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1~1932] 소설가. 함경 북도 성진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최학송(崔鶴松)이며, 서해(曙海)는 아호이다.
최학송은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에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품팔이를 비롯하여 여러 가지 장사를 하면서 어렵게 보냈다. 학교는 성진보통학교를 다니다가 중퇴한 후 독학으로 공부하였다.
최학송의 문학 세계는 어린 시절의 그 뼈저린 체험이 바탕이 되어 이루어진 것으로, 모두가 빈곤의 참혹한 상태를 묘사한 것이었으며, 보복과 반항을 주제로 한 작품도 많았다. 그는 간결하고 직선적으로 표현하였기 때문에 그의 글은 더욱 호소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는
1917년 간도로 이주하여 여러 가지 일을 하면서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다가,
1923년 다시 우리 나라로 돌아왔다. 그 사이 1918년 《학승지》에 시를 발표하면서 글을 쓰는 일을 시작하였다. 그리고 1924년에 단편 소설 「고국」이 《조선 문단》지에 추천되면서 문단에 데뷔하였다. 그는 같은 해에 또 「토혈」을 발표하였고, 계속하여 「탈출기」 「기아와 살육》을 발표하였다. 그럼으로써 앞장서서 신경향파 문학을 이끄는 문학인으로서 사회적 관심을 끌게 되었다. 특히, 「탈출기」는
신경향파 문학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평가된다.
한편,
1925년 최학송은 조선 프롤레타리아 예술가 동맹(
카프)에 가입하였다. 조선 프롤레타리아 예술가 동맹은 1925년 7월
김기진·
박영희 등이 중심이 되어 사회주의 사상을 받아들인 진보적 예술가들이 당시의 개량주의 사상인 퇴폐적·감상적인 문화 예술을 비판하며 신경향파 문학 운동을 전개하면서 결성한 단체이다.
최학송은 그 뒤 '중외 일보' 기자를 지내다가, '매일 신보' 학예 부장이 되었다.
그의 작품은 주로 간도의 유민과 가난한 농민의 참혹한 삶을 묘사한 것으로 비극적인 결말을 맺는 줄거리이다. 그러나 예술적인 완성도가 부족하였기 때문에 초기의 인기를 계속 누리지 못하고 불우하게 살다가 젊은 나이에 죽었다.
그 밖의 소설 작품으로는 「박돌의 죽음」 「십삼원」 「폭군」 「금붕어」 「살려는 사람들」 「큰물 진 뒤」 「홍염」 등 이 있으며, 소설집 《혈흔》이 있다.