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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향(故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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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상
이명선, 노신(魯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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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鄕[고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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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魯迅[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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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독한 추위를 무릅쓰고 이철리나 떠러진 곳에서 이십여년 만에 고향에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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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이미 엄동이다. 고향에 점점 가까워올 때 날새는 음울하게 흐려지고 찬 바람이 선실(船室)에까지 불어와서 쐐 - 쐐 - 소리가 요란하다. 선창으로 밖을 내다보니 히미ㅅ구리한 하늘 밑에 여기 저기 보이는 것은 쓸쓸하고 초라한 마을이다. 활기라고는 전혀 있을 것 같도 않다. 나의 가슴 속에는 금할래야 금할 수 없는 슬픔이 소사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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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이것이 내가 이십년 동안 때로는 생각해 나려오든 고향이었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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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기억하고 있든 고향은 이것과는 아주 전혀 딴판이다. 나의 고향은 훨신 더 좋왔다. 나는 고향의 아름다움을 생각해내고 그 좋은 점을 말하고 싶으나 도리혀 내가 머리 속에 그리고 있든 영상(影像)은 살어저 버리여 말문이 맿기고 만다. 그리곤 눈앞에 보이는 것과 같은 것으로 변해 버렸다. 그래서 나는 나 혼자 멋대로 해석하야 고향은 월래 이랬든 것이다. 전보다 나아진 것도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또 슬픔을 느낄 정도의 것도 아니다. 이것은 다만 나의 마음이 변해진 탓이다. 왜냐하면 나는 이번에 그다지 즐거운 마음으로 돌아온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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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번에 그저 다만 고향과 이별을 하러 온 것이다. 우리 여러 일가들이 오래동안 모혀 살어온 묵은 집은 이미 상의해서 남한테 팔어버리고 집을 비워주어야 할 기한도 금년 년말까지라 정월 초하로가 되기 전에 낯익은 묵은 집과도 영원히 이별하고 정든 고향에서도 멀 - 리 떠나 내가 밥버리하고 있는 타향으로 이사를 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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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 새벽에 나는 우리 집 문 앞에 다달었다. 기와 틈에 난 수많은 마른 풀들이 꺾어진 대공을 바람에 벌벌 떨고 서있는 품이 마치 이 묵은 집의 주인이 밖겨지지 않으면 안될 이유를 설명해 주는 것 같았다. 한 집에 살든 일가들은 이미 대개 이사를 하얐는지 집안이 퍽 쓸쓸하다. 내가 있든 방 밖에까지 이르니까 어머니가 쫓어나와 맞아주었다. 어머니를 따라서 여덜 살 먹은 족하 훙얼(宏兒)도 뛰여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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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대단히 반가워하였으나 어쩐지 그 안색에는 처량한 심정을 금할 수 없는 빚이 떠돌았다. 어머니는 나를 보고 앉어 쉬어서 차를 마시게 하고 이사하는 이야기는 입 밖에 내지 않었다. 홍얼은 전에 나를 본 일이 없었음으로 좀 떨어저 앉어서 나의 얼골만 처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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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우리는 그여히 이사에 대한 이야기를 끄집어냈다. 나는 이사갈 데다가 벌서 집을 빌렸고 또 세간도 좀 장만하얐으나 그 외의 것은 이 집에 있는 세간을 팔어가지고 그 돈으로 더 장만하자고 말했다. 어머니도 그것이 좋다 하얐다. 짐도 대강 싸 노았고 목기(木器)같이 운반하기 어려운 것은 거진 다 팔아버렸으나 아즉 돈은 몯 받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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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하루 이틀 더 쉬어서 일가친척에 인사나 한 다음에 떠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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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다러 어머니는 이렇게 말하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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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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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룬투(閠土)말이다. 그 사람은 우리 집에 올 때마다 네 이야기를 하는데 매우 네가 보고싶은 모양이더라. 벌서 너 오는 날자를 알으켜 주었으니까 아마 쉬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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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 내 머리 속에는 한 폭의 그림이 번쩍 눈 앞에 떠올랐다. 파 - 란 하늘에는 금빛 나는 둥근 달이 솟아 있고 그 아래 해변 모래 땅에는 왼통 끝도 보이지 않을만치 파랗게 수박이 덩굴저 있다. 그 가운데 열두어살 되는 어린아이가 목에는 은으로 맨든 목거리를 걸고 손에는 긴 쇠창을 들어 차아(猹[사]=수박을 먹으로 온다는 공상의 짐생. 作者[작자]의 造字[조자])를 향하야 힘껏 찔렀으나 이 짐생은 돌아서서 그 어린아이 가랭이 밑으로 도망해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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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어린아이 곧 룬투다. 