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7 ~ 1464] 조선 세종 때의 문신. 호는 인재(仁齋)이다. 시, 글씨, 그림에 모두 뛰어나 시, 서, 화의 삼절(三絶)이라 칭송받았다.
세종 23년인 1441년에 식년 문과(式年文科)에 급제하여 돈령부주부, 집현전 직제학이 되었고 세조 1년인 1455년에 사은부사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다.
세종 때 집현전 직제학으로서 정인지 등과 함께
훈민정음 28자에 대한 풀이와 《
용비어천가》의 주석을 붙이는 데 참여하였다.
1456년(세조 2년) 사육신의 변에 관련된 혐의로 문초를 받았으나, 성삼문이 그가 관련되지 않았음을 말하고 인재를 살려 나라를 위해 쓰라고 세조에게 권하여 화를 면하였다.
작품에는 그림으로 《산수인물도》, 글씨로 《강지돈령석덕묘표》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