과연 아름다웠다. 불, 사람, 냄새, 집, 소리, 모든 것은 황 서방을 취하게 하였다. 일곱 냥 반을 주고 아이스크림도 사 먹어보았다. 또한 소리, 불, 사람, 냄새, 보면 볼수록 도회의 밤은 사람을 취하게 하였다. 아이스크림, 빙수, 진열장, 야시…… 아아, 황 서방은 얼마나 이런 것을 못 보는 최 풍헌이며 김 별장을 가련히 생각하였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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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원도 보았다. 전차도 간간 타보았다. 선술집의 한잔의 맛도 괜찮은 것이고 길에서 파는 밀국수의 , 맛도 또한 황 서방에게는 잊지 못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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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회로 오기만 하면 만나질 줄 알았던 Z씨를 못 만난 것은 좀 섭섭하지만, 그것도 황 서방에게는 불편 되는 일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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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도회, 도회…… 과연 시골은 사람으로서는 못 살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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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 서방이 도회로 온 지 넉 달이 되었다. 인젠 밑천도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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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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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 서방은 의관을 정히 하고 큰 거리로 나가서 어떤 큰 상점을 찾아갔다. 그리고 자기는 주판을 잘 놓는데 써달라고 부탁을 드렸다. 그러나 의외로 황 서방은 첫마디로 거절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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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 서방은 다른 집으로 찾아갔다. 그러나 거기서도 또한 거절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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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때, 집에 돌아올 때는 황 서방의 얼굴은 송장과 같이 퍼렇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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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일이 어디 있나? 첫마디로 승낙할 줄 알았던 일이, 오늘 30여 집을 다녔으나 한 곳에도 승낙 비슷한 것도 못 받고 거러지나 온 것 같이 쫓겨 나왔으니, 인제 어쩐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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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의 경과도 역시 같았다. 사흘, 나흘, 황 서방의 밑천은 한 푼도 없어졌는데 매달 5,000냥은커녕 500냥으로 고용하려는 데도 나타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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굶어? 황 서방은 인제 할 수 없이 굶게 되었다. 아직 당해보기는커녕 말도 못 들었던 ‘굶는다’는 것을, 황 서방은 맛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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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들 사람이 굶기야 하랴! 황 서방은 사람의 후한 인심을 충분히 아는 사람이었다. 아직껏 그런 창피스러운 일은 해본 적은 없지만 ○촌에서 20리를 떨어져 있는 ○촌에 쌀 한 말 얻으러 갈지라도 꾸어주는 것을 황 서방은 안다. 사람이 굶는다는데 쌀 한 말 안 줄 그런 야속한 화냥놈은 없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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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 서방은 곁집에 갔다. 그리고 자기는 이 곁집에 사는 사람인데, 여사여사하다고 사연을 한 뒤에, 좀 조력을 해달란 이야기를 장차 끄집어내려는데, 그 집에서는 벌써 눈치를 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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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두 굶을 지경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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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는, 제 일만 보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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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 서방은 그것도 그럴 일이라 생각하였다. 사실, 그 집도 막벌이 하는 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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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 서방은 다시 한 집 건너 있는 큰 기와집으로 찾아갔다. 그가 중대문에 안에 들어설 때에, 대청에 걸터앉아서 양치를 하고 있던 젊은 사람(주인인지)이, 웬 사람이냐고 꽥 소리를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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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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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 서방은 다시 나오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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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 서방은 마침내 도회라는 것을 알았다. 도회에서 달아나던 Z씨의 심리도 알았다. 그러나 Z씨가 다시 도회로 돌아온 그 심리는? 그것도 Z씨가 도로 도회로 돌아올 때에 한 말을 씹어보면 알 것이었다. 도회는 도회 사람의 것이고, 시골은 시골 사람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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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분! 천분! 천분을 모르고 남의 영분에 침입하였던 황 서방은 이렇게 실패하였다. 황 서방은 인제 겨우 자기의 영분을 깨달았다. 그리고 사람은, 저 할 일만 제가 할 것임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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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 새벽, 황 서방은 떠오르는 해를 등으로 받고, 주린 배를 움켜쥐고, ○촌에서 150리 밖을 통과하는 K국도를 더벅더벅 걸었다.
【원문】시골 황서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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