내가 그를 알게 된 것은 열한두 살 때 즉 지금으로부터 삼십년 전 일이다. 그 때는 나의 아버지도 살아 있었고 형세도 넉넉해서 나도 도련님이였다. 그 해 우리 집에는 큰 제사가 드렀었다. 이 제사는 말인즉 삼십년만에 한 번 있는 것이기 때문에 대단히 정성을 드리는 것이다. 정월에 조상 화상(畵像)에 제사를 지내는 데 제몰도 퍽 많고 제기도 잘 가추며 참례하는 사람도 무척 많아서 제기(祭器)를 누가 집어가지 않도록 경게할 필요가 있었다. 우리 집에는 망(忙月)라는 일 거드는 사람이 마침 하나 있었다. (우리 고향에서는 남의 일을 해주는 데 세 가지 종류가 있었다. 왼이로 일년동안 한 집에 나무 집 사는 것을 장년(長年)이라 하고 그저 그 날 그 날 일을 해주는 품파리를 돵공(短工)이라 하고 또 하나는 자기 집에서 농사를 지면서 과세할 때 단오 때 도조 받어 디릴 때만 와서 일하는 것을 망(忙月)라고 하얐다.) 그는 너머도 바뿐 탓으로 자기 아들 룬투에게 제기를 지키게 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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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버지는 그것을 허락했다. 나는 무척 기뻤었다. 벌서 그 전부터 룬투라는 일흠을 들었었고 또 나와는 나이가 비등비등한 것을 알었기 때문이다. 그는 윤달에 나서 오향(五行)에 흙에 빷었기 때문에 그의 아버지가 그를 룬투(閠土)라고 한 것이다. 그는 새를 대단히 잘 잡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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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날마다 설이 오기를 기달렸다. 설이 오면 룬투도 온다. 그여히 그믐이 되였다. 어느 날 어머니가 룬투가 왔다고 일러주어서 나는 바로 뛰어나가 보았다. 그는 부엌에 있었다. 얼골은 붉고 둥글게 생겼으며 머리에는 털모자를 쓰고 목에는 번쩍번쩍하는 은 목거리를 둘렀다. 이것으로도 그의 아버지가 그를 퍽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가 죽을까바서 부처님 앞에 기도하야 목거리로 그를 보호한 것이다. 그는 사람을 보면 퍽 부끄러워했으나 나만은 무서워하지 않고 곁에 사람이 없을 때에 나에게 말을 거러서 한나절도 못되여 우리들은 친해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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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이 그 때 무슨 이야기를 했었는지 몰으겠으나 다만 기억하고 있는 것은 룬투가 매우 기뻐하며 읍에 와서 이 때까지 못 보는 것을 많이 보았다고 말한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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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튼날 내가 새를 잡아달랬드니 그는 이렇게 말하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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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안돼. 눈이 많이 와야지 머! 모래밭에 눈이 오면 한 군데를 쓸고 커다란 대삼태미를 짧은 작댁이로 고요놓고 그 밑에다가 겨를 뿔여 놓는다. 그러면 새들이 와서 겨 파먹는 것을 좀 먼 발치로 보고 있다가 작댁이 비뜨러맨 끈을 톡 잡어채면 새들은 그만 삼태미 밑에 잽히는 거다. 무슨 새든지 다 있다. 팟새 뽀쪽새 비들기 파랑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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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래서 또 눈 오기를 퍽 기다렸다. 룬투는 나보고 또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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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퍽 춥지만 여름에 우리 동내 와 봐라. 우리들은 낮에는 바다ㅅ가에 가서 조개껍질을 줍는단다. 붉은 것 파란 것 별 것이 다 있다. (귀신 쫓기)도 있고 (관음(觀音) 손)도 있단다. 그리고 밤이면 나는 아버지하고 수박 밭을 지키러 가는데 너도 같이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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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적을 지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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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야. 길 가는 사람이 목이 말러서 한두 개 따먹는 것은 우리게서는 도적으로 치지 않는단다. 지켜야 되는 것은 들도야지니 고순도치니 ‘차아’니 하는 것이란다. 달이 밝을 때에 바삭바삭 소리가 나면 그것은 ‘차아’가 수박을 갈가먹는 것인데 그러면 바로 쇠창을 들고 가만가만히 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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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때까지 이 ‘차아’라는 것이 도대체 어떻게 생긴 동물인지 몰랐다. 지금도 몰르지만! 다만 어심푸리하게 강아지같이 생기고 매우 흉악한 것으로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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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놈이 사람들 물지는 않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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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창을 갖이고 있는데 뭐! 가까이 가서 ‘차아’인 줄만 알면 콱 찔르는데 그렇지만 그놈의 김생이 여간 꾀가 있어야지. 도리혀 사람한테로 달려들어서 가랭이 밑으로 쑥 빶어 달어난단 말이야. 그 놈의 털은 아주 미끄러워서 똑 기름 발러논 것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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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세상에 이처럼 이상스러운 일이 많이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바다ㅅ가에는 각종 조개껍질이 있고 수박에도 이러한 위험한 경력이 있을 줄이야…. 나는 그 때까지는 수박은 다만 과물전에서 파는 것으로만 알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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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래밭에 조수물이 밀려들어오면 수많은 날고기가 펄펄 뛰고 논단다. 모다 청개고리처럼 두 다리가 달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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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룬투의 가슴 속에는 무궁무진한 이상한 이야기가 들어 있는 것이다. 나의 이제까지의 동무들은 도모지 조곰도 모르는 일이다. 나의 동무들은 대단치 않은 일밖에는 모른다. 룬투가 바다ㅅ가에 있을 때 우리 동무들은 나와 같이 다만 집 속에서 높은 담으로 둘러싸인 네모진 하늘을 쳐다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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섭섭하게도 설은 지나가고 룬투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않되었다. 나는 슬퍼서 벼란간에 엉엉 울어버렸다. 그도 부엌에 숨어서 울면서 나올랴고 하지 않었다. 그러나 그여히 그의 아버지에게 끌러가 버렸다. 그는 후에 그의 아버지에게 부탁해서 조개껍질을 싼 것하고 보기 좋은 새털 몇 개를 나한테 보냈다. 나도 그에게 두어 번 선물을 보내주었다. 그러나 그 후로는 다시는 만나지 몯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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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어머니가 그의 이야기를 꺼냈으므로 나는 이러한 어릴 쩍의 기억이 홀연 번개같이 한거번에 머리 속에 떠올라 예전의 아름다운 고향에 다시 도라온 것 같었다. 그래서 나는 대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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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귀가 번쩍 띠이는 이야깁니다. 그는 ─ 그래 어떻게 되었읍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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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 …. 그 사람 형편도 말 않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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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대답하며 밖을 내다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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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또 왔나보다. 물건을 산다는 것은 말뿐이고 얼정얼정하고 슬적 제 맘대로 집어가 버리니까. 내가 잠간 가 보고 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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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이러나 나갔다. 문 밖에는 여인네들의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심심푸리로 홍얼을 가까이 오게하고 이야기를 걸었다. 글씨를 쓸 줄 아냐고 또 이사가는 것이 좋으냐고 물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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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 타고 가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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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기차 타고 가고 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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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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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배를 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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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구! 이렇게도 변하셨어요! 수염이 이렇게 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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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카롭게 괴팍스러운 소리가 요란히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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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깜작 놀라서 얼른 머리를 들어 은저리를 둘러보았다. 광대뻬가 뿔쑥 나오고 입술이 엷은 한 오십 되여보이는 여인네가 내 앞에 서 있다. 두 손으로 허리를 집고 치마도 안 입고 두 다리를 벌리고 슨 모양이 천연 똥그랭이를 그릴려고 벌려논 콤파쓰의 가느다란 다리 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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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깜작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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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몰라 보겠우? 그래도 어릴 때에는 많이 없어주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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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더욱 놀랐다. 다행히 어머니가 드러와서 옆에서 말을 거드러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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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가 오래ㅅ동안 고향을 떠나 객지로 돌아다니느라구 잊었나 보우. 너도 알지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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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향하여 말하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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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이가 바로 길 건너 저 쪽에 사는 양얼사오(楊二嫂) 아주머니다. 두부ㅅ집 하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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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알었다. 내가 어렸을 때 길 건너 저 쪽 두부ㅅ집에 하로 종일 전을 보든 양얼사오라는 여자가 분명히 있었다. 모두들 두부미인(豆腐西施)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그 때에는 분을 발르고 광대뻬도 이처럼 나오지 않고 입술도 이처럼 엷지 않고 또 왼종일 앉어 있었기 때문에 다리가 이처럼 콤파쓰 모양인 줄은 몰랐다. 그 때에 여러 사람들이 말하기를 이 두부ㅅ집의 장사 잘 되는 것은 그 여자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아마 년령이 관게였는지 나는 조곰도 감화를 받지 않어 까맣게 잊여버렸든 것이다. 그러나 콤파쓰는 대단히 불만인 듯 비웃는 기색으로 불란서 사람으로서 나포레옹을 모르고 미국 사람으로서 워싱톤을 모른다는 듯이 비꼬아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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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었우? 귀인(貴人)은 눈이 높으시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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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리가 있겠오….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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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당황하야 이러나며 대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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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면 할 이야기가 있오. 도련님 당신은 훌륭하게 되었다면서요. 가지고 단기기도 불편할텐데 이런 다 부서진 나부랭이 가구는 무었에 쓸 데가 있겠오. 나를 주고 가요. 우리 가치(價値) 없는 사람은 그래도 쓸 데가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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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조곰도 훌륭하게는 몯 되였오. 나는 이런 것이라도 팔아야만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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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구 여보 도대(道臺(도장관))님이 되었다면서도 훌륭하게 안 되였다고요? 첩을 셋이나 두고 출입할 때에는 팔인교를 타고 단기면서 훌륭하게 몯 되었다고요? 흥 어떻게든지 해서 나를 속여보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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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더 말할 것도 없겠기에 그대로 입을 다문 채 묵묵히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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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구 참 돈이 많으면 많을수록 일전 한 푼 내버리지 않고 그러니까 돈이 또 더 많아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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콤파쓰는 성이 벗쩍 나서 도라서며 야불야불 중얼거리다가 살금살금 거러 나갔다. 나가면서 아무 말 없이 어머니의 장갑을 허리춤에다 슬적 찜구고 나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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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에도 또 근처의 일가 친척들이 찾아왔다. 나는 그들을 접대하면서 틈틈이 짐을 쌌다. 그렇게 하여 삼사일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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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몹시 치운 오후에 나는 점심을 먹고 앉어 차를 마시고 있으랴니까 밖에 사람이 온 상 싶어 고개를 돌려 바라보았다. 보자마다 나는 깜작 놀라 당황히 이러나 맞이러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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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에 온 것이 곧 룬투이였다. 나는 첫눈에 그가 룬투인 줄을 알기는 하얐으나 그러나 내가 기억하고 있든 룬투는 않이었다. 붉고 둥글든 얼골은 이미 누렇게 변하고 그 우에 매우 깊숙한 주름살이 잪이어 있다. 눈은 그의 아버지와 비슷하얐으나 눈 은저리가 짓물러서 부숙부숙하고 빩알다. 바다ㅅ가에 사는 사람은 왼종일 바다ㅅ바람을 쏘이어 대개 이렇게 되는 줄은 나도 알고 있지만 -. 머리에는 떠러진 털모자를 쓰고 몸에는 아주 얇은 솜옷을 걸치어 전신을 움크리고 있고 손에는 무었인가 조이로 싼 것과 긴 담배ㅅ대를 들었는데 그 손도 내가 기억하고 있든 붉고 살이 통통하게 찐 손은 아니였다. 도리혀 거칠고 험하고 좍좍 금이 가서 똑 소나무 껍질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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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때 대단히 흥분되여 무어라고 말할 지를 몰라 그저 겨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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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룬투 -. 왔네 그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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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연다러 할 이야기가 많이 있고 여러 생각이 염주처럼 줄다러 나왔다. 팟새니 날고기니 조개껍질이니…. 그러나 어쩐지 무었인가가 꽉 막는 상 싶어 머리 속에서만 뱅뱅 돌면서 입 밖으로는 나오지 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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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그저 머춤하니 서 있었다. 얼골에는 기뿜과 함께 처량한 빛이 나타나고 입술만 벌룸거리며 말을 몯하였다. 그는 그여히 공경하는 태도로 아조 똑똑하게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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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아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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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몸소리가 치는 것 같었다. 우리들 사이에는 이미 슬프게도 커다란 벽이 가로 맥ㅎ겨 있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하야 더 말을 잇지 않었다.
 
71
그는 머리를 돌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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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이셩(水生)! 나아리한테 절 해라.”
 
73
하고 뒤에 숨어있는 어린아이를 내세웠다. 그야말로 이십년 전의 룬투와 똑 같었다. 다만 혈색이 좋치 몯해 파레하고 목에는 은목거리를 걸지 않은 것만이 틀리었다.
 
74
“이 놈이 다섯째 놈이올시다. 깨이지 몯하고 어리석어 빶어서….”
 
75
어머니와 홍얼이 이층에서 나려왔다. 아마 우리들 말소리를 들었든 모양이다.
 
76
“마나님 편지는 곧 받었읍니다. 나는 어찌나 반가운지 나아리가 돌아오신다고 해서….”
 
77
룬투가 말했다.
 
78
“아 왜 그렇게 아주 딴 남처럼 하나. 전에는 서로 형제처럼 지내지 않었었나? 그 전과 같이 쉰(迅)이라고 불르지….”
 
79
어머니는 반갑게 대답하얐다.
 
80
“온 마나님도 참…. 천만에 말슴을 하십니다. 그 때는 철부지로 그저 아무 것도 몰르고….”
 
81
룬투는 이렇게 말하면서 쉬이셩에게 절을 시키려고 하얐으나 그 아이는 더 부끄러워서 룬투의 꽁문이만 잔득 부뜰었다.
 
82
“재가 쉬이셩인가? 다섯재지? 모다 낯선 사람들이니까 그야 서마서마하겠지. 그러면 홍얼하고 나가서 같이 놀려무나.”
 
83
어머니가 이렇게 꼬이었다.
 
84
홍얼은 이 말을 듣고 바로 쉬이셩한테 손짓을 하니까 쉬이셩도 선듯 이러나 그와 함께 나가버렸다. 어머니가 룬투보고 앉이라고 하니까 그는 사양하다가 겨우 앉으며 긴 담배대를 탁자에 기대 세우고 종이로 싼 것을 내노며 말했다.
 
85
“겨울이 돼서 아무 것도 없읍니다. 이것은 풋콩을 제 집에서 말린 것인데 나아리한테….”
 
86
나는 그에게 지내는 형편을 물어보았다. 그는 다만 머리를 흔들 뿐이다.
 
87
“말할 수 없이 골란합니다. 여서ㅅ 놈까지 일을 거들고 있어도 그래도 먹고 살어갈 수가 없읍니다…. 또 세상이 시끄럽고…. 돈 떼이는 데가 하도 많고 법도 없고…. 농사는 낭패만 합니다. 무었이고 심어서 팔랴고 내놓면 작고만 몇 번식 세만 떼이여 본전까지 짤러먹게 되고, 그렇다고 팔지 않으면 또 그대로 썩을 뿐이라….”
 
88
그는 그저 머리만 흔들었다. 얼골에는 수많은 주름살이 잪이었으나 그것이 조곰도 움지기지 않어 똑 석상(石像)같었다. 그는 필경 쓰라림을 느끼기는 해도 형용하지 몯하겠는지 잠간 말을 멈췄다가 담배ㅅ대를 들고 묵묵히 담배만 피웠다.
 
89
어머니가 무른 즉 그는 집에 일이 바뻐서 내일 곧 가봐야 한다는 것이다. 또 아즉 점심을 안 먹었으므로 부엌에 가서 제 손으로 지여먹게 하얐다.
 
90
그는 나갔다. 어머니와 나는 그의 평편이 말 안임을 한탄하얐다. 아이들은 많고 흉년은 들고 세금은 가혹하고 병정 도적 괄리 세력가…. 이러한 모든 것이 목석같은 사나이를 몯 살게 구는 것이다. 어머니는 말하얐다. 가지고 갈 수 없는 물건은 그대로 그를 주어 갖고싶은 것을 골르도록 하자고. ─.
 
91
오후에 그는 몇 가지 물건을 골라냈다. 긴 탁자가 두개 의자가 네 개 향노와 촉대가 한 쌍 미는 저울 하나. 그는 또 거기에 있는 모든 재가 소용된다 하며 (우리 고향에서는 밥을 짓는 데 짚을 때며 그 재는 모래ㅅ땅에 비료가 되는 것이다.) 우리가 떠나가는 것을 기다리어 배로 가지고 간다는 것이다.
 
92
밤에 우리는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했으나 그다지 중요한 이야기는 없었다. 이튼날 아침 일즉이 그는 쉬이셩을 다리고 가 버렸다.
 
93
또 아흐래가 지냈다. 이 날이 우리가 떠나가는 날이다. 룬투는 아침 일즉이 왔다. 이번에는 쉬이셩을 데리고 오지 않고 다섯 살 먹은 게집 아이를 데리고 와서 배를 지키게 하였다. 우리들은 하로 종일 대단히 바뻐서 이야기할 여가도 없었다. 손님도 적지 않었다. 작별하러 온 사람 물건 집어가려고 온 사람 또 작별과 도적질을 겸해서 온 사람 ─. 저녁 때 우리들이 배에 오를 지음에는 이 묵은 집에 있든 크고 적은 모 - 든 헌 물건들이 이미 하낳도 남지 않고 갈 데로 다 가버렸다.
 
94
우리들 태운 배는 떠났다. 양쪽 강ㅅ가에 있는 푸른 산들은 황혼 속에 잠기어 그 검푸른 얼골을 변하야 연실 배 뒤로 사라젔다.
 
95
홍얼은 나와 함께 선창에 의지하야 밖의 어두어가는 풍경을 바라보고 있다가 급작이 그는 나한테 묻는 것이었다.
 
96
“큰아버지! 우리는 언제나 돌아오게 됨니까?”
 
97
“도라오다니? 너는 왜 아즉 가지도 않아서 도라올 생각부터 하니.”
 
98
“그렇지만 쉬어셩이 제 집에 놀러오라고 그랬는데요 머….”
 
99
그는 크고 검은 눈동자를 깜작도 하지 않고 잔득 생각 속에 잠기어 있다.
 
100
나도 어머니도 기운이 없어 멀거니 있든 차에 홍얼의 말을 듣고 룬투의 생각이 났다. 어머니는 말하얐다. 그 두부미인이라는 양얼사오가 짐 싸기 시작한 때부터 안 오는 날이 없드니 그저께는 재를 끌어뫃은 속에서 사발이니 대접을 십여 개나 꺼냈는데 이러구 저러구 말다틈 끝에 이것은 룬투의 소행인데 재를 실어 갈 때 함께 가지고 가랴든 것이 틀림 없다고 하며 양얼사오가 이것을 발견했으니까 그 공으로 닭ㅅ장(이것은 우리 시골의 닭 치는 도구로 넓판 우에다가 목책(木柵)을 둘러서 속에 모이를 느어주면 닭은 목을 내밀어 쪼아 먹을 수가 있어도 개는 먹을 수 없어서 바라만 보다가 죽는다는 것이다.)을 가지고 번개같이 다러났는데 그 조고만 발에다가 됫독한 신을 신고 그저 비호처럼 내뺐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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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집은 나와 점점 멀어저 간다. 고향의 산도 물도 모다 점점 멀어저 간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것에는 아무런 미련도 남지 않었다. 나는 다만 내 주위를 눈에 보이지 않는 높은 담이 둘러싸서 나를 고독하게 만드는 것을 느끼고 몹시 슬펐다. 저 수박밭 속에 은목거리를 둘르고 슨 소영웅(小英雄)의 그림자가 그전에는 아주 똑똑하게 눈 앞에 그릴 수 있더니 지금은 도리혀 급작이 흐려저서 이것이 또 나를 매우 슬프게 한다.
 
102
어머니와 홍얼은 다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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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드러누어서 배 밑으로부터 울려오는 철석철석하는 물소리를 들으면서 내가 나의 갈 길을 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생각하였다. 나와 룬투와는 필경은 이처럼 거리가 떠러저 버렸으나 우리의 후배들도 또 이와 같이 ─ 그 전의 나처럼 홍얼은 지금 쉬이셩을 그리워하고 있지 않은가? 나는 그들이 우리와 같이 되지 말며 또 모 - 든 사람이 서로 사이가 떠러지지 말기를 바란다. …. 그러나 나는 또 그들이 한마음이 되여야 한다고 해도 나와 같은 쓰라리고 마비된 생활을 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리고 또 다른 사람들과 같은 괴로운 방종(放縱)한 생활을 하는 것도 원치 않는다. 그들에게는 새로운 생활이 있어야 하며 우리들이 이 때까지 경험해 보지 몯한 생활을 하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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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이 히망이라는 말이 및어젔을 때 급작이 나는 무서워젔다. 룬투가 향노와 촉대를 달라고 할 때 나는 그가 우상(偶像)을 숭배하고 어느 때나 잊어버리지 몯하는 것을 마음속으로 비우섰다. 그러나 지금 나의 히망이라고 하는 것도 지가 제 손으로 맨든 우상이 않일까? 다만 그의 소원은 눈 앞에 가까운 데 있고 나의 소원은 망막한 먼 데 있는 것이 다를 뿐인 것 같다.
 
105
내가 어슬프시 졸고 있을 때 눈 앞에는 한 쪼각 풀은 모래사장이 나타났으며 그 우에 진한 남색 하늘에는 황금같은 둥근 달이 솟아 있었다. 나는 생각하였다. ─ 히망이라는 것은 볼래부터 사람들이 말하듯이 있는 것도 아니고 또 없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똑 땅 우에 길과 같은 것이다. 실상은 땅 우에 볼래부터 길이 있는 것이 아니라 단기는 사람이 많으면 자연 길이 되는 것이다.
【원문】고향(故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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